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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환 | April 14, 2017 | view 868
아주 특별한 세계여행 
아주 특별한 세계여행
김원섭 지음
원앤원스타일 / 2014년 12월 / 376쪽 / 17,000원

▣ 저자 김원섭
《여행신문》, 《트래비》에서 여행기자 생활을 했다. 그간 100여 개국을 여행했고, 한겨레문화센터, 현대백화점, 인프레임 포토 아카데미 등에서 사진을 가르치고 있다. KBS <사랑의 가족>, EBS <세계테마기행> 스리랑카 편, <한국기행> 만재도 편에 출연했다. 또 지리학대회 사진 심사위원, IVI국제사진공모전 심사위원, 해양수산부 ‘수산물 스토리로드’ 평가위원, ‘2014년 아름다운 어촌 찾아가기’ 평가위원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사진 잘 찍는 법』, 『여행사진 잘 찍는 법』, 『내 생애 최고의 여행지 몰타 & 튀니지』, 『교과서 속 세계여행』, 『내 마음에 담은 지구별 풍경』 등이 있다. 여행을 통해 더 열심히, 행복하게 살기를 늘 소망한다.

▣ Short Summary
“세상은 거대한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의 한 페이지만 읽은 것이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여행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배우고 지혜를 얻는다. 그리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 더 열심히, 더 행복하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더욱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꾸어왔던 세계여행에 대한 꿈이 이루어진 것은 30대 후반, 여행기자를 하면서부터였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세계 100개국 300여 지역을 여행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꿈꾸었던 여행지, 쉽게 갈 수 없는 오지,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거나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선별해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아시아로 특별한 여행지가 가장 많은 곳이다. 오래전부터 동서양 문화가 오고 갔던 실크로드,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 우주의 중심이라 믿는 카일라스 산과 신비로운 구게 왕국의 유적지를 소개했다. 또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느끼게 해준 필리핀 바나웨의 계단식 논과 살아 있는 원시동굴 수마깅 동굴 탐방, 빛의 도시로 추앙받는 바라나시, 지상 최고의 물감 축제인 홀리축제,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주었던 북인도의 스리나가르와 하늘호수 판공초 등을 특별한 여행지로 뽑았다. 이들 모두 아주 특별한 여행지로 내 가슴속에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된 곳이다.

2부는 유럽으로 얼마 전 TV에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 된 크로아티아와 사랑의 도시 프라하, 체코의 울창한 숲 속 온천 휴양지 마리안스케 라즈네와 카를로비 바리를 소개했다. 또 반 고흐와 렘브란트, 베르메르의 주옥 같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암스테르담, 세계의 명사들에게 사랑받는 특급 휴양지 포르토피노, 유럽에서 가장 사진 찍기 좋은 베네치아, 영원의 도시 로마와 바티칸, 물 흐르듯 감미로운 기타 선율이 느껴지는 알람브라 궁전, 파두의 고향 리스본, 유라시아 대륙의 끝자락에 위치한 로카곶, 지중해에 떠 있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몰타를 특별한 여행지로 뽑았다.

3부는 아프리카로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위협했던 세기의 명장 한니발의 고향 카르타고, 북아프리카의 풍요로운 옛 로마의 도시 두가, 아름다운 사막을 볼 수 있는 튀니지 남서부, 순정 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케냐 코어를 소개했다. 4부는 아메리카로 미국 서부 예술의 도시 산타페,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던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춤추는 슬픈 감정이라 불리는 탱고의 고장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특별한 여행지로 가려 뽑았다.
▣ 차례
지은이의 말_ 세상은 거대한 한 권의 책, 지구별 여행사진가의 아주 특별한 여행

1부 아시아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
실크로드를 따라 파미르 고원에 오르다 - 중국
역사 깊은 실크로드의 중심지 카슈가르 - 중국
천상의 세상 카일라스로 가는 길 - 티베트
영혼의 성소를 찾아가는 카일라스 순례 - 티베트
신비의 불교 왕국인 구게 왕국의 유적지 - 티베트
불굴의 의지가 느껴진 바나웨 계단식 논 - 필리핀
땅속 환상 세계인 수마깅 원시동굴 탐방 - 필리핀
빛의 도시 바라나시에 진짜 삶이 있다 - 인도
지상 최대의 물감 축제인 홀리축제에 가다 - 인도
스리나가르 달 호수와 이드 알 피트르 축제 - 인도
은하수 내리던 환상의 하늘호수, 판공초 - 인도
고산도시 캔디에서 만난 페라헤라 축제 - 스리랑카
원시부족 베다족이 사는 마히양가나 - 스리랑카

2부 유럽으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
신심 깊은 사람들이 사는 트빌리시 - 조지아
불타는 산과 샘이 있는 도시, 바쿠_ 아제르바이잔
보석처럼 빛나는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 - 크로아티아
누구나 시인이 되는 사랑의 도시, 프라하 - 체코
숲 속 온천 휴양지에서의 진짜 힐링여행 - 체코
예술에 빠져드는 암스테르담 미술관 산책 - 네덜란드
명사들이 즐겨 찾는 특급휴양지 포르토피노 - 이탈리아
유럽 최고의 출사지로 꼽히는 베네치아 - 이탈리아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인 로마와 바티칸 - 이탈리아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과 열정의 플라멩코 - 스페인
우수가 진하게 깃든 낭만의 도시, 리스본 - 포르투갈
대항해시대의 영광을 간직한 벨렘과 로카곶 - 포르투갈
지중해에 떠 있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소국 - 몰타

3부 아프리카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
명장 한니발의 고향으로 유명한 카르타고 - 튀니지
풍요로움이 있는 로마의 옛 도시, 두가 - 튀니지
아름다운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서는 관문 - 튀니지
순정 깊은 렌딜레 사람들이 사는 코어 - 케냐

4부 아메리카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
꽃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도시, 산타페 - 미국
쿠스코를 거쳐 공중도시 마추픽추로 가다 - 페루
정열 가득한 탱고의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 - 아르헨티나

『아주 특별한 세계여행』 저자와의 인터뷰
아주 특별한 세계여행
김원섭 지음
원앤원스타일 / 2014년 12월 / 376쪽 / 17,000원

1부 아시아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

역사 깊은 실크로드의 중심지 카슈가르 - 중국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카슈가르는 녹색 융단을 펼쳐 놓은 듯했다. 우루무치에서 텐산 산맥을 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넌 후에 만난 푸른색이라 더 반가웠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이름처럼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살아서 나올 수 없다’는 죽음의 땅이다. 그래서 동서양을 왕래하던 대상들은 이 사막의 남북 언저리를 지나는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했다. 이 실크로드가 동서남북으로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에 카슈가르가 위치해 있다. 약 2천 년 전부터 중국과 서역을 오가던 사람과 교역품은 반드시 카슈가르를 통과하게 마련이었다.

중국에 속하지만 우리가 아는 중국과는 다른 카슈가르: 카슈가르는 일 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지역임에도 농업과 목축이 발달했다. 북쪽의 텐산 산맥과 남쪽의 쿤룬 산맥, 서쪽의 파미르 고원에서 스며든 빗물이 복류하다가 카슈가르 주변에서 솟아나 오아시스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실크로드상의 큰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고, 사람들과 함께 동서양의 문화도 이곳을 거쳐 가며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4세기에는 로만 글라스가 동쪽으로 전파되어 신라 경주에 이르고, 유럽에 수출된 청화백자가 르네상스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지리학도인 나는 젊은 시절부터 실크로드 깊숙이 있는 도시를 방문해보고 싶었다. 카슈가르는 중국에 속하지만 우리가 아는 중국의 모습이 아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유목민이었던 위구르인들이고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양고기와 낭(빵)이 주식이고, 달고 향기로운 하미과(멜론의 일종)를 먹는다. 한여름이지만 해발 1,294m의 고원 도시라 바람이 시원했다. 구시가지의 중심 치니바그 호텔 앞에서 지하도를 건너니 청진사로 향하는 골목길로 접어든다. 청진사 후문에 이르자 길거리 이발사가 손님의 머리를 면도칼로 밀어주고 있었는데, 이 풍경이 우리나라의 1970년대 풍경 같아서 반가웠다.

청진사는 중국에서 부르는 이슬람 사원으로, 정식 명칭은 ‘에티갈 마스지드’다. 2개의 첨탑(미너렛)이 인상적인 모스크가 아침 햇살을 받아 진노랑으로 빛난다. 안으로 들어가니 꽃과 나무로 장식한 정원이 나오고 기도실로 이어진다. 이 지역에 이슬람교가 들어온 것은 10세기경부터라 한다. 에티갈 마스지드는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무슬림의 성지다. 이 사원의 역사는 1442년부터 시작되었다. 평일에는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요예배 때는 6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이 기도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모스크 안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남자들에게만 예배가 허락된다고 한다.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카슈가르 국제 바자르: 오후에 구시가지를 거쳐 국제 바자르(시장)로 향했다. 바자르 입구의 모스크 앞을 지나는데, 흐느끼는 여인의 울음소리가 발길을 잡는다. 온몸을 감싼 차도르 차림의 미망인이 숨죽여 울고 있었다. 이슬람 도시를 여행해보면 대부분 남성이 경제의 주체이고, 여자들은 집안일만 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남편이 일찍 사망하면 살아갈 길이 막막해진다. 그래서 이슬람교에서는 무슬림이 지켜야 할 5대 의무 중의 하나로 ‘자카트(자선)’를 중요시한다. 잠시 지켜보니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여인의 손에 돈을 쥐어주었다.

시장은 어딜 가나 그렇듯이 카슈가르 국제 바자르 역시 활기가 넘쳤다. 이곳은 카슈가르 시내 동북쪽 투만 강 동안에 위치해, ‘중국-서아시아 국제무역시장’이라는 별칭을 가졌다. 시장에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온 다양한 물건들로 넘쳐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인근 국가에서 모여든 상인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5천 개가 넘는 점포에 소, 말, 낙타, 양부터 전자기기와 그릇, 옷가지 등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

시장에서 빠지면 서운한 것이 바로 현지 음식이다. 시장 한쪽에서 면 요리와 볶음밥, 양 꼬치와 양 백숙, 빙수를 맛볼 수 있었다. 이곳을 여행하면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요리가 위구르 국수인 빤미엔(拌麵)이었다. 양고기와 야채가 듬뿍 들어간 소스 그리고 면이 따로 나와 비벼 먹었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고 달달하고 깔끔한 맛이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또한 쌀이 귀한 이 지역 최고의 음식은 볶음밥으로, 과거에는 잔칫날에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라고 한다. 쌀밥에 양고기와 양파, 당근, 피망 등을 넣고 볶아낸 볶음밥을 여행하는 내내 맛있게 먹는다. 양 백숙은 큰 컵에 양고기와 채소를 넣고 화덕 위에서 오랜 시간 끓인다. 기름진 소고기국 같은 맛으로, 나날이 지쳐가는 여행자의 기력 회복에 최고였다. 또 이곳의 명물 하미과는 달고 향긋한 맛에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 돈으로 2천 원 정도면 5명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하미과의 달고 향기로운 맛이 지금도 그립다.

빛의 도시 바라나시에 진짜 삶이 있다 - 인도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이 화두의 답을 찾아 바라나시로 떠났다. 인도 북부에 위치한 찬란한 빛의 도시 바라나시는 힌두교 최대의 성지다. 인도 사람들이 성스러운 어머니의 강으로 여기는 갠지스 강가에는 많은 힌두교 사원이 있고, 길게 늘어선 가트와 화장터가 있다. 사람들은 매일 강물에 몸을 씻고, 물을 마시고,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또 죽어서도 육신의 재가 갠지스 강에 뿌려지기를 소망한다. 그러면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갠지스 강에서 맞은 찬란한 아침: 아침 5시. 푸른 새벽에 나는 갠지스 강가로 향하는 릭샤에 오른다. 근육질의 릭샤왈라(릭샤를 운전하는 사람)는 금세 나를 강가에 데려다준다. 모두 잠들어 있는 시간,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을 보고 있으니 성스러운 기운이 전해져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많은 수행자와 사람들이 해가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강가가 일순간 술렁인다. 사두(힌두교 수행자)뿐만 아니라 운집한 사람들도 떠오르는 해를 보며 기도를 올린다. 어느 가족은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고,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가져온 공양물을 신에게 바치며 기도를 한다. 강물에 소원을 담은 등불을 띄우며 금잔화를 바치고, 신상에 꽃을 바치며 기도를 올린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왔을 아침 풍경이 지금도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는 요즘도 이곳 사람들의 신심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바라나시는 인도 최고의 성지로 남에서 북으로 갠지스 강이 흐른다. 이들은 ‘어머니’라 불리는 갠지스 강물이 ‘신비한 힘’, 즉 생명과 정화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으면 살아생전의 모든 죄가 씻기고, 죽은 육신을 갠지스 강에서 화장하고 그 재를 강에 뿌리면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곳은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일 년 내내 북새통을 이루고 강가 화장터의 불은 꺼질 줄 모른다. 나룻배를 타고 강 안쪽으로 들어간다. 강에서 바라보는 바라나시는 아침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이곳에서 50년 이상 노를 저었다는 뱃사공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져온 초코파이를 하나 건넨다. 사공은 맛있게 먹더니 손으로 강물을 떠서 마신다. 오염된 강물을 마셔도 괜찮을지 염려가 되었지만 사공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기만 한다.

다시 강가로 돌아와 걷는다. 강가에는 작은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많은 사두들이 보인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한다. 그중 몸에 진흙을 바르고 나체수행을 하는 일련의 사두들이 눈길을 끈다. 온몸에 회칠을 한 전라의 수행자들.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괜찮겠냐고 물으니 웃으며 허락해준다. 이들은 무소유를 온몸으로 보여주며 수행하는 사두들이다. 속옷조차도 소유의 집착을 가져온다며 나체수행을 하고 있다. 다른 수행자들도 옷은 입고 있지만, 가진 것은 단벌옷과 작은 주머니 그리고 지팡이 하나가 전부다. 이들은 “물건을 많이 갖고 있으면 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야 온전하게 신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삶의 2가지 진리: 뜨거운 대낮의 볕을 피해 라씨(Lassi, 인도식 요구르트)를 한 잔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눈앞에서 운구행렬이 지나간다. 4명의 남자들이 시신을 올려놓은 까빤(대나무로 만든 들것)을 메고 화장터로 가고 있다. 죽은 이는 은색의 화려한 수의를 입고 목에는 금잔화 꽃목걸이를 걸고 있다. 남자들은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연신 “람 남 사뜨야 헤이(Ram Naam Satya Hai, 람의 이름은 진리다).”를 외친다. 람은 인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주인공으로 비슈누의 화신이다. 류경희의 『인도의 종교와 종교문화』에 따르면 “삶에는 2가지의 진리가 있는데 하나는 태어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죽는 것이다. ‘람 남 사뜨야 헤이’라고 읊으면서 시신을 운반하는 까닭은 죽음은 진리이며 동시에 그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진리임을 믿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장례행렬을 따라 강가의 마니까르니까 화장터로 향한다. 화장터에는 화장용 장작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문득 화장 절차가 궁금해진다. 장작더미가 준비되고 시신을 강물에 담그는 것으로 정화의식을 한다. 그다음 사제가 경전 구절을 낭송하는 가운데 쌓아 놓은 장작더미에 시신을 올려놓는다. 간단한 의식을 하고 삭발을 한 뒤 하얀색 옷을 입은 상주가 불을 붙인다. 이들은 불을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 보기 때문에 화장을 선호한다. 이후 망자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하며 장작더미 주위를 돈다. 시신이 완전하게 타기까지는 3~4시간이 걸리는데, 지켜보는 가족들은 담담하다. 모두들 덤덤하게 지켜볼 뿐이다. 이들은 죽음 또한 일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윤회를 믿는 인도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이 삶에서 또 다른 삶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화장 후의 육신은 5가지 물질요소로 돌아가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영혼은 새로운 몸을 취해 다양한 생명체로 태어난다고 믿는 것이다. 이들에게 몸이란 언제든 갈아입을 수 있는 옷과 같고, 죽음은 영혼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이다. 그래서인지 화장터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담담했고 통곡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올 수밖에 없는 곳,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든 불가촉천민이든 언젠가는 이곳으로 와야 하는 것이 진리다. 결국에는 연기로,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것이 인생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은하수 내리던 환상의 하늘호수, 판공초 - 인도
인도 히말라야 산맥 북쪽 끝자락, 해발 4,350m에 위치한 판공초는 하늘과 닿아 있어 ‘하늘호수’라 불린다. 호수의 물은 맑았고 만년설을 머리에 인 산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신비롭게 느껴졌다. 호수도 아름답지만 이곳으로 가는 길도 매력적이다. 마치 외계의 어느 별에 온 듯, 거칠고 황량한 풍경이었지만 물이 있는 곳에는 마을이 들어서 있고, 푸른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야크 떼와 파시미나 양 떼들이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천상의 세계가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 닿아 있는 마법의 하늘호수: 판공초는 라다크 지역의 중심도시 레에서 약 150km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1시간 30분이면 도달할 거리지만, 급경사를 이루는 산에 지그재그로 난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려야 하기에 자동차로 4시간이 걸렸다. 레에서 가까운 곳은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만, 고갯길은 대부분 비포장이라 먼지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동차까지 지독한 매연을 내뿜고 있어 견디기 힘들었다. 창 라 고개의 정점에 오르자 기온은 급격하게 내려가고 호흡은 가빠지며 머리는 깨질 듯 아파왔다. 한여름이었지만 윈드재킷을 입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쌀쌀했다.

창 라 고개는 해발 5,360m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자동차 도로가 있다. 고갯마루에는 작은 곰파(사원)가 있고, 수많은 룽다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오색 천에 새긴 부처의 말이 세상 곳곳에 퍼지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이 걸어놓은 것이다. 일행들과 얼른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차에 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산반응으로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창 라의 급경사 길을 내려가자 푸른 초원과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이 나타났다. 고생 끝에 도착한 판공초 호수는 눈이 시릴 정도로 맑았고 아름다웠다. ‘길고 좁은 마법의 호수’라는 뜻의 판공초. 이렇게 청청하고 아름다운 호수는 생애 처음이었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호수에 발을 담그니, 발이 아릴 정도로 차가웠고 물맛은 짭조름했다. 판공초는 인도와 티베트에 동서로 길게 걸쳐 있는 호수다. 길이 134km, 해발 4,350m로 사방으로 해발 7천 미터가 넘는 고산들에 둘러싸여 ‘하늘호수’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런데 다른 호수와 달리 판공초는 소금호수다. 육지에 웬 소금호수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판공초는 약 6천만 년 전에는 바다였던 곳이다. 인도 판과 아시아 판이 충돌하면서 지각이 서서히 솟아올랐고, 바다의 일부분이 산맥 사이에 갇혀 만들어진 염호다. 그래서 판공초에는 다른 호수와 달리 아득한 옛날부터 독자적으로 진화한 고래를 비롯해 다양한 바다 생물들이 살아간다. 갈매기도 날아다닌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호숫가를 산책하고 라면을 끓여 저녁식사를 했는데, 내 생에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다. 호수의 저녁 풍경을 촬영하고, 호숫가 숙소에서 잠이 들었는데 호흡곤란으로 잠이 깼다. 다시 누웠지만 악몽과 함께 호흡이 가빠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늘호수에서 은하수를 마음에 담다: ‘억지로 자려 하지 말고 차라리 은하수를 촬영하러 나가자.’라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판공초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이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짧게 그치듯 별똥별도 내리고 있었다. ‘밤하늘에 별이 저렇게 많았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많은 별들 중에 생명이 살 수 있는 별이 지구뿐이라면 공간 낭비다.”라던 영화 <콘택트>의 대사가 생각났다.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은하수를 마음에 담고, 또 카메라에 담았다. 은하수를 카메라에 담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화각이 넓은 광각렌즈를 준비하고 삼각대가 있어야 한다. 나는 15mm 광각렌즈로 은하수를 담았는데, 은하수의 1/3도 못 담아서 많이 아쉬웠다. 10mm나 화각이 180도인 어안렌즈를 사용하면 은하수를 더 넓게 담을 수 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카메라의 감도(ISO)는 2500, 조리개는 f2.8, 셔터속도는 25초, 초점은 수동으로 무한대로 맞추면 신기하게도 카메라에 은하수가 담긴다. 이렇게 촬영한 뒤 포토샵 등 보정 프로그램에서 밝기를 밝게 해주면 현장에서 본 은하수의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멋진 사진이 된다.

새벽 5시가 되자 서쪽 하늘은 신비로운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고, 동쪽 하늘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하늘을 품은 호수 또한 오렌지빛, 체리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오랫동안 하늘과 호수가 연출하는 신비로운 풍경화에 빠져들었다. 호수의 아침은 쌀쌀했지만, 청정한 아침 기운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늘호수는 나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풍경을 선사해주었다.

판공초 호수는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엔딩 장면의 배경지로 유명한 곳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곳곳에서 “All is well(모든 것은 잘될 거야)!”이라며 힘들 때와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용기를 낸다. 또 “내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떻게 오늘을 살까?”, “나중에 후회할 짓은 하지 말자.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봐.”라는 말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아름다운 판공초를 배경으로 열연하던 그 장면이 오래도록 가슴에 맴돌았다.

2부 유럽으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

지중해에 떠 있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소국 - 몰타
몰타를 떠올리면 내 마음을 한없이 들뜨게 만들었던 어느 여인이 생각난다. 발레타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있는 <잠자는 여인>이다. 오른손을 베개 삼아 모로 누워 잠을 자고 있는 풍만한 몸매의 여인상. 길이 9.5cm, 폭 6cm에 불과한 작은 여인상이지만, 나는 한눈에 반해버렸다. 이 여인상은 4,500여 년 전의 아득한 옛날,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무덤에 넣어준 부장품이다. 갸름한 얼굴에 굵은 팔뚝, 풍만한 몸매, 주름진 치마를 입은 그녀의 모습에 내 마음은 오랫동안 일렁였다.

거대한 요새가 연상되는 몰타의 수도, 발레타: 지중해 한가운데 보석처럼 박혀 있는 몰타는 몰타 섬, 고조 섬, 코미노 섬으로 이루어진 작은 나라다. 몰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남쪽에서 93km, 튀니지에서 북동쪽으로 288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의 강화도보다 조금 더 큰 섬에 약 40만 명이 살고 있다. 이 작은 나라는 남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잇는 요충지인 탓에 오래전부터 숱한 외침을 받았고, 주인도 수시로 바뀌었다. 페니키아, 카르타고, 로마, 비잔티움, 오스만튀르크, 성 요한 기사단이 섬을 지배했고, 근세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차지했다. 시련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몰타는 약 7천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은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었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할 사플리에니 지하신전, 타르시엔 신전, 하자르 임, 임나이드라, 주간티아 신전 등 온 섬을 뒤덮고 있는 거석 신전들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발레타와 스리시티, 임디나, 라바트, 비토리오사 등을 방문해보면 마치 중세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연노랑 사암으로 만든 오래된 건물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바로크식 교회와 궁전 등이 중세시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몰타의 수도인 발레타는 16세기 성 요한 기사단이 건설한 성벽 도시다. 한 바퀴 둘러보니 바다에서 시작해 도시 전체를 몇 겹으로 둘러싼 성벽이 난공불락의 요새 같았다. 실제로 성 요한 기사단은 1565년 5월부터 9월까지 계속된 오스만튀르크(지금의 터키)의 공격을 보기 좋게 막아냈다. 그것도 9,600여 명의 군사로 5만여 명에 달하는 적군의 파상적인 공격을 막아냈던 것이다. 치열한 몰타 공방전에서 승리한 후 기사단장은 발레트를 철옹성의 요새도시로 만들었고, 발레타는 몰타의 수도로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발레타 구시가지는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발레타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가 성 요한 성당이다. 16세기 후반에 지어진 성 요한 성당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성당의 외관은 수수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보면 장엄하다. 기둥과 바닥, 천장에는 세밀한 조각과 바로크 양식의 그림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본당 양옆으로는 기사들의 기도실이 있는데 프랑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나라별로 나뉘어 있고, 바닥에는 역대 기사단장의 대리석 묘가 안치되어 있다. 성 요한 성당에는 몰타 최고의 예술품으로 인정받는 카라바조의 <세례 요한의 목을 벰>이 있다. 1608년경 가로 5.2m, 세로 3.6m의 캔버스에 그린 대작으로,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분위기 속에서 참수당하는 성 요한. 그림 속의 얼굴을 감싼 노파가 비명을 지르는 듯하고, 철창 속의 죄수는 고개를 숙여 공포스런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사형 집행자는 단번에 목을 베지 못하자 몰래 뒤에서 단도를 꺼내려고 한다. 아무리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이 그림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한눈에 반했던 <잠자는 여인> 조각상은 발레타 남쪽 파오라에 있는 할 사플리에니 지하신전에서 발견되었다. BC 2500년에 만들어진 지하신전의 가운데 방에서 각종 도자기 파편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다른 여인상과 마찬가지로 부장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레타 국립고고학박물관에는 몰타 선사시대의 도자기, 도구, 장신구, 조각상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명한 고조 섬: 몰타는 인류가 최초로 건축한 타르시엔 신전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기원전 3600년경에 세워진 이 신전의 입구를 들어서면 가운데 홀을 중심으로 양옆에 타원형의 방이 있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가 있다. 역시 이 통로를 지나면 타원형의 방이 있는 구조다. 방의 정면 또는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널따란 돌을 얹어놓은 제단이 있다. 이 제단은 수렵이 잘되기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기단석에 새겨진 식물의 덩굴 문양이나 멧돼지, 염소, 황소, 물고기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거대한 돌로 만든 신전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5,600년 전에 만든 신전치고는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몰타 본섬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 가면 고조 섬이 나온다. 고조 섬은 천혜의 휴양지로 몰타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이곳 최고의 명소는 단연 주간티아 거석 신전이다. ‘주간티아’라는 말은 몰타 말로 ‘거인’이라는 뜻이다. 거대한 석회암으로 지었는데 높이는 6m에 수 톤이 넘는 돌들을 사용했다. 이곳에서 전해오는 전설에 따르면, 당시 섬의 주민들이 어머니 신으로 숭배하던 거인 여성이 세웠다고 한다. 당시는 모계사회로 여성숭배사상을 고려해보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돌을 운반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주간티아 신전 역시 198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임디나 바로 아래에는 서민들의 주거지 라바트가 있다. 이곳은 초기 기독교 시대의 지하묘지인 카타콤베(Catacombe)가 유명하다. 지상에서 5m 정도의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지하묘지가 나온다. 입구에는 넓은 홀이 있는데, 시신을 안치하기 전에 의식을 치르는 장소였음이 짐작되었다. 여기서 사방으로 좁은 통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입구부터 석회암을 파내고 만든 묘실이 보였다. 대부분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인데, 어떤 곳은 여럿이 들어갈 만큼 넓다. 가족이 함께 안치되었던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마냥 신기해하며 안으로 한참 들어가니 소름이 오싹 돋았다. 사방이 지하무덤이어도 무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음습한 지하는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하기만 하고 천장 위에서 바람이 느껴졌다. 괜히 모골이 송연해졌고 서둘러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3부 아프리카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

아름다운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서는 관문 - 튀니지
튀니지 서남부 지역은 사하라 사막의 관문으로, 풍경이 아름답고 도시와 가까워서 영화 촬영지로 많이 등장한다. 웅장한 협곡이 있는 미데스와 낙타의 목 형상을 한 지형이 있는 옹그제말은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촬영지고, 마트마타와 모스 에스파는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4>에 등장하는 사막과 마을 장면의 촬영지다. 마트마타의 호텔 시디드리스와 모스 에스파에는 지금도 스타워즈 세트장이 잘 보존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사막 촬영지로 유명한 미데스와 옹그제말: 미데스는 알제리 국경에 인접한 산악 오아시스 마을이다. 마을 한쪽에는 수만 그루의 대추야자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건너편 산 가운데 아래로는 S자 협곡이 있다. 수만 년의 시간 동안 침식과 풍화를 거쳐 만들어진 협곡은 아름다웠다. 내려다보니 어질어질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깊었고, 바닥에는 얕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협곡을 건너 산으로 올라갔다. 붉은색의 황량한 돌산이지만 아름다웠다. 물이 있는 골짜기를 따라 대추야자나무가 숲을 이루는 산악 오아시스가 녹색으로 빛났고, 그 너머로는 소금호수가 끝없이 펼쳐졌다.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캐서린과 제프리, 알마시와 매독이 경비행기에서 내려다보던 장엄한 사막 풍경이었다.

다시 차를 타고 간 곳은 옹그제말이다. 이곳 역시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등장했던 곳이다. 옹그제말은 ‘낙타의 목’이란 뜻으로 낙타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상을 한 언덕이다. 영화에서는 국제지리학회 팀들이 사막의 지형을 조사하여 지도를 만들기 위해 캠프를 차린 곳으로 나오는데, 제프리와 캐서린이 경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착륙하는 장면에서 옹그제말이 배경으로 나온다. 또 알마시가 베르베르족 노인에게 여인의 등 자락을 닮은 동굴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모스 에스파는 1977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4>의 탄생지다. 마트마타, 숏 엘 제리드 소금호수, 크사르 하다다로 이어지는 튀니지 남부의 황량한 지역에서 사막 장면을 촬영했는데, 그만큼 독특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스타워즈 세트장은 철망에 시멘트를 발라 만든 간이 구조물이지만, 끝없이 펼쳐진 사하라 사막과 잘 어울려 외계의 별에 온 느낌이었다.

열기를 피해 지하에 지은 집과 독특한 크사르: 이곳 베르베르 인은 천 년 전부터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 지하에 주거공간을 만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약 6m쯤을 파내려가, 가운데 정원을 두고 양쪽으로 방과 응접실, 창고, 부엌을 만들었다. 이 지역은 일 년 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기 때문에 흙을 파내고 집을 지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또한 이렇게 지하에 집을 지으면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피할 수 있어 쾌적하고 시원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방 안에 들어가보니 시원했다.

튀니지 남서부 사막에는 이곳만의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베르베르족들이 만들어놓은 요새화된 곡물 창고 크사르(Ksar)는 흙을 층층이 쌓아 올려(보통 2~3층) 만든 건물로, 원통형의 지붕을 한 건물들이 집단을 이루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하나의 크사르에는 여러 개의 창고가 있는데,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출입이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크사르 하다다와 메데닌, 쉐닌니에는 수십에서 수백, 수천 개의 크사르가 모여 있다. 크사르 하다다의 크사르는 <스타워즈>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메데닌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크사르로 연결되어 웅장한 요새 같았다. 이곳의 크사르는 우르겜마 유목민들이 만들었다. 15세기부터 계속 넓혀 무려 6천여 개가 넘는 방이 있다고 한다.

험준한 산꼭대기에 크사르가 있는 쉐닌니는 천연의 요새도시 같았다. 산 중턱에는 자연적으로 튀어나온 바위를 지붕 삼거나 동굴을 파서 집을 만들었고, 산꼭대기에는 곡물 창고인 크사르를 빼곡하게 만들어놓았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크사르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되어 벽체만 남아 있다. 왜 베르베르 인은 이렇게 험준한 산꼭대기에 크사르를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곡물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높은 곳에 크사르를 만들고 마을을 이루면, 적의 침입을 빨리 발견할 수 있고 방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르베르 인은 7세기 말 이슬람교를 앞세워 이곳으로 쳐들어온 아랍족들에게 쫓기고, 또 베니 힐랄 부족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이런 험준한 산꼭대기에 곡물 창고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래전 사하라 사막은 풍요로운 곳이었다.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나오는 동굴 벽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때는 물이 풍부하고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곳이었다. 선사시대에 그려진 동굴 벽화를 보면 가축과 양, 염소 등의 그림과 코끼리, 기린, 여러 종류의 사슴, 하마가 그려져 있다. 또한 수영하는 사람의 모습까지도 새겨져 있다. 일행과 함께 낙타투어를 하면서 맞은 사하라 사막의 석양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으로 남았다. 비록 후덥지근한 바람에 날려드는 모래로 입안은 서걱거렸지만, 사막의 지평선으로 내리는 석양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웠다. 사막은 불모의 땅처럼 보이지만 거대한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한 곳임을 사하라 사막 여행에서 깨달았다.

4부 아메리카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

쿠스코를 거쳐 공중도시 마추픽추로 가다 - 페루
2014년 여름, tvN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페루 편이 ‘청춘’이란 화두를 던지며 우리를 설레게 만들었다. 윤상, 유희열, 이적이 마추픽추를 내려다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페루는 우리에게 ‘잉카(Inca)’와 ‘마추픽추(Machu Picchu)’라는 단어로 익숙한 나라다. 잉카제국은 15~16세기에 걸쳐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안데스 지역을 포함한 나미 지역의 대부분을 통합했고, 훌륭한 잉카문명을 꽃피웠다. 그중 하나가 신비로운 공중도시 마추픽추다.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Cuzco)에서 잉카 철도를 타고 마추픽추로 가는 길도 무척 아름다웠다.

세상의 중심이었던 페루의 수도, 쿠스코: 오늘날 페루의 수도는 리마지만, 많은 사람들은 쿠스코를 더 잘 알고 있다. 쿠스코는 옛 잉카제국의 중심도시이자 수도였고, 지금도 전통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원주민 인디오들이 있기 때문이다. ‘쿠스코’라는 말은 이곳 원주민 언어인 케추아어로 ‘세상의 중심’이란 뜻이다. 잉카제국은 세상의 중심에서 오늘날 남미 지역의 대부분을 통치했지만, 16세기에 스페인에게 정복당해 멸망하고 만다. 우리가 알고 있던 ‘잉카제국’은 정확한 나라 이름이 아니다. 스페인 군대가 이곳에 도착해 원주민에게 나라 이름을 묻자 “이곳은 잉카(왕이라는 뜻)가 다스린다.”라고 해 잉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후 선교사들의 기록에 의해 ‘잉카제국’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원래 이름은 ‘타완틴수요’다. 즉 쿠스코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4개 지역에 주요 도시인 ‘수요’를 두고, 이를 기반으로 제국을 다스린 나라라는 의미다.

인천에서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2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도착한 페루 리마.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쿠스코로 향한다. 창밖으로 3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고 그 사이로 흐르는 강이 보인다. 안데스 고원을 지나 1시간 20여 분의 비행이 끝나고 쿠스코 공항에 내렸다. 한국은 봄이 시작되는 3월 초였지만 이곳은 남반구라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쿠스코의 주요 명소를 둘러보는데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인디오들이 어린 양과 라마, 알파카를 데리고 나와 사진모델을 자처한다. 한 번 찍는 데 무조건 1달러. 나는 모델료라고 생각하며 이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오후에는 버스로 시내 북쪽에 있는 삭사이와망에 올랐다. 이곳은 방어용 요새 또는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고 한다. 하나에 350톤이 넘는 거석을 지그재그로 쌓아 견고한 성벽을 만들어놓았는데, 이곳에서 매년 6월 24일 태양 축제 인티라이미가 펼쳐진다고 한다. 삭사이와망 성벽 위로 올라가니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붉은색 지붕을 한 집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꼭 스페인의 여느 도시 같은 모습이다. 이는 쿠스코가 16세기 스페인에 의해 정복당하고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많은 건물들은 잉카시대 건물의 기초 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몇 번의 지진에도 끄떡없이 견딘 코리칸차(태양의 신을 모시던 신전)의 기초 위에 산토도밍고 성당을 지었고, 관공서의 외벽 역시 잉카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쿠스코의 주요 유적지를 돌아보는데 일행 몇몇이 두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한다. 이곳은 해발고도 4천 미터의 고원도시라 반나절만 있어도 고산반응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이때는 빨리 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신비로움 가득한 폐허의 도기 마추픽추: 다음 날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에 올랐다. ‘잃어버린 공중도시’라 불리는 마추픽추는 잉카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고, 1911년 미국인 하이럼 빙엄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발견 당시 마추픽추는 정글에 묻혀 있던 폐허의 도시였는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언제 어떤 이유로 홀연히 사라졌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마추픽추 정상에 서자 신비로운 공중도시가 눈앞에 펼쳐진다. 산 정상에 돌로 만든 건물들이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고 골목길도 반듯하게 정비되어 있다. 주변에는 산비탈에 석축을 쌓아 만든 계단식 밭들이 있다. 잉카인들은 이 밭에서 옥수수를 경작해 식량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로 우루밤바 강이 휘돌아 흐르고 있다. 도시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 중간에 쪼개다 만 바위가 보인다. 잉카인들의 석조기술은 신기(神技)에 가까웠다고 한다. 중앙 광장 위에는 인티우아타나가 있는데, 이곳은 잉카인들의 신, 태양신을 위한 제단으로 쓰였다는 설과 천문대로 이용된 구조물이라는 설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가운데 툭 튀어나온 부분이 해시계 구실을 하고 있어 천문대 쪽에 더 신빙성이 갔다. 마을에는 돌로 만든 정교한 수로가 설치되어 있고 여전히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마추픽추는 산책하듯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둘러보는 데 3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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