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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JUL.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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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선교회 동북아권역 수련회
2013년 바울선교회 동북아권역 수련회가 울란바타르 테렐치에 있는 UB-2호텔에서 8월4일-8월9일 동안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과 MK들 그리고 본부팀들이 101명이 참석할 예정인데, 본 수련회가 하나님을 기쁘시…
2013년 바울선교회 동북아권역 수련회가 울란바타르 테렐치에 있는 UB-2호텔에서 8월4일-8월9일 동안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과 MK들 그리고 본부팀들이 101명이 참석할 예정인데, 본 수련회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선교사님들에게 유익이 되는 좋은 기회가 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25
J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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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7시간
하루 27시간 다카시마 미사토 지음 윌컴퍼니 / 2015년 1월 / 232쪽 / 13,800원 ▣ 저자 다카시마 미사토 유가 셀러브리티 주식회사 대표이사, 시비스 아카데미 학장. 어릴 때부터 소설과 그림, 작곡을 좋아했다. 책 읽고 그림 그리는 시간…
하루 27시간 다카시마 미사토 지음 윌컴퍼니 / 2015년 1월 / 232쪽 / 13,800원 ▣ 저자 다카시마 미사토 유가 셀러브리티 주식회사 대표이사, 시비스 아카데미 학장. 어릴 때부터 소설과 그림, 작곡을 좋아했다. 책 읽고 그림 그리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숙제나 예습ㆍ복습을 모두 학교에 있는 동안 마치게 되었다. 또한 주변 정리나 이동 시 동선을 개선하여 속도를 높이는 방법을 발견해 매일 2시간 이상 총 3,000권에 달하는 책과 만화를 읽으면서도 와세다 대학 이공학부 수학과에 합격했다. 졸업 후에는 시간과 수익의 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해 유명 입시학원에서 수학 강사로 활동했다. 정리술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교육법으로 학생들의 성적이 단기간에 크게 오르자 반년 사이 연봉도 3배가 되었지만, 건강이 나빠져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뒤 집에서 할 수 있는 웹디자인을 시작해 월 재택 수입 2천만 원을 달성했다. 불임 치료 끝에 쌍둥이를 출산했지만, 일본 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양립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느끼고 몸이 아프거나 육아 중이어도 가능한 창업 아이템을 모색했다. 그러던 와중에 쌍둥이 중 한 아이가 심장병을 앓게 되어 거액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했고, 다시 일에 몰입하기로 결심한 끝에 2005년부터 인터넷을 활용한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듬해, 월 5억 원의 수입을 올리게 되자 드디어 회사를 법인화했다. 이후 8년간 자택에서 육아를 병행하며 꾸준히 연 3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2013년 운영 중인 온라인스쿨 시비스 아카데미가 통신제 고등학교와 제휴를 맺어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등교 거부 또는 따돌림으로 힘들어하는 아이와 부모들을 위한 지원활동으로도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저서로 『지금 당장 실천하면 행운 체질!』, 『육아와 함께 집에서 30억 버는 주부의 성공 법칙』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세상에는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도 완벽하게 하고 개인적인 삶에도 충실한 사람이 있다. 전자는 매일 야근을 하느라 바쁜데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지만, 후자는 자유 시간을 누리면서도 직장에서 꾸준히 성과를 올려 능력을 인정받는다.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야근을 하는 사람은 겉보기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업무의 질이 낮은 경우가 많다. 바쁠수록 업무의 질이 떨어지고, 질이 떨어지면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야근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책은 최소한의 업무량으로 최대의 성과를 올리기 위한 업무 정리 노하우를 소개한다. 직장인들의 하루 일과를 자세히 기록해 보면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링크를 따라가며 서핑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루에 2~3시간을 허비하며 보내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수시로 메일을 체크하거나 SNS를 확인한다든지, 또 서류나 자료를 어디에 두었는지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주변 정리 → 정보 정리 → 머릿속 정리’의 14일 레슨을 따라가다 보면, 정리의 달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남는 시간을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할 여유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 차례 시작하며_ 10명 중 9명은 일에 쫓긴다 시작하기 전에_ 이 책을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중요한 것 Day 1. 책상 정리 책상 위에 몇 종류의 물건이 있는가? / 필요한 것은 20종류뿐! / 물건은 모두 서랍에 넣는다 찾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도록 하자 / 이동용 세트를 만들자 나와 팀을 위한 정리의 기본 Day 2. 서류 정리 서류 정리에도 기준이 있다 / 일정에 따라 4가지로 정리한다 <오늘 해야 할 일> 케이스는 매일 비우자 / <마감이 있는 일>은 마감일까지 생각하지 말자 <마감이 없는 일>은 한꺼번에 모아두자 / <5분이면 할 수 있는 일> 리스트를 만들자 <5분이면 할 수 있는 일>은 틈틈이 한다 Day 3. 종이를 데이터로 만들기 서류는 데이터로 보관하자 / 명함은 모두 버려도 된다 / 스마트폰으로 촬영만 하면 데이터 완성 중요한 정보는 텍스트로 저장한다 / 그 자리에서 바로 정리하는 것이 비결 Day 4. 시간 정리 캘린더에 시간을 정리한다 / 캘린더의 의미는 ‘시간 배정’ / 업무를 파악해야 시간도 줄일 수 있다 마감일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마친다 / 무엇이든 캘린더에 입력하면 OK 시간표는 오늘 할 일을 확실히 소화할 수 있도록 짜자 / 사소한 일정까지 보이는 구조를 만들자 캘린더만으로 할 일 파악하기 / 머릿속 정리를 위해서는 매일 준비가 중요하다 Day 5. 데이터 정리 책상도 데이터도 정리가 기본 /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화한다 / 규칙에 따라 폴더를 만든다 파일 이름에는 검색 키워드를 모두 포함시킨다 / 진행 중인 파일은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 정리할 수 없는 파일은 <일단> 폴더에 보관한다 Day 6. 정보를 클라우드에 정리하자 모든 정보를 데이터화한다는 것 / 가장 좋은 보관 장소는 클라우드 파일도 작성할 수 있는 구글 드라이브를 추천한다 / 필요할 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지 않기 위해 클라우드에 모아두기만 해도 버리는 시간이 준다 Day 7. 한눈에 보이는 색인을 만들자 색인을 만들면 보이지 않던 데이터가 보인다 / 스프레드시트에 폴더 내용을 정리하자 데이터도 물건도 제자리를 적는 것이 중요하다 / 공유데이터도 정리해 색인을 만들자 공유데이터를 정리하면 회사에 공헌할 수 있다 Day 8.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는 데이터를 보관하자 일에 필요한 것은 도구와 아이디어 / 수익을 올리려면 아이디어를 빼놓을 수 없다 아이디어가 될 만한 자료 중 필요한 부분만 저장한다 / 자료는 그 자리에서 데이터로 입력한다 어차피 버릴 것은 바로 데이터화하여 불필요한 절차를 줄인다 / 필요한 데이터만 모으자 Day 9. 자신의 시간을 파악하자 시간은 기록하면 파악할 수 있다 / 매일 시간을 기록하기만 해도 학생들의 성적이 올랐다 분 단위로 정확하게 기록하자 / 공백시간은 하루 평균 5시간 / 일하지 않는 시간을 줄이자 시간이 얼마 안 걸렸다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 모든 일상 작업을 가속화하는 방법을 연구하자 공백 5시간에 공부를 한다 Day 10. 정형화하여 시간을 만들자 업무를 정형화하자 / 정형화할 수 있는 것을 찾자 / 메일 답장은 포맷을 정해두면 좋다 복사해서 붙여넣기보다 템플릿으로 / 하루 종일 메일 확인만 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Day 11. 틈새시간을 활용하자 틈새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자 / 회의 시간은 잡무를 해치우기 좋은 시간 미팅 중에도 틈새시간이 있다 / 통근시간은 공부나 업무에 유용하게 활용하자 점심시간은 업무 조정에 사용한다 / 미루기보다 틈새시간에 마치는 편이 즐겁다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잡무도 해야 한다 Day 12. 습관화하자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여 습관화하자 / 하루를 마칠 무렵 확인하자 아침에는 일정을 파악하기 위한 시간을 갖자 / 정해진 일은 반드시 처리하는 습관을 갖자 정리하지 못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Day 13. 자신을 콘텐츠화하자 콘텐츠가 있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 출퇴근 시간에 사진을 찍기만 해도 인기 사이트가 된다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공개하면 기회가 생긴다 /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은 독창적인 정보뿐 누구나 오늘부터 할 수 있는 점심메뉴 올리기 / 정보는 마케팅 관점에서 모으자 팔리는 것은 직접 체험해 봐야 단서가 된다 Day 14. 돈 정리 머릿속이 정리되면 돈도 정리된다 / 필요 없는 것을 사면 낭비는 3배 / 물건보다는 체험에 돈을 쓰자 포인트카드와 쿠폰으로 지갑이 꽉 찬 사람은 부자가 되지 못한다 / 내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수입의 40%를 투자하는 사람만이 성공한다 마치며 하루 27시간 다카시마 미사토 지음 윌컴퍼니 / 2015년 1월 / 232쪽 / 13,800원 책상 정리 책상 위에 몇 종류의 물건이 있는가?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공간은 사무실 책상이다. 정리를 한다면 가장 먼저 업무공간부터 정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먼저 자신의 책상 위와 서랍 안에 있는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그중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만 골라보자. 이때 같은 물건은 한 종류로 묶어 총 몇 종류의 물건이 있는지 세어 보자. 이제 사용 빈도에 따라 순서를 매겨 보자. 매일 쓰는 것, 며칠에 한 번 쓰는 것, 일주일에 한 번 쓰는 것, 한 달에 한 번 쓰는 것 등. 한 번도 쓰지 않는 것은 당연히 그 자리에서 처분한다. 그리고 같은 것을 여러 개 갖고 있다면 하나만 남겨 둔다. 필요한 것은 20종류뿐! 이제 분류한 물건들을 20종류로 줄여보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용 빈도가 낮은 물건부터 처리해야 한다. 예로 펀치를 월 1회 정도만 쓴다면 공유 공간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쓰는 편이 좋지 않을까? 20종류로 줄이기만 해도 당신의 업무 능률은 상당히 올라갈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만 했는데도 한 달 뒤 입시학원생들의 성적이 평균 3점이나 올라갔다. 물건은 모두 서랍에 넣는다 이제 이것들을 책상에 딸린 서랍 안에 모두 집어넣자. 책상 주변에 있는 물건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문구류다. 펜이나 스테이플러, 가위나 클립, 계산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개인용품이다. 개인용 녹차 티백이나 핸드크림, 스마트폰 등이 포함된다. 세 번째는 서류 종류다. 책이나 잡지 등 모든 종이류가 여기에 들어간다. 회사에서 쓰는 서랍은 보통 3단으로 되어 있으므로 맨 위 서랍에는 문구류, 가운데 서랍에는 개인용품, 가장 아래 서랍에는 서류를 넣으면 된다. 정리한 물건이 서랍에 다 넣지 못할 만큼 많다면 여전히 덜 줄인 것이다. 찾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도록 하자 서랍에 물건을 넣을 때는 가지런하고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다. 가끔 서랍 안에서 물건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녀 물건의 위치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크기가 작은 물건이나 구르기 쉬운 물건들은 투명 상자 안에 넣어 보관하면 좋다. 이동용 세트를 만들자 사무용품은 반드시 책상에서만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자리를 옮겨 일할 경우 챙겨야 할 물건은 늘 정해져 있다. 회의에서 사용할 펜과 노트, 계산기, 외부에서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면 수첩이나 스마트폰 등이다. 따라서 이런 물건들을 금방 챙겨 나갈 수 있도록 미리 세트를 만들어 두면 좋다. 그리고 이때 내용물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투명한 파우치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나와 팀을 위한 정리의 기본 팀이나 부서 차원에서 함께 쓰는 물건 중 쓸 때마다 매번 여기저기를 뒤져야 하는 물건이 있지는 않은가? 이럴 때에는 그 물건의 자리를 정한 뒤 팀원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라벨을 붙이자. 이렇게 하면 자신도 필요할 때 한 번에 찾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사용한 뒤에도 그 자리에 돌려놓을 것이므로, 필요할 때에 찾지 못해 곤란한 상황을 줄일 수 있다. 서류 정리 서류 정리에도 기준이 있다 / 일정에 따라 4가지로 정리한다 오늘은 서류를 완벽하게 정리하는 방법을 알아볼까 한다. 서류는 업무내용을 담은 종이이므로 서류를 분류하는 것은 곧 업무를 분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나누어야 효과적일까? 바로 일정에 따라 나누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일정별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업종과 나의 역할에 따라 차이는 있을지라도 세상의 모든 일은 대개 다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류도 이에 따라 나누면 된다. ‘① 오늘 해야 할 일 ② 5분이면 할 수 있는 일 ③ 마감이 있는 일 ④ 마감이 없는 일’ 이 분류에 맞춰 파일 케이스도 네 가지를 준비하자. 그리고 갖고 있는 서류를 이 네 개의 파일 안에 정리하자. <오늘 해야 할 일> 케이스는 매일 비우자 / <마감이 있는 일>은 마감일까지 생각하지 말자 <오늘 해야 할 일> 케이스에 넣은 서류는 말 그대로 반드시 오늘 안에 마쳐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케이스가 텅 빌 때까지는 퇴근을 하면 안 된다. <마감이 있는 일> 케이스에 넣은 서류는 일단 오늘은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 대신 마감일을 구글 캘린더에 입력해 두었다가 처리해야 하는 날이 다가왔을 때 확실히 처리하자. 이 케이스에는 ‘0일에 처리’, ‘0일에 반드시 확인’ 등 마감일을 알 수 있도록 파일 겉면에 표시해두면 좋다. 이렇게 하면 필요한 서류를 바로 꺼낼 수 있다. 마감일이 있는 서류를 정리할 때, 예를 들어 ‘5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기획서’는 마감일 이틀 전인 ‘3일에 해야 할 일’이라고 적는다. 상사나 거래처가 요구한 실제 마감일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마감일을 기재하는 것이다. <마감이 없는 일>은 한꺼번에 모아두자 정해진 마감일이 없어서 아무 때나 처리해도 되는 업무, 급하지 않은 안건은 모두 <마감이 없는 일> 케이스에 정리한다. 그런데 마감이 없는 서류는 케이스에 던져둔 채 까맣게 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3개월에 한 번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들여 이 케이스를 정리하는 것이 좋다. 구글 캘린더에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정리 일정을 잡아 두자. <5분이면 할 수 있는 일> 리스트를 만들자 / <5분이면 할 수 있는 일>은 틈틈이 한다 여기에 정리할 일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마칠 수 있는 것들이라 굳이 케이스에 정리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마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발송할 계약서나 반송할 서류 등은 당연히 이 케이스에 넣고, 종이로 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들을 리스트로 작성해 한 장짜리 서류로 만든 뒤 케이스 맨 앞쪽에 넣는다. 그리고 여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틈틈이 <5분이면 할 수 있는 일> 리스트를 보고 순서대로 처리하면 된다. 틈틈이 해도 다 끝내지 못한 일은 다음 날로 넘긴다. 하다 보면 서서히 처리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종이를 데이터로 만들기 서류는 데이터로 보관하자 / 명함은 모두 버려도 된다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서류는 2일째에 모두 버렸어야 맞다.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면, 그중 대다수는 필요 없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 장에서는 서류들을 모두 데이터로 만든 뒤 대담하게 버리는 방법을 실천해보자. 먼저 명함은 모두 데이터로 만든 뒤 버리면 된다. 명함을 그대로 읽어 데이터로 만들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 명함 정보가 그대로 텍스트로 저장되어 검색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버에 명함 데이터를 보관하면 밖에서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만 하면 데이터 완성 이제 다른 서류들도 정리해보자. 먼저 팸플릿은 모두 버린다. 요즘은 홈페이지를 보면 팸플릿에 실린 정보를 모두 알 수 있다. 혹시 팸플릿에만 나와 있는 정보가 있다면 그것만 저장해 두면 된다. 그 외의 서류들은 나중에 참고할 필요가 있는지, 앞으로 쓸 자료인지를 판단해,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버리고 남은 것만 데이터로 만들어 보관한다. 종이를 데이터화할 때는 PDF로 스캔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스캔 과정이 번거로워 끝까지 종이를 고수하거나, 스캐너가 없어 계속 종이로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부분만 사진을 찍어두면 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어디서든 데이터화할 수 있고 시간도 적게 든다. 중요한 정보는 텍스트로 저장한다 데이터로 만드는 이유는 종이를 줄여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정보가 필요할 때 바로 찾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니 정말 필요한 정보는 텍스트화해서 검색하기 쉽도록 보관하자. 나는 구글이 제공하는 스프레드시트에 입력한다. 시간 정리 캘린더에 시간을 정리한다 / 캘린더의 의미는 ‘시간 배정’ 3일째까지 눈에 보이는 작업 환경을 깨끗이 정리했다. 하지만 주변을 정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아직 남아 있다. 바로 시간 정리다. 이것을 도와주는 것이 일정표 관리다. 수첩을 애용하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구글 캘린더를 권한다. 구글 캘린더를 활용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간편하며, 일해야 할 때를 알려주기까지 한다. 구글 캘린더에는 30분 이상 시간이 걸리는 모든 일을 적을 수 있다. 이 기능을 활용해 일정을 적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야 할 일에 따라 시간을 배정하는 표를 만들 수 있다. 무엇이든 캘린더에 입력하면 OK 이제 캘린더에 일을 어떻게 분배할지 살펴보자. 서류를 케이스별로 분류하면서 바로바로 캘린더에 입력하면 좋다. 우선 <오늘 해야 할 일> 케이스에 넣은 서류는 당연히 오늘 일정에 입력한다. 그리고 <마감이 있는 일> 케이스에 넣은 서류는 반드시 캘린더에 마감일을 입력한다. 예를 들어 이번 주 금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기획서가 있다면 실제 마감일보다 이틀 앞선 날짜인 수요일에 ‘기획서 작성’이라는 일정을 2시간 잡는다. 그리고 실제 마감일인 금요일에는 ‘기획서 수정 및 제출’이라는 일정으로 30분을 잡은 뒤 서류에 라벨을 붙여 마감일을 표시한다. 데이터 정리 책상도 데이터도 정리가 기본 요즘은 거의 모든 업무를 컴퓨터로 처리한다. 메일로 용건을 주고받고, 서류도 디지털 데이터로 보관한다. 그러므로 정리를 잘하려면 데이터 정리가 필수다. 디지털 데이터가 편리한 이유는 검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정리를 하지 않아도 검색할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데이터를 정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검색을 해도 원하는 결과물을 찾기 어렵다.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화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데이터를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한다. 그러나 이는 업무효율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데이터는 모두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편이 좋다. 갖고 있는 단말기나 장소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해외로 출장을 갔다고 해 보자. 그런데 갑자기 상사에게 연락이 왔다. 지난 번 제안서 제출 시 빠진 서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요한 데이터는 내 컴퓨터 안에 있다. 그렇다고 “제 컴퓨터를 켜고 직접 찾아보세요”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데이터를 정리하지 않아 파일이 어디에 있는지 본인도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데이터가 가지런히 정리된 상태로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다면, 해외에서도 클라우드에 접속해 그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워드나 엑셀, 텍스트 파일은 모두 구글 문서나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옮긴 뒤 버리자. 이렇게 하면 파일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데이터만 남는다. 규칙에 따라 폴더를 만든다 데이터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내 컴퓨터 안에 어떤 데이터가 많은지 살펴보자. 업무내용에 따라 데이터의 종류나 용도가 다르므로 분류 방법도 다르다. 먼저 내가 자주 사용하는 파일이나 업무내용에 따라 카테고리를 나눈다. 우선 큰 카테고리를 정하고 그 아래에 작은 카테고리들을 만들어 파일을 폴더 안에 분류한다. 예를 들어 영업부라면 큰 카테고리로 ‘서류’, ‘거래처’, ‘프로젝트’를 만들고, ‘서류’ 카테고리 안에는 견적서, 주문서, 영수증 폴더를, ‘거래처’ 카테고리에는 각 거래처별 폴더를, ‘프로젝트’ 카테고리 안에는 각 프로젝트의 제목이나 상품 이름을 폴더로 만든다. 가장 큰 카테고리를 어설프게 나누면 머릿속 정리도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폴더 이름이나 파일 이름을 붙일 때도 자신만의 규칙을 정하자. 파일명은 검색하기 쉽고 찾기 쉬워야 한다. 파일 이름에는 검색 키워드를 모두 포함시킨다 폴더와 마찬가지로 파일을 정리할 때도 어떻게 하면 쉽게 검색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파일명은 검색에 걸릴 만한 구체적인 키워드로 붙이면 편리하다. 나는 어떤 단어로 검색해도 찾을 수 있도록 단서가 될 만한 모든 정보를 적는 방법을 추천한다. 예를 들어 어떤 회의에서 상사가 지시한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 회의록을 찾아야 하는 경우, 회의 날짜와 장소, 상사의 이름 등 기억에 남아 있는 모든 정보를 파일 이름으로 저장한다. 이렇게 하면 무엇으로 검색하든 틀림없이 찾을 수 있다. 내 경우 이 책과 관련된 미팅을 하면서 적은 메모를 구글 문서로 작성해 구글 드라이브 회의록 폴더에 보관할 때, ‘20131207카도카와출판사책내용미팅아리아케’처럼 날짜와 회사명, 목적, 미팅 장소를 파일명으로 저장했다. 또 문서의 맨 위에도 날짜와 장소, 참가한 사람의 이름, 회의 제목을 적었다. 진행 중인 파일은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는 서류 내용을 수정한 뒤 ‘0월 0일 버전’이라고 저장하기도 하고, 파일명 뒤에 2, 3, 4 등 숫자를 붙여 최신 파일을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꼭 필요해서 보관하는 것이면 몰라도, 내용이 갱신될 때마다 모든 파일을 일일이 보관하는 것은 불필요한 작업일 뿐 아니라 나중에 검색을 할 때도 방해가 된다. 그래서 나는 중간 과정의 파일은 보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정을 해야 하는 서류는 구글 문서나 스프레드시트에 옮긴 뒤 상대와 공유한다. 그렇게 하면 메일에 따로 첨부하는 수고도 덜 수 있고 보관할 필요도 없다. 정리할 수 없는 파일은 <일단> 폴더에 보관한다 시간이 없거나 파일이 너무 많아 보관하기 어려울 때는 하나하나 분류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바탕화면에 지저분하게 나열하거나 대충 아무 폴더에 넣으면 나중에 찾기가 어렵다. 이런 파일을 위해 <일단>이라는 폴더를 만들 필요가 있다(이름은 다르게 지어도 된다). 말 그대로 임시보관 폴더다. 분류하지 못한 파일들을 잠시 보관하기 위해 만든 폴더이므로 이 안에 넣은 일들은 나중에 해당하는 폴더로 다시 옮겨야 한다. 그리고 1주일에 한 번 ‘일단 폴더 정리’라는 일정을 구글 캘린더에 등록하자. 한눈에 보이는 색인을 만들자 색인을 만들면 보이지 않던 데이터가 보인다 / 공유데이터도 정리해 색인을 만들자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정리하고 중요한 정보를 담아 두는 것만으로도 업무효율이 향상된다. 그러나 효율을 한층 더 높이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또 있다. 바로 색인이다. 색인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누가 봐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지금은 서버에서 데이터를 공유하며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다. 그러므로 데이터를 관리할 때 나만 알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좋지 않다. 누가 봐도 어떤 폴더에 어떤 데이터가 들어있는지 일목요연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는 데이터를 보관하자 일에 필요한 것은 도구와 아이디어 7일째 레슨까지 주변의 물건과 데이터를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여기까지의 레슨만으로도 업무효율성이 높아지고 낭비하는 시간도 줄었을 것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자. 사실 연봉이 꾸준히 오르는 사람은 데이터와 물건을 정리해 업무효율을 높일 뿐 아니라, 일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늘 모아둔다. 일에 필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도구가 될 만한 것과 아이디어가 될 만한 것이다. 거래처 데이터나 주문서 같은 서류는 일에 필요한 도구이며, 매출을 올리기 위한 아이디어가 되는 것으로는 서류나 책, 잡지나 상품 등 다양한 것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것들은 데이터화하여 필요할 때 바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가 될 만한 자료 중 필요한 부분만 저장한다 아이디어가 될 만한 대표적인 것은 잡지나 책에 게재된 글인데, 이는 스캔하여 PDF로 저장하면 된다. 특히 책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독서용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어 나중에 도움이 될 만한 부분만 읽는 즉시 기록하면 좋다. 계속 기록하다 보면 이 스프레드시트에 정보가 가득 차 새로운 기획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회의ㆍ영업 때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다. 필요한 데이터만 모으자 아이디어가 될 만한 자료를 그 자리에서 기록하는 것이 습관화되면, 자원이나 시간 낭비 없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될 정보들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만약 스프레드시트에 적을 시간마저 나지 않는다면, 일단 URL만 기록한 뒤 나중에 정리 일정을 별도로 배정해 구글 캘린더에 등록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이동 중이거나 그 자리에서 바로 기록할 여유가 없을 때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두어도 좋다. 다만 되도록 그날 안에 필요한 정보만을 선별해 데이터화해야 한다. 자신의 시간을 파악하자 시간은 기록하면 파악할 수 있다 / 매일 시간을 기록하기만 해도 학생들의 성적이 올랐다 이번 레슨에서는 머릿속을 정리하여 효율적으로 일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처음에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업무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입시학원에서 강의하던 시절에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모두에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의 매시간마다 무엇을 했는지 전부 기록해 오라는 숙제를 낸 적이 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 뒤부터 한 달 동안 특별히 다른 비결을 쓰지도 않았는데 학생들의 성적이 순식간에 오른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 시간 중에도 사실은 헛되이 보낸 시간이 많았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형화하여 시간을 만들자 업무를 정형화하자 시간을 단축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방법의 하나가 정형화다. 매일의 업무를 기록해 보면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로 메일 확인이나 답장 보내기, 매일 발송하는 청구서, 거래처에 보내는 제안서, 각종 보고서 등은 정기적으로 하는 일들이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업무로 채워진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이렇게 정기적인 업무가 생길 때마다 서류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일일이 대응하느라 시간을 소모하는 경우가 많다. 작업을 효율화하기 위해 반복되는 일에는 정형화된 패턴을 적용하자. 대표적인 방법은 서류를 템플릿으로 만드는 것이다. 기획서나 제안서, 그 외의 사무적인 서류의 포맷을 정해놓고 자주 작성하는 문서는 템플릿으로 만들어 안에 들어갈 내용만 교체할 수 있도록 하자. 메일 답장은 포맷을 정해두면 좋다 / 복사해서 붙여넣기보다 템플릿으로 매일 반복하는 업무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메일이다. 하루 중 메일 회신에만 2~3시간이 걸린다는 사람도 있다. 내 경우도 일일이 답장을 보내자니 다른 일을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대충 써서 보내자니 어렵게 메일을 보낸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하나 답장을 보내다 보니 내가 자주 쓰는 문장이 몇 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메일에서 자주 사용하는 문장을 템플릿으로 만들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정형화한 문장 사이사이에 개별 용건을 적으면 상대방에게 맞는 메일 내용이 완성된다. 여기서 핵심은 문장을 하나하나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주로 ‘미리 준비된 답변’ 기능을 사용한다. 복사해서 붙여넣기보다 자주 사용하는 포맷을 등록해 두었다 사용하는 편이 빠르게 메일을 작성할 수 있다. 틈새시간을 활용하자 틈새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자 / 점심시간은 업무 조정에 사용한다 9일째 레슨에서처럼 매일 시간을 계산해 보면 하루 중 의외로 공백시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기다리는 시간, 통화 중이었던 사람이 내게 전화 주기를 기다리는 시간,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처럼 말이다. 이런 틈새시간을 활용해 <5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처리하면 매우 효율적이다. 한편 오늘 안에 해야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시간표에 따라 하는 것이 좋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에도 틈새시간을 활용하면 좋다. 만약 틈새시간을 활용했는데도 일을 다 끝내지 못해 곤란한가? 아직 남은 시간이 있으니 낙담할 필요 없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남은 휴식시간이 있다. 그때에 남은 일을 정리하면 된다. 습관화하자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여 습관화하자 지금까지의 레슨에서 배운 것을 모두 실천한다면 이미 당신은 하루 5시간 이상의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전보다 훨씬 일을 잘하는 상태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말하려고 한다. 바로 정리된 상태를 습관화하는 것이다. 습관화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갈 뿐 내 것이 되지 않은 채 끝난다. 그렇다면 습관화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 하루를 마칠 무렵 확인하자 습관을 들이려면 반복은 물론이고 매일 그날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 매일 잠들기 전에 시간을 갖고 적어도 자신의 상태만이라도 파악한 뒤에 잠들도록 하자. 오늘 내가 보낸 시간 중 낭비는 없었는지, 하루 중 어떤 시간을 줄일 수 있었는지 잘 생각해 보자. 또 아직 정리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언제 시간을 내어 그것들을 정리할지 생각해 보자. 매일 잠들기 전에 이렇게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구글 캘린더에 하루의 끝 무렵 30분을 ‘매일’ ‘반복’하여 입력하자. 그리고 사무실에서 일을 마치기 전에도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을 갖자. 아침에는 일정을 파악하기 위한 시간을 갖자 잠들기 전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도 30분 동안 정리를 위한 시간을 갖자. 우선 아침에는 구글 캘린더로 그날 또는 이번 주에 해야 하는 일을 확인하자. 오늘 해야 할 일을 이때 모두 파악해 두면 나중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순서대로 처리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뒤로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구글 캘린더에 바로 입력한다. 출퇴근 시간도 훌륭한 업무시간이 될 수 있다. 그날 할 일을 생각할 때는 출퇴근 때의 틈새시간도 고려해 메일 확인, 00책 읽기, 00팟캐스트 듣기 등 일과를 계획한다.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도 많은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루가 시작되면 예정에 없던 일들이 하나둘 생겨난다. 만약 5분 안에 할 수 있는 일들이라면 그 자리에서 처리하면 되므로 크게 생각할 필요 없지만, 금방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5분이면 할 수 있는 일> 리스트에 적어 두는 것을 잊지 말자. 정해진 일은 반드시 처리하는 습관을 갖자 하기로 한 일을 마치지 못한 상태로 하루가 끝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지 뭐’, ‘못 했으면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은 유감이지만 이 레슨과는 맞지 않다. 그런 생각으로는 처리하지 못한 것이 당연해져 정리를 습관화하지 못한다. 그날 하기로 정한 일은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을 희생해서라도 반드시 마치자. 자신을 콘텐츠화하자 콘텐츠가 있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정리를 하여 시간을 버는 방법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방식으로 일하는 법을 배웠다. 이것들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든 사람은 이제 한 차원 높여 더 많은 성공을 가져다주는 방법을 알아보자. 흔히 회사에 큰 이익을 올려주는 사람, 다시 말해 회사를 떠나도 스스로 사업을 하거나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만한 인재란 바로 콘텐츠 의식이 있는 사람이다. 콘텐츠 의식이란 일상의 모든 요소를 콘텐츠로 파악하고 이를 늘 쌓아 두었다가 언제든 활용할 수 있고 상품화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예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면 그저 “즐겁게 쉬다 왔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보고 느낀 것 또는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여행정보를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올린다. 또 화제가 된 영화가 있다면 그것이 왜 인기를 끌었을지 내 생각을 정리해 올린다. 또는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러 갔다면 웹으로 나만의 실황중계를 해본다. 그러면 그것이 언젠가 책 집필 의뢰로 이어지거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기획되거나, 신상품 개발 때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 또 늘 콘텐츠가 정리되어 있으면 필요할 때 꺼내어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의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매일 접하는 무언가를 그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익한 콘텐츠로 바꿀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은 독창적인 정보뿐 콘텐츠를 제공할 때 꾸준히 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정보인가 하는 점이다. 주차장을 촬영해 올린다고 해도 그곳이 다른 사람과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라면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정보로 끝나고 만다. 디즈니랜드 주차장 사진에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느낀 이유는 그곳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페이스북이나 SNS로 타인의 관심을 끌면 ‘좋아요!’ 버튼으로 그 반응을 알 수 있지만, 콘텐츠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 자리에서 즐겁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 미인의 사진을 올리면 그것만으로도 ‘좋아요!’가 여러 개 붙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쾌락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가치 있는 정보, 타인을 기쁘게 하는 콘텐츠란 더 알고 싶게 만드는 콘텐츠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만의 독창적인 관점이다. 뉴스 사이트에서 가져온 정보는 일시적으로는 관심을 끌 수 있을지 몰라도, 나만의 관점이 녹아있지 않으면 누구나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에 지나지 않는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사고방식,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정보를 꾸준히 제공해야 콘텐츠로서 가치가 있다. 그리고 가공하지 않은 1차 정보는 돈으로도 살 수 없을 만큼 귀중하지만, 다른 사람의 정보를 활용한 2차 정보는 아무리 모아도 2차 정보일 뿐이며 나는 소비자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2차 정보를 활용하려면 이를 내 시각으로 다시 해석해야 한다. 돈 정리 머릿속이 정리되면 돈도 정리된다 지금까지 주변 정리와 데이터 정리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머릿속까지 정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렇게 머릿속이 정리된 상태가 되면 필연적으로 돈도 정리된다. 구체적으로 매월 생활비가 얼마나 들고 그중 식비는 얼마, 교육비는 얼마, 고정자산은 어느 정도, 유동자산은 어느 정도인지를 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대차대조표나 포트폴리오가 등장하는 어려운 방법이 아니어도 괜찮다. 굳이 가계부를 적을 필요도 없다. 아이들의 용돈 기입장 수준이면 충분하니 내가 가진 돈을 정리하기 위해 나가고 들어온 돈의 내역을 기록해보자. 요즘은 통장 입출금내역을 인터넷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으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데이터를 받아 정리하면 좋다. 물건을 살 때 현금으로 내고 매번 기록하려면 번거로우므로, 결제와 동시에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직불카드나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신용카드처럼 낭비할 일도 없고, 통장에 기록이 모두 남아 지출 내역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돈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면 쓸데없이 낭비하는 돈이 얼마인지 파악하여 자연히 돈을 아낄 수 있게 된다. 내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정말로 성공하는 사람은 흔히 생각하는 성공 법칙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우선순위를 정해 그것을 따르는 사람이다. 자신이 우선시한 것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돈을 쓰고 당장 눈앞의 통장 잔고에 일희일비하지 않지만, 그 외에는 여가든 오락이든 일시적인 쾌락이든 그 어느 것을 위해서도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책이나 세미나, 전문가 교류회 등은 자신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필요한 것이므로 아끼지 말고 투자하자. 나는 아직 연봉이 낮고 돈이 없어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평생 자신이 꿈꾸는 연봉을 받긴 불가능하다. 수입의 40%를 투자하는 사람만이 성공한다 돈이 많든 적든 연봉이 얼마이든 상관없이 수입의 40%를 자기계발에 쓰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성공 가능성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빠듯한 급여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자기계발에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해도 이런저런 생활비를 빼고 나면 아마 20% 정도가 최고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월수입이 100만 원밖에 안 된다고 해도 그중 40만 원을 아끼지 않고 매월 자기계발에 쓰는 사람만이 정말로 성공할 수 있다. 이 정도도 할 수 없다면 연봉을 올린다거나 미래에 성공하겠다는 꿈을 꾸지 말아야 한다.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것이 지금 당장 몇 푼 저축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성공한 뒤엔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이 자연스럽게 통장에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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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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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버리기 연습
걱정 버리기 연습 브렌다 쇼샤나 지음 예문 / 2014년 4월 / 264쪽 / 13,500원 ▣ 저자 브렌다 쇼샤나 세계적인 심리치유학자로, 뉴욕에서 30여 년간 임상연구 및 심리치료를 해왔다. 전 세계 대학에서 심리학과 명상 치유, 잠재력과 관련…
걱정 버리기 연습 브렌다 쇼샤나 지음 예문 / 2014년 4월 / 264쪽 / 13,500원 ▣ 저자 브렌다 쇼샤나 세계적인 심리치유학자로, 뉴욕에서 30여 년간 임상연구 및 심리치료를 해왔다. 전 세계 대학에서 심리학과 명상 치유, 잠재력과 관련하여 500회 이상 강연하였으며 전미실물경제협회(NABE)어워드 올해의 저자로 선정된 바 있다. 걱정, 두려움, 인간관계 등 인생의 중대한 문제와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였으며 심리학에 명상과 이야기치료를 접목한 방식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메리마운트 대학과 아델피 대학에서 강연하고 있으며 《코스모폴리탄》, 《마드모아젤》 등의 칼럼니스트, NBC와 ABC 방송 패널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 출간 도서로는 『남자는 나쁘다』, 『도시남녀, 선방 가다』, 『마음의 불을 꺼라 : 일상의 상처와 분노에 대처하는 심리기술』 등이 있다. ▣ 역자 김지영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십여 년간 해외 영업 및 통번역 분야에 종사하였다.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 수십 편의 영상물을 번역하였으며 현재는 영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 Short Summary 불안과 불신이 팽배한 시대, 걱정을 일종의 안전망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걱정했기 때문에 그나마 별일 없이 살아왔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걱정에는 행동의 개념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쁜 공상에 빠져 있어서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현실검증력이 떨어져 심해지면 현실과 단절되고 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걱정이 아닌,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설 용기이다. 세계적인 치유심리학자로, 30여 년간 임상연구 및 심리치료를 해온 저자가 분노, 두려움, 자기혐오, 무기력, 부정적 공상 등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를 제거하고 회복력을 기르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걱정에 사로잡히면 후회만 할 뿐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고 이야기하며, 독자들에게 삶에서 자기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걱정은 건전한 고민과 구분되어야 하며, 걱정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고민을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구체적으로 1장에서는 심리학에 근거하여 ‘걱정’의 정체를 알아보고, 걱정이 우리의 행복과 성취를 어떻게 방해하는지를 밝힌다. 2장에서는 망상, 집착, 한계, 게으름, 불신 등 걱정의 다섯 가지 얼굴을 살피고, 3장에서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내면의 힘을 기르기 위한 7가지 마음수련법을 소개한다. ▣ 차례 프롤로그_ 걱정 없는 인생을 선택하라 1 걱정이 인생을 먹어치우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걱정이란 무엇인가 / 우리는 왜 걱정에 사로잡히나 걱정은 어떻게 인생을 지배하는가 / 왜 걱정 많은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까 걱정은 행복을 방해한다 / 문제도 해법도 모두 당신 안에 있다 2 걱정의 다섯 가지 얼굴 첫 번째 얼굴 : 걱정은 망상이다 걱정의 90%는 상상에 불과하다 / 공상이 지나치면 현실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 얼굴 : 걱정은 집착이다 집착과 걱정의 크기는 비례한다 / 통제 욕구는 집착을, 집착은 걱정을 낳는다 노화와 죽음에 대한 걱정 세 번째 얼굴 : 걱정은 한계이다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한다 / 걱정은 인생의 함정이다 / 코끼리를 우리 없이 가두는 법 네 번째 얼굴 : 걱정은 게으름이다 의도치 않은 게으름뱅이들 / 완벽은 최선이 아니다 다섯 번째 얼굴 : 걱정은 불신이다 가면은 불안을 부른다 /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사람들 3 걱정과 결별하기 위한 7가지 열쇠 Key 1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라 / 기대를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라 걱정이 오래 머무르게 놔두지 마라 Key 2 욕망의 덩치를 줄여라 좋고 싫음의 잣대를 버려라 /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을 놓아버려라 Key 3 생각을 멈추고 행동을 시작하라 지금 여기, 이 순간의 나를 인식하라 / 행동의 결과를 두려워하지 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Key 4 경쟁과 대립에서 한 걸음 물러서라 경쟁심과 대립심을 놓아버려라 / 나와 네가 아닌 우리에 주목하라 Key 5 분노를 버리고 자존감을 높여라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라 / 용서를 통해 인간은 더욱 깊어진다 Key 6 사람과 세상을 믿고 소통하라 신뢰할 수 있으면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 /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서라 Key 7 내버려두는 연습을 하라 내버려두면 걱정했던 일이 저절로 풀린다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습 걱정 버리기 연습 브렌다 쇼샤나 지음 예문 / 2014년 4월 / 264쪽 / 13,500원 걱정이 인생을 먹어치우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걱정이란 무엇인가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당연이 ‘없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드물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확실히 해둘 것은 걱정과 고민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걱정과 고민의 차이 - 뿌리부터 다르다: 고민의 출발점은 사고, 즉 ‘생각’이다. 생각은 인간을 동물과 다른 차원의 존재로 만드는 우리 뇌의 작용이다. 사고하는 인간은 자연히 자기 자신과 타인, 외부 세계에 대해 인식하고 수많은 모순을 발견한다. 그리고 모순에 관해 깊이 생각할수록 고뇌에 빠져든다. 한편 걱정의 뿌리는 ‘불안감’에서 찾을 수 있다. 불안은 인류의 뇌용량이 지금의 절반도 되지 않을 때에도 존재했으며, 사실상 현재까지 인류를 존재하게 한 생존 본능이다. 불안을 느끼는 능력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살아남았다. 자연에서는 맹수들을 피했고, 문명사회에서는 적의 공격이나 동업자의 배신,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목숨을 부지했다. 다가오는 위험과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 그것이 바로 불안의 정체이다. 흔한 생각과 달리 불안 그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본능이 이성을 만나면 문제가 발생한다. 불안에 상상력이 발휘된 결과 실재하는 위험뿐만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는 것, 위험할‘지도’ 모르는 것들이 머릿속을 잠식한다. 걱정을 털어내려 해도 생각처럼 되지 않는 건, 그것이 불안이라는 본능에 거머리처럼 딱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걱정은 불안이 생각을 만나 부풀려진 결과이다. 랄프 에머슨의 말대로 고민은 정신 발달의 과정이며,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고 영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걱정은 정반대다. 걱정은 정신을 약하게 하고, 용기를 앗아가며,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아선 안 된다. 그러나 걱정 없이 사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그것은 집착과 망상에서 벗어나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걱정의 다섯 가지 얼굴 첫 번째 얼굴 : 걱정은 망상이다 불안이 상상력(생각)을 만나 증폭된 것, 그것이 바로 걱정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예언가라도 되면 모를까, 우리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공상에 불과하다. 실제로 연구자들에 따르면 걱정의 90퍼센트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모르고 사는 즐거움』의 저자인 심리학자 어니 제린스키는 그의 책에서 좀 더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퍼센트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며,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고, 22퍼센트는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소하다. 4퍼센트는 걱정해봤자 어쩔 수 없고, 나머지 4퍼센트는 충분히 우리 힘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문제이다. 결국 걱정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얘기다. 만약 당신이 걱정 많은 사람이라면 이제까지 자신의 걱정이 얼마나 현실성 있는 것인지, 그리고 과연 걱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돌이켜보라. 그리고 지금 걱정하는 한 가지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대답해보라. ㉠ 지금 어떤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가?(판단이나 주관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기술한다.) ㉡ 위의 일에 관해 무엇을 인지했는가? ㉢ 무엇을 걱정하는가? ㉣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상의 질문은 공상의 세계로부터 현실의 세계로 당신의 이성을 끌어당긴다. 즉 외부 상황과 인지상태를 점검하고, 현실에 기반해 현재를 생각하게끔 한다. 두 번째 얼굴 : 걱정은 집착이다 떠돌이 도둑 세 명이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을은 가난한데다, 마침 흉년이 들어 곡식 한 톨 찾아보기 어려웠다. 두 명이 마을을 떠나려는 찰나, 다른 한 명이 마을 사람들을 붙들고 묻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서 가장 걱정 많은 사람이 누굽니까?” 사람들이 일제히 가리키는 두 집을 찾아가니, 한 집은 어린아이가 병들어 있었고, 다른 한 집은 딱히 나쁠 것이 없어 보이는 집이었다. 도둑이 두 번째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밤에 이 집을 털자.” 그 말을 듣고 두 명이 따라 그 집 담을 넘으니, 과연 집 안 구석진 방에 식량과 보물이 있었다. “겉보기엔 다른 집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어찌 이 집에만 보물이 있을 걸 알았나?”라고 두 사람이 물으니, 나머지 한 명이 답하였다. “잃을 것이 많을수록 걱정이 많은 법이지!” 이 이야기의 교훈은 자명하다. 소유욕과 집착이 클수록 걱정도 많다는 것이다. 한편 통제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자연적인 통제와 인위적인 통제가 그것이다. 자연적인 통제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몸과 마음의 균형이 잘 이루어지고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하게 한다. 그와 달리 인위적인 통제는 두려움에서 비롯되고 과대망상을 일으키는데, 평정을 위협하는 뭔가가 발생하면 분별력 없이 무조건 이를 억누르고자 하는 것이다. 집착은 곧 인위적인 통제에 대한 욕구라 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과 주변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가 흔히 ‘강박관념’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인간관계, 돈, 시간, 일, 음식, 성, 느낌, 생각, 행동 등 모든 것을 일일이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강박관념이다. 이러한 강박관념에게 지배당하면 인생은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해야 하는 감옥이 되고 만다. 통제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이유를 이해하면 한발 물러서서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다.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없애면 불안이 사라지고 삶의 균형을 되찾아 원활한 삶을 살 수 있고, 통제가 우리 삶을 옥죄는 존재였으며 사랑과 선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통제하고자 하면 긴장감만 높아지고 삶의 균형을 잃게 되며, 통제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욕망의 대상을 잃게 될까 봐 걱정만 깊어진다. 세 번째 얼굴 : 걱정은 한계이다 불안을 느끼면 몸은 딱딱하게 굳고 이성적인 판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안의 한 가지 형태인 걱정 역시 마찬가지다. 걱정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한다. 걱정에 사로잡히면 한 발 앞으로 내디딜 용기가 나지 않고, 오히려 ‘잘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의 쳇바퀴에 갇히게 된다.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을 염려하느라 눈앞의 기회를 놓치고, 할 수 있는 일도 안 하는 것이다. 또한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상황을 통제하려다 보면 점점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좁아진다. 자신의 한계를 그어놓고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일만을 추구하게 된다. 이처럼 근심, 걱정, 불안 같은 상자에 자신을 가둬버리면, 상자 밖에 무한한 삶의 가능성이 펼쳐져 있음을 결코 알 수 없다. 한편 영어에서는 재능을 ‘선물(gift)’이라 표현한다. 이 단어가 나타내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신에게 부여받은 능력을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은 우리에게 공평하게 선물을 나눠주셨다. 그런데 선물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진작부터 그것이 선물임을 알아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부여받은 재능을 발전시키며, 신의 축복을 삶의 자양토로 삼는다. 그런가 하면 아예 선물 그 자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신이 자신에게만 선물을 주지 않았다고 원망한다. 그런데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도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걱정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 선물을 열면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겁을 먹기도 하고, 그 선물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사고감옥 안에 앉아 그 위험에서 멀찌감치 떨어지려고 노력한다. 즉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면서 자신이 인생을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식이다. 그러나 신이 주신 선물의 진가는 바로 ‘가능성’에 있다. 삶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모든 가능성에 도전할 때, 재능은 비로소 제 빛을 발하고 인생은 성취, 몰입, 환희 같은 긍정적인 것들로 가득 찬다. 긍정적인 것들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실패나 고통은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 아니, 실제로 겪게 되면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쁘지 않음을 깨달을 것이다. 지금 당장 선물상자를 열어라. 감사한 마음으로 재능을 받아들이고 잠재력을 일깨우는 모든 도전에 임해라. 당신이 걱정하는 어떤 일도, 신이 주신 삶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보다 끔찍하지는 않다. 네 번째 얼굴 : 걱정은 게으름이다 걱정은 우리가 행동에 나서는 것을 방해하고, 일을 차일피일 미루게끔 만든다. 예를 들어 내키지 않는 상대와 전화통화를 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걱정 많은 사람은 ‘제대로 용건을 말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상대가 화를 내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5분이면 끝날 간단한 통화를 위해 그 두 배가 넘는 시간을 걱정하느라 흘려보낸다.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 게으름을 피운 셈이다. 여기서 게으름이란 나태함이나 권태로움과는 다르다.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못하는 것이 아니다!) 망설이고 미루느라 삶의 에너지를 저하시키는 것이 필자가 말하는 게으름이다. 한편, 걱정은 100퍼센트 현재가 아닌 미래를 향해 있다(종종 과거에 관한 걱정도 있기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으면 현재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없다. 결국 걱정을 핑계 삼아 오늘 할 일을 미루게 되어버린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현명한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명한 선택에는 신중함과 치밀함뿐 아니라 시의적절한 판단력과 직관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을 크게 뜨고 직면한 문제를 살피며, 지금 현재를 살아야만 한다. 그러나 걱정은 우리의 생각을 자꾸만 과거나 미래로 데려간다. 이전에 있었던 일을 곱십거나 미래의 일을 상상하느라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소모하게끔 만든다. 걱정이 깊어질수록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강해지므로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움츠러들게 된다. 두렵기에 회피하고, 한 번 피하게 되니 현실에 충실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하지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내키지 않아서 ‘안 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만약 걱정이 많아 지금 할 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게으름뱅이가 된 것이다. 다섯 번째 얼굴 : 걱정은 불신이다 걱정 많은 사람 중에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제대로 해낼지 모르겠으니 염려되고, 내 운명을 믿을 수 없으니 그 또한 근심이다. 이러한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완벽한 망상이다. 그러나 그런 망상에 젖은 사람들은 통제할 수 없는 데 대해 큰 불안을 느끼고 이는 걱정의 악순환을 낳는다. 한편 타인에 대한 불신 역시 걱정의 요인이 된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불신과 불안, 걱정은 심해지면 증오나 분노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걱정과 결별하기 위한 7가지 열쇠 Key 1 -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라: 어떻게 하면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되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굳건하고 안정적인 자기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진정한 자아를 찾고 진정한 삶을 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매 순간 충실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의 기준에 얽매이거나 외부에 관심을 두느라 내면의 목소리를 놓치는 일이 없게 된다. 기대를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라: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거짓 자아가 만들어놓은 거짓 요소들을 없애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헛된 기대와 그에 따른 걱정이 대표적이다. 거짓 자아는 환상에 근거한다. 가면을 써야만 다른 이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환상, 타인 위에 군림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있고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갈 것이라는 환상 등. 이처럼 실체가 없는 환상, 즉 헛된 기대는 번지르르하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삶에 고통과 괴로움을 더한다. 내면 깊숙이는 그것이 허상임을 알기에 불안감이 들고 걱정이 엄습해온다. 진짜 자신을 찾으려면 이 같은 허상(거짓 자아, 헛된 기대, 걱정 등)에서 벗어나 현실과 마주해야만 한다. 걱정이 오래 머무르게 놔두지 마라: 주인과 손님의 역할은 확연히 다르다. 주인은 손님을 맞이하는 환경을 만들고, 손님을 환영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손님은 방문지에 도착하면 주인이 어떤 것을 제공하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고, 돌아갈 때에는 감사의 마음을 충분히 전해야 한다. 따라서 주인이 손님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고, 손님이 주인처럼 행동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당신이 주인이고 걱정은 손님이다. 자신의 역할을 지켜라. 주객이 전도되면 삶이 전도된다. 손님인 걱정은 왔다가 가는 존재이며, 주인인 우리는 안정적으로 한곳에 머무르며 오가는 손님을 맞이하는 존재이다. Key 2 - 욕망의 덩치를 줄여라 좋고 싫음의 잣대를 버려라: 걱정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배우는 동안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좋고 싫음을 가르지 않는 것이다. 열망의 덩치가 커질수록 좋아하는 것만 찾게 되어 집착 욕구에 지배당하고, 또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을 거부하게 된다. 소중한 삶의 에너지 절반을 집착하는 데 쓰다 보면 다양한 경험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절반밖에 남지 않는다. 또한 집착은 행복이 지속되는 것을 방해하고, 외적 조건에 따라 증발되게끔 만든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집착을 버리면, ‘좋고 싫음’이라는 구식 잣대를 없앨 수 있고, 좋고 싫음을 구분 짓는 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당연히 중요하지 않은 잣대를 삶의 토대로 삼을 이유가 없다.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을 놓아버려라: 위대한 선승 도겐은 어렸을 때 불교를 연마하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고, 중국에 수년간 머문 후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가 일본에 도착하자 소문을 전해 들은 많은 이가 그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모여들었는데, 사람들이 도겐에게 수년간의 수행을 통해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소유하지 않는 마음을 배웠소.” 무소유는 걱정뿐 아니라 우리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의 해법이 되어주는 귀중한 가르침이다. 소유한 것이 없으면 집착할 대상도 없으므로 항상 여유롭고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 무소유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관계 맺는다. 또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며, 상대가 보답하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렇듯 무소유는 언제라도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선사한다. 그래서 그 어떤 것이라도 맞이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Key 3 - 생각을 멈추고 행동을 시작하라 지금 여기, 이 순간의 나를 인식하라: 걱정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의 정신과 에너지를 모두 과거 혹은 미래로 향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현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전력을 다하라. 그럼에도 걱정은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틈만 나면 당신을 지배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현재를 인식하려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의식하는 연습을 통해 걱정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서 한 걸음씩 내딛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의식하는 연습은 단순하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얼굴에 닿는 공기와 발바닥에 느껴지는 땅의 감촉은 어떠한가? 음식을 만들 때에는 그것에 완전히 몰입하고, 식사를 할 때는 한 입 한 입 느껴지는 맛을 만끽하라. 무엇을 하든지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깨어 있어라. 공상 속에 빠져 삶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연습이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곧 습관처럼 익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과 세상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이 커질수록 쓸데없는 근심은 적어질 것이다. 이러한 자기 수행은 일생에 거쳐 계속되어야 한다. 행동의 결과를 두려워하지 마라: 실수를 두려워하면 행동하기가 어렵다. 걱정 많은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게으름뱅이가 되고 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실수한다고 해서 무엇이 잘못되는 것은 아니다. 실수는 인생의 친구와 같은 존재다. 넘어지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다. 넘어지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는 걸음마를 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행동하여 그로부터 교훈을 얻고 더 강해져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인데,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무조건 행동하라”는 말은 행동의 결과에 초점을 두지 말라는 뜻이다.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은 행위 그 자체이다. 참고로 보상을 바라는 것은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속셈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속셈이 깃든 행동은 불안을 야기할 뿐이다. 혹시 상대 또는 세상이 내게 무엇을 줄지, 그것이 과연 기대에 부합할지를 계산하고 있는가? 앞으로 벌어질 일의 결과를 이리저리 그려보느라 머릿속이 바쁜가? 지금 당장 이런 생각을 멈춰라. 그리고 지금 있는 장소, 지금 함께인 사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몰두하라. 어떠한 일이든 현재 상황에 최대한 충실해야 한다. Key 4 - 경쟁과 대립에서 한 걸음 물러서라 경쟁심과 대립심을 놓아버려라: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스스로에 대해 판단한다. 그리고 타인보다 얼마나 나은지, 얼마나 뛰어난지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진다. 이런 행동이 인생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사람이 드문데, 타인을 뛰어넘거나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삶의 방식은 자신을 깊은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 밀어 넣는다. 한편 경쟁과 대립은 망상을 부른다. 항상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반대로 자신의 부족함을 의식하게 되고, 사랑, 칭찬, 성공, 돈 등 모든 것이 공평하게 나눠 갖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남보다 좋은 것을 빨리 취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또 아무리 많이 얻어도 늘 부족함을 느끼고,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얻으면 그만큼 자신의 몫이 줄었다고 믿게 된다. 가져도 가져도 모자라고, 타인으로 말미암아 피해당한다고 생각하는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칭찬, 성공, 인간관계, 인정과 사랑 등은 어느 한 사람이 얻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몫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리 나눠 가져도 모자라지 않으며, 나눌수록 더 풍성해진다. 나와 네가 아닌 우리에 주목하라: 경쟁심과 대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윈윈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몇 해 전, 시애틀 장애인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체 혹은 지적 장애 아동 선수 아홉 명이 90미터 단거리 달리기 출발선에 나란히 섰다. 총성이 울리자 선수들은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자아이가 넘어져 몇 바퀴 굴렀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자 나머지 선수 여덟 명이 그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았다. 아이들은 달리기를 중단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넘어진 아이에게 다가갔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한 여자아이가 몸을 구부려 “내가 치료해줄게”라며 남자아이의 볼에 입을 맞췄다. 아홉 명은 모두 함께 팔짱을 끼고 결승선에 도착했고, 관중석에 있던 모든 관중은 일어나서 환호했다. 결승선에 도착하는 속도가 조금 늦거나 방향이 바뀐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승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세상을 살아간다면 타인을 믿지 못하고 경계하느라 걱정할 일이 줄어들 것이다. 미담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하지 마라. 당신의 인생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모두가 함께 승리하는 조화로운 관계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Key 5 - 분노를 버리고 자존감을 높여라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라: 악의는 세상이 흑과 백, 단 두 가지로 나뉜다는 믿음을 심는다. 그리고 흑백논리로 가득한 사람에게 타인은 선과 악으로 나뉜다. 물론 자신은 언제나 선한 쪽에 있고 타인은 악한 쪽에 있으며, 그러므로 타인을 미워하고 심지어 그들의 인생을 망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타인을 악으로 정의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그릇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상대를 낮춰보고, 자신의 두려움을 표출하여 진정한 상대의 모습을 보지 못하면, 자신을 비롯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또한 그릇된 자존심은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친구가 적이 되고 적이 친구가 되는 일은 세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이 세상은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만물은 지속적으로 변하며 우리의 마음도 계속 변한다. 한편 한 사람의 그림자에는 그 자신이 인정하지 않고 억눌러왔던 본인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런 모습에는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기억, 욕망이 깃들어 있다. 그림자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계속해서 그림자를 숨기다 보면 그림자는 우리의 활력을 앗아가고 갈등에 빠뜨리며 불행한 삶을 살게 한다. 반면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면 삶의 활력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에 대해 타인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이를 ‘그림자 먹기’라고 한다. 만일 누군가를 증오하고 거부하고 있다면 그 모습은 나 자신이 만든 것이다. 단지 자기 스스로는 그 모습을 받아들이기 싫어 다른 사람을 통해 바라볼 뿐임을 기억하라. 누군가의 싫은 점이나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자신에게 그와 같은 점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라. 그 사람처럼 행동하고 싶다고 느꼈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그러한 자신을 받아들여라. Key 6 - 사람과 세상을 믿고 소통하라 신뢰할 수 있으면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 뒤틀린 의사소통 속에는 조작과 통제가 가득하다. 어떤 것을 말하고 행동하지만, 전혀 다른 이면의 의미를 알지 못해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던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이 혼란 속에서 우리는 한없이 약해지고 타인에게 조종당한다. 그리고 남에게 조종당하거나 달콤한 말과 유혹에 속아 넘어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진심을 쉽게 믿지 못하며, 다시 한 번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걱정한다. 이런 이들에게 인간관계는 그 자체가 불안이며, 의사소통은 지뢰밭처럼 위험하게 느껴진다. 사람은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지키려는 목적에서도 가면을 쓴다. 그러나 모든 가식은 그 정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언제까지 타인과 자신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무리 연기하고 포장하려고 노력해도 내면의 목소리는 언젠가 들통 나게 되어 있다. 진실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타인과 마주하고 당신의 진심을 그와 공유할 마음이 있는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은 통제에 대한 욕구, 그로 인한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올바른 길로 들어선 것이다. 타인과 인관관계에 대한 걱정을 떨쳐내려면 소통의 힘을 인지해야 한다. 의사소통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의사소통의 첫 번째 모습은 말, 즉 언어적 소통이다. 두 번째 모습은 비언어적인 것으로, 신체언어나 미세한 메시지와 움직임 등이 있다. 이러한 표면적 의사소통 외에 보다 근본적인 소통도 있다. 바로 나와 타인의 진실된 모습을 알아차리고, 진심을 교환하는 소통이 그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누군가의 장점 때문에 그와 ‘같아’지기를 바라고, 다른 누군가의 단점 때문에 그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인에게는 장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내면과 소통하는 근본적인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에게는 타인의 내면을 느낄 수 있는 직관이 존재하고, 자신의 직관을 믿으면 현실에 눈을 뜰 수 있고 조작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편 속임수는 조작과 통제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다른 사람의 감정과 지각을 교란하고 속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언어적 소통과 비언어적 소통이 상충될 때,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을 때 주로 일어난다. 이런 유형의 의사소통은 생각을 마비시키고 불안을 조장한다. 즉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닌지, 혹시 상대에게 속은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한다. 걱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마음 한편에는 상대가 나를 기만하고 있을 것이란 망상이 자리 잡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머릿속 걱정과 공상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진행되고 있는 의사소통에 집중해야 한다. 혼란스러운 이중적 메시지들에 쏠리는 생각을 하나하나 삭제하고, 실제로 오고가는 말에 집중하며 그에 대해서만 반응해야 한다(걱정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이 마음에 어떻게 와 닿는지 경청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서라: 진실하고 간단한 의사소통은 어떤 상황에서든 마법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계속하면 상대방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한편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재능과 능력을 갖추고 태어났다. 그것을 두고 남보다 낫다고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남과 비교하려는 충동은 인생에 이미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과 위대한 힘을 거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월감은 우정, 사랑, 진정한 도움을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들 뿐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늘 하루 모든 사람을 아름답고 완벽하며 고유한 존재로 바라보라. Key 7 - 내버려두는 연습을 하라 내버려두면 걱정했던 일이 저절로 풀린다: ‘내버려두는 것’은 걱정과 상반되는 멋진 말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개되도록 내버려두라. 쓸데없는 간섭도 필요 없다. 그냥 내버려두면 주변 사람과 상황,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해방될 수 있다. 어떠한 결과를 바라거나 상황의 흐름에 참견하지 않아도 된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에는 자신을 압박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선택이 나올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두라. 그러면 엄청난 해방감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눈앞에 닥친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현실을 물고 늘어진다. 답을 찾기 위해 주변 사람을 닦달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고,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생각하고 계획하고 걱정하느라 자신을 철창 없는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는 공상이 만들어낸 작품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내버려두라. 아침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해가 지도록 내버려두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습: 인생은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때로는 일상의 노력이 지나친 나머지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인생을 소모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계속해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굴려 올리는 식이다. 이런 반복적이고도 소모적인 노력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의 노력과 노력에의 의지가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열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모든 노력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무조건 애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분주하게 노력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에 대한 보상을 원하게 되고, 그것이 지나치면 망상을 부르는 헛된 기대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그저 상황에 자신을 내맡기는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다. 서두르지 않고 열매가 익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해야 할 것, 가야 할 곳, 만나야 할 사람, 이겨야 하는 경쟁 등에서 벗어나 어떠한 요구도 없는 상태, 순리에 따르는 상태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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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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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향기 김자영 지음 JOYOUS / 2010년 9월 / 185쪽 / 12,000원 ▣ 저자 김자영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는 내내 송구스러운 마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음악과 신학, 어느 분야에도 전문성이 없는 내가 과연 이 이야기를 써도 될까 고민이 되었…
향기 김자영 지음 JOYOUS / 2010년 9월 / 185쪽 / 12,000원 ▣ 저자 김자영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는 내내 송구스러운 마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음악과 신학, 어느 분야에도 전문성이 없는 내가 과연 이 이야기를 써도 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행여나 누가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찬양 한곡 한곡에 담긴 이야기를 알아갈수록 밭에 감추어졌던 보화를 발견한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이 향기로운 이야기를 안고 찬양을 부를 때마다 누린 은혜를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습니다. 그 마음 하나로 나누는 글입니다. 거친 손에서 쓰인 글이라도 혜량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Short Summary 향기는 열납되는 것입니다. 향기는 본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길게는 200년 가까이 된 찬송가들과, 짧게는 10여 년 전에 지어진 현대 복음성가들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을 모아 이야기로 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은 타고난 예술적 감각과 천재적인 재능보다 평범한 삶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구별됨, 그것은 믿음의 사람이 평범한 삶속에서 고난을 만났을 때 드러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 구별된 고백 위에 하나님께서 향기로운 기름을 부어주신 노래가 찬양입니다. 신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때 손을 들어 하나님을 찬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절망 중에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전염병으로 두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어머니가 눈물로 엎드려 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세상의 부귀영화를 손에 쥘 수 있는 유혹 앞에 믿음을 택한 무명 가수의 노래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흑인 노예선 선장이 지난 일을 눈물로 회개하며 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먼지 쌓인 공장 한켠에서 가난한 목회자가 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여배우의 믿음의 고백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어떠한 상황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하는 이 믿음의 노래 앞에 어쩌면 세상 사람들은 겹겹의 고난을 맞은 욥에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한 욥의 아내처럼 오히려 조롱하며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믿음의 고백 위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셨고 세상의 어떤 노래와도 비할 수 없는 향기로운 찬양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은 수십 년, 백년이 넘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찬양이 불리는 자리마다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고 생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공감하고 고백하는 순간 당신도 그분 앞에 열납되는 예배자가 될 것입니다. ▣ 차례 1. 고난과 위로 내 평생에 가는 길 오 놀라운 구세주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구주 예수 의지함이 저 장미꽃 위에 이슬 / 나의 가는 길 2. 선택과 결단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갈보리 산 위에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목마른 사슴 약할 때 강함되시네 3. 약속과 기다림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어서 돌아오오 내 구주 예수님 주 같은 분은 없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4. 회개와 회심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죄짐 맡은 우리 구주 빈들의 마른풀 같이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마음의 예배 5. 신뢰와 감사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너 근심 걱정 말아라 나 가진 재물 없으나 거룩하신 하나님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참 아름다워라 향기 김자영 지음 JOYOUS / 2010년 9월 / 185쪽 / 12,000원 19세기의 욥, 스패포드 변호사의 고백 - “내 평생에 가는 길” 호레시오 G. 스패포드는 1838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유능한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한 대학의 법학과 교수이면서 신학교의 이사 직분을 맡고 있었다. 또한 세계적인 부흥사인 드와이트 무디 목사와도 절친한 친구 사이로서 무디 교회의 회계 집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스패포드 변호사는 사회의 엘리트로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신실한 믿음을 가진 크리스천으로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었다. 안팎으로 칭송을 받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던 그에게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네 명의 딸들이 있었다. 웃음소리가 가실 날 없던 그의 집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다복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1871년, 시카고 전역을 휩쓴 대형화재는 그의 집과 재산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게다가 그 충격과 후유증으로 아내의 건강마저 급격히 나빠지고 말았다. 담당의사는 그에게 아내의 건강회복과 가족의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환경을 잠시 바꿔보라는 권고를 했고 그는 오랜 고심 끝에 가족을 위한 유럽 여행을 준비했다. 그러나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던 스패포드 변호사는 아내와 네 딸들을 먼저 유럽행 여객선에 태워 보내고 일이 끝나는 대로 곧 뒤따라가 여행에 합류하기로 했다. 가족들을 배웅하고 돌아와 서둘러 업무를 정리하며 곧 함께할 여행을 기대하고 있던 그에게 며칠 후 긴급한 전갈이 왔다. 그의 가족이 탄 여객선이 대서양 한가운데서 영국의 철갑선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소식이었다. 200명이 넘게 목숨을 잃은 이 비극적인 소식과 함께 도착한 전보에는 몇 마디 말이 긴박히 쓰여 있었다. ‘혼자 살아남았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형 참사 속에서 익사직전에 홀로 구조된 아내의 메시지였다. 비통한 소식을 듣고 스패포드 변호사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오는 지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침착하게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하며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배에 올랐다. 흔들리지 않는 태도로 굳게 입술을 다문 그를 태우고 항구를 출발한 배는 유유히 영국을 향했고 바다 한가운데 이르렀다. 이때 선장이 바다의 한 곳을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저곳이, 사고지점입니다.” 순간 스패포드 변호사는 이 모든 상황들이 꿈만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무섭게 삼켜버린 곳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바다는 평온하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선실로 내려가 울음을 터뜨렸다. “저에게… 제 아이들에게… 저희 가족에게 왜 이런 일을 허락하신 겁니까?”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이 거대한 파도처럼 그의 영혼을 덮쳐왔다. 며칠 전까지 품에 안겨 웃던 아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인정해야만 했다. 그제야 참아왔던 눈물이 통곡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왔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화염 속에서 집과 재산이 없어져 버렸을 때에도 한마디 원망을 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왜 이런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지 물으며 그는 밤새 눈물로 몸부림쳤다. 네 자녀를 삼켜버린 폭풍은 그 밤, 그의 가슴속에 들어와 영혼을 뒤흔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밤새 울부짖어 기도하던 그의 영혼에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깃드는 고요가 찾아오고 있었다. 고통으로 지치고 상한 그의 몸과 마음에 부드러운 손길이 지나며 위로와 평강을 부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손길이 닿은 자리에는 원망과 괴로움이 씻기듯 사라지고 깊은 평강이 샘솟고 있었다. 그때, 한편의 시와 같은 믿음의 선포가 고요해진 그의 가슴속에서 울려 펴졌다. 그가 입술로 그 시를 풀어내자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힘과 확신이 그의 영혼을 일으켰다. 스패포드 변호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고백을 찬송의 시로 쓰기 시작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그것은 고난 속에서 어떠한 폭풍도 이겨내는 평안의 선포였다. 그 후 스패포드는 영국에 도착해 아내를 만났고 함께 시카고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오랜 믿음의 벗인 작곡가 블리스(Philip Paul Bliss)에게 이 찬송시를 건네며 작곡을 부탁했다. 이 시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 씌어졌는지 알기 때문에 블리스는 이 시가 주는 평안의 힘에 놀라 전율했다. 그리고 그 감동으로 하늘 가락과 같은 곡조를 붙여 한 곡의 찬송곡을 완성했다. 찬송가 속의 욥기라고 불려지는 ‘내 평생에 가는 길’은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스패포드(Horatio Gates Spafford, 1828-1888)는 그 후 아내와 두 딸을 낳았고, 1881년에는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미국인 거류지를 만들어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자 양육과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냈다. 많은 이들은 그런 그를 이상히 여기며 미친 사람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세상의 어떤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 앞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선포함으로 고난을 이겨냈다는 사실이다. 동성애의 혼란에서 벗어난 찬양 인도자의 고백 -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데니스 저니건은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니며 성장했다. 이십 대가 될 때까지도 교회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크리스천 문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청년으로 성장한 그에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동성애 문제였다. 그에게 밀려온 성 정체성의 혼란은 인간으로서 가지는 근본적인 정체성까지 뒤흔들고 있었지만 동성애에 대해 기독교가 얼마나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던 터라 누구에게도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내면의 갈등이 심할수록 그는 교회를 섬기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듯 크게 웃으며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자신이 점점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로 손가락질 당하고 판단받을까 두려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두려움은 의심과 불안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교회 안에서의 모든 관계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마침내 데니스는 교회를 떠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동성애 문제를 개인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여기며 동성애자들을 사회적 소수로서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성경 말씀에 근거해 동성애에 대해 엄격히 금하는 태도를 고수하는 교회가 고리타분하고 폐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이 더 상처가 되었고 데니스가 느끼는 외로움과 혼란은 그를 밑바닥까지 몰고 갔다. 그런데도 그가 교회를 떠날 수 없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 찬양해 온 ‘하나님’이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답도 하나님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럴듯한 모습으로 포장했던 신앙의 태도를 벗어 버리고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아이처럼 단순하고 솔직한 기도를 쏟아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감추기 급급했던 아픔과 문제를 정직하게 일기장에 써 나가며 하나님께 묻기 시작했다. 망가지고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온 그에게 하나님은 잠잠히 말씀하셨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그 어떤 대답보다 하나님은 데니스를 향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셨고 오랫동안 방황하고 괴로워했던 그의 마음을 만지셨다. 창조주의 손길은 데니스의 내면에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일깨워 주었다. 하나님은 그의 삶에서 무너지고 어그러졌던 창조 질서를 회복시켜주셨다. 그리고 그동안 죄책감으로 눌려 있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자유롭게 해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데니스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미리 아시고 어둠과 절망에서 구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예비되어 있었던 것만 같았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홀로 내버려진 것같이 외로웠던 시간, 거듭해 왔던 혼란과 방황의 시간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며 누구보다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 듯했지만 복음의 가치를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무지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죄 된 본성을 절절히 느끼면서 데니스는 자신의 삶과 영혼이 온전히 회복되어 감을 체험했다. 마침내 1981년, 이 십자가의 진리는 동성애와의 치열한 싸움과 혼란 속에서 데니스를 구해 냈다. 그리고 이 진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전부가 되었다. 이 시련을 극복한 후 찬양 인도자로 활동하면서 교회 안에 예전의 자신처럼 특별한 문제를 감춘 채 고민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날 동성애를 극복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폭력과 이혼, 동성애와 중독, 자살 등 황폐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그는 자신의 지난 삶을 간증하고 찬양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1989년, 그가 쓴 “약할 때 강함 되시네”는 이러한 그의 마음을 담은 간증의 노래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 나의 보배가 되신 주 / 주 나의 모든 것 / 주 안에 있는 보물을 / 나는 포기할 수 없네 / 주 나의 모든 것 /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 사하셨네 / 주님의 이름 찬양해 / 주 나의 모든 것 / 쓰러진 나를 세우고 / 나의 빈 잔을 채우네 / 주 나의 모든 것 /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이 찬양은 곧 어두운 죄와 혼란을 감춘 채 방황하는 크리스천들에게 큰 힘을 주었고, 이 찬양이 불리는 곳곳마다 놀라운 치유와 회복을 일으키며 수많은 간증을 낳고 있다. 데니스 저니건(Dennis Jernigan)은 미국에서 찬양 인도자로 활발히 활동하며 아내와 함께 9명의 자녀를 둔 행복한 아버지로 살고 있다. “예수님은 내가 그분을 알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싸움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입니다. 그분은 내 존재의 근원이십니다. 내 삶의 근원이시며, 내 자유의 근원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 모든 것의 근원이십니다. 네, 그분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 - 데니스 저니건 가난한 주부의 향기로운 고백 -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1974년, 로리는 결혼 후 대학생인 남편을 따라 미국 오리건 주 외곽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남편의 학교 근처로 가기 위해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서 가정을 꾸린 로리 부부에게는 갓난아이도 있었다. 의지할 곳 없는 타지에서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남편이 학교에 가고 나면 로리는 자동차 뒤에 붙은 이동식 주택에서 종일 갓난아이와 씨름하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아이가 잠이라도 들면 멀리 있는 가족들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공중전화 앞으로 달려갔지만 전화 요금 걱정에 슬그머니 수화기를 내려놓기 일쑤였다. 장거리 전화를 한 번 하는 것도 주저할 만큼 경제적으로 빠듯한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이 위치한 지역에는 교회도, 친구도 없어 로리를 지치고 우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드리던 예배가 한없이 그리워지자 그녀는 혼자서라도 예배를 드리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아이가 잠이 들면 성경책을 펼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혹여나 아이가 깰까 낮은 목소리로 성경을 읽고 찬양을 부르면서 하나님께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기도드리는 이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수시로 밀려오는 외로움과 무력감은 여전히 매 순간 로리가 싸워야 할 현실이었다. 좁은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온 햇살에 눈을 뜬 아침, 로리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아기를 바라보며 습관처럼 손을 뻗어 성경책을 집었다. 그런데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는 공허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둘러보면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초라한 살림살이와 아이를 키우느라 꼼짝할 수 없는 자신뿐인데, 이렇게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없이 초라해지고 가난해진 마음으로 로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남편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한 염려와 두려움, 외로움이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한참 동안 엎드려 기도하던 로리의 마음에 간절한 소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제 목소리라도 기뻐 들으신다면… 그래서 주님이 즐겨 들으시는 노래를 가르쳐 주신다면… 제가 그 노래를 불러 드리겠어요.” 바로 그때 로리의 입술에서 아이의 말문이 터지듯, 처음 듣는 찬양이 흘러나왔다.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경배해요 내 영혼 기뻐/ 오 나의 왕/ 나의 목소리 주님 귀에 곱게 곱게 울리길” 간결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가 어우러진 이 찬양은 곧 비좁고 낡은 집을 가득 채웠고 로리의 마음 안에는 기쁨이 샘솟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눈부신 빛을 마주한 듯한 로리의 마음은 어느새 세상 누구보다 부요해졌고 그녀가 부르는 찬양은 창밖으로 향기롭게 흘러 나가고 있었다. 로리는 알았다. 이 곡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드린 이 예배를 세상의 어떤 예배보다 기쁘게 받아 주셨음을……. 로리는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이 곡을 들려주었고 남편의 격려와 추천을 통해 지역 교회에 이 찬양을 나누게 되었다. 그 후 이 찬양은 급속도로 퍼져 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회복을 일으켰고 음반으로 발매되어 지금도 세계 각국의 언어로 불리고 있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인 로리 클라인은 그 후 10년 동안 찬양 작곡가로 활동했고 지금도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이 곡을 통해 다른 이들의 삶 속에 주님이 행하신 이야기들을 들었어요. 구원과 육신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였죠. 사람들은 제게 고마움을 표하지만 이 곡은 저의 것이 아닙니다. 제게는 이 곡에 대한 저작권이나 어떠한 소유권도 없습니다. 이 곡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거든요. 나는 그저 그 시간에 입을 열었고, 하나님께서 채우셨어요. 그리고 이 곡을 통해 제 삶을 인도하셨죠." - 로리 클라인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한 남자의 회심곡 -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조셉 스크리븐은 1819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평온한 성장 과정을 거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다. 그에게는 대학 시절부터 교제해 온 아름다운 연인이 있었고, 두 사람은 약혼한 후 곧 있을 결혼을 준비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듯 조셉의 삶은 때에 맞는 은혜와 축복 속에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식을 앞둔 전날,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약혼녀가 호수에서 사고로 익사한 것이다. 이 충격은 어린 시절부터 모범적이고 바르게 살아왔던 조셉을 바꾸어 놓았다. 사랑하는 연인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그는 하나님과 세상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며 어린아이처럼 반항하기 시작했다. 나날이 난폭해지며 만날 때마다 시비를 거는 조셉의 곁에서 친구들은 하나둘씩 떠나갔고 가족들도 더 이상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방황할수록 누구보다 괴로운 건 조셉 자신이었다. 그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 문득 평안하게 흘러왔던 과거에 자신이 고백하고 지켜 온 신앙을 떠올렸다. 그리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그 믿음의 고백들을 약혼녀의 죽음 앞에서 거침없이 내버리고, 야수처럼 돌변해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저주의 말을 쏟아 내는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고난으로 삶이 흔들리자 하나님을 향한 믿음까지 요동쳤던 자신이 한없이 약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이 슬픔을 이겨 내고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밤을 새워 고민하던 조셉은 이전의 모든 삶을 정리하고 낯선 땅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극단적이고 고집스러운 결정 같았지만 누구도 그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낯선 땅, 캐나다에 도착한 조셉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는 먼저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고 빈민가를 찾아다니며 집을 수리해 주었다. 보수도 없이 빈민가에서 목공 일로 섬기고, 길을 가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겉옷까지 벗어 주는 조셉의 선행에 사람들은 괴짜 이방인이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그의 조건 없는 선행은 매일 계속되었다. 캐나다에서의 삶이 익숙해지고 안정될 무렵, 그에게 다시 사랑이 찾아왔다. 엘리자라는 이름의 젊은 여인이었다. 오랫동안 힘겹고 외로웠던 시간을 보상하는 선물과도 같은 그녀를 만나며 조셉은 행복했다. 하지만 기구하게도 엘리자 역시 결혼을 앞두고 폐렴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주위 사람들은 조셉을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예전처럼 분노하지도,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동정의 시선에도 그저 묵묵히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침묵할 뿐이었다. 다시 혼자가 된 그에게 고국에 있는 가족에게서 편지가 왔다. 어머니가 중병에 걸리셨다는 소식이었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형편에서 이 소식은 극심한 슬픔과 근심으로 다시 그를 조여 왔다. 병든 어머니 곁을 지켜드리지 못하는 죄송함으로 마음이 무거웠지만 오랫동안 기도를 한 후 용기를 내 어머니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상황을 전하고 어머니를 위로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에는 그의 진심 어린 마음이 담긴 한 편의 시도 동봉했다. 그 시는 그동안의 오랜 침묵을 깨뜨리는 간증이었다. 그는 시를 통해 어머니께 한 친구를 소개하고 있었다. 평안할 때나, 원망으로 울부짖을 때나 한결같이 그의 곁을 지켜 준 친구, 가족과 친구들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홀로 지낼 때도 그의 곁을 지켜 준 친구, 그의 고난과 신음에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떠나갈 때도 그의 모든 짐과 괴로움을 대신 맡아주면서 피난처가 되어 준 친구.... 그 친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러니 어떤 순간에도 낙심하지 말고 이 신실한 친구에게 모든 어려움과 근심을 기도로 아뢰면 참된 평안과 위로를 얻는다는 내용의 시였다. 이것은 조셉 자신의 깊은 간증이기도 했다. 고국에서 아들의 편지와 시를 읽은 어머니는 곧 병상에서 몸을 회복했고 이 시를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읽었다. 신기하게도 ‘저주받은 사람’이라 불렸던 조셉의 시는 고난과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일으키며 구원에 이르게 했다. 이후 캐나다에 있는 한 친구를 통해 이 시가 지역신문에 실리자 조셉은 행여나 하나님보다 자신의 이름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며 나서기를 거절했다. 이 시는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신과 함께 써 주신 것이라고 겸손히 고백할 뿐이었다. 그의 시를 읽은 사람들은 늘 혼자였던 조셉이 실은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복을 누린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 자 누군가 /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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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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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이야기
유대인 이야기 홍익희 지음 행성:B잎새 / 2013년 1월 / 662쪽 / 28,000원 ▣ 저자 홍익희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KOTRA에 입사했다.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 뉴욕, 파나마, 멕시코, 마드리드 등지에서 근무하다 2010년…
유대인 이야기 홍익희 지음 행성:B잎새 / 2013년 1월 / 662쪽 / 28,000원 ▣ 저자 홍익희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KOTRA에 입사했다.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 뉴욕, 파나마, 멕시코, 마드리드 등지에서 근무하다 2010년 밀라노 무역관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했다. 현재는 세계를 누비며 무역 현장에서 보고 느낀 바를 저술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해외근무를 하면서 일찍이 유대인을 접한 그는 유통과 금융은 물론 서비스산업의 중심에 언제나 유대인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들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탐구해 보게 되었다. 오랫동안 유대인에 천착한 결과 세계 경제사 자체가 유대인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경제의 절묘한 시나리오』(1995), 『21세기 금융위기의 진실』(2010), 『유대인, 그들은 우리에게 누구인가』(2010)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해외 7개국에서 근무했던 저자는 1990년대 중반 뉴욕 무역관에 근무할 때, 제조업 고용비중이 10퍼센트도 안 되는 미국이 세계 경제를 호령하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미국은 서비스산업 고용비중이 80퍼센트를 넘어선 서비스산업 강국이었다. 특히 금융산업 경쟁력은 세계 최강이었다. 미국 경제에서 GDP 성장에 대한 금융산업 기여도는 3할에 이른다. 세계는 바야흐로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이끄는 금융자본주의 시대다. 이러한 금융자본주의의 정점에 미국이 있었다. 제조업의 열세로 무역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을 세계 각국에 투자된 미국의 금융자본이 먹여 살리고 있었다. 저자는 2001년부터는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근무하는 행운을 얻었다. 10여 년 전 첫 근무를 할 때에 비해, 세계적인 제조업이나 변변한 첨단산업 하나 없는 스페인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데 놀랐다.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니 그 힘 역시 서비스산업이었다. 20세기에 어려웠던 스페인 경제가 21세기 들어 관광산업과 금융산업의 주도로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1980년대 초 해외근무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시작하면서부터 유대인들을 접했고 해외근무를 더해 가면서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을 만났다. 중남미에서부터 미국, 유럽에 이르기까지 근무한 나라가 늘어날수록 유대인들의 힘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유통과 금융은 물론 각종 서비스산업의 중심에는 언제나 유대인들이 있었다. 저자는 그들의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고 있었다. 이제는 유대인이 우리 경제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거대한 상대가 되어 있었다. 금융산업을 비롯한 서비스산업의 뿌리에는 어김없이 유대인들이 있었다. 경제사에서 서비스산업의 창시자와 주역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었다. 더 나아가 세계 경제사 자체가 유대인의 발자취와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 한다. 우리도 금융강국이 되어야 하고 다른 서비스산업에서도 경쟁력을 갖추어야 21세기 아시아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제조업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금융, 관광, 교육, 의료, 지식산업 등 서비스산업의 발전 없이는 우리의 미래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미래산업이자 고용창출력이 큰 서비스산업이 발전해야 내수도 살아나고 청년실업도 줄어든다. 그래야 서비스수지와 소득수지도 적자를 면하고, 더 나아가 우리 서비스산업이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 책은 역사 속 유대인의 궤적을 추적했다. 이는 역사를 통해 서비스산업의 좌표를 확인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하기 위한 되새김질이기도 하다.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역사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대인 이야기와 더불어 같은 시대 동서양의 경제사와 세계사를 씨줄로, 과학과 기술의 발달과정을 날줄로 함께 엮어 경제사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경제사를 주도한 유대인의 좌표를 그 시대상황 속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 책은 유대인 역사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그들의 의식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이 믿는 ‘유대인의 역사책’인 《구약성경》을 많이 인용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논란의 여지가 많겠지만, 성서의 기록을 유대인들이 믿는 역사로 인정하여 그 속에서 유대인의 저력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 차례 머리말 1부. 고난과 형극의 역사를 이겨낸 유대인 1. 영원한 계약 2. 고난의 역사, 엑소더스 3. 페니키아, 이스라엘, 그리스의 상권 각축 4. 유대인 방랑시대의 시작, 바빌론 유수기 5.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인 6. 로마의 득세와 유대인 7. 1, 2차 유대-로마전쟁과 2천 년 방황의 시작 8. 2차 이산 이후 후기 로마시대와 유대인 9. 이베리아 반도의 영화(榮華)와 이슬람의 유대인 10. 중세 유럽, 유대인의 동방무역과 금융업 2부. 유대인 세계 경제사의 주역으로 우뚝 서다 1. 스페인제국의 영광과 몰락 2. 동전의 양면, 중상주의와 유대인 3. 유대인, 동양을 요리하다 4. 유대인, 산업혁명 토대를 구축하다 5. 영원한 금융 황제, 로스차일드 6. 미국 산업사의 양대 축, 모건과 록펠러 7. 미국을 움직이는 오늘날의 유대인들 맺는 말 / 색인 유대인 이야기 홍익희 지음 행성:B잎새 / 2013년 1월 / 662쪽 / 28,000원 1부. 고난과 형극의 역사를 이겨낸 유대인 영원한 계약_ 유대인의 역사는 세계 경제사와 궤를 같이한다 유대인의 역사와 경제행위를 살펴보려면 세계 경제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중심에 항상 유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세계 4대 문명 중 가장 빨리 시작되었다는 수메르 문명기의 인물이다. 1차 경제혁명, 신석기혁명: 현생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살다가 약 6만 년 전 티그리스ㆍ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비옥한 초승달지대에 정착했다. 그리고 약 1만 년 전쯤에 빙하기가 끝나면서 신석기시대가 시작됐으며, 기원전 8000~7000년경에 수렵채취 경제로부터 농경사회로 옮겨갔다. 가장 최초의 농경사회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평원에서 수메르 민족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것을 경제사에서는 ‘신석기혁명’이라 부른다. 신석기혁명은 식량채집에서 ‘식량생산’으로의 변화를 뜻한다. 이러한 생산경제로의 전환은 인류문화사상 하나의 전기를 가져온 혁명적 사건이다. 수메르 문명이 발달한 이유: 기원전 5000년경, 수메르인은 티그리스ㆍ유프라테스 강줄기를 따라 농사지으며 여러 개의 마을들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 지역은 하천 활동에 의해 진흙, 모래 따위가 쌓여 이루어진 충적층 평야라 이집트와 달리 금속은 물론 석재와 목재 등 문명생활에 필요한 기초재료가 귀했고 척박한 환경이었다. 그래서 외부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오거나 재주껏 만들어 써야만 했다. 때문에 일찍부터 교역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무역이 발전했고 불을 다루는 기술과 배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다. 기원전 4000년경부터는 청동기시대로 접어들면서 대량의 물품이 메소포타미아의 수로와 운하를 통해 거래되면서 주변에 큰 도시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수메르 도시국가들은 상업과 무역의 터전 위에 세워졌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 우르에서 살았다. 인류 최초의 언어, 수메르어: 유대 민족의 출발점을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아브라함이 살았던 우르의 수메르 문명을 알 필요가 있다. 수메르 문명이 인류에게 선물한 ‘최초의 것’들은 바퀴, 계획도시, 고층건물, 상하수도, 교육, 음악, 악기, 야금술, 의학, 조각, 보석, 도시, 왕조, 법률, 사원, 기사도, 수학, 천문학, 달력 등 백 가지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자다. 기원전 3500년경 우루크에서 수메르인이 썼던 쐐기문자를 우리는 인류 최초의 문자로 본다. 우르 사람 아브라함도 이 문자를 사용했을 것이다. 우르의 사원에서 발견된 공문서를 보면 식량을 정확히 계량해서 주민들에게 분배하는 일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문자가 지배층의 통치수단 중 하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역사의 기록이 없는 시대를 ‘선사시대’라 부르고 기록이 남겨진 이후의 시대를 ‘역사시대’라 부른다. 수메르 문명을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보는 것은 바로 이 역사시대를 최초로 열었기 때문이다. 페니키아, 이스라엘, 그리스의 상권 각축_ 이스라엘, 그리스보다 빠른 민주주의 국가 건설 가나안으로 돌아온 히브리인, 곧 이스라엘인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탄생시킨다. 그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 12지파 족장이 땅을 분할해 통치하고 종교의식에서만 유대를 같이했다. 이렇듯 초기 이스라엘 지파연맹은 종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었다. 지파연맹 공동체의 정치 형태의 특징은 오직 신만을 주권자로 모시면서 모든 지파가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나안의 다른 도시국가들과는 달리 왕을 세우지 않고 지파들의 대표에 해당하는 판관(判官)을 민의로 ‘선출’했다. 그리고 판관이 지파연맹에 관한 전반적인 사안들을 담당하도록 했다. 그러나 판관에게는 왕에게 주어졌던 것과 같은 전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지파연맹 체제는 대략 2백여 년 동안 유지되었는데, 신 앞에서 모든 지파는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적 통치 이념이 초기 이스라엘 지파연맹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평등이념을 기초로 한 종교 공동체를 통해 그리스보다 4백 년이나 앞서 민주주의 제도를 실천했다. 또한 이스라엘인들은 위기가 닥치면 신이 모세와 같은 정신적 지도자를 보내 악(惡)으로부터 구해 준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구원자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뒷날 구세주 개념의 뿌리가 되었다. 사해의 소금으로 교역을 시작하다: 소규모의 농사와 목축을 주업으로 삼았던 고대 이스라엘의 경제는 주변 국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빈곤한 형편이었다. 소규모의 농사 외에 고대 이스라엘의 기본적인 생업은 목축이었다. 지중해 해안에는 페니키아의 전통으로 어업이 발달했고 갈릴리 호수에도 어족이 풍부해서 어촌들이 형성되었다. 2차 산업으로는 직물류와 토기류가 생산되었다. 다행히 이스라엘은 교역을 위한 소금이 있었다. 가나안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요르단 강은 주변의 여러 작은 개천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로 모아진다. 그리고 굽이굽이 지나 마침내 사해로 흘러 들어간다. 사해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바다로 염분이 25퍼센트로 바다보다 아홉 배 정도 더 높다. 이스라엘인들의 땅에는 이렇게 ‘소금 바다’가 있었고 그 주변에 ‘소금 성읍’과 ‘소금 골짜기’가 있었기에 교역이 가능했다. 고대의 소금은 금값에 버금갔다. 팔레스타인인과의 악연: 이삭이 살던 시기에 남부해안에는 바다의 민족인 필리스틴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 이 사람들이 현 팔레스타인인(필리스티아인)들이다. 이스라엘인들이 청동무기를 쓰고 있을 때 이들은 이미 철제무기를 썼다. 이들은 이집트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인들과 비슷한 시기에 가나안에 정착했다. 이때부터 두 민족 간에 충돌과 영토 분쟁이 시작되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필리스티아 사람들과 전투를 치렀고,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필리스티아 사람들을 《성경》에선 ‘블레셋 사람들’이라 불렀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갈등을 벌이는 가자지구도 고대 필리스티아 사람들이 건설한 곳이다. 어쨌든 이스라엘인 입장에서는 가나안 땅의 지배권을 필리스티아 사람들에게 호락호락 내줄 수 없었다. 문제는 필리스티아가 지금까지 가나안 정복전쟁을 통해 만났던 상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고 강한 적수였다는 점이다. 그러자 이스라엘인들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생각해냈다. 좀 더 강력한 지도체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 12지파는 외부에서 적이 침략해 왔을 때만 일시적으로 판관이라는 지도자 밑에서 동맹을 맺고 싸웠다. 이렇게 느슨한 동맹체제로는 강한 왕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전쟁을 치르는 필리스티아를 대적하기 어려웠다. 이에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을 항구적으로 통치하고 전쟁을 지휘해 줄 왕을 요구하게 된다. 세계 최초 입헌군주제 도입: 이 왕들이 바로 사울, 다윗, 솔로몬 왕이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왕은 다른 나라의 왕들과는 개념이 달랐다. 이스라엘인들의 왕은 그들의 율법 아래 선임된 왕들로 곧 입헌군주제하의 왕들이었다. 절대 권력을 쥔 왕이 아니라 왕도 일반 시민처럼 사법적, 도덕적, 종교적 행위의 대상이었다. 왕도 법의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이스라엘 왕은 다만 신의 대리자일 뿐 신이 친히 당신 백성을 다스리신다는 사상은 변함이 없었다. 당시 다른 나라들은 혈통에 의해 왕이 세습되었지만 이스라엘인들은 율법에 합당한 능력자면 누구나 왕이 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최초로 왕이 된 사울의 주요 임무는 중앙 산악지대에서 필리스티아인들을 몰아내는 일이었다. 그를 이어 거인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필리스티아인인 다윗이 왕이 되었다. 그의 나이 30세였다. 유대인 방랑시대의 시작, 바빌론 유수기_ 유다 왕국의 멸망과 1, 2차 바빌론 유수 기원전 721년 북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할 때에도 남유다 왕국은 이집트의 보호로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집트는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신바빌로니아로부터 유다 왕국을 보호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마침내 기원전 601년 유다 왕국은 바빌로니아의 속국이 되었다. 유다 왕국이 바빌로니아 지배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기원전 600년에 유대인들의 첫 반란이 있었다. 이때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병된 군대가 오히려 전멸했다. 느부갓네살 왕은 연합군을 진두지휘해 다시 공격해 왔다. 결국 예루살렘은 함락되었다. 기원전 597년의 일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시 항거할 만한 8천 명을 추방시켰다. 그리고 왕과 상류층 계급의 유대인과 함께 은장이, 대장장이들을 바빌론에 포로로 데려갔다. 이것이 ‘1차 바빌론 유수(幽囚)’다. 그래도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 왕국을 완전히 병합하지 않고 허수아비 왕을 앉혀 놓고 속국으로 남겨두었다. 그런데 새롭게 즉위한 유다 왕이 이집트와 동맹해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이에 격분한 느부갓네살 왕은 다시 군대를 동원해 결국 기원전 587년에 2차 침공을 감행했다. 세 번에 걸친 대제국과의 전쟁으로 유다 왕국은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이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것이 역사상 유명한 2차 바빌론 유수다. 바빌로니아에 잡혀가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져 성 밖으로 도망쳤다. 많은 사람들이 그간 왕래가 잦았던 이집트로 주로 피신했다. 이때 지중해 권역의 페니키아 식민지에도 유대인들이 많이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방랑이 시작된 것이다. 이를 유대인들의 ‘1차 이산(離散)’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1948년 이스라엘 건국까지 약 2500년간을 ‘유대인 방랑시대’라 부른다. 로마의 득세와 유대인_ 소금의 경제사 인류 문명 탄생 이후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로 식량과 불 이외에도 세 개가 더 있었다. 물, 땔감, 소금이 그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류는 땔감과 소금을 구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강가에 모여 살게 되었다. 페니키아가 해상무역을 석권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소금이었다. 경제사를 추적해 보면 문명의 탄생은 물론 도시와 국가의 탄생이 소금과 관계가 깊다. 로마의 소금길, 모든 길은 로마로: 로마가 발전한 이유 중 하나도 소금이었다. 기원전 640년에 로마인들은 로마 인근 바닷가에 대규모 제염소를 건설했다. 해안염전에서 만들어져 하천을 통해 배로 운반된 소금은 품질도 좋았고 가격도 훨씬 저렴했다. 이로써 로마는 중요한 소금 유통의 중심지가 되어 소금을 대륙으로 수출했다. 이 길이 로마 발전의 원동력이 된 그 유명한 ‘소금길(비아 살라리아, via salaria)’이다. 소금은 사용가치가 높은 귀중한 교역품이었던 만큼 적에게 소금을 판매할 경우에는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국가의 전매사업인 소금 수출이 늘어나면서 로마는 자연스럽게 부강해졌다. 나라가 잘살게 되자 인구가 로마로 몰려들었다. 결국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티베르 강 하구에서 만들어진 소금에서 유래한 셈이다. 로마 초기에는 소금이 귀해 화폐의 역할을 했다. 관리나 군인에게 주는 급료를 소금으로 지불했다. 이를 ‘살라리움(salarium, 라틴어로 소금이라는 뜻)’이라 했다. 그 후 로마 제정시대 때부터 급료를 돈으로 지급했지만, 이를 여전히 살라리움이라 불렀다. 봉급생활자를 일컫는 샐러리맨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이렇게 로마제국의 부흥은 소금과 관계가 깊다. 하지만 1세기경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염전을 상실한 로마는 흑해에서 소금을 수입하게 되었다. 이후 중요한 부의 근원을 상실한 로마의 경제력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네덜란드, 염장 청어로 부를 쌓아: 16세기 초 이베리아 반도에서 쫓겨나 지금의 벨기에와 암스테르담으로 몰려온 유대인들은 맨 먼저 피난 당시 갖고 온 보석으로 보석 사업을 시작했다. 그 뒤 두 번째로 손댄 것이 자신들이 살던 이베리아 반도의 소금을 사들여 대규모의 청어절임을 기업화해 수출한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소금 중계무역 기지가 된다. 네덜란드는 막강한 경제력을 축적할 수 있는 소금의 채취에 열을 올려 멀리 서인도 제도에서까지 소금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17세기 초 네덜란드는 강력한 해상 무역국으로 부상했다. 16세기 말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신교도 전쟁은 소금과 식민지 노예 등의 문제가 원인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소금세를 올렸다. 만인이 소비하는 것이었기에 소금에는 세금을 매기기가 편했다. 이러한 간접세는 점차 담배 등의 다른 생필품에도 번져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옥죄어 갔다. 2차 이산 이후 후기 로마시대와 유대인_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다 로마제국의 황금기였던 오현제 시대에는 능력 있는 사람을 황제로 추대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를 깨고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아들 콤모두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때부터 로마는 쇠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85년 왕위에 오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붕괴되어 가고 있는 국가를 혁명적으로 새로 건설하려고 했다. 또한 그는 광대한 로마제국에 황제가 하나뿐이기 때문에 다툼이 계속된다고 보았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로마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다스리기로 했다. 이로써 로마제국이 동서로 나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각각의 제국에 부황제를 두어 다시 통치 구역을 사등분했다. 293년 이후 로마제국에는 네 명의 황제가 존재하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등장과 밀라노 칙령: 로마제국 내에 기독교가 널리 퍼지자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기독교도들이 로마인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정치적 내분을 일으켜 황제들이 서로 다투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기독교를 믿었던 콘스탄티누스는 국력을 통일시키기 위해 다른 황제들을 하나씩 제거했다. 로마제국 권력다툼에서 승리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제국 내의 종교의 자유를 선포’함으로써 기독교 탄압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박해 때 몰수 당한 재산을 되돌려주고 종교 재산과 성직자에 대한 세금과 병역면제 등을 시행했다. 교회에 대한 세금면제는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이로써 그동안 박해하고 금지해 왔던 기독교를 누구나 믿을 수 있는 종교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그간 숨어 지냈던 기독교도들한테는 무한한 기쁨이요, 예수를 박해했던 유대인들에게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기독교, 반유대인 정책 선동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죽은 뒤, 세 아들이 로마제국을 삼분했다. 35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셋째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가 단독 황제가 된다. 그는 유대인의 기독교 노예 소유 금지령을 이교도 노예로까지 확장했고, 유대인과 기독교도 사이의 혼인도 금했다. 이런 혼인은 사형에 처해졌다. 기독교 고위 성직자들은 대중이 모이는 광장에서 공공연히 반유대인 설교를 하면서 무리로 하여금 유대인들의 예배장소를 파괴하도록 선동했다. 콘스탄티우스 2세 이후 20여 년 뒤 여러 황제의 난립을 제압하고 등극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더욱 신실한 기독교도가 되어 392년에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채택했다. 이제 유대인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으며 전쟁에 군인으로 참가할 수도 없게 되었다.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없어진 것이다. 로마제국의 반유대정책으로 유대교 개종자와 기독교도의 결혼이 금지되었고 유대인이 기독교인 노예를 3개월 이상 소유하는 것이 금지되어 경제적인 제약이 가해지자, 유대인은 노예제에 의존하는 농업 대신 가족 구성원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소영농이나 자영업을 찾아야만 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유대인들은 어쩔 수 없이 상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로마제국 내의 유대인 숫자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10세기에 이르러서는 100~150만 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경제가 피폐해져 로마제국의 인구 자체가 줄어든 이유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유대인들이 박해가 심해지는 로마제국을 떠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등 외지로 떠났기 때문이다. 상업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인들이 떠난다는 이야기는 그 지역 상권이 죽고 경제가 피폐해짐을 의미했다. 이는 로마 경제 몰락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중세 유럽, 유대인의 동방무역과 금융업_ 동방무역으로 되살아난 유럽 경제와 유대인의 금융업 원래 동방무역이란 고대 해상무역을 주름잡았던 페니키아인과 유대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후 중세 전반에 쇠퇴했다가 10세기 말부터 상업의 부활로 다시 성행했다. 좁은 의미로는 북부 이탈리아의 항구도시에 의한 중ㆍ근동무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곧 10세기부터 16세기의 신항로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의 여러 해양공국들과 동방과의 무역을 말한다. 한마디로 동방무역은 서구 기독교 세계에 살았던 유대인들과 이슬람 세계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합작품이다. 이들 양대 유대인 커뮤니티 간의 무역이 곧 동방무역이었다. 당시 기독교와 이슬람이 적대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양쪽을 유일하게 잇는 끈이 유대인이었다. 이슬람권과의 무역을 독점하다: 중세유럽에서 원거리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회계, 외환, 외국어, 게다가 어느 곳에서 상품을 얻을 수 있고 어느 곳에서 더 높은 가치를 갖는가 하는 지식 등 많은 것을 알아야 했다. 따라서 세계 각국에 커뮤니티를 갖고 정보와 외환시세 산정에 능숙한 유대인들이 통상을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당시 이슬람권과 기독교권과의 무역을 금지한 교황 덕분에 유대인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이슬람권에는 유대인만이 통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 이슬람권에도 유대인 커뮤니티가 있어 이들이 서방의 유대인 커뮤니티와 교역을 주도했다. 이렇게 해서 유대인들은 암흑의 중세시대,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가 나빴던 시기에 동방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특히 11~12세기에는 상업혁명이라 불릴 만큼 해상무역과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십자군 전쟁이 횟수를 더해 갈수록 해상운송과 해상무역은 더욱 증대되었고 이를 뒷받침해 줄 금융업도 발전했다. 무역을 지원할 금융이 발달하다: 무역을 토대로 돈을 번 유대인들은 기독교에서 금지했던 대부업을 발전시켜 금융산업을 일으켰다. 상인들은 처음에는 환어음을 취급하다가 전적으로 금융 성격을 띤 어음을 취급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상인들에게 대부하다가 왕족과 귀족들에 대한 대부로 발전했다. 이런 상업자본이 은행을 형성했다. 이후 무역금융은 해상보험으로 발전한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대규모 금융업을 영위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유럽 내 각국 왕의 자금줄 역할을 도맡았다. 이후 유럽이 세상에서 우뚝 서기 시작한 것은 금융산업의 덕이었다. 상업 활동을 통해 부를 이룬 상인들에게서 금융이라는 부의 축적과 증식방법이 개발되고 체계화되면서 유럽을 부유한 지역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커뮤니티 간의 정보교환으로 부를 일구다: 유대인 랍비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커뮤니티 간에 일상적으로 편지를 교환했다. 종교상의 의문점을 묻고 답하기 위해 또는 크고 작은 전통과 관습의 대소사를 의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이 편지에는 현지 사정과 변화들을 자세히 기록해 다른 커뮤니티에 전달되었다. 거기에는 상품과 환시세의 변동도 기재되었다. 따라서 유대인 랍비들은 어디에 밀이 모자라 값이 오르고 있고 어디에 밀이 많이 비축되어 가격이 안정되어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밀뿐만이 아니라 말, 갑옷, 소금, 포도주 등 모든 상품에 대해 그랬다. 그들은 상품이 장소를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랍비의 가르침대로 상품이 풍족한 곳에서 모자라는 곳으로 옮겨다 주고 돈을 벌었다. 그들의 정보교환은 상품정보만이 아니었다. 금과 은의 교환비율 등 환시세의 변화도 함께 알 수 있었다.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지역마다 달랐고 이들을 옮기기만 해도 돈의 가치가 달라졌다. 당연히 유대인은 그 차액을 챙길 수 있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처음으로 ‘돈’을 상품으로 본 민족이다. 《탈무드》, 신용거래와 유가증권을 가능케 하다: 중세 초기의 거래는 현금거래였다. 그런데 현금을 노리는 강도들이 많이 출몰하자 유대인들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신용과 유가증권이 그것이다. 신용거래나 어음의 교환은 유대인 커뮤니티 간의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 가능할 수 있었다. 어음은 국가의 권위하에 발행되는 화폐와 달리 초보적 형태의 개인 간 금융이다. 로마법을 이어받은 중세의 법은, 모든 부채는 개인의 것이며 채권자는 지불기일 이전에 차용증서를 제3자에게 팔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곧 채무자는 본래 채권자 이외의 사람에게는 지불 의무가 없었다. 만일 채권자가 사망하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중세에 영주는 유대인을 학살하거나 추방함으로써 유대인에게 진 빚을 소멸시킨 것이다. 그런데 《탈무드》법은 신용제도를 인정하고 부채는 그 지불을 요구하는 자에게 지불하게 되어 있었다. 오늘날 은행이 그와 같은 지불청구에 응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탈무드》는 종교생활뿐만 아니라 도덕, 윤리, 사업행위를 규정했다. 개인의 범죄, 무역, 손해, 부동산, 상업, 서약의 존엄, 계약이행 등에 관해 《탈무드》는 유대인의 광범위한 경제활동을 규제하는 국제법으로 기능했다. 따라서 당시 유대인들은 《탈무드》라는 형태로 국제법을 갖고 있던 셈이었다. 그것은 유대인과 유대인뿐 아니라, 유대인과 국가,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의 상거래 활동도 규정했다. 광범위한 유대인의 상업 활동은 이미 10세기에 볼 수 있었다. 유대인은 유럽이나 북아프리카나 중동에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인도나 중국에도 무역사무소와 유대인 커뮤니티를 갖고 있었다. 유대인은 상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비공식 어음교환소를 차리고 그곳에서 대부나 약속어음의 유통 업무를 보았다. 환어음의 출현, 교역과 경제를 활성화시키다: 그 뒤 유대인들의 대부업과 금융업은 지역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자연스럽게 국가 간 통화 교환과 상품대금의 지불과 수취 등 국제 금융업으로 발전했다. 유럽시장에서 신용과 계약을 생명 이상으로 여기는 유대인들끼리는 외상장사가 가능했다. 물건을 외상으로 가져가면서 다음번 시장이 열릴 때나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시장에서 갚는 것들이 일반적이었다. 이때 물건을 외상으로 가져가는 상인은 종이에 이러한 내용을 적어 증표로 주었다. 이 증표는 이후 강제적인 차용증서 형태로 발전되어 유대 상인들 사이에서 돈 대신 통용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 은행가들은 환어음을 고안했는데, 환어음의 유통으로 해외 무역을 위해 현찰을 많이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져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편해졌다. 환어음이 일단 생겨나자 유럽에서 급속히 사용되었다. 환어음은 원래 장거리 결제를 해결하려고 고안된 것이지만 결국에는 모든 상인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지불수단이 되었다. 2부. 유대인 세계 경제사의 주역으로 우뚝 서다 동전의 양면, 중상주의와 유대인_ 암스테르담 시대, 종교개혁과 유대인 황금시대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은 유대인들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출현은 유대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종교개혁이 교황 중심의 기독교 세계의 통일성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종교개혁을 환영했고, 종교개혁 초기에 개신교도와 유대인들은 비교적 잘 지냈다. 마틴 루터도 처음에는 유대인을 옹호했다. 루터는 가톨릭 성직자들이 유대인들을 박해한 일을 강렬한 어조로 비난하면서 유대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예수의 사랑이요, 초대 교회 교부들이 권했던 친절과 관심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유대인들은 루터의 말에 큰 기대를 걸고 그를 환영했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관망했다. 그 뒤 루터는 교황의 박해를 피해 피신해 있는 동안 사제들만 읽던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덕분으로 가톨릭 평신도들은 금서였던 《성경》을 처음 접할 수 있었다. 《성경》은 삽시간에 전 독일에 퍼졌고 루터는 교황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유대인에게 도움을 구했다. 1523년에 쓴 《예수 그리스도는 나면서부터 유대인》이라는 소책자에서 루터는 유대인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하면서, 유대인이 자발적으로 집단 개종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루터가 번역한 《성경》보다는 《탈무드》 쪽이 훌륭한 《성경》 해석을 해 놓았다면서 유대인들은 개종의 손짓을 거부했다. 이때부터 루터는 유대인들을 거세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어 간행된 《유대인과 그 허위에 대해》라는 소책자는 홀로코스트를 향한 거대한 첫 발자국이라 할 만했다. 그는 “먼저, 유대인의 시나고그에 불을 지르고, 타고 남은 것들은 몽땅 뻘 속에 파묻은 다음, 그 초석이나 불탄 재가 사람 눈에 뜨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유대인에 대해 과격한 독설을 퍼부었다. 루터는 말로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영향력이 커진 그는 1537년 작센에서 시작해 1540년에는 독일 거리 곳곳에서 유대인을 내쫓았다. 칼뱅, 유대인을 지지하다: 훗날 영국 청교도 혁명의 사상적 지주가 된 프랑스의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상인들을 지지했다. 당시 유럽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감수하고 있었는데, 이들에게 칼뱅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는 것이 신에게 봉사하는 길이라고 설교했다. 이러한 칼뱅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그리하여 상업이 융성했던 네덜란드에 칼뱅파가 널리 퍼지게 된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의 구원을 확신하면서 세속적인 직업 활동과 합리적이고 금욕적인 일상생활을 함께 영위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는 근대적인 직업관과 생활윤리를 제공해 근대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칼뱅은 유대인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이자를 받고 대부하는 일에 대해 찬성한 것이었다. 칼뱅은 5퍼센트 이자율 한도 내에서는 빌려 주어도 좋다고 했다. 루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후 등장한 일부 신교도들도 고리대금업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폈다. 네덜란드 신교도와 영국 청교도들은 이자상한선을 정해 놓고 대부업을 허용했는데 이것이 근대에 접어들어 이 두 나라가 금융산업을 기반으로 상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유대인, 산업혁명 토대를 구축하다_ 유대인, 고객만족경영으로 세상을 바꾸다 유대인의 세력이 커지자 영국도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상업의 귀재인 유대인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소매상인으로 활동하려면 자유민 신분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기독교 신앙을 믿는다는 서약을 전제로 했다. 그 뒤 아예 자국인과 경쟁을 제한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되어 유대인은 ‘소매업’에 종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소매업 대신에 도매업, 유통업, 무역업, 은행업, 재정 분야, 특히 금융 분야에 집중했다. 그러자 영국에서도 유대인들의 자본축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자본축적은 곧 금융산업의 부흥을 뜻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온 요셉 베가를 비롯한 유대인 금융가문들은 1688년에 영국에서 전문적인 주식거래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유대인들이 런던 주식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는 나라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상업적 재능을 견제 받았다. 도대체 이렇게 견제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대인의 역사』를 쓴 폴 존슨은 그의 저서에서 그 무렵 유대인 상업의 특징을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그들은 ‘혁신’을 생활화했다. 무엇이든지 효율과 능률적인 방법을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주식시장이 좋은 예다. 주식시장은 생산현장에 재원을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든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둘째, 판매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셋째, 가능한 넓은 시장을 추구했다. 규모의 경제를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넷째, 그들은 될 수 있으면 상품의 가격을 낮추려고 애썼다. 생산성 향상과 유통구조 합리화 등 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다섯째, 유대인들은 상업정보 수집과 활용에 정통했다. 세계 각국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 간의 소통과 결집력 덕분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18세기 경제체제에서 종합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더 낫고, 더 쉬우며, 더 싸고, 더 빠른’ 방식들을 끊임없이 모색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합리주의’를 추구했다. 이는 세상의 부(富)란 다른 사람을 도와줌으로써 만들어진다는 원리를 일찍이 터득한 것이었다. 옛날부터 유대인들은 고객들의 필요와 욕구를 경쟁자보다 더 빨리 파악하고 만족시키는 ‘기업가 정신’에 충실했다. 따라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은 경쟁자보다 훨씬 나은 가치를 제공해 고객을 만족시켰다는 뜻이다. 이른바 현대 경영학에서 이야기하는 ‘고객만족경영’이었다. ‘우연의 일치’가 일어나다: 그 후 유대인들이 몰려오자 경제가 발전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영국인들은 이후 유대인 유치에 더 열을 올렸다. 당시 내로라하는 사상가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은 대부분 유대인을 옹호했다. 당시 계몽주의 사상의 대가인 몽테스키외 또한 유대인들이 유럽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17세기 영국의 지배자들은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도들의 부당한 고리대금업을 견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은행을 경영하던 유대인들은 개인적으로 높은 이자율로 큰 이득을 볼 수도 있었지만, 부당한 고금리 금지 법률제정에 앞장서 영국 정부에 적극 협력했다. 결국 유대인 은행가들의 경쟁력이 네덜란드에서처럼 시장금리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 뒤 영국의 산업혁명 확산과 과학기술의 발달에도 유대인의 자본력과 저금리의 금융 지원은 큰 역할을 해 영국이 세계 경제의 패권을 쥘 수 있도록 도왔다. 1669년부터 1750년 사이에 영국의 지배자들은 줄기차게 네덜란드 유대인 장인들에게 영국으로의 이주를 권유했다. 이것은 마치 종교적 관용을 찾아 유대인들이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몰려들었던 역사의 판박이였다. 유대인들이 이주한 뒤 영국에서도 네덜란드와 같은 ‘우연의 일치’가 일어났다. 유대인들이 자리를 잡자 영국 경제가 무섭게 발전하기 시작해 마침내 유럽 제1의 무역국이 된 것이다. 17세기 초 인구 15만 명을 헤아리던 런던이 17세기 말 인구 40만 명의 대도시로 급부상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제의 중심이 암스테르담에서 런던으로 이동했다. 18세기 초 마침내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해외시장과 가장 규모가 큰 상선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영국 정부도 두 팔 걷고 도왔다. 수출 장려를 위해 산업계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수출 보상금도 지원했으며 국내산업 육성을 위해 수입에는 각종 금지조치를 내리고 보호관세를 부과했다. 또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법령으로 제정했다. 특히 1662년에는 기술력 향상을 목적으로 왕립 런던학술원을 설립했다. 산업혁명은 이런 제도적 뒷받침 속에서 싹을 틔웠다. 미국 산업사의 양대 축, 모건과 록펠러_ 대공황을 극복한 미국, 재벌을 탄생시키다 1929년 늦여름, 유럽에서는 미국의 투자자들이 빠져나감에 따라 주가가 떨어지고 불경기에 시달렸다. 유럽의 경기 침체는 미국에도 영향을 주었다. 급기야 1929년 10월 24일 금융 버블이 터졌고 뉴욕증시는 대폭락을 맞았다. 주가가 12.6퍼센트나 급락했다. 이른바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이다. 주식시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공황이 닥친 것이다. 그해가 끝날 무렵 다우지수는 최고 351에서 238로 하락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다우지수는 폭락에 폭락을 거듭해 1932년에는 41을 기록했다. 3년 사이에 시가총액의 무려 89퍼센트가 증발해 버렸다. 공포가 공포를 잡아먹는 무서운 폭락이었다. 그리고 10여 년 동안 주가는 회복되지 않아 1930년대를 고작 150으로 마감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의 도산이 줄줄이 이어져 전체 은행의 44퍼센트가 도산했다. 대공황의 여파로 제조업의 양대 축이었던 건설업과 자동차 업계 공장 가동률이 5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면서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었다. 노동자의 25퍼센트가 직장을 잃었다. 공황 전에는 260여만 명이던 실업자 수가 공황이 정점에 달했던 1933년에는 1300만 명으로 급증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부유하고 산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불황은 더욱 심했다. 미국 경제는 2차 대전이 시작되고 나서야 겨우 그 충격으로부터 회복되었다. 글래스-스티걸법에 따른 모던스탠리 증권회사 설립: 원래 부자들은 대공황과 같은 비상시기를 놓치지 않는다. 위기를 이용해 돈을 버는 법이다. 이들은 대공황 이후 헐값에 기업들을 사들였다. 제이피모건 상사는 당시 기업이 아니라 판관(判官)이었다. 대공황 시기에 탄생한 제이피모건 상사는 말 그대로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제이피모건이 “이 주식의 가격은 얼마가 적당하다.”고 결정하면 시장은 그렇게 움직였다. 그만큼 모건의 힘은 막강했다. 다수 국민이 공황과 전쟁으로 고통 받는 과정에서 나날이 통제 불능의 거대공룡이 되어 가던 제이피모건 상사는 사회의 공적이 되었다. 잭 모건 회장은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여러 차례 괴한의 습격을 받았고 제이피모건 사옥에는 사제 폭탄이 투척될 정도로, 복합재벌인 제이피모건 상사에 대한 국민의 증오는 정점에 달했다. 국민의 분노가 빗발치자 정치권이 나섰다. 제이피모건 상사를 방치했다가는 체제 위기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정부와 의회는 먼저 1933년에 글래스와 스티걸 의원이 공동 발의한 금융독점방지법인 ‘글래스-스티걸법’이라는 칸막이법을 제정해, 은행과 증권업이 서로 상대방의 영역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겸업을 금지시켰다. 동시에 이미 겸업을 하고 있던 기존의 금융기관들을 강제 분리시켰다. 글래스-스티걸법은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이 되어 버린 제이피모건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글래스-스티걸법도 모건제국의 팽창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거대 재벌, 미국을 양분하다: 어느 정도 공황이 가라앉은 1930년대 중반 모건그룹 산하 기업체 수는 총 440개였으며, 자산총액은 776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미국 상장기업 200개사의 자산총액 가운데 40퍼센트에 가까운 엄청난 액수였다. 한편 록펠러 가(家)는 스탠더드오일, 체이스내셔널은행 등 287개로 자본금이 449억 달러에 달했다. 이렇게 미국의 전 산업이 두 가문 손에 양분되어 있었는데 이는 거대 유대계 자본이 뒤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불어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이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는 추정이다. 미국 신대륙에서는 자본주의 태동과 거의 동시에 재벌이 탄생한 것이다.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산업과 금융에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거대 자본을 축적한 유대인 자본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재력을 바탕으로 정계의 막후 실력자가 되었다. 미국은 1870년부터 불과 60년 만에 요술처럼 세계 제1의 초강대국 기반을 구축했다. 결국 오늘날 미국 경제의 뿌리가 한 세대 만에 유대계 자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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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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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창의성의 비밀
유대인 창의성의 비밀 홍익희 지음 행성:B잎새 / 2013년 10월 / 328쪽 / 17,000원 ▣ 저자 홍익희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1978년 KOTRA에 입사했다. 이후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 뉴욕, 파나마, 멕시코, 경남무역관을 …
유대인 창의성의 비밀 홍익희 지음 행성:B잎새 / 2013년 10월 / 328쪽 / 17,000원 ▣ 저자 홍익희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1978년 KOTRA에 입사했다. 이후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 뉴욕, 파나마, 멕시코, 경남무역관을 거쳐 밀라노 무역관장을 끝으로 2010년 정년퇴직했다. 32년간의 KOTRA 재직 시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살면서 유대인을 눈여겨볼 기회를 가졌던 그는 무엇이 그들을 우수하게 만들었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에서부터 현대의 월스트리트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의 궤적을 경제사적 관점으로 꿰뚫게 되었다. 그 결과물로 책 10권 분량의 ‘유대인 경제사’ 시리즈를 완성하였으며, 그 축약본이 바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유대인 이야기』이다. 최근에는 유대인 경제사와 한민족 경제사 등을 전자책으로 출간하며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경제의 절묘한 시나리오』, 『21세기 금융위기의 진실』, 『유대인, 그들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유대인 이야기』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매년 10월이 되면 노벨상 수상자 발표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올해도 역시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휩쓸었다. 미국 내 유대인 매체 《주이시 저널》은 올해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6명이 유대인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2%에 이른다. 노벨상 수상자 5명 가운데 1명은 유대인이라는 얘기다. 이쯤에서 우리는 유대인의 창의성과 그 탁월한 저력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올해 초 펴낸 『유대인 이야기』가 경제사적 관점에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부의 역사를 창조해왔는지 살펴본 과거의 이야기였다면, 이 책 『유대인 창의성의 비밀』은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유대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3의 물결』을 쓴 앨빈 토플러와 함께 미래학을 창시한 짐 데이토는 이미 오래전에 창조경제를 예견했다. 그는 “세계 경제는 제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다시 지식경제에서 창조경제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정보화 사회 다음엔 ‘꿈의 사회(Dream Society)’가 해일처럼 밀려올 것이라고 했다. ‘꿈의 사회’는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 모든 산업이 문화 산업화되는 사회를 뜻한다. 경제의 주력 엔진이 정보에서 이미지와 스토리로 넘어가고, 상상력과 창조성이 핵심 국가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성장동력이 혁신에서 창의성으로, 가치의 원천이 지식과 정보에서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보화 사회 다음에 다가올 제4의 물결, ‘꿈의 사회’다.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창조경제는 창의력이 생명이다. 창의력은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자 남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요,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는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정성 어린 교육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대인의 창의성은 ‘독서 문화, 질문과 토론 문화, 융합과 통섭 문화, 수평 문화’를 통해 키워졌다. 유대인 창의성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교육 문화부터 알아야 한다. 또한 창의성이란 개인의 우수성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스템ㆍ융합ㆍ통섭 속에서 나올 확률이 더 크다. 한 사람의 우수성도 중요하지만 시스템 속에서 서로 의견을 내어 토론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생각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창의력이다. 이 책은 이러한 창의성의 근원을 세계 서비스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유대인을 통해서 찾아보았다. 서비스 산업 곳곳에 유대인들의 창의성이 번뜩이고 있다. 먼저 그들이 주도하는 산업별로 창의성의 실제적인 사례와 실체를 살펴보고 그 창의성의 원천이 어디로부터, 어떻게 기인하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교육 문화와 가정 문화를 들여다보았다. 또 고난의 역사 속에서 단련된 유대인의 공동체의식과 단결력이 발휘하는 힘을 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어떻게 창조경제 강국이 되었는지 그 역사적 전개 과정을 추적했다. ▣ 차례 프롤로그_ 꿈의 사회를 지배하는 유대인의 창의성 Chapter 1 창의성 위에 꽃핀 성공 신화 1. IT 산업에 실용성과 감성을 입히다 2. 상상력과 창의성의 결정체, 영화 산업 3. 백화점 유통업, 창의성으로 진화하다 4. 관광 산업, 창의성의 중요성을 웅변하다 5. 일당백의 유대인 Chapter 2 그들의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1. 유대교의 두 기둥, 배움과 가정 2.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3. ‘베스트’가 아닌 ‘유니크’를 지향한다 4. 가정이 가장 중요한 성소이자 배움의 장이다 5. 《탈무드》 교육법, 질문과 토론 Chapter 3 유대인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1. 지난했던 유대인의 고난의 역사 2. 유대 민족을 이끄는 공동체의식 3. 학문을 숭상하는 민족성 Chapter 4 이스라엘과 창조경제 1. 이스라엘 하이테크의 역사 2. 4차 중동전쟁이 불러온 하이테크 산업 3. 본격적인 창조경제의 비상 4. 창조경제의 바탕이 된 유대인의 상상력 5. 이제는 융합과 통섭의 시대 에필로그_ 창조경제를 위한 제언 유대인 창의성의 비밀 홍익희 지음 행성:B잎새 / 2013년 10월 / 328쪽 / 17,000원 Chapter 1 창의성 위에 꽃핀 성공 신화 IT 산업에 실용성과 감성을 입히다 구글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글이 세상에 나올 당시 검색엔진 시장은 포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전 세계 검색엔진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상보다 딱 반보만 앞서 나갔기 때문이다. 세상은 성큼성큼 앞서 나가는 천재들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시장은 딱 반보 앞에서 대중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며 대중을 이끌어주는 자를 반긴다. 무지갯빛 뜬구름보다는 ‘실용성’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 무렵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검색엔진들에 사람들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검색을 하면 불필요한 쓰레기 정보까지 무더기로 뱉어내는 통에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로 검색할 때마다 골머리를 앓던 래리 페이지는 고객이 검색하는 정보를 중요한 순서대로 검색창에 뜨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이 바로 구글의 시작이었다. 래리 페이지는 정보의 중요도, 즉 가중치에 착안하여 사람들이 링크를 걸어 인용하거나 공유하는 정보일수록 쓸모 있는 정보라고 판단했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다행히 유대인 동료 세르게이 브린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천재적인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페이지랭크’ 기술이다. 그들은 이 유용한 검색엔진을 사줄 포털 업체를 찾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기껏 만들어놓았는데 사장될 위기에 봉착하자, 둘은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회사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창업의 길로 내몰린 것이다. 그들이 검색 시장에 진출했을 때는 야후, 알타비스타, 라이코스, 익사이트 등 너무 많은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창의성을 갖춘 이들의 검색엔진은 결국 시장을 평정했다. 이런 래리 페이지의 성공 뒤에는 부모의 영향도 컸다. 아버지는 미시간 주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이고, 어머니는 같은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강사였다. 부모 덕에 그는 이미 다섯 살 때부터 메모리 용량이 32킬로바이트인 ‘엑시디 소러스’란 컴퓨터를 가지고 놀았다.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래리 페이지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컴퓨터와 친해질 수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발명가를 꿈꿨고, 그의 아버지는 틈날 때마다 아들을 미국 전역으로 데리고 다니며 로보틱스 콘퍼런스를 보여주었다. 래리 페이지는 어릴 적 그런 경험들이 더 많은 가능성을 꿈꾸게 했다고 회고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꿈을 찾아준 셈이다. 유대인 없이 IT 역사를 쓸 수 없다: 이 밖에도 실제 정보 통신 관련 업계의 대표 주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대인이다. 오랜 기간 월트디즈니를 이끌었던 마이클 아이스너, 2001년에 야후의 최고경영자가 된 영화계의 거물 테리 시멜, 한때 미국 최고 연봉 경영자였던 로투스디벨로퍼사의 미첼 케어퍼, 2000년 브로드캐스트닷컴을 팔아 남긴 수십억 달러로 프로농구 구단을 인수한 마크 큐반도 유대인이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던 BEE멀티미디어 창업주 버버트 베커는 텔레비전이 인터넷으로 생방송되도록 만드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네트워킹의 거함 노르텔네트워크스의 존 로스, 오랫동안 컴팩의 최고경영자였던 벤자민 로젠, 시스토시스템스의 창업자인 샌디 레너, 전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현 옐프 창업자 막스 레브친 등도 모두 IT 업계를 이끄는 유대인들이다. 창업국가 이스라엘뿐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주도 세력들도 모두 유대인이다. 이제는 유대인 없이 IT 세상을 논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상상력과 창의성의 결정체, 영화 산업 미국 영화계를 주름잡는 유대인들: 찰리 채플린을 비롯하여 수없이 많은 유대인 배우와 감독, 제작자들이 있지만 현존하는 영화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스티븐 스필버그일 것이다. 스필버그는 영화 <죠스>로 세인의 뇌리에 강하게 어필하며 그의 이름을 알렸다.
, <인디아나 존스> 등 스필버그의 초기 SF, 어드벤처 영화는 현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원형으로 꼽힌다. 그의 영화는 50여 년 동안 수많은 주제와 장르를 넘나들었다. 그러면서도 흥행 또한 놓치지 않았다. 그는
로 7억 9,000만 달러의 흥행에 성공해 세계 1위를 기록한 뒤 <쥬라기 공원>의 9억 1,000만 달러로 자신의 기록을 깼다. 그는 첫 작품 <죠스>로도 1위를 차지했었으니 세계 1위의 흥행 기록을 세 번이나 깬 유일한 감독이다. 게다가 작품성까지 놓치지 않아 1993년 <쉰들러 리스트>와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해 우디 앨런, 올리버 스톤, 스탠리 큐브릭, 로만 폴란스키, 배리 레빈슨, 시드니 폴락, 밀로스 포만, 마이크 니콜스, 벤 스틸러 등이 모두 유대인 감독들이다. 제작자와 감독뿐 아니라 헐리우드에는 많은 유대인 배우들이 있다. 유대인 제작자와 감독들이 같은 값이면 유대인 배우들을 쓰기 때문이다. 여배우들 중에는 험프리 보가트의 아내 로렌 바콜, 아카데미에 최다 후보로 오른 기록을 갖고 있는 명배우 메릴 스트립, 가수 겸 배우이자 제작자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그녀의 첫 남편이었던 <오션스 일레븐>의 엘리어트 굴드 역시 유대인)가 잘 알려진 유대인이다. <로즈>의 베트 미들러, <애정의 조건>의 데보라 윙어,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기네스 펠트로, <가위손>의 위노나 라이더, <어벤져스>의 스칼렛 요한슨도 유대인이다. <레옹>과 <블랙 스완>의 여주인공인 나탈리 포트만 역시 유대인으로 하버드대 심리학과 출신의 재원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라 제시카 파커와 그녀의 남편인 매튜 브로데릭 역시 유대인이다. 남자배우로는 게리 그란트를 비롯, 폴 뉴먼, 피터 포크, 율 브린너가 있다. 율 브린너는 몽골에서 태어난 몽골계 유대인이다. 마이클 더글라스와 그의 부친인 커크 더글러스, <트루 라이즈>의 제이미 리 커티스와 그의 부친인 토니 커티스는 대를 잇는 유대인 배우들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로 유명한 해리슨 포드, <졸업>의 더스틴 호프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빌리 크리스탈, <아이언 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벤 스틸러,
의 데이비드 듀코브니, <간디>와 <쉰들러 리스트>의 벤 킹슬리,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인공 다니엘 래드클리프, 감독 겸 배우인 멜 브룩스 외에도 숀 펜, 스티븐 시걸, 아담 샌들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영화인들이 모두 유대인이다. 할리우드에서 유대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는 세계인의 문화생활과 의식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인들의 정신을 ‘생산’해내는 할리우드는 유대인 인맥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제작자, 감독 등의 60% 이상이 유대인이라고 하니, 배역, 자금 조달, 시나리오 판매 등 모든 면에서 유대인의 입김 없이는 일을 따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탄탄한 유대인 인맥이 있어야 한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 유대인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할리우드는 처음부터 유대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금도 할리우드의 구석구석 그들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렇다면 영화 산업에서 유대인들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영화 산업이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지닌 유대인에게 딱 알맞은 분야이자 돈이 되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인들은 강한 협동심과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협업과 분업에 강하다. 영화야말로 협업과 분업이 필요한 산업이다. 유대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감독, 배우, 작곡가, 배급자, 극장주로서 실력을 쌓고 이 신종 ‘종합예술’을 진두지휘하였다. 유대인의 전형적인 특기를 발휘하여 영화 산업 전체의 프로세스를 장악하며 지금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것이다. Chapter 2 그들의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유대교의 두 기둥, 배움과 가정 평생 공부하는 유대인: 유대인들은 가르친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예배라고 믿는다. 가르친다는 것은 하느님을 존경(예배)하는 것이요, 또한 공부하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최고의 기도라고 본다. 그러므로 회당의 예배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모여 《토라》를 공부하는 일이다. 사람은 일생 동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유대교의 기본적인 믿음이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배우기를 중단하면 그 순간에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을 잊게 된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평생 배움을 통하여 신앙을 키우고 있다. 이것이 학자인 랍비가 가장 존경받는 이유이다. 유대인은 ‘모든 진리는 하느님에게서 나온다’고 믿는다. 진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단지 발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유대인들은 모든 과학 기술도 하느님이 창조한 세상과 생명의 원리를 인간이 이해하여 모방한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자연히 유대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섭리를 하나라도 더 이해하기 위한 배움으로 이끈다. 유대교는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을 본받아 지음을 받았기에 인간 내면에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고 가르친다. 《성경》을 보면 하느님이 인간을 빚은 뒤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장면이 나온다. 유대인은 이 생기가 바로 하느님의 영혼이라고 믿는다. 한 명 한 명 만들 때마다 하느님은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었고, 그 영혼이 인간의 몸 안에서 살다가 죽으면 다시 하느님에게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유대인의 사고에 따르면 결국 실존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 안에 깃든 하느님의 영혼이다. 유대교는 가정 중심의 종교: 유대인들의 삶 하나하나는 놀랄 정도로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생활 곳곳에 종교가 생활화되어 있다. 아침 식사는 가족과 함께하며 주로 《탈무드》에 관해 이야기한다. 식사를 끝내면 기도하고 각자 일터로 나간다. 오후에는 해 지기 전까지 5분 정도 기도를 하고 저녁때는 학원에 가서 《탈무드》를 공부하기도 한다. 《탈무드》 연구는 시간 할당이 문제가 아니라 하루 일과 가운데 꼭 한 번은 해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유대인의 식사 시간, 특히 저녁 식사 시간은 온 가족이 하느님을 나누어 가지는 예배와 축제의 의미가 담겨 있는 귀한 시간이다. 저녁 시간의 축복 기도 주제는 하느님에 대한 감사이다. 먹고 마심을 허락하고 이것들을 공급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얻었던 삶의 승리와 하느님의 지혜를 나누며 기쁨의 시간을 보낸다. 유대인들은 모든 삶의 성취가 기도에 있다고 어려서부터 가르친다. 기도 속에서 삶의 신비인 하느님과 교제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여 반성함으로써 새 출발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꿈과 환상이 이루어지는 신비한 힘이 기도에 있다고 믿는다. 3,000여 년 전 조상의 전통과 율법을 붙잡고 지금도 그것을 목숨처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유대인들을 만든 기본이자 그들의 종교다. 유대교는 종교적 축일도 항상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에는 누룩이 들어 있는 빵을 먹지 않고, 선조들이 황야에서 먹었던 딱딱한 빵과 여섯 가지 음식을 먹으면서 조상들의 고생을 반추한다. 특히 누룩은 부풀어 오르는 교만의 위험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자부심이 이기심으로 변질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누룩이 든 빵을 먹지 않는다. 그들은 옛날의 어려움을 잊지 않으려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다. 유대인의 속담에 “망각은 포로 상태로 이어진다. 그러나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라는 말이 있다. 유대인은 과거 고난의 역사가 현재의 스승이며 미래의 거울이므로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은 미래 또한 없다고 믿는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외지에서 핍박받으면서 항상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그들의 지친 마음을 쉬게 하고 삶의 의욕을 다시 북돋워주었던 곳이 가정이다. 유대인들에게 가정은 현실 세계에서 평화를 누리는 유일한 곳이자 마지막 보루이며, 이들은 평화를 하느님이 주시는 복 가운데서도 으뜸 가치로 여긴다. ‘베스트’가 아닌 ‘유니크’를 지향한다 아이의 재능과 개성에 주목하는 유대인: 유대인을 지칭하는 ‘헤브라이’는 ‘강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혼자서 다른 편에 서다’라는 의미도 있다. 즉, 그들은 아이에게 ‘남보다 뛰어나라’는 요구를 하지 않는 대신 ‘남과 다른 사람이 되라’고 주문한다. 유대인은 자녀들을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해지고, 더 많이 배우고, 더 성공시키기 위해서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자녀들에게 하느님의 선민답게 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획일적인 방식이 아닌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대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라고 가르친다. 유대인 자녀는 경쟁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느님이 자신에게 준 재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산다. 때문에 유대인 부모는 학교 공부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을 교육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형제자매끼리도 머리나 능력을 비교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장점 곧 ‘개성’을 키워주려고 애쓴다. 유대인 격언에 “형제의 머리를 비교하면 양쪽을 다 죽이지만, 개성을 비교하면 양쪽을 다 살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개성을 중시하는 유대인의 교육관을 잘 보여준다. 유대인 부모들은 ‘싫으면 하지 말고 하려면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친다. 정규 학교에서 퇴학 당한 에디슨과 아인슈타인도 이런 풍토 아래에서 세계적인 과학자로 클 수 있었다. 이것이 유대인 교육의 요체이다. 자녀의 재능을 찾아 키워주는 것이 진정한 영재 교육이다. 모든 아이들은 충분한 재능과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Chapter 3 유대인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지난했던 유대인의 고난의 역사 이교도 사이에서 살아남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유대인의 고난은 이교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투쟁의 역사였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에 의해 히브리 왕국이 멸망당했다. 유대 민족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50년간 노예 생활을 경험한다. 이른바 바빌론 유수기이다. 그 뒤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점령하면서 팔레스타인 귀환이 허용됐다. 그러나 일부만 돌아가고 많은 사람이 바빌론에 눌러앉아 살면서 2,500년 방랑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정복당하고 끌려다니고 헤어지는 등 온갖 수난을 당하면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민족과 신앙을 잃지 않고 지켜냈다. 강대한 정복국가들은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피압박 민족인 유대인들은 오랜 유랑과 노예생활, 전쟁과 학살과 추방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이다. 유대 민족을 이끄는 공동체의식 고난의 역사가 공동체의식을 키우다: 이러한 고난에 대한 역사의식은 은연중에 아이들 교육에도 적용된다. 유대인 자녀 교육의 특징 중 하나가 ‘사브라’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유대인들은 자녀를 선인장 꽃의 열매인 ‘사브라’라고 부른다. 선인장은 사막의 어떤 악조건에서도 살아남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강인함과 억척스러움이 있다. 사랑하는 자녀를 ‘사브라’라고 부를 때마다 부모는 자녀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심어주는 셈이다. “너는 사브라다. 우리 조상의 인생은 선인장과 같았다. 사막에서 뿌리내려, 비 한 방울 오지 않고 땡볕이 쬐는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아침에 맺히는 이슬 몇 방울 빨아들이며 기어코 살아남았다. 그러니 너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냐. 너라는 열매를 맺기까지 조상들은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냈다. 너는 사브라다. 선인장 열매다. 그러니 너도 끝까지 살아남거라. 그리하여 또 다른 열매를 맺어라. 그 열매가 맺어지거든 그를 ‘사브라’라고 불러주어라.” 아기 때부터 ‘사브라’ 소리를 매일 듣고 자라는 유대인 아이들은 강한 생존 본능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다. 실패해도 3번까지 재도전할 수 있는 창업 기회를 제공: 유대인은 사업이 성공하면 먼저 가족이나 친척을 참여시키고 번창하면 동족들을 불러 모은다. 그래서 유대인은 대부분 가족이나 친척이 일군 사업에 참여하는 게 오랜 관습이다. 하지만 본인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경우에도 가족이나 친척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 설사 주변의 재정적 지원이 없더라도 유대인 사회의 무이자 대부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유대인 기업가들은 모임을 만들고 단체를 조직해 다른 유대인을 돕기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기금을 조성한다.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이나, 실패해서 다시 재기하려는 사람에게 자금 조달은 지극히 절실한 문제이다. 그런 면에서 사업 자금을 무이자로 대부하는 제도가 역사적으로 유대인 사회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매우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제도는 그들 율법이 명하는 바에 따른 것이다. 율법에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주어야 한다는 말씀과 동족에게는 이자를 취할 수 없다는 말씀이 있다. 이 전통은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유대인의 성공은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이것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성공한 유대인들은 기부금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보통 1만 달러에서 50만 달러 정도를 내고, 5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기부하는 사람도 흔하다. 모금 단체를 비롯하여 각종 커뮤니티 조직만 해도 미국에 200개가 넘는다. 유대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도 큰 자산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무이자 대부 협회도 실패한 창업자에게 3번까지 기회를 준다. 특히 유대인들은 실패를 경험할수록 성공에 가까워진다는 ‘후츠파(Chutzpah; 히브리어로 ‘뻔뻔스러움, 철면피’ 등을 의미)’ 정신이 투철하다. 창업이 활성화될 수 있는 이유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경우는 벤처 투자를 위한 투자 펀드도 크게 발달되어 있다. 인구 780만 명에 불과한 이스라엘이지만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기업은 64개나 된다. 이스라엘에서는 청년들이 매년 500개 이상의 새로운 벤처기업을 만든다. 이스라엘 경제가 활력으로 가득 찬 이유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기업은 겨우 9개뿐이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환경도 기실 유대인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는 이스라엘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유대인 단체는 무이자로 유대인들에게 사업 자금을 빌려주는데 그 회수율이 80%가 훨씬 넘는다고 한다. 물론 그 자금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이자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또다시 기부한다. 그래서 기금이 점점 불어나고 있다. 이렇듯 유대인들은 그들 스스로 수직적, 수평적 생태계를 꾸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Chapter 4 이스라엘과 창조경제 이스라엘 하이테크의 역사 건국 30년 전에 대학을 먼저 세우다: 유대인들의 교육에 대한 집념은 놀라울 정도다. 1917년 11월 영국의 벨포어 선언이 나오자마자 유대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예루살렘에 대학을 세운 일이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무려 30년 전의 일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8 년에 전쟁의 폐허가 된 황량한 예루살렘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히브리 대학을 세운 것이다. 유대인들은 대학이 먼저 만들어져야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고, 그래야 국가도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히브리 대학을 세움으로써 그들의 국가 건설 의지를 만천하에 공표하였다. 히브리 대학은 세계 각국의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가 건설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준 시오니즘 운동의 강렬한 불씨가 되었다. 1923년부터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 등이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아인슈타인은 이곳에서 최초로 모국어인 히브리어로 강의하였다. 이후 1925년 캠퍼스가 완공되자 화학, 미생물학, 유대 민족을 연구하는 3개 연구 기관으로 정식 개교했다. 히브리 국립대학은 1949년 의과대학과 법과대학, 1952년 농업연구소를 설립한 뒤 4곳에 캠퍼스를 두고 아인슈타인을 포함해 노벨상 수상자 8명과 총리 4명을 배출한 명문 대학으로 성장하였다. 이스라엘 대학들은 연구 개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일찌감치 보유 기술의 상업화에 적극 뛰어들었다. 히브리 대학은 1964년 기술전수센터인 ‘이숨(Yissum; 실행, 응용)’을 설립했고, 최근에는 바이오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대학 내의 창업 지원 기구가 활성화된 덕에 대학 소속 창업 기업들이 해당 업종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숨을 통해 히브리 대학 소속 바이오 기업 80개사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이스라엘 내에서만 700개에 달한다. 이로 인해 1년에 히브리 대학이 거둬들이는 특허 수수료만 수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인이 즐겨 먹는 방울토마토의 지식재산권도 이숨이 소유하고 있다. 이 기술로만 연간 10억 달러를 번다. 최근 인기를 얻은 자동차 전ㆍ후방 감시 시스템 ‘모바일 아이(mobile eye)’ 역시 이숨이 상용화한 아이템이다. 이숨은 현재 지식재산권 7,000여 개와 발명 특허 2,000여 건을 보유하고 있다. 이숨의 특징은 혁신에 확실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점이다. 기술을 상업화해 매출이 발생하면 대학은 가장 먼저 로열티의 40%는 개발자에게 주고, 40%는 학교, 나머지 20%는 연구ㆍ개발(R&D) 자금으로 쓴다. 이스라엘의 바이오 기업들이 세계 최고 수준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구조를 통해 대학 내 바이오 기업들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제공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전체 근로자 1만 명 중 145명이 과학자나 기술자들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미국은 1만 명 중 84명, 일본은 70명, 독일은 60명 수준이다. 이스라엘의 실리콘밸리, 하이파: 아인슈타인은 1924년 이스라엘의 북부 항구 도시인 하이파에 테크니온 공대 설립을 주도해 초대 총장을 맡았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에는 다국적 하이테크 기업들도 앞다투어 테크니온 공대가 있는 하이파에 진출했다. 테크니온 공대의 우수한 두뇌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실리콘밸리의 스탠포드 대학과 같은 역할을 테크니온 공대가 이스라엘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1964년 이스라엘에 가장 먼저 진출한 모토로라 이스라엘 그룹은 미국 외의 지역으로는 하이파에 가장 큰 디자인센터를 두고 연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IBM은 1972년 하이파에 R&D센터를 세웠다. 1974년에는 인텔이 하이파에 R&D센터를 세워 펜티엄칩을 디자인하는 성과를 얻었다. 현재 인텔은 여기에서 차세대 제품을 개발 중이다. 이 밖에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HP도 1990년대 들어 경쟁적으로 하이파에 R&D센터를 설립했다. 이스라엘이 1990년대 후반 세계 기술 시장에 혜성과 같이 출현하게 된 이면에는 테크니온 공대가 있었다. 테크니온 공대의 연구 활동은 실용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무리 새로운 기술이라도 응용이 안 되면 가치가 없다는 게 이들의 철학이다. 1927년 이래 테크니온 공대가 배출한 5만여 명의 졸업생들은 이스라엘 하이테크를 주도해왔다. 이스라엘 하이테크 분야 창업자와 관리자 중 70% 이상이 이곳 출신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현재도 학생의 80~90%가 창업에 도전하고 있으며, 컴퓨터공학과 소속 50여 명의 교수들 중 절반이 자신의 회사를 갖고 있거나 기업의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4차 중동전쟁이 불러온 하이테크 산업 군이 IT 산업의 선구자가 되다: 4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군은 지상군과 전차가 이제는 크게 쓸모없음을 깨닫고, 컴퓨터로 제어되는 첨단 무기 개발에 주력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필수였으므로 군의 핵심 조직을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로 배치하고, 이를 위한 인재양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동시에 은밀히 핵무기 개발을 서두른다.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군은 앞장서서 자국의 컴퓨터 산업 인력 양성을 하게 된다. 그 출발점이 ‘맘람’이었다. 맘람은 이스라엘군 중앙 컴퓨터 처리 부대를 지칭하는 히브리어이다. 이 조직은 군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하부 조직으로 분산되어 나갔다. 맘람 출신들은 산업계의 핵심적인 위치에서 이스라엘 하이테크 선구자들로 활약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정보 부대인 ‘시모네 마타임’ 출신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이스라엘 통신 기술 시장과 인터넷 보안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에 해당하는 정보 부대 시모네 마타임은 히브리어로 숫자 ‘8-200’을 일컫는다. 그래서 8200부대라고도 한다. 1959년 연구ㆍ기술 개발을 담당한 부대로 출발한 이 전자 부대는 이스라엘 하이테크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하이테크에 관심 있는 외국 투자가나 사업자들 사이에서 시모네 마타임의 명성은 자자하다. 통신ㆍ보안ㆍ암호ㆍ데이터 처리 등의 분야에서 신기술 개발자가 투자가를 찾을 때 자신의 경력에 시모네 마타임 출신자임을 더할 경우 특별한 관심을 끌 수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군대가 수천 개나 되는 하이테크 벤처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3년간의 혹독한 자기계발 기회와 하부 권한 이양을 통해 수많은 병사들이 이미 자기 또래의 세계인들보다 몇 배나 많은 경험과 책임을 완수한 검증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스스로 판단해야 할 영역이 너무 많아서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설적으로 이스라엘 군인들은 표준화된 규격을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와 책임이 없다. 스스로 알아서 실험하고 거기에서 답을 얻도록 훈련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벤처는 이 같은 토양 위에서 수많은 창업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 본격적인 창조경제의 비상 벤처 인큐베이터 프로그램: 소련이 몰락한 후 구소련에서만도 한 해 수십만 명의 유대인들이 대거 이스라엘로 귀환했다. 1990~1999년에는 105만 명의 이민자가 주로 소련에서 왔다. 세기말에는 이스라엘 인구가 630만 명을 넘었고, 그중 78%는 유대인, 22%는 팔레스타인인이었다. 구소련으로부터 온 이민자들은 유대인 인구의 5분의 1에 달했다. 그중엔 뛰어난 과학자와 고급 엔지니어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이스라엘 정부의 시급한 과제였다. 그래서 그들은 과학자들이 러시아에서처럼 연구ㆍ개발하여 신기술을 상업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를 마련했다. 그중 하나가 1991년 도입된 ‘TI(Technical Incubator)’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이주 과학자들은 이스라엘에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정부가 심사를 통과한 연구 프로젝트에 대해 2년 동안 총 20여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또 연구실과 행정 지원도 제공해 상업적 가치가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제품 개발 및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요즈마 펀드의 대성공: 이스라엘 신생 벤처는 내수 시장 규모가 작아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전략을 써야 했다. 하지만 벤처는 수익 모델이 취약해 초기부터 글로벌화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1992년 ‘요즈마 펀드’라는 정부 벤처 펀드에 사활을 걸었다. ‘요즈마’는 히브리어로 ‘창의ㆍ창업’을 뜻한다. 요즈마 펀드는 이스라엘 정부가 1억 달러를 들여 처음 조성했는데, 이 가운데 8,000만 달러는 10개 민간 벤처 캐피탈에 자금을 대주는 펀드로, 나머지 2,000만 달러는 정부가 직접 투자하는 벤처 펀드로 사용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낮은 조달 금리, 파격적인 로열티 지급 등 과감한 인센티브로 글로벌 자금과 기업을 유치했다. 특히 미국 유대계 기업 및 자본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벤처들은 해외 자금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경영, 마케팅 노하우까지 전수받아 급성장한 사례가 많다. 요즈마 펀드는 기업에 투자할 때 별도의 상환 조건 대신 투자 대상 기업이 기술 상용화에 성공하게 되면 그 수익으로 투자금을 회수한다. 반대로 실패할 경우는 소유 지분의 가치 하락으로 손실을 보게 된다. 즉 지분 참여 방식으로, 자금이 지원되어 해당 기업이 성공할 경우 보유 지분 매각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해당 기업이 도산할 경우에는 투자 자금의 회수가 불가능하다. 본래 요즈마 펀드와 같은 공적 벤처 캐피탈의 설립 목적은 국제 투자자 유치를 통한 하이테크 사업의 성장 촉진과 벤처 산업의 활성화다. 곧 벤처 캐피탈 산업의 활성화로 벤처 산업의 발전에 필요한 자본 시장이 자연적으로 형성되게 하여, 창업 기업의 자금 조달에 도움을 주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우선적으로 해외의 전략적 파트너를 물색하고 그 기업들의 이스라엘 내 지사 설치를 유도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산업 진흥의 최적화를 위한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먼저 창출하였다. 요즈마가 영업을 착수한 지 4년 만에 이스라엘 내 벤처 캐피탈 규모는 8억 달러로 늘어났고 200개 이상의 신생 벤처 기업들이 자금을 지원받았다. 이스라엘 정부는 그들의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외국 투자사들의 투자가 잇따르자, 1997년 3월 요즈마 펀드를 민영화하는 발 빠른 대응력을 보였다. 요즈마 펀드를 통해 투자금을 끌어들인 이스라엘 정부의 벤처 캐피탈 산업 육성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성공적인 예로 평가받고 있다. 창조경제의 바탕이 된 유대인의 상상력 이미지로 사고하는 아인슈타인의 놀라운 업적: 아버지가 전기 사업에 종사했던 아인슈타인은 일찍부터 수많은 전기 기구들에 둘러싸여 살았다. 이러한 환경은 다른 과학자들이 모호한 수학 속에 파묻혀 헤매는 동안, 물리 법칙들을 단순한 이미지처럼 선명하게 꿰뚫어보고 직관을 일깨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특성, 곧 모든 것을 물리적 그림으로 바꿔 보는 능력은 물리학자로서 아인슈타인이 가진 위대한 장점들 가운데 하나이다. 언어를 통해 사고를 하면 하나하나 순서대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논리적이다. 하지만 생각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이미지로 사고하는 사람은 사고가 매우 빠르다. 거의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사고를 하기 때문에 직관력이 발달하고 창의적이다. 훗날 그는 상대성 이론을 착안해내는 데 걸린 시간이 불과 10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는 많은 수학 공식을 노트에 써가며 증명을 통해 발견해냈다기보다 그냥 그의 직관력으로 머릿속에서 떠올린 것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이론을 수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수학 실력이 모자랐기 때문에 많은 수학자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을 통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자신의 외부에 있는 광대한 지식과 연결시켰다. 그의 업적은 상상력을 통해 제한된 지식, 교육, 경험, 기술 등의 한계를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 것이다. 그의 유명한 상대성 이론은 ‘E=mc2’란 간단한 공식으로 요약된다. E는 에너지, M은 질량(물질), C는 빛의 속도다.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눈에 보이는 세상의 물질은 같은 개념이라는 뜻이며, 에너지는 물질로, 물질은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발견이다. 에너지와 물질은 서로 돌고 도는 것이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이 과학으로 증명해냈다. 물질 속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다. 그 크기는 물질의 질량에 광속의 제곱을 곱한 것과 같다. 물질 1킬로그램 안에는 자그마치 1,000억 개의 솥을 끓일 수 있는 에너지가 들어 있다. 이 정도의 에너지라면 도시 하나를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다. 이처럼 ‘물질은 에너지다’라는 개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그의 E=mc2 공식에서 나온 발명품이 바로 원자폭탄과 원자력이다. 또 아인슈타인의 상상력 덕에 우리는 우주를 개척하고 인공위성을 통한 여러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있다. 이처럼 상상력의 힘은 놀라운 결과를 초래했다.
15
J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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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우울증
고마워, 우울증 미야지마 겐야 지음 비타북스 / 2014년 3월 / 200쪽 / 13,000원 ▣ 저자 미야지마 겐야 약을 처방하지 않는 정신과 의사, 유시마 시미즈자카 클리닉 원장. 1973년 가나가와 현 출생. 보에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순환기내…
고마워, 우울증 미야지마 겐야 지음 비타북스 / 2014년 3월 / 200쪽 / 13,000원 ▣ 저자 미야지마 겐야 약을 처방하지 않는 정신과 의사, 유시마 시미즈자카 클리닉 원장. 1973년 가나가와 현 출생. 보에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순환기내과에서 연수 의사 생활을 하던 중 과로로 한 달간 휴직하게 된다. 근무할 의욕이 나지 않아 정신과 진료를 받았으며 이때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며 7년에 걸쳐 약물 치료를 받아도 우울증이 개선되지 않자 다양한 책을 읽고 스스로 사고방식과 식생활을 바꿔 우울증을 치유하는 ‘멘탈테라피’를 고안하였다. 현재는 약을 처방하지 않는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가 스스로 증상을 파악하고,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사고방식과 인간관계, 식생활 등을 점검하여 혼자 힘으로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강연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국제 멘탈테라피스트 협회의 전무이사로서 멘탈테라피스트의 육성 및 지원에도 힘을 쏟고 있다. 주요 저서로 『자신의 ‘우울증’을 고친 정신과 의사의 방법』, 『약을 쓰지 않고 고친 우울증, 미야지마 선생님의 멘탈테라피』, 공저로 『아보 도오루 면역학 증상별 실천법 입문』 등이 있다. ▣ 역자 민경욱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8년부터 일본문화포털 ‘일본으로 가는 길’을 운영했고, 현재는 블로그 ‘분카무라(www.tojapan.co.kr)’에서 일본 대중문화 소식을 전달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종신검시관』, 『하늘을 나는 타이어』, 『SOS 원숭이』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저는 7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연수 의사로 근무하던 시절, 고된 업무 때문에 몸과 마음 모두 쉴 틈이 없었던 저는 거의 매일 수면부족인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컨디션이 나빠졌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즈음 의사시험에 합격하여 전공할 과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결국 ‘내 우울증을 고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정신과를 선택했습니다. 주치의에게 약을 처방받아 계속 먹었는데도 제 증상은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할 뿐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저도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했지만 그들도 낫지 않고 그저 나은 것처럼 보이다가 우울증이 재발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무슨 일이 생기면 기어이 자신을 탓합니다. 혹은 ‘나는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자신을 더욱 괴롭히는 사고방식입니다. 약으로 고칠 수도 없습니다. 내가 나쁜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나쁜지 범인 찾기는 그만둡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사고방식을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사고방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저는 일상적인 습관에 착안했습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특별히 생각하지 않아도, 잠재의식 수준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습관’입니다. 역으로 습관을 바꿈으로써 잠재의식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사고방식도 바뀝니다. 그렇게 우울증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7년간의 고통 끝에 찾아낸 우울증 치료법 ‘멘탈테라피’를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습관의 수준으로 재구성해 정리한 것입니다. 현재 저는 약을 사용하지 않는 정신과 의사로 많은 환자들의 회복을 도우며 저 스스로도 행복을 얻고 있습니다. ▣ 차례 프롤로그 chapter 1. 7년간 고통에 몸부림치며 깨달은 것 ‘인간을 진찰하는 의사’를 꿈꾸다 / “너, 괜찮니?” 우울증 진단을 받다 / 불안은 더 큰 불안을 부르고 스스로를 고치지 못하면, 환자도 고치지 못한다 우울증은 약으로는 고칠 수 없어! 우연히 찾아온 전환점 /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 chapter 2. 우울증을 부르는 생각의 습관을 바꾸자 의사에 대한 커다란 오해 / 우울증 진단의 우스운 현실 성실하고 사려 깊고 우울한 / 몸이 보내는 경고 “쉬어도 괜찮아.” /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하고 싶지 않은데 열심히 하는 건 아닌가? 우울증을 유발하는 잠재의식 /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라 chapter 3. 인간관계를 심플하게 하는 습관 습관 1.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습관 2. 관계에서는 ‘좋다/나쁘다’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습관 3. 상대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습관 4. 자신을 우선순위에 둔다 습관 5. 의무나 책임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chapter 4. 자신과 미래를 바꾸는 습관 습관 6. 말을 바꾸는 것만으로 나를 바꿀 수 있다 습관 7.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한다 습관 8. 잘할 수 있는 일을 써본다 습관 9. 다른 사람의 말과 가치관에서 벗어난다 습관 10. 미룰 수 있는 일은 미룬다 chapter 5. 마음과 몸을 만족시키는 습관 습관 11. 지금의 사고방식과 인간관계를 다시 살피고 고친다 습관 12. 몸의 독, 마음의 독을 다스린다 습관 13.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습관 14. 컨디션이 좋아지는 식습관을 찾는다 습관 15. 기분이 좋아질 만큼 몸을 움직인다 chapter 6. 잠재의식과 사이좋게 지내는 습관 습관 16. 우울할 때의 생각을 짧게 적어본다 습관 17. 인생 시나리오를 만들어 연상한다 습관 18. 과거의 기억을 클리닝한다 습관 19. 멍하니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습관 20.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안고 있는 것은 버린다 우울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20가지 습관 / 에필로그 고마워, 우울증 미야지마 겐야 지음 비타북스 / 2014년 3월 / 200쪽 / 13,000원 우울증을 부르는 생각의 습관을 바꾸자 우울증 진단의 우스운 현실 대체로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증상을 듣고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 기준인 DSM-IV에 따라 병명을 진단합니다. 증상에는 ‘식욕이 없다’, ‘잠들지 못한다’, ‘체중이 감소한다’, ‘집중력이 낮아진다’, ‘두통이 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등이 있고, 이 중 5가지 정도에 해당되면 우울증으로 진단합니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 약을 처방합니다. 만약 당신이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싶으면 지금 열거한 증상을 정신과 의사에게 말해보세요. 틀림없이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질 겁니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이 현재 우울증 진단의 현주소입니다. 실제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우울증 진단을 받고 싶어 하는 걸까요? 그 점을 생각해봅시다. 일, 부부관계, 자녀양육 등 마주치는 일들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잘 하는데 왜 나는 못 할까?’라고 고민하다가 의사나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면 두통이나 초조함, 두근거림, 현기증, 불면증, 만성피로처럼 검사를 해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을 계속 안고 있자니 불안해져서 병명을 정해 안심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요. 성실하고 사려 깊고 우울한 일반적으로 ‘성실한 사람이 우울증에 걸린다’고 합니다. 또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람은 우울한 상태가 된 것에 대해서도 자신을 탓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점만 보고 부정적인 것만을 생각합니다. 즉,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람은 성실하고 사려 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부정으로 이어져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생각하고 맙니다. 제 경우 우울증에 걸린 연수 의사 시절, ‘저것에서 손을 뗄 수 없어’, ‘이것도 적당히 해선 안 돼’ 하고 모든 부분에 완벽을 기하다가 그게 불가능하자 불안해졌던 것입니다. 저도 분명 성실한 부분이 있었기에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실한 탓에 적당히, 즉 알맞을 때 손을 뗄 수 없습니다. 사실 ‘성실한 사람’이란 말은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융통성이 없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융통성이 없는 사고방식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괴로울 때는 적당히 손을 빼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런 발상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훨씬 편안해집니다. “쉬어도 괜찮아.”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젊은 회사원이 있다고 칩시다. 상사는 그런 그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네는 일이 너무 늦어. 뭘 시켜도 안 되는군”이라고 비난해버립니다. 또한 거래처에서도 “전 담당자가 좋았다”는 불평이 이어진다고 합시다. 이런 상태에서 젊은 회사원이 계속 열심히 일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삶의 방식을 부정당했다고 생각한 그는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피폐해져 우울증에 걸리겠죠. 몸이 보내는 경고 사인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지금의 생활방식이나 업무방식은 나에게 괜찮은 것일까? 너무 열심히 사는 게 아닐까? 그렇게 자신에게 묻고 자신을 바꿔 보세요. 여기서 경고 사인의 예를 몇 가지 들어보죠. 정신적인 증상으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체력이 떨어져 기운이 없다’, ‘집중력이 떨어져 일이나 공부를 계속할 수 없다’, ‘이유도 없이 불안하다’,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하다’ 등이 있습니다. 신체적인 증상으로는 ‘밤에 잠들기가 힘들다’,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다’, ‘두통이 있다’, ‘어깨가 결린다’, ‘미열이 난다’, ‘쉽게 피곤해진다’ 등이 있습니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평소보다 자신을 잘 돌보고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드는 사고방식으로 바꾸길 권합니다. 마음과 몸이 모두 피곤할 때는 평소보다 더 많이 쉬어야 합니다. 그러면 회복됩니다. 그때는 쉬는 자신을 절대 탓하지 마세요. 그래서는 기껏 쉬어도 증상만 악화될 뿐입니다. “쉬어도 괜찮아”라고 쉬는 자신에게 말해주세요. 인간관계를 심플하게 하는 습관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의 대다수는 인간관계나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직접적인 고민의 원인이 됩니다. 살다 보면 인간관계에 실패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습니다. 집단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인간관계로 원치 않게 괴로워지는 일이 많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요? 기대가 크면 마찰이 생긴다: 세상에는 자기 의견이나 생각을 주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 의견을 상대에게 인정하게 하고 끝까지 관철시키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다양한 마찰이 생깁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죠. 제 환자 중에는 늘 의견이 부딪히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평소 아내인 D씨는 하루에 몇 시간씩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도 가사를 대부분 담당했습니다. D씨는 주말이면 집에서 빈둥대는 남편 E씨에게 자연히 불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남편인 E씨는 생각했습니다. ‘평일은 회사에서 일하느라 피곤하니까 주말쯤은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고.’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 달랐기에 D씨가 아무리 불만을 쏟아내도 E씨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E씨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참다 보니 어느새 D씨는 우울증 상태가 되었습니다. 행복의 지름길은 나에게서 찾는다: D씨가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상대는 그대로 두고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부부 사이라고 해도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고 사고방식을 바꾸려는 것은 힘듭니다. 바로 그 점을 받아들이면 아주 편안해집니다. 즉 ‘상대는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관계에 불만을 느꼈을 때 상대를 바꾸는 게 아니라 나를 바꾸자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나를 바꾸면 불만이 기쁨으로 바뀌면서 멋진 변화가 일어납니다. 상대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당신이 변하면 상대는 바뀔지도 모른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관계를 바꾸고자 한다면 내가 변해야 합니다. 당신이 바뀌면 상대가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신이 바뀌어 가는 데 이끌려 상대도 바뀌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물론 상대가 그대로인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바뀌느냐 아니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가 달라짐으로써 내가 즐거워질 뿐 상대의 변화는 기대하지 않는 겁니다. 상대가 변하길 바란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기대의 표현입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는 내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조하고 낙담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훈육이 아이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상대에게 거는 기대가 특별히 도드라지는 경우가 바로 부모와 자식 관계입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가치관을 대물림하기에 가족 내의 정서는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제 경우, 우울증은 부모와의 관계가 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괴로움을 느낄 때 우울증이 발생하며, 부모가 심어준 과도한 기대에 자신이 부합하지 못할 경우에도 우울증이 발생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런 말로 혼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는 이렇게 간단한 것도 못 하니? 꾸물대지 말고 빨리 해!’ 부모는 훈육할 생각으로 아이를 질책하고 독려한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매일 능력을 부정당하는 말만 들으면 아이는 점점 스스로를 믿을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이런 부모의 사고방식은 아이의 사고방식이 되어 부정적인 상황에 이를 때마다 자신을 꾸짖고 비하하는 내면의 목소리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힘에 의한 의사소통을 계속하면 서로 괴로울 뿐입니다. 상대가 바뀌길 기대하기보다 내 사고방식을 바꾸는 편이 훨씬 의사소통이 쉬워집니다. 그렇게 당신이 먼저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꾸면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가 당신을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우선 당신 자신이 행복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스스로를 바꾸는 것부터 시도해보세요. 자신을 우선순위에 둔다 인간관계는 상대를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사랑함으로써 평온해집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대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무조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존중할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상대의 행복을 도울 수도 없습니다.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람은 자신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족한 나’ 혹은 ‘무능한 나’를 쓸모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인간은 자신을 아주 사랑하는 법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유능한가 아닌가?’라는 세상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기 시작하면 무능한 나는 싫어집니다. 어떠한 자신도 인정한다: 제 어머니는 공부를 잘하는 아들은 인정했지만 공부를 못하는 아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공부를 못하면 나는 가치가 없다’라는 의식이 제 안에 박혀버렸습니다. 또 공부를 하지 않을 때나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을 때의 자신에 대해서도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되어서도 의사로서 잘 해낼 자신이 없었고, 그런 자신을 인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무능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고방식이 큰 원인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미 박힌 생각을 없앨 수 있을까요?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고민의 주어는 무엇인가: 우울증으로 10년 동안 고생했던 주부 F씨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치료의 일환으로 그녀에게 고민거리를 적게 하고, 적어낸 고민 중에 주어가 내가 아닌 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니까 모두 지우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OO해주지 않는다’, ‘남편이 OO해주지 않는다’ 식의 고민은 주어가 아이나 남편이므로 모두 지우게 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녀가 적어낸 고민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고민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 주어였던 것입니다. 그런 고민은 내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상대는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만 괴로울 뿐입니다. 이런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바뀔지 말지는 상대를 믿고 맡겨보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우선 내가 편안해집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나면 상대도 성장하기 시작하겠죠. 내가 주어가 아닌 고민은 부디 버리시길 바랍니다. 자신과 미래를 바꾸는 습관 말을 바꾸는 것만으로 나를 바꿀 수 있다 괴롭다고 느낄 때 당신은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까?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사고방식에 빠져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괴롭다고 느낄 때 행복은 저만치 달아납니다. 부정적인 말은 그만!: 사고방식을 바꾸면 인생은 확실히 바뀝니다. 사고방식을 바꾸는 첫걸음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긍정적인 말을 자신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걸어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말에는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생각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말버릇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안 되겠다”, “불가능해”, “알아줄 리가 없어” 같은 부정적인 말들을 들여다봅시다. 이런 말들이 버릇이 되면 무슨 일을 해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잠재의식에 점점 박혀 버립니다. 설령 지금은 부정적인 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일지라도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도록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요. “무리야.” / “큰일이다.” ☞ “기회를 즐기자.” / “크게 변할 수 있는 기회야.” “안 되겠어.” ☞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우울증에 걸리는 해석: 사고방식과 비슷한 것으로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의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해석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다 다릅니다. 그리고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는 해석’을 선택합니다. 이를테면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했다고 합시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받아들입니다. ‘가족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일자리를 어디서 구하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생각이 갈 때까지 가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편 구조조정을 긍정적, 전향적,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로써 싫은 상사에게서 해방되었구나’, ‘내게 맞지 않은 일이었는데 종지부를 찍었다. 앞으로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라고 말입니다. 같은 일이라도 해석에 따라 이를 대하는 감정이 크게 바뀝니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마음은 무거워지고 우울해집니다. 긍정적인 해석을 택하면 의욕이 생겨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내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여기서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죠. ‘작심삼일’이라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작심삼일이라 계속하질 못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한번 하기로 한 것은 중간에 던져버려선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면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 특히 이런 경우는 그만두겠다고 결단했을 때가 중요합니다. 그때 ‘나는 작심삼일이라 꾸준히 하지 못해’라고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기꺼이 그만두는 겁니다. ‘이 일은 내게 맞지 않네. 그럼 다음에는 뭘 시작해볼까?’ 하면 됩니다. 사실 작심삼일이라는 것은 멋진 선택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니까요. 원래 인생의 궤도는 늘 수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 미래를 바꾸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늘 편안합니다. 다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압력을 가하지는 마세요.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야 맙니다. 그러면 오히려 힘들어집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에게 다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 마음이 편해질 정도로 긍정적이면 되는 겁니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써본다 우울증은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다시 돌아보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리고 우울증 증상은 ‘괴로운 사고방식을 고치고 싶다’는 자신의 본심이 보내는 애정의 메시지입니다. 저는 진료 때마다 환자에게 바로 이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삶의 방식을 바꿀 기회: 환자 중에는 우울증에 걸린 것을 말도 안 되는 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탓하며 악순환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우울증은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을 바꿀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우울증이 왔을 때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두 가지 처방을 소개합니다. 처방 1 진짜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을 찾아라 - 우울증은 억지로 고치려고 하면 고칠 수 없습니다. 그보다 ‘왜 내가 우울증에 걸렸나?’를 생각하고 그 원인을 만들어내는 자신의 사고방식을 알아내야 제대로 고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나 즐거운 일을 찾아내 매일의 생활에서 조금씩 기쁨을 느껴봅니다. 즐거운 일이 늘어나면 몸은 구태여 우울 증상을 드러내 당신에게 ‘조금만 더 쉬어’라는 경고 사인을 보낼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울 증상도 사라집니다. 처방 2 감점주의가 아니라 가점주의로 바꿔라 - 우울한 환자 특유의 사고방식 중 하나는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이나 실패한 일, 혹은 다른 사람보다 못하는 일 등 자신의 단점만 기억한다는 겁니다. 이른바 감점주의입니다. 그런가 하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부족하다. 좀 더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만족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나는 잘했다’고 칭찬하는 습관도 없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끝없는 자기부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나 단점에 시선을 돌리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이나 장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중요합니다. 시험 삼아 당신이 잘하는 것, 장점이라 생각하는 것을 써보세요.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다 썼으면 혼자 있는 시간이나 스스로 위축된다고 느낄 때 머릿속에 떠올려보세요. 자신에 대해 새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믿고 인정해준다: 진료를 하다 보면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서 섭섭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기대감은 강한데 충족이 안 되니까 마음이 괴로운 겁니다. 그 상대는 누구일까요? 자신이 인정받고자 하는 궁극적인 대상은 부모님일 확률이 높습니다. 유년기에 부모에게서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갈구하는 마음이 강해지게 됩니다. 실제로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을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인정하는 데는 앞서 소개했듯이 당신이 잘하는 일과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써보는 방법이 유용합니다. 쓴 내용을 보면 스스로도 의외의 발견을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은 갓난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을 떠올려보세요. 당신 또한 갓난아이일 때는 그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그런 자신을 믿고 인정해주면 어떨까요?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지금이 즐겁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현재가 즐거우니까 미래도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기분이 훨씬 좋아집니다. 미룰 수 있는 일은 미룬다 예전에 저는 우울증 환자에게 “중요한 결정은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서양의학의 정신과 의료와 심리학에서는 일반적인 처방입니다. 저도 정신과 선배 의사에게 그렇게 배웠습니다. 우울증 상태일 때는 매사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비관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중대한 결단은 내리지 않고 보류하는 편이 낫다는 겁니다. 그러나 저는 오랜 우울증 경험과 우울증 환자를 치료한 경험을 토대로 깨달았습니다. 우울증은 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 계기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퇴직이나 이혼 결단을 내린 다음에 우울증의 원인이 해소되어 마음이 편안해지고 증상에서 회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행복한 시간을 만들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 관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정리하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보내는 시간은 무척 길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받아들이고서 ‘역시 이 일은 맡지 않았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일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까요? 어차피 할 거라면 열중해서 시간을 잊을 만큼 즐겁게 일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쁘다’는 감정이 이어지는 것이 행복을 느끼는 시간 관리의 포인트입니다. 결정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현대사회는 해야만 하는 일이 계속해서 밀려오고, 사람들은 항상 시간에 쫓겨 모두 피곤하고 지친 것처럼 보입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자신이 주위 상황에 휘둘리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바꿔보세요. 이리저리 밀려오는 상황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상태와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밀려오는 일들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는지, 나아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오늘은 집에 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친구가 나와서 놀자고 권합니다.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나요? 제 생각에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저는 어떤 선택을 하든 기쁨을 느끼기를 권합니다. 나가고 싶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나가거나, 집에 있으면서도 나가지 않은 자신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자신이 조우한 사건에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할지 정답은 없습니다. 그때마다의 즐거움을 따르세요.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스로의 기쁨을 따른다면 그 기쁨이 상대에게도 쉽게 전해질 것입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조절하려고 할 때 괴로워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조절하려 하기보다 솔직해지기를 권합니다. 다음의 처방을 참고로 하세요. - 뒤로 미룰 수 있는 일은 뒤로 미룬다. -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다. -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마음과 몸을 만족시키는 습관 지금의 사고방식과 인간관계를 다시 살피고 고친다 정신과에서는 뇌생리학 이론에 따라 우울증과 자율신경실조증은 뇌의 기능부전에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즉 뇌에는 감정이나 감각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이들의 변화가 마음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우울증 약을 먹는 이유: 뇌 안의 감정과 감각에 관여하는 주요 신경에는 흥분계 신경세포, 억제계 신경세포, 그리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조정계 신경세포가 있습니다. 각각의 신경세포에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있습니다. 흥분계 신경전달물질로는 노르아드레날린, 도파민, 아세틸콜린, 글루타민산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골고루 분비되면 ‘기분이 좋다’, ‘힘이 난다’, ‘의욕이 난다’라는 상태가 됩니다. 반대로 이들 물질이 부족하면 패기가 사라지고 기분이 가라앉게 됩니다. 억제계 신경세포에서는 가바(감마아미노낙산) 등의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됩니다. 가바는 뇌가 흥분했을 때 브레이크 역할을 담당해 흥분계 신경의 균형을 바로잡습니다. 조정계 신경세포에서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의 부족이 우울증을 일으킨다고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무너지면 감정이나 움직임에 변화가 일어나 초조해지거나 벌컥 화를 내기도 하고, 의욕이 없어지거나 불안에 사로잡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울증 치료약은 이들 뇌 내 물질의 생리학에서 개발되어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맞추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약을 억지로 끊을 필요는 없다: 현재 정신과 의사 사이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무너지면 우울증이 생긴다는 이론이 주류입니다. 저는 그전에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무너져 우울증이 생긴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클리닉의 환자들은 다른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고 항우울제를 몇 년 동안 복용했지만 우울증을 고칠 수 없었기 때문에 약을 사용하지 않는 저를 찾아오신 분들입니다. 물론 환자 중에는 항우울제를 계속 복용하면서 오시는 분도 있는데, 이런 분들에게 저는 “바로 약을 끊으세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약을 무조건 중단하는 것보다는 환자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증상보다 원인에 주목하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몸에 나타나는 증상을 즉각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증상을 어떻게든 빨리 없애려고 합니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나면 해열제를 복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몸이 스스로를 치료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현대 의학은 그런 증상을 해열제나 지사제로 멈추려고 합니다. 이래서는 몸이 애써 스스로를 고치려고 하는데 그 노력을 중단시켜버리는 셈입니다. 우울증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면 사고방식과 인간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여봅시다. 그리고 우울증의 원인이 되고 있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고방식이나 인간관계를 찾아봅시다. 원인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바꾸면 당신의 마음은 점점 즐거워지고, 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우울증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우울증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방법입니다. 컨디션이 좋아지는 식습관을 찾는다 동양의학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식사요법에는 ‘마음의 병은 몸으로 고친다’는 발상이 있습니다. 의식동원(의료와 음식은 뿌리가 같다, 즉 모든 병은 음식으로 고칠 수 있다는 뜻)이라는 말도 그중 하나입니다. 우울증도 마찬가지여서 ‘몸부터 고친다’는 발상이 중요합니다. 그 기본이 식사입니다. 저 또한 사고방식을 바꾸고 건강한 식생활을 실천하여 우울증을 극복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미국에서 고안된 내추럴 하이진이라는 식사요법을 스스로 실천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식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소개하겠습니다. 참고로 내추럴 하이진에서는 ‘건강을 위해 필요한 조건을 몸에게 주고, 상처를 입힐 만한 것을 주지 않음으로써 몸 안팎의 환경을 청결하게 유지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것을 고려해 저는 ‘하루에 과일은 4종류, 식물성 식품(채소 포함)은 9종류를 섭취하고 현미를 먹는다’라는 식생활을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저는 아침으로 3, 4종류의 과일을 먹습니다. 단, 양이 적당해야 합니다. 점심과 저녁은 과일과 채소, 현미밥을 먹습니다. 먼저 과일을 먹고 30분쯤 뒤에 채소와 현미밥을 먹는 순서입니다. 채소는 오이, 피망, 브로콜리, 양배추, 토마토, 당근 등을 날로 먹습니다. 식사요법은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울증을 고치려면 이런 식생활을 꼭 해야만 한다고 받아들이지는 마세요. 사실 제 식생활은 평범한 식단에 비해서 극단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식사요법이 있으므로 시험 삼아 여러 가지를 해보다가 나에게 잘 맞고 컨디션이 좋아진다고 느끼는 것을 계속하면 됩니다. 식생활을 정비하는 것 외에도 저는 치료의 일환으로 충분한 물 마시기를 권합니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필요한 물의 양은 자기 몸무게의 1/30 정도라고 합니다. 몸무게가 45kg이라면 하루에 1.5L, 60kg이라면 2L가 필요합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기준입니다. 내 몸에 맞으면 충분합니다. 내 몸이 좋아지는 정도의 물을 마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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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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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신의 힘
혼신의 힘 최석영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4년 2월 / 384쪽 / 16,000원 ▣ 저자 최석영 서울에서 태어났다. 공부보다 록음악과 소설책에 빠져 고교 시절을 보냈다. 고교 시절 일본어를 전공한 것을 계기로 일본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
혼신의 힘 최석영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4년 2월 / 384쪽 / 16,000원 ▣ 저자 최석영 서울에서 태어났다. 공부보다 록음악과 소설책에 빠져 고교 시절을 보냈다. 고교 시절 일본어를 전공한 것을 계기로 일본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했고, 군 제대 후 일본으로 건너가 간토 지역의 한 국립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후 10년간 일본에서 지냈다. 생활 뮤지컬 극단과 IT기업에서 일하며 일본 사회의 뒷모습을 체득하는 기회를 얻었다. 신문, 블로그 등에 글을 쓰기 시작, 딴지일보 일본 특파원, 포털 사이트 다음 베스트블로거 기자, 티스토리 베스트블로거 등으로 활동하며 연간 블로그 방문자 600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김치 애국주의』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2013년 12월 26일, 아베 신조 일본 수상은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방문했다. 또 전쟁 포기를 규정한 평화 헌법을 개정해서 자위대를 방위군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한국,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일본의 우경화 조짐에 중국 당국은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지린(吉林)성 기록보관소가 찾아낸 일제 종군위안부, 731부대 관련 문서 등을 잇달아 공개하며 일제의 만행을 들추는 폭로전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잠잠하다 싶으면 반복되는 일본의 반성 없는 행동에 한일 관계는 온탕과 냉탕을 매번 왔다 갔다 한다. 한류라는 문화의 난류가 대한해협을 건너 두 나라 사이를 진정시키면, 정치적 긴장이라는 한파가 다시 둘 사이를 갈라놓는 식이다. 이런 식의 일관성 없는 관계는 양국의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이 매번 허물어지게 한다. 문화에 의해서 돈독해지고 정치에 의해서 소원해지기를 반복하는 한일 관계의 틀을 깨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이고도 더 본격적으로 ‘그들’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 방법 중에 가장 효과적이고도 쉬운 방법이 ‘지금까지 몰랐던 과거와 현재의 일본 인물’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현대 일본 인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등장인물들을 각각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일본 속의 한국인’, ‘기존 일본 사회의 시스템에 도전한 반항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 일본 사회의 개성파’, ‘현대 일본을 만든 거인’ 등으로 분류하여 총 16명의 풍운아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에 수록된 인물을 통해 신문이나 TV에서 보여주는 일본의 모습이 아닌, 지금껏 몰랐던 그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 차례 머리말 1부 일본 속의 한국인들, 그 파란만장한 삶 최영의 - 허망한 바람의 파이터 정건영 - 현해탄에 떨어진 이카로스 김일 - 언론에 의해 항일가가 된 영웅 한창우 - 그만이 할 수 있는 한류 2부 굴종하지 않는 반항아로 한 시대를 살다 이시이 고키 -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우국의 폭탄 사나이 오치아이 히로미쓰 - 조직 사회 일본의 고고한 개인주의자 이시와라 간지 - 만주국의 이단아, 이상 국가를 꿈꾸다 기타오지 로산진 - 세상사에 서툴렀던 맛의 달인 3부 개성파다운 사고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 안도 다다오 - 고독과 싸우며 스스로를 세운 건축가 쑹원저우 - 경제 대국 일본의 상식을 뒤엎은 화상 미즈키 시게루 - 요괴들과 함께한 신기한 인생 다하라 소이치로 - 일본 TV 토론의 권력자 4부 현대 일본을 만든 거인들의 명과 암 세지마 류조 - 난세의 군인, 재계의 정점에 서다 와타나베 쓰네오 - 일본의 미디어 제왕 사사카와 료이치 - 반공 우익과 기부 천사의 두 얼굴 다오카 가즈오 - 쇼와의 라스트 갓파더 주 혼신의 힘 최석영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4년 2월 / 384쪽 / 16,000원 일본 속의 한국인들, 그 파란만장한 삶 한창우 - 그만이 할 수 있는 한류 삼천포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나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재일 교포 출신 실업가라고 하면 소프트뱅크의 손 마사요시(한국명 손정의), 롯데 그룹의 시게미쓰 다케오(한국명 신격호), 마루한의 한창우를 꼽을 수 있다. 파친코 체인점 마루한의 오너인 한창우는 포브스가 선정한 일본의 10대 부자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일본의 10대 부자 중 타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외국인 출신은 그가 유일하다. 그는 1930년 삼천포에서 소작농 집안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고, 해방이 되면서 일본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형의 권유에 따라 일본행을 결심한다. 머리도 좋고 성적도 우수하지만, 한국에 있어 봤자 하고 싶은 것도 못하니 일본에 가는 것이 낫다는 강력한 권유에 한창우의 마음이 움직였다. 재일 조선인에 대한 오해: 1947년 10월 혼자서 밀항선을 타고 무사히 일본에 도착한 한창우는 곧장 친척이 있는 이바라키 현 이시오카로 갔다. 시골 마을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공부를 가르치는 것으로 돈을 벌던 그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1948년 도쿄의 호세이 대학에 들어간다. 한창우는 형과 매부의 경제적 지원으로 비교적 돈 걱정을 하지 않으며 학교에 다녔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생활은 아니어서 양배추와 된장을 주식으로 삼고 살았다. 망해가던 파친코로 시작한 첫 사업: 1953년 호세이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했고, 한국전쟁 때문에 고국에 돌아갈 수도 없었던 한창우는 누나와 매부를 찾아간다. 매부는 미네야마라는 작은 항구 마을에서 파친코 매장을 하고 있었는데, 최신 설비를 갖춘 다른 매장에 손님을 뺏겨 슬슬 매장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매부의 파친코 일을 돕던 한창우는 매장을 매각하려는 매부를 설득해 가게를 물려받는다. 돈을 벌어서 후일 갚겠다는 막연한 조건이었다. 경험이 적었기에 초기에는 적자의 연속이었지만, 한국전쟁 특수로 일본이 빠른 속도로 경제를 회복하자 한창우의 가게도 착실히 성장했다. 4년 후인 1957년, 가게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이번에는 커피숍을 열었다. 클래식 음악을 전문적으로 틀어주는 커피숍 ‘루체’는 우동 한 그릇에 20엔 하던 시절, 커피를 60엔에 파는 고급 가게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 후 그는 한 일본 여성에게 반했고, 곧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와 결혼을 하고, 신혼 생활과 가게 운영으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낸다. 파친코도 커피숍도 꾸준히 성장했고, 종업원도 계속 늘어났다. 그러면서 점차 사업가로서의 감각과 능력을 갖추게 됐다. 그는 신용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지불해야 할 돈은 날짜를 꼭 지키고, 지불할 돈을 받으러 오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서 돈을 건넸다. 그렇게 신용을 쌓으며 차곡차곡 자금을 모은 한창우는 미네야마에 최신식 호화 레스토랑을 짓기로 마음먹는다. 2층부터 옥상까지 커피숍, 레스토랑, 중화요리 전문점, 비어가든으로 꾸민, 지방 도시에서는 볼 수 없던 복합 공간이었다. 이 레스토랑은 크게 성공해서 미네야마의 명물이 되었고, 성공한 젊은 사업가로서 그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유행의 무서움, 볼링 사업의 실패: 37세의 한창우는 1967년에 새로운 사업에 도전한다. 그것은 당시 조금씩 일본에 침투하기 시작했던 볼링이었다. 이전부터 레저와 오락 산업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던 한창우는 볼링이야말로 오락 산업에 딱 들어맞는 스포츠라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사업체의 몸집이 급격히 불어나자 관리를 하기 위해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비약하기를 원하던 그는 이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볼링 사업 확장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1972년 한창우는 시즈오카에 120레인짜리 초대형 볼링장을 열었다. 전례가 없는 매머드급 볼링장이었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던 볼링 사업은 이 볼링장과 함께 추락을 맞이한다. 오픈 직후에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으나, 해가 바뀌면서 손님이 조금씩 줄어드는가 싶더니, 5월이 지나면서 볼링장을 찾는 사람들이 격감했다. 한창우가 운영하는 볼링장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볼링 붐이 한풀 꺾이자 전국의 볼링장이 갑작스런 불황을 맞은 것이다. 그 시기 한창우는 결정적 위기를 맞았다. 1975년 당시 60억 엔, 요즘 물가로 치면 1,000억 엔에 가까운 빚을 지게 된 것이다. 한창우는 빚을 갚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채권자들 앞에 인감과 모든 도장을 내놓으며 ‘미안하지만 빚을 상환할 수 없다. 이것을 가지고 맘대로 하시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자포자기의 상황이었다. 그때 그에게 돈을 빌려준 한 회사의 임원으로부터 벼락같은 호통을 듣는다.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우리는 당신을 신용해서 돈을 빌려준 것인데……. 당신은 아직 마흔둘이요. 좀 더 노력을 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한창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자신을 믿고 돈을 빌려준 재일 조선인 사업가들과 금융회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이를 악물고 빚을 갚기로 한다. 재기의 길, 파친코 사업에 집중하다: 그가 확장했던 볼링장은 엄청난 빚을 졌지만, 두 개의 파친코 매장은 꾸준한 흑자를 내고 있었다. 결국 그는 놀리고 있던 볼링장 부지에 파친코 매장을 내기로 하는데, 이 선택이 후일 그의 재기를 가능하게 한다. 돈이 없었기에 가능한 한 돈을 들이지 않고 파친코 매장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화려한 조명이나 인테리어, 경품이 없어도 배당만 잘 터지면 손님이 많이 몰린다는 것에 주목하여, 배당률을 높이고 적극적 홍보를 펼쳐 대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그는 누구보다도 차별을 많이 겪었지만, 오히려 차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세계 어디든지 차별은 있다. 차별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교양과 견식(見識)을 가지고 그 사회에 공헌하는 길밖에는 없다”라며 일본 사회에 차별과 피해를 호소하는 재일 동포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는 재계의 거물이 된 뒤에도 일본과 한국의 자선사업에 힘써왔고, 세금 신고와 기부에서도 항상 모범이 되려고 노력했다. 일본 사회에 공헌하고 그들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야말로 재일 동포의 권리를 신장하고 인정을 받는 지름길이라는, 평소의 지론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계 일본인이 되자: 한창우는 2000년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취득한다. 그의 주장은 단순했다. 오랫동안 일본에서 살아왔고 가정과 사업을 비롯한 삶의 기반이 일본에 있기 때문에, 귀화를 해 일본 사회에 공헌하면서 선거, 피선거권 등의 권리를 구사하는 것이 재일 동포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민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과 정체성을 가지고 떳떳이 살자고 주장한다. 한국 이름 그대로 귀화를 하자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파친코 업계의 틀을 깬 발상 전환: 착실한 성장을 계속하던 마루한은 1990년부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레저, 골프 회사에서 서비스의 기본을 배운 그의 차남 한유가 마루한에 입사한 것이다. 차남은 아버지에게 새로운 시대에 맞춰 서비스도 개선을 해야 한다며 파친코 사업의 대대적인 변신을 주문했다. 기존의 파친코 매장은 구슬의 소음과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담배 연기로 가득한 어둡고 음침한 공간이었다. 이 분위기를 밝고 깨끗하게 바꾸어나가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무뚝뚝한 표정의 남자 점원들 대신 밝고 상냥한 표정의 젊은 여자 점원들을 고용했고, 친절한 응대와 서비스로 업계에 화제를 일으켰다. 마루한의 이러한 변신을 대변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거리 시부야 한복판에 건설한 ‘시부야 마루한 파친코 타워’다. 차남인 한유가 주도한 이 실험적인 프로젝트는 젊은이들에게 크게 호응을 얻었고, 사업에서도 멋지게 성공했다. 천황과 만나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황궁에 초대를 받아 일본을 공식 방문하는데, 이때 한창우도 재일한국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초대를 받는다. 어쩌면 이 자리는 그가 이제 마이너리티가 아니라, 천황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일본 사회의 주류로 발돋움했음을 확인한 계기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화려한 성공과 발자취는 놀라운 것임에도 한국 사회에서 그의 지명도나 평가는 손 마사요시나 신격호보다 높지 않다. 어쩌면 그것은 한창우의 쓴소리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는 재일 동포 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한국의 대통령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자주 해왔기 때문이다. 한창우는 귀화를 했다는 것 때문에 재일 동포 사회에서 비난을 받았지만, 손 마사요시나 시게미쓰 다케오 등 일본식 이름을 쓰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체성 문제만 본다면 일본식 이름으로 바꾼 손 마사요시나 신격호보다 한국식 이름 표기와 발음을 그대로 쓰는 한창우가 훨씬 떳떳한데도 말이다. 한창우는 국적만 일본일 뿐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지키면서 한국 출신이라는 것을 떳떳이 밝혔고, 일본 사회에서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외모나 춤이 아닌, 신뢰와 선행의 한국인상을 일본에 각인시킨 인물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한창우류, 즉 그만이 할 수 있는 한류(韓流)다. 굴종하지 않는 반항아로 한 시대를 살다 이시이 고키 -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우국의 폭탄 사나이 학생운동가에서 국회의원으로: 자신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국부(國富)를 좀먹는 세력을 근절하기 위해 싸운, 귀감이 될 만한 일본의 국회의원이 있다. 1960년대 학생운동의 최일선에서 리더로 활약하다가 국회에 진출,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다 ‘제거된’ 민주당의 국회의원 이시이 고키다. 1940년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시이는 1960년 주오 대학에 입학한 후 격변의 시대와 마주한다. 이때는 전후 일본을 크게 뒤흔든 ‘안보투쟁’이 정점에 오른 시기였다(안보투쟁은 국회의원, 노동자, 학생, 시민 및 일본 내 좌익 세력이 참여한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정부, 반미 운동이다). 1960년 6월 1일, 대학생이 중심이 된 시위대는 국회에 돌입하여 경찰들과 충돌 직전의 상황에 있었다. 그 자리에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버렸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역시 정치인이란 놈들은 다 이렇다”라고 기존 정치인들에게 실망했는데, 경찰 기동대가 강경 진압을 하려고 할 때 나타난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이 있었다. 진보개혁 성향의 사회당 의원 에다 사부로였다. 그는 흥분한 양쪽을 진정시키며 학생들을 지켜주려고 했다. 이시이는 여타 정치인과는 다른 에다에게 크게 감명 받고 정치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꾼다. 또한 에다 의원을 인간적으로 동경하여 후일 그와 인연을 맺는데, 이 만남이 이시이가 정치가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4ㆍ19에 고무된 일본 대학생들 / 귀국 후 사회당에서 일하며 정계 입문: 당시 일본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한국의 4ㆍ19였다. 이시이는 시위 현장에서 거친 활동을 펼치는 활동가 스타일이 아니라 조직의 관리와 기획ㆍ운영을 맡는 관리자 스타일이었는데, 자치회에서 활동하다가 후일 자치회 임원을 거쳐 서기장과 위원장을 맡으며 학생운동의 핵심 멤버로 떠오른다. 그 후 이시이는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 진학하는데, 그곳에서 유학의 기회를 얻어 모스크바 대학 대학원으로 갔고, 그곳에서 소련의 문제점이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관료들이 국가의 이익과 권력을 독점하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또 그것은 그가 후일 국회의원이 되어 일본의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계기가 된다. 학업을 마치고 1972년에 일본에 돌아온 이시이는 사회당 기관지 기자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그만두고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정치인인 에다 사부로의 아들이자 국회의원인 에다 사쓰키의 비서로 변신해 정계 활동을 시작한다. 1989년에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도쿄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했다가 낙선하지만, 1993년에 재도전, 첫 당선의 쾌거를 이룬다. 학창 시절부터 부패한 정치인과 권력에 비판적이던 그가 드디어 국정에 참가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일본을 망치는 고질병, 아마쿠다리: 2012년 총선거를 앞두고 일본의 각 정당이 내건 공약을 훑어보면 자주 눈에 보이는 단어가 있다. ‘아마쿠다리’라는 말이다. 너도나도 ‘아마쿠다리의 폐지’, ‘아마쿠다리 엄격한 제한’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보수, 진보를 떠나 이 공약을 공통적으로 내건 이유는 간단하다. 유권자, 즉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쿠다리란 하늘, 즉 위에서 내려온 것을 일컫는 말인데, 한국으로 치면 ‘낙하산 인사’가 비슷한 의미의 단어다. 아마쿠다리는 낙하산 인사 중에서도, 공기업이나 정부에서 주로 일감을 얻는 공단, 재단, 협회 등 정부 산하 단체에 은퇴한 고위 공무원이 재취업하는 것을 주로 말한다. 예를 들어 정부의 차관급, 국장급 등 중요한 직위에 있던 사람이 은퇴한 뒤,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단체에 이사나 감사 등으로 다시 들어가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을 말한다. 명목상 재취업이기는 하지만, 실제 일을 하기보다는 노인정에 나가듯 형식적으로 출근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그들이 누리는 혜택이 전부 국민의 세금이라는 데 있다. 정부와 지방 관청에서 은퇴하는 수많은 고위 공무원의 배를 불리기 위해 엄청난 국가 예산이 낭비되는데도 일본의 역대 정권은 그것을 일소하지 못했다. 이것은 이시이가 소련에서 보아왔던 문제점의 판박이나 다름없었다. 이시이는 아마쿠다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일 먼저 대표적인 ‘세금 먹는 하마’인 일본 전국의 지방 공항 조사에 착수한다. 일본에는 ‘농도공항’이라는 것이 있다. 1988년 유통의 합리화와 농업의 효율화를 위해 만든 법에 따라,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전국 여덟 곳에 지어진 미니 공항이다. 농산물을 항공편으로 운반하기 위한 공항이며 총공사비는 112억 8,000만 엔이다. 그렇다면 각 공항은 완성 후 얼마나 이용되었을까. 연간 이용 횟수가 가장 많은 후쿠시마의 이자카 공항이 37회, 홋카이도의 기타미 공항과 나카소라치 공항은 각각 17회와 14회로 목표를 한참 밑돌았다. 적자가 늘자 결국 지방 공항의 용도를 다목적 공항으로 변경했다. 이름은 그럴듯한 다목적 공항이었지만 실제로는 놀이 기구를 설치하거나 무선조종 모형 비행기 경기장으로 가끔 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었다. 국가를 지배하는 철의 연결 고리: 왜 이런 만화 같은 사업이 시행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세금을 눈먼 돈이라 생각하고 털어먹으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세력은 다름 아닌 정치가-관료-기업의 삼각 편대다. 그 구조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 그 안을 파고들면 상당히 복잡하다. 운수성과 건설성, 농산성은 공항 건설 계획을 세우고, 정치가들은 그 계획을 국회에서 통과시킨다. 사업이 확장되면 운수성, 건설성, 농산성은 공사 업체를 선정하는데, 대부분 각 성의 퇴직자들이 퇴직 후 설립하거나 낙하산 인사로 취업한 업체다. 그 업체들은 사업만 따올 뿐 실제 공사는 하청 업체에 전부 맡겨버린다. 간판만 건설 회사일 뿐 실제로는 일거리를 따오는 로비 단체인 것이다. 하청 업체의 선정 역시 공짜는 없다. 각 정부 기관의 퇴직자들을 임원으로 받아준 회사에만 일을 의뢰한다. 건설 업체들은 또한 이 사업 계획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정당과 정치가들에게 우회적이고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한다. 이렇게 보면 건설 업체들이 먹이사슬의 가장 하층에 있는 샌드백처럼 보이지만, 이들도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다. 퇴직 공무원과 정치인에게 제공한 헌금을 메우기 위해 공사 대금을 부풀려 정부에 청구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국민의 세금이다. 이시이는 저술과 국회 발언을 통해 끈질기게 비리를 추적하는가 하면, 정부 기관장을 소환해 관련 문제를 집중 추궁하면서 돈키호테처럼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갔다. 그만큼 국가의 문제에 열심이었다. 국회의 폭탄 사나이가 되다: 많은 국민은 관행과 부패와 싸우는 이시이에게 큰 기대를 걸었고 그는 별명을 얻었다. 바로 ‘국회의 폭탄 사나이’였다. 그것은 국회에서 파괴력이 큰 폭탄 발언을 거침없이 해온 이시이에게 붙은 하나의 훈장과도 같았다. 반대로 정부의 고위 관료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정체불명의 사단법인과 재단, 조합 등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누려온 관행을 고발하고 저지해온 이시이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운명의 2002년 10월 25일: 주변의 우려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부패 척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이시이는 2002년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는 말을 했다. 10월 24일 집에 돌아온 이시이는 부인에게 “이번 국회에서 일본 전체가 발칵 뒤집힐 만한 아주 중요한 내용을 폭로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나흘 뒤에는 국회에서 이시이의 공개 질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음 날 오후 이시이는 사흘 후로 예정된 공개 질문을 국회에 서면으로 제출하기 위해 서류 가방을 손에 들고 집을 나갔다. 그가 집을 나서자마자 “누구냐?”라는 말과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간 부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했다. 이시이가 칼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던 것이다. 이미 범인은 도주한 뒤로, 날카로운 칼로 심장 부분을 정확히 뚫어 절명시킨 전문가의 소행이었다. 현역 국회의원이 백주에 암살당한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튿날 경찰에 자수한 범인은 이시이의 선거구에 살고 있는 이토 하쿠스이였다.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 야먀구치구미 계열의 우익 단체에 소속된 그는 이시이의 선거 사무소에도 들른 적이 있는, 이시이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가 경찰에서 밝힌 범행 동기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여서 돈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냉랭하게 거절당했다.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범인의 진술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또 하나 주목을 받은 것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이시이의 가방이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언제나 들고 다니던 수첩도 사라져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하지만 경찰은 범인이 주장하는 범행 동기 말고는 아무것도 캐내지 못했고, 수사에서는 물론 재판에서도 사라진 서류나 범행의 모순점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유족과 지지자들은 배후를 밝혀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으나 결국 개인적 원한에 의한 우발적 살인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범인에 대한 판결은 이시이가 살해당한 지 3년 후인 2005년에야 확정되었다. 살인죄로 기소된 범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런데 2008년, 사건의 진상을 오랜 기간 집요하게 추적하던 TV아사히의 기자가 옥중에 있는 범인과 4년간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으며 설득한 끝에 놀랄 만한 진술을 받아냈다. 이시이를 살해한 것은 “부탁을 받아서 한 것”이라는 진술이었다. 범인은 기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사건은 정계의 물밑에서 움직이는 돈과 인맥이 관련된 것이다. (의뢰한 사람은) 내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 안에서 죽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다. 기자가 형무소에 찾아가서 “왜 재판에서 엉터리 진술을 했느냐”고 묻자, 범인은 “진실을 말하면 누가 (살해를) 부탁했는지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단순한 사적 원한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것까지는 진술을 얻어냈으나, 결국 배후를 알아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고 사건은 여전히 미궁 속에 남아 있다. 정치가가 테러를 당하는 이유: 그 배후가 야쿠자인지, 정치 세력인지, 관료 집단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 조사나 언론의 집중적인 추적이 있을 법한데도 조용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배후에 조금씩 다가가다가는 이시이와 같은 최후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시이 암살은 그 배후가 일본 사회에 보내는 하나의 메시지, 즉 경고문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시이처럼 국민을 위해 부패 정치인 퇴치에 앞장서는 것이야말로 진짜 나라 걱정을 하는 정치인이 아닐까. 두려움을 딛고 국가를 좀먹는 세력과 싸워줄 이시이와 같은 폭탄의 출현을 기다린다. 현대 일본을 만든 거인들의 명과 암 사사카와 료이치 - 반공 우익과 기부 천사의 두 얼굴 젊은 나이에 거둔 성공: 전후 일본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거물을 꼽으라면 절대 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사사카와 료이치 일본선박진흥회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우익에서 전범으로, 또 친미 반공으로, 그 후엔 자선사업가로 변신하면서 어떤 정치가나 재벌보다도 현대 일본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사사카와는 1899년 오사카에서 술을 제조하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환경은 좋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를 중학교에 진학시키지 않았다. 소학교 교장이 “이 아이는 더 학문을 배우면 사회주의자가 되어 국가에 반기를 들거나, 도시 생활에 물들어 타락한 인간이 될 것이다. 장래를 위해 가까운 곳에서 ‘덕(德)’을 쌓게 하는 편이 낫다”는 조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집에서 가까운 절에 보내 예절과 마음가짐을 배우게 했다. 그 후 그는 일본군에 지원해 항공 부대에 들어갔다. 원하던 부대에 배속되어 모범 군인으로 인정받으며 복무하던 그는 프로펠러를 돌리다가 어깨를 다쳐 어쩔 수 없이 제대하고, 23세의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친이 사망해서 거액의 재산을 물려받았는데, 이때만 해도 그는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부유한 젊은 상인’에 지나지 않아서, 부친이 물려준 술 제조업에만 힘을 쏟았다. 그러나 곧 시장 상황을 읽는 탁월한 감각으로 주식거래에서 크게 성공해 재산을 늘린다. 그 뒤 사사카와는 벌어들인 자금을 바탕으로 광산업에 진출해 재산을 더욱 늘렸고, 일본에서 손꼽히는 재력가가 되었다. 한편 그는 30대 초반이었던 1930년대부터 만주, 상하이, 동남아를 자가용 비행기로 돌며 군 위문 활동을 펼쳤는데, 군에 막대한 물자를 헌납한 게 큰 화제가 되어 ‘통 큰 남자’, ‘스케일이 다른 호걸’이라는 이미지가 평생 따라붙었다. 그 후 그는 정치 쪽으로 점점 손을 뻗었는데, 1932년 호전적이면서 우익 성향인 국수대중당을 만들어 총재 자리에 오른 것이 시발점이었다. 국제적 스케일의 자기과시: 1932년에는 만주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마지막 황제’ 푸이와 회견을 해서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이름을 알리는가 하면, 1939년에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유럽까지 날아가 무솔리니와 대담을 해서 국제적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그는 후일 국제 자선사업과 빈민 구제 사업 등에 대대적인 힘을 쏟는데, 이런 그의 행적에 대해 순수한 의도보다는 단지 개인적 명예욕과 자기과시 때문이라는 비판적인 의견도 있다. 한편 육군 항공부대 출신으로 비행기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남다른 사사카와는 무료로 비행사 양성 교육을 실시하는 국수의용비행대를 1932년 창립하고, 1934년에는 오사카에 비행장을 건설해 10여 대의 비행기와 함께 육군에 기부하는 등 통 큰 거물의 모습을 보여줬다. 재벌도 아닌 일개 오사카 상인 출신의 우익정당 총재가 보여주는 엄청난 단위의 기부는 군국주의의 정점을 향해가는 일본 사회에서 애국자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많은 신문이 앞다투어 그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런 기부 뒤에는 군과의 밀약이 있었다. 전후 극동 군사재판에서 일본군의 내부 비리나 행적에 대해 낱낱이 증언한 육군성 병무 국장 출신 다나카 류키치 소장은 재판정에서 사사카와가 비행기와 비행장을 헌납하고 군부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도운 대가로, 일본군 수뇌부가 비밀 자금을 사사카와에게 건넸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부에서 받은 사례금이 사사카와를 움직인 직접적인 이유로 작용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그가 받았다고 밝혀진 10만 엔은 현재 가치로 치면 수억 엔에 이르는 거금이지만, 사사카와가 군과 정치 활동에 뿌리고 다닌 금액에 비교하면 적은 액수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학교’ 스가모 구치소: 사사카와에 대해 잘못 알려진 몇 가지 사실 중 하나가 그가 ‘A급 전범’이라는 것인데, 일본에도 그를 A급 전범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고, 한국 언론에서도 그를 A급 전범이라고 보도해왔다. 하지만 그는 A급 전범이 아니고, 사실 그럴듯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사실도 없다. 그가 A급 전범 용의자로 수감된 것은 사실이나, 3년간 수감되었다가 불기소로 1948년 석방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는 ‘A급 전범 용의자’다. 석방된 사사카와는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먼저 수감된 전범들의 처우 개선, 전사자 유족에 대한 생활 지원, 전몰자 위령 사업 등에 힘을 써 많은 사람의 칭송을 얻었다. 자선사업이긴 했지만, 연합군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던 전후 일본에서 이 정도로 배짱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자기 과시욕이 강한 그는 일본의 상이군인, 전쟁미망인, 고아뿐만 아니라, 대만이나 조선 출신의 전몰 군인에 대한 지원과 위령 사업에도 많은 힘을 쏟았다. 전시에는 전쟁에 긍정적이고 군부와 많이 협력했으나, 전쟁 후 이런 행적이 일본 국민들의 눈에 미국을 두려워 않고 일본을 위해 힘쓰는 박애주의자로 비쳐진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또 하나 그가 노력을 기울인 것은 반공 운동으로, 이는 젊은 시절부터의 일관된 소신이기도 했으며, 미국의 이익과 일치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경쟁 사업에 손을 뻗다: 경정이라는 레저스포츠가 있다. 사람이 소형 모터보트를 타고 레이스를 펼치는 오락으로 경마와 마찬가지로 돈을 걸 수 있어 사행성이 있는데, 이 종목은 세계에서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스포츠이며, 한국은 일본 경정의 규칙을 대부분 그대로 들여와서 운영한다. 그런데 이 스포츠를 만든 게 바로 사사카와다. 사업이 시작된 초기에는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사사카와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그 자신도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할 정도로 경정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참고로 경정 사업의 성장은 일본 사회에서 사사카와의 영향력이 커짐을 의미했다. 마지막 ‘통 큰 사업’ 보물선 인양 계획: 전후에 사사카와는 자선사업과 의료복지 사업, 사회정화 운동에 누구보다 힘을 기울였고, UN평화상(1982), 헬렌 켈러 국제상(1983), 마틴 루서킹 인권상(1986), 마하트마 간디 세계평화상(1987), 프랑스 예술문화훈장(1993) 등 그가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 등에서 받은 표창과 직함은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특히 나병 치료에 누구보다 힘을 기울였는데, 나병 퇴치를 위해 엄청난 돈을 지원했고, 나병 백신이 개발되었을 때 실험 대상을 자진하기까지 했다. 또 말년에 그는 러일전쟁 때 수조 원에 달하는 금괴를 실은 채 일본 해역에서 침몰했다고 알려진 러시아의 순양함 ‘나히모프’에서 금괴를 인양하는 작업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 1980년 사사카와는 이 보물찾기에 뛰어드는데, 이것은 돈벌이 때문은 아니었다. 러일전쟁 이후로 침몰된 배에 아무 태도도 취하지 않던 소련은 일본이 인양 작업을 개시하자 갑자기 소유권을 주장하며 외교적인 신경전을 벌였다. 사사카와는 금괴를 인양하면 그것을 소련에 넘겨주는 대가로, 소련이 점거하고 있는 북방 영토의 반환을 요구하려고 했다. 즉 보물선 인양을 세계적인 화제로 끌어올려, 경제난을 겪던 소련을 국토 분쟁 협상 테이블로 유도하려는 마지막 통 큰 사업이었다. 하지만 발견된 것은 백금 덩어리 10킬로그램에 불과해 사사카와는 막대한 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CIA 문서 공개로 불가피해진 사후 재평가: 사사카와의 행적은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감춰졌고 그가 사망한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가 살아 있을 때 그를 건드리는 행위는 일본에서 용납되지 않았다. 그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이 있고, 그의 아들이 국회의원이라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그의 행적을 쫓는 사람들이 협박 전화를 받는 등 보이지 않는 위협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때 우익이었으나, 전후 친미 반공 노선에서 활동했으며, 경정으로 번 돈을 자선사업에 투자한 인물 정도로만 받아들여졌다. 사사카와와 고다마 요시오(사사카와의 하수인 역할을 함)가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했다는 설은 오랫동안 떠돌았지만,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두 사람의 행적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2005년 CIA의 극비 문서가 공개되면서 미국이 사사카와, 고다마, 쇼리키 마쓰타로 요미우리 사장, 기시 전 수상 등을 이용해 중국과 북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일본 내 공산당을 감시하고 견제해왔음이 밝혀졌다. 미군은 기시를 심문하고 나서, 전후 일본이 공산주의 세력의 온상이 될 위험에 있다는 것과 기시, 사사카와, 고다마를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 사람은 도조 히데키 등 전범들이 교수형에 처해진 다음 날인 1948년 12월 24일 석방되어, 미국에 협력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기시는 정계에서, 고다마는 우익 운동과 정치 공작에서, 사사카와는 정부가 공인한 경정에서 얻은 수익을 반공과 자선사업에 뿌리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미국의 생각대로 미국의 국익에 큰 도움이 된 것만은 아니었다. CIA는 고다마에 대해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얻으려고만 할 뿐, 국가의 장래에는 관심이 없다. 첩보원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라고 평가절하할 정도였다. CIA의 문서 내용은 이미 공개되어 서방 언론과 일본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언급되었지만, 일본의 메이저 언론은 문서의 구체적인 내용과 사사카와나 고다마 관련 내용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국의 꼭두각시 역할을 한 역대 일본 정권과, 사사카와를 포함한 전후 일본의 권력자들에 대한 재평가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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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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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허무 황명환 지음 성안당 / 2012년 2월 / 318쪽 / 13,000원 ▣ 저자 황명환 장로회신학대학을 거쳐 장로회신학대학원(M. Div)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장로회신학대학 대학원(Th. M)에서 구약학을 전공하였으며 기독교와 문화를 연구하여 박…
허무 황명환 지음 성안당 / 2012년 2월 / 318쪽 / 13,000원 ▣ 저자 황명환 장로회신학대학을 거쳐 장로회신학대학원(M. Div)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장로회신학대학 대학원(Th. M)에서 구약학을 전공하였으며 기독교와 문화를 연구하여 박사학위(Th. D)를 받았다. 소망교회와 평강교회를 거쳐 현재 수서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바울, 교회를 가르치다』와 『바울, 경건을 가르치다』를 비롯한 다수의 설교집이 있다. ▣ Short Summary 인간은 뭔가 큰 것을 얻으려고 질풍노도처럼 달려갑니다. 그것을 얻기 위하여 사투를 벌입니다. 그것을 얻은 것 같습니다. 잠시 동안 성취의 기쁨을 누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누구에겐가 다 뜯기고 맙니다. 남은 것은 앙상한 뼈뿐이고, 그는 어느새 노인이 됩니다. 이루어 놓은 업적이라는 것은 추억에 머물 뿐이고, 남들은 그것을 지나가는 말로 짐작할 뿐입니다. 고단한 그는 깊은 잠이 듭니다. 결국 인생은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공허한 것입니다. 그래서 헤밍웨이는 노벨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고독하다”면서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버드대학 총장이 말합니다. “요즘 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허감이지요. 꿈 많은 젊은이들, 다 이룬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은 텅 비어 있습니다. 공허감은 나이나 성공의 여부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공허감이 실패한 사람들의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성공한 사람들, 모든 것을 가져 본 사람들이 그것을 더 민감하게 느낍니다. 전도서는 ‘지혜의 왕’ 솔로몬이 늙어서 마지막으로 고백한 인생고백서입니다. 그가 통치했던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최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부유했고 지혜로웠습니다. 모든 것을 가져 보고, 누려 보고,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는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자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그는 늙었고,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론을 내립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가장 성공했던 사람, 그러나 가장 실패한 인생을 살았던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뼈저리게 공허함을 느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지혜와 경험을 가지고 깊이 생각한 최고의 지혜가 바로 전도서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를 허무를 극복하는 지혜, 즉 ‘허무의 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삶을 인생의 실상을 보여 주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공허감을 느낄까요?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영적 공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로만 채워질 수 있는 신적인 영역입니다. 인간이란 그렇게 큰 존재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져도 하나님 없는 인생은 공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There is more! 인생에는 허무함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빠져 버린 인생, ‘해 아래서’의 삶은 헛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해 위에서의 삶’은 헛되지 않고, 가치 있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공허는 더 높은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불만족스런 자극제이며, 초월을 향하여 자신을 개방하게 되는 동기이며 선물입니다. ▣ 차례 들어가는 글 1부 해 아래서 사는 인생 1장 인생은 헛된 것이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지혜로운 생(生)테크, 전도서 / 솔로몬은 누구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 인생은 왜 허무한가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 ‘없다’의 역설 / 나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새로운 것은 없다 / 영원한 것은 없다 지식을 통한 진리 추구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 인간 이성의 한계 너 자신을 알라 / 하나님을 아는 지식 쾌락을 통한 진리 추구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 웃고 마시는 것이 무익하다 일하고 자랑하는 것이 무익하다 / 하나님, 기쁨의 근원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인생의 행복은 어디 있는가 / 지식도 헛되다 소유도 헛되다 / 행복, 자족하는 삶 2장 인간은 유한하다 지금은 무엇을 할 때인가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 범사에 때와 기한이 있다 하나님의 때와 기한을 기다리다 / 작품, 순종하는 인생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이유 불의한 세상, 억울한 인생 / 하나님은 심판을 유예하신다 심판, 하나님의 테스트 / 자신의 삶을 즐거워하라 3장 모든 인간은 고독하다 누구를 위해 수고하는가 외롭고 고독한 인생 /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한밤의 게임 / 함께 웃고 함께 울다 외면당하는 지도자 가장 강한 욕망, 권력 / 후에 오는 자들은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누가 지혜로운 지도자인가 / 지혜는 들음에서 나온다 4장 하나님을 모르는 삶 예배를 드리는 사람 네 발을 삼가라 / 하나님은 참된 예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 /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하라 하나님의 선물 헌신, 위대한 인생을 사는 방법 / 돈, 하나님의 자리에 앉다 권리포기, 하나님의 자리를 지키는 방법 /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라 아름답게 늙어가기 가을이 오면 / 그림자 같은 헛된 인생의 모든 날들 아름다운 가을을 위하여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2부 하나님 안에서의 인생 5장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 자기의 결국을 아는 사람 어떤 죽음 /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 소망이 있는 죽음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하루의 소중함을 알라 /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낮과 밤을 구별하라 /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균형 잡힌 인격 중용(中庸)의 도 /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 지나치게 지혜자가 되지 말라 / 지나치게 짐을 지지 말라 6장 더불어 사는 인생 정직과 잔꾀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 다른 지혜를 구하다 여인에게 붙잡히다 /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좋은 지도자가 되는 길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 / 지혜자는 시기와 판단을 분별한다 지도자의 신언서판 /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는 삶 7장 지혜를 사랑하다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작심삼일을 이기는 지혜 / 인과응보를 넘어서는 지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지혜 / 행복한 인생을 사는 지혜 네 분복을 즐기라 행복은 순간에 충실한 삶이다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기뻐하고 감사하라 조용히 들리는 소리 세상의 소리와 하나님의 소리 / 하나님의 소리는 세상보다 크다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 지혜 / 하나님의 소리를 따르는 삶 지혜자의 마음이 있는 곳 어떤 상황 속에도 원칙은 있다 /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오른쪽을 선택하라 / 계속해서 선을 행하라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 뜰에 잣나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인생 /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8장 복된 인생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 모험으로 사는 인생 /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모험을 가로막는 장애들 /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다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인어공주 이야기 / 우리는 모두 늙는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 내 삶은 하나님의 것이다 사람의 본분 이것이 인생이다 / 인생,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나가는 글 허무 황명환 지음 성안당 / 2012년 2월 / 318쪽 / 13,000원 1부 해 아래서 사는 인생 인생은 헛된 것이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살지만 인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만이 인생의 의미를 정확하게 가르쳐 준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대한 성경 말씀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잠언과 전도서는 최고의 지침서로 꼽힙니다. 잠언이 앞길이 창창한 젊은 사람들을 위한 말씀이라면, 전도서는 말년에 인생이 무엇인지 완전히 파악하고 기록한 최고의 인생 지침서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마음먹고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반드시 전도서를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별명이 ‘지혜로운 생(生)테크’입니다. ‘인생을 바로 사는 기술’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soul management’ 즉 자기의 ‘영혼을 관리하는 기술’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기 위해 하나님은 솔로몬을 사용하셨습니다. 솔로몬이 누굽니까? 그는 지혜의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 물으셨을 때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시고, 그에 더하여 부귀와 명예까지 선물로 주신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화려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혜로웠고,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들과 화평을 누렸습니다. 솔로몬은 국제관계에서도 탁월한 외교술을 발휘하여 이웃나라와 좋은 평화관계를 맺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외교관계를 확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혼동맹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이방여인들과 결혼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외교력을 강화시켰습니다. 솔로몬과 결혼한 이방여인들은 평범한 여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왕족 출신으로, 조국의 이익을 위해 외국으로 시집을 올 만큼 애국심이 투철하고 자기 민족의 신에 대한 신앙심도 돈독했습니다. 솔로몬에게 이런 여자가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얻은 아내와 첩들이 천 명이 넘었다고 말합니다. 결혼동맹을 통해 외교적으로 화친을 맺고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니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생겼습니다. 솔로몬의 왕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방여인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문화도 달랐고 종교도 달랐습니다. 솔로몬은 외국과의 평화를 위해 결혼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와 신앙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이스라엘, 그것도 왕궁에서 자기 식대로 자기들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한 가지였습니다. “솔로몬 왕이 나를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그 마음이 내게로 향하게 해주시옵소서.” 온 왕궁이 이방신을 향한 기도와 제사, 주문과 푸닥거리로 가득 찼고, 어둠의 영이 임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몇십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대단한 솔로몬의 믿음과 지혜도 식어 버렸습니다.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던 우상숭배가 어느새 솔로몬의 영혼을 상하게 한 것입니다. 그는 아내들이 섬기는 신상들을 궁 안에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고, 자신도 가끔씩 그 앞에 가서 분향하고 제사도 지냈습니다. 솔로몬은 죄와 유혹에 빠져서 타락하고 맙니다. 점차 솔로몬은 권위를 잃어 버렸고, 백성들은 불평하면서 그를 떠났습니다. 국가는 쇠퇴하고,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평화를 잃어버립니다. 그런 가운데 그도 늙었습니다. 온 세계에 지혜로 명성이 자자했고,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았던 솔로몬이었지만, 이제는 권력도 다 잃어버리고, 죄에 찌들어 버린, 후회 많은 초라한 늙은이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름값을 못했다고 생각하고, 전도서에 자기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솔로몬은 자신을 세 가지 방법으로 표현합니다. 첫째, ‘다윗의 아들’입니다.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솔로몬은 아버지보다 훌륭한 왕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더 크고 부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졌지만, 지나고 보니 아버지 다윗보다 못했습니다. 다윗 왕은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고, 나라를 넓혔던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버지가 물려준 것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 아버지 앞에서 내 이름을 내놓을 수 없다. 부끄러운 자식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해서 솔로몬은 자기를 다윗의 아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둘째, ‘예루살렘 왕’입니다.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왕인 솔로몬은 왜 자신을 예루살렘 왕이라고 했을까요? 그는 아버지로부터 최고로 넓은 영토를 물려받았지만, 타락하면서 권위를 잃어버렸고, 국력은 쇠퇴했습니다. 그 결과 주변의 나라들이 반기를 들었고, 이스라엘 12지파들도 솔로몬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년에 그의 통치범위는 예루살렘 근방으로 축소되었습니다. 결국 그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르러서는 나라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됩니다. 셋째, 그는 ‘전도자’입니다. 전도자란 ‘인생의 깊은 지혜를 깨달은 사람,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설교자’를 말합니다. 또한 그는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모든 것이 그의 소유였고, 그 시대에는 금이 돌처럼 흔했습니다. 그는 최고의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솔로몬은 40년에 이르는 재위기간 동안 엄청난 사업을 벌였고 최고의 사치와 향락을 누렸습니다. 게다가 그는 최고의 저술가이자 학자였습니다. 끝없이 연구했고, 책도 많이 썼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중에서 해보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신물이 나도록 가져보고, 누려보고, 경험해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도 솔로몬보다 인생을 더 많이, 더 깊이,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솔로몬이 타락한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말년이 어떠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그는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그러나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탐닉했던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명예,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고, 하나님을 떠나 살아온 잃어버린 세월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절감합니다. ‘가장 지혜롭다고 했던 나, 그러나 가장 어리석게 산 나! 다시는 나처럼 미련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그가 마지막 혼신을 다해 기록한 것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들어보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의 인생 고백을!” 솔로몬은 자기의 지혜와 모든 인생 경험을 종합해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전도서는 그의 처절한 인생고백서요, 뼈아픈 간증이 됩니다. 솔로몬은 인생을 한마디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요약합니다. 히브리말에서 형용사를 한 번 쓰면 보통이고, 두 번 쓰면 상당히 강조한 것이고, 세 번을 쓰면 최상급이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헛되다’를 다섯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성경에서 같은 형용사를 다섯 번 반복한 곳은 이 부분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생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로 헛된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시골 사람이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가득하고 비가 오는데도 비행기는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은 비행기가 어떻게 날아가는지 궁금해서 창밖을 보았습니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 보니 그 위에는 밝은 해가 찬란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럴 수가!’ 저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름이 가득했습니다. ‘저 아래 땅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궁금했던 이 사람은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구름 위에는 비도 없고, 눈도 없고, 언제나 햇빛이 찬란하다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며 비웃었습니다. 구름 위를 경험해본 사람과 못해본 사람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이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있음을 안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것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해 아래서의 모든 일은 헛되다!” 이것은 위대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헛되지 않은 인생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해 위에서’의 삶도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지혜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보다 지혜롭게 살 수는 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교훈을 받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일평생에 걸쳐 깨달은 지혜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그 말씀을 읽고, 듣고, 깊이 묵상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솔로몬의 가장 빛나는 지혜 위에서 출발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렇게 탄식하지 않고, ‘정말 내 인생은 복되었노라’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 솔로몬은 고백합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헛된 것뿐이라고. 왜 그럴까요? 그는 ‘해 아래서’ 살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수직성이 결여된 수평적인 삶 속에서는 궁극적인 인생의 목적과 가치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이 결론을 얻기 전에, 젊은 시절 인생을 시작하면서 세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첫째, ‘나는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모든 것을 개혁하기 원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내가 왕이다. 바꾸지 못할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세상은커녕 자기 자신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자기는 늙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탄식합니다. 둘째, ‘이 땅에서 새로운 것은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셋째, ‘영원히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그는 영원히 남는 것을 찾아 몸부림쳤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었습니다. 비석도 닳아버리고, 비석을 새긴 사람들도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이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이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바뀌는 것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는 것을, 세상은 내가 변한 만큼만 바뀔 수 있고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 안에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본문은 그가 이런 답을 얻기까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지식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오랫동안 연구한 솔로몬은 그 결과를 “모두 다 헛되어”라고 말합니다. 쾌락을 통한 진리 추구: 이성의 한계를 느낀 솔로몬은 이성을 포기하고 감성으로 나아갑니다. 쾌락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기로 한 것입니다. 맨 먼저 그가 시도한 것은 웃음과 술입니다. 그러나 웃고, 웃고, 또 웃다 보니 미친 사람이 되었고 술 또한 자기도취와 무절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웃고 마시는 것으로는 안 되겠다 생각한 솔로몬이 두 번째로 시도한 것이 있습니다. 단순한 유흥보다는 좀 더 생산적이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방법을 통해 즐겨보려고 했습니다. 무언가를 이루고 업적을 남김으로써 쾌락을 느끼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 사업을 일으켰습니다. 항구를 개발해서 전 세계로 무역선들을 보냈고, 농장을 개발했고, 건축사업도 했습니다. 수많은 도로를 닦고, 궁궐과 요새들을 세웠습니다.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수많은 여자들과 보물과 노비들이 있었습니다. 일도 열심히 했고, 돈도 많이 벌었고, 업적도 쌓았습니다. 원하는 대로 다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이루고 나니 또 허무해졌습니다. 엄청난 기쁨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갖는 이러한 허탈감, 이것을 전문 용어로 ‘파라다이스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이것만 이루면 파라다이스, 낙원이 오겠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뤄놓고 나니까 실상은 그것이 아니더라 그 말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보람도 느끼지만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지? 뭔가 계속해서 더 큰 일을 해야 할 텐데······’ 그래서 쫓기는 마음이 됩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다 금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삶의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즐거움도 많습니다. 웃음도 필요하고, 소유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더 높은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단기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가운데, 장기적인 행복과 만족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의 쾌락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지불하는지 모릅니다. 즐거움은 필요하나 그 한계를 인식해야 합니다. 참된 기쁨이란 영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유한하다 지금은 무엇을 할 때인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을 때나 잃을 때나, 어떤 시간 어떤 사건이라도 그 속에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합목적적(合目的的)’입니다. 목적에 부합한다는 말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활동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합니다. 나는 칭찬받고 싶은데 하나님은 나를 부끄러움 속에 두셨습니다. 나는 벌고 싶은데 하나님은 쓰라고 하십니다. ‘잘못된 것 아닌가? 손해가 아닌가? 이것은 아름답지 않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더 큰 경륜과 계획 속에서는, 그것이 꼭 필요하며 더 높은 목적 아래서 볼 때는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도 지역마다 시간이 다릅니다.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땅의 시간이 있고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내 시간으로만 현재를 보면 불합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으로 보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보면 모순투성이가 되고, 때로는 꼼짝 못하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질식할 것 같고, 권태와 무의미가 가득한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시각으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아름답고 다양한 계획을 가지고 있고, 그 하나하나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위 하나님의 책임 경영을 신뢰하면, 신앙인의 안목과 렌즈를 가지고 모든 일을 바라보면 그 속에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의 목적과 의미와 방향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래도 좀 알려 주시지. 왜 모르게 했을까?” 그 이유는 나보다 더 큰 존재, 내 시간과 인생을 다스리는 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라고 고백합니다. 시간을 넘어서는 영원이라고 하는 차원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기를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으로 보내야 합니다. 기뻐한다는 것은 능동적인 수용을 말하며 선을 행한다는 것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간다는 뜻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서 이집트로 갑니다. 부잣집 도련님이 노예가 되어 팔려 갑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섬깁니다. 그는 거기서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가운데 청지기가 됩니다. 그는 청지기로서 잘 다스리며 충성했습니다. 그러던 중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물리치고 피합니다. 그 결과 감옥에 갑니다. 거기서도 모범수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장관들도 만나게 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잘 섬기면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고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왕을 위하여 꿈을 해석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매 이집트의 총리가 됩니다. 요셉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그 앞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집트 왕자2 : 요셉 이야기>라는 영화를 보면 요셉은 감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왜냐고 묻기를 멈추었습니다. 내 마음은 평안합니다. 감옥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즐기고, 꽃냄새를 맡으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는 조용히 기다리면서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습니다. 요셉은 무려 13년을 기다립니다. 그러는 중에 그는 시간과 사건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주어진 일을 감당합니다. 그 속에서 미래를 위한 최고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 당시는 고통스러웠지만 그 순간순간마다 의미와 목적이 있었고, 극복해야 할 과정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프로그램으로 볼 때 거기에는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상황을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영어로 “Present is present (현재는 선물이다)”라는 말이 성립합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습니까? 너무 힘듭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그분을 위해 봉사할 최고의 기회를 선물로 주셨다고 받아야 합니다. 아이가 속을 썩입니까?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까? 기도할 최고의 기회로 받으십시오. 학생인데 공부하기 싫어 죽겠습니까? 그러나 이 시간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최고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고 나면 한평생 후회합니다. 이 선물이 때때로 우리의 생각에 불합리해 보이지만 사실은 완벽합니다.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습니다.’ 그 속에 아름다움이 있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고독하다 누구를 위해 수고하는가: 어떤 사람이 밤중에 자기 서재에 앉아있습니다. 웬일인지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습니다. 최고급 가구로 장식한 서재에서 위스키 한 잔을 손에 들고 혼자 생각에 잠깁니다. 최고급 오디오에서는 음악이 고요히 흘러나오지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금통장에는 상당한 저축액도 있고, 사업도 잘되고 있습니다. 집도 있고 좋은 차도 몇 대 있고, 아내와 자식에게도 부족함 없이 해주었습니다. 어디 가서 이름을 대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그를 인정해 줍니다. ‘이만하면 성공한 사람이다’ 스스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겉으로 볼 때는 모든 것이 잘되고 있는 것 같은데 마음은 허전합니다. 아내는 그를 비인간적이라고 하며 존경하지 않고, 자식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어색해해서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정말 속마음을 털어놓고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지만 그를 진정으로 이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 나는 왜 이렇게 쓸쓸할까?’ 실패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야지.’ 그러나 잠은 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갈등하고 허탈해하는 현상을 ‘한밤의 게임’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한밤’은 홀로 있는 시간, 아무도 없이 혼자 자기를 바라보는 시간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럴 때 조용히 자신의 인생을 평가합니다. 대낮의 게임에서는 돈과 권력으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밤의 게임은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한밤의 게임에서 이기는 자가 인생에서 정말로 승리자라는 것입니다. 여기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잠을 자려고 누웠습니다. 천장을 보니 낡았습니다. 수리를 해야 합니다. 직장 생활, 오늘도 힘들었습니다. 낮에 부자가 된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나 자랑을 들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될 가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그를 필요로 합니다. 옆에 누운 아내를 보니 별로 예쁘지는 않지만 착한 여자입니다. 그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믿을 수 있는 아내입니다. 아이들은 평범합니다. 그러나 건강하고 명랑합니다. 그를 믿고 따르며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웃고 싶을 때 함께 웃을 수 있고, 울고 싶을 때 함께 울어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를 사랑하시는 그분이 갈 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입을 맞추고 잠이 듭니다. 두 남자 중에 누가 승리자입니까? 사회적으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인생의 내용으로는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솔로몬은 역설적인 처방을 제시합니다. 잘못된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를 무시하고 학대하지 말고 위로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지나친 경쟁의식, 약삭빠른 출세 위주의 삶, 아무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오만한 삶을 살지 말고, 더불어 사는 삶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2부 하나님 안에서의 인생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낮과 밤의 가치가 동등하듯이 고난과 형통의 가치도 동등합니다. 우리는 고난이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 중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곤고한 날은 인생과 실패의 의미를 생각하고,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새날을 열기 전에 어두운 시간을 주셔서 생각하게 하고 변화하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게 되고, 변화하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들은 낙심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실패했다고 낙심할 이유도 없고, 성공했다고 교만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며 열심히 일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곤고한 날, 인생의 밤과 같은 때에는 생각하고, 지나온 날들을 반성하고, 다가올 미래를 전망하며, 기도하며 계획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생각을 안 합니까? 기도하며 생각하고 말씀을 보며 생각하는 가운데 길이 열리고, 미래가 보이고,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The serenity prayer(평안을 위한 기도)’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평안을 주시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두 가지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하루를 단위로 살아가게 하시고, 순간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역경을 평화를 위한 지름길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이 죄 많은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당신이 그러셨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내가 주님의 뜻에 복종한다면 주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게 하셔서, 이 땅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저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최고의 기쁨을 영원히 누리도록 하심을 믿게 하옵소서. 아멘. 밤을 가치 있게 보내면 낮에 덜 바쁘고 덜 초조해질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여유를 가지면 인생의 방향이 잘못되지 않게 됩니다. 밤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의 사건을 의미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다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어떤 왕이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는데, 신하들이 말했습니다. “왕은 위대하십니다. 폐하의 권세는 하늘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넓고 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들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왕 앞에 무릎 꿇고 경배 드립니다.” 그러자 왕은 말했습니다. “내 보좌를 가져오라.” 그 보좌를 바닷가에 놓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파도야, 내게로 오지 말라.” 그러나 파도는 사정없이 밀려와 보좌 위에 앉아 있는 왕의 몸을 적셨습니다. 신하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습니다. 그때 왕은 말했습니다. “내 명령은 내 백성에게만 통하는 것이다. 나의 권세는 너무도 미약하여 한 줌의 바람과 한 번의 파도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솔로몬은 왜 실족했을까요? 그는 자신이 인생의 신비를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탐구하고 노력하면 통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자신의 지혜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교만에 빠졌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독선적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뜻에 역행했습니다. 스스로 똑똑한 척하다가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게 되었고,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죄를 짓고, 무의미한 일에 허덕거리며 삽니까?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높은 섭리를 믿으며,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살면, 모순된 현실 속에서도 바르고 정직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크고 복잡하므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노력해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다만 세상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하나님이 있다면 이럴 수가 없다. 하나님은 없다’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믿고, 진실하게 살아가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오늘 주어진 삶 속에서 은혜를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오직 말씀을 따라 나갔듯이, 나도 그분을 신뢰하며 나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 뜻이 있고, 의미가 있고,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대항하지 말고, 세상에 대하여 분노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진실하게 응답하며 감사하고 평안을 누리며 말씀을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서 되어야 할 내 모습이 될 것입니다. 복된 인생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 우리 인생에서 최고의 모험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계획하신 목적과 뜻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찾고 이루는 것이 내 삶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인간은 진정한 모험을 시작하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기고 따라가는 모험! 이것은 어떤 모험보다도 위대하고 안전하며 열매가 많은 것입니다. 그 속에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끝없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최고의 모험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최고의 모험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베푸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 이것은 인간의 자기 욕망과 이기심을 극복하는 위대한 모험입니다. 하나님께 내 삶을 전적으로 맡기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베풀고 사랑하고 섬겨주고 용서하는 것! 적극적인 삶의 시작은 쌓고 모으고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가치가 있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베푸는 삶의 가치와 그 결과, 그리고 이런 위대한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늙었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이제 내 인생을 추슬러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나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지금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지나간 것에 대해 회개하고, 다가올 것을 긍정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이스라엘의 속담을 인용합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원래 이 말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하던 말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대개 배로 무역을 했기 때문에 언제나 위험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도전정신이 필요했습니다. 이 말은 그런 상황에서 머뭇거릴 때 하는 말입니다. 인생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릅쓰고 달려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얻을 것이 없습니다. 도전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다면 그 꿈을 붙들고 도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비전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가장 작은 모험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에게 미소를 짓는 것, 아주 작은 일이지만 많은 사람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나를 던지는 것이거든요. 그러므로 그것도 작은 모험입니다. 이런 모험을 자꾸 시도해야만 합니다. 지금의 내 모습보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는, 주님을 향하여 한 걸음씩 더 나아가는 모든 시도는 아름다운 모험이 되는 것입니다. 선행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사람의 본분: 결국 우리 인생이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활용하여 그 말씀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에는 분명한 결론이 있으므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인생의 본분을 찾는 것이 철학이고,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의 본분을 찾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본분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입니다. 경외는 관계의 종합입니다. 그분을 인정하고 마땅한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가장 부족하고 절실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만 있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둘째, 경외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할 말이 없었을까요? “도대체 어떤 자식인데, 이럴 거면 왜 주셨습니까?”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그는 경외함으로 순종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아노라.” 이처럼 경외는 순종을 통해서 증명되는 것입니다. 셋째,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면서 그 속에서 우리는 새로워집니다. 죄악을 이깁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넘어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것이 됩니다. 말씀 속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은 새로워집니다. 남편도, 아내도, 내 직장도, 삶의 모든 환경이 새로워집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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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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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가도 모를 중국, 중국인
알다가도 모를 중국, 중국인 장홍제 지음 베이직북스 / 2013년 10월 / 496쪽 / 18,000원 ▣ 저자 장홍제 몽고족 출신으로 1972년 랴오닝에서 출생하였다. 1994년 둥베이 재경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졸업 후 2006년 중국 건설은행에서 근무하…
알다가도 모를 중국, 중국인 장홍제 지음 베이직북스 / 2013년 10월 / 496쪽 / 18,000원 ▣ 저자 장홍제 몽고족 출신으로 1972년 랴오닝에서 출생하였다. 1994년 둥베이 재경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졸업 후 2006년 중국 건설은행에서 근무하다가 2006년 보하이 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문화학 석사 과정을 거쳐 문학을 전공한 바 있다. 저서로는 『대명왕조의 7가지 얼굴』, 『중국황제의 5가지 운명』 등 다수가 있다. ▣ 역자 황효순 1965년 서울 출생으로 한양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중국경제사로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고, 해외한민족연구소와 동아시아경제연구소에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동서문화센터에서 지역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중국지역개발연구소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행자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역경제학회에서 중국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중국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하여 중국전문가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밖에도 (사)행복한고전읽기 이사로 활동하며, 동양고전의 심오한 지혜를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지역개발론』, 『문화적 자원과 중국경제의 발전』, 『중국중소도시의 문화적 자원 활용』이 있고, 공저로 『한국통신사업자의 중국진출 방안』이 있으며, 『경기북부 한국가구산업의 중국진출 전략』을 비롯하여, 중소기업청이 주관한 『중국진출 한국기업의 실태조사』 등 수많은 정부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 Short Summary 한 사람의 운명은 그 사람의 성격이 결정짓고,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의 국민성이 결정짓는다! 한국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수교를 맺은 지 어언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한중 양국은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그 교류의 범위를 크게 발전시켜 왔다. 이미 미국과 일본을 넘어 최대의 교역상대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년 수백만 명의 인적교류로 광범위하게 교류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교류의 범위와 정도가 늘어나는 만큼 다양하고 폭넓게 중국인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우리는 “중국인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대한민국의 약 100배에 달하는 영토에 51개 민족이 공존하는 대륙의 구성원들이 모두 중국인이기에 이들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인지도 모른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모택동은 가장 먼저 국내의 정치적ㆍ군사적 안정을 추진했다. 동시에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하였지만 ‘마오이즘’이라는 정치적ㆍ이념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오히려 수많은 중국 인민들을 위기에 몰아넣기도 했으며, 경제적 문제를 사상적 투쟁으로 파악하여 역사의 수레를 뒤로 돌리는 문화혁명과 같은 시대적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등소평의 등장으로 시장경제 체제의 특성을 일부 수용하는 ‘중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중국의 경제적 성장에 기반을 다졌다. ‘중국인의 실체는 무엇일까?’라는 숙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정치ㆍ경제적 변화에 무수한 중국인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적응했다는 점이다. 등소평의 개혁이 추구한 ‘선부론(先富論)’은 지역 간의 불균형적인 성장을 야기했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좋다.”라는 흑묘백묘론은 원칙 없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경제 문제를 풀도록 하는 복잡한 구도를 조장하였다. 여기에 5000년이란 장구한 역사 속에 한족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사상’이라는 관념은 중국인들을 이해하는 데 더더욱 어려운 과제를 제공한다. 한족의 범위도, 그 특성도 지역과 문화적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해 왔고 복잡하게 엉켜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오랫동안 중국과 중국인을 경험하면서 그 교류의 범위를 늘려 가는 사람들일수록 중국인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중국인의 호방한 대륙적 기질이나 졸렬해 보이는 아큐적 기질(이중성, 양면성)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한중 양국은 동시에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켰다. 양국의 새로운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전보다 더 발전된 약속을 했다. 전례 없이 일본을 앞질러 중국 공식방문이 있었고, 이전과는 사뭇 다른 융숭한 대접과 약속들을 주고받았다. 지금 구체적인 자유무역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또 다른 중국인 이해를 위한 하나의 한 과정이다. 중국인들은 과연 자신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이 책이 소개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오늘의 중국을 배태한 역사적 근거들뿐 아니라 유대인, 미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들과의 접촉, 각자의 문화를 몸소 체험한 경험을 통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그의 경험과 이해 역시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향후 더 포괄적인 교류의 장을 마련하게 될 한국과 중국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것임은 분명하다. 경제 교류든 유학이든 어떠한 형태로 중국과의 접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기존에 무수히 반복해 왔던 시행착오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차례 머리말 상편 - 대국과 소국 Part 1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일본인 오만한 소국 / 빼다 박은 닮은꼴 /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과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 사교성 없는 일본 / 증오심을 버려라 / 일본인의 성공 노하우 Part 2 중국인이 한국인에게 배워야 할 것들 왜 한국인인가? / 한국인에게는 있고 중국인에게는 없다 한국인의 변화에서 해답을 찾다 / 한국이 중국인에게 주는 메시지 Part 3 서울에서 살펴본 한국인 에너지 넘치는 서울 / 한국 정치를 논하다 / 국민의 소양이 문제다 Part 4 중국인과 유대인: 닮은꼴과 다른꼴 중국인과 유대인의 닮은꼴 / 너무 다른 중국인과 유대인 / 문명의 진화 정처 없는 유랑길 위의 개방과 고수 / 참신한 유대인 vs 낡아 빠진 아랍인 위기의식이 있으면 흥하고, 안락함에 빠지면 망한다 Part 5 상상과는 전혀 다른 미국인 낙후된 미국 / 금욕의 나라 미국 / 파리떼의 진원지를 찾아서 하편 - 양의 속성과 늑대의 속성 Part 1 잘못 알려진 춘추전국시대 대통일사상의 성숙기 / 전제군주 제도의 형성기 / 개혁의 물결: 전제군주 제도의 탄생 과정 Part 2 만주 왕조의 출현과 소멸 어부에서 자금성의 주인까지 / 배움부터 몰락까지 / 건륭과 아편전쟁 Part 3 만주족의 한족화 과정 명 왕조의 자멸 / 앞 사람의 실패를 교훈 삼다 / 탄소와 철의 비율 / 피할 수 없는 몰락 Part 4 한없이 드넓은 몽골 갑자기 일어난 폭풍 / 간단함과 복잡함 / 몽골식의 호탕함 / 한없이 드넓은 몽골 Part 5 다마오, 초원에서 나귀를 타다 뿌리 찾기 여행 / 사라진 게르 / 나귀를 타고 초원에서 Part 6 정착한 칭기즈칸릉 세계에서 가장 신기한 무덤 / 신성한 사람 / 정착한 칭기즈칸릉 Part 7 허난: 장독 속의 장독 허난인과 객가인 / 장독의 중심 / 허난인의 수난 / 중국의 축소판 Part 8 그들만의 세계, 투러우 폐쇄적이지만 순박한 사람들 / 린씨의 족보 Part 9 샹그릴라의 이미지 쑹짠린사 / 선인장 / 스물여덟 고갯길, 얼스바과이 / 샹페이후 Part 10 타이완의 최근 사정 오토바이의 천국 / 타이완의 높은 물가 / 돈 / 고객에 대한 배려 / 문화적 소양 상냥한 태도 / 전통 명절 / 미신 / 텔레비전 정치 / 천수이볜과 마잉주 후기 알다가도 모를 중국, 중국인 장홍제 지음 베이직북스 / 2013년 10월 / 496쪽 / 18,000원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일본인 아마 중국인은 지구촌 그 어느 민족보다 일본인에 대해 복잡하고 모순적이며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일본인에 대해 물으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일본은 중국과 매우 친숙한 나라다. 같은 문화, 같은 종족 그리고 바다를 사이에 둔 이웃 나라 등으로 이야기할 만큼 가깝다. 자동차, 텔레비전,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등 다양한 상품이 ‘일제’라는 명찰을 달고 줄줄이 바다를 건너와, 지금은 사무실, 일반 가정집, 길거리 등 중국 전역에 퍼져 있다. 아울러 중국인은 대부분 사요나라, 바카야로 등 간단한 일본어 한두 마디쯤은 대수롭지 않게 구사한다. ‘사요나라’라는 일본어는 중국인들에게 오싱, 사치코, 오오시마 시게루 같은 드라마 주인공들을 연상케 해 아름다운 일본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바카야로’는 아픈 전쟁의 기억과 함께 당시 야마모토 이소로쿠(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해군제독) 같은 일본 장수를 연상케 해 잔인한 일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은 중국에게 가장 낯선 민족이기도 하다. 중국은 수천 년 동안 일본과 교류해 왔지만 정작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과거 100여 년 동안 여러 번 주위를 놀라게 한 주체가 바로 일본이다. 옛날 중국 조정이 막강한 군사력을 내세운 서양 열강 앞에 철저히 농락당하고 있을 때 눈에 띄지도 않던 소국이었던 일본은 이를 기회로 삼아 급부상했다. 그러더니 서양 열강과 동등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중국 조정을 놀라움에 빠뜨렸다. 이어 중국 대륙을 가볍게 무너뜨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강국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다시 한 번 중국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1945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일본의 콧대가 마침내 꺾였고 일본 제국의 운명도 다하는 듯 보였다. 일본 열도는 산산조각 났고 도마 위의 생선처럼 전승국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만에 일본은 그 잿더미 속에서 부활했다. 이처럼 일본이란 민족은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누구도 일본이 재기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일본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성공을 거두었고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움과 용서, 멸시와 존경, 친근함과 생소함, 감탄과 혐오, 부러움과 질투심, 과연 어떤 단어로 일본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지금 중국의 젊은이들은 과거 부모 세대를 따라서 일본을 ‘소일본’이라고 폄하한다. 왜소한 체구와 작은 땅덩어리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심지어 중국의 전 국민이 동시에 침을 뱉으면 작은 나라 일본은 잠겨 버릴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반면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만주국 시대를 회상하며 일본인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당시에는 일본인 두세 명만 있어도 중국의 현 하나를 통치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일본 군인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사도 정신은 가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일본인은 천성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일본에서는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 그리고 수를 놓은 듯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일본을 찾는 관광객들마다 찬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러한 아름다움 뒤에는 잔인한 모습이 숨어 있다. 수십 년 전 전쟁에서 일본이 보여 주었던 치를 떨 만큼 잔인했던 야만성을 그 누가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추악하고 피비린내 나는 만행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치욕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여러 차례 신화를 창조해 낸 일본의 단결력, 노력, 책임감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보여 준 결실과 진지함을 들여다보면 실로 우수한 민족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들이 가진 인색함, 자만심, 이기심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더욱이 지금까지도 자신들이 주도한 전쟁의 아픈 상처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그때는 다른 나라들도 다 그랬다는 식으로 합리화하며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민족과 진실한 대화가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상대를 어려워하고 말주변도 없으며 걸핏하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일본인, 이 민족의 대단한 창조력과 활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치열한 경제 전쟁 속에서 어떻게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를 잡은 것일까? 경제 분야에서는 가장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대국이면서 왜 국제 관계에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일본은 지금도 국제정치 구도 속에서 자신의 정확한 입장을 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단조롭기 그지없는 일본 음식은 실제로 먹어 보면 어찌 그리 맛이 좋은 것일까? 꼭두각시 인형처럼 기괴한 모습의 일본 고전극 노(能)는 왜 그리 매력적인 것일까? 사회생활에서는 마치 한 사람인 듯 어쩌면 그렇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문화인류학자 루쓰 베네딕트는 “미국이 한창 전쟁에 열을 올릴 때 상대했던 여러 적수 중 가장 파악하기 힘든 민족은 일본이었다.”라고 고백했을 정도다. 싱가포르 지도자 리콴유는 “일본은 결코 평범하고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매우 특이한 나라라는 것, 이 점을 잘 기억해야 한다.”라고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 말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중국인이 한국인에게 배워야 할 것들 한국이 중국인에게 주는 메시지 어리석은 척? 정말 어리석은 것?: 중국은 줄곧 주변국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됐다. 중국이 급부상하자 ‘중국위협론’까지 운운하며 중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하지만 고대 역사가 말해 주듯 세계에서 중국만큼 선량한 대국은 없었다. 중국은 착하다 못해 나약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진시황 때부터 중국은 대외관계에서 줄곧 방어태세만 취했다. 만리장성이 바로 그 증거다. 중국은 과거 역사 속에서 귀중한 양식, 비단, 심지어 공주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평화를 지키려고 애썼다. ‘황화’는 유목민족에게는 영광이자 씻을 수 없는 죄악이기도 하다. 중국은 황화로 상처를 입은 여러 피해자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런데도 모든 죄를 중국에 뒤집어씌우니 억울할 수밖에 없다. 유사 이래로 중국은 대외관계에서 지속적으로 ‘베푸는 정책’을 펼쳤다. 중국의 조공관계도 알고 보면 중국 백성들의 피땀 어린 노동을 대가로 얻은 번지르르한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조공관계로 중국이 얻은 것이라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심리적인 우월감이 전부다. 반면 상대국은 상당한 이윤을 챙겼다. 근대 역사를 돌아봐도 중국처럼 마음이 어질고 모든 일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범적인 국가는 없다.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이 전쟁으로 거의 모든 가산을 탕진했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은 원수인 일본에게 아량을 베푸는 대범함을 보였다. 인도와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도 군대는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자멸했고 사방으로 줄행랑을 쳤다. 다음 날 뜻밖에도 중국 군대는 이미 인도 국경지역에서 철수한 상태였고 몰수했던 인도군의 군용차를 깨끗이 닦아 그대로 돌려주었다. 또 자국민이 기근에 허덕이며 힘들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3국의 국민들을 위해 중국의 쌀을 나눠 주었다. 중국의 이런 행동에 전 세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보내곤 했다. 중국은 그들이 놀라는 모습을 즐겼다.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고작 몇백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그들이 어찌 이해하겠는가. 걸출한 철학자 한 명 배출하지 못한 그들이 아니던가. 그들이 대지약우(大智若愚,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인다)라는 말을 들어봤겠는가.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말을 이해하겠는가. “사람의 마음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다.”라는 말의 참뜻을 알겠는가. 그들에게 “한순간을 참으면 안정이 오고, 세 걸음만 물러서면 편안해진다.”라는 주옥같은 말이 있긴 하겠는가. 중국의 입장에서는 순간의 이익 때문에 양보하지 않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그들의 무지하고 근시안적인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이 한 번이라도 중국의 고서를 펼쳐 봤다면 지금 그들이 자행하는 것이 ‘패도(霸道)’이고, 패도는 결국 말을 아끼고 이익을 멀리하는 ‘왕도(王道)’ 앞에 무릎 꿇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정책은 나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외유내강의 모습을 가진 점에서 태극권과 상당히 닮아 있다. 중국은 넓은 안목과 원대한 포부를 가진 나라다. 언젠가는 세계인들도 중국이 결코 이기적인 나라가 아니며 주변국을 이롭게 하는 나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중국이 전 세계를 감동시켜 그들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진정으로 중국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앞장서서 세계의 아름다운 내일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들이 중국위협론을 거론해도 중국은 본분을 잊지 않고 착실하게 진실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이 헛소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중국의 배려에 세계 어느 나라도 감동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일본은 실속을 챙기고 잘난 체까지 하며 사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역사 교과서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인도는 더 가관이다. 중국이 한발 물러나 후퇴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하다는 듯 남의 영토를 자기 지역으로 편입시켜 버렸다. 그러고는 전 세계를 향해 중국을 겨냥한 원자폭탄 실험발사를 한다고 공표까지 하고 나섰다. 사실 지금 남중국해에 위치한 섬들 절반 정도가 다른 나라의 통제를 받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보냈던 쌀은 훗날 중국 군대와 전쟁을 할 때 그들의 전투 식량으로 쓰였다. 한국인에게 한 수 배우다: 한국이 일본과 영토 문제를 놓고 발끈했던 것처럼 중국도 일본과 영유권을 놓고 오랫동안 다투어 왔다. 바로 조어도인데, 중국어 이름 댜오위다오, 일본어 이름 센카쿠열도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폭이 200미터도 채 안 되는 이 섬은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풀과 나무도 자라지 않는다. 한국인은 이곳을 독도, 일본은 다케시마라고 부른다. 이 섬이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비슷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이 섬은 일본 소유였다가 한국의 독립과 함께 영유권이 한국으로 넘어갔다. 조어도 분쟁을 둘러싸고 일본이 보여 준 ‘영토 수호’ 결심은 중국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 분쟁에서도 이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그들은 교과서에도 영유권에 관한 내용을 실으며 시시각각 이 섬의 주인은 일본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5월, 일본의 한 우익인사가 무인도였던 이 섬에 몰래 푯말을 세웠다. 사실 일본의 이런 도발은 조어도 문제에서도 그대로 연출됐던 수법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인의 상대가 지혜로운 중국인이 아니라 이번에는 강직한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한국인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일본인이 이 섬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23세에 불과하던 한국 청년 홍순칠이 들고 일어났다. 그는 전쟁기간에는 무기관리가 소홀하다는 것을 이용해 불법으로 총 몇 자루를 구했다. 그리고 열혈청년 몇 명과 함께 독도에 상륙해 일본인을 내쫓고 그 자리에 태극기를 꽂았다. 그 후 홍순칠은 소총 한 자루에 의지하면서 홀로 독도를 지켰다. 그 기간이 무려 3년 8개월이다. 그의 일기에는 일본 함정, 일본 어선과 대치했던 기록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한국전쟁이 종식된 후 정부는 독도수비대를 파견했고 홍순칠의 신성한 ‘국토 수호 대장정’도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 정부는 규정을 무시한 홍순칠을 처벌하지 않았고 오히려 훈장을 수여해 그의 깊은 애국정신을 치하했다. 지금도 한국 해군은 독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국 정부는 독도에 34명의 상주 경찰을 파견하고 구축함, 쾌속정, 헬리콥터까지 배치해 시시각각 이어지는 일본 어선이나 해군의 침략을 막고 있다. 그들이 있기에 일본은 함부로 독도를 넘보지 못하고 있다. 그저 항의 성명서만 보낼 뿐이다. 너무 지혜로운 중국인, 너무 충동적인 한국인(?): 중국인의 대처가 정말 지혜로운가? 이 문제는 잠시 접어 두고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한국의 행동은 확실히 충동적이고 무모하며 이성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 한국의 성장과 번영을 이야기하다 보면 일본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또한 한국과 일본은 군사적ㆍ정치적 동맹관계로 묶여 있으며 한국 경제의 대일 의존도는 중국보다 훨씬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에 대한 원한을 숨기지 않는다. 국제무대에서도 대세를 핑계 삼아 일본에게 양보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우익 일본인의 태도에 한국인은 언제나 분노한다. 일본인에 대한 분노는 성난 불길처럼 거세다. 일본이 역사 문제에서 꼼수를 부리면 한국 전체가 들고일어난다. 고이즈미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은 즉각 반응했다. 몸에 태극기를 두른 한국 청년 20명은 서울의 독립공원에서 항의 집회를 가진 후 새끼손가락을 잘라 주한 일본 대사관으로 보냈다. 또 9명의 한국인은 단식투쟁을 벌이며 일본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도 주일 한국대사를 귀국시키며 강력한 항의 의사를 표명했다. 일반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일장기를 불태웠고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은 중국처럼 일본인을 전범자와 선량한 일본 시민으로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본인 자체를 증오한다. 심지어 일본의 까마귀, 가옥 등 일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미워한다. 한국의 인기스타 김희선은 한 행사장에서 마무리 인사를 일본어로 해줄 것을 요구하는 사회자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한다. 중국의 인기스타 자오웨이가 일장기가 그려진 의상을 입어 물의를 일으켰던 것과 사뭇 비교된다. 1992년 이상옥 한국 외교부장관은 일본 정부에 전쟁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배상할 것을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한 전담팀을 구성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한국 국민은 물론 정부 역시 예리한 칼날을 세우고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중국인은 한국인의 이러한 대처가 소(小)를 위해 대(大)를 희생하는 것이고, 양국관계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며,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어리석으며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결국 한국이 정치와 경제 관계에서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제 발등을 찍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한국의 이런 강력한 대응이 한일관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고 한일 경제관계 역시 지속적인 성장을 보였다. 1995년에는 한일 교역액이 485억 달러를 넘어섰고, 월드컵 공동 개최라는 성과까지 거두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던 일본인이 한국인에게만 사죄했다는 사실이다. 1992년 방한한 미야자와 기이치 수상은 서울에 머무는 3일 동안 무려 여덟 번이나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4일 일정으로 일본을 국빈 방문했다. 그 기간 동안 한일 양국은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일본 수상은 일본의 한국 침략을 시인하면서 정식으로 사죄의 뜻을 밝혔다. 잘못 알려진 춘추전국시대 개혁의 물결: 전제군주 제도의 탄생 과정 (1) 중국과 고대 그리스라는 양대 문명의 발상지는 서로 멀리 떨어진 데다 말도 전혀 통하지 않았으나 초기 역사의 태동에서 미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기원전 5세기 전후 중국과 그리스가 거의 동시에 사상들을 대거 쏟아낸 것처럼 기원전 4세기 전후 고대 그리스와 중국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개혁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관중, 이회, 조열후, 상앙이 거대한 개혁의 파도를 연거푸 일으켰을 무렵 저 멀리 그리스에서는 솔론, 클레이스테네스, 에피알테스, 페리클레스가 개혁의 바통을 이어받고 있었다. 기원전 594년 아테네의 아르콘(행정최고책임자)인 솔론은 ‘무거운 짐을 털어버리기’라는 뜻의 세이삭테이아(Seisachtheia), 즉 부채말소 제도를 공포함으로써 농민들의 부채를 탕감하고 빚을 갚지 못해 노예가 되는 코르베(Corvee)를 법으로 금지했다. 이 제도는 100년간 효력을 갖는 것으로 선포되었다. 훗날 역사는 솔론의 과감한 개혁 조치가 위기에 휩싸인 아테네를 구했을 뿐 아니라 이후 아테네가 민주, 안정, 번영의 길을 걷는 데 초석을 깔아주었다고 평가한다. 솔론의 개혁 이후 수많은 노예들이 해방되었고, 아테네 시민은 다시는 가난으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로써 고대 그리스의 정치 문명은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솔론의 개혁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권’을 인정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솔론은 시민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일이 야만스럽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모르는 행위라 간주했다. 솔론의 개혁을 이끈 원칙은 ‘공정’과 ‘평등’이다. 그는 “공리와 강권을 정리하고 함께 어울려 사는 것…… 빈부의 구별이 없고 모두 평등하도록 법률을 제정한다. 정도를 걷고, 사람은 모두 각자 자기가 있을 자리에 있는다.”라고 말했다. (2) 전국시대는 전쟁과 반란의 역사다. “나라를 편안히 하려면 옛 법을 쫓지 말아야 하며,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데는 예를 쫓지 않는다.(便國不法古, 利民不循其禮)” 이처럼 솔직담백한 말은 유사 이래 줄곧 중국 선인들이 주장한 선왕을 본받고 행동은 옛 교훈을 따라야 한다는 진부한 태도를 버리고 시각을 새로이 하게 했다. 이 개혁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널리 퍼뜨리고 틀을 깨는 용기, 칼끝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에 나서는 패기와 기존의 악폐를 타파하고 세상을 뒤집을 기세로 중국인의 성격 특성에 다채로움을 더했다. 그러나 전국시대의 개혁과 고대 그리스의 개혁 방향에는 현저한 차이가 존재한다. 상앙 법률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상공업에 종사하는 자와 게을러서 가난한 자는 밝혀내어 종을 삼는다.” 장사를 하다 손해를 보거나 돈을 빚진 상인이나, 열심히 농사를 짓지 않아 파산한 농민은 모두 노예가 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상앙의 작제(爵制)개혁에서도 어떤 벼슬이 몇 명의 노예를 거느릴 수 있는지를 명확히 규정짓고 있다. 상앙 개혁의 기본적인 사고는 ‘가벼운 죄도 무겁게 처벌’한다는 것으로 엄격한 법률을 통해 백성을 통제한다. 그가 제정한 법률은 지나치게 엄격하고 잔혹하여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법’을 어길 수 있을 정도여서 점점 많은 평민이 노예가 되어 평생 신분을 회복할 수 없었다. 주나라 때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노예 노동은 크게 보편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상앙의 변법의 영향을 받은 진나라와 그 이후의 한나라는 중국 역사상 노예의 수가 가장 많은 시기로 기록된다. 《전국책ㆍ진책사》는 “당시 각국에서 백성은 살아갈 길이 없어 흩어져 방황하다가 남의 종이나 첩이 된 자가 부지기수였다.”라고 묘사했다. 솔론과 상앙의 ‘평민’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상반된다. 한쪽은 해방이고 한쪽은 감금이다. 한쪽은 상승이고 한쪽은 하강이다. 한쪽은 양보를 통해 사회의 화해를 얻는 것이고, 한쪽은 피가 흥건한 전제정치를 통해 국가통제력을 얻는 것이다. 전국시대 진나라 초기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혈연의 끈은 완전히 끊어지고 사람이 자신과 평등한 사람을 버젓이 노예로 부렸다. 《상군서ㆍ착법편》에서는 “지위가 같던 사람이 상대방을 노예로 부리게 되는 것은 빈부의 차이 때문이다.”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3) ‘시민의 권리’를 제외하고도 양대 개혁의 기본적인 내용 역시 서로 배치된다. 고대 그리스의 개혁은 상업을 중시하는 ‘중상(重商)’이 핵심이다. 솔론은 상공업을 보호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여 아테네에 거주하는 모든 자유인이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법령을 공포했다. 아울러 그는 수공업품의 수출을 적극 장려했다. 이러한 경제개혁 조치는 아테네 경제, 특히 수출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에 반해 상앙의 변법은 상업을 억제하는 ‘억상(抑商)’이 핵심이다. 상앙은 농업이 부를 생성하는 원천이며 상인은 그저 사회의 기생충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일련의 차별적인 규정을 제정하여 상인의 사회적 지위를 낮게 평가했다. 그는 ‘여관의 폐기’를 선포하여 장사를 위해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머물 곳이 없도록 했다. 또한 상인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김으로써 농민들이 농업을 포기하고 장사에 종사하는 것을 제한하며 “관문과 시장에서 유통하는 물품의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면 농민들은 상인이 되는 것을 싫어하게 되고, 상인들은 장사를 소홀히 할 것이다.”라고 했다. 상앙은 농사를 포기하고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무거운 벌을 내렸다. “농사를 짓지 않는 자의 벌은 무거워야 하며 장사를 하는 자의 세금은 무거워야 한다.” 심지어 모든 산림과 호수의 자원을 국유화하여 통괄적으로 관리한다는 ‘일산택(一山澤)’을 주장하며 국가가 자연의 이익을 독점하여 일정 수준의 계획 경제를 실행했다. 모든 개혁의 핵심은 구세력을 공격하는 것이다. 상앙과 솔론의 개혁의 유일한 공통점은 옛 귀족제도를 심하게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 수법은 현저히 달랐다. 개혁 이전에 고대 그리스 귀족들은 정치권력을 독점했는데 귀족회의는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었고, 의원은 가문을 기준으로 선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귀족들은 제멋대로 평민의 이익을 침범할 수 있었다. 솔론은 출신이 아닌 연평균 수입에 따라 사람을 네 등급으로 분류했다. 각 등급에게 골고루 선거권이 주어지고 시민회의와 민중법정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 권리는 평등하지 않았다. 1, 2등급은 고급 관직에, 3등급은 하급 관직에 오를 수 있고 4등급은 관직에 오를 수 없었다. 이런 제도가 시민 간의 진정한 평등을 실현시키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혈연과 가문의 차별을 소멸시키고, 귀족이 세습 특권에 따라 관직을 독점하는 국면을 타파하여 가난한 이들의 정치 참여를 위해 길을 닦아 주었다. 솔론의 개혁으로 다져진 기초 위에서 클레이스테네스와 페리클레스가 지속적으로 평민의 권력을 확대시키고, 최종적으로는 모든 행정관직 선발에 관련된 재산 제한을 폐지하고 모든 시민이 법률 위에 평등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향유하도록 규정했다. 법가(法家)의 개혁 사고 역시 혈연과 가문에 반대한다. 상앙이 개혁을 시작했을 무렵 진나라 사회는 여전히 종법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귀족 작위의 세습에는 변화가 없었고, 혈통이 평생 한 사람의 빈부와 귀천을 결정했다. 이런 제도로 인해 상위 계층은 교만하고 사치스럽고 음란하고 방탕 무도한 생활을 지속하며 백성의 피와 땀을 착취했다. 법가학파가 보기에 혈연, 종족 제도를 토대로 건설된 서주 왕조는 이미 자신의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군주집권제를 강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치를 제시했다. 첫째, 분봉제를 군현제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군주의 직계 혈족에게 분봉하여 대대로 대물림하는 대신 군주가 관리를 파견하여 직접 관리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들 관리는 군주가 임명하며 수시로 변경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지방에 대한 군주의 통제력이 나날이 증강되도록 했다. 기원전 356년 상앙은 세습제, 즉 ‘세경세록제(世卿世祿制)’를 폐지시켰다. 그는 대부분의 영토를 31개 현으로 나누고 진나라 임금이 직접 현령을 임명하게 함으로써 중앙집권제를 강화하여 세습 귀족의 권력을 약화시켰다. 이로써 모든 현을 통일된 방식으로 다스린다는 ‘백현지치일형(百縣之治一形)’, 정치 일원화의 기초를 다졌다. 둘째, 세경세록의 ‘철밥통’ 종신제의 폐지다. 상앙은 출신과 혈통에 기대어 얻은 작위를 모두 폐지하고 군공(軍功)이 없는 종실 귀족은 관작과 녹봉을 취소한다고 규정했다. 상앙은 사회 지위 승급의 대문을 모든 이에게 열어 두고 나라를 위해 군공을 세우기만 하면 출신의 귀천에 상관없이 귀족으로 봉했다. 상앙의 이런 개혁은 유사 이래 줄곧 중국 사회를 지배해 온 혈연 원칙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작위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새로운 승급 기준을 확정했다. 중국과 같은 혈연사회에서 이는 실로 획기적인 의미가 있다. 새로운 계급제는 상당한 유동성이 있어서 사회 하층의 평민이 제일 먼저 문무를 겸비한 인재가 되어 원래의 귀족과 동등한 지위를 가질 기회를 얻으며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상앙의 사회사상은 솔론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솔론식 평등’과 ‘상앙식 평등’에는 본질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솔론의 개혁 방안에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재산이었다. 아울러 재화와 부를 추구하는 것은 모든 경제인의 본능이다. 다시 말해 솔론식 개혁은 인간의 자연 속성을 인정하고 해방하는 것이고, 상앙의 기준은 국가적 목표 혹은 ‘집단’에 대한 개인의 공헌도다. 그렇기 때문에 솔론의 개혁은 개인주의에서 출발한 개인을 중심으로 한 것이고, 상앙의 개혁은 집단주의에서 출발한 국가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중농억상 개념과 마찬가지로 상앙의 출발점은 국민에게 평등한 정치 권리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계 도모, 승급 경로를 나라가 온전히 장악하여 천하의 이익은 모두 황제의 한마디로 결정된다는 ‘이출일공(利出一孔)’을 이룩하기 위함이다. 엄격한 형벌과 법률로 국민들의 사회적 승급과 생계 도모의 다른 경로를 막을 경우 백성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바로 국가가 그들을 위해 마련해 준 길과 군주(국가)가 내려 주는 은혜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중을 국가의 도구이자 장난감으로 만들어 주어 군주는 원하는 대로 노예로 부리고 지배할 수 있다. 상앙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농경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여기는 일이다. 전쟁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일이다. 사람들을 힘든 농경에 종사하고 위험한 전쟁에 참전하게 하려면 반드시 ‘계산’에 기대야 한다. 반드시 백성이 농사를 지어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 다른 생계수단은 일절 금지시켜야 한다. 백성이 용감하게 싸워야만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하고 다른 승급 방식은 일절 폐지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백성이 전쟁을 굶주린 이리가 고깃덩이 보듯’ 하는 등 ‘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람에게 매우 비정상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4) ‘황제’라는 두 글자의 탄생으로 중국 역사에서 진시황의 위치와 역할이 크게 과장되었다. 한 기자는 “중국인은 진시황 이후로 한 번도 흥한 적이 없어요. 진시황이 없었다면 중국인은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와 비슷한 말을 다른 사람에게서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다. 아마도 이것이 오늘날 중국인들의 보편적인 시각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진시황은 중화민족의 대역 죄인이다. 만약 진시황이 없었다면 중국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유럽처럼 불안정한 가운데 완전히 새로운 정치 국면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진시황이 없었다면 최소한 ‘황제 제도’가 발명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2천 년에 이르는 ‘전제주의’에 따른 암흑 통치도 없어 중국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적인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본다면 진시황이 춘추전국시대 대통일 전제사상의 실천자였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중국 역사의 모든 추악한 일들은 진시황과 연관이 있는데 큰 의미에서는 후세의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과도한 미화 때문이기도 하다. 춘추전국시대와 고대 그리스 시대는 형식적인 면에서는 유사성을 띠지만 사실 두 문화에 내재된 정신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사실상 우리가 줄곧 찬미해 온 백가쟁명이 바로 전제군주 제도를 낳았다. 진나라의 통일천하, 분서갱유, 한무제의 유가만을 숭상하는 독존유술(獨尊儒術)부터 후대 제왕의 끊임없는 전제군주 제도의 강화까지, 일련의 악성적인 발전은 모두 백가쟁명이 제공한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만약 춘추전국시대를 중국의 사상 계몽의 시대라고 한다면 이는 민주, 과학의 계몽이 아닌 전제, 미신의 계몽이다. 그러므로 춘추전국시대는 중국이 한 단계 올라서게 된 계기가 아니라 중국 역사가 맹렬한 기세로 몰락하기 시작한 계기다. 만주 왕조의 출현과 소멸 건륭과 아편전쟁 (1) 중국 건륭 58년(1793년) 거대한 서양 함대가 인도양의 푸른 파도 위로 나타났다. 선두는 64문 화포를 가진 ‘라이언 호’로 거함의 뒤 갑판에는 매카트니 경이 앉아 있었다. 그는 영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절단의 단장이었다. 이 거대한 사절단은 중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건륭 황제가 유라시아 대륙의 한편에서 60년의 찬란한 통치를 지속하는 동안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한편에서는 의미가 깊은 변혁이 발생하고 있었다. 몇백 년 전에야 숲에서 나온 고트인, 앵글로인, 색슨인 등으로 구성된 사회는 이때 마치 큰 그릇과도 같았다. 경제, 정치, 과학 등 각 방면의 요소가 그 안에서 서로 격렬히 부딪혀 새로운 사회 반응이 점점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변화였다. 과거와는 다르게 모든 것을 파괴하는 힘을 가진 새로운 사회가 그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다. 건륭 34년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했고, 건륭 48년 미국은 독립을 이루었으며, 건륭 54년 프랑스는 대혁명을 일으켰다. 서유럽인은 18세기에 과거와는 본질적으로 차별화된 지적 수준으로 자신을 무장했다. 유럽은 단 한 번도 외부 세계로 이처럼 대규모의 사절단을 파견한 적이 없었다. 몇천 년 동안 그들은 중국이라는 동양 국가에 대해 호기심과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이때에 이르러 각성을 이룩한 유럽은 전례 없는 활력과 자신감을 가지고 중국의 대문을 두드렸다. 당시 해상권을 장악하여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던 대영제국은 스스로 바다의 주인임을 자처했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번영을 지속한 그들은 ‘대륙의 주인’인 신비의 중국에 대해 여전히 존경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줄곧 중국과의 교류를 갈망해 왔는데 이때에 이르러서야 그러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영국은 이번 예방(禮訪)을 준비하면서 예물을 준비하는 데만 일 년이 넘는 시간을 소모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 물건들을 정성스레 준비해 중국으로 가져왔다. “우리의 최신 발명품인 증기기관, 면방기, 소면기, 직기를 중국인에게 소개하면 분명 신기해하며 기뻐할 것이다.” 동양에 다녀온 수많은 사절단들이 쓴 기행문을 보면 모든 사절단은 호위대를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황제 앞에서 신속히 대형을 변환하여 현대 포병의 장비를 보여 주면 분명 깊은 인상을 남겨 우리의 외교 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영국 사절단이 공들여 준비한 예물 품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천체운행기이다. 이 기구는 태양계의 구성을 설명해 준다. 둘째, 지구본이다. 세계 각국의 위치, 수도, 산맥과 하류가 표시되어 있다. 그 외에도 영국 최대 구경의 화포 110문을 장비한 ‘바다의 군주호(Sovereign of the Seas)’ 전함 모형 등이 준비되었다. 영국인들은 선적을 하면서 중국인들이 이 선물들을 본 후 얼마나 놀랄까 끊임없이 상상했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물건들을 보면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서로 사절을 파견하며 무역을 확대하자는 의견에 분명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교 사상 이때의 영국인들보다 더 난감한 실패를 맛본 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중국 관리들은 “수만 리 이역에서 장장 11개월에 걸쳐 여러 바다를 건너와 성의를 다해 공물을 바치니 실로 고금을 통틀어 유례가 없다.”며 건륭 태평성세의 경사라며 영국 사절단을 친절하게 접대했다. 82세 생일 축하연에서 건륭제 역시 자비를 베풀어 사절단을 접견했다. 다른 제후국들의 긴 알현 행렬이 끝난 후 드디어 영국인의 차례가 되었다. 매카트니 경이 조지 3세의 국서를 전달했지만 황제는 오히려 함께 데려온 아이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연회가 끝난 후 예물 품목을 본 황제는 겸허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영국인의 어투에 불만과 가소로움을 느꼈다. 보름 후 건륭 황제는 영국 국왕에게 답신을 보내 손바닥만 한 소국이 중국과 평등한 외교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요청을 단호히 거절하며, 그것은 천조(天朝)의 관례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므로 가소로운 요청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영국 국왕에게 “짐의 뜻을 받들어 더욱 충성하길 바란다.”며 영원한 복종을 분부했다. 매카트니 경은 매우 실망하여 중국을 떠났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중국의 군대를 자세히 관찰한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중국은 낡은 군함이나 마찬가지다. 운 좋게도 몇 명의 신중한 선장이 있어 근근이 150년 동안 침몰하지 않도록 했을 뿐이다. 3돛대 전함 몇 척이면 중국은 사분오열하여 와해될 것이다.” 민족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 (2) 이 만남 이후 동서양의 두 강대국은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양국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만의 보폭으로 자신의 길을 계속 걸어갔다. 영국 화포의 위력은 나날이 높아갔고, 중국은 변함없이 자신의 방식으로 움직였다. 건륭제는 89세가 되어서야 세상과의 끈을 놓고 떠났다. 뒤를 이은 가경과 도광은 선조의 업적을 지키는 수성(守成)을 시정 방침으로 잡고 울타리를 한 발짝도 넘지 않았다. 중국과 서양의 차이는 나날이 커져만 갔으나 중국인들은 여전히 수천 년 전의 방식대로만 사고했다. 반면 서양인들은 일찍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해 과학화와 체계화를 일구어 내고 여기에서 생성된 지식의 힘을 모아 낡은 세계를 타파했다. (3) 사람들은 대개 아편전쟁 패배의 책임을 건륭의 손자인 도광에게 지운다. 하지만 건륭 황제와 아편전쟁 간에 의미심장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적다. 매카트니가 건륭 황제를 알현할 때 함께 황제를 알현해 황제의 관심을 끌었던 스턴톤이라는 아이는 이제 존경받는 영국 하원의원이 되어 있었다. 황제를 알현한 지 47년이 지난 1840년 4월 7일 스턴톤은 의회에서 중국에 제1차 아편전쟁을 발동할지의 여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청중은 모두 중국 문제의 권위자인 그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스턴톤은 전성기 시절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중국을 공격할 수 없다고 여겼지만 현재는 영국이 중국을 공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청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로 그의 의견에 찬성을 표시했다. “유감스럽지만 이번 전쟁이 정의롭고 필수적인 전쟁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중국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으로 공인된 그의 발언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아편전쟁의 전쟁 결의안은 영국 의회에서 불과 다섯 표 차이로 통과되었다. (4) 사실 아편전쟁의 쓰라린 굴욕을 맛본 도광은 그렇게 형편없는 황제는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할아버지인 건륭 황제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명석하고 성격이 의연하여 막 성년이 되었을 때 일찌감치 후계자로 내정되었다. 즉위 직후에 도광은 정치적 목표를 ‘수성’으로 잡고 위대한 선조들이 물려준 업적을 지키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선조들처럼 근면하고 자율적이고 서적에 통달했으며, 역사상 가장 검소한 황제였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모두 국가와 민족의 크나큰 치욕에 대한 책임이 그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허난: 장독 속의 장독 장독의 중심 허난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물론 그들의 중저우(中州, 허난성의 옛 이름)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중국 고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막힘이 없이 이곳에는 도가학설을 세운 노자와 장자, 신비한 은허(殷墟, 중국 은나라 후기의 왕도 유적지) 갑골문, 기개가 웅대한 뤄양 룽먼석굴(龍門石窟)이 있다는 사실을 읊을 것이다. 그들은 은나라의 고도 안양, 상나라의 고도 정저우, 구나라의 고도 뤄양, 칠나라의 고도 카이펑 등 중국의 8대 고도 중 절반이 허난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줄 것이다. 허난의 영광과 유구함에 대해서는 사흘 밤낮을 이야기해도 모자란다. 그들이 침을 튀겨 가며 열변을 토할 때 필자는 그들에게 그들이 영광으로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허난 문화를 낙후시키는 주요 근원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실제로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역사가 오래된 나라들의 현재 세계에서의 위치가 어떤지를 살펴보라. 중국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인도는 서양 문화를 수용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카스트제도에 빠져 있고 종교에 묶여 있다. 이집트와 이라크 역시 가난과 전란으로 휩싸인 땅이다. 문명은 ‘30년은 강 동쪽에서, 30년은 강 서쪽에서’ 발전한다는 것이 문명의 법칙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유구한 역사는 그만큼 역사의 짐이 무겁다는 의미이며, 또한 생각이 쉽사리 보수와 정체에 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옛 문명의 중심지일수록 보수, 정체에 빠지기 쉽고 신흥 문명은 변두리 지역에서 생성된다. 중국이 근대화의 과정에서 그토록 힘든 길을 걸었던 이유가 바로 과거의 길이 너무도 찬란했기 때문이다. 중국에 현존하는 모든 문제는 대부분 오래된 전통과 현대 문명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생겨난 것이다. 전제주의, 우민정책, 폭력적 전통, 노예관, 관본위(官本位, 직위나 권력으로 개인이나 단체의 사회적 직위를 평가하는 가치관) 등 수천 년 동안 비바람에 씻겨 내렸음에도 중국 문명의 기본적인 구조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 사실은 중국인이 보기에는 중국 문명의 질긴 생명력을 의미한다. 반면에 서양인들의 눈에는 이것이 극도로 비참하고 공포스럽게 비친다. 하나의 문명이 설령 다시 빛을 발하고 성공하더라도 스스로 갱신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면 무서운 굴레가 될 수밖에 없다. 서양인들은 송대 이후 중국 문화는 이미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고 본다. 유명한 역사가인 토인비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로, 중국 문화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교착상태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역사가는 “중국과 같은 운명을 피하기 위해 유럽은 1천 년의 야만적인 생활이라는 대가를 지불했다.”라고 말한다. 이 대가는 유럽인들에게는 가치 있는 것이었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허난은 바로 중국의 축소판으로, 허난의 문제가 바로 중국의 문제다. 허난은 중국 전통문화의 부정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이다. 허난인은 보수적이고 봉건적이고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며, 가문의식이 강하고 체면을 중시하고 신용도가 떨어지며, 이기적이고 교활하다고 하는데, 이는 허난인만의 전매특허인가? 이는 중국인이 보편적으로 가진 저열한 근성이 아니었던가? 단지 장독의 중심에 전통문화가 비정상적으로 두텁게 쌓인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썩은 냄새가 더욱 짙게 풍기는 것이다. 허난은 곳곳이 중국의 축소판이다. 중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중국인은 습관적으로 오직 7퍼센트의 토지로 21퍼센트의 인구를 먹여 살린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이 점에서 볼 때 허난은 전체 중국의 축소판이다. 왜냐하면 허난은 중국 국토의 1.74퍼센트에 해당하는 토지로 전국 7.5퍼센트에 달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중국이 인구 대국(大國)이라면 허난은 인구 대성(大省)이다. 중국은 농업 대국, 허난은 농업 대성이다. 중국 각지에 지역감정이 짙은 사람들은 걸핏하면 허난인을 걸고넘어진다. 그들은 허난인이 얼마나 교활한지, 어떻게 가짜 물건을 잘 만드는지를 이야기한다. 사실상 중국인이 세계에서 남을 잘 속이고, 가짜 물건을 잘 만들기로 유명하지 않았던 적이 있는가? 세계에서 중국인의 이미지는 중국에서 허난인의 이미지와 판에 박은 듯 똑같다.
17
SEP.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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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기도 제목
이제 이곳 몽골은 쌀쌀한 늦가을입니다. 곧 겨울이 되기에(몽골은 급작스럽게 추워집니다)예년 같으면 9월 15일 부터 병원에 난방이 들어와야만 정상인데, 아직까지 난방 계약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울란바타르시 난방공사에서 낙후된 …
이제 이곳 몽골은 쌀쌀한 늦가을입니다. 곧 겨울이 되기에(몽골은 급작스럽게 추워집니다)예년 같으면 9월 15일 부터 병원에 난방이 들어와야만 정상인데, 아직까지 난방 계약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울란바타르시 난방공사에서 낙후된 '초원의집' 보일러 시설을 보완하지 않으면 올해부터 난방을 공급하지 못하겠다고 최종 통보를 해왔습니다. 이는 열교환기(HEAT EXCHANGER)를 보일러실에 자비로 설치하라는 말인데 이 설치비용이 한화로 850만원이나 됩니다(200만원은 이미 헌금이 됨). 어느 손길을 통해서라도 남은 돈이 적어도 10월5일까지는(공사기간이 있으므로)채워져서, 무사히 난방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난방이 들어오지 않으면 불가불 병원을 6개월 동안 닫아야만 되는 그런 긴급 상황입니다.
2
AUG.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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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즐거움
인간, 즐거움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문학테라피 / 2013년 7월 / 189쪽 / 13,800원 ▣ 저자 크리스티앙 보뱅 프랑스의 대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프랑스의 문단, 언론, 독자들 모두에게 사랑 받는 작가이다. 유서 깊은 프랑스 문학상, …
인간, 즐거움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문학테라피 / 2013년 7월 / 189쪽 / 13,800원 ▣ 저자 크리스티앙 보뱅 프랑스의 대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프랑스의 문단, 언론, 독자들 모두에게 사랑 받는 작가이다. 유서 깊은 프랑스 문학상, 되마고상 및 가톨릭문학대상, 조제프 델타이상을 수상했다. 1951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크뢰조에서 태어났다. 평생 그곳에서 글쓰기를 하며 문단이나 출판계 등 사교계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고독한 작가다.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마친 후 1977년 첫 작품인 『주홍글씨』를 출간했고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카의 삶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낸 『가난한 사람들』로 세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동시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맑은 문체로 독자들과 평론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그 여자들과 보낸 며칠간』과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를 비롯해 50여 권에 달하는 책을 펴냈다. ▣ 차례 인간, 즐거움 마리아예요 불가항력의 선율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자신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축복을 내리는 자 푸른 수첩 삶의 신성한 삼 요소 검은 물 일상의 기적 비타 노바 삶의 손길 이내 져버리는 꽃이 더 환하게 웃는다 잠시 멈춰 서 있는 순간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꽃, 푸르름 그리고 고양이 눈동자 아름다운 날들 열쇠 꾸러미 인간, 즐거움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문학테라피 / 2013년 7월 / 189쪽 / 13,800원 인간, 즐거움 파랑, 그 푸르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해요. 사월의 신선한 아침에 맞이하는 그 푸르름 말입니다. 그 푸르름에는 벨벳의 보드라움과 눈물의 반짝임이 들어 있지요. 나는 당신에게 이 푸르름이 가득 담긴 편지를 쓰고 싶네요. 그 편지지는 안트베르펜이나 로테르담의 보석상에서 다이아몬드를 고이고이 싸놓은 종이를 떠올리게 할 겁니다. 마치 작은 요정의 운명이 담긴 투명한 소금 알갱이나, 갓난아이의 눈물, 웨딩드레스처럼 새하얀 종이 말입니다. 우리의 복잡한 생각은 연기처럼 하늘로 올라가 하늘을 뿌옇게 만들곤 하지요.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더니 푸르른 하늘이 온전히 내 손안에 들어왔네요. 오늘 낮의 가장 찬란한 모습을 당신에게 전하지 못한 채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군요.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네요. 나도 당신처럼 세상을 바라봅니다. 어쩜, 당신과 나의 눈에 들어온 세상은 꼭 같은 모습이네요. 이 세상은 한낱 전쟁터에 지나지 않지요. 온 사방에 검은 옷을 입은 기병들이 득실대고 영혼 깊은 곳에서는 칼날이 부딪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지요. 연못 앞을 지나는데 수초로 뒤덮인 연못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요. 중요한 건 바로 이거죠. 우리가 모든 생명의 온화함을 엉망으로 훼손시켜도 생명은 연못의 수초처럼 도리어 더 풍성한 모습을 하고 되돌아옵니다. 전쟁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지루할 뿐이지요. 그러나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 기둥 사이를 날아 작은 초목 안으로 달아나던 새의 날갯짓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나는 지금 너무도 작아서 말하면 깨져버릴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날개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유리처럼 깨져버리는 나비를 떠올리면 되지 않을까요. 새는 궁궐의 기둥 사이를 사뿐히 옮겨 다니는 하인처럼 나무 사이를 날아다녔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말이지요. 새는 한 편의 시처럼 반짝이는 옷을 수수하게 걸치고 있었습니다. 비로소 내가 말하려 했던 것에 가까이 다가섰네요. 작고 보잘것없는 듯하지만 창백한 우리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어젖히는 이것, 오늘 내가 본 것, 결코 멈춰 서는 법이 없는 삶 말입니다. 이러한 삶은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삶은 우리의 마음속에 세워진 기둥 사이를 빠져 달아나는 새처럼 눈앞에서 달아나지요. 우리는 삶의 맞수가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삶은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어리석은 우리를 은혜로이 보살핍니다. 연못은 하늘 아래 활짝 피어나고 하늘은 연못 앞에서 곱게 단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는 예언적 날갯짓을 하며 숲을 천천히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지요. 잠깐 동안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지금 이 편지가 전쟁터 같은 세상을 사는 당신의 눈에는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정작 무모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나는 우리가 ‘화창한 날’, ‘푸르른 하늘’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그저 흘려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말 안에는 신비로움이 묻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줄기 빛이 서늘하고 예리한 칼날처럼 우리의 닫혀 있던 마음을 열어젖힙니다. 비로소 우리는 무수히 많은 별 아래에 파묻힙니다. 그리고 이따금 그것을 감지하고 고개를 듭니다. 아주 잠깐 동안 말이죠. 이게 바로 우리가 ‘푸르른 하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곳이 천국인지도 모른 채 천국으로 들어서는 한 사람을 떠올려봅니다. 그 사람은 걱정거리와 해야 할 일을 가득 안고 있는 매우 바쁜 사람이며, 칼날이 부딪는 소리가 그를 따라다닙니다. 참으로 흔히 일어나는 전쟁이지요. 그러다 일순간 연못 위에 하얀빛이 비치고 반짝이는 날개를 가진 새 한 마리가 세상의 높고 삭막한 벽을 허물어 버립니다. 뜻밖의 일이 일어난 겁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구원을 얻기에 충분한 시간이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우리는 영원불멸한다는 것을 느끼고 안다.”라는 스피노자의 사상에는 자동차 뒷좌석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의 온화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 그러니까 당신과 나는 마음속 커다란 방 안에 붉은 왕좌에 앉은 ‘태양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 가끔 탐욕스런 왕이 왕좌에서 내려와 온화한 아이의 모습으로 잠시 길거리에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하늘의 푸르름은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룰 수 있는 일이지요. 나는 책장에 푸르른 기운이 서린 책만을 좋아합니다. 어둠을 이미 경험한 푸르름 말입니다. 나의 문장이 미소 짓고 있는 것도 바로 어둠 속에서 나온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뿌리치기 힘든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이 미소를 얻기까지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하늘의 이 푸르름은 마치 당신의 주머니에서 떨어져 나간 소박한 영혼을 당신에게 되돌려 주려고 신이 숨겨둔 선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 장엄한 푸르름이 절망의 끝을 알려줄 것이고 눈시울을 붉게 만들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축복을 내리는 자 진주 장식이 달린 헐렁한 셔츠를 입은 왕자가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만 그가 온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그는 창가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를 깜빡 잊었어도 그는 나를 원망하지 않는 듯했다. 겸손하고 의연한 그는 축복을 내리는 자였다. 그의 빛나는 영혼으로 인해 방 안에 어떤 성스러운 향기가 감돌았다. 설령 내가 눈을 감았더라도 그가 온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는 바로 미모사의 가지였다. 젊은 시절 내 책들은 그저 저절로 쓰인 것이었다. 정작 나는 그 책의 주인이 아니었다. 달과 풀, 태양처럼 빛나는 연인의 얼굴, 삶과 죽음이 결합된 것 이상의 삶, 이 모든 것들이 내 책을 써 내려갔다. 그것들은 말로만 겨우 ‘내’ 책이었다. 그러다 내게 삼십 년간의 유폐 신세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왔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연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 눈부심으로부터 수백여 통의 편지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적어 내려간 말들은 어린아이의 손에서 돌아가고 있는 오색날개가 달린 작은 팔랑개비와 같았다. 내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내 뺨에 태양의 손길이 닿는 것도 느껴졌다. 단 한 번의 봄이 일생의 모든 봄과 같았고, 단 한순간의 삶이 온전히 살아낸 삶과 같았다. 사랑이란 누군가 당신에게 강물처럼, 별처럼 혹은 인동초 꽃처럼 말을 건네는 순간과도 같다. 어제도 오늘도 날 향기로 취하게 하고선 땅속으로 사라졌다가 어느새 이름을 알게 된 인동초 꽃처럼. 푸르른 하늘의 옷장에 걸린 사랑하는 연인들의 하얀 드레스 한 벌. 죽음의 세탁물에서 꺼내 영원에 말린 하얀 드레스. 내 가슴에 단단한 돌이 박히듯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몇 달간은 숨이 막힌 듯하다. 충격에 휩싸여 한 발짝 물러서 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고 먼발치에서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그 와중에도 이상스레 가장 덜 부조리하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꽃이다. 꽃은 온갖 색깔의 외침과도 같다. 우습게도 가장 작은 데이지 꽃이 우리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려 애쓴다. 꽃은 자신의 색깔로 이야기한다. 그대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는 꽃 중독자가 되었다. 집 안 곳곳을 꽃으로 도배하기 시작한다. 그대의 죽음으로 나와 단절되었던 세상은 어둠 속의 검은 공처럼 천천히 돌아갔지만 그 속에 꽃의 생기 있는 오만함이 있었고 단조로운 허무함에 맞서는 노랑, 하양, 빨강, 파랑, 분홍의 반박이 있었다. 수녀원에서 생활하는 수녀들은 도기 항아리에 담긴 장미꽃 다발의 강렬한 힘을 알고 있다. 나의 가슴에 박혀 있던 단단한 돌이 떨어져 나가고 어린아이가 유리창에 얼굴을 바싹 들이대듯이 나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세상은 죽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은 삶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은 오로지 세상만 좋아한다. 결국 세상은 자신의 자리를 모두 되찾는다. 그대의 부재 속에 꽃이 기어이 내게 건넸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혹은 우리가 몸으로 부딪치며 느끼는 것보다 백만 배는 더 아름답다고. 창가에 서서 개머루를 바라본다. 생생한 바람이 초원 위로 지나간다. 꽃은 영원의 하늘에서 맨 먼저 떨어지는 빗방울이다. 나는 영원의 하늘에 시선을 빼앗긴 채 푸르른 공기를 삼킨다. 그리고 글을 쓴다. 이것이 대답 없는 것에 대한 나의 답장이며 시간의 잎사귀 사이에서 퍼덕이는 날갯짓이다. 그대가 더 이상 여기에 없어 그대에게 미모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못해도 미모사는 내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또렷이 들려준다. 우리를 사로잡은 우아한 것은 모조리 죽은 자들의 나라를 거쳐 온 것이라고. 삶의 신성한 삼 요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얼마 전 부인을 잃은 남자는 더 이상 책을 손에 쥐지 못한다. “난 책으로 인해 내 고통이 망각되길 원치 않네.” 난 그 말이 이렇게 들린다. “단 일 초라도 책을 포함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 인해 그녀로부터 멀어지고 싶지 않네. 그리고 깊은 허망 속에서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들이 갈가리 찢기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는 걸 방해 받고 싶지 않네.” 그가 말하는 동안 정원에 있는 유도화가 눈(雪)으로 변한다. 해가 지고 꽃들은 어둠과 싸움을 시작한다. 내 친구의 얼굴은 장밋빛 아래에서 타오른다. 어둠 속에서 부인을 찾아보지만 결국 그 안에는 자신만 있을 뿐이다. 나는 그가 글에 경계심을 가지는 것이 이해가 된다. 우리가 사랑하면서 느끼는 고통 역시 사랑이며, 그 고통은 말도 안 되는 위로로 사랑이 어둠 속으로 밀려들어 가듯 우리의 사랑이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준다. 또 다른 꽃들은 정원을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 낮 동안 꽃들이 내뿜는 푸르름에 내 눈이 멀어버린 듯했다. 그랬던 꽃들이 어둠이 내려앉자마자 져버리고 꽃잎에는 핏빛이 서린다. 그 와중에도 유도화는 홀로 버텨낸다. 다른 꽃들이 우리를 떠나는 순간에도 유도화에 내려앉은 초자연적인 눈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죽음의 은총으로 혼령이 된 사람을 담은 상자 수백 개가 매일 이 세상에서 사라지거나 불타오른다. 죽은 혼령은 모든 것을 알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침묵은 꽃의 침묵과 같다. 두 눈은 끝끝내 땅속에 묻지 못한다. 낮은 담장 위를 타고 올라가는 등나무는 황홀경에 빠진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언젠가 내가 2미터 깊이의 침묵 아래에 자리하는 순간 나는 이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꽃과 빛, 푸르름을 말하는 내게 세상은 늘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빈정댄다. 하지만 13세기, 일본의 현인 도원(道元) 선사는 “우주 삼라만상이 꽃의 감성과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유도화와 거대한 어둠 사단이 벌이는 전설적인 결투를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의 『쉬레나』 속에서 또다시 만난다. 태양 아래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용암의 결투를 보는 듯하다. 공주가 자신의 심부(深部)에 들어가 불을 찾는다. 금박을 두른 그녀의 외침은 편한 잠에서 갑작스레 빠져나와 삶의 한없는 고통을 되짚으려는 17세기 어느 죽은 여인의 울부짖음이다. “항상 사랑하고, 항상 고통스럽고, 항상 죽어가기를.” 이 외침에 난 아연해지고 어느덧 충만해진다. 이 울부짖음으로 내게는 평온함이 찾아온다. 시간이 늦었다. 『쉬레나』를 연달아 두 번이나 읽었다. 우리는 단 한 편의 시만 손에 쥔 채 죽음의 강물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읽고, 쓰고, 사랑하는 것은 신성한 삼 요소이다. 시는 몹시 뜨거운 돌로 만들어진 침묵의 원이며 세상은 별에 닿을 듯한 차가움이다. 새벽 두 시 즈음 공주는 죽고 나는 공주의 외침에 사로잡힌다. “항상 사랑하고, 항상 고통스럽고, 항상 죽어가기를.” 세상은 이 외침에 깃든 영감을 알지 못한다. 삶의 등잔불을 켜는 것을 죽음을 아는 자다. 삶의 손길 배짱 두둑한 두 천사가 지상으로 내려와 세상을 평정한다. 어느 흑백영화에서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과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가 바흐의 콘체르토를 연주하고 있다. 두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가 너무도 강렬해서 두 사람이 연주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오이스트라흐는 엄마가 갓난아이의 숨소리를 살피는 것보다 더 상기된 채로 자신의 악기 소리를 듣고 있다. 천국에 고용된 두 사람이 담배를 피우며 길을 가로막고 있는 돌을 주워 저 멀리 던져 버리듯 세상을 들어 올린다. 두 사람의 새하얀 손이 악기의 새까만 목 위로 날아다닌다. 메뉴인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는다. 그리고 침묵의 지배자가 있는 저 위를 향해 기품 있는 얼굴을 들어 올린다. 현을 짚는 손은 한 마리 우아한 백조의 부리를 연상시키고, 그가 어루만지는 현 위로 활이 세차게 튀어 오른다. 나는 바흐가 광인(狂人)이었음을 알고 있다. 나는 바흐를 이해할 수 있다. 바흐는 불안증에 시달려 미치광이가 되었다. 바흐의 음악은 어린아이가 엄마의 두 팔 한가운데에 안착할 거라 굳게 믿고 아직 완전하지 못한 다리로 돌진하듯 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불안한 손에 떠밀려 깊은 수렁으로 달려가던 아이는 때마침 길목에 있던 고요한 엄마의 품에 안긴다. 두 음악가를 찬미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이 하나 있다. 아버지는 눈을 맞으며 밖에 서 있다. 차가워진 손을 데우려고 두 손을 비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손이 크나큰 믿음으로 다른 한 손을 감싸고 있다. 아버지는 이 동작으로 지금은 당신처럼 세상을 떠난 두 명인(名人)을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차갑게 얼어붙은 세상의 넓은 길을 건널 수 있을 만큼의 따스함과 충만한 불이 느껴진다. 밤은 붉은 장미의 내부처럼 어둡다. 조르주 드 라투르(Georges de La Tour)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야등을 밝힌 마들렌 성당 안에 놓은 초의 심지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리고, 별과 별 사이를 갈라놓은 공백보다 더 큰 공백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자리 잡은 것이 보인다. 각자 일하고, 또 일하고, 자기 이익을 쫓아 일한다.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짓밟히고 만다. 바흐는 불안에 사로잡혀 머리맡에 변치 않는 것을 데려다 놓은 아이와 같다. 문득 담배를 입에 물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깨끗해진 유리잔 세 개를 손에 들고서는 매번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 세게 쥐지 마라, 깨지니까.”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저 찬장 어디엔가 깊숙이 숨어있는 꽃무늬 접시를 찾아내 그 접시가 뜨겁고 레몬 향 나는 물줄기를 맞으며 되살아나게만 해주면 된다. 그저 마음 없는 형체에 불과한 그릇이라는 물건이 설거지를 통해 태초의 아침이 내뿜는 찬란함을 다시금 얻게 되는 것이다. 저 멀리 텔레비전이 고요함과 사색의 숭고한 목을 무감각하게 내려치는 사형집행인처럼 자신의 음울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광고가 연이어 요란하게 울리면 침울한 기적이 세상 위로 쏟아져 내린다. 침울한 기적의 예언자는 미묘한 미소를 띤 젊고 반들반들한 피조물이다. 우리는 그런 허황된 꿈을 쫓을 만큼 지독히 불행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먹고 남은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순간 등 뒤에서는 이윤에 목이 마른 마네킹들이 전파에 나와 지옥 같은 식탁을 차리고 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는 세상의 종말보다 더 끔찍하다. 햇빛을 굴절시켜서는 안 되는 법이다. 더러워진 그릇은 하루에 두 번 다시 태어난다. 그릇이 일상의 불가사의한 진부함 속에서 조류가 흐르듯 파동을 일으킨다. 나는 ‘옛날 방식’처럼 손으로 설거지하는 것을 좋아한다. 텔레비전에서는 황금빛 마스크를 쓴 마네킹들이 이상한 물건을 선전하기 시작한다. 마치 죽음을 고치는 묘약을 찾은 것처럼 떠들어댄다. 하지만 죽음은 병이 아니다. 크리스털 잔이 싱크대에서 깨지고 손가락에 피가 약간 맺힌다. 핏방울은 살갗의 하늘 위에 뜬 붉은 구름이자 살아 있는 자가 중얼거리는 한 편의 시다. 짐승과 구름, 그릇은 삶이 주는 엄청난 충격이 어떤 것인지 안다. 우수에 찬 모습과 잘린 채 여기저기 흩어진 모습, 가장자리에 이가 빠진 모습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나는 쇠똥과 종이책, 손으로 하는 설거지 예찬론자다. 지금껏 서투름이 낸 상처로 붉어진 삶만큼 진실한 것을 본 적이 없다. 하루는 의사가 실수로 결석 통증을 가라앉히는 주사를 잘못 놓은 적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얼굴과 가슴은 온통 붉은 반점으로 뒤덮였고 혈압이 급격히 떨어졌다. 곧바로 알레르기 전문의가 와서 맞고 있던 주삿바늘을 뽑았고 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눈을 감았고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꼭 잡은 아버지의 손길만 느껴졌다. 나는 그 손길이 나를 한 손에 감싸 안을 수 있을 만큼 작아져 있었고 육체와 영혼은 그 안에 숨어 있었다. 다소 묵직하고 주름진 아버지의 그 손이 나의 안식처가 되었고 내게 확신과 믿음을 가져다주었다. 마찬가지로 오이스트라흐와 메뉴인의 손도 숭고한 붉은 생명의 손을 꼭 잡고서는 그것이 검게 변했다가 이내 차갑게 굳지 않도록 해준다. 아름다움은 부활의 힘을 지니고 있다. 보고 듣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살아생전에 천국으로 들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그런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서다.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그날 아침 세상의 풍파에 시달려 낡아버린 집에서 그리스도가 나온다. 나이는 대략 서른 살 정도. 손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그는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하고 그가 떠난 후에는 친구들이 가시덤불 조각을 하나둘씩 거둔다. 기쁨으로 가득 찬 대기가 그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고, 냇물이 털어놓는 흉금이 그의 손을 스치고, 그가 지나는 길에 마주친 여우가 눈부시게 빛난다. 이 모든 것 중 어느 것도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 없다. 대부분 목동과 어부, 포도 재배가가 속해 있는 인고의 세계에서 그 아름다움을 끌어다 쓴 몇몇 말들. 이것은 가장 위대한 시인이 이 땅의 길을 지나며 남긴 전부다. 사실 시를 쓴다는 것은 삶과 죽음을 똑바로 마주 보고 텅 빈 마음 안에 잠자고 있는 별을 깨우는 일이다. 위대한 방랑자가 남긴 이런 말들이 지닌 힘을 주석자들은 진부한 표현으로 마멸시키려 했지만 그 말들은 끝까지 버텨냈다. 단순한 것은 마르지 않는 샘이다. 한편 신학자들은 인간이 흘리는 눈물 주변에 들러붙어 분주히 돌아다닌다. 그 모습은 꼭 풀숲에 떨어진 달콤한 열매에 붙어 앉은 말벌 떼를 보는 듯하다. 그리스도는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에서 신의 얼굴을 어렴풋이 드러냈다.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그리스도가 한 이 말은 삶에 대한 애정이 가장 묻어나는 말이다. 누구나 이 말이 전하는 내면의 떨림을 알고 있다. 어떠한 삶도 이 외침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이 말은 사랑하는 마음이며 떨림 속에 잠들어 있으나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신이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코 허공에 외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허무함을 비난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숨은 끊어지고, 기(氣)가 떠난 육신에는 썩어가는 살갗만 남는다. 그리스도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이 마지막 외침이 그리스도를 천사보다 나은 존재로 만들었다. 그 역시 불안에 사로잡혀 상처 받기 쉬운 우리의 형제인 것이다.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대답 없는 하느님의 차가운 얼굴에 부딪혀 터져버린 바로 그 외침으로 인해 이 말을 내뱉은 자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다. 끊어진 혈관에서 쏟아져 흘러 나가는 피처럼 믿음이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 자신을 죽이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애정 어린 말을 내뱉는 우리 자신 말이다. 어둠이 진해져야만 별이 얼굴을 내미는 법이다. 아름다운 날들 신이 인간들에게 땅을 점령하라고 명령한다. 모두가 달려드는 와중에 딱 한 사람, 어느 집시 여인만이 뽕나무 앞을 서성거리며 검붉은 오디 열매만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다. 마침내 그녀가 출발했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후다. 근본적이며 절대적 존재인 그녀는 시인들의 어머니이며, 세상의 모든 라비아 알 아디위야(Rabi’a al-’Adawiya)도 바로 이 명석한 느림보의 후손이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유행이 지난 똑같은 치마만 입고 다닌다. 그중 강렬한 주홍빛 치마 하나는 유명 디자이너의 그것보다도 더 생기 있어 보인다. 궁색함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옷차림의 그녀가 마치 여왕처럼 다가온다.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립스틱을 칠한 성령의 비둘기 같다. 그녀는 무수한 시련을 겪으며 죽음을 탐독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만이 그러할 수 있듯 삶을 아끼고 사랑한다. “늘 똑같은 치마만 입어.”라는 말은 그녀에 관해 떠도는 소문일 뿐이다. 그녀는 이런 말을 무시하고 한 편의 시처럼 눈부신 치마를 고르러 다닌다. 그녀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며 이렇게 말한다. “청빈한 생활을 즐기지만 초라해 보이고 싶진 않군요.” 파리의 겨울 세일 기간 중 하루는 흡사 다채로운 빛깔의 태양처럼 진열돼 있는 신비로운 치마 하나가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갠지스 강가에서 온 그 치마는 결혼반지를 통과했다던 전설의 드레스만큼이나 얇다. 부유한 서구인들을 위해 인도의 굶주린 어린 소녀가 짠 치마가 태양 광선이 화려하게 내리쬐는 세계를 뽐내고 있다. 그 치마를 가져가는 사람을 태양을 삼켜버리는 이로 만들어버릴 만큼. 셰에라자드의 치마를 쇼핑백에 담고 하늘 아래를 거니는 그녀의 모습이 흡사 가시로 가득 찬 속세의 무대 위에서 기쁨에 젖어 춤추는 발레리나의 몸짓과도 같다. 그녀가 늙은 집시 여인 앞을 지난다. 늙은 집시 여인의 영혼과 육체는 처참하고도 지옥 같은 불길 안에서 녹아내렸고, 지팡이를 짚은 손은 마치 덩굴손으로 휘감긴 포도나무 그루를 보는 듯하다. 관자놀이에 달라붙은 숄은 마치 썩은 붕대처럼 보이고, 온화함을 가장해 뿌옇게 젖어든 두 눈가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어떤 진실된 일이 이루어질 때란 일순간 이성이 화려하게 몰락하고 하늘에 진동이 일어나는 때이다. 그녀가 집시 여인에게 쇼핑백을 건넨다. 그러자 집시 여인은 허공을 향해 중얼거린다. “이건 딱 천일야화에 나올 법한 치마네. 천사들의 작업장에서 나온 천일지도 몰라. 이 옷이 내 손에 들어 온 건 신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는 증거나 다름없어.” 그녀는 집시 여인의 말들을 뒤로한 채 걸어간다. 자신도 모르게 이루어진 신비로운 행동과 자극된 삶의 깊은 심연을 향해서. 그녀가 한 일은 그 어떤 희생도 아니며 그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은밀한 명령에 대한 복종일 뿐이다. 결국 늙은 걸인이 그 치마를 입은 채 죽은 자들의 세계로 떠나면서 그녀의 행동이 지녔던 찬란함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겠지만, 언젠가 늙은 걸인이 불쑥 내뱉는 말과 함께 그 찬란함이 다시 돌아온다. 가장 소중한 진실을 품은 채로, 아니 더 나아가 가장 고귀한 것을 세상으로부터 약탈당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되돌려 주며 얻은 고결한 기쁨을 시를 통해 영원히 전하며 그 찬란함이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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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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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축복 3:16
내 생애 최고의 축복 3:16 맥스 루케이도 지음 두란노 / 2008년 3월 / 212쪽 / 10,000원 ▣ 맥스 루케이도 세 딸의 자상한 아버지요, 사랑스런 남편이다. 딸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목사다.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작가이자, 따뜻한 …
내 생애 최고의 축복 3:16 맥스 루케이도 지음 두란노 / 2008년 3월 / 212쪽 / 10,000원 ▣ 맥스 루케이도 세 딸의 자상한 아버지요, 사랑스런 남편이다. 딸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목사다.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작가이자, 따뜻한 목회자인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 복음을 독특하고 상상력 넘치는 우화로 풀어낸다. 또 감성적 필치로 전달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영적인 통찰력과 현대적 감각까지 겸비한 글쓰기로 전세계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삶의 오랜 여정을 함께하는 친구 같은 편안함이 그의 매력이다. 그가 쓴 책은 미국복음주의기독교출판협회(BCPA)가 매년 각 부문별로 선정하는 골드메달리언을 7번이나 수상했고, 그중에서도 3권은 ‘올해의 책’으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크리스채니티투데이》는 그를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작가’로 극찬했다. 현재 그는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에 있는 오크힐스교회의 목회자로 섬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목마름』, 『믿음 연습』, 『마음 한번 쉬어가게나』 등이 있다. ▣ 오현미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했으며 기독교서적을 번역하는 전문 번역가다. 역서로는 『여자의 일생은 자신감으로 결정된다』, 『나를 움직이는 소명』, 『C. S. 루이스의 영성』, 『하나님의 임재 연습』 등 40여 권이 있다. ▣ Short Summary 맥스 루케이도는 성경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자주 인용되는 말씀을 깊이 파고 들어간다.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이다. 루케이도는 먼저 이 말씀이 예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하시는 중에 나왔다는 배경을 설명한 뒤, 이 약속의 말씀을 한 마디 한 마디 해부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을 주는 신학의 핵심을 찾아낸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영생을 얻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루케이도는 이런 질문들에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허물없는 말투로 유명한 이야기들과 실제 예화를 들어가며 답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그리고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결단에 대해 조목조목 납득시킨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주사 제가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아버지와 떨어지면 저는 죽습니다. 아버지와 함께라면 저는 영원히 삽니다. 저는 생명을 선택합니다. 아버지를 선택합니다.” 자신이 이런 기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 확실하지 않다면 그건 하지 않은 것이다. 비행기에 올라타고도 탄 것을 모를 수는 없다. 비행기에 타놓고 그것을 숨길 수도 없다. 무임승차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그 신앙이 공공연히 드러난다. 우리는 나쁜 행실에서 선한 행실로 돌이킨다(회개). 정욕을 쫓는 일을 멈추고 새 주인을 맞아들인다(고백). 헌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보인다(세례). 우리는 자신의 선택을 비밀로 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뭐겠는가? 우리는 그리스도 덕분에 본향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 차례 1. 사랑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사랑하면 관심이 생긴다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한가지 /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비결 / 51자로 이뤄진 소망의 퍼레이드 / 사랑은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것 사랑하면 부족함이 채워진다 잠금 장치를 풀어주시는 분 / 양심은 하나님의 지문이다 / 단 2분도 거룩할 수 없는 인가 / 아무리 내어주어도 넉넉하신 하나님 사랑하면 두려움이 작아진다 믿음과 두려움의 아이러니 / 결혼 생활에서 버려야 할 한 가지 / 매일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라 사랑하면 좋은 점은 닮아간다 사랑은 대상을 놓아 보내지 않는 것 / 하나님을 닮은 사랑이 있다 /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배려 / 목적 없는 사랑의 힘 /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지 말라 2. 사랑하는 만큼 헌신한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가장 큰 헌신은 자녀를 내 놓는 것이다 모든 권위를 물려받은 독생자 / 내 인생을 수놓으신 예수님 / 예수님의 헌신과 내 삶의 목적 헌신이 있는 곳마다 복음이 꽃핀다 마음의 병을 고백하는 즐거움 / 완전한 헌신 앞에서 침묵하다 / 거룩한 자아를 만나다 / 지친 사람들을 위한 복음의 메시지 3. 믿는 만큼 전도한다 “그를 믿는 사람마다”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나? 구원과 출산의 공통점 /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난 이유 / 구원받기 위해 버려야 할 한 가지 내가 할 일, 하나님이 하실 일 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하여 / 아버지의 수고, 아들의 구원 사랑하는 사람을 지옥에서 구하다 천국의 진짜 주인공 알려주기 / 지옥의 상황을 정확히 말해주기 / 천국으로 휴가를 갈 수 있다면 / 남겨진 자들의 슬픔 천국은 누구든지 환영한다 잔칫상에 붙어있는 내 이름표 /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말 / 부자와 나사로의 반전 드라마 / 언제든지 불러주시는 하나님 4. 내 생애 최고의 축복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면 행복하다 천국은 지루하다? / 하나님이 주시는 올 A 성적표 / 최고의 행복을 영원히 누리는 곳 / 갈등과 슬픔, 피곤함이 사라지는 곳 / 천국에서 내게 맡겨진 일 하나님을 믿으면 영원히 산다 믿음이 일으키는 내면의 기적 / 그분이 그곳에 계셨으므로 / 3달러50센트의 미청구 자산 / 영생을 주시는 약속 요한복음 3장 16절로 변화된 삶 내 생애 최고의 축복 3:16 맥스 루케이도 지음 두란노 / 2008년 3월 / 212쪽 / 10,000원 1. 사랑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니고데모는 자기 집 2층 창가에 앉아 올리브 잎 차를 마시며 해 지는 광경을 바라본다. 이 시간 예루살렘 풍경은 아주 황홀하다. 지는 햇빛에 돌로 쌓은 거리들이 연하게 물들고, 하얀 집들은 금박을 입힌 듯 반짝거리고, 완고해 보이는 성전 건물이 유난히 돋보인다. 니고데모는 오늘 아침 성전 안뜰을 거닐었다. 내일 아침에도 그럴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과 한데 모여 그들이 하는 일을 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논하는 일, 즉 하나님께 다가가는 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법, 그리고 하나님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법에 대해 논하는 일 말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그들과 한자리에 앉아 있다. 논쟁하기, 생각하기, 수수께끼 같은 문제풀기, 딜레마 해결하기, 안식일에 신발 끈을 묶어도 되는가,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밥을 줄 것인가, 아내와 이혼해도 되는가, 부모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니고데모는 알아야 한다. 그것이 그의 직업이다. 그는 거룩한 사람이고, 거룩한 사람들을 지도한다. 그의 이름은 율법학자들의 엘리트 명단에 올라 있다. 그는 율법에 일생을 바쳤고, 유대 최고 법정을 구성하는 일흔한 명 중의 한 사람이다. 니고데모는 신임 받는 사람이고, 그에게는 영향력이 있다. 그런 그가 의문을 품고 있다. 갈릴리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사람에게 가서 의문을 풀려고 한다. 졸업 증서도 없는데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 보잘것없는 교사. 대중들에게는 얼마든지 시간을 내주면서 성직자나 고고한 상류층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이 사람. 그는 마귀를 쫓아낸다고 한다. 죄를 사해준다고도 한다. 성전을 깨끗케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니고데모도 의심이 없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솔로몬의 행각을 정결케 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그의 분노를 보았다. 그는 채찍을 휘두르면서 비둘기들을 날려보냈다. “내 집에서 주머니를 불리지 말라!” 예수님의 분노가 폭발했다. 소동이 가라앉고 허공에 날아다니던 동전들이 땅에 떨어질 즈음, 성전에서 벌어지는 매매 행위로 부정 이득을 보던 성직자들은 그를 뒷조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밤에 움직인다. 동료들은 이 만남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알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그들이 이해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도성 안에 어둠이 내려 덮이자 그는 길을 나선다. 남들의 눈을 피해 좁은 길로 접어들어 어느 소박한 집 문 앞에 이른다. 듣기로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이 집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니고데모는 문을 두드린다. 그가 들어서자 시끌시끌하던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방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선창 일꾼들과 세리들로, 율법학자가 속한 교양인 세계에서 익숙지 않은 이들이다. 그들이 자리를 마련해준다. 예수님은 손님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한다. 니고데모는 자리에 앉아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대화를 시작한다.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선생님이 행하신 그런 표적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도 당신 얘기를 들었소, 니고데모.”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VIP 신분이나 그의 선한 의도, 학문적 자격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연산법에서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렇게만 선언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성경의 대륙 분수령, 신앙의 국제 날짜 변경선을 보라. 니고데모는 이편에 서 있고 예수님은 건너편에 서 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차이에 관해 사정을 봐주지 않으신다. 니고데모는 선한 시도, 성실한 몸짓, 각고의 노력이 통하는 땅에 살고 있다.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신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네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너의 공로는 아무 효과가 없다. 네가 멋들어지게 노력해도 별 의미가 없다. 거듭나지 않는 한 너는 하나님이 과연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 해주실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듯 망설인다. “다시 태어난다고요?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나겠습니까? 농담이시죠? 삶을 거꾸로 돌리라고요? 모든 걸 다시 시작하라고요?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없답니다.” 사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가? 다시 한 번 하기, 다시 한 번 시도해보기, 재장전. 우리가 지나온 자리를 따라 마음이 상했던 일들과 놓쳐버린 기회들이 흔들거리고 있다. 없었던 걸로 해주세요, 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이다. 하지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때 한바탕 바람이 불어, 열린 창문으로 나뭇잎 몇 장이 날려 들어온다. 예수님은 바닥에 떨어진 잎사귀 하나를 주워 올리신다. 하나님의 권능은 저 바람처럼 역사하신다고 예수님은 설명하신다. “새로 태어난 심령은 천국에서 태어난다. 너는 그걸 노력해서 얻을 수도, 창조할 수도 없다. 새로운 탄생?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일은 시종일관 하나님께 달린 일이다.” 니고데모는 방 안의 제자들을 둘러본다. 그들의 얼빠진 표정 역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당혹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사람에게서 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다시 태어난다? 탄생은 수동적인 행위다. 태 속에 들어 있는 아이는 분만에 기여하는 게 없다. 어머니가 탄생의 대가를 치른다. 아기는 탯줄의 도움이 없으면 새 생명으로 가는 길을 찾아나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숨도 쉬지 못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럴 능력이 있는 아기가 아니라 그럴 능력이 있는 부모가 필요하다. 이 부모가 누구인가? 많고 많은 단어 중에서 ‘다시’라는 단어가 정선되었는데, 이 단어를 전략적으로 점검해보라. ‘다시’라고 번역된 헬라어에는 두 가지 쓰임새가 있다. 팔린palin; 어떤 행위를 반복하는 것, 전에 했던 것을 다시 한다는 의미다. 아노텐anothen; 역시 반복된 행동을 뜻하기는 하지만, 이 행동을 반복하기 위해서는 원래 그 행동을 했던 존재가 있어야 한다. 이는 ‘위로부터, 더 높은 곳으로부터, 천국이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처음에 이 일을 했던 존재가 이것을 다시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의미를 선택하셨다. 이 두 단어의 차이는 다빈치가 그린 그림과 내가 그린 그림의 차이만큼 크다. 나 루케이도가 다시 그린 <모나리자>는 피카소 그림처럼 불균형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번째 헬라어인 ‘아노텐’을 채택하셔서, 원래 그 행동을 했던 존재가 그 행동을 다시 할 것을 요구하신다. <모나리자>를 예로 든다면, 다빈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기가 막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호프 다이아몬드(인도에서 발견된 사파이어 빛 보석으로, 세상에 알려진 가장 큰 다이아몬드라고 한다)라고 할 수 있는 말씀으로 그를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51글자로 이뤄진 소망의 퍼레이드,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생명으로 끝맺음하며, 우리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권면하는 말씀, 냅킨에 옮겨 적을 수도 있고 잠깐이면 외울 수 있을 만큼 짤막한,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 말씀에서부터 시작하라. 성경을 통달한 사람이라면 다시 이 말씀으로 돌아오라. 우리 모두에게는 진리를 일깨워줄 말씀이 필요하다. 인간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인간의 핵심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문제를 어떻게 위로하시는지 그 처방이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와 있다. 우리가 믿든 안 믿든,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그리스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위해서는 이 말씀을 거쳐야 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은 은혜의 철자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소망의 목차로,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보석함을 품고 있다. 이 말씀을 큰 소리로 천천히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눈길을 끄는 단어에 주목해보라. 심장을 멈추게 하고 정신이 산란해질 만큼 강렬하며 판을 성사시키기도 하고 깨트리기도 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주장은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하나뿐인 아들을 주셨다’는 것이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육체를 입은 하나님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시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주셨다는 말이 된다. 이유가 뭔가?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고집을 피운다. 결국 어떤 이들은 멸망하고 어떤 이들은 산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드는가? 삶과 죽음은 믿음으로 판가름 난다.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마르틴 루터가 세상을 떠날 무렵 심한 두통으로 몸져누웠다. 통증에 시달리는 그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그 불편함을 덜어줄 약을 복용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그는 약 먹기를 마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머리와 마음을 위한 최선의 처방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머리와 마음을 위한 최선의 처방. 그 처방약 한 봉에 효험을 보지 못할 사람 누구인가?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니고데모도 효과를 보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이 신학자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경의를 표했고, 예수님을 장사 지냈다. 당시의 반 기독교적 풍토를 고려할 때 이는 대단한 일이었다. 혹시 아는가,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나와 다시 활동하신다는 소문이 저잣거리에 퍼졌을 때, 니고데모가 남몰래 미소 지으면서 그날 밤 대화를 떠올렸을지? 다시 태어난다고? 니고데모 자신이 먼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2. 사랑하는 만큼 헌신한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나의 세 딸 중 둘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사우스존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노스존에서 살고 있었고, 사우스존의 병원과는 터널이 뚫려 있는 산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아내가 임신 중일 때 우리는 자주 그 병원으로 차를 몰고 가곤 했다. 나는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갈 때마다 길을 잃었다. 웬일인지 자꾸 방향이 헛갈렸고, 이 길이 그 길 같고 그 길이 이 길 같을 때가 많았다. 300년이나 된 도시이다 보니 되는 대로 뚫린 도로 때문에 그러잖아도 방향 감각을 잃은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고, 길을 제대로 찾아다닐 가망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예수님이었다. 말 그대로 예수님, 구속의 주 그리스도상 말이다. 그 조각상은 높이가 38미터에 양 팔의 길이가 거의 3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로 도시를 수호하고 서 있다. 강철 자재가 1천 톤이 넘게 들어갔고, 턱에서 머리끝까지의 길이만도 3미터다. 해발 700미터의 코르코바도산 위에 자리 잡은 이 고공 예수상은 시내 어디에서나 보인다. 특히 예수상을 찾는 사람 눈에는 더욱 잘 띈다. 길을 잘 잃는 사람인 탓에 나도 이 예수상을 자주 쳐다보았다. 뱃사람이 등대를 찾듯 나는 늘어진 전화선과 지붕들 사이로 이 낯익은 얼굴을 찾았다. 예수님 얼굴을 찾으면 내가 있는 위치도 알 수 있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와 동일한 약속을 제시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공기조차 희박한 높은 곳으로 들어올려 가장 당당한 호칭으로 면류관을 씌우니 그것은 ‘독생자’라는 호칭이다. 헬라어로 ‘모노게네스’라고 표현되는 이 말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조명하는 말이 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아버지이시긴 하지만,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에게서 나신 유일한 아들이시다. 이는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유전자 또는 하나님과 똑같은 유전적 조성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계시며, 아버지께서 다른 어느 누구와도 나누지 않으시는 상호 관계를 맺고 계시다. 또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하나님을 알려주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고 말씀하시면 그렇게 믿으라. 예수님은 아신다. 그곳에서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많은 참새들보다도 더 귀하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대로 믿으라. 예수님은 아신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들의 가치를 다 아신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는 분”이라고 선언하시면 정말로 그런 줄 알라. 실제로 그분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들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신다. 하늘 문에는 한 열쇠가 있고, 예수님이 그 열쇠를 갖고 계시다. 예수님은 권세 있는 분답게 가르쳤다. 그분은 하나님에 대해 유일무이하고 독특하고 비할 데 없는 지식을 갖고 계시며, 자신의 그 지식을 우리에게 나누어주고 싶어 하신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사람이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이 택해 계시해준 사람들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마 11:27). 예수님은 그 지식을 나누고 싶어 하시고, 그 지식을 베푸시며, 계시하신다. 그분은 영원 세상의 비밀을 우리에게 계시하신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초청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내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마 11:28-29). 그분은 말씀하신다. “너를 두렵게 하는 물질의 어려움, 주일 저녁을 우울하게 하는 월요병, 골치 아픈 시댁 식구나 처가 식구들을 대하는 지혜를 내가 가르쳐줄게. 사람들이 왜 싸우는지, 죽음은 왜 찾아오는지, 용서가 왜 중요한지 내게서 배우지 않으련? 그리고 무엇보다 도대체 왜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가르쳐주고 싶구나.” 꼭 배워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다. 정보화 시대는 혼돈의 시대이기도 하다. 뭔가를 하는 방법은 많이 아는데 그것을 왜 하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해답이 필요하다. 예수께서 바로 그 해답을 주신다. 하지만 그분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그걸 아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내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했던 대로 하라. 그분을 찾는 것이다. 눈을 들어, 예수님을 목표로 삼으라. 잠깐 흘긋거리거나 어쩌다 한번씩 쳐다보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 예수님을 당신의 북극성으로, 판단 기준으로 삼으라. 혼잡한 거리와 그림자를 드리우는 지붕들 사이로 예수님의 얼굴을 찾으면, 그분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 3. 믿는 만큼 전도한다 “그를 믿는 사람마다” “그냥 저만 믿으세요.” 로프를 잡고 있는 대학생 나이의 그녀는 쾌활한 목소리로 나를 안심시켰다. ‘나를 믿으라’는 건 15미터 절벽에서 로프가 달린 멜빵을 메고 뛰어내리라는 의미였다. 모든 건 나를 꼬드긴 친구들, 그리고 산 정상에 서보고 싶다는 내 어리석은 자존심 탓이었다. 높은 산에서 로프에 몸을 맡기고 암벽을 하강하는 라펠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라펠링 도우미인 그녀는 아무 일 없이 내려갈 수 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내가 붙잡고 있는 로프를 잡고 뛰어내리세요. 발로 벽을 차면서 내려가시면 돼요.” 별로 마음이 안 놓였다. 그녀는 나이도 내 절반쯤밖에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몸집도 딱 내 절반이었다. 로프 잡아주는 일보다는 발레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할 뭔가가 있지 않나요?” 나는 거의 애원조였다. “절 믿으세요.” 나는 절벽 가장자리로 조금씩 다가가 밑을 내려다보았다. <반지의 제왕>에서 용암 구덩이를 내려다보던 프로도도 나보다 더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 이제 아저씨 차례예요!” 나는 그녀를 다시 한 번 쳐다봤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생각났다.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했던 이 권면은 너무도 간단해 보인다. 정말 이 약속을 믿을 수 있을까? 그냥 ‘믿는다’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그것 말고 뭘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니고데모도 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가 그리스도와 나누었던 대화가 요한복음 3장 16절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걸 기억하라.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 학자가 느낀 당혹스러움은, 뛰어내리라고 하는 로프 아가씨의 말에 내가 느끼는 당혹스러움과 비슷하다. 내가 할 일은 더 없나요? 태어나야 하는 아기는 출산 과정에서 수동적인 역할을 한다. 출산의 수고를 엄마에게 맡긴다. 구원도 마찬가지다. 수고는 하나님께서 하시고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런 생각이 니고데모를 혼란스럽게 한다. ‘뭔가 더 있을 텐데.’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가 좋아하는 책인 토라의 한 구절로 그를 안심시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올린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복음 3장 14-15절). 그건 니고데모가 잘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단 한 구절만 언급해도 그게 무얼 말하는 건지 그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매우 비밀스럽다. 예수님께서는 왜 3장 16절 말씀 전에 먼저 광야의 뱀 이야기를 하셨을까? 여기 그 배경 이야기가 있다. 광야를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모세에게 불평을 해댔다. 이제 약속의 땅에 가까이 왔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필요를 채워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맡겨놓은 돈이라도 있는 버릇없는 아이처럼 말했다. “왜 당신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이 광야에서 죽게 만듭니까?” 전에 이집트의 노예였던 자들이 이집트를 갈망한다. 광야를 저주하며, 파라오를 그리워하고 모세를 비방한다. 그들은 뜨거운 모래가 싫었고, 긴 하루하루가 싫었다. 만나, 아, 그건 생각만 해도 지겨웠다. 그래서 하나님께 온갖 불평이란 불평은 다 늘어놓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독사들을 보내셨고, 그것들이 백성들을 물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이 죽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세를 찾아와 하나님께 자비를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우리가 죄를 지었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뱀을 만들어 막대 위에 달아라. 누구든 뱀에 물린 사람은 그 뱀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모세는 곧 청동으로 뱀을 만들어 막대 위에 달았다. 그리고 뱀에 물린 사람들이 그 청동으로 만든 뱀을 보고 살아났다. 이 말씀은 엄중한 예언의 말씀이었다. 또한 이 말씀은 소박한 예언이기도 했다.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대에 달린 뱀을 바라봄으로써 치유되었다. 죄인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치유될 것이다. 너무 간단해서 사람들은 오히려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모세와 그를 따르는 자들 역시 당혹스러워하며 막대 외에 무언가가 더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적어도 뱀과 맞서 싸우라든지 하는 것 말이다. 우리 역시 좀더 능동적인 일이 주어질 것을 예상한다. 어떤 이들은 자비를 구하기 위해 고행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며 스스로 노력해서 구원을 획득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로프 아가씨가 내게 했던 것과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네가 할 일은 믿는 것뿐이다. 네가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해줄 것으로 믿으라.” 사실 당신은 날마다, 심지어 순간순간마다 이와 비슷한 신뢰의 행동을 한다. 의자가 내 몸을 지탱해줄 것이라 믿기에 안심하고 의자에 체중을 싣는다. 보이지는 않지만,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주는 어떤 힘을 믿는다. 예수께서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그런 믿음을 가질 것을 권하신다. 내가 절벽을 뛰어내리는 순간 도우미 아가씨는 소리쳤다. “여기를 계속 올려다보세요!”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자기 할 일을 다했기에 나는 무사히 산 아래에 착지했다. 4. 내 생애의 최고의 축복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아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걸 싫어하셨으면서 왜 그 나무를 동산에 두셨을까요?” 우리 딸 안드레아는 초등학교 시절에 어른들이나 할 법한 질문을 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상의 답변은, 누가 우리의 창조주인지를 일깨워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역할 바꾸기를 하려 들면서 내가 먹고 싶은 건 무엇이든 다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더 나아가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할 수 있고,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수 있고, 내가 행동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한다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 소유할 수 있으며, 내가 요구하고 싶은 대로 요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두 번 죽게 된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다. 그래서 두 사람은 육신이 죽었고, 결국 영적으로도 그 즉시 죽었다. 그들의 마음은 굳어졌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를 그만두었다. 자기들을 만드신 분과의 교제가 끝났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다. 이 행위가 있기 전 아담과 하와는 마치 양떼가 목자를 따르듯 하나님을 따랐다.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그들은 귀 기울였다. 하나님께서 할 일을 주셨고, 그들은 그 과제를 이행했다. 그들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모든 게 투명했고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잉크 한 방울이 물 컵 하나를 온통 흐려놓듯, 고집스런 행동 하나가 그들의 영혼을 어둡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하나님의 임재는 평강이 아니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제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중단되었고 하나님과의 분리가 시작되었다. 그는 웬일인지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죄를 지은 그 부부는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졌다. 그 이후로 줄곧 우리는 문 밖에서 어슬렁거렸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 무언가가 뒤틀려 있다는 것을. 연결이 끊어져 있음을 우리는 느낀다. 무언가가 생명을 안겨주기를 소망하지만, 그 생명의 양은 얼마 안 된다. 우리는 직업과 연관을 맺고 가정에서 의미를 찾지만,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더 갈망한다. 불만족은 실망과 짝을 이뤄 버릇없는 자식들을 낳는다. 술 좋아하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고, 주당 80시간 일하는 일벌레가 되고, 변태적 섹스에 몰입하는 것 등이 바로 그 자식들이며, 이 모든 것들은 다 에덴에 대한 갈망을 어설프게 위장한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아담의 잃은 것을 되찾고 싶어 한다. 누군가가 말했다시피, “사창가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사실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사창가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할 때, 예수님께서 초대장을 들고 한 발 앞으로 나오신다. 비록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지만, 누구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믿음이 일으키는 내면의 기적을 놓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권시키사 에덴동산에서의 지위를 되찾게 하신다. 아담과 하와가 했던 일을 지금 우리도 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가정이 하나님과 동행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우리도 들을 수 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우리도 투명하고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다. 이제 도망치거나 숨지 않아도 된다. 예수님의 제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로부터 살리시어 산 소망을 얻게 하심으로 여러분을 위해 하늘에 쌓아 둔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얻게 하셨습니다”(벧전 1:3-4). 다른 이들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겠다 말하지만, 예수님처럼 하겠다고 하는 이는 없다. 우리를 자신의 능력에 재연결시켜 주겠다고 하는 이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맨 처음 그분을 따르던 제자들의 말에 의하면, 궁극적인 대답은 바로 빈 무덤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로부터 살리시어 산 소망을 얻게 하심으로” 한 마디로 말하자면, 빈 무덤이 초보 그리스도인들을 설득시켜 그리스도와 운명을 같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으로 열두 제자에게 그 후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동시에 나타나셨으니 그 가운데 대부분이 지금도 살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잠들었습니다”(고전 15:5-6). 예수님께서 정말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실 수 있을까? 우리가 그분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실제 삶의 현장에서 직접 설득력 있는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베들레헴에 계셨다. 신성을 모두 지니신 분이 3.5킬로그램의 몸에 기꺼이 자신을 가두고 헛간 누더기에 감싸여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추위에 몸을 떠셨다. 한기가 도는 빈 주머니, 급작스런 변화의 두려움에 맞닥뜨린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선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곳에 그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나사렛에도 계셨고 갈릴리에도 계셨다. 예루살렘에 계실 때에는 비난하는 자들을 눈빛으로 제압하시고 냉소하는 자들에게 대항하셨다. 우리에게도 나사렛이 있고, 갈릴리가 있다. 갖가지 요구가 있고 정해진 시한이 있다. 우리는 여러 모양의 도전들 앞에서 왜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가? 그분이 그 도전의 현장에 계셨기 때문이다. 나사렛에, 갈릴리에, 그리고 예루살렘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분이 무덤에도 계셨다는 것이다. 조문객으로서가 아니라 시신으로 말이다. 그분은 시체들 가운데 매장되셨다. 죽은 자로 처리되셨다. 당신은 아직 무덤에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무덤에서 나오는 길을 아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지금 종착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돌아보는 여정을 다 마쳐가는 이 즈음, 우리는 한 가지 더 깊이 생각해볼 것이 있다. 바로 ‘생명’이라는 단어다. 예수께서는 이 단어에 ‘조에 zoe’를 제안하셨다. 이 헬라어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대로의 생명’을 뜻한다. 이와 비슷한 단어 ‘비오스 bios’가 포괄적인 생명을 뜻하는 반면, ‘조에’는 집약적인 생명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오래 살 것이냐에 대해서는 별 말씀이 없으시고, 삶의 질, 생명력, 에너지, 실현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혼을 하나님과 재연결시키신다. 영혼은 하나님의 도장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한다. 생각하고, 질문하고, 숙고한다. 청사진을 만들고, 항해도를 그린다. 그런데 아담처럼 당신은 자기 영혼을 사용해 하나님께 불순종했고 죽음이 왔던 것이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제안은 요한복음 3장 16절이다. 어떤 이들은 이 구명조끼를 입는다. 당신은 그 조끼를 입던 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찬바람 몰아치는 여러 해 겨울을 당신과 동행했다. 나는 앞으로 닥칠 겨울날들에도 이 말씀이 당신을 따뜻하게 해주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과연 자신의 무덤을 변화의 공간으로 만들고 당신의 무덤 또한 그렇게 만들라고 제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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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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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궁금해요
천국이 궁금해요 랜디 알콘 지음 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3월 / 213쪽 / 9,000원 ▣ 저자 랜디 알콘 랜디 알콘은 천국에 관한 연구를 무려 25년 동안이나 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대한 확신과 소망 없이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
천국이 궁금해요 랜디 알콘 지음 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3월 / 213쪽 / 9,000원 ▣ 저자 랜디 알콘 랜디 알콘은 천국에 관한 연구를 무려 25년 동안이나 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대한 확신과 소망 없이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천국을 전하고, 천국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아버지 집으로』(토기장이)와 「헤븐』(요단) 등 천국에 관한 좋은 책을 썼습니다. 『천국이 궁금해요』는 그가 특별히 어린이들을 위해 쓴 책으로, 어린이들이 궁금해하는 천국에 관한 모든 내용들을 간결하고 재미있게 구성해놓았습니다. 그는 23권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며, 선교단체인 EPM(Eternal Perspective Ministries)의 대표로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소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역자 전나리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석사를 받았습니다. Boston Academy of English에서 Tefl certificate를 받았고, 공저로 『CNN이 술술 잘 들리는 듣기 공식 30』, 역서로는 『위로부터의 부르심』, 『십대를 위한 행복한 10분 묵상』(토기장이)이 있습니다. 현재 YBM시사 역삼ELS에서 영어회화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 Short Summary “천국은 정확히 어디에 있죠?”, “천국에서도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나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등 어린이들은 우리가 대답하기 힘든 천국에 대해 늘 질문을 해온다. 그럴 때마다 많은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난감해하는데, 이제 안심해도 된다! 『천국이 궁금해요』는 어린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천국에 대해 아주 재미있게 알려주고 있다. 특별히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질문과 답’ 형식으로, 그리고 진리를 알도록 ‘성경 말씀’으로 천국을 풀어나가고 있다. 천국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는 주제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궁금증까지, 이 책은 천국의 모든 것을 대답해준다. 그러나 이 책의 요점은 천국에 대한 지식을 넘어 복음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어린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전함에 있다. 특별히 이 책은 각 장마다 영화로도 개봉된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들어있어 더욱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여러 활동들을 통하여 어린이들이 천국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친구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도전하고 있다. 또한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나보낼 때, 아픈 친구들을 보며 낙심하고 슬퍼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놀라운 시작임을 그리고 언젠가 천국에서 만나게 될 것임을 확신시켜주고 있다. 즉 어린이들이 죽음을 성경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 차례 01 천국이 진짜 있는지 궁금해요 02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03 천국에서 하나님과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요 04 땅이면 땅이지 ‘새 땅’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05 새 땅을 누가 다스리게 되는지 궁금해요 06 천국에서 나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요 07 천국에서 누구와 지내는지 궁금해요 08 천국에서도 동물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지 궁금해요 09 천국에서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요 10 저 같은 아이도 천국에 갈 수 있는지 궁금해요 11 영원히 계속될 위대한 이야기, 천국이 궁금해요 천국이 궁금해요 랜디 알콘 지음 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3월 / 213쪽 / 9,000원 01 천국이 진짜 있는지 궁금해요 천국은 정말 있나요?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과 성경의 다른 지은이들은 천국을 정원, 도시, 나라, 왕국, 그리고 낙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이 실제로 존재하는 진짜 장소인지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심지어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구름 위를 떠다니는 유령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천국은 진짜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천국을 ‘새 땅’이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죽어서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가 땅과 나무와 물이 있는 세계, 곧 새 땅에서 살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상상해본다 하더라도, 상상 그 이상으로 훨씬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보아라, 내가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다. 옛날 일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이사야 65:17). 천국을 본 적도 없는데 어떤 곳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천국은 누군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둔 환상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실제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제가 천국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한 친구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에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이라고 하지 않았나?(그 친구는 고린도전서 2장 9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릴 위해 천국에 무엇을 예비해놓으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고.” 도대체 천국처럼 지금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천국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제 친구는 성경 말씀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서는 우리가 보거나 들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 지혜를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속속들이 살피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지 그렇지 않을지에 대해 우리가 선택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믿는 것이, 우리 미래의 집인 천국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에 대한 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지옥에서 건짐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주목하세요. 이 말은 우리가 그것을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죽으셨고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히브리서 2:14-15).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우리는 감사 가운데 그분이 주신 값없는 선물, 영원한 생명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죽을 때에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볼까요? “나는 죽어서 천국에 갈까?” 02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죽음은 우리에게 하나의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해주는 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은 뒤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갑니다. 다만 다른 곳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 책의 대부분은 ‘미래의 천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영원토록 살아갈 곳입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천국은, 새 땅에서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될 미래의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개 우리는 크리스천들이 죽을 때 가게 되는 ‘현재의 천국’을 생각하죠. 부모님이 여러분에게 “할머니는 지금 천국에 계시단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 말은 현재의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천국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영원토록 존재할 미래의 천국은 바로 ‘새 땅’이라고 불립니다. 현재의 천국과 미래의 천국은 무엇이 다르나요? 현재의 천국은 천사들이 살고 있는 곳이며, 사람들이 죽으면 바로 가게 되는 곳입니다. 그곳이 멋진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성경에서는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 이곳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다(빌립보서 1:2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정말로 이곳에서의 삶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미래의 천국의 가장 멋진 점은, 우리가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은 미래의 천국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후,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전에 있던 하늘과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 보좌로부터 큰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요한계시록 21:1,3-4).” 어떤 사람들은 새 땅이 천국으로 불리면 안 된다고 하지만, 천국이 어떤 곳이든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이라고 정하신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새 땅을 그분이 거할 곳으로 선택하신다면, 새 땅도 천국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요.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 계획을 분명히 이루실 것입니다.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에베소서 1:10). 새 땅은 우리가 지구에서 기뻐했던 모든 좋은 것들을 다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단지 훨씬 더 좋다는 것만 빼고요. 그리고 새 땅은 지금 이곳과 매우 비슷한 곳이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 여기에 있는 질투, 미움, 왕따 같은 나쁜 것들은 전혀 없을 것이라는 차이점은 있겠지요. 03 천국에서 하나님과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요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을 보게 되나요? 예수님은 “마음을 깨끗이 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복음 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요한복음 4:24)”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처럼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곧 하나님 자신이시므로, 예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은 여러분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들 중 가장 1순위가 될 거예요. 가장 멋진 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여러분이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인 성경읽기, 그분께 기도하기, 그리고 언제나 나와 함께해주시는 예수님께 감사하기를 통해서 말이죠. 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나요?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걸 빚진 사람들입니다. 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빚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주려고 왔다 (마태복음 20:28). 우리를 향하신 놀라운 사랑 안에서, 왕이신 예수님은 자신이 종이 되심으로 우리를 왕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종들에게 명하여 우리를 섬기라고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 자신이 친히 그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인 것입니다. 이러한 그분의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을 더욱 더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04 땅이면 땅이지‘새 땅’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하나님은 지구를 완전히 멸망시키나요? 주님의 날은 도적같이 갑자기 올 것입니다. 하늘이 큰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에 의해 녹을 것입니다. 또한 땅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도 불타 버릴 것입니다(베드로후서 3:10). 상당히 무섭죠? 하지만 예수님을 아는 여러분은 느긋하게 있어도 됩니다. ‘마지막’이 온 후에는 영원히 지속되는 멋진 삶이 새롭게 시작될 테니까요! 성경에서는 한동안 지구가 파괴되어 있을 테지만,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동일한 옛날의 지구를 새로운 지구로 만들 것이고, 그 새로운 지구는 역사상 최고의 모습을 갖게 될 것입니다! 즉 새 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구를 다시 새롭게 만드실 때, 우리는 그곳에서 그분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목수였다는 것을 기억하시죠? 이 지구는 지금 고장이 나 있습니다. 죄 때문에 ‘완벽’하고는 완전히 멀어졌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고치실 것입니다. 우리들을 고치시는 것처럼요. 우리는 새롭게 창조된 사람이 될 것이며, 새로운 지구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05 새 땅을 누가 다스리게 되는지 궁금해요 새 땅은 누가 다스리게 되나요?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언젠가는 예수님이 온 우주의 통치자로 선포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리로 얻은 그 왕국을 아버지께 드릴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28). 그리고 하나님은 그 새 땅을 통치하는 책임을 그분의 백성들에게 주실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2:5). 세상을 창조하시기 훨씬 오래 전에 하나님은 인간이 지구를 다스리도록 결정해놓으셨거든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를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채워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창세기 1:28).” 우리는 새 땅에서 얼마나 오랫동안(누구를) 다스리게 되나요? 새 땅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할 그 왕국은 얼마나 오래 가는 걸까요? 하나님은 다니엘 7장 18절에서 선지자 다니엘에게 이에 답을 주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라를 다스릴 권세를 받을 것이며, 지금부터 영원히 그 권세를 누릴 것이다. 즉 우리는 잠깐 동안 왕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러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이끌고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다른 천사들도 포함해서요. 또한 하나님이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명하셨던 것처럼, 동물들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다스릴까요? 역시 다른 사람들입니다. 어떤 나라든지, 누군가가 다른 여러 사람들을 책임지고 다스리는 위치를 갖게 됩니다. 즉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기도 하고, 또 다스림을 받기도 하지요. 하나님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까요? 아버지 하나님은 이사야 9장 7절에서 구원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왕권은 점점 커지겠고, 평화가 그의 나라에서 영원히 이어진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다윗의 나라에서 다스릴 것이다. 그가 정의와 공평으로, 이제부터 영원토록 그 나라를 견고하게 세울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왕국이 끝이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말은 창조주 하나님이 그분의 왕국을 확장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를 만드실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하나님은 독창적인 예술가이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뒤, 하나님은 은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항상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복음 5:17)”라고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실 때, 그분은 분명 그 창조물을 관리하는 책임을 우리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우리에겐 할 일과 가볼 곳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들도 만날 것이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기쁨이 되며, 우리의 창조주이자 아버지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06 천국에서 나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요 천국에서 우리는 천사가 되나요? 답은 “아니오”입니다. 천국에 가서 살더라도 여러분은 여전히 사람일 것입니다. 천사와 인간 모두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음 받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아래, 천사들은 우리들을 도와줍니다. 천국에서는 우리가 천사들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6:2-3). 정말 멋진 일이죠? 천국에서도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나요? 천국에서도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다 선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은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가능하고 금지구역이란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천국에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이 땅에서 우리가 괴로워했던 나쁜 마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먹거나 부족하게 먹는 일 없이 음식을 즐길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그 어떤 일들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오신 후, 새 땅에서는 해야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에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천국에서도 나는 ‘나’인가요? 기쁜 소식입니다! 그것은 바로 천국에서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라는 사실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은 부활하기 전과 똑같은 그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누가복음 24: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일주일 뒤에, 예수님을 본 도마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요한복음 20:28)”이라고 말했습니다. 도마는 이전에 자신이 따랐던 예수님과 만났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옛 땅에서 새 땅으로 가더라도 우리 자신의 기억은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러니 여전히 내 가족과 친구들도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가족과 친구들도 나를 알아볼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알고, 여러분도 예수님을 알아볼 것입니다! 천국에서 우리는 몇 살로 살아가나요? 이사야 11장 6-8절에서는 다음과 같은 지구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때에 이리와 어린 양이 평화롭게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어린 황소가 함께 다니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닐 것이다 … 젖먹이가 독사의 구멍 앞에서 장난치고, 어린 아이가 살모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다. 만약 이 내용이 새 땅에 대한 이야기라면, 예수님이 다시 오신 후에 어려서 죽은 아이들이 새 땅에서 계속해서 성장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는 부모들은 그들의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고, 혹시 일찍 죽은 형제자매나 친구가 있다면, 여러분도 새 땅에서 그들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성경에서는 나이와 관련해서 정확한 답을 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에 가서 어떤 나이,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는 기다려봐야 하겠지요. 그러나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멋지게 보일 것이고, 행복할 것이며, 또 하나님께서 주신 부활한 자기 몸에 대해서 매우 기뻐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천국에도 자기만의 공간이 있나요?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2절에서 “내 아버지 집에는 너희들이 있을 곳이 많다 … 나는 너희를 위하여 한 장소를 마련하러 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있을 장소는 한 집이지만, 그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라고 하신 겁입니다. 이것은 큰 하나의 장소 속에 여러 작은 공간을 마련해놓고 우리가 살도록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이제까지 우리가 살았던 집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 각자를 위해 특별한 것을 만들어주십니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그 특별한 곳, 거기야말로 나에게 꼭 맞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집에 온 것이기에 편안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지금 사는 집도 편안하다고요? 그럼 새 땅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놓으신 곳에 갈 때까지, 그곳에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07 천국에서 누구와 지내는지 궁금해요 천국에도 가족이 있나요? 우리 가족이 모두 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모두 함께 영원토록 한가족이 될 것입니다. 특히 가족 중 누군가 돌아가셨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물론 가족 모두 예수님을 믿는다면요. 천국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고,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괴롭힐 일은 없습니다. 정말 멋진 일이죠? 내게 상처를 줄 가족도 절대 없을 것이고, 또 내가 다른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에서 한가족을 이루며 행복하게 지낼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우리 모두가 다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척이 놀러온 것 같은 느낌이 들 거예요! 08 천국에서도 동물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지 궁금해요 하나님은 새 땅에서 동물들에 대한 계획도 갖고 계시나요? 성경에서는 동물들도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 매우 중요했음을 말해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신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아담에게 이끌고 가셔서, 아담이 그것들의 이름을 어떻게 짓는지를 보셨습니다. 아담이 모든 생물의 이름을 지어 부르면, 그것이 곧 그것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19). 하나님은 동물을 만드셨고 또 돌보십니다. 그것은 우리도 동물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처럼, 동물들과 함께 있는 것이 즐거울 겁니다. 지구가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그 에덴동산에서 동물은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다 완벽하게 회복될 새 땅에서도 동물들은 역시 중요할 것 같습니다. 09 천국에서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요 천국은 재미있는 곳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천국은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모든 좋은 것, 즐겁고, 새롭고, 환상적이고, 신나는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그리고 그분에게서 나오는 모든 선한 것들 없이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윗 왕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으니, 주님의 앞에서는 나의 기쁨이 항상 넘치고, 주님의 오른편에 있으면 언제까지나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시편 16:11). 하나님 없는 곳에 기쁨이 없듯이, 하나님과 함께한다면 오직 기쁨만이 있을 것입니다. 천국은 꼭 하나님과 같은 곳일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 어쩌면 우리는 천국을 기대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어떤 곳보다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그곳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엄청난 능력을 갖고 계시지만, 또한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그분과요! 천국에도 스포츠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크리스천의 삶을 스포츠 경기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고린도전서 9:24,27), (디모데후서 2:5). 혹시 1981년에 만들어진‘불의 전차’라는 영화를 본 적 있으세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올림픽 챔피언 ‘에릭 리델’은 스포츠를 포함하여,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이 나를 빨리 달리도록 만드셨어. 나는 달릴 때마다 하나님의 기쁨을 느낄 수 있어. 그래서 달리기를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아.” 새 땅에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스포츠를 하게 될까요? 우리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일들 뿐 아니라, 지금 즐기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 땅에서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게 될 스포츠는 어쩌면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지금까지 발명되지 않은 그런 스포츠가 될지도 몰라요! 천국에도 컴퓨터나 다른 기술들이 계속 존재할까요? 하나님은 분명한 원칙 가운데 우주를 창조하셨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마음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 땅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요? 바로 지금 이 땅에서 보는 물건들입니다. 탁자, 의자, 자동차, 기계, 교통수단, 스포츠 장비 등이겠죠. 그럼, 새로운 발명품이나 이전의 발명품을 새롭게 개조한 것들도 있을까요? 왜 없겠어요? 사람들에게 그러한 창조력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은사를 다시 가져가실 일은 분명 없을 것 같습니다(로마서 11:29).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을 때, 하나님은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등의 여러 가지 멋진 일을 기대하셨습니다. 아마 우리가 할 일도 비슷할 것입니다. 때때로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새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많은 발명품들이 우리 삶을 보다 편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새 땅에서는 삶을 더 편하게 해줄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저 실험하고 발명하는 것 자체를 즐길 수도 있을 겁입니다. 정말 신나겠죠? 예수님이 여러분이 만든 작품을 보시고는 웃으시며 “잘했다!”라고 칭찬해주시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세요. 그것보다 더 멋진 일이 또 있을까요? 10 저 같은 아이도 천국에 갈 수 있는지 궁금해요 예수님은 누구신가요? 여러분은 예수님이 구원자이시고 주님이시며 가장 좋은 친구이심을 믿고 있나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로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요한복음 14:6).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불립니다. 그 이유는 양이라는 동물이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제물로 희생당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인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죄, 바로 나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습니다(요한복음 1:29).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명책”이 있는데, 그 책은 그분을 따른 사람들, 천국에서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될 사람들의 이름으로 차 있습니다. 우리도 천국 결혼 잔치에 초대받았나요? 예수님께서 자신의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신다는 것은, 성경의 마지막 장에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와서 생명수를 마음껏 마시십시오(요한계시록 22:1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예수님이 초대하시는 그 잔치에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세례를 받고, 어린아이들을 도와주는 것과 같은 선한 일을 했으니 자신은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에 “네”라고 대답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천국 결혼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가야할 곳은 바로 ‘지옥’입니다. 예수님께 “아니오”라고 하는 것에는 더 이상 변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이름이 생명책에 없다면, 우리는 천국에서 거절당할 것입니다. 천국 결혼 잔치에 참석해달라는 예수님의 초대에 여러분은 “네”라고 대답했습니까? 예수님의 집에서 그분과 영원히 함께 거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예수님께 기도해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여러분은 기꺼이 행복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천국의 문이 여러분에게 활짝 열려 있으니까요. 예수님께 드리는 대답을 미뤄왔다면, 바로 지금이 그분을 믿고 “네”라고 대답할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11 영원히 계속될 위대한 이야기, 천국이 궁금해요 천국을 기대하며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저는 여러분이 천국에 가는 것을 정말로 기대하고 기뻐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에서 “하늘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골로새서 3:1-2)”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시죠? 천국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해주신 내용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더 이상 사탄의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진정 무슨 뜻인지 이해한다면, 우리는 분명 그곳을 기대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미래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흠 없이”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위해 살아갈 기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또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을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정말로 내 자신이 모든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지 말이에요.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힘든 순간조차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새 땅의 통치자로 준비시키는 데 사용하심을 믿나요? 정말로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 있는” 새 땅을 기대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바로 지금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통해 능력이 나타날 거예요.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영원한 왕국이 임하는 것을 참고 계시는 한 가지 이유를 잊지 마세요. 그것은 주님이 “모두 회개하고 돌아오기를(베드로후서 3:9)”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주변을 둘러보고, 아직 기회가 있는 이때에 내가 기도해줘야 할 친구가 누군지, 또 예수님을 전해줄 친구가 누군지 찾아보세요. 천국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저도 언젠가 여러분을 보게 될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우리 모두 천국에서 함께 만나게 될 테니까요. 새 땅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주님과 또 주님을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가장 멋진 모험을 시작하게 되겠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지휘 아래 우리의 다스림과 탐험을 기다리는 영광스러운 새 땅과 새 하늘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중심이 되시고, 모든 기쁨의 이유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인해, 그분의 기쁨이 곧 우리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쁨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멋진 순간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 더욱 더 멋진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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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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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선물이다
사람이 선물이다 조정민 지음 두란노 / 2011년 8월 / 264쪽 / 12,000원 행복은 가난한 마음이다 내가 행복한 사람은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내가 불행한 사람은 남을 행복하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 돈이 없…
사람이 선물이다 조정민 지음 두란노 / 2011년 8월 / 264쪽 / 12,000원 행복은 가난한 마음이다 내가 행복한 사람은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내가 불행한 사람은 남을 행복하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 돈이 없어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 있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병들어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무명이어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명하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조건이 아닙니다. *** 행복을 묵상한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을 말한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을 가르친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내가 행복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서입니다. *** 눈꺼풀은 일 년에 550만 번을 깜빡입니다. 심장은 일 년에 320만 리터를 뿜어냅니다. 발은 일생 지구를 세 바퀴 돕니다. 평생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한 번도 불평하지 않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 제 지병은 심장병입니다. 그래서 때로 숨쉬는 순간순간 감사하고, 쉬지 않고 뛰는 심장에 감사합니다. 들숨이 날숨 되지 않는 순간이 죽음이고 심장 멎는 순간이 이별 아닙니까. *** 내 상처가 나으면 나는 이제 백신입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특효약입니다. 주위를 살피면… 오직 나만이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 부족해도 주는 것은 돕는 일이고, 남아서 주는 것은 재고 정리입니다. 주고 잊어버리면 남을 도운 것이고, 기억하면 나를 도운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주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 인생의 가장 큰 신비는… 남의 문제 해결을 돕다가 어느새 내 문제가 덤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복은… 남의 필요를 채우는 사이 슬그머니 내 필요가 덤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 사랑은 부스러기라도 좋습니다. 은혜는 작은 조각이라도 좋습니다. 배려는 고사리손 한 줌이라도 좋습니다. 아무리 작아도… 나눔이 기적의 씨앗입니다. *** 정글을 빠져나갈 때 가끔 큰 나무 위에 올라가 방향을 점검합니다. 쉼은 그런 점검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쉼이 당신을 지킵니다. *** 쉼은 멈춤이고, 쉼은 내려놓음이며, 쉼은 나눔입니다. 기계는 쉬지 않는 것이 능력이고, 사람은 쉴 줄 아는 것이 능력입니다. *** 산사에 앉아 있어도 분주함이 있고 저자 거리에 서있어도 고요함이 있습니다. 바퀴살이 쉴 새 없어도 바퀴 중심은 고요합니다. 분주한 일상이지만 내면에 그 고요함이 흐르기를…. 영혼은 성소(聖所)이다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먼저입니다. 세상의 숱한 문제가 잘못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긴 결과입니다. *** 말은 생각을 다듬어 행동을 다듬습니다. 말은 의식의 골을 파 무의식의 골을 팝니다. 말은 현재를 조각해 미래를 조각합니다. 말이 바뀌어서 삶이 바뀝니다. 말… 삶을 다루는 조각칼입니다. *** 마음을 마음대로 버려두는 것이 화근입니다. 마음을 달래고 마음을 꾸짖고 마음을 다잡아서… 마음을 처음 마음먹은 대로 이끌어가는 것이 뜻을 이루는 길입니다. *** “괜찮습니다.” “평안합니다.” “기쁩니다.”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옥에서 못 듣는 말입니다. 감옥이 아닌데도 이런 말들이 사라졌다면… 세상이 감옥같이 변하는 조짐입니다. 지혜는 나를 보는 거울이다 나쁠 줄 몰라서 못 고치기보다는 나쁘다고 지적받는 것이 못마땅해서 안 고치고, 고치면 더 나빠질까 두려워서 안 고칩니다. 품어서 고쳐야 할 일을 밀쳐서 고치려면 정말 더 나빠집니다. *** 변명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법은 없습니다. 변명은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을 실패를 확정하는 데 쓰기 때문입니다. *** 갖고도 나누지 못하면 가난한 것입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바쁜데 열매가 없다면 게으른 것입니다. *** 한강을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은 남산에 등을 돌려야 합니다. 남산을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한강을 떠나야 합니다. 두 마리 토끼 쫓다 두 마리 다 놓친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랑은 사람이 하나님과 나눠 가진 성품이다 웃음으로도 말하고 눈물로도 말합니다. 얼굴로도 말하고 몸짓으로도 말합니다. 삶으로도 말하고 죽음으로도 말합니다. 사랑하면 다 들리지만 무심하면 한 마디도 안 들립니다. 사랑은… 듣는 귀입니다. *** 사랑하면 보이고 사랑하면 들립니다. 사랑은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것을 주는 마음입니다. 그가 원하고 그의 필요를 아는데… 사랑하며 주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 사랑하면 글과 글 사이의 행간을 읽습니다. 사랑하면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을 듣습니다. 사랑하면 몸짓과 몸짓 사이의 마음을 봅니다. 사랑을 어찌 다… 글과 말과 몸짓으로 전하겠습니까. *** 사랑하면 닮습니다. 미워해도 닮습니다. 닮고 싶다면 사랑하면서 기쁘게 닮는 편이 낫고, 결코 닮고 싶지 않다면 미워하지 않고 닮지 않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관계는 수용이다 관계가 고통스러운 까닭은… 신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을 인간에게서 찾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실수가 전공이고 부족이 특징입니다. *** 세상에 안 다투고 안 싸우는 곳은 없지만, 화해 안 하는 곳은 있습니다. 집이나 일터가 편하고 좋다면… 갈등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갈등을 해소할 줄 안다는 뜻입니다. *** 사실 외딴 섬은 없습니다. 바다 속에 들어가면 모든 섬이 연결돼있고 땅과 섬도 하납니다. 세상도 같습니다. 욕하고 이간하고 분열하는 일이 제 몸에 상처 내는 것임을 어찌 알겠어요. 우린 하나예요.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예요. 생명의 근원인 창조주 안에서. *** 대화는…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과 많은 얘기를 나누어도 마음을 경청하지 않으면 텅 빈 독백이고, 혼자서도 내면의 음성을 경청하면 속이 찬 대화입니다. 나와 내가 못 나눈 마음을 누구와 나눕니까. *** 위대한 사람은 그 일에 관해서 말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 일의 진실을 아는 사람도 아니고, 그 일이 알려진 대로 믿는 사람도 아닙니다. 위대한 사람은 실제로 그 일을 해내는 사람입니다. *** 많은 사람들이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만들기에… 크다는 문제를 작게 만드는 사람이 리더가 됩니다. 문제가 없다면 리더도 없고, 위기가 없다면 위대함도 없습니다. 고난은 용기의 출발점이다 독수리는 폭풍을 피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새들이 바위틈을 찾고 숲 속으로 숨어들 때 독수리는 폭풍 속으로 뛰어들어 폭풍 위로 날아오릅니다. 독수리에게 폭풍은…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을 가게 하는 기회입니다. *** 건물은 지하의 깊이가 고층의 높이를 결정하고, 인생은 고생의 깊이가 인격의 높이를 결정하며, 민족은 고난의 깊이가 영광의 높이를 결정합니다. 우리의 고난은… 그냥 겪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 행운이 오히려 시련이 되고 고난이 도리어 복이 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운에도 교만하지 않고 불운에도 낙심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섭리의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비전은 생명이다 10년 지나서도 이 일이 여전히 중요하다면 지금 시작하세요. 10년 후에는 기억조차 없을 일이라면 다시 생각하세요. *** 코이라는 물고기는 어항에서 5센티, 연못에서 20센티, 강물에서는 1미터까지 자랍니다. 코이는 어떤 물에서 살지 선택할 수 없지만 사람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꿈은 사람이 선택하는 환경입니다. *** 성공은 목표까지 능력을 끌어올린 결과이고, 실패는 능력에 맞춰 목표를 낮춘 결과입니다. 목표가 흔들리지 않으면… 능력이 늘 목표를 따라갑니다. *** 차는 달려야 하고 비행기는 날아야 합니다.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은 자유롭게 비상해야 합니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처럼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올해… 아름다운 뜻을 품고 훨훨 나세요. *** 바람 없는 바다에서 능숙한 항해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파도 없는 호수에서 뛰어난 서퍼가 될 수는 없습니다. 바람 불고 파도 치는 곳을 찾아가서 뛰어들지 않으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 당신은 소중한 일을 합니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 덕분에 살 만한 세상입니다. 그 일… 그렇게 만드는 것이 당신에게 맡겨진 소명입니다. *** 여기 길이 없다면 당신에게 새 길을 내라는 뜻입니다. 지금 희망이 없다면 당신이 희망의 메시지가 되라는 사인입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 없다면 당신이 인물이 되라는 부름입니다. *** 꿈을 쫓으면서 게으를 수 없고, 목표를 향해 달리면서 방향을 바꿀 수 없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면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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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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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동안의 침묵
백 년 동안의 침묵 박정선 지음 푸른사상 / 2011년 9월 / 448쪽 / 15,000원 명례방(명동) 아이들 도성 정중앙 남쪽에 불끈 솟아오른 종현산 마루를 따라 명례방이 펼쳐져 있다. 종현산 마루 아래 다시 작은 산 종현고개(명동성당 자리)가 …
백 년 동안의 침묵 박정선 지음 푸른사상 / 2011년 9월 / 448쪽 / 15,000원 명례방(명동) 아이들 도성 정중앙 남쪽에 불끈 솟아오른 종현산 마루를 따라 명례방이 펼쳐져 있다. 종현산 마루 아래 다시 작은 산 종현고개(명동성당 자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6천 평 저택 후원에 새봄이 깃들었다. 아침부터 대문이 활짝 열리고 종친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한다. 이조판서 이유승 대감이 네 번째 아들을 얻어 첫돌(1868. 3. 17.)을 맞은 것이다. 화려한 돌 복을 차려입은 아이를 이유승 대감이 안고 경주 이씨 백사공파 종친 원로들과 함께 사당으로 향했다. 사당에 올라 백사(白沙) 이항복부터 차례대로 조상들 위패가 놓여 있는 제단 앞에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세상 사람들이 삼한갑족(三韓甲族, 마한ㆍ진한ㆍ변한 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명문거족)이라 부르는 자랑스러운 조상들이었다. 원로 중 가장 연장자가 ‘회영(會榮)’이란 아이 이름을 개봉하여 조상께 고하고 장차 백사 이항복 할아버지를 잇는 큰 인물로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이유승 대감은 모두 10남매를 두었는데 차례대로 건영, 석영, 서영(딸), 소영(딸), 철영, 순영(딸), 회영, 시영, 화영(딸), 호영 순이었다. 그해(1868) 가을, 바다 저편 일본에서는 천황즉위식을 거행하고 명치로 개원하여 세계의 열강 속으로 뛰어들었다. 세계가 요동치고 있을 때 조선은 짙은 안개 속에 잠긴 채 평화롭고 안락했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 지 십 년(1874) 만에 드디어 친정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조선은 일본의 정한설에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해 윤달에 전국적으로 폭우가 내려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일대에 물난리가 나 7천 호가 유실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회영은 겨우 여덟 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님, 우리 집 곳간을 풀어야 하지 않겠는지요?” “우리 집 양식을 풀어 먹이자는 말이더냐?” “예, 아버님. 우리 가문은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데 그것은 모두 백성들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녹을 먹는 가문마다 곳간을 풀면 백성들이 모두 따라 할 것이니 그것이 방도가 될 것입니다.” 이유승은 경이로운 눈으로 어린 아들을 바라보았다. 설사 스승이 그렇게 가르쳤다 하더라도 아이가 말뜻을 고스란히 가슴에 품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천성이 의(義)에 밝고 앞장서서 무엇을 끌고 가려는 성향을 타고났음이 확실했다. 그런 성향은 저잣거리 아이들을 대하는 것에서도 나타났다. 회영은 종종 상동(남대문 일대)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물건을 팔고 가도록 만들곤 했다. 부모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회영은 그와는 신분이 다른 아이들을 늘 가까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옆집인 동부승지 이용우 대감 집에 한 아이가 양자로 들어왔다. 촌티가 가득하면서도 기품이 엿보이는 아이를 보고 회영이 먼저 말을 걸었다. “이름이 무엇이며 올해 몇 살이냐?” “나는 이상설이고, 일곱 살이다.” 회영은 세 살 아래인 이상설이 마음에 쏙 들었고 그 후 이상설과 함께 더 열심히 저잣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회영은 어느 날 정동에서 시(施)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서양인 의사 스크랜튼과 열두 살 전덕기가 저자 사람들에게 습격당한 것을 구해주게 되었다. 부모를 잃은 전덕기는 스크랜튼을 도우며 시병원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회영과 이상설은 전덕기가 성경, 영어, 불어, 수학 등을 배우는 것을 보고 가슴이 설렜다. 좁은 길 솔바람 소리가 좋았다. 가을날, 회영과 이상설이 남산에 올랐다. 태양이 하루 일생을 마치고 산봉우리에서 마지막 빛살을 쏘고 있었다. 이제 스무 살이 넘었으므로 두 사람은 딴 이름을 가졌다. 회영은 우당이라 지었고 이상설은 부재라고 지었다. 회영은 25세에, 이상설은 22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나라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회영의 동생 시영(후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은 17세에 급제해 벌써 형조좌랑에 앉아 있었다. 회영은 처음부터 관계진출에 뜻을 두지 않았던 탓이었고 이상설은 죽은 양부의 3년 시묘살이를 한 탓이었다. 회영은 과감하게 관계진출을 접기로 결심했다. 위로 건영 철영 석영 세 분 형님들이 의정부 고위직에 있거나 역임했고, 동생 시영 또한 관계에 나갔으므로 삼한갑족 가문의 내력을 잇는 것은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이었다. “그럼 형이 할 일이란 무엇이오?” 회영의 결단에 이상설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교육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힘이란 걸 일본이 구구절절 보여주지 않았소. 일본은 싫지만 왜 우리에겐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인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오.” “우당 형, 이 사람도 관계로 진출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신학문을 배우러 일본으로 가야겠소. 우당 형도 함께 일본으로 갑시다.” “부재는 남달리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치니 열 사람 몫을 배워 올 수 있을 것이오. 나는 부재가 신학문을 배우고 돌아올 동안 상동청년회 동지들과 함께 민족자본을 만들겠소. 그리고 부재가 돌아오면 이 땅에 신학문을 전파할 학교를 세우도록 할 것이오.” 스크랜튼은 상동 저잣거리 한복판에 상동교회를 세우고 교회 안에 공옥학교를 설립하여 신학문을 가르쳤다. 신지식과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청년들이 상동교회로 몰려들었다.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모인 상동청년회는 민족자본을 만드는 문제를 놓고 난상 토론을 벌인 끝에 개성 일대에 있는 왕실 소유의 땅을 빌려 인삼을 재배하기로 결정했다. 회영이 인삼을 재배한다는 소식을 들은 경무청 고문 후쿠다 요시모토는 고위층 일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조선의 귀족 청년 중에도 이런 인물이 있다니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계책을 써서라도 그자의 인삼 재배 사업을 반드시 제지해야만 합니다.” 인삼은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다. 인삼이 성년이 되어갈 즈음 탐관오리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난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놀란 조정은 임오군란(1882) 때처럼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했다. 일본도 자국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불러들였다. 일 년도 못 가 일본은 청나라 군대를 쓸어내 버리고 말았다. 청군을 쓸어버린 일본 군인들은 조선 땅을 마음껏 휘젓기 시작했다. 백주에 부녀자를 겁탈하고 살육을 자행했다. 그리고 궁에서는 민비가 일본 군인들에 의해 살해됐다는 소문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조선 천지에 울분이 충천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상설은 유학을 마치고 성균관 관장으로 부임해 있었다. 상동청년회는 더 큰 조직으로 확장되어가고 있었고 인삼은 목표대로 6년을 꽉 채우고 11월 초닷새로 잡힌 수확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11월 초하룻날 일꾼들이 달려와 울부짖었다. “인삼이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인삼을 수확하여 학교를 세울 꿈에 부풀어 있던 회영은 통곡했다. 열흘 만에 경무청 고문 후쿠다 요시모토의 소행임이 밝혀졌다. 경무청을 고발한 회영에게 경무청은 도리어 인삼재배가 무허가라며 엄포를 놓았다. 격분한 회영은 후쿠다 고문의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 후쿠다에게 의자를 집어 던졌다. 회영은 곧 구금되고 말았다. 사건의 전말을 듣고 난 고종이 회영의 방면을 명하자 경무청도 회영을 석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쿠다가 이를 갈았다. “가소로운 애송이 녀석, 언젠가는 후쿠다의 이름으로 너를 응징하고야 말 것이다. 내가 못 하면 내 아들, 내 손자 대에 가서라도 기필코…….” 상동청년회 일본이 러시아를 치기 시작했다. 총칼을 착용한 일본군 2개 사단이 서울 장안을 행진했다. 상동청년회는 날마다 러시아가 이기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온 세계가 놀랍게도 일본군이 이틀 만에 러시아 발틱함대를 대파함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다. 러일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에 입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조선을 통제하는 통감부를 설치한다는 내용의 을사늑약이 체결(1905. 11. 17.)되고 말았다.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과 함께 전국이 통곡소리로 뒤덮인 가운데 충신들의 자결이 줄을 이었고 전국 곳곳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다. 식음을 전폐하고 있던 이유승 대감은 결국 임종을 맞이했다. “너희 6형제는 어려서부터 화목하여 하나로 뭉쳤느니라. 앞으로는 나라를 위해 뭉쳐야 한다.” 6형제의 어머니까지 곧 뒤를 따랐다. 충신들의 자결도 의병 활동도 일본을 저지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회영은 전덕기와 상동청년학원을 확장시켜 교육 사업에 매진하면서 장차 계획을 세워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스크랜튼이 임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자 전덕기가 상동교회 담임목사로 임명되었다. 전덕기가 담임목사로서 원장이 되면서 상동학원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회영은 학감을 맡고 교육자금을 조달했다. 상동학원의 신교육이 청년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안 일 년이 가고 봄을 맞았다. 회영과 이상설은 다시 남산에 올랐다. “지금 통감부에서 학제 개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올가을부터 전국 학교의 학감을 일본인들에게 맡긴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국내에서 우리가 교육하는 일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해외에 있는 우리 한인자녀들을 교육하여 독립군으로 길러야 합니다.” “역시 부재다운 생각이오. 그럼 상동청년회 동지들과 함께 논의해봅시다.” 상동청년회 중심인물들이 교회에 모여 앉았다. “우리 한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고 교통의 중심지인 만주 용정촌이 적격이오.” “그럼 누가 용정촌으로 나가 학교를 설립할지 말씀해보시지요.” “내가 갈 것이오.” 이상설은 선포하듯 말했다. 이어서 이동녕이 이상설과 함께 가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대한매일신보 주필 양기탁이 모임의 이름을 운동방향에 걸맞게 새로운 이름으로 짓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백성’이라는 의미로 ‘신민회’라고 정했다. 신민회의 첫 출발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이상설과 이동녕이 조국광복이라는 신민회의 목적을 안고 만주 용정촌으로 떠났다. 해가 바뀌고 을사늑약은 탄탄하게 뿌리를 내려갔다. 고종은 대한제국의 억울한 사정을 해외 열강들에게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마침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1907)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 세 사람을 밀사로 파견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그들은 회의장에 발도 들이지 못한 채 돌아서야만 했고 이준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헤이그밀사 사건 이후로 일본이 궐석재판을 통해 이상설에게 사형을 언도하자 이상설은 용정에 설립한 서전서숙(민족교육기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 그곳을 새로운 독립기지로 삼기로 했다. 회영은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상설을 찾아갔다. 회영을 만난 이상설은 결의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동안 세계를 돌아다녀 보니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머지않아 온 세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 틀림없소이다.” “미국이 일본을 제지하는 날이 온다면 우리로서는 천운이겠지요.” “우당 형,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서둘러 해외에 광복군을 기를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길러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군사기지를 세우자면 자금이 만만치 않으니 어찌합니까.” “내가 하리다. 우리 6형제 힘을 모두 합하면 못 할 것도 없소이다.” 이상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우리 신민회가 구체적인 조직을 갖추고 비밀 항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형은 속히 돌아가셔서 양기탁 동지와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하십시오. 이 사람은 이곳에서 운동 방법을 찾겠소이다.” 이상설과 의논하고 돌아온 회영은 신민회 결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침 미국에서 귀국한 도산 안창호도 회의에 참석했다. 단일 지도체제는 위험했기에, 도별로 나누어 총감을 두기로 했다. 황해 총감에 김구, 평남 총감에 안창호, 만주를 포함한 이북은 이동휘가 맡았다. 재무는 전덕기가 맡았고 회영은 아무런 직책도 맡지 않았다. 그리고 조직은 철저하게 비밀로 운영되도록 했다. 일제는 눈에 불을 켜고 의병들을 색출했다. 그때 느닷없이 한 애국자가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사살했다는 소문이 조선 땅을 흔들었다. 곧이어 안중근이라는 이름이 하늘을 진동했다. 만주 벌판을 달리는 열두 대 삼두마차 “조선 사람은 일본에 복종하든지, 죽든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선언이었다.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저동 이유승 대감 집이 침묵에 잠겼다. 방 안엔 서열대로 건영, 석영, 철영, 회영, 시영, 호영 등 6형제가 침통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회영이 입을 열었다. “나라가 한일병합의 괴변을 당하여 반도 산하가 왜적에 속하고 말았는데 우리 형제들이 당당 명족으로서 왜적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도하면 어찌 금수와 다르리요. 그러므로 우리 형제들은 생사를 막론하고 처자노유를 인솔하고 중국 땅으로 망명하여 나라를 구하는 것이 옳은가 하오이다. 바라건대 형제분들께서는 이와 같은 내 뜻에 따라주시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6형제 모두 회영의 뜻에 적극 동참했다. “우리 6형제는 오직 나라를 찾기 위해 나라를 버린 것이니 이제부터는 가문도 명예도 길거리의 돌멩이로 여기시고 예전 것을 생각하시면 아니 됩니다.” 형제들에게 당부하는 회영의 눈이 붉어 있었다. “나라가 없는데 가문이 무엇이며 명예란 무엇이란 말이오. 생각지 않을 테니 우당 아우님은 염려 마시오.” 석영이 회영을 위로하며 형제들을 둘러봤다. 모두 고개를 끄떡이며 눈물을 닦고 있었다. 가을 하늘은 변함없이 푸르고 들녘은 황금물결이 파도쳤다. 추석이 돌아오고 형제들은 후원 사당에 들어 햇곡식으로 부모님과 선조들에게 마지막 추석제사를 올렸다. 추석제사를 끝내자 형제들은 서둘러 재산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감시의 눈은 벽에도 있고 공기 중에도 있으므로 재산 정리는 은밀히 진행해야 했다. 값을 따질 수가 없어 땅은 헐값에 대충 팔아 넘겼다. 땅을 판 돈은 그때마다 금으로 바꾸어 나갔다. 재산을 정리하는 데 3개월이 걸렸고 6형제가 전답을 팔아 마련한 돈은 40만 원(약 600억 원)이었다. 당시 쌀 한 가마에 3전이었다. 형제들이 한 가정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내 호영을 제외하고 모두 젊은 나이가 아니었다. 집안의 장자인 건영은 58세였고, 둘째 석영은 55세였다. 셋째 철영은 48세였으며, 다섯째 시영은 41세, 여섯째인 막내 호영은 36세였다. 모두 가족들과 함께 무사히 서울을 빠져나가고 나자 12월 30일이었다. 때마침 송구영신을 위한 종현성당(명동성당)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회영이 마지막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태어나 부모형제와 함께 살아온 집을 둘러보았다. 정들었던 집을 버리고 떠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회영은 다음 날 오후에야 신의주 나루터 주막에서 기다리는 가족들과 합류했다. 새벽 3시에 잠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깨웠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 추위를 동반한 채 짐승처럼 덮쳤다. 썰매 10여 대에 60여 명의 가족들이 나누어 탔다. 말이 끄는 썰매는 날듯이 강을 질주하고 휘몰아치는 바람이 썰매를 집어삼킬 듯 흔들었다. 혹독한 첫 시련이었다. 두어 시간을 달린 끝에 무사히 안동에 도착했다. 안동에서 하루를 지낸 뒤 다음 날 또다시 이른 새벽부터 출발을 서둘렀다. 어둠 속에서 열두 대 삼두마차가 전열을 가다듬고 일렬종대로 줄지어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열한 대는 중국인 마부들이 말고삐를 잡았다. 한 대는 회영이 직접 고삐를 잡고 앉았다. 중국 마부들이 먼저 허! 하고 출발 신호를 넣자 말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치켜들었다. 마부들이 채찍으로 엉덩이를 후려치자 말들이 땅을 박차며 험난한 형극을 향해 만주 벌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36마리 144개 말발굽소리가 기관총 소리처럼 황량한 만주 벌판을 비장하게 흔들었다. 어둠 속을 헤치는 말들은 적을 향해 돌진하는 통렬한 광복군이었다. 안동을 떠나 벌판을 횡단한 지 열흘 만에 중간지점으로 정해놓은 횡도촌에 도착했다. 횡도촌에서 추가마을까지는 장장 6백 리나 되었다. 열두 대의 마차가 다시 이동을 시작했고 드디어 추가마을에서 행렬이 멈췄다. 원시의 산촌마을에 조선의 명문집단이 대거 들이닥친 것이었다. 모여든 원주민들이 입을 딱 벌린 채 의구심으로 가득 찬 눈을 굴렸다. 종종 조선의 이주민들이 주변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봤지만 모두 보따리 몇 개를 이고 진 것이 전부인 것을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차에서 60여 명의 일행들이 내렸다. 실어온 짐도 놀라웠지만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내리자 놀라웠고, 모두 기품 있게 잘생긴 사람들이라 또 놀라웠다. 동지들이 겨울 내내 압록강을 건넜다. 오로지 군사기지를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추가마을로 향했다. 서울ㆍ충청ㆍ경기 대표들에 이어서 안동지역 보수유림의 거두 이상룡과 김대락이 2대 3대까지 대가족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이상룡이 회영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우당 가문이 군사기지를 세우는 데 앞장선다는 말을 듣고 날개만 있다면 당장 훨훨 날아오고 싶었소이다. 우당, 정녕 고맙소.” 이런 식으로 한인들의 집이 계속 늘어나자 처음부터 심상치 않게 여겼던 마을의 추씨 사람들이 겁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추씨 사람들은 조상들이 힘들게 개척해놓은 땅을 한 뼘도 팔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땅을 확보할 수 없어 곤경에 처해 있던 회영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다가왔다. 손문이 신해혁명(1911)으로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 총통의 자리에 올랐으나 원세개가 손문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총통의 자리에 오른 것이었다. 원세개는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에 출병하여 조선에서 10년이나 살았고 조선 때문에 출세한 인물이었다. 이유승 대감은 원세개를 자주 집으로 초대했고 그때마다 회영이 자리를 함께했다. 원세개는 특히 회영이 그리는 석파난(石派蘭)과 회영이 부는 퉁소 소리를 좋아했다. 당시 원세개는 35세였고 회영은 27세였다. 그는 회영의 사정을 듣고 호탕하게 웃으며 붓을 들었다. “유하현, 통화현, 환인현 현장들은 조선 망명자들에게 동북각지 거주를 허락하고 산업발전과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일정한 자주권을 주어 조선인의 독립투쟁을 지지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길 시 누구든지 엄벌에 처할 것이다.” 원 총통의 명령이 떨어지자 추가마을 사람들은 사과하고 앞다투어 땅을 내놓았다. 동지들은 땅값을 후하게 쳐주고 농사지을 땅을 매입했고 천연의 요새인 합니하에 학교 부지 5만 평을 확보했다. 아, 신흥무관학교 망명자들의 옥수수밭이 물결치기 시작했다. 소작료가 적다는 소문을 듣고 수십 리, 수백 리 밖에서 어렵게 살고 있던 한인들이 추가마을로 찾아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천혜의 요새인 합니하에 교실 8개와 수만 평의 운동장과 기숙사를 갖춘 학교가 완공되었다. 1912년 6월 7일 낙성식이 거행되는 동안 수백 명의 한인들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학교 명칭은 신흥무관학교로 정했다. 신흥무관학교는 군관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신체가 뛰어나고 건강한 청년들을 선발했으며 학비와 기숙사비 전액을 무료로 하였다. 학교는 개교하자마자 명문으로 소문나면서 수백 리 밖에서 학생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시련은 이제부터였다. 2년 동안 계속된 가뭄으로 만주 들녘이 풀포기 하나 없는 사막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독립자금의 수혈이 절박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일제가 애국지사들을 일망타진할 작정으로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을 날조하여 지사들을 잡아들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신흥무관학교 운영이 날로 어려워졌다. 석영이 계속 금고를 열어놓았지만 2백 명이 넘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감당하기란 무리였다. 회영은 고심 끝에 자금을 구하러 국내로 잠입하기로 결심했다. 박수무당으로 변장을 하고 무사히 서울에 들어온 회영은 동지들의 집으로 옮겨 다니면서 일 년여를 무사히 보냈지만 독립자금을 마련할 길은 암담했다. 흩어지다 만주에서는 가뭄이 지나고 나자 마적 떼가 출현했다. 이른 새벽 수십 명의 마적 떼들이 한인마을로 들이닥쳤고 그들이 총에 회영의 아내 은숙이 왼쪽 어깨를 맞고 쓰러졌다. 은숙은 급히 통화읍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져 다행히 목숨을 구했다. 마적에게 당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전염병인 만주열(장질부사)과 홍역이 습격했다. 시영의 가족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고 회영의 가족들도 드러누웠다. 학생과 동지들도 자고 나면 누군가가 죽어나갔다. 형제들은 더 이상 추가마을에서 버틸 힘이 없었다. 동지들도 다른 활동처를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학교도 존폐위기를 맞았다. 국내에서 회영이 어렵사리 몇백 원씩 보내주는 자금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고심 끝에 마지막 방법으로 각 현의 대표들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살리자는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뜻밖에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새색시부터 주부들이 깊숙이 숨겨둔 패물을 아낌없이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는 기사회생을 하여 한인들 관리체계로 넘어갔다. 추가마을에 남아 있던 4명의 형제들은 이제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맏이 건영은 선영이 있는 장단으로, 석영과 호영은 아내와 아들들을 데리고 천진으로, 철영은 시영이 있는 봉천을 향해 떠났다. 은숙은 장남 규학과 딸 규숙과 아들 규창을 데리고 장단으로 갔다. 나라를 떠난 지 8년 만이었다. 북경의 정거장 1919년 1월 20일 고종은 마침내 일제에 의해 독살을 당해 승하하고 말았다. 고종의 승하를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삼일만세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삼일운동의 분위기를 타고 애국지사들은 해방을 맞을 준비에 분주했다. 국내외에서 8개의 임시정부가 세워지는 대혼란 끝에 마침내 상해임정이 민족을 대표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엔 기 싸움이 벌어졌다. 이제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확실하고 정부를 세우면 권력이 생기므로 기선을 잡기 위한 각축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회영이 깜짝 놀라 임정 설립 자체를 반대하고 나섰다. “나라도 없이 권력싸움을 하고 있다니요. 이 모두가 정부를 세우려고 한 탓이오. 처음부터 이게 아니었소이다. 지금은 정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총본부를 조직해야 합니다. 힘을 하나로 결집해야 한다는 말이오.” 회영은 계속 답답한 심정을 토해냈다. 그러나 분위기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 회영은 멍해졌다. 독립운동이 길을 잃어버렸다는 허탈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제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 회영은 신흥무관학교가 새로 자리를 잡은 서간도의 고산자로 향했다. 서간도는 10년 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봉천성, 길림성, 흑룡강 3성이 조선으로 착각할 정도로 한인화가 되었고 10년 전 험한 황무지가 거대한 평야로 바뀌어 있었다. 그곳에서 한인들은 연간 벼 123만 섬의 소출을 내고 있었다.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고산자로 옮겨진 신흥무관학교는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한족회가 운영하고 있었고 합니하 학교는 분교로 남아 있었다. “이청전 장군이 이끌고 있는 우리 서간도독립군(서로군정서)이 이루어낸 국내 진공 유격전은 수백 건에 이릅니다. 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해낸 겁니다.” 청년 시절 추가마을에 들어와 신흥무관학교를 함께 세웠고 지금까지 모진 고난 속에 학교를 지켜온 김동삼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신흥무관학교를 돌아보고 난 후 회영은 북경으로 들어와 정착을 시도했다. 회영의 가족들도 북경으로 들어왔다. 회영은 북경에 살면서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회영의 집은 언제나 잔칫집처럼 수십 명의 조선 남자들로 북적거렸다. 회영이 북경에 정착했다는 말을 듣고 대부분 북경으로 몰려든 탓이었다. 사실상 회영의 집은 북경의 독립운동본부였고 독립운동가 양성소였다. 삼일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북경으로 온 망명자들은 일단 회영의 집에서 묵었다가 목적지가 정해지면 떠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버렸다. 단지 숙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구든 회영의 영향을 받고 싶어 했다. 사람들은 계속 찾아오고 회영은 청년들을 더욱 반겼다. 어느덧 독립운동 1세대들이 중년이나 노년으로 접어들었으므로 청년들이 희망이었다. 청년들 중에서도 김종진이 눈에 띄었다. 김종진은 김좌진 장군의 사촌동생이었고 김좌진 장군 혈통답게 장군감이었다. 그러나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질수록 회영이 가진 얼마 안 되는 돈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배고픔이 독립정신을 저울질하는 시험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작 독립운동가들이 싸워야 할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끓어오른 열정으로 손가락을 끊어 맹세한 조국애도 배고픔이란 강을 건너지 못해 어느 날 갑자기 변심하기 일쑤였다. 아나키스트, 거기에 길이 있었다 공산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 사상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는 삼일운동과 해방의 촉매 역할을 했던 민족자결주의보다 백배나 큰 물결이었다. 꿀보다 달콤한 마력이었다.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야말로 억압 받는 민족과 무산계급자들을 해방시켜줄 구세주로 떠올랐다. 상해임시정부도 세 개의 사상으로 몸살을 앓았다. 공산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 외에 또 하나의 사상이 있었다. 무정부주의를 뜻하는 아나키즘이었다. 그 무렵 유자명과 이을규, 이정규라는 세 인물이 한인으로서는 아나키스트의 선두주자가 되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북경의 아나키스트들과 깊이 교류하면서 항일투쟁을 아나키즘에 맞추고 있었다. 회영은 무언가를 찾는 데 골몰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무엇인가가 보인 듯도 하고 잡힐 듯도 한데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때를 맞춰 아나키스트 이정규가 회영을 찾아왔다. “이상촌 건설과 궁극적 목적은 항일운동자금이라!” 회영은 이정규의 설명을 들으며 반가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양타오에 농민 자치의 이상농촌을 건설하고 인삼을 재배하여 항일운동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것은 회영에게 찬란한 서광이었다. “공산주의는 민중을 지배하지만 아나키즘은 민중을 지배하지 않습니다. 아나키즘은 권위 자체를 철저히 배격합니다.” 회영은 이제야말로 평생을 함께할 동지를 얻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비록 나라를 잃은 망명자 처지라 할지라도 조선의 귀족 출신 이회영이 나이 56세에 아나키즘에 매료되었다는 소문은 애국지사들 사이에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회영과 신채호는 크로포트킨의 민중혁명론에 심취하여 이정규 등 젊은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 연맹을 발족하고 크로포트킨의 혁명론을 기반으로 항일투쟁 방향을 무력투쟁 노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천명했다. 새로운 사상으로 뭉친 회영과 젊은 동지들은 일본의 중요 기관을 파괴하거나 밀정을 처단하면서 항일운동을 활성화시켜나갔다. 그러나 언제나 자금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회영은 결국 집세까지 압박을 받아 집세가 싼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궁핍은 더욱 심해졌고 마침내 북경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들은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상해로 떠나기 시작했다. 회영의 아내 은숙도 생각다 못해 자금을 구해볼 작정으로 국내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아내가 떠난 후 며느리가 옷을 전당포에 잡히고 끼니거리를 마련해 닷새를 버텼다. 그러나 더 이상은 방법이 없었다. 사흘이나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회영을 찾은 동지 김창숙이 인기척을 했지만 방 안에서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을 부르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사람들이 자는 것처럼 누운 채 꼼짝하지 않았다. 마치 집단 자살을 한 것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김창숙은 서둘러 쌀을 사다가 죽을 끓여 사람들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야 열세 살 규창이 겨우 눈을 떴다. “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왜 내게 알리지 않았더란 말이냐? 죽기를 작정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회영을 유심히 살피던 김창숙이 다시 놀랐다. 겉옷이 없었다. 이불도 없었다. 광야의 별무리 일제의 끈질긴 추격을 피해 천진으로 거처를 옮긴 후 회영의 집으로 뜻밖의 인물이 찾아왔다. 김종진이었다. 7년 전 김종진은 회영의 소개장을 들고 신규식을 찾아갔고 신규식은 그를 운남군관학교로 보내주었다. 김종진은 몇 년 동안 교육을 받은 뒤 늠름한 장교가 되어 독립군단에서 활약을 하다가 회영을 찾아온 것이었다. 김종진은 이제 북만주로 가서 김좌진 장군과 함께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두 사람의 화제는 사상문제로 전환되었다. 김종진은 벌써부터 아나키즘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사흘 동안 아나키즘에 대한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김종진은 아나키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고 김좌진 장군을 찾아가 아나키즘 정신을 바탕으로 항일운동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어서 북만주로 가 아나키스트 동지들과 연합할 수 있도록 형님을 설득하겠습니다.” 또다시 겨울이 닥쳐왔다. 봄옷을 입고 이불도 없이 냉방에서 겨울밤을 보낸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은 것과 같았다. 아들 규창은 고령인 아버지가 추위와 굶주림을 어떻게 견뎌낼지 걱정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주인집 여자가 회영이 그린 석파난을 이웃에 팔아주었고 서울에서 아내 은숙이 돈을 조금 보내와 그런대로 생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었다. 이을규와 김종진이 다시 그를 찾아왔다. 두 동지를 만난 회영은 솟구쳐 오르는 감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해후의 기쁨도 잠시뿐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의 습격을 받고 죽었다는 비보였다. “이럴 수가! 어찌 우리 손으로 우리의 영웅을 죽여 없앤단 말이냐?” 김종진은 새로운 사상에 냉소적이었던 김좌진 장군이 회영의 말을 전해 듣고 아나키스트들과의 연합을 결심하고 회영에게 빨리 연락드리라고 말했다며 통곡을 멈추지 못했다. 마지막 선택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젊은 동지들이 중국과 일본의 합작은행인 ‘정실은호’를 습격한 뒤, 일본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회영은 아들 규창을 데리고 천진에서 상해로 거처를 옮겼다. 정실은호를 턴 자금을 들고 만주로 간 젊은 아나키스트들은 김좌진 장군의 뒤를 이어 한족총련을 이끌고 있는 김종진과 함께 집단농장을 건설하여 농민들과 농사를 지으면서 아나키즘 방법인 지방자치제를 운영해나갔다. 지방자치제에 대해 대부분의 한인들은 환영했지만 중앙집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한족총련 내의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사사건건 방해를 일삼았다. 그리고 결국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아나키스트의 중심인물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김종진까지 죽여버렸고 마침내 한족총련은 허물어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독립군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북만주를 빠져나온 젊은 아나키스트들은 상해로 모여들었고 회영의 집은 다시 상해의 아나키스트 본부가 되었다. 아나키스트 동지들은 ‘남화한인청년연맹’이란 이름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새롭게 출발했다. 동지들이 회영을 의장으로 추대했지만 회영은 사양하고 대신 유자명을 의장으로 세웠다. 남화연맹이 출범하자 회영은 유자명을 통해 왕아초 등 중국 아나키스트들과 만나 한중협력으로 일본의 침략을 막아낼 군인양성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32년 4월 29일 일본의 상해사변 승전 자축 기념식이 홍구공원에서 열렸다. 남화연맹은 이 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의 요인들을 응징하기로 결정했으나 입장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상해임정에서는 김구의 지시로 윤봉길이 극비리에 거사를 준비했고 식장에 들어가 도시락과 물통으로 위장한 폭탄을 던졌다. 이 소식을 들은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김구와 함께 남화연맹 대표 유자명도 함께 불러 한국의 독립의지를 높게 평가하며 호의를 베풀었다. 윤봉길의 의거로 인해 중국의 관심을 끌었지만 독립운동의 앞날은 여전히 캄캄했다. 회영은 다시 중국 아나키스트인 이석증과 오치휘를 만나 한인 아나키스트 독립지사들에 대한 협조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가 막힌 제안을 내놓았다. “지금이야말로 한국과 중국이 함께 힘을 합해 공동전선을 펼쳐야 한다고 봅니다. 만주는 한인 교포가 백만이 넘는 곳이므로 교포들이 힘만 모아준다면 중국으로서도 만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윤봉길 의거만큼 큰 거사를 일으키면서 항일전선을 펼쳐준다면 장차 중국 정부는 만주를 한인 자치구로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물욕과 명예를 초개처럼 여기는 조선 아나키스트들에게는 얼마든지 자금과 무기를 제공할 수 있소이다.” 회영은 가슴이 뛰었다. 그것이야말로 간절히 바란 소망이었다. 이석증과 오치휘는 즉시 만주 군벌 장학량에게 이러한 뜻을 전했고 장학량은 이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상황이 변하기 전에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회영은 자신이 직접 만주로 가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회영은 대련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황포강 수상부두로 나갔다. 회영을 실은 남창호가 대련을 향해 기세 좋게 달리기 시작했다. 회영은 4등실 밑창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한참을 달리던 배가 갑자기 크르릉 하며 기관을 줄이는 소리가 났다.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면서 무슨 일인지 일본 경비정이 두 척이나 붙었다고 했다. 회영은 머리끝이 솟구쳐 올랐다. 곧이어 일경의 군홧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일경은 곧바로 회영 쪽으로 다가오다니 그의 양팔을 낚아챘다. “독립투사 이회영 선생을 대련경찰서로 모시라는 분부요.” 일경은 회영을 끌어내 경비정에 옮겨 태웠다. 찬란한 저녁 햇살 회영을 체포했다는 소식은 급히 총독부에 타전되었고 총독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긴급회의를 열었다. 회영을 맞은 대련경찰서장 후쿠다 오시이는 회영의 인삼을 훔쳤던 후쿠다 요시모토의 손자였다. 후쿠다는 회영을 잡기 위해 자원해서 대련경찰서로 왔다고 말했다. 후쿠다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흘리며 회유작전부터 시작했다. 이회영을 일본 앞에 무릎을 꿇린다면 자신은 영웅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후쿠다는 곧 좌절하고 말았다. 회영은 도저히 회유될 인물이 아니었다. 후쿠다는 생각을 바꾸어 회영을 여순감옥의 고문실로 이송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후쿠다는 밀고자가 회영의 조카, 즉 석영 형님의 둘째 아들 규서라고 말하며 회영을 조소했다. “오, 규서야!” 회영의 입에서 절규가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그들에겐 밥과 여자가 필요했소. 그들의 조국이 그들에게 밥과 여자를 주지 못한 탓이오. 한창 펄떡이는 젊음을 그렇게 굶주림에 떨며 낭비하게 버려둔다는 것은 자연법칙에 대한 모독이란 말이오.” 후쿠다의 잔인한 목소리는 그가 퍼붓는 몽둥이 세례보다 천배나 무서운 고문이었다. 후쿠다가 최후의 몽둥이를 휘둘렀다. 회영은 조국에 대한 마지막 예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직 조국이 슬픈데 혁명가의 최후가 안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 조선의 명문가로서 형제들의 선택에 일 점 후회도 없으며 끝까지 옳았다는 것. 조국을 지키지 못한 것을 끝까지 미안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조선의 명족이군.” 후쿠다가 부지불식간에 독백하며 몽둥이를 내려놓았다. 역류하던 피가 목에서 쿨럭거렸다. 숨이 막혔다 터지기를 반복했다. 정녕 죽음이 임박한 모양이다. 영하 40도 추위를 가르며 만주벌판을 달리던 열두 대 삼두마차의 말발굽 소리가 장쾌하게 들려왔다. 다시 태어나도 그 길을 택할 것이다. 회영은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평생 가슴에 묻어온 철칙을 되뇌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반드시 이루어야 할 바가 있고 그것을 성취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취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루려고 애쓰다 죽는다면 그 또한 행복일 것이니. 그러므로 예로부터 우리 조선 민족은 의롭게 죽을 곳을 찾았나니…….” 청년 시절 조국의 고뇌를 안고 자주 오르던 남산이 떠올랐다. 때마침 해가 지고 있었고 산봉우리에 걸친 해가 찬란한 빛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회영은 “사람의 최후도 저렇게 아름다워야 하는데…….” 하고 독백하며 준비된 한복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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