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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환 | February 21, 2016 | view 2,956
셰익스피어 읽어주는 남자 
셰익스피어 읽어주는 남자
안병대 지음
명진출판 / 2011년 1월 / 288쪽 / 17,000원

▣ 저자 안병대
30년 넘게 셰익스피어를 연구해 온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셰익스피어 전문가로서 현재 한국 셰익스피어학회 학술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양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에서 셰익스피어를 연구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셰익스피어 연구소와 뉴욕 주립대 스토니 브룩 캠퍼스에서 연구 경력을 쌓았다. 학술 연구 경력 이외에 셰익스피어를 전공한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원어 연극 극단 ‘Korea Shakespeare’s Kids’를 통해 〈리어왕〉, 〈태풍〉, 〈맥베스〉, 〈햄릿〉, 〈리처드 3세〉 공연에 배우로 출연하였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 작품 해설』, 『교양으로 읽는 영미문학』,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이 있다.

▣ Short Summary
400년 전, 셰익스피어는 시대를 초월하며 인간의 삶을 예리하게 살폈다. 불의와 정의가, 선과 악이 끊임없이 갈등하는 불완전한 세계와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욕망이 불타고 있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으로, 인간의 욕망이 불타오르는 전장인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자신이 탐색한 것을 기록한다. 자신의 내면뿐만 아니라 외부의 악으로 인해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으며 진실 혹은 진리를 발견하지만,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 왕 같은 주인공들을 통해 삶, 죽음, 인간, 인생, 우주에 대해 이야기한다.

셰익스피어의 37개 작품 중 4대 비극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전문가가 풀어놓은 단순한 해설서가 아니다. 20대 초반 햄릿을 통해 처음 셰익스피어를 만난 후 30년 동안 심장 가까이에 셰익스피어를 담고 살아 온 저자가, 비극을 통해 그가 던진 인생의 화두를 점검해보고, 인생의 본질에 대한 뜨거운 질문과 성찰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21세기 스타일의 ‘셰익스피어 여행 가이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 비극을 “삶, 죽음, 인간, 우주에 대한 세상에서 가장 강렬한 명상록”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셰익스피어 비극은 또 다른 이름의 희망이고, 셰익스피어 비극은 슬픔이 있으되 우울하진 않다”는 재해석의 메시지를 따뜻하고 섬세한 목소리로 전달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약점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았던 사람이고, 그 약점이 인간과 삶의 비극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약점을 사랑했던 사람이고, 그래서 언어가 존재하고 인간이 존재하고 무대가 존재하는 한 셰익스피어는 불멸할 것이다.






▣ 차례
프롤로그
셰익스피어_ 비극은 또 다른 이름의 희망이다

Chapter 01 400년 동안 살아 있는 사람
한가한 땅에서 태어난 대담한 사람
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연극에 미치게 만든 사람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

Chapter 02 햄릿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햄릿이 아닌 사람은 없다
Stage Hamlet 빛은 감춰진 것을 드러나게 하고

Chapter 03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사랑, 오셀로의 “죽이고 사랑하리라”
생의 마지막 순간, 우리는 사랑을 알까
군더더기 없는 흐름
Stage Othello 슬픔과 두려움이 요동치는

Chapter 04 리어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모든 고통은 내 안의 탐욕과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인간에 관한 원형적이고 우주적인 이야기
Stage King Lear 참을 수 없는 세상이 있어
깨달음의 슬픈 여정 : 눈으로 볼 적에는 오히려 넘어졌지
운명의 수레바퀴 : 욕망의 사다리는 끝이 있다

Chapter 05 맥베스는 우리 가까운 곳에 있다
불안이 지배하는 세계
Stage Macbeth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
양심의 목소리 : “이 피를 내 손에서 씻어낼 수 있을까?”
야망은 나의 운명 : “별들아, 빛을 감추어라!”
죄는 죄를 낳고 : “악으로 시작한 일은 악으로 다져야 하오”
추락 : “내 인생 여정은 누렇게 시든 낙엽이 되었어”

에필로그_ 인생이 존재하고 무대가 존재하는 한 그의 이름은 불멸이다






셰익스피어 읽어주는 남자
안병대 지음 
명진출판 / 2011년 1월 / 288쪽 / 17,000원

Chapter 01 400년 동안 살아 있는 사람

한가한 땅에서 태어난 대담한 사람
나는 셰익스피어의 고향에 가 보고 싶어, 버밍엄 대학 부설 셰익스피어 연구소의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런던 대학 도서관에서 며칠 동안 셰익스피어 자료들을 끌어 모은 후, 미들랜드 노선의 런던발 기차를 탔고, 1시간 반 가량 달려 도착한 버밍엄 역에서 다시 코치(coach, 영국의 대형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반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400년 전에 셰익스피어가 살던 에이번 강가의 작은 도시(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Stratford-upon-Avon)에 도착했다.

셰익스피어의 출생 기록은 에이번 강가에 위치한 유서 깊은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찾을 수 있었다. 1564년 4월 26일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와 어머니 메리 셰익스피어는 새근거리는 셋째 아이 윌리엄을 안고 교회로 가 존 브래치거들 목사에게 영아세례를 받으며 특히 아이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날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당시 생후 3일 후에 세례를 받는 관례를 받아들인다면, 아마 그의 출생일은 1564년 4월 23일일 것이다.

셰익스피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자유농민이었다. 할아버지 리처드 셰익스피어는 1535년 스트랫퍼드 인근 스니터필드에 정착했고, 그 지역 내 윌름코트에 사는 로버트 아든의 토지를 임대하여 경작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는 스니터필드를 떠나 1551년경 스트랫퍼드의 헨리 가에 정착했는데, 존은 평생을 그곳에서 장인 겸 상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존은 1556년에 부친에게 토지를 임대했던 로버트 아든의 막내딸 메리 아든과 결혼했는데, 그들은 큰딸 조앤과 둘째 딸 마거릿을 모두 젖먹이 때 잃었고, 셋째 윌리엄 이후로는 다섯 명의 자녀를 더 두었다.

셰익스피어는 7살 때 스트랫퍼드 문법학교에 입학해 매일같이 라틴어를 외웠고, 상급학년이 되어서는 희랍어도 익혔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연인 앤 해서웨이는 스트랫퍼드에서 1마일 정도 떨어진 쇼터리의 휴랜드 농장에 살았는데, 그녀는 넉넉한 집안의 7남매 중 장녀였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 친구인 존 아저씨네 식구들을 소꿉놀이하던 시절부터 잘 알았었는데, 앤은 셰익스피어보다 8살이 많았다. 그래서 떠돌이 유랑극단의 공연이 있던 날이면 왁자하고 번잡한 구경꾼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솜병아리 같은 셰익스피어를 다정하게 챙겨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소년 셰익스피어가 점차 청년이 되어가자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을 것이다.

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연극에 미치게 만든 사람
나에게 연극이 다가왔다. 연극은 부드러운 몸짓과 달콤한 목소리로 나를 유혹했다.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연극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꿈꾸는 것 같았다. 아니 연극은 꿈 그 자체였다. 나는 꿈같은 무대에서 왕, 광대, 귀족, 장군, 무덤지기가 되기도 했고, 직접 꿈의 왕국을 만들기도 했다. 행복했다.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꿈으로만 채울 수 없고 꿈은 깨어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꿈에서 깨어나 다시 꿈꾸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연극은 중독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에게도 연극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왔으리라.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과 함께 성장했다. 아버지가 행정관이었을 당시만 해도 시내의 길드홀에서는 런던에서 온 명성 높은 여왕극단과 우스터 극단의 공연이 여러 차례 열렸다. 셰익스피어는 본능적으로 연극을 알아보았다. 그는 배우들의 몸짓과 언어에 따라 사람들의 영혼이 동요하는 것을 느꼈다. 잠자리에 누워도 그들의 눈빛과 눈물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폭소와 읍소와 재담과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는데, 그곳에는 슬픔과 기쁨과 분노와 연민과 공포와 감동이 다 있었다.

1578년 학교를 떠난 셰익스피어가 이후 몇 년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한 설은 분분하다. 졸업할 무렵 셰익스피어는 아마 아버지의 일을 도왔거나, 아니면 시골 학교의 선생 또는 북쪽 랭커셔 지역으로 가서 호텐 집안의 개인 교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호텐의 소개로 토머스 헤스키스 경 집안과 연을 맺었고, 그의 후원 극단인 헤스키스 극단에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1592년 6월, 런던은 급변하고 있었다. 로즈 극장 근처에서 일어난 도제 노동자 폭동으로 당국은 극장을 폐쇄했다. 또 늦은 여름부터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흑사병이었다. 결국 런던 인구의 14% 정도가 사망했고, 극장은 무려 20개월 동안 문을 닫았다. 셰익스피어는 이 기간에 장편시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겁탈〉을 써서 사우스햄튼 백작에게 헌정했다. 다른 극작가들처럼 일시적으로 시인으로 전환하여 후원자에게 의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극단은 보통 20~40편의 대본을 보유하고 매일 다른 작품을 공연해야 했는데, 흥행에 실패한 작품은 무대에서 사라지고, 한 극단에서 6개월 동안 8~12개 작품을 공연하다 보니 항상 대본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리고 당시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유명 극작가들이 연극계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대학 출신의 재사들은 시골 문법학교만 나온 셰익스피어를 탐탁지 않아 했다. 예로 셰익스피어를 두고 라틴어를 조금 하고 희랍어는 부족한 인물이라 폄하했고, ‘벼락출세한 까마귀’라고까지 조롱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혜성처럼 등장해 런던 연극 무대의 총아로 떠올랐다.

셰익스피어는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바빴다. 오전에는 오후 공연을 위한 리허설에 참여한 후 배우들에 맞춰 대본을 손보고, 오후에는 무대에 올라 연기를 했다. 또 밤이면 대본을 쓰느라 늦도록 불을 밝혔다. 셰익스피어는 제독, 더비, 레스터, 펨브룩 극단과도 관계를 맺었지만, 체임벌린 극단에 소속되어 20여 년간 활동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1594년에 그는 그 극단 소속의 배우 겸 극작가였고 주주였다. 이후 은퇴하기까지 그의 삶의 여정은 대체로 부와 명예가 동반된 장밋빛이었다. 물론 외아들과 부모가 세상은 뜬 일은 커다란 슬픔이었다.

셰익스피어는 샘솟듯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해 사극 10편, 희극 13편, 비극 10편, 로맨스극 4편 등 총 37편의 극작품과 장시 4편, 소네트 154편을 세상에 선사했다. 희극은 그의 런던 시절 전반에 걸쳐 무대에 올려졌는데 〈실수 연발〉, 〈사랑의 헛수고〉, 〈베로나의 두 신사〉,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헛소동〉,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자에는 자로〉,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등으로 대체로 경쾌하고 명랑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셰익스피어는 10편의 비극을 썼는데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시저〉, 〈햄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코리오레이너스〉, 〈아테네의 타이먼〉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초로의 나이에 고향에 돌아와 1616년 4월 23일 운명했고, 4월 25일 홀리 트리니티 교회 성단소 앞에 매장되었다. 1623년, 극단 동료 헨리 콘델과 존 헤밍스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셰익스피어 작품 전집을 이절판으로 출판했는데 〈페리클레스〉를 제외한 36편의 작품을 담았고, 책 서두에는 당대 최고의 극작가인 벤 존스의 헌시를 다음과 같이 실었다. “그는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었다.”

Chapter 02 햄릿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햄릿을 처음 만난 것은 1979년의 봄 학기 강의실에서였는데, 햄릿의 첫인상은 나에게 뭔가 근본적인 외로움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30여 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렀다. 그사이 극장에서, 학술대회에서, 책에서, 강의실에서 수없이 햄릿을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햄릿이 아직도 편하지 않다. 사실 햄릿은 무거운 인물이다. 슬픔과 무거운 복수심이 시종 그를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언제나 날이 서 있다. 내면은 언제나 펄펄 끓어 넘친다.

생각은 무겁다. 그러나 그의 고뇌는 가벼운 화살처럼 관객의 가슴에 날아와 박힌다. 행동은 양면적이다. 수도승처럼 침묵하면서도 광대처럼 자유롭다. 언어 역시 그 경중을 다 담고 있다. 대양을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사나운가 하면 등성이를 넘어오는 산들바람처럼 감미롭다. 햄릿의 언어는 숙고와 격정, 침울과 경쾌, 냉소와 격려, 비판과 관용, 질책과 배려, 난폭과 친절, 느림과 빠름, 어둠과 밝음이 어우러진 심포니다. 그럼에도 햄릿은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존재다.

나는 엘시노어 궁의 정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대관식의 끝자락에서 검은 상복 차림의 햄릿을 만났다. 그는 엄청난 불행과 고통에 직면해 있었다. 선왕인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고 왕위를 계승한 숙부 클로디어스가 어머니와 초고속으로 결혼했기 때문이다. 햄릿은 가슴이 미어진다. 왜, 어째서, 무엇이 이런 상황을 초래했는지 끝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세상은 무심히 잘 굴러간다. 처세에 능한 궁정 대신 폴로니어스는 아들 레어티스를 프랑스로 보내고, 오필리어에게는 가벼운 연애관이나 설파한다. 그러나 햄릿은 독살당한 선왕의 망령과 조우하며 자신의 갈 길을 분명히 한다.

아버지의 원수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는 것이 그의 운명이다. 햄릿은 미친 척하며 기회를 엿본다. 살인자 클로디어스 왕은 불안하다. 그는 모든 책략을 동원하여 상대를 읽어내고자 한다. 햄릿이 실성했다지만, 그는 햄릿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햄릿의 친구들이 염탐꾼으로 동원되고, 왕의 최측근 대신으로 소위 정보부장 역할을 하는 폴로니어스도 햄릿을 읽고 분석하여 보고하느라 여념이 없다. 햄릿은 고독하다. 아, 잡초만 무성한 감옥 같은 궁전, 빛은 어디에 있는가, 서성이기만 하는 겁쟁이로 사느니 아, 죽고 싶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복수할 용기도 내지 못하고 온통 번민에 싸여 있는데, 오필리어와의 사랑이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햄릿은 번민을 물리치고 복수의 칼날을 다시 벼린다. 그러나 복수심을 다잡을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직접 클로디어스의 양심을 확인할 수는 없을까. 순회극단의 방문을 그 기회로 삼는다. 연극, 그것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선왕을 독살한 장면과 같은 내용의 공연이 펼쳐지고 진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햄릿은 참회 기도를 하는 왕 앞에서 다시 칼을 거둔다. 절호의 기회이지만 그의 영혼을 천당에 보낼 수는 없었다. 햄릿은 한탄한다. 어머니에게도 진실을 털어놓을 순간이 왔다. 극을 보고 진노한 왕을 대신하여 마침 왕비가 그를 호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햄릿은 대화를 엿듣던 폴로니어스를 왕으로 착각하여 피를 뿌린다. 그리고 남편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원수와 결혼한 어머니를 폭풍처럼 힐책한다. 햄릿은 정신이상자로 몰려 영국으로 추방당한다. 한편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은 오필리어는 미쳐서 궁전을 헤매고, 오래지 않아 프랑스에서 귀국한 레어티스는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왕은 레어티스에게 햄릿의 짓임을 밝히고, 복수를 부추긴다. 레어티스가 결투를 모의하는 사이 실성한 오필리어가 익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그는 오열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덴마크로 돌아온 햄릿은 친구 호레이쇼와 함께 묘지를 지나다가 오필리어의 장례식을 마주한다. 햄릿은 삶의 무상함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비극의 끝은 햄릿과 레어티스가 벌이는 결투다. 햄릿은 결투 중 레어티스의 독 묻은 칼에 상처를 입는다. 왕비는 왕이 햄릿을 위해 마련한 독배를 마시고 쓰러진다. 레어티스도 햄릿의 칼에 찔려 쓰러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햄릿은 이 모든 비열한 계략을 주도한 왕을 찌르고 그의 입에 독배를 쏟아 붓는다.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도록 부탁한다. 그리고 폴란드 원정에서 귀환하고 있는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라스에게 왕위를 이양한다. 햄릿은 그제서야 번민과 고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사람의 삶이, 죽음이, 사랑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따위 세상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인간의 존재의미는 무엇인가?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인간, 회의하는 인간, 그것이 햄릿이다. 이야기 상자 밖에는 ‘복수’라는 제목이 쓰여 있으나 그 안에서 우리는 삶을 이루는 온갖 사연을 만난다. 막이 열리면, 우리는 햄릿과 그의 적대자 클로디어스 왕 그리고 그 궁전에 기거하거나 혹은 초대된 모든 이들의 언어를 듣고 표정과 몸짓을 보고, 그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읽어낸다.

또 우리는 서슬 퍼런 왕의 어조에 고개를 높이 들고 햄릿의 침울한 번민에 가슴을 들여다본다. 또 호레이쇼의 우정에 고개를 끄덕이고, 폴로니어스의 수다에 고개를 내저으며 웃음을 터트린다. 왕비의 미소에 쓴웃음을 짓고, 오필리어의 순수함에 연신 감탄한다. 선왕의 망령에 흠칫하고 각기각색의 배우들과 만나 어깨춤을 추는가 하면, 긴박한 결투에 손에 땀을 쥔다. 어떤 사람은 쯧쯧 혀를 차고 어떤 관객은 통탄한다. 어떤 이는 첫사랑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세상의 변화를 꿈꾼다. 이처럼 우리는 각자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의로운, 정직한, 충직한, 용맹한, 냉소적인, 명랑한, 순진한, 너그러운, 회의적인, 위선적인, 비굴한, 교활한, 순종하는, 나약한, 무정한, 우울한, 배반하는, 이기적인 자신을 만난다.

Chapter 03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사랑, 오셀로의 “죽이고 사랑하리라”
사랑은 삶과 역사와 운명을 바꾼다. 수많은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생사를 넘어서고, 조국과 제국의 운명을 바꾸고, 온 생애를 사랑을 위해 바친다. 생이 끝날 때면 우리는 사랑을 알 수 있을까?

1980년대 후반 나는 서울 시내 어느 극장에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연한 〈오델로(당시 영화 제목)〉를 보았다. 오페라 영화였다. 극장은 한산했고, 화면은 어둑했다. 장군 오셀로의 외침은 넓은 객석을 압도했다. 폭풍우 치는 바다 장면이 지나고 오셀로는 아내 데스데모나와 반갑게 재회한다. 그러나 오셀로는 아내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 그녀를 살해하고 만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몇몇 장면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행복한 만남, 의심으로 가득한 분노가 서린 얼굴, 운명을 한탄하는 비틀거리는 몸짓, 처연한 기도, 목이 졸리는 아내, 자책과 회한이 담긴 눈물과 자살 그리고 키스. 화면은 시종 음울했다. 행복은 짧고 고통은 길었다.

나는 도밍고의 절창을 들으며 밀려드는 슬픔에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머리로는 동의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랑이 어디 있어! 바보 아냐? 정신을 차리고 한 번 더 확인했어야지.” 그러나 오랫동안 나는 책에서 무대에서 오셀로를 거듭 만나며 그것이 특별한 사랑임을, 아니 그것이 지독한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말한다. “사랑은 누구든 눈멀고 귀먹게 하는 마취제지요. 사랑은 누구라도 우습고 허튼 상상의 감옥으로 인도하는 안내자고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사랑에 빠진 인간이니라! 1604년 11월 1일, 셰익스피어가 소속된 왕실극단은 〈베니스의 무어인〉이라는 제목의 이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화이트홀 궁전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다.

셰익스피어는 다른 비극과 달리 오셀로를 단일 플롯으로 이끌고 있다. 오셀로의 스토리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오셀로 군대의 기수 이아고는 부관 승진을 기대했으나 자신보다 경험이 일천한 캐시오가 그 자리에 오르자, 오셀로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이아고는 충직한 부하로 가장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철저히 오셀로를 무너뜨린다. 오셀로의 비밀 결혼 사실을 폭로하여 베니스 사회에 물의를 빚는가 하면, 캐시오가 파직되도록 소동을 일으키고는 다시 그의 복직을 돕는 체한다. 이아고의 덫에 걸린 오셀로는 부인과 부관의 관계를 의심하고, 질투에 눈이 멀고 거짓 증거에 현혹되어 그들의 간통을 확신하고 아내를 목 졸라 죽인다. 그리고 진실이 드러나자 자살하기에 이른다. 캐시오는 오셀로의 자리를 승계하고, 이아고는 처형당할 처지에 놓인다.

오셀로의 액션은 시종 긴박하게 진행된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관객의 관심은 온통 이아고, 오셀로, 데스데모나에게 집중된다.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는 뱀 같고, 쥐 같고, 여우같은 이아고의 혀끝에서 다음과 같이 춤을 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모르고 있었군요.” “질투는 경계하셔야 합니다.” “그놈이 부인을?” 반면 오셀로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덫에 걸려 버둥대며, 눈뜬장님이 되어 끌려 다닌다. 신열이 올라 길길이 날뛰다가 삿대질을 하고, 실신하고, 욕을 내뱉고, 손찌검을 하고, 파국으로 줄달음친다. 데스데모나는 불길이 번져오는 것을 모른 채 기도할 뿐이다.

관객은 사랑이 허무하게 지는 모습을 망연히 지켜본다. “인간이 이렇게 나약하고 사악하다니! 이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텅 빈 가슴에 두려움이 차오른다. 사람이 두렵고도 두렵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의 영혼은 바람 앞에 서 있는 풀잎 같은 거요. 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하지요. 우리의 영혼은 저 바람 같은 거요.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지요. 나는 나를 본다고 하지만 나를 보지 못할 때가 더 많아요. 당신은 압니까? 사랑이 무엇인지?”

Chapter 04 리어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리어 왕〉은 두 개의 플롯으로 짜여 있다. 즉 리어 왕의 비극적 인생 여정과 그의 신하 글로스터 백작이 겪는 가혹한 삶의 행로가 서로 번갈아 진행되는데, 두 사람은 분별력을 잃고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고통으로 점철된 가시밭길을 걷는다. 둘 다 자식이 문제다. 리어에게는 세 딸(차례로 거너릴, 리건, 코딜리아)이 있고, 글로스터에게는 두 아들(적자인 첫째 에드거와 서자인 둘째 에드먼드)이 있다. 리어는 사악하고 욕심 사나운 첫째와 둘째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글로스터는 욕망에 눈먼 둘째에게 재산을 양도한다. 그리고 리어는 효심이 지극한 셋째 코딜리아를 지참금도 없이 프랑스 왕에게 넘기고, 글로스터는 진실한 첫째 에드거를 내쳐 버린다. 버림받은 에드거는 아버지가 내린 체포령 탓에 미치광이 거지로 변장하여 떠돌이 신세로 지낸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한 대가는 참혹했다. 리어는 두 딸과 둘째 사위 콘월 공작에게 무참히 버림받고, 배신감에 치를 떨며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로 달려 나간다. 분노와 광기에 휩싸여 처절하게 자책하고, 악을 쓰며 딸들을 저주하다가 급기야 완전히 실성한다. 두 딸은 틀어쥔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아버지를 살해하려 든다. 한편 글로스터 역시 아들 에드먼드에게 쓰라린 배신을 당한다. 에드먼드는 콘월 공작에게 아버지가 코딜리아 측과 내통하고 있다고 밀고한다. 그 결과 글로스터는 반역자로 체포되어 잔악한 콘월에게 두 눈이 뽑히는 참상을 당하고 황야로 쫓겨난다. 심지어 콘월의 부인 리건은 글로스터를 살려둔 것을 후회하며 그를 완전히 처치하라고 지시한다.

리어와 글로스터는 이렇게 고난과 고통을 겪으며 삶을 각성하게 된다. 오만, 독선, 풍요에 젖어 있던 자신을 돌아보고, 여태 인식하지 못했던 겸손, 배려, 가난을 깨닫는다. 그래서 실성한 리어는 더 예리하게 세상을 분별하고, 눈을 잃은 글로스터는 더 선명하게 세상을 본다. 도버 들판을 헤매는 광인 리어와 장님 글로스터에게 마침내 구원의 손길이 닿는다. 두 사람이 외면했던 코딜리아와 에드거가 이들의 구조를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프랑스 군대를 동원하여 도버에 상륙한 코딜리아는 극적으로 아버지와 상봉한 뒤, 영국군과의 일전을 준비한다. 에드거 역시 도버 절벽에서 세상을 하직하려는 아버지를 지혜롭게 구출한다. 절망의 끝, 죽음에서 구원된 글로스터는 삶의 의지를 회복한다.

영국 측도 프랑스에 대항하여 전투를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에드먼드는 승승장구한다. 아버지를 지혜롭게 고해바친 대가로 백작이 된 그는 사망한 콘월 공작을 대신해 전투에 나선다. 그런데 거너릴과 과부가 된 리건 자매에게 동시에 추파를 받는다. 그렇다면 올버니 공작만 없앤다면 자신이 영국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부인 거너릴이 얼마나 사악한지 익히 알았지만, 올버니 역시 출전한다. 국토 수호라는 사명을 띠고 적군의 침략에 대항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투는 영국군의 승리로 끝난다. 에드먼드는 포로로 잡은 리어와 코딜리아를 투옥시키고 사형을 명한다.

이제 그에게는 올버니를 제거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올버니 공작이 에드먼드와 거너릴의 음모를 만천하에 폭로한다. 그리고 자신을 살해한 뒤 거너릴과 결혼하려는 에드먼드를 반역자로 공표하고 결투를 신청한다. 이에 에드먼드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는 어떤 결투도 할 수 있다고 대응한다. 하지만 결투 상대로 나선 에드거가 에드먼드의 죄상을 폭로하고 그를 쓰러뜨린다. 극의 결말은 죽음의 소식들로 채워진다. 글로스터는 에드거가 털어놓은 자초지종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운명하고야 만다. 거너릴은 자살했으며, 리건 역시 언니 거너릴에 의해 독살당한다.

에드먼드는 리어 왕과 코딜리아를 죽이려 한 사실을 고백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실성한 리어가 코딜리아의 시체를 안고 등장한다. 왕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절규하고 탄식하며 딸의 숨결을 확인한다. “코딜리아, 여기를 봐, 여길 봐!” 애절한 목소리가 대지를 덮는다. 노왕은 실신한다. 조용히 운명의 커튼이 닫힌다. 리어는 슬프고 길었던 말년의 여정을 끝낸다. 왕위는 올버니에게 예정된다. 새로운 여정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리어 왕〉은 인간의 속성, 인간관계, 인간의 행위와 판단에 관한 원형적인 이야기다. 지금까지 모든 인간들은 리어왕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읽을 수 있다. 또 앞으로 존재할 모든 인간들은 리어 왕에서 삶의 교훈을 읽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역사란 무엇인가? 인간은 선과 악에 뒤엉켜, 믿음과 변절을 일삼으며, 현명하게 때로는 우둔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이다. 잔악한 인간은 악만을 추구한다. 그리고 교활한 인간은 선과 악을 이용한다. 반면 현명한 인간은 부단히 선을 쫓는다. 그리고 우둔한 인간은 선악을 구분하지 못한다. 부패한 사회는 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인간들로 들끓는다. 교활한 사회는 선에 대한 믿음과 변절을 편의적으로 찾는 인간들로 넘쳐난다. 정의로운 사회는 선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하다.
또 한편으로 〈리어 왕〉은 권력과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들이 배은망덕한 행위로 아비들을 도탄지고에 빠뜨리는 이야기요, 욕망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다 탐욕에 눈이 멀어 추락하고 마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며, 분별력을 잃고 어리석은 판단을 한 인간들이 겪는 수난과 깨달음의 여정이다. 〈리어 왕〉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을 가벼이 여기지 마시오. 사람을 가벼이 판단하지 마시오. 마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오만을 버리십시오. 얻기 위해서는 버려야 합니다.”

Chapter 05 맥베스는 우리 가까운 곳에 있다
〈맥베스〉는 양심을 기만하고 야망을 이루었으나, 그 대가로 불면에 시달리고 있는 영혼에 관한 보고서다. 그리고 〈맥베스〉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전투기록이다. 또 〈맥베스〉는 부정하게 왕좌를 빼앗고 악의 들판을 줄달음치던 자가 파국의 절벽에서 추락하는 이야기다. 아울러 〈맥베스〉는 인간의 양심을 일깨우는 성서다. 〈맥베스〉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쉽게 변절하는 존재인가를 생생하게 담은 기록화다.

나는 인간의 나약함을 들여다본다. 아담과 이브는 며칠 만에 신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일까? 그들에게 에덴동산의 풍요는 부족했을까? 왜 인간은 양심을 외면하거나 팔아넘기면서까지 탐욕을 추구할까? 인간은 탐욕의 노예인가, 아니면 이상의 노예인가? 니체는 말한다. “수치, 수치, 수치. 이것이 인간의 역사다.” 희망은 있는가. 매일 밝은 태양 아래서 양심의 거울을 닦는 것 말고 무슨 대책이 있을까?

4대 비극 중 마지막 작품인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모든 비극 중 가장 짧다. 장면들은 시종 강렬하고 압축적이며 빠른 속도로 액션이 진행된다. 무대는 어둡고 언어는 격렬하다. 관객은 공포와 전율에 휩싸인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반란군을 진압한 맥베스 장군과 뱅코우 장군은 던컨 왕의 궁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 마녀를 만난다. 마녀들은 두 사람의 미래를 예언한다. 맥베스는 곧 코더의 영주가 되고 장차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뱅코우는 왕이 되지는 못하나 그의 자손이 대대로 왕이 될 것이라고 칭송받는다. 불가사의한 예언 탓에 혼란스러운 맥베스 앞에 왕의 사자가 도착한다. 맥베스는 사자로부터 자신이 코더 영주로 책봉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심장이 뛰고 숨이 막힌다.

그렇다면 자신이 왕이 되는 것도 기정 사실 아닌가. 엄청난 유혹이다. 야심의 불길이 타오른다. 던컨 왕은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개선하는 맥베스 장군을 극진히 환영한다. 맥베스는 신하의 도리와 의무와 충성을 다짐한다. 기쁨에 겨운 왕은 첫째 왕자 맬컴을 자신의 후계자로 공표한다. 그리고 자신의 혈육이자 충신인 맥베스 장군의 성을 방문하겠다고 알린다. 맥베스는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나 그는 이미 가슴에 칼을 품고 있다.

맥베스 부인은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한껏 들뜬 남편의 편지를 받고 가슴이 벅차다. 하지만 야망은 있으나 실행할 용기가 부족한 남편이 걱정이다. 냉정하고 잔인해져야 한다. 그녀는 남편이 던컨 왕을 살해하고 왕관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다짐한다. 맥베스는 거사를 앞두고 번민한다. 불의는 반드시 정의가 심판하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반역은 극악무도한 짓이다. 맥베스는 망설인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의 행태를 비난한다.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맥베스를 설득한다. 시해를 강력히 종용한다. 마침내 맥베스는 살인을 결심한다. 시간이 다가온다. 맥베스의 영혼은 여전히 불안하다. 맥베스는 허공에 떠 있는 단검의 환영을 본다. 약한 마음을 다잡는다. 물러설 수 없다. 종이 울린다. 내실로 다가선다. 그리고 왕을 시해한 맥베스가 정신이 나간 모습으로 등장한다. 남편을 진정시키고 사태를 수습하는 맥베스 부인의 발걸음이 바쁘다. 밤이 깊다.
아침 일찍 신하 맥더프와 레녹스가 왕의 처소를 찾는다. 참상이 드러난다. 성 안은 혼란에 휩싸인다. 맥베스는 짐짓 경악한다. 들이닥친 뱅코우 장군과 맬컴 세자와 도날베인 왕자 모두가 망연자실한다. 맥베스는 침소의 호위병들을 시해범으로 지목하고 서둘러 처치해 버린다. 맥베스 부인은 충격을 받은 양 거짓으로 기절한다. 목숨이 위태로움을 감지한 두 왕자는 국외로 탈출한다.

왕위를 차지한 맥베스는 축하 만찬을 계획한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다. 뱅코우의 자손이 왕위를 물려받을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 탓이다. 후환을 없애야 한다. 자객들에게 뱅코우와 그의 아들 플리언스를 살해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플리언스는 화를 면하고 달아난다. 연회가 열린다. 맥베스는 만찬장에서 살해당한 뱅코우의 유령을 보고 발작을 일으킨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유령을 내쫓는 맥베스의 기이한 행동 탓에 연회는 파행으로 끝난다.

맥베스는 자신의 운명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마녀들을 찾아간다. 그는 두 가지 중요한 예언을 듣는다. ‘여자가 낳은 자는 맥베스를 해칠 수 없다. 버남 숲이 던시데인을 공격하지 않는 한 맥베스는 멸하지 않는다.’ 유쾌한 예언이다. 그럼에도 궁금한 것이 남아 있다. 뱅코우의 자손은 왕권을 잡을 것인가. 마녀들은 뱅코우의 후손이 왕이 될 것임을 여덟 왕들의 환영으로 보여준다. 이럴 수 있는가. 불길하다. 이 와중에 또 나쁜 소식이 전해진다. 연회에 참석하지 않은 맥더프가 잉글랜드로 도망쳤다는 전갈이다. 자객들이 파이프 성으로 들이닥쳐 맥더프 부인과 어린 아들을 살해한다.

맬컴 왕자는 맥더프, 로스와 함께 잉글랜드 왕의 원병을 이끌고 맥베스의 압제 하에 신음하는 조국 스코틀랜드로 진군한다. 맥베스 부인은 밤마다 몽유병에 시달린다. 핏자국을 지우겠다며 계속해서 손을 비벼대는 모습이 처연하다. 마녀들의 예언을 굳게 믿고 있는 맥베스는 잉글랜드 군대쯤은 문제없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맥베스도 추락하는 운명을 어찌하지 못한다. 부인은 죽고, 전황도 급변한다. 삶이 무상하다. 맬컴 왕자의 군대가 나뭇가지를 꺾어 위장한 채 던시데인을 향해 밀려들어온다. 숲이 움직이는 형세다. 성이 함락된다. 맥베스가 맥더프의 칼에 쓰러진다. 맥더프는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태어났던 것이다. 맬컴에게 왕위가 이양된다. 악의 불길이 사그라지고 질서가 회복된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비극과 관련하여 이상한 미신이 생겼다. 사람들은 그것을 ‘〈맥베스〉의 저주’라고 부른다. 〈맥베스〉를 공연하는 도중 배우가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한 일과, 천재지변이나 폭동이 발생한 사실들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결국 출연 배우들과 극장 관계자들은 연극 제목, 주인공 이름, 마녀의 주문 구절의 언급을 피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연이 흥행에 실패하거나, 배우들이 불운을 겪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목은 ‘스코틀랜드 극(The Scottish Play)’이나 ‘맥비(MacBee)’로 바꿔 불렀다. 주인공 이름은 ‘엠 씨(Mr. M)’ 또는 ‘엠 부인(Mrs. M)’으로 불렀다. 실수를 하면 액땜 의식을 거쳤다. 우스운 얘기지만, 나는 몇 년 전 뱅코우 장군 역을 맡아 무대에 선 적이 있다. 그런데 공연 당일 아침 리허설 중에 무대에서 객석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마녀들에게 칼을 내미는 장면이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으나 주위의 걱정을 샀다. 하지만 미신은 미신일 뿐이다. 〈맥베스〉는 기록에 따르면 1606년 8월 7일 런던 햄튼 코트 궁전의 그레이트 홀에서 처음 상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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