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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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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선교회 동북아권역 수련회
2013년 바울선교회 동북아권역 수련회가 울란바타르 테렐치에 있는 UB-2호텔에서 8월4일-8월9일 동안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과 MK들 그리고 본부팀들이 101명이 참석할 예정인데, 본 수련회가 하나님을 기쁘시…
2013년 바울선교회 동북아권역 수련회가 울란바타르 테렐치에 있는 UB-2호텔에서 8월4일-8월9일 동안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과 MK들 그리고 본부팀들이 101명이 참석할 예정인데, 본 수련회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선교사님들에게 유익이 되는 좋은 기회가 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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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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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강준민 지음 토기장이 / 2012년 10월 / 350쪽 / 13,000원 ▣ 저자 강준민 수십여 권의 저서를 통해 성도들의 영성을 깨워온 그가, 이제 우리에게 깊은 영성을 추구하도록 도전하고 있다. 오랜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강준민 지음 토기장이 / 2012년 10월 / 350쪽 / 13,000원 ▣ 저자 강준민 수십여 권의 저서를 통해 성도들의 영성을 깨워온 그가, 이제 우리에게 깊은 영성을 추구하도록 도전하고 있다. 오랜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친밀감과 경외감이 더욱 깊어진 그의 메시지는 독자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뿌리내리도록 돕는다.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부흥을 이끄는 목회자인 그는 서울신학대학교와 아주사신학대학원, 탓봇신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KOSTA(세계복음주의학생연합회)와 미주 두란노서원의 큐티 세미나 강사로 섬기고 있으며, 미국 LA 소재 로고스교회, 동양선교교회에 이어 현재 새생명비전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뿌리 깊은 영성』,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외에 다수가 있으며 미국 IVP 출판사에서 출간한 『Deep-Rooted in Christ』, 『Scripture by Heart』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Short Summary 강준민 목사의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는 우리에게 ‘기다림의 신비’를 가르쳐준다. 저자의 깊은 묵상이 담긴 책이라서 우리를 주님 앞에 잠잠히 머무르도록 도울 것이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의 본성이기에 우리는 기다림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기다림은 훈련을 통해 형성되는 제2의 천성이고, 그 유익이 크기에 반드시 배워야 하는 성품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다림은 아주 중요하다. 기다림이 바로 믿음이기 때문이다. 믿음 안에는 이미 소망이 있고, 이 소망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바로 기다림이다. 우리는 이 믿음을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굳게 지켜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은 다르기에 때론 하나님이 우리를 오래 기다리게 만드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정확하시다. 기다림을 통해 연단하시고, 전체를 보게 하시며,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이끄신다. 그러나 기다림은 결코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어두운 상황에서 마냥 기다린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신뢰한다면 어두움도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치 어두운 어머니의 자궁에서 놀라운 생명의 신비가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기다림은 우리의 영적근육을 강화시켜주기에 결코 낭비가 아니다. 기다림을 통해 주님께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어 어떤 환경에서도 요동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동안 기도하며 준비하고, 일상의 삶에 충실하면서 실력을 쌓아 간다면 마침내 카이로스의 시간에 하나님은 반드시 길을 여신다. 지금, 고난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면 기다림의 묵상은 더욱 유익할 것이다. 기다림의 신비를 배우며 기다림의 영성을 훈련한다면 우리의 내면은 고요한 중에 하나님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 차례 서문 1부 기다림의 대가들 기다림은 은혜 가운데 거하게 합니다 기다림은 꿈을 준비시킵니다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기다림은 건지시는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2부 기다림의 태도 기다림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고요히 분노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감사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3부 기다림의 선물 기다림은 새 힘을 공급합니다 기다림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합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때를 알게 합니다 기다림은 소망을 잉태합니다 4부 기다리시는 하나님 기다림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합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게 합니다 미주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강준민 지음 토기장이 / 2012년 10월 / 350쪽 / 13,000원 1부 기다림의 대가들 기다림은 은혜 가운데 거하게 합니다. 기다림은 꿈을 준비시킵니다.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기다림은 건지시는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기다림’은 제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고 살아온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이제 발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다림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기다림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까닭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날 이사야 30장 18절을 읽다가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복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이사야 30:18). 기다림은 신비입니다. 역설입니다. 영어로 수동적이라는 뜻의 ‘passive’와 열정이라는 의미의 ‘passion’은 ‘참는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 어근 ‘pati’에서 나왔습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은 수동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능동적인 열정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는 기다립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출산하기까지 그냥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사이 아이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점점 성장하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강한 생명력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이라는 씨앗의 신비이며 또한 기다림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신비는 복음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은 수동적이 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동적으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토록 능동적으로 가르치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던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두 손을 펴고 모든 것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맡긴 채 수동적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던 사흘은 어두움의 시간이었습니다. 온 인류는 숨을 죽인 채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부활의 생명이 예수님 안에 약동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은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기다림의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궁극적으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기다리게 되고, 사랑하는 것만큼 기다리게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인내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어려운 상황도 견딥니다. 기다림은 사랑의 동경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충만해집니다. 사랑하는 대상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 가슴은 벅찬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는 빠른 속도에 집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속도 중독증에 걸려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빨리,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은 속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은 세상의 속도만큼 빠른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혼은 느린 것을 좋아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합니다. 내면의 부요는 고요함 속에 있습니다. 고요함과 평안은 기다림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그러나 약속은 주셨지만 그 약속을 당장 이루어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아브라함은 시험에 듭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진 그가 만들어 낸 것이 이스마엘입니다. 아내인 사라가 아닌 여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만든 불신의 열매입니다. 그의 불신은 조급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모든 죄는 조급함에서 시작된다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인간에게 큰 죄가 두 가지 있으며 다른 죄도 모두 여기서 나온다. 조급함과 게으름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에 근거한 소망은 영혼의 닻처럼 튼튼하고 견고합니다. 약속을 붙잡고 기도할 때, 우리의 믿음은 강해지고 소망은 튼튼하고 견고해집니다. 성경에는 많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받는 길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 약속이 우리의 삶 속에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기다리는 기술은 정말 중요한 삶의 기술입니다. 기다릴 때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조급함이나 원망이 아니라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태도는 우리가 기다리는 중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을 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오래 참음으로 웃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나이 100세에 아들을 주시고 이름을 이삭이라고 짓게 하셨습니다. 이삭의 뜻은 ‘웃음’입니다. 기다리면 웃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기다림은 자신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삭은 예수님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류 최초로 부활을 믿었던 사건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 그의 아들 이삭뿐만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님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은 이삭 대신 숫양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숫양은 장차 이 땅에 오실 어린양, 곧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를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요한복음 8장 56절에서 강조합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기다렸던 것처럼, 인류는 이 땅에 오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던 사흘은 어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두움 중에 하나님은 부활을 준비하셨습니다. 사흘 후에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나님 곁으로 가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기쁜 소식인 복음은 우리에게 웃음을 줍니다. 웃음은 기다림의 열매입니다. 지금 칠흑같이 어두운 현실 가운데 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다리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 내심으로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도움이 되신 것입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 40:2). 이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이란 말의 뜻 중 하나가 ‘건져 내다’입니다. 구원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함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도, 도를 닦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늪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는 스스로 늪 속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 늪 속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와서 건져 주어야 합니다. 인간의 노력, 철학, 도덕, 윤리로 구원에 이를 자는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은 죄인이며, 죄의 늪은 깊고도 깊습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구원은 은총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을 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은 그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이유가 자신의 머리털보다 많은 죄 때문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저도 제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 아무도 탓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 자신의 부족함과 죄된 모습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께 구한 것이 있다면 은혜와 긍휼과 인자하심이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습니다. 또한 그는 진리로 그를 항상 보호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진리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오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진리의 본체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기다림의 태도 기다림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고요히 분노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감사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머물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신 후에 더 많은 은혜를 베풀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더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우리의 그릇을 정결케 하십니다. 그릇이 더러우면 큰 복을 부어 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허락하신 것이 고난입니다. 어려움입니다. 우리 인간은 고통을 통해 자신을 정결케 하는 길에 들어섭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앗수르라는 강한 적수를 보내신 것은 그들을 정결케 하기 위함입니다. 고난을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은 고난이 찾아오니까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보다 오히려 애굽의 도움을 받으려고 빨리 내려간 것입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사 30:15).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돌이켜 안연히 처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회개’와 ‘안식’으로, 영어 성경에는 ‘repentance’와 ‘rest’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우리 생애를 하나님께 맡길 때 안연히 처하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몸속에 있는 노폐물이 독소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영혼의 독소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할 때 예수님의 피가 모든 죄를 깨끗케 합니다. 우리는 정결한 그릇이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그늘 아래가 가장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하는 것처럼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인생에서 속도를 무시할 수 없지만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유다 백성은 지금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속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더 빠른 적을 보내어 그들을 공격하게 만듭니다. 빠른 속도 때문에 더 빨리 진멸당하게 됩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가 빠를수록 상태는 더욱 악화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잠잠히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은 바로 잠잠하고 신뢰할 때 임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큰 도움이 임하면 그들에게 놀라운 번영이 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강력한 치료의 광선을 발하셔서 상처를 치유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대적 앗수르를 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큰 도움이 임하면 큰 문제는 큰 기적이 됩니다.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큰 도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은 잠잠하고 신뢰할 때 경험하게 됩니다. 진정한 힘은 고요함에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고요함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그런 까닭에 내적인 힘이 약합니다. 진정한 힘은 내적인 힘입니다. 그 힘은 고요함을 가꿀 줄 아는 사람이 경험하게 됩니다. 침묵 중에 마음의 불꽃을 가꿀 줄 아는 사람이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내면에는 성령님의 불꽃이 있습니다. 이 불꽃을 잘 가꾸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너무 시끄러워서도 안 됩니다. 쉽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추운 겨울에 문을 열어 놓으면 따뜻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입을 너무 크게 열고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내면의 따뜻한 기운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차가워집니다. 차가우면 날카로워지고 사나워집니다. 우리는 늘 내면을 따뜻하게 간직해야 합니다. 침묵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십시오. 파스칼은 “인간이 겪는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있을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잠히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홀로 머물러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산에 올라가 기다리는 처음 육 일 동안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칠 일 만에 나타나셨습니다. 모세는 잠잠히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그는 지루함을 견뎌 낸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것이 금송아지입니다. 지루함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두려워 만든 것이 우상입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상에게 숭배하고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조바심과 조급함이 만들어 낸 것이 시끄러운 세상 문화입니다. 영혼이 세상 문화의 영향을 받을 때 흔들리고 불안해집니다. 영혼은 고요함 속에 살찝니다. 하루에 몇 분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잠잠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잠잠히 하나님을 신뢰할 때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우리가 정로로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때 경험한 영혼의 고요함을 간직한 채 세상 속에서 생활하십시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혼의 고요함을 선물하십시오. 기다림의 선물 기다림은 새 힘을 공급합니다. 기다림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합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때를 알게 합니다. 기다림은 소망을 잉태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함께 우리가 분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입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다르게 역사하십니다. 새롭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적합한 때를 선택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입니다. 능력이 없으면 때를 바꾸고 싶다고 해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오직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 한 분만이 가능하신 일입니다.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단 2:20-2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킨 후에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때를 따라 양식이 바뀐 것을 보게 됩니다. 애굽에서는 애굽의 양식을 주셨고, 광야에서는 하늘의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는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렸던 만나가 그친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지도자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때에는 광야에서 그의 지팡이로 역사하셨습니다. 모세의 때가 끝나고 여호수아의 때에는 말씀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주신 도구는 말씀 묵상이었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하나님은 때를 주관하십니다. 보통 헬라어에서 ‘때’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때, 즉 시간이라는 단어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 크로노스(chronos) - 일상의 시간, 평범한 시간 * 카이로스(cairos) - 하나님이 개입하는 시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 * 플레루(pieroo) - 때가 찬 시간, 완성의 시간, 성취의 시간, 열매를 맺는 시간 갈라디아서 4장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율법의 때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이라는 초등학문 아래서 종과 다름없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을 때 그들은 종처럼,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아 살았습니다. 그들이 먹었던 영의 양식은 율법이었습니다. 그들은 본래 하나님의 자녀였지만 율법 아래 있는 동안 종의 신분을 가지고 ‘종노릇’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율법 아래 있던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새로운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중에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때가 차서 예수님이 오심으로 새로운 때가 열렸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 새로운 시대는 복음의 시대입니다. 은혜의 시대입니다. 복음의 시대에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한때 종노릇했던 그들의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습니다.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았던 그들이 이제 아들의 영, 즉 성령님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양식은 이제 율법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새로운 시대가 열림으로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을 때 크로노스, 카이로스, 플레루의 과정을 잘 거치셨습니다. 예수님은 30년 동안 크로노스의 시간을 보내십니다. 아주 조용히 은밀하게 그 시간을 보내십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예수님은 일상의 평범한 시간을 지식과 지혜로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영성을 깊게 하셨습니다. 이 기간 동안 성경을 읽고, 암송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놀라운 진리를 깨우치신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목수의 일을 하면서 성장하셨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 평범한 일을 통해 장차 제자를 선택하고 키우는 일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드디어 서른 살이 되셨을 때 카이로스가 임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은 구속의 사역을 공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시고, 마귀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때가 아직 이르지 않으셨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가서야 비로소 예수님은 이제 구속의 때, 때가 찬 그때, 플레루가 임박한 것을 느끼십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예수님은 항상 때를 살피셨습니다. 때를 따라 움직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19장까지는 가장 위험한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엄청난 공격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공격을 지혜롭게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의 영광에 임하셨습니다. 바로 그때가 플레루의 때입니다.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때가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플레루는 때가 차서 여인이 아기를 낳은 것을 의미합니다. 때가 완성된 것입니다.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면서 새로운 때가 도래했습니다. 복음의 시대, 성령의 시대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충만히 임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협력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협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집니다. 긴 기다림의 때를 잘 통과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순식간에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이르기 전이 가장 어둡고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마치 새벽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것과 같습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기다리시는 하나님 기다림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합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게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우리가 잘 아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동전,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에 관한 비유입니다. 우리의 비극은 잃어버린 아들, 탕자처럼 은혜 베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면 더욱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기보다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완강히 은혜를 저항한다. 은혜는 변화를 일으키고, 변화는 반드시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 플레너리 오코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 변화됩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 속에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둘째 아들인 탕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합니다. 그의 죄의 뿌리는 ‘조급함’에 있습니다. 조급한 사람은 쾌락을 먼저 선택하고 나중에 고통이라는 대가를 지불합니다. 반면에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먼저 고통을 선택하고 나중에 즐거움을 누립니다. 스캇 펙 박사는 이것을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눅 15:13). 사람은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다 상실하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자 그는 마침내 회개합니다. 그가 회개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인생에 새로운 문이 열립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탕자가 귀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두렵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받아 주실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아들을 먼 거리에서 아버지가 먼저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이 이야기는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아버지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식, 불순종한 자식은 그 성읍의 모든 사람이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허랑방탕한 탕자,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가지고 가서 탕진하고 돌아온 이 아들 역시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 손도 대지 못하게 달려가 아들을 낚아챕니다. 충격적인 메시지입니다. 충격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또한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기 원하십니다. 이 탕자의 비유를 연구한 분들이 이 비유 속에는 두 명의 탕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한 명은 집을 나간 탕자입니다. 즉, 둘째 아들입니다. 또 하나의 탕자는 집 안에 있는 탕자입니다. 첫째 아들을 가리킵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 때문에 잔치를 베풀었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첫째 아들의 죄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의 문제는 잘못된 의로움입니다. 잘못된 의로움이 아버지 집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의는 관계 속에서 발견됩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의 의는 독선적인 의입니다.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의입니다. 그의 죄는 비교 의식, 경쟁의식, 소유 의식 속에 산 것입니다. 아버지는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절하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잔치 자리에서 나와 첫째 아들을 설득하고 권면합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 15:31-32). 복음은 첫째 아들이 둘째 아들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대신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첫째 아들에게 원했던 것은 그가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허랑방탕한 동생을 찾아가서 그를 아버지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첫째 아들은 동생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죄했습니다. 그 당시 첫째 아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또한 둘째 아들은 세리, 창기, 죄인, 그리고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첫째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아버지의 자비, 아버지의 긍휼, 아버지의 눈물을 아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천국에서 멀고 먼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먼 나라에서 허랑방탕한 우리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첫째 아들은 탕자를 부끄러워했습니다. 탕자의 형이라고 불림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탕자와 같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결코 부끄러워한 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품을 멀리 떠났던 우리를 구원하시고 잔치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잔치가 베풀어지고, 잃은 양을 찾았을 때 온 동네가 다 모여 기뻐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잃은 동전을 찾았을 때도 온 동네가 다 모여 기뻐합니다. 이처럼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복음은 즐거운 소식입니다. 우리는 탕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큰형님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예수님처럼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가서 아버지 집으로 데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아버지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도 사랑하시고, 첫째 아들도 끝까지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먼 나라에 간 탕자도 사랑하시고, 집 안에 있는 탕자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제 인생의 여정도 돌이켜 보면 둘째 아들의 과정을 거치고, 첫째 아들이 되었다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가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친히 보여 주신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가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멀었습니다. 지금도 때론 둘째 아들이 되기도 하고, 첫째 아들이 되기도 합니다. 바리새인처럼 살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을 품고 살고 있습니다. 한때 노예처럼 일하면서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을 정죄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보다 중요한 것이 관계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노예처럼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자녀처럼 사랑 속에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풍성한 사랑과 은혜, 그리고 잔치 속에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아버지 품에 안기십시오. 아버지가 베풀어 주신 것을 받아 누리십시오.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일평생, 그리고 영원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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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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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회복의 기술
관계 회복의 기술 알린 하더 지음 베이직북스 / 2014년 6월 / 336쪽 / 15,000원 ▣ 저자 알린 하더 『관계 회복의 기술』은 저자가 30년간 가족치료사로 활동하면서 의 핵심적인 사항을 심리치유 관점에서 기획한 책이다. 많은 …
관계 회복의 기술 알린 하더 지음 베이직북스 / 2014년 6월 / 336쪽 / 15,000원 ▣ 저자 알린 하더 『관계 회복의 기술』은 저자가 30년간 가족치료사로 활동하면서 <더 나은 미래(Better Tomorrows): 위태롭거나 깨진 관계를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사항을 심리치유 관점에서 기획한 책이다. 많은 개인 성장 프로그램이 그러하듯 이 프로그램 역시 30여 년에 걸쳐 이런저런 경험을 축적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시켰다. 따라서 이 책과 <더 나은 미래> 프로그램에 있는 자료는 필자를 찾았던 내담자들의 경험과 필자의 경험, 또한 대학원 강의와 워크숍 등의 다양한 원천에서 얻은 것이다. 그와 더불어 수많은 책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거나 오래된 개념을 새로운 말로 표현할 수 있었으며, 몇 가지 생각을 함께 엮어낼 수 있었다. 또한 『성인이 된 자녀 놓아 보내기』와 『자신에게 묻고 인생을 바꿔라』와 같은 필자가 앞서 내놓은 책이나 필자가 쓴 다른 글 등에서 직접 인용한 부분도 있다. ▣ 역자 유자화 성균관대학교 번역테솔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초등학교 보건교사로도 일하면서 건강과 의학을 비롯하여 심리학, 철학, 과학,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즐겁게 번역하고 있다. 지금까지 옮긴 책으로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감춰진 생물들의 치명적 사생활』, 『나쁜 생각』, 『욕망의 아내』, 『어머니를 돌보며』, 『건강, 음식, 질병에 관한 오해와 진실』, 『비행기의 역사』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당신이 막 집어든 이 책은 지금 위태롭거나 이미 깨져버린 관계를 치유하기 위한 <더 나은 미래> 프로그램의 기본 구성요소이다. 이 책과 <더 나은 미래> 프로그램에는 그동안 내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또 부모가 기대했던 삶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버린 내 아들을 지켜보면서 배운 것이 총망라되어 있다. 내가 몇 년에 걸쳐 배운 것은 상처 입은 관계를 아물게 하고자 한다면, 아니 최소한 상심한 마음을 치유하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 안에 무엇이 들어 있어 관계에 문제를 일으켰는지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내면에서 바꾸어야 할 것을 찾아내어 상황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건강한 관계는 오로지 우리 내면에서 와야지 외부에서 누가 줄 수는 없다. 내 안의 어떤 것을 바꾸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적용하려는 노력도 무용지물이다. 당신 안의 어떤 것을 바꾸어 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챕터마다 치유 연습을 제공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런 훈련일 것이다. 실제로 관계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얻은 통찰력과 의도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제공하는 치유 연습이 필요한 변화를 이루도록 도와줄 것이다. 당신 자신과 당신 삶에 함께 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내일을 창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차례 추천사 / 프롤로그 Chapter 1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 관계 회복의 첫 단추 Chapter 2 나는 누구인가?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Chapter 3 어떻게 지금의 당신에 이르렀는가? ― 관계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Chapter 4 정서를 관리하는 기술 Chapter 5 관계에서 원하는 목표를 설정하는 기술 Chapter 6 죄의식과 후회를 떨치고 사과하고 용서하는 기술 Chapter 7 자아를 강화하는 기술 Chapter 8 에고가 사랑을 파괴하지 않도록 막는 기술 Chapter 9 불협화음을 해소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기술 에필로그_ 관계 회복을 위한 마지막 체크리스트 관계 회복의 기술 알린 하더 지음 베이직북스 / 2014년 6월 / 336쪽 / 15,000원 어떻게 지금의 당신에 이르렀는가? ― 관계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삶은 자신만의 공든 탑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당신의 삶을 이루고 있는 천조각이 예술 작품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삶의 천조각이라는 메타포를 이해하기 위해 당신이 날이면 날마다,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베틀 앞에 앉아 천을 짜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인류라는 옷감에 당신만이 보탤 수 있는 특별한 무늬가 드러날 때까지 한 땀 한 땀 천을 짜는 것이다. 삶이란 베틀을 돌릴 때 당신이 틀에 단단하게 감겨 있는 기다란 씨실과 날실을 맘대로 조작하지는 못한다. 씨실과 날실은 당신의 유전적인 조성을 상징하고, 당신이 태어난 시대와 성장한 문화의 기준을 나타낸다. 그것은 당신이 선택하지 않았다. 행운이나 운명, 아니면 신이 당신 삶에 그저 던져준 것만이 아니라 삶에 들어온 기회와 상황에 의해 우연히 결정된 것들이다. 그렇긴 해도 당신은 베틀 앞뒤로 실을 잡아당기는 데 상당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씨실과 날실의 색깔과 질감은 삶이 제공한 것들에 반응하여 당신이 선택한 결과를 나타낸다. 모든 결정이 그렇진 못하지만 당신은 신중히 결정을 내렸고, 색깔도 신중하게 선택했다. 선택의 제약 선택의 제약이라는 문제는 부당한 죄의식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잘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삶을 우리 생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는 데서 비롯된 죄의식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일이 그것을 생각하는 것뿐이라고, 원하는 일을 생각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은 관계를 갖고 싶은가? 더 낫게 생각하라. 미안하지만 나쁜 관계를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운 관계로 바꾸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내가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분명 다른 사람이 관계에서 하는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내가 내 운명의 선장이고 내 영혼의 주인이라고 믿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우리 생각에 달린 일이라고 고집하기보다는 우리가 통제력을 갖지 못한 일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더욱 분별력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어난 일에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책임이 있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나를 만든 8가지 요소 관계 문제에서 가장 염려하는 것이 자녀와의 관계가 멀어진 것이라면 당신은 아마도 자신을 탓할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당신은 부모를 원망할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어렵다면 사회를, 가난을, 또는 기회가 없었던 것을 원망할 것이다. 관계가 우리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았거나, 우리 자신이 우리가 바라던 사람이 되지 못한 경우에는 누구를 비난해야 할까? 누구 탓인지 잘잘못을 가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원망과 책임을 장기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제안한다. 종이를 한 장 꺼내라. 그 종이를 반으로 접어 둘로 나누어라. 그 종이를 다시 둘로 접어서 네 부분으로 나누어라. 또다시 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8등분 하라. 여덟 개 부분 각각에다 아래와 같이 제목을 적어 넣어라. ① 어머니 - 지금의 당신을 만드는 데 어머니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신이 어머니라면 당신 자녀의 성장 결과에 지대한 역할을 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② 아버지 - 아버지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남자 어른이 없고 어머니만 있는 가정에는 무엇인가가 빠져 있다. 홀 부모는 자녀 양육을 훌륭하게 해낼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홀 부모가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어머니일지라도 자녀와 남자 어른의 시각을 나눌 수는 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③ 신체적 특징과 유전적 조성 - 키는 우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스포츠에서뿐만이 아니라 교실에서도, 정치에서도 키가 큰 사람이 작은 사람보다 유리하다. 유전은 당신이 어찌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주어진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부분적으로 유전자의 영향이고, 당신과 얽힌 관계에 있는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 타고난 기질적 특성은 우리가 삶에 반응하는 방식과 다른 사람에게 반응하는 방식, 또한 타인이 우리에게 반응하는 방식에 차이를 만든다. 또한 아무리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고 생각하려 해도 남녀 간에는 신체적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④ 개인적 선택 - 각자가 지금까지의 자기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관계의 질은 그만큼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우리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매번 하는 선택이 상황을 더 나쁘게도 더 좋게도 만든다. ⑤ 교육 - 당신이 받은 학교 교육 형태와 수준이 오늘날 당신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교실이 하나밖에 없는 학교와 시설 좋은 대규모 학교가 길러내는 인물은 다르다. ⑥ 친구와 가족 - 어린 시절에는 물론이고 성인이 되어 독립한 후에도 주변 사람들이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인생에 권위자연하는 사람이나 정치 지도자, 유명인사,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 종교지도자, 이웃, 직장동료 등의 의견에 영향을 받는다. ⑦ 문화와 사회 - 우리가 성장한 사회는 우리 자녀와 우리 자녀의 자녀가 자라는 세상과는 분명 다르다. 우리가 자랄 때는 지금처럼 약물이 흔치 않았다. 오늘날 우리 자녀들은 쉽게 약물과 알코올에 손댈 수 있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설이나 프로그램은 그만큼 충분하지 않다. ⑧ 운명, 행운, 신과 상황 - 4살에 부모가 이혼하거나 세상을 떠났을 때 받는 영향과 경험은 14살에 부모를 잃었을 때의 경험과는 다르다. 비극이 일어나더라도 해결하기에 좋은 상황일 수 있고, 우리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일 때도 있다. 이런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삶을 받아들이기 더 쉽게 한다. 당신은 현재 당신의 처지와 관련된 사실들 중에 일부는 바꿀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바꾸는 일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바꿀 힘은 갖고 있지 못하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무엇을 선택할지 생각한다면 관계 치유로 가는 길을 찾기가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관계에서 원하는 목표를 설정하는 기술 지금까지는 왜 상처 난 관계를 치유하지 못했을까? 왜 자기 결혼 생활이 실패로 돌아갔는지 전혀 모른 채로 세 번째 네 번째 결혼으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를 따져보았다고 하더라도 그저 상대방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거나, 상대방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거나, 아니면 그저 간단히 운이 없어 결혼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라고 대답한다. 당신은 과거 관계에서 얼마나 자주 같은 문제에 부딪혔는가? 왜 계속해서 같은 문제로 괴로움을 겪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과거에 왜 그리고 어떻게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는지 자세히 탐색하여 알아낸 것들을 지침으로 삼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상황이나 다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어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도움을 얻기 위해 해볼 수 있었던 일은 없었을까? 당신에게 중요한 누군가(현재 관계에 문제를 겪고 있는 상대가 아닌 다른 사람)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바꾸라고 충고했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원하는 일일 뿐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반발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는가? 아니면 당신의 관계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는가? 다시 말해, 당신은 원하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이유로 노력하지 못했고, 어떤 상황이 관계를 어긋나도록 만들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과거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제 현실이 어떤지 보자. 우리가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변화를 이루고자 노력하건 안 하건 세월은 사람도 상황도 바꾸어 놓는다. 따라서 아마도 이제 당신이나 상대방이나 과거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관계에 설정한 새로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전보다는 성공 가능성이 더 커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당신 자신에게 과거에는 몰랐으나 새로 알게 된 것이 무엇인지 물어라. - 당신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을 뛰어넘는 방법을 알았는가? - 한 번 더 노력하자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 상대방이 과거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가? - 당신은 과거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가? - 원하는 관계를 이룰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졌는가? 관계가 변하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아침에 명상을 하고 지금 이 순간과 깊은 교감을 느끼면서 축복받은 기분이었다고 해도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일터로 향해야 한다. 그 즉시 우리 마음은 해야 하는 일들로 들어찬다. 직장에서는 업무에 집중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지만 배가 고파지면 점심을 생각하고, 누구와 어디서 먹을지 고민한다. 점심을 먹으며 친구와 대화를 즐기더라도 금방 점심을 먹고 나면 해야 할 일들로 생각이 떠돈다. 그런 다음에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서 이런저런 업무를 보고 또 집으로 돌아온다. 직장에서 나설 준비를 하면서는 저녁으로 어떤 요리를 할지, 아이들과 그날 어떻게 놀아줄지 등등을 생각한다. 미래의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 관심을 집중시키고 목표를 향해 움직이게 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해 준다. 당연히 우리 미래가 현재 삶보다 더 나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우리는 더 큰 열정으로 미래를 맞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당신에게 행동하고 모험에 나서라는 요청에 화답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림으로 그릴 것을 제안한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을 실제로 해야겠다는 바람을 가로막고 있는 변화로 가는 관문을 통과한 후의 삶이다. 원하는 미래를 그림으로 그려볼 수도 있고, 잡지에 있는 그림을 오려 내어 내 그림으로 만들 수도 있으며, 인터넷에서 그림을 내려 받을 수도 있고, 조각할 수도 있다. 한 가지 예로 당신의 미래에 대한 그림은 당신과 상대방이 서로를 유쾌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다. 설령 상대방이 당신이 반대하는 일을 하더라도 진정으로 박수를 보내주는 그림일 수도 있다. 관계를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기꺼이 하겠는가? 이제 우리는 관계 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를 생각할 시간에 이르렀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진정을 다해 의식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새로워진 관계를 생각하면서 기분 좋게 몽상에 잠기는 곳인 ‘원하고 바라는 땅’을 기꺼이 떠나 목표를 현실로 바꾸는 힘겨운 일을 실제로 해야 하는 ‘실천의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두 땅 사이에는 변화를 가로막는 관문이 있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치러야 할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기는 길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이 관문 앞에서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나는 관계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기꺼이 하겠는가?’ 물론 이 관문은 단지 비유이지만, 변화를 이루겠다는 결심을 되새기기 위해서 실제로 통과해야 할 ‘관문’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나는 내 상담실에 바라는 일과 실제 행동으로 옮길 일을 분리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나는 그 공간 반대편에 미래를 상징하는 그림(내담자의 마음에 품고 있는 그림이나 아니면 내담자가 직접 그린 그림)을 걸어 두고, 내담자와 함께 그곳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걸으면서 내담자는 몸으로 부딪히며 직접 해야 할 일을 실제로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이 방법은 자신을 그리고 관계를 진정으로 바꾸고자 하는 동기와 약속을 동시에 강화하기 때문에 무척 효과가 좋다. 죄의식과 후회를 떨치고 사과하고 용서하는 기술 죄의식을 구별하는 5가지 방법 누구나 어느 정도는 쉽게 떨칠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 양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기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개의치 않는 사이코패스는 이런 양심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이 갖고 있는 죄의식에는 다섯 가지 종류가 있고, 그 종류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① 본질적 죄의식 - 내가 이것을 ‘본질적’이라고 한 이유는 문명사회의 법에 새겨진 행동의 중심 규범에 어긋날 때 일어나고, 거의 모든 종교에서도 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와 같은 규범이다. 실제로 인류의 생존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위에 제약을 가하는 이런 중요한 규범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얼마나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 ② 당연한 죄의식 - 이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회와 관계의 규칙을 무시하는 것으로 생긴다. 일례로 당신이 소득세 신고를 허위로 했다면(명백한 불법행위)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은 것에 대해 마땅히 죄의식을 느껴야 하지만, 그 죄의식이 세금 신고를 제대로 하게 만들 만큼 크게 불편한 마음은 아니다. 실제로 나를 찾은 내담자에게 일어난 일이다. 집에서 몇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 놀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오빠 가족이 휴가를 떠난 동안 돌보기로 했던 강아지 생각이 났다. 몹시 더운 날이어서 오빠 집에 도착했을 때 강아지는 이미 열사병으로 죽어 있었다. 그녀는 몹시 슬펐고 죄책감을 느꼈지만 친구들은 그 일이 단지 사고라고 말했다.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므로 자신을 비난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은 그녀의 잘못이고,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히려 내 말에 안도했다. 마음속 깊이에서는 그녀도 자기가 책임감 없이 행동한 것이 잘못이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자신을 용서하는 치유과정을 거쳤을 때(강아지를 죽게 만든 책임을 부정하지 않고) 그녀는 평화로움을 느끼며 상담실을 떠날 수 있었다. 이런 당연한 죄의식은 모든 사람이 느껴야 한다. 우리가 죄의식으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을 느낄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돈을 더 적게 들여도 될 것이고, 반려동물도 단지 끼니를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는 일만이 아니라 더 큰 사고를 당하는 일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대다수가 사회, 친구, 가족에 대한 의무를 간과했을 때 적어도 약간의 죄의식은 경험한다. ③ 스스로 만들어낸 죄의식 - 세 번째 종류의 죄의식은 자기가 정한 마감일을 맞추지 못한 데서, 또는 자기 자신에게 부과한 성취목록을 달성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자기 스스로 부과한 죄의식은 애초에 죄의식을 일으키는 상황을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 다시 생각해 보도록 요구한다. 어떻게 해서 그 문제를 만들어 냈는지 정직하고 철저하게 돌아보는 것이 미래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만든다. ④ 빌려온 죄의식 -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특히 부모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은 이런저런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서 기인한다. 그런 말들은 사건과 그 사건에 연결된 정서 사이에 있는 믿음으로 이끄는 명령이다. 합리적 정서 요법을 창시한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온통 애정을 퍼부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빌려온 죄의식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수 있다. ⑤ 억지 죄의식 - 다섯째 종류의 죄의식을 ‘억지 죄의식’이라고 한 이유는 우리로서는 그 일을 막을 방법을 도저히 알 길이 없었으나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았어야 했다는 불가능한 가정을 한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다룰 방법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음에도 달리 행동했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에서야 옳은 방법을 알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것은 그 어떤 죄의식보다 무거운 죄의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완벽주의자에게 그렇다. 해묵은 죄의식을 극복하라 응당 죄의식을 느껴야 할 일도 아닌데 죄의식에 붙들려 있다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응당 죄의식을 느껴야 할 일이었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어떻게 죄의식을 감할 수 있을까? 아래처럼 해 보도록 하라. 죄의식을 조사하여 거기 담긴 교훈을 찾아내라: 죄의식을 갖고 있더라도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애초에 죄의식을 일으킨 잘못을 반복할 여지를 남긴다. 죄의식은 그런 면에서 자기 이해를 위한 귀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내가 한 일이 무엇이고 하지 않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죄의식을 더 쉽게 놓아버릴 수 있고, 앞으로는 비슷한 문제를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실수를 저질렀음을 인정하라: “내가 실수했어.”와 “미안해.”는 간단한 말이지만 입 밖으로 내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그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그 말을 하는 자신이나 그 말을 듣는 상대방 모두에게 커다란 치유 효과를 낼 것이다. 자신을 용서하겠다고 선택하라: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진 배낭을 내려놓는다. 그 전까지는 성취감과 만족스러운 관계와 같은 좋은 기억만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버리지 못한 죄의식도 끌고 다녀야 한다. 따라서 평생 죽음을 연구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죄의식은 아마도 죽음의 가장 고통스러운 동반자일 것이다.”라고 한 말은 지극히 당연하다. 죄의식을 일으킨 것이 무엇이든 그것에서 배워야 할 교훈을 배워 처리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럴 수만 있으면 우리가 죽음의 순간을 맞았을 때도 얼마나 더 가뿐할 것이며, 살아가는 동안은 또 얼마나 더 행복할까? 따라서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길은 (물론 그날을 맞을 날이 먼 미래의 일이기를 바라지만) 용서받아야 할 일이 무엇이든 우리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먼저 자기 자신부터 용서하라 안타깝게도 우리는 용서가 무엇이고,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지 방법을 몰라 우리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입혔거나 자신을 괴롭힌 일을 잊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이 내가 저지른 일에 책임질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후회스러운 일에 대해, 아니면 했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하지 못한 일에 대해 당시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내가 저지른 실수에서 배웠음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경험은 꼭 우리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때가 아니라 그 후에야 얻는다. -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실수를 저질렀을 당시의 자기 자신을 드디어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내가 그동안 자신에게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고 있었으므로 갖고 있는 모든 죄의식과 고통을 놓아준다는 의미이다. 지금에야 저지른 실수를 통해 배워 알지만 그 당시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일을 알았어야 했다고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이제 죄의식을 놓을 시간이라고 느낀다면, 지금 그 일로 몹시 자신을 비난하고 있더라도 그날 아침 당신이 당신 삶을 엉망으로 만들겠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겠다고 작정하고 잠을 깬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만일 당신이 그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당신의 노력이 적당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당시로서는 그것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따라서 당신이 자신을 용서하는 과정에는 자신에게 요구하는 기대와 요구, 조건까지도 모두 놓아버리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그런 기대와 요구를 놓아버릴 때 당신이 용서를 하는 사람이자 동시에 용서를 받는 사람이 되어 사랑이 당신의 온몸 구석구석으로 흘러넘치게 해야 한다. 자신을 용서하는 것으로 죄의식과 긴장이 모두 풀어져 없어지는 것을 느끼도록 하라. 후회를 다루는 방법 누구에게나 후회하는 일이 있고 후회는 우리를 과거에 붙들어 매놓는 죄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관계를 해치고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만든 말이나 행동을 한 것에 후회한다. 왜 사람들은 후회로 세월을 낭비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일이 우리가 기대한 대로 될 것으로 여겼지, 그 많은 실수를 저지르자고 작정하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후회를 접어둘 수 있고, 특히나 실망이 큰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할 수 있다.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 사랑은 무조건 피하고, 실패할까 두려워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는 사랑을 잃더라도 실패하더라도 시도는 해보는 것이 결국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가끔씩은 후회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다행히 후회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 후회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 단계가 필요하다. 첫째,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둘째, 작은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 연습을 하라. 셋째, 꿈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고의는 아니었지만 당신이 한 일 때문이었음을 인정하라. 넷째, 자신도 용서하고 다른 사람도 용서하라. ‘준비’ 단계의 다음은 ‘준비 완료’ 단계이다. 첫째, 과거의 후회 속에 감추어진 교훈을 발견하라. 둘째, 후회를 놓아버리고 싶은 이유를 적어보라. 셋째, 과거의 짐을 표상하는 상징이나 그림을 선택하라. 후회를 놓아버리기 위한 준비 단계와 준비 완료 단계를 마쳤다면, 마지막 단계는 ‘출발’이다. 과거에 갖고 있던 이미지를 미래의 희망의 이미지로 바꾸는 것이다. 첫째, 후회하는 일을 상징하는 종잇조각이나 또는 강력한 정신적 이미지를 만들어라. 둘째, 종이를 없애거나 이미지를 놓아버릴 의식을 마련하라. 셋째, 후회를 놓아버릴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라. 넷째, 안녕을 고하라. 다섯째, 자유로움을 느껴라. 여섯째, 미래를 환영하라. 에고가 사랑을 파괴하지 않도록 막는 기술 내 행복의 우물은 내가 책임진다 사랑과 자신감이 들어차 있는 우물이 있다고 치자. 우리가 그 우물을 가득 채운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우물이 마를 걱정은 하지 않고 마음껏 퍼 올려 쓸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부모가 그 우물에 사랑을 채워주었고, 우리는 그게 부모가 할 일이라 믿었다. 그러나 우리 부모가 육아 의무를 잘 해냈다면 결국 우리 자신의 행복을 창조하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세상에 공헌하는 것으로 우물을 잘 간수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도 배웠을 것이다. 우물에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의 물이 말라갈 때 우리는 삶을 한탄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우리 우물을 채워주기를 원하거나 채워주리라 기대한다면 우리의 기다림은 아주 길어질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와 위태하거나 깨져버린 관계에 있는 사람이 나를 위해 우물을 채워줄 때까지 기다리자면 평생 기다려야만 할지 모른다. 아쉽지만 우물을 사랑과 자신감으로 채우는 것은 원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행복이란 다른 사람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자주 선물을 주고 애정과 지지를 보내면서 사랑을 보여주어야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결론짓는 자아와 싸워 쟁취해야 할 전투이다. 다른 한편, 우리 우물에 사랑을 더하고 관계를 아물게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가운데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 그것이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는 압박감을 주지 않는 길이다. 진정한 자아로 사는 법을 배우라. 그래야 당신이 지금까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마음에 새겨야 할 지혜의 말 사랑은 세상을 바꾸고 관계를 치유할 위력을 갖고 있다. 관계와 삶을 망치면서 세상을 지배하기 원하는 독불장군 에고에 맞서고자 한다면 우리의 무거운 배낭을 철저히 청소해 내야 한다. 오랫동안 에고가 붙들고 있었던 생각과 습관으로 비롯된 무거운 짐을 훨씬 더 실속 있고 덜 무거운 것으로 바꾸어라. 그것은 사랑, 타인을 향한 사랑만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사랑이기도 하다. 용서와 자애심, 온화함과 친절,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사소한 약점을 눈감아줄 수 있는 아량 같은 다른 자질들과 함께 사랑을 키우면 당신이 오랫동안 질질 끌고 다니던 배낭의 무게는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또한 사랑에 마음의 문을 여는 길은 가능한 한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것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에고는 지금 이 순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에고는 당신이 앞일을 걱정하고 과거의 후회에 온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가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에서 말했듯,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은 세상에 봉사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아래는 그의 연설에서 발췌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당연히 대부분 우리 행복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 나옵니다. 당연히 우리의 가장 큰 기쁨도 다른 사람을 염려하고 생각할 때 나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타적인 행위가 행복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통도 줄여줍니다. 여기서 내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반드시 불운을 덜 겪는다는 암시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질병과 노화, 불운은 우리 모두가 똑같이 겪습니다. 그렇더라도 불안과 의심, 실망과 같은 우리 내면의 평화를 갉아먹는 종류의 고통은 분명 덜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염려할 때 내 걱정은 덜하게 됩니다.” 이 말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첫째, 우리의 모든 행동은 우주적인 측면을 갖기 때문에, 다시 말해 그것이 다른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할 방도로 윤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진정한 행복은 사랑, 연민, 인내, 관용, 용서 등과 같은 영적인 자질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질들은 우리의 행복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 에고가 사랑을 파괴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 지금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기꺼이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 세상도, 관계도 바꾸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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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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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학습교양 100
고품격 학습교양 100 이영직 지음 스마트주니어 / 2010년 7월 / 372쪽 / 11,800원 ▣ 저자 이영직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을 졸업한 뒤 시사영어사 편집국을 거쳐 LG화학 마케팅 팀장, 한국갤럽 기획조사실장을 지냈다. 현재 브랜디…
고품격 학습교양 100 이영직 지음 스마트주니어 / 2010년 7월 / 372쪽 / 11,800원 ▣ 저자 이영직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을 졸업한 뒤 시사영어사 편집국을 거쳐 LG화학 마케팅 팀장, 한국갤럽 기획조사실장을 지냈다. 현재 브랜디아 컨설팅 대표로 있으면서 경영 컨설턴트, 시장조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펄떡이는 길거리 경제학』『시장을 지배하는 101가지 법칙』『한국의 소호 아이템 201가지』『소호족을 위한 실전 마케팅』『창업아이템 창업노하우』『강자와 싸워 이기는 란체스터 경영전략』『단순한 원칙 하나가 당신의 미래를 바꾼다』,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농경사회는 근면, 성실한 사람이 필요했고 산업사회에는 논리적,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근면, 성실은 농업 생산성과 직결되었고, 논리적 사고와 합리적 사고는 기술개발과 원가절감에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디지털 사회, 소프트웨어 사회, 네트워크 사회가 되면서 근면, 성실이나 논리, 합리적 사고의 가치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오직 창의적인 사고만이 경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창의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며 부대끼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들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문학, 회화, 건축, 으악, 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천재들이 어우러지면서 찬란한 문며의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 중에 ‘동종교배 퇴화의 법칙’이란 게 있다. 동종교배는 퇴화로 이어지지만 이질적인 종들이 결합하면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는 이야기이다. 생명의 종이 가장 풍부한 곳은 어디일까? 바로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갯벌이다. 이질적인 두 요소가 충돌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나라를 잃고 2천 년 동안 세계를 떠돌면서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명과 부대끼면서 일어선 민족이기 때문이다. 21세기 국가의 경쟁력은 청소년들이 얼마나 창의적인 생각을 하면서 자랐느냐에 달렸다. 그러나 이미 입시위주의 학교 교육에서는 이런 창의적인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과 어울릴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경제, 사회, 과학, 수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핵심이 되는 ‘학습교양 100가지’를 선별하여 이를 읽는 학생들이 멋진 두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분야, 다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 나의 생각을 뒤섞어 보기 바란다. 그러면 마치 핵분열을 하듯 머릿속에서 무서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또한 이 책에는 학생들이 평소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수학, 과학 이야기도 담겨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어려운 수학, 과학 공식이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원리를 터득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썼다. 학교 공부뿐만 아니라 ‘도전! 골든벨’에서 골든벨을 울리고 싶은 꿈이 있는 청소년들이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아주 특별한 교양을 경험하길 바란다. 이 작은 책 한 권이 미래의 뉴턴, 미래의 아인슈타인, 미래의 빌 게이츠의 탄생에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다면 글쓴이로서는 더 없는 영광이 될 것이다. ▣ 차례 머리말_ 나만 알고 남들은 몰랐으면 하는 ‘고품격 학습교양’ Society 01. 작은 징조, 큰 재난, ‘하인리히 법칙’ 02. 개미구멍이 둑을 무너뜨린다? ‘깨진 유리창 법칙’ 03.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사소한 차이, ‘나비 효과’ 04. 정말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길까? ‘마이너리티 인플런스 현상’ 05. 사자 직원과 토끼 대장, ‘피터의 원리’ 06. 침묵은 곧 동의다! ‘단테의 법칙’ 07.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 ‘링겔만 효과와 사회적 태만’ 08. 꿈틀꿈틀, 주식시장이 살아있다고? ‘파동 이론’ 09. 중세의 암흑으로부터 인류를 구한 철학, ‘오컴의 면도날 법칙’ 10. 풍요속의 빈곤, ‘변증법의 법칙’ 11. 마야 문명이 사라진 원인은? ‘도전과 응전의 법칙’ 12. 엘리트VS집단지성, ‘1:99의 법칙’ 13. 세상을 바꾼 우연들, ‘세렌디피티 법칙’ 14.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탈리오의 법칙’ 15. 미래를 예측하라! ‘시나리오 기법’ 16. 보이지 않는 피드백, ‘델파이 기법’ Economy Ⅰ 17. 원님 덕에 나팔 분다, ‘후광 효과’ 18. 천냥 빚을 만드는 말 한마디, ‘최소량 곱셈의 법칙’ 19. 빨리, 더 빨리! ‘붉은 여왕의 법칙’ 20. 가지 많은 나무가 번창한다! ‘250명의 법칙’ 21.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 ‘게임 이론과 내쉬 균형’ 22.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 ‘풍선 효과’ 23. 사촌이 땅을 샀는데 왜 배가 아플까? ‘외부 효과’ 24. 돈이 돈을 번다, ‘마태 효과와 메칼프의 법칙’ 25. 뿌린 만큼 못 거둔다? ‘수확 체감의 법칙’ 26. 사람들은 왜 모두 윈도우즈를 사용할까? ‘수확 체증의 법칙’ 27. 실업률과 경제성장의 줄다리기, ‘오쿤의 법칙’ 28. 생명주기는 S라인이다! ‘시그모이드 곡선 이론’ Economy Ⅱ 29. 100을 이끄는 20의 힘, ‘ 파레토의 법칙’ 30. 아마존은 어떻게 반스&반스를 이겼을까? ‘긴 꼬리의 법칙’ 31. 왜 배추값은 자꾸 변할까? ‘거미집 이론’ 32. 조직을 다루는 기술, ‘WXYZ 이론’ 33. 왜 공무원 수는 자꾸 늘어날까? ‘파킨슨의 법칙 ’ 34. 장수기업이 되는 비결, ‘70:20:10의 법칙’ 35. 기업을 웃게 만드는 비법, ‘스마일 커브의 법칙’ 36. 왜 오빠는 핸드폰을 자꾸 바꿀까? ‘밴드왜건 효과’ 37. 하나를 아는 순간 그 하나는 담이 아니다, ‘불확정성 이론과 주식투자’ 38.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 ‘노 리스크 노 리턴의 법칙’ 39. 들쥐 떼의 이유 없는 질주, ‘폰지 게임과 로의 법칙’ 40. 싸움에서 이기려면, ‘란체스터의 법칙’ Science Ⅰ 41. 정말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일까? ‘자연선택의 법칙’ 42. 너도 살고 나도 살려면? ‘가우스의 법칙’ 43. 지구는 살아있다! ‘가이아 이론’ 44. 공룡은 왜 멸종했을까? ‘진화의 역설’ 45. 유전을 증면한 완두콩 실험, ‘멘델의 유전 법칙’ 46. 왜 황소개구리는 사라졌을까? ‘동종교배 퇴화의 법칙’ 47. 왜 전쟁 기간에는 물고기 수가 줄어들까? ‘볼테라의 법칙’ 48. 왜 좁은 강의 강물은 빨리 흐를까? ‘베르누이의 정리’ 49. 가마우지가 가르쳐준 비밀, ‘이륙-추진-균형의 법칙’ 50.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물 한 방울, ‘활주로 이론’ 51. 왜 성적은 한꺼번에 오르지? ‘퀀텀 점프 이론’ 52. 마의 벽을 뚫어라! ‘형태장 이론’ 53. 잠수병이 생기는 이유, ‘헨리의 법칙’ Science Ⅱ 54. 하늘이 도나, 땅이 도나? ‘천동설과 지동설’ 55. 하나님, 지구가 돌아요! ‘케플러의 법칙’ 56. 왜 선거 때만 되면 사건이 일어날까? ‘베버의 법칙’ 57. 자동차 속도는 어떻게 재지? ‘도플러 효과’ 58. 모든 물체는 지름길로 움직인다! ‘최소작용의 원리’ 59. 화학비료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최소량의 법칙?’ 60. 이루지 못할 영구동력기관의 꿈, ‘에너지 보존의 법칙’ 61. 왜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까? ‘열역학 제2법칙과 엔트로피의 법칙’ 62. 바다에 파도가 치는 이유, ‘르 샤를리에와 에밀 렌츠의 법칙’ 63. 왜 달은 떨어지지 않지? ‘만유인력의 법칙’ 64. 빛의 속도는 유한하다! ‘광속 불변의 법칙과 특수 상대성 이론’ 65. 지구의 둘레는 얼마나 될까? 66. 지구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67. 과학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과학 문제 Mathematics 68. 자연의 질서, ‘피보나치의 수열’ 69. 간단한 복리 계산법, ‘알래스카와 72의 법칙’ 70. 도박과 파스칼의 확률 이론 71. 우연은 과학일까? ‘확률과 대수의 법칙’ 72. LOVE 게임을 만들어보자! ‘항등식 문제’ 73. 피타고라스의 역설, 그리고 몰락 74. 신비의 수, ‘완전수’ 75. 토끼가 거북이를 이길 수 없는 이유, ‘무한등비급수’ 76. 357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수께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77. 눈먼 수학자, 오일러 78. 케플러에서 데카르트까지, ‘함수의 역사’ 79. 신의 암호, ‘π의 역사’ 80. 수학의 7대 난제, ‘리만의 가설’ 81.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 ‘절대의 법칙과 상대의 법칙’ 82. 고집쟁이 플라톤이 풀지 못한 문제, ‘3대작도 불능 문제’ 83. 뉴턴VS라이프니츠, 미적분학은 누가 발견한 것인가? 84. 천재 형제의 수학싸움, ‘베르누이 가문’ Psychology 85.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피그말리온 효과’ 86. 가짜 약으로 병을 고친다? ‘위약 효과’ 87. 왜 항상 짝꿍은 단짝이 될까? ‘근접성 효과와 유사성의 법칙’ 88. 가는 날이 장날, ‘머피의 법칙과 샐리의 법칙’ 89.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 ‘정보의 제시순서 효과’ 90.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반전의 법칙’ 91. 원하는 모습을 상상해봐! ‘생각의 법칙’ 92. 손가락으로 먼 산이 가려지는 이유, ‘원근의 법칙’ 93. 천재를 만드는 99%의 노력, ‘1만 시간의 법칙’ 94. 가장 성공했을 때가 가장 위험할 때, ‘제로 베이스의 법칙’ 95. 이기심은 정말 나쁜 것일까? ‘합리적인 선택’ 96. 이상한 섬나라의 재판 ‘논리의 패러독스’ 97. 천재들도 질투를 할까? ‘질투의 법칙’ 98. 적은 내부에 있다! ‘마지노선의 법칙’ 99. 때로는 돌아가는 것이 지름길! ‘위위구조의 법칙’ 100. 빨리 나는 새가 먹이를 더 많이 먹는다! ‘기동력과 승수 효과’ 고품격 학습교양 100 이영직 지음 스마트주니어 / 2010년 7월 / 372쪽 / 11,800원 Society 중세의 암흑으로부터 인류를 구한 철학, ‘오컴의 면도날 법칙’ 중세의 서양은 모든 학문과 철학이 신학의 시녀였던 암울한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신학으로부터 철학을 구해내고, 신앙으로부터 이성을 탈출시키려 했던 철학자가 영국의 윌리엄 오컴이었다. 오컴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논리학을 공부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초기에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나 치열한 논리적 사유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는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 중세의 신학인 스콜라 철학이 신이나 이데아 같은 ‘보편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실재론’을 주장한 것에 비해 오컴은 그것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뿐이라며 ‘유명론’을 들고 나왔다. 유명론에서 그는 스콜라 철학에서 주장하는 보편자는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인간이 붙인 이름일 뿐이고, 사변에 의해 쌓아올린 스콜라 철학은 허구라며 공격했다. 오컴은 진리와 사변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단순함의 법칙을 들고 나왔다, 그에 의하면 세상의 진리는 복잡하지 않다. 장황한 설명이나 여러 개의 가설과 가정이 있어야만 설명이 가능한 것은 진리가 아니다. 그는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가정이나 전제들을 모두 잘라 버리고 단순함의 잣대로 사물의 핵심만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가 볼 때 이런 저런 가설과 구차한 전제를 붙여야만 설명이 가능한 이데아나 이데아 대신 신을 그 자리에 앉힌 스토아 철학, 곧 중세 신학은 군더더기 같은 것들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스콜라 철학의 창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나 스승이었던 스코터스를 비판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명쾌한 이론에 중세 기독교 철학이 수호해왔던 수많은 진리와 가치들이 잘려 나갔다. 그래서 그의 철학을 ‘오컴의 면도날 법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컴에 의하면 진리는 단순해야 하며, 동일한 현상을 설명할 때 두 개의 서로 상반되는 주장이 맞선다면 그 중 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진리이다. 예를 들어 신학은 성경 하나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중세 교황들이 남긴 수많은 메시지까지 성서적으로 해석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후일 루터에게 큰 영향을 주어 종교개혁을 이끌었으며, 데카르트나 데이비드 흄과 같은 경험주의 철학에 길을 열어주었고,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에게 근세 과학의 지평을 열 수 있도록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다. 그래서 오컴의 철학을 중세의 암흑으로부터 인류를 구한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엘리트 vs 집단지성, ‘1:99의 법칙’ ‘한 사람의 영웅이냐, 99명의 민초들이냐.’ 이 논쟁만큼 뜨거웠던 주제도 없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칼라일은 『영웅 숭배론』에서 “역사, 즉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룩한 것은 근본적으로 이 땅에서 활동했던 영웅들의 역사다. 세계 역사는 위인들의 전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정치, 군사, 과학, 예술 등 어느 분야든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에 의해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이야기이다. 1%의 천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서슴없이 갈릴레오, 뉴턴, 에디슨, 아인슈타인 등 과학사에 길이 빛날 이름들을 든다. 만약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당시에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느냐.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도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다중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했더라면 당연히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돌고 있어야 했다.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가 공중에 뜰 수 없다는 것이 당시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고, 일부 과학자들은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가 하늘을 날 수 없다고 증명까지 해보였다. 그러나 비행기는 날았다. 모든 사람이 수증기로 거대한 기관차를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지만 기관차는 힘차게 달렸다. 결국 1%의 천재가 옳았던 것이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지금도 암흑 속에서 살고 있을 거라는 주장이다. 정치가, 철학자들 중에는 대중을 우매한 집단으로 비하한 사람들이 많다. 히틀러는 어리석은 대중을 자시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쯤으로 보았다. 초인본주의자였던 철학자 니체는 “광기 어린 개인은 드물지만 집단은 언제든 그렇게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집단이 되면 개인의 이름이 매몰되기 때문에 이성보다는 감성의 지배를 받으며, 주장이 과격해지고 비도덕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는 이야기이다. 군중심리가 바로 그러하다. 사회학자 구스타프 르봉도 인간은 집단을 이루면 모두가 어리석어진다고 주장하면서 집단은 언제나 소수 엘리트보다 열등하다고 보았다. 여기에 우생학도 한몫을 하게 된다. 우생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은 우량 인자들 간의 교배로 동식물의 품종을 개량할 수 있듯이 인간도 같은 방법으로 얼마든지 우수한 인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의 사촌이기도 했던 골턴은 자신의 가문에서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는 이유를 우생학이라는 개념에서 찾았다. 우생학이란 다름 아닌 ‘좋은 집안 출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논의를 확장하면 우생학에는 사회전체를 위해서는 열등 인간은 도태시켜도 좋다는 극단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후일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과 동구 유럽인들을 정치적으로 핍박하고 흑인이나 소수 민족을 차별하는 근거가 되었다. 1%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20세기 전반을 휩쓸었던 나치와 파시스트의 폭거를 경험한 인류는 집단의 운명을 광기어린 한 사람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의식이 팽배했던 것이다. 이것은 곧 민주주의라는 정치 형태에 힘을 실어 주었다. 민주주의란 대중이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사상으로, 그것이 최선의 결정은 아닐지라도 최악의 결정은 막을 수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적인 문제는 대중에 의해 결정되었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여전히 소수의 자본가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다가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주의가 불황이나 빈부격차와 같은 모순을 더해가자 이에 대한 반발로 사회주의가 나타났다. 사회주의가 등장하자 이제 사상은 ‘대중은 항상 옳다’는 극단주의로 흐르기 시작했다. 사회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는 대중을 대표하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그러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동구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집단 우위론은 위기를 맞았다. 인간의 탐욕에 기초한 자본주의가 부의 불평등을 낳았다면 민중이 주체가 되어, 민중의 평등사상에 기초한 사회주의 이론은 역설적이게도 생산성 부족으로 주저앉고 만 것이다. 그러다가 인터넷 시대를 맞아 다시 집단 우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경영학자이며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서로위키는 이런 집단의 지적 능력을 ‘대중의 지혜’라고 명명하면서 소수 엘리트주의자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다중이 모이면 소수의 엘리트를 능가한다는 주장이었다. 예를 들면 누구나 자유롭게 집필에 참여할 수 있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디피아는 출현한 지 불과 2년 만에 2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추월했다, 1%의 우위를 상징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라면 집단 우위를 상징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구글이나 위키피디아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 논쟁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한 명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한 명의 아인슈타인은 나오지 않는다는 주장도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conomy 돈이 돈을 번다, ‘마태 효과와 메칼프의 법칙’ 부의 쏠림 현상은 고대에도 여전했던 모양이다. 성서 마태복음에도 다음과 같은 글귀가 보인다. “사진 사람은 더 받아서 차고 남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복음 13장 12절)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K. 머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의 집중 현상을 가리켜 ‘마태 효과’라고 명명하였다. 마태 효과는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모든 분야에 관찰되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 두루 쓰이는 개념으로 정착되었다. 이런 현상은 현대사회로 옮겨 오면서 좀 더 심화되고 있다. 지식, 정보화 사회로 변하면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물려받는 재산뿐 아니라 교육과 지식, 정보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 다음으로 경제위기가 반복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지만 부자들은 오히려 재산을 늘릴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여전하다. 시장을 선점한 상품이나 기업은 웬만해서는 그 지위를 잃지 않는다. 시장을 선점했기에 유명해지고, 유명하기에 더 많이 팔린다. 더 많이 팔리는 상품이기에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 더욱 많이 팔리게 되는 것이 시장의 생리다. 유명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노벨상을 받은 교수와 대학원 조교가 몇 달에 걸쳐 쓴 논문이 유명해지면 발표한 교수는 유명해지지만 정작 논문 작성을 도맡았던 대학원생 조교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분야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네트워크를 선점한 자는 훨씬 더 유리한 고지에서 경쟁을 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가 인터넷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가장 좋은 프로그램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먼저 그 분야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메칼프의 법칙’이 등장한다. 메칼프는 3Com의 창시자이며 이더넷을 발명한 인물로 “네트워크의 가치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사람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이론을 제창했다. 처음 전화가 등장했을 때 전화기 한 대로는 아무 쓸모가 없지만 가입자 수가 늘어날수록 가치는 급증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어떤 네트워크의 유용성은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하게 되고, 어떤 표준의 사용자 수가 일단 충분한 수량에 도달하게 되면 그 가치는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는 내용이다. 그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Economy II 하나를 아는 순간 그 하나는 답이 아니다, ‘불확정성 이론과 주식투자’ 퀀텀 점프 이론이 요즘 다시 화제가 되는 것은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가 만든 헤지 펀드의 이름이 ‘퀀텀 펀드’이기 때문이다. 이름도 특이하지만 그의 투자 이론도 특이하다. 조지 소로스는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격인 하이젠 베르크의 ‘불확정성 이론’에서 크게 감명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펀드 이름을 ‘퀀텀 펀드’로 정하고 불확정성 이론을 투자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불확정성 이론에 의하면 양자의 세계는 관찰자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준다. 마찬가지로 관찰 대상도 관찰자에게 영향을 준다. 그에 따르면 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는 주가에 영향을 주고, 주가는 다시 투자자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론을 ‘반사성 이론’으로 명명했다. 그는 이 투자 이론으로 1969년부터 1995년까지 연간 35%의 경이적인 수익을 냈다. 자신의 투자 이론을 한마디로 설명해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것이다’라고 말해준다면 그 순간부터 ‘이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예를 들어 주가가 2000까지 오른다는 예측을 발표하면 일반인들은 주가가 2000이 되기 전에 모두 팔아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 예언은 발표하는 순간 틀리게 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불확정성 이론이다. 소로스는 이렇게 번 돈을 공산국가의 자유화나 제3세계의 민주화 등에 쏟아 붓고 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생애와도 관련이 있다. 소로스는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끌려갈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영국으로 피신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헝가리로 돌아왔지만 다시 소련 군정을 피해 영국으로 떠났다. 그는 17세부터 26세까지 젊은 시절을 영국에서 비참하게 보냈다. 살기 위해 그는 웨이터, 마네킹 조립공장 직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런던 정치경제대학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소로스는 세계적인 석학 칼 포퍼를 만났고,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 큰 감명을 받았다. 열린사회의 적들이란 발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가리킨다. 그가 자유화와 민주화에 돈을 쓰는 것도 그 영향 때문이었다. 그는 또한 1980년대 말 동유럽․구소련이 붕괴될 당시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옛 소련 붕괴 후 과학자들이 생계가 막막해지자 1억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가 생전에 자선사업에 투입한 액수는 250억 달러에 달한다. Science I 왜 전쟁 기간에는 물고기 수가 줄어들까? ‘볼테라의 법칙’ 자연계가 추구하는 것은 평형이지만 온전한 평형을 유지하는 것은 순간일 뿐, 자연계는 늘 요동치면서 평형을 향해 나아간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아드리아 해는 이탈리아 해군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해군을 맞아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곳이었다. 생태학자 단코나는 전쟁이 끝난 후 바다생태계를 조사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전쟁 동안 고기를 잡지 않았음에도 물고기 개체 수는 상당히 줄어든 반면, 상어와 육식어의 개체 수는 전쟁 이전보다 월등히 높아져 있었던 것이다. 단코나는 이 같은 사실을 수학자 볼테라에게 상의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볼테라의 법칙’이다. 편의상 바다에 사는 많은 종의 물고기들은 포식자와 피포식자로 나누기로 하자. 어업활동이 활발해지면 물고기라 줄어들지만 이를 먹이로 하는 육식 어종의 개체 수도 감소한다, 상어로서는 먹이를 어부들에게 빼앗기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상어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물고기로서는 천적이 사라진다는 의미, 따라서 물고기의 수는 의외로 빨리 늘어난다. 반대로 전쟁으로 인해 어업활동이 중지되면 먹이가 많아지게 되고, 이는 상어의 먹이가 풍부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게 하여 상어의 개체 수는 늘어나는 반면 물고기는 오히려 감소한다는 이론이다. 자연계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마오쩌둥 시절 중국에서는 아까운 벼를 쪼는 참새를 박멸하자며 대대적인 참새 박멸 운동을 벌였다. 몇 년 후, 참새는 대폭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해충의 개체 수가 몇 배로 늘어나 벼농사를 망치게 된 것이다. 살충제를 사용하여 벼농사를 망치는 해충을 대대적으로 박멸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살충제로 해충이 죽으면 해충을 먹고 사는 새들도 죽게 된다. 새들은 살충제에 오염된 해충을 먹어서도 죽고, 먹이가 부족해서도 죽는다. 결과적으로 천적이 줄어들어 해충의 숫자는 오히려 더욱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볼테라의 모델은 후에 미국의 화학자 로트카에 의해 좀 더 정교하게 정리되어 지금은 ‘로트카-콜테라의 법칙’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간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서민을 위한다고 생필품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업자들은 수지가 맞지 않는 그 상품의 생산을 줄이게 되고, 그 결과 가격은 더욱 올라 서민들은 더 큰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Science II 왜 선거 때만 되면 사건이 일어날까? ‘베버의 법칙’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깜짝 놀라서 뛰쳐나오지만 차가운 물속에 넣어두고 조금씩, 서서히 열을 가하면 개구리는 죽고 만다. 물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각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감각은 기존의 자극보다 일정 비율 이상 더 큰 자극이 주어져야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독일의 생리학자 베버는 역도에서 이 법칙의 힌트를 얻었다. 300g의 추를 오른손에 들고 있을 때 왼손에 305g의 추를 들고 있어서는 그 차이를 쉽게 알 수가 없다. 306g이상의 무게가 되어야 왼손의 추가 더 무겁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또 오른손에 든 추가 600g이 되면 이번에는 왼손의 추가 612g이 되어야 비로소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즉 두 배 이상의 자극이 가해져야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같은 종류의 두 자극을 구별할 수 있는 최소 차이는 자극의 세기에 비례한다’는 것이 ‘베버의 법칙’이다. 처음의 자극이 약할 때에는 다음의 자극이 조금만 강해도 자극의 변화를 느낄 수 있으나 처음의 자극이 강할 때에는 일정 비율 이상의 자극이 주어져야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밤에는 작은 촛불도 밝게 느껴지지만 낮에는 형광등을 켜도 잘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나라처럼 각종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나라에서는 웬만한 사건은 그냥 덤덤하게 느껴진다. 금융 사건이라면 몇 억, 몇 십억은 일상적으로 보아왔던 것이기에 그리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적어도 몇 백억 정도는 되어야 피부로 느끼게 된다. 군인들이 힘들게 훈련을 하는 것도 베버 효과를 노린 것이다. 힘들게 훈련을 하고 나면 실제 전투가 벌어져도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베버의 법칙은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집권자들에게 불리한 사건이 터지면 다른 더 큰 사건을 터뜨려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전의 정권에서 선거 때만 되면 터지던 ‘북풍사건’ 같은 것이 그러한 사례이다. 조직에서도 종종 애용되고 있다. 회사에서 눈엣가시처럼 미운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쫓아낸다면 누구나 미운털이 박혀서 그렇다는 것을 눈치 챌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과는 상관없는 부서에서 먼저 인원감축을 단행한 다음에 미운 사람을 쫓아내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화학비료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최소량의 법칙’ 식물의 광합성을 보자. 광합성에는 이산화탄소, 태양광선, 온도 등이 필요하다. 여기서 두 가지 요소는 풍부하지만 하나의 요소가 부족하면 광합성은 어느 정도 일어날까? 예를 들어 탄소가 부족하면 광합성은 탄소가 소진할 때까지 이루어진다. 남자가 수백 명 있어도 여자가 10명뿐이면 결혼은 10쌍밖에 성립되지 않는다. 식물의 성장에서 이러한 법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처음 규명한 사람은 독일의 식물학자 유스투스 리비히였다. 리비히는 1843년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요소 중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이다’라는 ‘최소량의 법칙’을 내놓았다. 그에 의하면 생물의 생장은 그 생물이 필요로 하는 양에 비교하여 가장 낮은 농도로 존재하는 필수 원소에 의해서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작물의 수확량은 그 작물이 필요로 하는 성분 중에서 이산화탄소나 물처럼 풍부하게 존재하는 요소가 아니라 극소량인 붕소와 같은 어떤 원소에 의해 제한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최소 양분율 혹은 최소율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리비히는 자신의 법칙을 뒤집어 생각해보았다. 식물의 성정에 필요한 3대 요소는 질소, 인산, 칼륨이다. 이 중 어느 한 요소가 부족하여 식물의 성장이 제어된다면 그 부족한 성분 하나를 보충해주면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화학비료이다. 주가를 움직이는 요인은 매출, 순익, 금리, 통화량, 환율, 주식의 수요와 공급량, 유가, 국제 수지 등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 중에서 어느 한 요소가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다면 기업의 자산가치가 아무리 높아도 주가는 오르지 않게 된다. 또한 사람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정직하지 못하다거나 성실하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서 모자라는 정직과 성실이라는 요소에 의해 평가된다. 성고에 노력과 재능,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경우 성공은 노력만으로도 안 되고 재능만으로도 안 된다. 성공을 위해 ‘10’이라는 노력과 ‘10’이라는 재능이 필요하다고 할 때, 어떤 사람이 ‘15’의 재능을 가졌다고 해서 ‘5’의 노력만 들인다면 그는 성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운’이라는 제3의 요소를 더해보면 더욱 재미있다. 재능 있는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에 이 법칙을 적용하자면 그는 ‘운’이라는 요소가 부족한 것이다. Psychology 이상한 섬나라의 재판, ‘논리의 패러독스’ 소피스트 학자에게 한 청년이 찾아와 변론을 배우기를 청했다. 소피스트는 대가로 100량을 요구했다. 청년은 비싸다며 50량은 먼저 주고 나머지 50량은 훌륭한 변론가가 된 다음에 주기로 했다. 그 청년은 열심히 공부하여 그 지방에서 유명한 변론가가 되었다. 소피스트는 그를 찾아가서 나머지 50량을 요구했다. 그러나 청년은 아직 훌륭한 변론가가 되지 못했다며 지불을 거절했다. 소피스트는 소송을 제기했고, 두 사람은 재판관 앞에 서게 되었다. 먼저 소피스트가 변론했다. “현명하신 재판장님! 저는 이 재판에 이겨도 50량을 받고 져도 받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50량을 받기 위한 소송이니 이기면 당연히 받아야 하고, 재판에 진다면 제자가 스승을 이긴 재판이니 이미 훌륭한 변론가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나머지 50량을 받아야 합니다.” 다음에는 제자가 변론을 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 또한 재판에 이기든 지든 관계없이 돈을 지불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50량을 주지 않기 위한 소송이므로 이기면 당연히 지불할 수 없습니다. 만약 재판에 진다면 아직 훌륭한 변론가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약속대로 지불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이상한 섬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는 아주 배타적인 곳이어서 외부에서 섬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죽였다. 그러나 고지식하게도 합리적인 재판을 거친다. 재판을 하여 그의 말이 참이면 ‘진리의 신’ 앞에서, 거짓이면 ‘거짓의 신’ 앞에서 교수형에 처했다. 단 묵비권은 허용되지 않는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섬으로 들어왔다가 잡혔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나를 거짓의 신 앞에서 죽일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거짓의 신 앞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만약 그를 교수형에 처한다면 그가 한 말이 맞기 때문에 교수형을 처한 사람이 법을 어긴 것이 된다. 사람들은 다시 그를 진리의 신 앞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죽이려는 순간 가만히 생각해보니, 만약 여기서 죽이면 그의 말이 틀리게 된다. 결국 그들은 거짓의 신 앞에서도, 참의 신 앞에서도 그를 죽일 수가 없게 되었다. 적은 내부에 있다! ‘마지노선의 법칙’ 기관총이 처음 등장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였다. 기관총의 등장으로 화려한 금장복장에 말을 타고 태도를 갖추어 위세를 자랑하던 기마병들을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참호를 파거나 요새에 숨어 적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기이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을 참호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프랑스 육군 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프랑스-독일 국경 사이에 거대한 시멘트 방벽을 쌓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쌓은 것이 길이 750km에 달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요새인 마지노선이었다. 서울-부산 거리의 2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현대판 만리장성이었다. 그리고는 마지노선을 따라 개인용 참호를 파고 중‧장형 대포를 촘촘히 설치했다. 이렇게 방어선을 구축해놓고 나자 독일군의 어떤 공격에도 안심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프랑스 전역에 팽배했다. 히틀러가 등장하여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지만 프랑스는 병력을 예비군으로 돌릴 정도로 여유만만했다. 마지노선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막상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은 벨기에를 가로질러 프랑스로 침공해 들어갔다. 그리고는 마지노선 뒤통수에다 기관총을 겨누었다. 그러자 프랑스는 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여기서 ‘마지노선의 법칙’이 생겨났다. 방어선이 견고하면 심리적 무장해제를 부른다는 것이다. 전국 시대의 혼란을 평정한 진나라 시황은 북방 유목민족인 흉노족이 마음에 걸렸다. 유목민들은 초원에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어김없이 농경사회를 침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쌓고는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진나라는 건국 143년, 중국이 통일된 지 15년, 진시황 사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렸다.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외적을 막으려고 무리하여 쌓은 만리장성이 내부의 적을 만들어낸 꼴이 되고 말았다. 중국의 진나라와 송나라는 양쯔 강을 건너 안전한 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나서 천하를 잃었다. 위나라 역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도를 북쪽에 두고 북방민족들과 대치할 때의 고구려는 강성했지만 방어가 튼튼한 압록강 이남으로 수도를 옮겨 온 다음에 나라를 잃었다. 백제 역시 한강 이남으로 수도를 옮기고는 나라를 잃었다. 방어선이 견고하면 심리적 무장이 해제되고, 수도가 견고하면 무사안일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마지노선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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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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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140자로 소통하는 신 인터넷 혁명
트위터, 140자로 소통하는 신 인터넷 혁명 조엘 컴, 켄 버지 지음 예문 / 2009년 8월 / 335쪽 / 13,000원 ▣ 저자 조엘 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이자 비즈니스 컨퍼런스 분야에서 가장 각광받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S…
트위터, 140자로 소통하는 신 인터넷 혁명 조엘 컴, 켄 버지 지음 예문 / 2009년 8월 / 335쪽 / 13,000원 ▣ 저자 조엘 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이자 비즈니스 컨퍼런스 분야에서 가장 각광받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SW업체인 인포미디어(Infomedia.Inc)를 설립했고, 다양한 분야의 리뷰와 뉴스를 다루는 WorldVillage.com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특히 인포미디어에서 2008년 말에 출시한 iFart는 iPhone의 애플리케이션으로서 큰 인기를 끌어 상당한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로서 각종 인터넷 미디어에 밝은 그는 우연히 트위터를 접했다가 그 매력에 흠뻑 빠져 『트위터(원제: Twitter Power)』를 출간하게 되었다. 조엘의 트위터 http://twitter.com/joelcomm에는 7만 명이 넘는 팔로어(follower, 트위터 용어로 ‘1촌맺기’와 유사한 것)가 등록돼 있다. 그의 다른 저서로는 베스트셀러에 오른 『애드센스 코드(The Adsense Code)』, 『주문하려면 클릭하라(Click Here to Order)』 등이 있다. 켄 버지 SW전문가이자 프로그래머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8년간 근무했다. 이후 텍스트캐스트라이브(TextCastLive) 대표를 거쳐, 조엘 컴의 사업 파트너로서 인포미디어 사장을 지냈다. 현재는 다이렉트리스판스오퍼스(DirectResponseOffers)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번 책 『트위터』에서는 ‘11장: 트위터 플랫폼에 강력한 솔루션 구축하기’ 를 비롯해 기술적인 면에서 조엘 컴의 집필을 도왔다. ▣ 역자 신기라 이화여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호주 맥쿼리 통번역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한라그룹, E4Net 등에서 S/W 프로그램 번역을 했으며 다수의 영상 번역 및 도서 번역 작업을 진행했다. 옮긴 책으로는 『중요한 건 돈이 아니다』, 『바이블 쇼크』, 『헤밍웨이와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인도 뭄바이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을 때도, 마이클 잭슨이 사망했을 때도,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전 세계에 알린 것은 트위터였다. 140자 미만의 짧은 단문 메시지만을 담는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그 파워가 커져가는 있는 트위터는 아직 그 가능성이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매체이다. 누구에게나 말을 걸 수 있고, 조언을 얻고 필요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트위터는 마케팅 도구로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개인적 삶과 공동체 삶 모두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아직 초보단계에 있는 트위터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트위터 가입부터 활용법에 이르기까지 트위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모바일과 연결된 빠른 소통, 쉽고 간편하다는 장점, 실시간과 모바일의 결합이라는 웹 3.0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는 트위터를 샅샅이 해부하고 트위터의 개개인의 용도에 맞게 활용하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마케팅 전문가의 시각으로 비즈니스적인 측면도 다루고 있으며 트위터를 다채롭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도구들을 소개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는 트위터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법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차례 프롤로그_ 트위터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장 소셜 미디어 환경이란 무엇인가 2장 트위터란 무엇이며 왜 그토록 강한가 3장 트위터 올바로 사용하기 4장 트위터에서 팔로잉하기 5장 트윗의 기술 6장 마법과 같은 트위터에서의 고객 연결 7장 팀 커뮤니케이션에 트위터 활용하기 8장 트위터를 활용하여 브랜드 구축하기 9장 트위터로 팔로어들의 행동 유발하기 10장 트위터닷컴을 넘어서: 알아두면 좋은 다른 도구들 11장 트위터 플랫폼에 강력한 솔루션 구축하기 12장 30일 만에 트위터 정복하기 에필로그_ 트위터를! 즐겨라! 트위터, 140자로 소통하는 신 인터넷 혁명 조엘 컴, 켄 버지 지음 예문 / 2009년 8월 / 335쪽 / 13,000원 소셜 미디어 환경이란 무엇인가? 소셜 미디어를 정의내리자면 ‘청중이 만들어낸 콘텐츠’ 정도의 의미가 가장 적당할 것이다. 당신이 페이스북과 같은 사이트에서 그룹을 만들면 당신이 직접 텍스트나 이미지를 모두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그룹의 다른 구성원들이 자신의 얘기나 사진들을 올릴 테니까 말이다. 블로거들조차 게시물을 작성할 때는 독자들이 게시물 맨 밑에 댓글을 남기고 논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거나 새로운 정보를 추가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바로 소셜 미디어의 사회적 측면이다. 소셜 미디어를 성공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단순히 콘텐츠를 작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화를 유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들은 커뮤니티를 이끌어낸다. 이것이 바로 소셜 미디어의 참된 미학이다. 사이트에 따라 그런 목적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만 어쨌든 소셜 미디어는 항상 참여하는 사람들을 단단히 결속시킨다. 이러한 결속이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형성된다면, 다이렉트 마케팅이 시작된 이래 영업인들이 꿈꿔왔던 브랜드 충성도와 헌신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는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페이스북은 현재 6천 만 명 이상의 활동적인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매일 페이스북을 방문하며 매달 650억 페이지 이상을 만들어 낸다. 마이스페이스라는 사이트에는 매일 140억 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며 8백만 개 이상의 이미지가 올라온다. 트위터는 마이스페이스가 출범하고 2년 지난 후 오픈되었는데 수적으로는 아직 열세지만 그 증가세가 괄목할 만하다. 2008년 10월 현재 트위터러(트위터 사용자)들의 주소록에는 326만 명의 트위터러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수치만으로는 소셜 미디어의 인기를 제대로 실감할 수 없다. 여러분 자신이 직접 블로그 대열에 합류해 보라. 그러면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콘텐츠를 만들거나 사용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명확히 깨닫게 될 것이다. 트위터는 사용자의 63%가 남성이며, 트래픽의 60%는 미국 바깥에서 이루어지는데, 그중 일본, 스페인, 영국의 활동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트위터를 사용하는 연령대가 35~44세 사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방문자의 14%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고, 대도시에 거주하는 다양한 민족 출신의 싱글족들이다. 방문자의 12%는 40대에 연간 가계 수입이 25만 달러 이상인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는 나이가 좀 든 전문직 종사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제 소셜 미디어 사이트는 단순히 10대들이 친구와 채팅을 즐기고 음악이나 다운로드하려고 들르는 곳이 아니다. 이 사이트에는 얼마든지 돈 쓸 의향이 있는 세련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소셜 미디어의 여러 형태 중 하나가 단문 서비스인 마이크로 블로그(Micro blog)이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소셜 미디어 형태로, 어떤 면에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블로그나 회원제 사이트 같은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소셜 미디어 사이트는 가능한 많은 수의 회원들이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마이크로블로그 사이트는 콘텐츠 게시물에 엄격한 제한을 가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회원들의 창의력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마이크로 블로깅의 진정한 표준을 정립한 사이트가 트위터이다. 트위터 서비스는 2006년 7월 프로그래머 출신인 이반 윌리엄스, 잭 도시, 비즈 스톤이 공동 설립했다. 트위터는 SXSW(South by Southwest Web: 대중음악, 영화, 웹 등 3개 분야에서 지난 1년간 가장 기여를 많이 한 작품에 대해 시상하는 상) 수상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고, 훌륭한 인맥을 갖고 있는 블로거의 추천에 힘입어, 또한 개방형 플랫폼을 통해 다른 개발자들이 트위터를 확장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비약적인 도약을 시작했다. 오늘날 트위터스는 오바마 대통령, 영국 의회, 미국 적십자 등의 저명인사나 기업, 정부 기관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트위터의 뛰어난 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단순성이다. 트위터의 핵심은 140자 이내로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항상 간결함과 단순성이 있으며 이를 통해 또 다른 특징인 자율적인 확장이 가능해졌다. 트위터란 무엇이며 왜 그토록 강한가? 트위터의 빠른 속도 덕분에 당신은 어디에 있건 SMS를 보낼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이 서비스는 재미를 위해 제공되었지만 실제로는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으로도 아주 유용하다. UC 버클리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던 제임스 벅은 2008년 4월 이집트에서 반 정부 시위를 촬영하던 중에 통역을 도와주던 모하메드 마리와 함께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경찰차에 앉아 휴대전화로 트위터의 팔로어들에게 ‘체포됨(arrested)’이라는 단 한 단어를 전송했으며 팔로어들은 이를 즉시 미 대사관과 학우들에게 알렸다. 학우들은 즉시 제임스를 위해 변호사를 구해주었다. 제임스는 체포 이후의 자기 상황을 트위터를 통해 계속 알렸고 마침내 다음날 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통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통역사는 90일간이나 감금되어 폭행과 학대에 시달렸다. 이 사례는 트위터 팔로어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상황을 반전시킨 경우이다. 트위터의 흥미로운 점은 친구와 가족에게 일상의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알리는 데 있지 않다. 트위터의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점이다. 이 말은 당신이 매우 전문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그 경우 필요한 전문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트위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한 도구이지만 이미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가장 수입이 많은 사람들 중 일부가 열혈 사용자로 활동하는 등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트위터 올바로 사용하기 첫째, 가입하기. 트위터 홈페이지의 큰 녹색 버튼을 클릭하면 바로 가입 페이지가 뜬다. 가입 페이지에 나오는 기재사항이라고 해 보았자 사용자 이름, 암호, 이메일 주소가 전부다. 사용자 이름은 웹 사이트에 도메인 이름을 결정하는 것과 같다. 형편없는 이름을 사용한다면 팔로어를 모으고 평판을 쌓는 데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사용자 이름은 신중하게 생각한 후에 입력하라. 사용자 이름을 선택하고 암호를 입력한 후에는 트위터에서 사람들을 팔로잉하는 절차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가입할 때는 이 단계를 생략하는 것이 좋다. 당신의 트위터 홈페이지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매력적인 프로필 만들기. 트위터 페이지 맨 위에 있는 설정 링크를 클릭하여 제대로 된 프로필을 작성하라. 우선 이름부터 시작하자. 당신의 이름은 페이지 오른쪽에 나타나며 당신이 진짜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름을 입력하기 전에 트위터 페이지에서 당신이 어떤 브랜드를 나타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한다. 약력을 쓰는 데는 약간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데, 당신에 대해 가장 중요한 한두 가지를 선택해서 한 문장으로 쓰면 된다. 나는 다음과 같은 약력을 사용한다. ‘남편이자 아빠, 작가, 연설가, 소셜 미디어 전문가, 강사, 그리고 대체로 멋진 남자’ 당신도 이런 방식을 따르거나 전혀 새로운 방식을 창조해도 좋다. 스포츠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다음 형식도 좋다. ‘레이커스 팬, 양키스 망해라. 야외에서 바비큐를 좋아하는 판타지 풋볼 코치’ 자기소개를 위해 트위터에서 당신에게 허용된 공간은 이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걸로도 충분하다.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경우에는 웹사이트를 방문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사진 올리기. 트위터 프로필에는 사진을 올려야 한다. 사진은 매우 작게 표시되므로 얼굴을 식별할 수 있도록 클로즈업된 사진을 넣는 것이 좋다. 대체로 여유 있고 미소 짓는 표정의 얼굴 사진을 사용하자. 사진을 올린 다음에는 트위터 프로필을 디자인하고 광고용 배경 화면을 만들어라. 배경화면을 직접 제작하는 일이 어렵다거나 정말 독특한 화면을 깔고 싶다면 디자이너를 찾아보는 것이 좋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템플릿을 사용하면 30분 안에 매우 효과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배경화면을 만들었다면 트위팅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넷째, 장치 켜기. 트위팅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휴대전화를 설정하는 것이다. 휴대전화에서 트윗을 주고 받으려면 설정 아래에 있는 장치 탭을 클릭하고 사용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한 후 휴대전화에서 문자 메시지로 트윗을 받을 수 있도록 확인란을 클릭하면 된다. 그러면 휴대전화로 코드가 전송된다. 설정을 마치면 첫 번째 트윗을 전송할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다섯째, 트윗 보내기. 이제 페이지 맨 위쪽에 있는 홈 링크를 눌러 자신의 트위터 페이지로 돌아가라. 화면 맨 위에 트위터 불변의 질문 “What are you doing?”이 보이고 바로 아래 140자 이내로 답변을 작성할 수 있는 공간이 표시된다. 마음에 떠오르는 아무 말이나 입력한 후 ‘Update’를 클릭하라. 뭔가 재치있고 멋진 말을 쓰지 못했다고 걱정하지 말라. 이 단계에서는 그저 뭔가를 써보고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니까. “트위터 가입 완료!”라는 트윗으로 충분하다. 이제 자신의 트위터 존재를 알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은 사람들을 팔로우하는 것이다. 이것은 트위터에서 가장 쉬운 부분이자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트위터에서 팔로우하고 싶은 사람의 트위터를 알고 있다면 그의 트위터 페이지를 찾아 팔로우(follow)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트위터의 기본이다. 트위터에서 팔로잉하기 팔로어를 충실한 고객으로 변환시키는 것은 당신이 작성하는 주제에 달려있다. 팔로어를 대규모 그룹으로 할지 선별된 소규모 그룹으로 집중할지를 결정하는 요소는 주제의 범위가 얼마나 광범위한가에 달려 있다. 만약 주제가 스포츠나 자동차처럼 대중적인 것이라면 대규모 팔로어 그룹을 유지해도 좋다. 하지만 폴로나 태양 발전 자동차처럼 소수 집단에게 호소하는 주제라면 팔로어의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 대상 팔로어를 고려할 때는 우선 당신의 주제에 관심이 큰 사람(양질의 팔로어)을 대상으로 하라. 그런 다음 당신의 주제에 약간의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일반 팔로어)을 끌어들여라. 양질의 팔로어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트위터에서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전문가들이다. 특정 주제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이를 기꺼이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이트는 항상 북적거린다. 당신의 주제와 관련된 전문가를 찾아 이들을 팔로어로 영입하면 소중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트위터에서 전문가 집단에 속하려면 다음 세 가지 간단한 단계를 수행하면 된다. 첫째, 전문가를 찾아라. 검색엔진을 통해 당신의 주제에 관해 언급한 사람들의 목록을 찾아내고 나서 범위를 좁혀 핵심적인 주도층을 찾으면 된다. 검색 결과 누군가를 찾았다면 그들에게 팔로어가 몇 명이나 되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를 했는지 확인하라. 둘째, 전문가들의 호의와 존경을 얻어라. 당신을 전문가처럼 보이게 하려면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우선 답장 아이콘을 눌러 모든 팔로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라. 전문가가 직접 응답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전문가를 팔로우하며 토론에 기여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전문가가 당신의 답장에 응답한다면 대성공이다. 전문가의 팔로어들이 모두 그 트윗을 볼 것이고 당신이 누구인지 확인하려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많은 팔로어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셋째,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어라. 당신에게 아주 가치 있는 정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면 다른 전문가들보다 훨씬 뛰어나야 한다. 일단의 전문가 집단을 팔로어로 추가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검색을 하고, 트윗을 읽고 답장을 쓰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하면서 팔로어들이 늘어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양질의 팔로어를 만드는 작업보다 일반 팔로어를 만드는 일은 훨씬 쉽다. 이 경우 멋진 콘텐츠를 만드는 것 이외에 다음 원칙만 지키면 된다. 첫째, 참여하라. 다시 말해 당신이 팔로어가 되어야 한다. 아는 사람뿐 아니라 알지 못하는 사람, 또는 알고 싶은 사람을 팔로우하라. 둘째, 대화를 즐겨라. 대화를 통해 당신은 커뮤니티의 중요한 일부가 되며,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팔로우할 기회 역시 증가한다. 중요한 것은 트위터가 임계집단을 형성해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정 정도의 사용자 집단이 확보되고, 그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로 트윗이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하며, 팔로우하고 싶은 누군가를 찾을 확률이 높아졌을 때 성장할 수 있다. 팔로어를 확보하는 지름길은 없지만 최대한 빠른 시간에 신속하게 목록을 늘릴 일곱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라. ② 당신의 블로그를 트위팅하라. ③ 팔로어들에게 보상(예: 경품 제공)하라. ④ 팔로어들의 요청에 응하라. ⑤ 당신의 소셜 네트워크(예: 페이스북에 트윗 올리기)를 동원하라. ⑥ 당신의 트위터 이름을 사인으로 사용하라. 이것은 명함, 이메일, 포럼의 서명에 트위터 URL을 추가하는 것이다. ⑦ 콘테스트를 개최하라. 콘테스트를 라이브로 진행하면 모든 고객을 한꺼번에 한 장소에 모이도록 할 수 있으므로 파티 분위기를 만들 수 있고 이들을 커뮤니티로 전환할 수도 있다. 트윗의 기술 여기서는 훌륭한 트위터 콘텐츠를 작성하는 몇 가지 방법을 살펴보고 팔로어가 좋아하는 트윗 종류, 독자들을 유지하는 방법, 그들을 대화에 참여시키는 방법을 살펴보자. 우선 트위팅을 할 때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첫째, 스팸을 작성하지 말라. 스팸 발송자들은 트위터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이들은 팔로워들을 형성할 수도 없다. 둘째, 스타일 규칙을 따르라. 트위터에서는 문자 메시지 스타일에서 사용하는 축약어보다 실제 단어에 가까운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셋째, 리트윗(retweet)에 점수를 주라. 트위터 사용자들은 다른 사람의 트윗을 그대로 복사하여 자신의 것으로 트윗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반드시 본래의 트위터 사용자를 표시해 주어야 한다. 넷째, 반드시 140자 제한을 지켜라.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공간을 제약할 경우 쓸데없이 말을 지껄이지 않게 되며 창의력이 발동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당신을 팔로우하는 사람들을 팔로우하라. 하지만 팔로어 수가 늘어나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팔로우 해야 할 사람들을 선택해야 한다.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는 정기적인 트위팅에 적극 참여하기 전에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들을 팔로우하고 그들의 트윗을 읽어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따르는 에티켓 규칙을 알 수 있다. 또한 트위터러가 어떤 경우에 팔로어에게 답변을 보내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응답자들이 올린 질문과 답변을 읽어보면 어떻게 응답하거나 게시해야 성공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멋진 질문이나 응답을 보내면 그 누군가의 팔로어들이 당신의 트윗을 보고 궁금증이 일어 당신을 팔로우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트위터에 ‘이 주제는 내 블로그에 자세히 나와 있다’라고만 적어두었다면 마치 영업 사원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게시물에서 정보의 일부를 인용하고 그와 함께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는 링크를 제공한다면 답장을 받을 수 있다. 전자는 광고이지만 후자는 대화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나 힐스(twitter.com/christinahills)는 다른 사업주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마케팅을 도와주는 기업인이다. 나는 그녀의 팔로어들 중 많은 이들이 내 트위터가 제공하는 정보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도 내 팔로어들 중 일부가 그녀의 전략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대화에 참여하여 새로운 것을 배우고 팔로어들에게 우리가 가진 전문지식을 나누어 준다. 이는 대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트윗은 브로드캐스트와 대화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팔로어들에게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리는 것이다. 이런 트윗은 답장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정보와 재미를 전달한다. 후자는 토론을 유발하거나 토론의 일부로 제공되는 트윗이다. 토론은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팔로어들이 당신의 브랜드에 가까워지도록 도와준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당신의 트위터에 위의 두 가지 트윗 방식을 혼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효과적인 트윗의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첫째, 링크 트윗(=나는 요즘 이런 일을 하고 있어): 대런 로우즈는 자신의 디지털 사진 웹사이트를 홍보하기 위해 트위터 계정을 가지고 있다. 이 트위터는 그의 사진 블로그에 새로운 포스트가 게시되었다는 것을 자동으로 알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의 트위터는 거의 1,200명의 팔로어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각 트윗마다 100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 둘째, 의견 트윗(=나는 지금 이런 걸 생각해): 자기의 생각을 설명하는 트윗을 포함시킬 때 당신의 트위터가 보다 당신다워진다. 트윗을 사용하여 무엇에 대해서건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함으로써 당신의 타임라인에 당신의 개성을 나타내라. 셋째, 오락성 트윗(=지금 당신을 웃겨보려고): 사람들은 재미와 오락을 주는 트윗에 대해서도 열심히 팔로우한다. 희극배우 스티븐 프라이의 트윗은 재치 있는 말들과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그의 트윗을 읽으면 마치 140바이트짜리 TV쇼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뭔가 재미있고 흥겨우면서도 정말 유용한 트윗을 작성할 수 있다면 팔로어들을 끌어들이느라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넷째, 질문 트윗(=지금 이거 좀 도와줄 수 있어?): 팔로어를 수동적인 독자에서 능동적인 참여자로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팔로어에게 어떤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경우, 먼저 당신의 의견을 밝히면 곧바로 팔로어들의 열성적인 참여를 얻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아들이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하는데 참을 수 없네, 넌 어떻게 생각해?”라는 트윗으로 토론을 시작하면 팔로어들이 답신 버튼을 눌러 의견을 말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팀 커뮤니케이션에 트위터 활용하기 트위터는 사람들이 어울려 잡담을 나누고 사업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자유로운 대화가 사람들을 서로 가깝게 느끼게 하는 것처럼 트위터에서 자유롭게 생각을 말하는 것도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직원과 팀원들은 단지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회사에 머물고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도전에 흥미를 느끼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서이다. 그런데 팀이 여러 곳에 분산되어 팀원들이 서로 만날 수 없다면 결속감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반면 팀원들이 비디오게임을 하고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며 주말에는 라자냐를 요리하는 등 다른 팀원들과 함께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자신을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이런 유의 개인적이고 격식 없는 트윗을 제공할 수 있어야 강한 비즈니스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팀 리더가 팀원들을 위한 별도의 트위터 계정을 개설하면 각각의 팀원들은 자신을 고급 전용 클럽의 일원으로 여기게 될 뿐만 아니라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공동으로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트위터는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므로 팀원들이 프로젝트에 매진해야지 트윗을 작성하면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팀 트위터 계정은 문제를 해결하고 도움을 요청하며 업데이트를 제공하는 데 활용하도록 하라. 이것은 트윗을 가능한 전문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트위터를 활용하여 브랜드 구축하기 사람들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알리고 당신의 회사 이름을 기억하게 하려면 계속 그들 앞에 광고를 게재하고 소비자들과 끊임없이 교류해야 한다. 이는 트위터에서도 가능하다. 트위터는 매우 효과적인 브랜딩 도구로 입증되었으며 여러 대기업들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 기업들은 트위터를 사용하여 고객들과 충성도 높은 팔로잉을 형성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홍보한다. 여기서는 당신이 비즈니스에 이런 전략을 구사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설명한다. 첫째, 스토리 만들기. 트위터를 이용하여 브랜드를 구축하기 전에 먼저 브랜드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내 친구 야닉 실버는 저돌적인 사람이다. 그의 프로필에는 모험가라는 용어가 들어 있고,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의 톰 크루즈처럼 컴퓨터에 매달려 있는 사진이 붙어 있다. 이런 것들 모두가 그가 가진 브랜드와 스토리를 구성한다. 둘째, 프로필에 브랜드 녹이기. 트위터를 사용하여 브랜드를 구축하는 경우에는 팔로어가 그저 당신을 기억하도록 하는데 주력하라. 이것은 당신을 연상시킬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은 회사 사진으로 비행기 꼬리 이미지를 사용하고 하늘을 배경 이미지로 선택했다. 독자들은 즉각 자신이 어떤 페이지를 사용 중인지 인식하게 되고, 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 당신의 브랜드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프로필이 화려할 필요는 없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고 기억에 오래 남으면 충분하다. 브랜드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용 트윗에는 회사 소식, 고객 지원, 피드백, 특별 이벤트 등이 있다. 회사 소식을 알리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그게 뭐?(Who cares)’라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의 한 병원에서 대기실 벽을 새로 페인트칠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 정보가 실제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기 전까지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트위터에서도 이 규칙이 적용된다. 가장 흥미로운 뉴스란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뉴스여야 한다. 많은 기업이 트위터를 고객지원 용도로만 간주한다. 이들은 트위터 사용자의 질문에 답변하면 자신들이 할 일을 마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큰 오산이다. 기업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언제든지 도울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홈디포는 트윗을 통해 고객들에게 정기적인 팁을 서비스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데, 사용자들은 트윗을 읽으면서 동사의 고객서비스 수준이 아주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브랜딩의 효과이다. 피드백은 사람들이 회사나 제품에 관해 늘어놓는 불평불만을 찾아내서 응답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로 하여금 회사에 관해 무엇이든 털어놓고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초대하는 것도 포함한다. 스타벅스의 트위터 계정은 마이 스타벅스 아이디어 웹사이트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고객은 이 사이트를 통해 회사가 개선할 점에 대해 제안을 보내고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회사는 트위터 타임라인을 사용하여 고객의 아이디어에 감사를 표하고 진행 상황을 설명한다. 이것은 회사가 사람들을 스타벅스 커뮤니티의 일부로 생각한다고 믿게 하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특별 이벤트는 표준 마케팅 기법으로 트위터에서 활용할 수 있다. 트위터에서 즉각적, 직접적인 매출을 창출하고 싶은 경우에는 특별 이벤트를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트위터에서 브랜드를 구축하고 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커뮤니티를 창조한 다음에는, 충성도 높은 팔로어들에게 보상하고 그들의 지속적 흥미를 유발하는 일환으로 특별 이벤트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트위터로 팔로어들의 행동 유발하기 트위터는 판매를 위한 페이지가 아니다. 트위터의 헤드라인에 강압적으로 고객의 행동을 촉발하는 내용을 담는다면 사람들을 쫓아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팔로어들의 관심과 신뢰가 쌓여야만 그들의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다음은 팔로어들이 웹사이트를 방문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첫째, 트위터에서 블로그 홍보하기. 블로거들은 트위터를 사용하여 자신의 삶을 살짝 드러내거나 지금 작업 중인 일이나 계획에 관한 짧은 공지를 올리며 독자들이 올린 질문에 직접 답변을 제공할 수 있다. 새로운 독자들을 영입하거나 사용자들에게 볼거리를 늘리려는 경우에도 트위터는 도움이 된다. 원리는 간단하다. 트위터에 새로운 블로그 포스트 알림을 올리면 많은 사람에게 간단하게 그 사실을 알릴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의 호기심은 트윗 하나로 유발되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좋은 내용의 트윗을 게시하고, 핵심 팔로어 그룹을 확보한 이후에 블로그 포스트를 소개해야 한다. 둘째, 트위터를 사용하여 블로그 포스트 아이디어 얻기. 특정 주제에 관해 글을 쓰기 전에 팔로어들의 생각을 물어보라. 팔로어들의 생각을 수렴하여 콘텐츠를 작성하면 분명 수많은 청중을 확보할 수 있다. 계속적인 블로깅으로 인한 피로감은 완성된 블로그에 닥치는 가장 위험한 요소지만 트위터를 사용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트위터에 주도적인 전문가들을 방문자로 영입함으로써 블로그에 항상 최신 정보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팔로어들에게 “이번 달에는 블로그에 어떤 내용을 다루면 좋을까요?”라고 물어보라. 흥미로운 답변이 엄청 올라올 것이다. 주관식 질문 대신 여러 옵션을 제공할 수도 있다. 여러 주제를 제시한 후 가장 흥미로운 주제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팔로어들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셋째, 쇼핑몰로 팔로어 유도하기. 팔로어들을 판매 페이지로 유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재미있는 트윗을 작성하고, 강매 형식을 피하는 동시에 마케팅하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팔로어들에게 보상 형식으로 정기적인 특별 이벤트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위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런 트위터는 한 가지 유형의 트윗만 제공하는데, 그래서 팔로어들은 자신들이 그 트위터 사이트에서 무엇을 얻을지를 미리 정확히 알고 있다. 이 경우 이들은 특별 이벤트를 제공받게 된다. 넷째, 트위터에 제휴사 링크 연결하기. 트위터를 통해 판매하려는 품목과 마찬가지로 제휴사 제품도 팔로어들에게 맞도록 제대로 타깃팅되어야 한다. 당신의 트윗을 읽는 사람들은 당신이 이득을 취하는 것보다 그들 자신이 이익을 얻는 데 더 관심이 있다. 다른 링크의 제휴사 링크들처럼 독자들 앞에 그저 제품을 던져 놓지는 마라. 대신 링크 제품을 추천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너무 자주 사용하지는 마라. 마케팅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도 우연히 추천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다른 유형의 트윗을 섞어서 사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팔로어 가입을 어떻게 유도하는지 사례를 보여주겠다. 다음과 같은 트윗이라면 어떤 트위터 사용자도 팔로우할 것이다. “오늘은 이만 총총. TV 보러 나갑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메일링 목록에 가입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이런 식으로 그들이 당신을 돕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팔로어들을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면서 은근슬쩍 가입을 권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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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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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 이영직지음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11월 / 272쪽 / 12,000원 ▣ 저자 이영직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을 졸업한 뒤, 시사영어사 편집국을 거쳐 LG화학 마케팅 팀장과 한국갤럽 기획조사 실장을 지냈다. 현재 …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 이영직지음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11월 / 272쪽 / 12,000원 ▣ 저자 이영직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을 졸업한 뒤, 시사영어사 편집국을 거쳐 LG화학 마케팅 팀장과 한국갤럽 기획조사 실장을 지냈다. 현재 브랜디아 컨설팅 대표로 있으면서 경영 컨설턴트, 시장조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펄떡이는 길거리 경제학』, 『시장을 지배하는 101가지 법칙』, 『강자와 싸워 이기는 란체스터 경영전략』, 『단순한 원칙 하나가 당신의 미래를 바꾼다』 등과 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된 『교실 밖, 펄떡이는 경제 이야기』와 『자기주도 공부 습관을 위한 질문형? 학습법!』이 있다. ▣ Short Summary 저자는 이 책에서 하인리히 법칙에서부터 깨진 유리창의 법칙까지 이 세상을 움직이는 수많은 법칙들을 정리하고 있다. 사전식으로 법칙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칙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적절한 사건과 이야기를 추가하였다. 법칙이란 특정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검증된 이론이며, 하나의 근본적인 이치나 원리를 다른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일반화시킨 설명이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만유인력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며, 여기서 만유인력이란 모든 사물이 자체의 질량과 비례하여 다른 사물들을 끌어당기는 힘이다. 즉 모든 법칙 뒤에는 어떤 원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연과학적인 법칙들 외에도 많은 사회과학적인 법칙들을 추려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기존의 학자들이 해석한 것을 요약해서 정리한 부분도 있다. 사회과학에서 법칙이 필요한 이유는 일단 검증된 것이기 때문에 믿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법칙들은 대부분 합당한 이야기들이지만 성공을 위해서 그 많은 원칙과 법칙들이 전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라도 불과 몇 가지 이내의 원칙을 신조로 삼았을 뿐이다. 대부분의 법칙들은 재미있게 읽으면서 눈에 담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법칙은 교훈 정도로 머리에 담고,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되는 한두 가지의 법칙은 가슴에 깊이 담는다. 세상을 살면서 한두 가지의 중요한 원칙이나 법칙, 철학도 없이 성공한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이 책이 여러분의 성공 방정식에 날개를 달아주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차례 도전과 응전의 법칙 / 도도새의 법칙 질투의 법칙 / 피보나치의 수열 파동 이론 / 세렌디피티의 법칙 몰락의 법칙 / 마지노선의 법칙 1:99의 법칙 / 파레토의 법칙, 80:20 긴 꼬리의 법칙, 롱테일 / 후광 효과 마이너리티 인플런스 현상 / 프레임의 법칙 베버의 법칙 / 이륙-추진-균형의 법칙 활주로 이론 / 퀀텀 점프 이론 1만 시간의 법칙 / 관성의 법칙, 뉴턴의 운동 방정식 경로의존의 법칙 / X이론, 당근과 채찍 종속의 효과 / 하인리히 법칙 대마불사의 법칙 / 쉘의 시나리오 기법 깨진 유리창의 법칙 주역과 변화의 법칙 / 마라톤의 법칙 / 단테의 법칙 최소량의 법칙 / 최소량 곱셈의 법칙 / 적자생존의 법칙 붉은 여왕의 법칙 / 밴드왜건 효과 / 멘델의 유전 법칙 확률과 대수의 법칙 / 동종교배 퇴화의 법칙 / 멈 효과 노 리스크 노 리턴의 법칙 / 시그모이드 곡선 이론 레몬 시장의 법칙 / 오쿤의 계수 / 펭귄 효과 다윗의 법칙 역발상의 법칙 / 광속 불변의 법칙 치킨 게임의 법칙 / 오컴의 면도날 법칙 / 1:81의 법칙 단순함의 법칙 / 나비 효과 / 수확체감의 법칙 수확체증의 법칙 / 마태 효과와 메칼프의 법칙 파킨슨의 법칙 / 피터의 원리 / 란체스터의 법칙 위위구조의 법칙 / 피그말리온 효과 위약 효과, 플라세보 / 에너지 보존의 법칙 열역학 제2법칙과 엔트로피의 법칙 빅뱅의 법칙 / 불확정성의 법칙 근접성의 효과와 유사성의 법칙 / 넘버원의 법칙 원근의 법칙 / 정보의 제시순서 효과 알래스카와 72의 법칙 2/3의 법칙, 1/3의 법칙 그리고 72의 법칙 피타고라스의 역설 / 250명의 법칙 수면자 효과 / 토사구팽의 법칙 폰지 게임과 로의 법칙 / 뷰자데와 신사고 이론 기동력과 승수 효과 / 벤치의 법칙과 청바지 법칙 메디치 효과 / 링겔만 효과 70:20:10의 법칙 / 스마일 커브의 법칙 선택의 법칙과 죄수의 딜레마 / 환골탈태의 법칙 머피의 법칙과 샐리의 법칙 / 우물의 법칙 차도살인의 계책 / 희생양의 법칙 / 음양의 법칙과 디지털 샤를의 법칙과 렌츠의 법칙 / 정반합의 법칙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 이영직지음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11월 / 272쪽 / 12,000원 도전과 응전의 법칙 토끼와 사슴의 병: 한 부자가 있었다. 부자는 아름다운 섬을 사들여서 나무와 꽃을 심어 푸른 초원을 조성했다. 그리고 토끼와 사슴을 자연상태에 풀어 놓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동물들의 눈빛이 흐려지고 털에 윤기가 사라지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이처럼 좋은 환경에서 병이 나다니?’ 수의사를 불렀지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부자는 마을의 현자를 찾아갔다. 부자의 이야기를 들은 현자는 껄껄 웃으면서 섬에다 이리 한 마리를 풀어 놓으라고 말했다. 현자의 말에 부자가 놀라자 현자가 말했다. “토끼와 사슴의 병은 환경이 너무 좋아서 생긴 병입니다. 이리에게 잡히지 않으려면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 할 것이고, 그러면 자연히 눈에는 빛이 나고 털에는 윤기가 흐를 것입니다.” 현자의 말대로 이리 한 마리를 풀어놓자 이들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여기서 도전과 응전의 법칙이 나온다. 토인비는 불멸의 역작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외부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했던 민족이나 문명은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문명은 소멸했다. 또 도전이 없었던 민족이나 문명도 무사안일에 빠져 사라지고 말았다. 나일 강의 선물: 자연조건이 지나치게 좋은 환경에서는 문명이 나타나지 않았다. 토인비는 문명을 일으킨 자연환경은 안락한 환경이 아니라 대부분 가혹한 환경이었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자연환경이 좋은 나라는 늘 발전에서 뒤처졌다는 지적이다. 고대문명과 세계 종교의 발상지가 모두 척박한 땅이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토인비는 가혹한 환경에 성공적으로 응전한 사례로 이집트 문명, 수메르 문명, 미노스 문명, 인도 문명, 안데스 문명, 중국 문명 등을 들고 있다. 이집트 문명을 일으킨 민족은 원래 아프리카 북부 지역에서 수렵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다. 지금부터 5000~6000년 전 아프리카 북부를 걸치고 있던 강우전선이 북유럽 쪽으로 이동해 가자 아프리카 북부와 남아시아 지역은 빠르게 건조, 사막지대로 변해 갔다. 이들에게는 이론상 세 가지의 선택이 있을 수 있었다. 그곳에 남아 기존의 수렵생활을 영위하면서 연명하거나, 그 자리에 남아있으되 수렵생활 대신 유목이나 농경생활로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거나, 거주지역과 생활방식을 모두 바꾸는 셋 중 하나였다. 세 가지 응전 중 어느 것을 택했느냐에 따라서 이들의 운명이 갈렸다. 그 자리에 남아 조상들의 방식대로 수렵생활을 계속했던 부족은 오래 가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생활방식을 바꾼 부족은 아프리카 스텝지역의 유목민이 되었다. 그리고 독사가 우글거리는 나일 강변 밀림지역으로 옮겨 가 농경과 목축을 선택한 부족들은 마침내 찬란한 이집트 문명과 수메르 문명을 일구었다. 나일 강변은 수량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해서 농사짓기에는 적합했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나일 강의 범람이 또 다른 시련이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범람시기를 예측하기 위해 천문학과 태양력이 발달했고 범람 후의 경지 측정을 위해 기하학이 발달하였다.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도르래가 발명되고 수레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기반기술이 되었다. 고대 중국 문명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는 양쯔 강과 황허 강 두 개의 큰 강이 대륙을 가로지르고 있다. 양쯔 강 유역은 기후가 따뜻한 데다 강물의 흐름이 완만하고 농토가 비옥하여 농사짓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쿤룬산맥에서 발원하여 발해만으로 흐르는 황허 강은 혹독한 추위로 겨울이면 얼어붙어 배가 다닐 수도 없었다. 더구나 해마다 범람을 반복하여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앗아갔다. 그러나 고대문명을 일으킨 지역은 양쯔 강이 아니라 바로 험난한 황허 강변이었다. 도도새의 법칙 루이스 캐럴이 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도도새 이야기가 나온다. 도도새는 인도양의 작은 섬 모리셔스에 서식하는 새였다. 모리셔스는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먹이가 사방에 널려 있는데다가 천적마저 없었다. 도도새에게는 모리셔스가 바로 에덴동산이었다. 먹이가 풍부하고 천적도 없으니 애써 날아오를 필요도 없었다. 포르투갈 선원들이 처음 이 섬을 찾았을 때 이 새들은 날아갈 줄을 몰랐다고 한다. 그저 멍청히 사람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서 포르투갈 사람들이 ‘바보, 멍청이’라는 의미로 붙여준 이름이 도도였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어나고 다른 동물들이 유입되면서 멸종되어 버렸다. 토인비는 외부의 도전이 없어 스스로 사라져버린 문명으로 고대의 마야 문명을 들고 있다. 고대 마야는 기원전부터 중앙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웠다. 수학, 천문학이 발달하였고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건축물을 남긴 이들이 AD 900년경에 갑작스레 사라지면서 그 이유를 두고 공룡의 멸종만큼이나 학설이 분분하다. 장기적인 가뭄, 지구 온난화, 화전으로 인한 삼림 파괴, 허리케인의 강타 등 여러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는 외부의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갑작스러운 시련이 닥치자, 그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갑작스레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를 도도새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시련을 이긴 민족: 외부의 도전인 시련을 감당하지 못한 민족은 사라졌지만 그 시련을 이겨낸 민족은 더 강하게 일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수난을 많이 받은 민족으로 유대민족이 꼽힌다. 그들은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며 시련을 겪었다. 로마시대에는 로마인들의 식민지가 되어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어갔으며, 결국 나라를 잃고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들을 반기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 하여 가혹한 핍박을 받았다. 히틀러 치하의 나치에서는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했다. 그런 시련을 겪고 살아남은 민족이기에 그처럼 강한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세계 인구의 0.3%에 불과한 그들이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배출했으며 세계적인 유명인사, 세계적인 부자의 절반 정도가 유대인이다. 지금 미국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도 유대인들이다. 유럽에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치른 이후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대량 난민을 수용하기 어려웠던 미국은 이들에게 허드슨 강변을 거주지로 내주었다. 그곳은 일 년에도 몇 번씩 강물이 넘치는 최악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이곳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강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옹벽을 쌓았다. 그리고는 이곳을 기반으로 금융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곳이 지금의 월가이다. 금융자본주의 나라인 미국, 월가를 장악한 유대인, 그러면 미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유대인들이라는 의미가 된다. 2천 년 동안 세계를 떠돌면서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DNA가 그들의 핏속에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파레토의 법칙, 80:20 파레토의 법칙은 일반인들에게 80:20의 법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파레토는 토리노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으며, 피렌체 대학에서는 철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파레토는 한계 효용설로 유명한 레옹 발라의 뒤를 이어 스위스 로잔 대학의 경제학 교수가 된 인물이다. 파레토의 관심은 소득 분배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무기로 소득의 분배는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일정한 틀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 하였다. 그것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사회 전체 부의 80%를 20%의 소수가 차지한다”는 80:20의 법칙이다. 사람들은 파레토를 80:20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 정도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는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이 아니라 사회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후생경제학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경제학자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80:20의 법칙이 좀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은 이것이 자연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점에 있다. 공기 중의 질소와 산소의 비율이 78:22로 이에 근접하며 지구상의 바다와 육지의 비율, 육지 중에서 산과 평지의 비율이 이와 흡사하다. 정사각형에 내접하는 원을 그릴 경우 사각형의 넓이에서 원의 넓이를 뺀 값은 원 넓이와 78:22의 비율을 이룬다. 사실 80:20의 법칙은 78:22의 변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파레토가 농민들의 소득실태를 이 법칙에 적용해보니 풍년이 들었을 때 전체적인 생활수준은 향상되었지만 하위 20%는 여전히 생활이 어려웠으며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상위 20%는 곳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기서 파레토의 법칙은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를 기업에 적용하자면 10가지 상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는 기업이 10억의 매출을 올렸다면 모든 상품이 고르게 1억씩 매출을 올린 게 아니라 불과 2개의 대표 상품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반면 나머지 8개 상품은 매출의 20%에 그친다는 것이다. 은행 예금의 80%는 20%의 사람들이 예치한 돈이며, 백화점이라면 불과 20%의 핵심 고객들이 전체 백화점 매출의 80%에 기여한다는 의미이다. 이 법칙이 마케팅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기업, 특히 유통업체들은 핵심이 되는 상위 20%의 고객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곧 VIP 마케팅이다. 긴 꼬리의 법칙, 롱테일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파레토의 법칙은 깨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오프라인 가게라면 20%의 핵심 아이템이 매출의 80%를 차지하지만 인터넷에서는 비핵심 소비자와 비핵심적인 아이템들이 주축을 이룬다. 세계 최대의 오프라인 서점인 반스&노블과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이 좋은 비교 대상이다. 반스&노블은 미국 전역에 500개가 넘는 대형 매장을 가진 최대 서점인 반면 아마존은 매장 하나 없는 인터넷 서점이다. 말하자면 아마존과 반스&노블은 다윗과 골리앗인 셈이다. 반스&노블의 전체 매출의 80%는 20%의 단골손님들에 의한 베스트셀러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다중이 참여하는 인터넷 기반의 서점 아마존은 소수의 단골이 아닌,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자투리 고객들이 주문하는 일반도서와 희귀도서의 매출이 상위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아마존에서의 구입 패턴을 다차원 좌표상에 그릴 때 X에 아이템, Y에 누적 매출을 표시하면 마치 긴 꼬리의 동물이 옆으로 누워 있는 듯한 모습이다. 미국의 저술가이자 편집자인 크리스 앤더슨은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하면서 ‘긴 꼬리의 법칙’으로 명명하였다. 요약하자면 공간이나 상권 개념이 없는 인터넷에서는 모래처럼 흩어져 있는 자투리 고객과 이들이 찾는 자투리 상품들이 모여 큰 산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를 역파레토 법칙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거대 소수에 비해 작은 개미 집단이 우위에 있다는 의미이다. 이 두 기업의 싸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마존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우선 장서량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반스&노블이 갖출 수 있는 책은 13만 권 정도이다. 공간의 한계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존은 무려 230만 종의 책을 갖추고 있다. 좀 더 재미있는 것은 오프라인 서점의 경우 매출 상위 1만 권 중에서 분기에 한 권 이상 판매되는 책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에서는 상위 10만 권 가운데 98%가 분기에 한 권 이상 판매되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 검색업체 구글이나 음악 서비스업체 아이튠즈, DVD 대여업의 넷플릭스 등 주로 인터넷 기반에서 성공한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애플의 아이튠즈가 서비스하는 100만 곡들은 적어도 분기에 1번씩은 판매되고 있으며 넷플릭스 역시 지난 분기에 25,000종의 DVD 가운데 95%가 1번 이상 서비스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인터넷 기반의 비즈니스는 다양성의 바탕 위에 비즈니스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프레임의 법칙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우화 한 가지. 두 사람이 예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그중 한 사람인 세실이 물었다. “이봐, 모리스,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생각하나?” 모리스가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랍비한테 물어보는 게 어때?” 세실이 먼저 랍비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랍비는 정색을 하면서 대답했다. “형제여,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기도 중에 담배를 피우다니, 그럴 수는 절대로 없다네.” 세실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모리스가 말했다. “네가 질문을 잘못해서 그런 거야. 내가 다시 물어볼게.” 이번에는 모리스가 랍비에게 물었다. “선생님, 담배를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랍비는 환한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형제여,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우는 중에도 얼마든지 기도는 드릴 수 있다네.” 동일한 현상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생각의 틀을 바꾸면 불행도 행복으로 느껴진다. 이것이 프레임의 법칙이다. 코넬 대학 심리학 교실에서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것은 1992년에 있었던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표정을 분석한 것이었다. 기쁜 표정을 짓는 선수의 순서는 금, 은, 동이 아니라 금, 동, 은이었다. 분석 팀에서는 그 이유를 프레임 이론으로 풀이하고 있다. 물론 금메달을 딴 선수는 기쁜 표정이다. 그러나 은메달을 딴 선수는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서 금메달의 시각으로 자신의 은메달을 생각한 반면, 동메달을 딴 선수는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의 관점에서 자신의 동메달을 보게 된다. 그래서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 환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다. 쓰레기 청소를 하면서도 늘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 청소부가 있었다. 무엇이 좋아서 저리도 싱글거리는 것인지 궁금해 하던 청년이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러자 청소부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는 거라네. 그러니 즐겁지 아니한가!” 깨진 유리창의 법칙 대형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그만 교통질서부터 단속하는 것이다. 더러운 곳을 없애면 파리나 모기가 서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범죄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의 어두운 곳을 없애면 범죄가 설 자리도 점점 더 좁아지리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최근 필리핀에 있는 한 교도소가 세계적인 화제를 낳고 있다. 이곳은 처음 인터넷을 통해 퍼지다가 급기야 미국의 CNN을 비롯한 세계 주요 매스컴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필리핀의 세부 지역에 있는 한 교도소에서는 새로운 소장이 부임하면서부터 체력 단련 시간을 이용하여 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른 교도소들이 규율을 정해놓고 생활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에 반해 여기서는 죄수들에게 춤을 가르쳤다. 춤을 출 때 틀어주는 노래도 다양하다. 초기에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많이 틀었으나 최근에는 우리나라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인기라고 한다. 교도소 생활을 그렇게 바꾸었더니 오히려 통제도 훨씬 쉬워졌고 출소자들의 재범률도 다른 곳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다. 범죄가 태어나고 자라는 어두운 환경을 밝게 바꾼 결과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흥미 있는 실험을 했다. 낙후된 골목에 상태가 비슷한 자동차 두 대를 세우고 한 대는 보닛을 조금 열어둔 상태로, 다른 한 대는 보닛을 열고 유리창도 조금 깨진 상태로 방치했다. 그리고서 1주일 후에 보았더니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는 배터리와 타이어를 빼가고 사방에 낙서를 하고 돌을 던져 거의 고철상태가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유리창이 조금 깨진 것밖에 차이가 없는 데도 그런 차이가 났다. 여기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나온다. 일단 금이 간 유리창은 전체가 쉽게 망가진다는 이야기다. 1980년대 뉴욕 경찰 당국은 뉴욕 지하철 범죄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밤이면 뉴욕 지하철을 탄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경찰국장은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서 힌트를 얻어 범죄의 심리적 온상이 지하철 낙서라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낙서를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지워도 지워도 다시 낙서를 하는 바람에 완전히 뿌리 뽑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마침내 1989년에야 지하철의 모든 낙서를 지웠다. 낙서를 지우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줄어들던 범죄율이 1994년에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고, 중범죄의 경우는 75%가 줄어드는 기적이 일어났다. 최소량의 법칙 독일의 화학자 J.F. 리비히는 식물의 성장을 눈여겨보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얼핏 보기에 아주 좋은 환경에 있는 식물들의 성장이 오히려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이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던 중 식물의 성장은 필요한 요소들의 합이 아니라, 필요한 요소 중 양이 가장 적은 어느 한 요소에 의해 제어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최소량의 법칙’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식물의 성장에 질소, 인산, 칼리의 3가지의 영양소가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인산, 칼리가 아무리 풍부해도 질소 성분 하나가 부족하면 식물은 질소를 소진할 때까지만 성장한다는 것이다. 식물의 광합성을 보자. 광합성에는 이산화탄소, 태양광선, 온도 등이 필요하다. 식물의 광합성이 이루어지는 속도는 3가지 요소 중 가장 적은 요소에 의해 제어된다. 탄소가 부족한 곳이라면 부족한 탄소를 소진할 때까지만 광합성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리비히는 자신의 법칙을 뒤집어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질소 성분 하나만 보충해주면 식물은 온전하게 자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화학비료였다. 최소인자의 법칙을 사람에게 비유해보자. 사람의 성공에 있어 노력과 재능,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노력만으로도 안 되고 재능만으로도 안 된다. 성공을 위해 ‘10’이라는 노력과 ‘10’이라는 재능이 필요하다고 할 때 어떤 사람이 ‘15’의 재능을 가졌다고 해서 ‘5’의 노력만으로 성공을 이룰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 역시 최소인자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두 요소 모두 ‘10 + α’가 되어야 한다. 주가를 움직이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기업의 매출, 순익, 금리, 통화량, 환율, 주식의 수요와 공급량, 유가, 국제 수지 등 주가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움직인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 중에서 어느 한 요소가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다면 기업의 자산가치가 아무리 높아도 주가는 오르지 않게 된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그 사람이 가진 장점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단점에 의해 제어된다. 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성실하지 못하다면 바로 그 ‘성실성’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로 작용한다. 붉은 여왕의 법칙 앨리스와 붉은 여왕은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앨리스가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열심히 달리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돼요.” 그러자 붉은 여왕이 호통을 쳤다. “이런 느림보 같으니. 여기서는 이렇게 달려야 겨우 제자리야. 어딘 가에 닿으려면 2배는 더 열심히 달려야 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거기서는 앨리스와 붉은 여왕도 달리지만 주위의 사물도 함께 달리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달려도 그 자리만 맴돌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면 이상한 나라가 오히려 정상이다. 우리는 모두 달린다고 달리지만 주위를 살펴보면 그 자리에서 맴돌거나 아니면 뒤처지기 일쑤다. 나도 달리지만 다른 사람들은 더 열심히 달리기 때문이다. 영양과 얼룩말이 살고 있는 아프리카 초원에는 치타도 함께 살고 있다. 치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소한 둘 중에서 하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진화해야 한다. 반면 영양이나 얼룩말의 입장에서는 치타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진화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누군가는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명체의 90% 정도가 멸종했다고 한다. 개별적인 종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달린다고 달렸지만 주위의 모든 경쟁자들이 더 빠른 속도로 달린다면 낙오하고 마는 것이다. 앞서려면 2배는 더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것이 붉은 여왕의 법칙이다. 동종교배 퇴화의 법칙 19세기 영국에 로버트 베이크웰이라는 이름의 목축업자가 있었다. 그는 양목을 하는 사람으로, 목초를 엄청나게 먹으면서도 살이 찌질 않아서 경제성이 별로 없는 양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양으로 떼돈을 벌 방법이 없을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중에 생각해낸 것이 우수한 품종의 양들을 동종교배시켜 최우수 양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돌연변이에 가까울 정도의 살찐 암컷 양을 골랐다. 머리가 작고 목도 짧으면서 다리가 가느다랗고, 대신 가슴과 엉덩이가 엄청나게 큰 양이었다. 고기로 팔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그 어미 양과 교접시킬 양을 찾다가 그 어미를 빼닮은 새끼를 찾아냈다. 그리고 어미와 새끼 양을 교접시켜 이상적인 우량종을 만들었다. 그는 그 유전형질을 보존하기 위해 어미와 자식, 형제, 자매를 잇달아 교배시켰다. 여기서 태어난 새로운 품종을 그는 ‘디쉴리 레스터’라고 이름 지었다. 소위 말하는 울트라 양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한때 큰돈을 벌기도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인구통계학자 맬서스는 경탄했다. 자신이 그토록 비관적으로 생각했던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동종교배 과정이 되풀이되자 대재앙이 시작되었다. 자신이 기르던 양들이 모두 스크래피라는 무서운 전염병에 걸린 것이다. 스크래피란 일종의 가려움증으로 이 병에 걸리면 온몸이 가려워서 먹고 자는 것도 힘들고 머리와 온몸을 땅과 기둥에 비비다가 죽고 만다. 동종교배에 의한 퇴화였던 것이다. 유사형질 간의 교배를 동종교배라 하고 이질적인 형질 간의 교배를 이종교배 혹은 잡종교배라고 부른다. 멘델의 유전법칙에 의하면 잡종 1세대에서는 우성형질만 나타난다. 이를 잡종강세라고 부른다. 잡종교배에서 태어난 잡종 1세대는 부모의 강점만을 타고나기 때문에 성장률, 산란율, 수정률 등 여러 면에서 부모 세대에 비해 우수하다. 수확은 많지만 병충해에 약한 볍씨가 있고 병충해에는 강하지만 수확이 적은 씨앗이 있다고 하자. 이질적인 두 종을 교배시켰을 경우 잡종 1세대인 F1에서는 이 둘의 강점만을 취해 병충해에도 강하고 수확도 많은 볍씨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잡종강세이다. 반대로 동종, 특히 근친교배가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에는 열성 유전자의 발현이 강해지면서 기형아나 열성 개체가 태어나는 경향이 강해진다.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을 두고 잡종강세로 설명하는 학자들도 많다. 미국을 세운 사람들 자체가 세계 각지로부터 모여 든 이민자들이어서 이들 잡종 간의 결혼으로 미국은 전형적인 잡종강세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유대민족을 잡종강세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수천 년 동안 세계를 떠돌면서 상당히 다른 형질의 민족들과 얽히고설켰고 그것이 잡종강세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순수 유대인보다는 폴란드계 유대인, 독일계 유대인 하는 식으로 유대인들의 피는 전형적인 잡종강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이나 조직도 마찬가지다. 남의 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폐쇄된 사회는 쇠퇴하게 마련이다. 다양한 요소들이 얽히고설킬 때 강한 사회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 사람의 지시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은 겉으로는 강해 보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외부의 변화에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또 폐쇄된 조직은 효율성만 추구할 뿐 새로운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는다. 아이디어나 창의력 역시 다양한 사람, 다양한 생각이 서로 부대끼면서 나온다. 생각이 다른 사람, 경험이 다른 사람, 전공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야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조직의 책임자가 순혈주의를 고집하거나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만을 주위에 둔다면 조직은 서서히 퇴화하게 마련이다. 치킨 게임의 법칙 치킨 게임이란 1950년대 미국 갱단 사이에서 유행하던 게임 이름이다. 좁은 도로에서 자동차를 마주보며 달리는 게임방식이다. 그러다가 운전대를 먼저 꺾는 쪽이 지게 된다. 두 사람 모두가 핸들을 꺾지 않는다면 충돌로 이어지게 된다. 냉전시대 미ㆍ소 간의 군비 경쟁이 그러했으며, 기업 경쟁이 그러하다. 그러나 여기서 이긴 승자는 쉽게 패자의 몫까지 차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업의 경우 가혹한 환경에서 경쟁자들이 도태되고 나면 승자는 더 큰 시장을 차지할 수 있으며 쓰러져가는 기업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했던 반도체 시장의 싸움이 치킨 게임 바로 그것이었다. 2009년에 접어들어 시장 점유율 10%로 세계 랭킹 5위였던 독일의 키몬 사가 파산하고, 잇따라 점유율 3%, 4.4%였던 대만의 프로모스와 파워칩이 휘청거리게 되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반사적인 이익을 얻으며 세계 시장 점유율을 한층 더 넓힐 수 있었다. 바로 치킨 게임의 승자가 된 것이다. 세계 LCD시장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도 치킨 게임의 승자였다. 2008년 1분기 양사의 합계 시장 점유율은 1분기에 43%였으나 4분기에는 54%로 12%나 증가했다. 미국의 자동차 기업 빅 쓰리가 휘청거리자 일본의 도요타는 GM을 누르고 세계 1위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DHL이 비운 자리를 페더럴 익스프레스는 힘들이지 않고 차지할 수 있었으며, 월마트 역시 2, 3위권 대형 업체들이 휘청거리면서 오히려 매출이 늘어났다. 델타항공은 휘청거리는 노스웨스트를 인수하여 세계 최대의 항공사로 올라섰다. 나비 효과 MIT 대학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천체의 운동까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현대과학이 날씨 하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이 의문에 접근하기 위해 실험을 해보았다. 습도, 온도, 바람 등 기상을 좌우하는 변수들을 컴퓨터에 입력한 다음 각 변수들마다 초기조건의 값을 1/1000씩 다르게 입력해보았다. 그랬더니 결과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나더라는 것이다. 습도와 바람의 값을 조금씩 높이자 브라질에서 나비의 날갯짓에 불과하던 바람이 미국의 텍사스에 미칠 무렵에는 토네이도로 변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 주에서 토네이도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로렌츠는 자신의 실험 결과를 위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나비 효과라는 개념은 여기서 나왔다. 나비 효과라는 말은 초기에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차이가 결과에 있어서 큰 차이로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했다. 디테일의 힘: 나비 효과는 처음에는 날씨와 같은 복잡계를 설명하는 과학 이론이었으나 차츰 경제학, 사회학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움직이는 복잡한 사회 현상들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다. 성공이나 실패도 능력이나 노력에서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차이가 결과에 있어서는 성공과 실패라는 큰 차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1961년 4월 12일 소련은 사상 첫 유인우주선인 보스토크 1호를 발사했다. 그 안에는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 가가린이 타고 있었다. “여기서 지구가 아주 잘 보인다. 아름답다. 기분이 매우 좋다. 지구는 푸른색이다.”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 가가린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지구를 내려다보면서 그렇게 감탄했다. 그 말 한마디로 가가린은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할 때의 에피소드이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응모했다. 최종심사에 오른 사람은 모두 19명이었다. 모두가 뛰어난 조건을 갖추고 있어 누가 선발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관문은 우주선 탑승 시험, 그러나 여기서 아주 작은 차이 하나가 승패를 갈랐다. 다른 후보들이 모두 구두를 신은 채 우주선에 오를 때 가가린만은 구두를 벗고 우주선에 올랐다. 이것이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켜 우주인으로 선발되는 영예를 안은 것이다. 아주 작은 차이가 큰 승부를 가른 것이다. 100-1=0이다: 현대 건축의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독일 출신의 미국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은 언제나 디테일 속에 있다.” 여기서 신은 곧 ‘완벽한 아름다움’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웅장한 건축물이라도 디테일에서 실패하면 결코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데어 로에는 말한다. “100가지 중 1가지를 실패했다면 99점이 아니라 ‘0’점이 된다.” 이것이 ‘100-1=0의 법칙’이다. 파킨슨의 법칙 조직의 병리를 진단하는 이론으로는 ‘파킨슨의 법칙’과 ‘피터의 원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에 근무했던 파킨슨은 관료조직이 비대해져 가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거대조직의 비효율성은 필연적이라고 단언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주목한 자료는 1914년과 1928년 영국 해군의 인력구조 변화였다. 1914년에서 1928년까지 14년 동안 해군 장병의 숫자는 14만 6천 명에서 10만 명으로, 군함은 62척에서 20척으로 줄어들었으나 같은 기간 동안 해군 본부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숫자는 2,000명에서 3,569명으로 80% 가까이 늘어났다. 전투력이 줄어들었는데도 왜 관리요원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것일까? 그가 내린 결론은 공무원의 숫자는 업무량과 관계없이 계속 늘어난다는 사실이었다. 그 요인은 두 가지, 하나는 자신의 승진을 위해 불필요한 부하직원의 숫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기 때문이며, 다음으로는 공무원들 서로가 서로의 일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직사회는 일의 경중이나 유무에 관계없이 점점 더 비대해진다. 그는 이 이론에다 자신의 이름을 붙여 파킨슨의 법칙으로 명명하였다. 파킨슨은 또 700년 역사를 가진 영국 내각의 효율성을 연구하던 중 내각의 구성원 숫자가 20명을 넘으면 급격히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결론지었다. 20명 이내일 때는 의견일치를 보이기 쉽지만 20명이 넘으면 몇 개의 소집단으로 나누어져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그가 공직사회를 더욱 신랄하게 꼬집은 내용은 “예산심의에 필요한 시간은 예산액과 반비례 한다”는 언급이었다. 예산이 적을 때는 온갖 이론을 다 동원하여 타당성을 따지지만 예산이 많은 분야일수록 대충대충 넘어가는 것이 공무원 사회라는 비판이었다. 피터의 원리 피터의 원리 또한 무능해지기 쉬운 조직의 병리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피터는 자신의 저서 『피터의 원리』에서 조직 내의 모든 사람은 무능한 수준, 즉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오를 때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파킨슨의 법칙이 공직사회를 겨냥한 일종의 풍자였다면 피터의 원리는 훨씬 더 과학적인 접근이었다. 피터는 정부, 군대, 산업 조직을 역사적,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결국 조직의 높은 자리는 무능력한 사람들로 채워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군대를 예로 보자. 일선 지휘관이 능력을 인정받아 더 높은 자리로 승진했다면 새로이 승진한 직위에서는 군인으로서의 그의 자세나 부하 통솔력, 용맹스러움 등이 점점 더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높이 승진할 경우에는 정치인이나 정부 관리들을 다루고 이해관계자들을 조종하는 일이 주요 업무가 된다. 여기서 원칙에 투철한 군인은 정치인으로서는 무능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피그말리온 효과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시대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는 키프로스 섬에 살았던 뛰어난 조각가였다. 당시 그 섬의 여인들은 정조관념이 희박했던 모양으로, 이에 실망한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여인상을 상아 조각으로 다듬어 그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아프로디테 축제의 날,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 신에게 자신이 다듬은 조각의 여인을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정성에 감복한 아프로디테는 마침내 그 조각상에 영혼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 여인의 이름은 갈라테이아였다. 이처럼 간절한 염원이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그 조각가의 이름을 따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른다. 심리학에서는 자기 암시의 효과라고 부른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큰일을 이룩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강력한 자기암시가 열정을 불태우게 하고, 그 열정이 큰일을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며 자기암시를 했고 오바마, 스티브 잡스, 오프라 윈프리 등 0.1%에 속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강력한 자기암시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이다. 꿈은 여기에……: ‘Dream is now here(여기에 꿈이 있다)’이라는 말도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는 ‘Dream is nowhere(꿈은 어디에도 없다)’로 보인다고 한다. 이 둘은 띄어쓰기 하나의 차이다. 미국의 한 운송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PIE라는 이름의 이 회사는 일 년 동안 화물식별을 잘못하여 발생하는 손해가 25만 달러나 되었다. 마침내 유명 컨설턴트인 에드워드 데밍 박사를 초청하여 자문을 받았는데, 그의 처방 중 하나가 작업 인부들의 호칭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그의 권고에 따라 작업 인부라는 이름 대신 장인匠人으로 불렀다. 그러자 한 달 만에 배송실수가 10% 줄었다. 그전까지 작업 인부는 시간만 때울 뿐이었지만 장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자 자신의 일에 책임과 긍지를 가지더라는 것이다. 70:20:10의 법칙 매년 《포천》지가 발표하는 500대 기업을 보면 평균 수명이 40년 정도라고 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발표한 것을 보면 일본 1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30년 정도이고, 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23.8년이다. 50년대 주요 기업이었던 삼양사, 럭키화학, 금성방직, 태창 그룹, 삼성 그룹, 삼호 그룹, 개풍 그룹, 동양 그룹, 화신 그룹 등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은 기업군은 럭키(지금의 엘지)와 삼성 정도이다. 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기업은 창업에서 궤도에 오르기까지 10년 동안은 평균 순수익률이 5.9%로 높지만 20~30년 동안은 3.4%로 떨어진다. 여기서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지 못하면 서서히 잊히는 기업이 되고 만다. 1950년대의 주력 산업이 섬유, 시멘트, 제당 등이었다면 1960년대에는 건설, 자동차, 1970~1980년대에는 정유, 중공업, 전자, 수출 등이 떠오르는 시장이었다. 즉 어느 한 분야만 고집해서는 쇠락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떠오르는 시장에 올인하는 전략도 잘못하면 또 다른 쇠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기존 핵심 사업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시도했던 다각화, 다변화로 핵심 사업마저 구렁에 빠뜨리고 결국은 기업 간판마저 내린 곳도 많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적절한 변신만이 그 해답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변신이란 무엇인가? 정답은 없지만 현재의 핵심 사업과 미래의 성장 사업에 적절히 자금을 배분하는 것이 좋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구글을 보자. 구글은 70:20:10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핵심 사업에 70, 핵심 사업과 관련된 분야에 20,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 10을 투자한다는 원칙이다. 전혀 새로운, 조금은 엉뚱한 분야에 10을 투자한다는 것은 투자가 실패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맞아떨어졌을 경우에는 큰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다. 구글의 와이파이나 오프라인 광고 등은 핵심 사업과 전혀 상관없는 실패해도 좋다고 생각했던 10%의 투자에서 나온 히트상품들이다. 이 비율이 정석은 아니겠지만 미래의 성장엔진을 찾기 위해 최소한 일정 비율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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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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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의 역사
라이벌의 역사 조셉 커민스 지음 말글빛냄 / 2009년 5월 / 494쪽 / 24,500원 ▣ 저자 조셉 커민스 미국의 정치와 대통령 선거에 대한 저술로 유명하며, 현재 역사 저술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계사의 못 다한 이야기』, …
라이벌의 역사 조셉 커민스 지음 말글빛냄 / 2009년 5월 / 494쪽 / 24,500원 ▣ 저자 조셉 커민스 미국의 정치와 대통령 선거에 대한 저술로 유명하며, 현재 역사 저술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계사의 못 다한 이야기』, 『반환점을 돌아 질주하라』, 『한 표를 위해서라면: 오욕의 정치공작』, 『역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의 10월 기습』과 국내 번역서로는 『만들어진 역사: 역사를 만든, 우리가 몰랐던 사건들의 진실』이 있다. 또한 『사상 최고의 수색 구조 이야기들』을 편저한 바 있으며, 『스노우 트레인』이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 역자 송설희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공역인 『만들어진 역사: 역사를 만든, 우리가 몰랐던 사건들의 진실』『왼손이 만든 역사』가 있다. 송남주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공역인 『왼손이 만든 역사』가 있다. ▣ Short Summary 역사 속 위인들은 모두 개인의 범주를 넘어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켰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대결을 통해 극복해야할 라이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라이벌은 국경선 밖의 적일 수도 있고 나라 안의 경쟁자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고 한 가문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있다. 또한 그 대결은 세계정복이라는 거대한 목표에서 촉발된 것도 있지만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몇 마디 발언에서 시작된 것도 있다. 그 관계가 어찌 되었든, 그 시작이 무엇이 되었건, 두 사람의 경쟁은 피비린내 나는 다툼, 전쟁, 혁명을 불러일으켰고 궁극적으로 세계 역사를 바꾸었다. 그리고 당연히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도 바꾸었다. 이 책은 이렇듯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라이벌 23쌍을 들어 그들의 관계, 대결의 초점, 과정, 결과, 그리고 그들이 역사에 끼친 영향을 추적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라이벌 전의 구도는 크게 ‘왕과 왕의 대결, 정치인의 대결, 군인의 대결, 정치가와 군인의 대결, 정치와 종교의 대결’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따라서 개인적인 라이벌 관계가 사회, 전쟁, 국가, 크게는 전 세계의 윤곽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숙고를 제시한다. 예컨대 케네디와 닉슨의 대결에서 닉슨이 승리했다면 그는 쿠바사태에 어떻게 대응했고 그 대응은 세계 역사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까? 모택동과 장개석의 대결에서 장개석이 승리했다면 중국 공산당의 출현은 과연 가능했을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다리우스 왕에게 패했다면 세계 지도상에 아시아의 존재가 그려질 수 있었을까? 이와 같이 역사 전체의 항로를 뒤바꿔보는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의 묘미다. 더욱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 외에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숨은 에피소드, 인간적 약점과 강점 등을 소개하고 관련 사진과 삽화까지 풍부하게 싣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 차례 서문_ 라이벌의 대결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CHAPTER 01 존 F. 케네디 vs 리처드 M. 닉슨 CHAPTER 02 보 구옌 지압 장군 vs 크리스티앙 드 카스트리 장군 CHAPTER 03 해리 S. 트루먼 vs 더글라스 맥아더 CHAPTER 04 조지 S. 패튼 vs 버나드 로 몽고메리 CHAPTER 05 바실리 추이코프 대장 vs 육군 원수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CHAPTER 06 장개석 vs 모택동 CHAPTER 07 요시프 스탈린 vs 레온 트로츠키 CHAPTER 08 아돌프 히틀러 vs 에른스트 룀 CHAPTER 09 프란시스코 ‘판초’ vs 에밀리아노 사파타 CHAPTER 10 벤자민 디즈레일리 vs 윌리엄 글래드스턴 CHAPTER 11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vs 웰링턴 공작 CHAPTER 12 애론 버 vs 알렉산더 해밀턴 CHAPTER 13 베네딕트 아놀드 vs 호레이쇼 게이츠 CHAPTER 14 스웨덴 왕 카를 12세 vs 러시아 대제 표트르 1세 CHAPTER 15 엘리자베스 1세 vs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CHAPTER 16 프란시스코 피사로 vs 디에고 데 알마그로 CHAPTER 17 필리프 4세 vs 교황 보니파시오 8세 CHAPTER 18 리처드 1세 vs 존 왕 CHAPTER 19 헨리 2세 vs 토마스 베켓 CHAPTER 20 정복 왕 윌리엄 vs 헤럴드 2세 CHAPTER 21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vs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CHAPTER 22 한니발 바르카 vs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CHAPTER 23 알렉산드로스 대왕 vs 다리우스 3세 라이벌의 역사 조셉 커민스 지음 말․글 빛냄 / 2009년 5월 / 494쪽 / 24,500원 존 F. 케네디 vs 리처드 M. 닉슨 미국이 기억하는 케네디와 닉슨은 성장환경부터 정반대의 인물들이었다. 존 F. 케네디는 1917년 매사추세츠 부룩클린에서 백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자 아버지 덕분에 상류층 학교에 다녔으며, 하버드대학 재학시절에는 나치 독일의 위험성에 관한 졸업논문『왜 영국은 잠자고 있었는가』를 써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의 아버지가 30,000부의 판매부수를 올려주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초계정 PT-109의 선장으로 남태평양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함정이 일본 구축함과 충돌해 침몰하는 사고를 겪었고, 이때 부상당한 병사들을 구출했다는 공적으로 해군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가 훌륭한 지휘관이었다면 이 작고 기동성이 뛰어난 함정을 침몰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케네디가 가진 자였다면 닉슨은 이 가진 자로부터 소외받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다. 1913년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다행히 공부를 잘해서 하버드대학 장학생으로 선발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하숙비를 조달할 길이 없어 하버드에 다니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고향에서 가까운 휘티어대학에 다녔는데 과대표 등의 활동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부유층 자제들로 구성된 사교클럽에 가입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를 거절당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가진 자로부터의 소외감을 느꼈다. 이후 다시 듀크대학에 입학한 그는 장학생으로 졸업했으며, 졸업 후에는 잠시 법률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해군 보급 장교로서 남태평양에서 근무한 그는 실전 경험은 하지 못했으나 대신 카드게임으로 10,000달러를 모았고 이 돈은 훗날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케네디와 닉슨은 정치계의 사다리를 올라타게 되면서 운명적인 라이벌 관계에 들어서게 된다. 전쟁 직후 미국은 인플레가 만연하고 정부에까지 침투하는 공산주의 확산에 두려움이 컸다. 수완 좋은 정치가라면 그런 두려움을 이용할 수 있는 시대였다. 닉슨과 케네디는 1946년 하원의원 선거에 뛰어들면서 모두 상대 후보자를 공산주의와 결부시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때의 선거운동에서 닉슨은 전쟁 중 카드로 딴 1만 달러를 요긴하게 썼으며, 케네디는 가문의 후계자로서 얻게 된 막대한 돈을 뿌렸다. 아무튼 1946년 33세의 닉슨과 29세의 케네디는 나란히 하원에 들어갔는데, 두 사람 중 더 빨리 정치적 입지를 굳혀나간 쪽은 닉슨이었다. 닉슨은 한 국무부 관리의 소련간첩행위를 조사하는 청문회에 참석하면서 끊임없이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했다. 이 영향으로 그는 1950년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고, 2년 후에는 39세의 나이에 아이젠하워의 부통령 후보로 선택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케네디가 닉슨보다 훨씬 더 TV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 케네디는 '가장 잘생긴 하원의원 상'을 받았다. 그리고 1952년 매사추세츠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닉슨과 케네디는 우연히도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사무실을 배정받았다. 두 사람은 한 동안 우정을 유지했으나 1956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둘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민주당 후보의 부통령이 되고자 했던 케네디는 상대편인 아이젠하워-닉슨 팀을 공격했다. 하지만 아이젠하워-닉슨 팀이 다시 한 번 승리했고 케네디와 닉슨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지내는 일은 힘들어졌다. 더욱이 두 사람은 1960년 대선을 겨냥하고 있었다. 케네디는 <타임>의 표지를 장식하고, PT-109 탈출기를 다룬 텔레비전 시리즈를 방영하고, <용감한 사람들>을 써서 퓰리처상을 받았다. 한편 닉슨은 ‘새로운 닉슨’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사람들은 아이젠하워를 존경했지만 8년 집권이 지루했기에 변화가 절실했던 것이다. 케네디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뉴 프론티어’를 슬로건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1960년 9월, 두 사람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그리고 '최초'의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맞붙게 되었다. 토론회는 네 번 예정되어 있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토론이 시카고에서 시작되었다. 이 토론회에서 케네디는 화장을 거절했는데, 하루 전날 호텔에서 실컷 일광욕을 즐겼기 때문이었다. 햇볕에 잘 그을린 그는 마치 어린 아도니스(비너스에게 사랑을 받았던 그리스의 미소년)처럼 보였다. 닉슨도 화장을 거절했는데, 그는 오랜 지방유세와 사고로 인한 무릎통증으로 얼굴이 창백했다. 게다가 언제나 무성한 턱수염은 얼굴을 더 그늘져 보이게 했다. 당시 라디오를 청취한 사람들은 닉슨이 대단히 훌륭한 정치관을 피력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는 잘생기고 자신에 찬 케네디와 창백하고 어두운 얼굴의 닉슨이 대조될 뿐이었다. 텔레비전 토론회 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케네디가 앞섰고, 1960년 11월 모든 투표가 집계되었을 때 케네디는 119,450표 차이로 승리했다. 이 차이는 0.1% 미만의 근소한 차이었는데, 사실 닉슨이 승리를 케네디에게 도둑맞았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케네디의 부통령 후보였던 린든 존슨의 고향 텍사스에서는 죽은 자가 투표를 했고 부정 투표권자 등록이 만연했다. 그리고 일리노이에서는 닉슨이 102개 군 중에서 93개 군에서 승리를 차지했는데 인구가 가장 많은 쿡 군에서는 패배했다. 케네디가 쿡의 정치 지도자 리처드 데일리를 조종했기 때문이었다. 선거 후 케네디 진영은 닉슨이 재투표를 요구할 것으로 여기고 은밀히 만날 것을 제안했는데 케네디를 만난 닉슨은 선거 결과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 한 신문기자가 투표결과의 의혹에 대해 기사를 쓰자 국가적 단합을 위해 기사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1961년 1월 케네디는 닉슨이 지켜보는 가운데 취임 선서를 했다. 케네디의 승리는 이후 쿠바사태를 승리로 이끌어 세계 역사에 영향을 끼쳤지만 그는 곧 저격당하고 만다. 그리고 1968년 닉슨은 압도적인 표를 얻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1972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을 때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불명예스런 퇴진을 하게 된다. 이때 민주당 도청사건 외에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닉슨은 CIA요원들로 하여금 민주당의 오래된 파일을 훔치도록 했다. 하지만 그것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행동이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케네디가 죽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닉슨의 복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해리 S. 트루먼 vs 더글라스 맥아더 트루먼과 맥아더는 직업에 있어서나 지위에 있어서 부딪힐 일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청년시절까지는 더욱 그랬다. 맥아더는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트루먼은 중산층 농가에서 태어나 사무원으로 근무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두 사람은 특유의 잠재된 역량을 발휘하게 됨으로써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트루먼보다 네 살 위였던 맥아더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루스벨트의 무관이 되었다. 그리고 탁월한 대담성과 지략으로 1차 세계대전에서 7개의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전후에는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되었다. 이후 육군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소장으로 임명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육군 참모총장이 되었다. 이때 루스벨트 정부와 논쟁을 벌여 잠시 은퇴했으나 다시 루스벨트의 부름을 받고 극동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일본군의 진주만 폭격이 일어나자 다시 군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트루먼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대위로 근무했으며 엄격하고 훌륭한 지휘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캔자스 정치 지도자와 손을 잡으면서 재판관에 선출되었고 1934년에는 미주리 주 상원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1940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을 강력히 지지함으로써 상원의원에 재선되었고 1944년 루스벨트의 2기 부통령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임명된 지 불과 몇 달 만에 루스벨트가 뇌일혈로 사망하면서 트루먼은 세계 최강의 통치권을 승계하게 되었다. 트루먼이 상원의원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는 불과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야 했는데, 전쟁이 끝나면서 방위산업은 더 이상 경제를 견인하지 못했고 인플레와 심각한 주택 부족 및 임금파업이 미국을 휩쓸었다. 그와 동시에 냉전이 시작되었다. 소련은 원자폭탄을 비축하려고 했고 베를린을 봉쇄함으로써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확장하려 했다. 트루먼은 베를린에 보급품을 공수함으로써 이 상황을 해결했는데, 이것은 그의 뛰어난 외교정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인플레와 싸우느라 지친 미국인들은 트루먼을 자신들에게 필요한 지도자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1948년 선거가 있던 해, 국내 문제에 대한 트루먼의 업적은 너무나 암울해서 ‘모든 것이 트루먼의 잘못이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이 시기 맥아더는 일본 주둔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을 입헌민주주의 국가로 재건하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일본국민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았다. 그의 집무실이 있는 다이이찌 빌딩 밖에서는 이 위대한 존재를 만나기 위해 수백 명의 일본인들이 날마다 줄을 섰고, 그러는 동안 장군의 홍보 장교들은 맥아더의 업적에 대한 보도 자료들을 쏟아내고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느라 바빴다. 트루먼은 이러한 맥아더의 인기에 조바심이 났다. 게다가 맥아더가 주일미군 삭감을 요청함으로써 자신의 징병제도 추진을 방해하자 고국을 한 번 방문해달라고 전문을 발송했다. 이것은 사실상 군통수권자로부터의 명령이었는데 맥아더는 그것을 거절했다. 트루먼은 다음해 다시 요청서를 발송했으나 맥아더는 또 거절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이 발발하면서 트루먼과 맥아더는 전례 없는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총사령관 맥아더는 70세의 고령이었지만 뛰어난 전술을 발휘했다. 인민군이 낙동강까지 도달한 상황에서 측면공격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수륙양면의 인천 공격을 성공시키고 한 달여 만에 평양까지 진격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 훌륭해서 트루먼조차도 그의 후광을 입고 싶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태평양의 웨이크 섬으로 맥아더를 만나러 갔는데 맥아더의 태도는 냉랭했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대통령에게 인사 대신 단순히 악수만 청했다. 이 어색한 웨이크 회합이 있은 지 10일 후, 압록강 제방에 주둔하고 있던 연합군을 10만 명의 중공군이 밤에만 공격을 가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러자 맥아더는 다리 폭파에 대한 허가를 워싱턴에 요청했다. 하지만 워싱턴은 중국을 자극할 것을 염려하여 제한적인 군사행동만을 허가했다. 이에 화가 난 맥아더는 북진을 계속했는데 중공군에게 더 심각한 타격을 입고 전면적인 후퇴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연합군이 다시 전열을 정비해 중공군을 38선까지 밀어냈으나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이 전쟁을 끝내야만 했다. 트루먼은 협상을 모색했는데, 맥아더는 이것을 항복이나 마찬가지라며 격분했고, 중공군에 공개서한을 보내 항복을 요구했다. 트루먼은 독단적으로 보낸 이 메시지에 매우 화가 났다. 더욱이 맥아더는 자신이 "중공군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워싱턴 정부가 자신의 손발을 묶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트루먼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그런데 더 심한 일은 맥아더가 한국전에 대한 미국의 전략을 '바보 같은 짓'이라면서 트루먼의 대외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대통령이 군 통수권을 가진다는 것은 미국 헌법의 신조이고, 군인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제 맥아더를 해임할 이유는 충분해졌다. 그런데 한 보좌관이 '만일 맥아더가 해임결정을 눈치 챈다면 사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트루먼은 “그 망할 놈이 나에게 사표를 내게 해서는 안 되지.” 라고 말하고 보도 자료를 새벽 1시에 배포하여 기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로써 사령관직에서 물러난 맥아더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공화당은 이러한 맥아더의 인기를 이용하고자 했다. 이리하여 맥아더는 국회에서 연설을 하게 되는데 그는 수백만 명의 유권자 앞에서 트루먼 정부를 비난했다. 요란한 박수 소리로 몇 번이나 중단된 그의 연설은 군가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끝이 났다. 의회 내에서 수많은 청중들이 훌쩍거렸고, 한 상원의원은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연설을 들었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얼마 후 한국전쟁에 관한 청문회에서 다른 장군들이 트루먼의 입장을 해명하고, 대통령에 대한 맥아더의 행동을 비판함으로써 그는 더 이상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1952년 맥아더는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공화당이 아이젠하워를 대통령후보로 지명하면서 빠르게 무대 옆으로 비켜났다. 결국 트루먼도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사실상 그와 맥아더 모두 패배자가 된 셈이었다. 이후 맥아더와 트루먼은 각자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장수했다. 트루먼은 의회가 25,000달러의 연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전까지 근근이 살다가 1972년 88세로 사망했다. 한편 맥아더는 2차 대전 당시 필리핀에 대한 봉사의 대가로 퀘존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50만 달러로 호화롭게 살다가 1964년 84세로 사망했다. 죽기 2년 전 그는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한바 있는데, 이때 그는 ‘군인은 정치적 문제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강조했다. 이때의 연설은 TV로 생중계되었는데 트루먼도 보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후 군인은 정치인에게 완전히 복종하게 되었다. 장개석 vs 모택동 장개석과 모택동은 19세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청 왕조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바로 그 격동기에 태어났다. 250여 년 동안 중국을 지배해온 청 왕조는 부패해 있었고, 영토는 일본 ․ 영국 ․ 프랑스 등의 외세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서구식 교육을 받은 새로운 중산층을 중심으로 정치적 ․ 사회적 개혁에 대한 변화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여기저기서 움트고 있는 혁명의 기운에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리고 오직 자신들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는 다소 터무니없는 야망을 가졌다. 따라서 두 사람은 결코 서로 양립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해 중국 전역에서 치러진 백병전(1934년~1949년)은 수많은 중국 인민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장개석은 평소 귀족출신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는 동부 해안의 저장성에서 소금 장사를 하던 비교적 부유한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7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어려운 성장기를 보내야 했다. 14세에 그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마을 소녀와 결혼했으나 가난하고 무지하다는 이유로 그녀를 몹시 천대했다. 이후 16세가 되자 마을을 떠나 서양인이 세운 학교에 다녔으며, 이때 『혁명 입문』이라는 책에 영향을 받고 군사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자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귀족출신임을 내세운 장개석과 달리 모택동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과장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후난성에서 꽤 큰 규모의 농장을 소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그 역시 15세에 어머니의 주선으로 이웃 마을의 처녀와 결혼했다. 하지만 아내가 2년 만에 병으로 죽자 충격을 받고 바깥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당시 그는 정구냥이 쓴『풍요의 시대에 던지는 경고』라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었으며, 농민 학교를 거쳐 북경대학에 입학했다. 장개석과 모택동 두 사람 모두에게 혁명의 첫맛을 보여주고 충돌의 출발점이 된 것은 1911년 손문의 급진적인 정치 봉기였다. 당시 중국은 6살 난 황제 부의(溥儀) 대신에 섭정들이 통치하고 있었다. 망명 중인 손문은 비밀리에 청 군대와 황실 등에 혁명조직을 구축하였고 1911년 2월 광주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해 10월경에는 우한에서 대규모 군사반란이 일어났는데 이때 모택동도 참여하려고 했으나 고무 덧신을 찾느라 지체되고 말았다(우한은 비가 많은 곳임). 장개석은 모택동보다 훨씬 더 능동적이었다. 그는 청 군대를 패배시키는데 일조했고 손문의 측근 자문이 되어 원세개(袁世凱)를 축출했다. 하지만 국민당의 세력은 아직 약했다. 곧 전국의 군벌, 지방권력, 암흑조직 등이 세력을 펼치면서 혈투를 벌이는 내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모택동은 북경대학에서 책에만 파묻혀 지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읽고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의 성공에 고무되어 학생그룹에 가입했다. 이 무렵 그는 스승의 딸인 양개혜와 결혼을 하고 잠시 서점을 운영했지만 곧 소련국제공산당에 가입하게 되고 전국 주요 도시들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시작했다. 1926년 장개석과 모택동이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들은 동맹자였다. 33세의 모택동은 국민당의 선전부장으로서 회합에 참석했다. 모택동보다 7살 위였던 장개석은 1925년 손문이 사망하자 경쟁자들을 살해하고 국민당 세력의 지도자로 부상해 있었다. 장개석은 회합에 참석한 간부들과 군벌을 공격하기 위한 국공합작을 기획했다. 처음에 이 연합전선은 전투마다 승리하면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듯했으나 두 사람은 이미 전혀 다른 항해를 시작하고 있었다. 모택동은 인민의 대동단결이 목표였고, 장개석은 중국을 공화국 체제로 개편하고 군사력과 산업을 약진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이 커지고 노동조합들이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하자 장개석은 상하이에 있는 노동조합원 수천 명을 체포하여 살해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모택동도 표적이 되었으나 간신히 탈출하여 오랜 도피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이 무렵 그는 코민테른에 보고서를 보내 국민당을 ‘지도자가 없는 빈집’이라고 묘사했다. 이는 장개석의 지도력을 손상시키려는 것이었으나, 장개석은 미국 정부의 확고한 지지와 군벌과의 동맹, 그리고 손문의 처제와 세 번째 결혼을 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굳히고 있었다. 1934년 10월, 오랜 기간 숨어 지내던 모택동은 훗날 ‘대장정’이라고 일컬어지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약 90,000명의 공산군이 일렬종대로 북으로 향했는데 1939년 중국 북부 옌안의 계곡에 도착했을 때는 15,000명만이 살아남았다. 행군 내내 가해진 국민군의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택동은 동생을 잃었고 두 번째 부인과 네 아이들까지 잃었다. 하지만 모택동의 열의와 정치 공작은 성과를 거두었다. 과거 만주의 군벌이었던 장작림(張作霖)을 포섭한 것이다. 장개석은 장작림이 자기편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그에 의해 체포되고 말았다. 모택동은 오랫동안 자신과 가족을 파괴해온 자를 당장 죽이고 싶었지만 곧 현실적으로 대처했다. 일본군을 막기 위한 제2차 국공합작을 제의한 것이다. 장개석은 석방되기 위해서 모택동의 조건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모택동과 장개석은 사실상 대일본전쟁(1937~1945년)을 아주 실용적으로 활용했다. 모택동은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국민당군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고 군대를 재정비할 수 있었다. 또한 인민들에게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일본군에 대해서도 전면전이 아닌 게릴라 공격을 가했기 때문에 사실상 큰 피해가 별로 없었다. 한편 장개석은 1939년 일본군이 점령한 상하이와 난징에 군사적 방어진을 설치함으로써 25만 명의 사상자가 났는데, 이러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일본군과 대치한 것은 전쟁 물자를 비축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진주만 폭격 후에 미국은 장개석에게 엄청난 군사장비와 고문단, 그리고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2차 대전 직후 중국은 누군가의 말처럼 “정신이 멍할 정도로 비참한” 상태였다. 수백만 명이 죽었고 수천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 군대는 서로를 파괴하기 위한 최후의 전투 준비에만 몰두했고 이로 인해 중국 전체가 고통을 받았다. 일본의 패전이 확실해지자 모택동은 연설을 통해 장개석을 ‘부패한 날강도이자 반역자’라며 비난했다. 그리고 외국 대사들에게는 장개석을 ‘거북이 알, 독재자, 얼간이’라고 표현했다. 장개석 역시 나름대로의 공격을 했다. 그의 세 번째 아내 손미령(손문의 처제)은 전쟁 중 수없이 미국을 방문했는데, 그녀는 강연장에서 모택동을 “중국의 옆구리를 찌르는 악마의 가시”라고 표현했다. 이렇듯 서로를 향한 비방전이 오가면서 마침내 1946년 4월 중순 내전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공산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개석의 국민당군도 그렇게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국민당 정부의 폭정에 인민들의 원망이 높았던 것이다. 베이징에서는 30명의 학생이 단지 교과서가 없다고 항의했을 뿐인데 생매장을 당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또한 공산군의 근거지를 범람시킨다면서 황하강의 물줄기를 바꿔 40만 명의 시민들이 집을 잃는 일도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원조 까지 철회되자 도시는 곧 인민해방군(공산군)의 손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계속 후퇴하던 장개석은 1949년 12월 8일 대만으로 도주했다. 모택동과 장개석의 최종전투는 이전까지 사망한 3백만 명 가량의 인민 외에 5백만 명의 인명을 더 희생시켰다. 이후 세력을 장악한 모택동의 잔인한 숙청으로 수백만 명의 인명이 더 목숨이 잃었는데, 두 사람이 타협했다면 이 수많은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모택동은 1976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죽기 전 그는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일은 “일본인들을 패배시키고, 장개석을 그 조그만 섬으로 추방시킨 일”이었다고 말했다. 장개석은 그 조그만 섬에서 1975년 사망했는데, 죽기 전 자신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중국 본토 이외의 땅에 묻히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신은 여전히 본토 수복을 기다리고 있으나, 모택동의 거대한 초상이 여전히 베이징 심장부에 걸려 있으니, 결국 이 서사시적 경쟁에서 모택동이 승자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필리프 4세 vs 교황 보니파시오 8세 중세시대에는 교황의 권한이 왕권을 제압했다. 특히 교황 인노센치오는 중세에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교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잉글랜드 존 왕을 파문시키기도 했고 존이 다시 자신의 호감을 사자 <마그나카르타>의 무효화 선언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노센치오의 통치가 끝나고 8년 후, 교황과 왕 사이에 '영혼과 신체'에 관한 논쟁이 시작되면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이 논쟁은 프랑스의 필리프 4세와 교황 보니파시오 8세 사이의 경쟁구도에서 구체화되었다. 당시 유럽은 봉건주의에서 겨우 벗어나 국가 개념이 막 자리 잡기 시작했던 시대였다. 백년전쟁이 마침내 그 막을 내리면서 유럽 민족국가들의 형성을 촉진했던 것이다. 프랑스 역시 잉글랜드 세력을 축출하기 위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전쟁은 물론 돈이 들었다. 필리프 4세는 전쟁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고집 센 호족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또한 외국의 금융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빌리고는 이들을 추방시켰는데, 이러한 조치는 유대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으며 그들의 재산은 필리프의 것이 되었다.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교회로 눈을 돌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성직자에게는 세금을 부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왕이 십자군을 편성할 때에는 교회에도 세금을 징수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를 이롭게 하는 ‘정당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당한 전쟁’을 위한 세금 부과를 보니파시오와 같은 성마른 교황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니파시오는 권세가인 이탈리아의 카에타니 가문 태생으로 교회재산을 자신의 가문에 빼돌렸으며, 더욱이 전임 교황 첼레스티노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그가 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성격이 못되었다. 그는 누군가가 신경을 거스르면 비명을 지르며 경련을 일으켰는데 이러한 그의 신경을 매우 거슬리는 것이 왕들의 성직자 세금부과였다. 보니파시오는 1296년 2월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교서를 발행하여 ‘성직자와 그들의 신체, 재산에 대한 통치권은 오직 교황에게 있음’을 알렸다. 게다가 ‘이를 위반 시에는 파면’이라는 조항까지 붙였다. 이에 분노한 필리프 4세는 곧 프랑스로부터 모든 재화를 유출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교황이 프랑스 교회 재산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보니파시오는 처음에는 저항했으나 바티칸의 재정이 점점 궁핍해지자 곧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필리프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보니파시오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두 집단, 즉 교황이 자신의 가문을 살찌우는데 불만을 가진 집단과, 첼레스티노 암살을 의심하는 수도사들을 매개로 보니파시오를 협박했다. 선택권이 없었던 보니파시오는 교서 <지위에 관하여>를 발행해 필리프의 요구를 수락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1300년 새로운 세기의 시작에 보니파시오는 교회를 찬양하는 로마의 첫 성년을 공표했다. (이후 성년은 매 100년마다 선포되었다) 이에 따라 완전한 면죄부의 약속에 이끌린 수만 명의 순례자들이 로마에 속속 도착했다. 이러한 행렬에 고무된 보니파시오는 황제의 복장을 하고 자신을 교황뿐 아니라 황제로 여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에 분노한 필리프는 기회를 노리다가 프랑스의 주교 베르나르 쎄쎄를 반역 혐의로 체포하고 교황에게 쎄쎄를 해직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보니파시오는 이에 응하지 않고 또 다른 교서, <우남 상탐(Unam Sanctam), 거룩한 하나의 교회>를 발표했다. 그는 이를 통해 ‘모든 인류가 구원을 위해 로마 교황의 필연적인 백성’임을 공포했다. 그리고 쎄쎄의 석방과 직위 보호를 요구하는 편지를 필리프에게 보냈다. 그런데 이 편지는 “들어보아라, 아들아!”라는 구절로 시작되었으며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는 듯한 꾸짖음이 들어있었다. 필리프는 이제 보니파시오를 완전히 파멸시키려는 결심이 확고해졌다. 그는 곧 수석 장관 기욤 드 노가레와 300명의 용병부대를 로마의 아나니 교황궁으로 보냈다. 교황은 이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노가레와 용병부대는 교황의 응접실로 들이닥쳤고 누군가가 교황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교황의 사임을 요구했는데, 보니파시오는 “여기 나의 목이 있고 머리가 있다!”라고 외쳤다. 죽지 않는 한 사임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결국 용병부대 지휘관들 사이에 교황의 처리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한쪽은 당장 죽이자는 것이었고 또 한쪽은 프랑스로 이송해 재판에 회부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3일 동안 지체된 이 논쟁은 아나니 시민들이 봉기하는 기회를 제공해버렸다. 그리하여 보니파시오는 로마로 돌아올 수 있었으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해 10월 서거했다. 보니파시오의 뒤를 이은 베네딕토 11세는 노가레를 파문시켰지만 아나니 공격을 거행한 패거리를 모두 사면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는 교황 클레멘스 5세는 노가레의 파문까지 무효화하고 <성직자와 평신도>, <거룩한 하나의 교회>에 나타난 보니파시오의 교리를 완전히 폐기시켰다. 한편 필리프는 수도사들로 이루어진 템플기사단의 재산을 압류하고 아비뇽 교황청의 시대를 열어 이로부터 70년 동안 아비뇽 유수가 지속되었다. 그런데 아비뇽 유수는 결국 교황이 나누어주는 성직록과 토지 하사의 권한을 강화시켰다. 이로써 교황과 추기경들은 막대한 부를 누릴 수 있었고 아비뇽 시대는 교황제 역사상 가장 부패한 시대로 남게 되었다. 종교개혁의 초읽기는 그때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vs 다리우스 3세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 3세가 전투를 벌이기 이미 150년 전부터 세상을 지배하는 힘은 페르시아제국에 있었다. 거대 도시 바빌론을 정복한 키루스왕에 의해 건국된 페르시아는 동쪽으로는 파키스탄,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그리고 남쪽으로는 이집트까지 영토를 점유했다. 페르시아는 속국들이 조공만 착실히 내면 종교나 정치방식에 대해서는 대체로 관대했다. 그런데 자긍심이 강한 민족이었던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에 조공을 바치는 것을 거부했고 이에 따라 그리스-페르시아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승리했지만 그리스의 황금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까다로운 고대 그리스인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통해 나라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이때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가 스파르타를 제외한 그리스 전체를 점령했다. 그리고 BC 356년 아들을 얻었는데 그가 바로 알렉산드로스였다. 필리포스는 알렉산드로스가 19살 되던 BC 337년 여름 자신의 연인이었던 파우사니아스라는 젊은이의 칼에 맞아 죽는다. 그런데 고대자료들은 이 암살이 필리포스의 포악한 세 번째 부인 올림피아와 그녀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합작품으로 혐의를 둔다. 암살의 내막이 어찌 되었든 BC 336년 스무 살의 알렉산드로스는 왕위를 계승했고 새로이 얻은 권력과 영광을 누릴 새도 없이 4만 병력을 이끌고 소아시아로 진격했다. 이 땅은 바로 다리우스 3세의 것이었다. 다리우스 3세는 페르시아 왕실의 직계 계승자가 아니었다. 그는 황실의 먼 친척이었는데 당시 페르시아 황제 오쿠스 3세는 백성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따라서 황제의 통치권이 위태롭게 되자 궁정 내시 바고아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황제를 암살하고 자신이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을 왕위에 앉히고자 했는데, 그가 선택한 사람이 바로 다리우스였다. 이리하여 다리우스는 BC 336년 알렉산드로스가 왕위에 오른 바로 그 해에 다리우스 3세의 칭호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바고아스는 점차 이 녹록치 않은 다리우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궁정 정원에서 바고아스는 독이 든 잔을 다리우스에게 건넸다. 다리우스는 잔을 높이 들었으나 곧 바고아스의 머리채를 잡아 잔을 그 입에 기울였다. 그리고 비로소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의 진정한 통치자가 되었다. BC 334년 봄, 다리우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진격해온다는 정보를 들었지만 이 젊은 왕을 쉽게 생각했다. 자신은 알렉산드로스보다 스무 살이나 더 많았으며, 15만 보병과 기병을 단숨에 징병할 수 있는 존재였다. 알렉산드로스의 병력은 고작 4만이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군은 과거 그리스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대였다. 마케도니아군은 조랑말을 탄 5천 명의 기병이 선두를 차지했고 나머지 병력은 사릿사(sariss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5.5m 길이의 나무창으로 무장했다.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의 본격적인 첫 번째 전투는 이수스 전투였다. 기록에 따르면 이수스 전투의 격전은 끔찍했다. 잘려진 사지가 사방에 날아다니고, 땅은 피로 붉게 물들었으며,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몇 킬로미터 밖까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다리우스가 먼저 단검으로 알렉산드로스의 허벅지를 찔렀다. 그런데 갑자기 다리우스의 전차를 끌던 말들이 공포에 날뛰며 마케도니아군의 진영을 향해 내달리는 바람에 다리우스는 다른 전차로 뛰어올라 도망쳐버렸다.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를 놓쳤지만 값진 전리품을 얻었다. 바로 다리우스의 어머니와 부인, 두 딸과 여섯 살 난 아들 오쿠스를 인질로 잡은 것이다. 다리우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자신의 가족을 풀어주는 대가로 엄청난 몸값과 서아시아의 영토를 양도할 것을 제안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협상안에 대해 아주 잠깐 생각한 뒤, 자신을 ‘아시아의 왕’이라 칭하라는 등의 매우 거만한 답장을 보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위대한 왕이 다시 한 번 전쟁터에 나오길 바랐던 것이다. 그의 예측대로 다리우스는 유례없이 거대한 군대를 소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의 군대와 전차들이 움직이기 편리한 넓은 평원, 가우가멜라로 격전 장소를 정했다. BC 331년 9월 29일, 알렉산드로스는 가우가멜라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올라섰다. 이미 보고를 받았지만 25만의 페르시아 대군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리우스는 가우가멜라 평원에 먼저 도착하여 부하들에게 전차를 달려 땅을 고르게 만들도록 명령했다. 또한 말뚝으로 가득 찬 함정들을 파놓도록 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첩자를 통해 말뚝을 심어놓은 함정들의 위치와 전차의 주행코스 등을 알아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다음날 치를 전투에 대한 전략을 짰다. 마침내 BC 331년 10월 1일 아침, 양측 군대가 서로를 향해 마주 섰다. 그런데 마케도니아군의 보병 방진은 페르시아군의 좌측을 향해 사선으로 서 있었다. 다리우스는 조금 이상했으나 수적 우위를 믿고 우측의 기병대를 좌측 진영으로 출격시켰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의 기병대가 이를 중도에 저지하면서 총력전이 벌어졌다. 그러자 다리우스는 전차부대를 마케도니아군의 중앙으로 진격시켰는데, 이 역시 알렉산드로스가 예상했던 바였다. 그는 전차부대에게 길을 터주도록 했고 그 결과 횡렬 안으로 진군한 페르시아군은 쉽게 무너졌다. 이와 동시에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군의 전열에서 빈틈을 찾아내 기병대와 함께 돌진했다. 다리우스는 마케도니아 군이 자신을 향해 진격해오자 이수스 전투에서 그랬듯 도망치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곧 다리우스의 뒤를 쫓았지만 이번에도 그를 놓치고 말았다.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의 4년에 걸친 전투는 결국 알렉산드로스의 승리로 막을 내렸고, 다리우스는 전투가 끝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사촌 베수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피투성이가 된 그의 시신은 마케도니아 군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알렉산드로스는 이 라이벌의 시신위에 자신의 보랏빛 망토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시신을 페르세폴리스로 이송시켜 국장을 치를 것을 명령하고 자신은 베수스를 찾아내 코와 귀를 잘라냈다. 이는 왕을 시해한 자에 대한 페르시아의 처형 관습이었다. 비록 다리우스가 자신의 적이었으나 오직 왕만이 왕을 죽일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 알렉산드로스는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의 왕이 되었고 이후 서구문명의 중흥을 이끈 헬레니즘 시대가 도래하였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모든 정복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해방자로 여기는 이상을 지니고 있었다. 정복전쟁 내내 호머의 일리아드를 지니고 다녔던 그는 중앙아시아를 건너 인도까지 진격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의 군대는 이 험난한 여정에 진절머리가 났다. 또한 알렉산드로스는 심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결국 알코올 남용은 BC 323년 6월 서른 넷의 젊은 그에게 죽음을 가져다주었다. 어떤 고대자료는 그가 독살되었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현대 역사가들은 그의 사인이 막대한 양의 알코올로 악화된 말라리아 증상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드로스는 후계자가 없었기에 자신의 사후에 일어날 권력투쟁을 염려했는데 실제로 머지않아 그의 제국은 조각조각 흩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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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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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북한
남한 북한 - 미국의 진보주의자가 바라본 한반도 위기의 본질과 전망 - 존 페퍼 지음 / 정세채 옮김 도서출판 모색 / 2005년 3월 / 300쪽 / 11,000원 ▣ 저자 존 페퍼 (John Feffer) 월드 폴리시 저널(World Policy Journal)의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
남한 북한 - 미국의 진보주의자가 바라본 한반도 위기의 본질과 전망 - 존 페퍼 지음 / 정세채 옮김 도서출판 모색 / 2005년 3월 / 300쪽 / 11,000원 ▣ 저자 존 페퍼 (John Feffer) 월드 폴리시 저널(World Policy Journal)의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미국친우봉사회(AFSC,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의 동유럽 및 동아시아 담당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존 페퍼는 미국에서는 드물게 보는 진보적 시각으로 한반도 문제와 미국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해서 연구하는 외교정책 전문가로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진보적 성향의 싱크탱크 ‘포린 폴러시 인 포커스(FOREIGN POLICY IN FOCUS, FPIF)'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Zmag〉등 미국의 진보 언론매체에 한반도 문제에 관해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포린 폴러시 인 포커스와 ’한국을 생각하는 학자들의 모임(Alliance of Scholars Concerned about Korea)‘의 자문위원과 미국작가연합 워싱턴 지부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남한의 NGO들과 갈등 해소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미국과 북한 사이의 교류를 지원하기 위해 동경에서 활동했다. 그는 북한을 세 번 그리고 남한을 24번 이상 방문했다. 그 결과로 출간된 이 책『남한 북한』(NORTH KOREA SOUTH KOREA ; U.S. POLICY AT A TIME OF CRISIS)은 미국 이외에도 일본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북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읽히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4년 9월 19일 인터넷 신문〈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가 특집 기사로 나갔으며,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초청 강연회를 가진 바 있는 진보주의적 활동가(Progressive Activist, 존 페퍼는 자신을 이렇게 불러달라고 했다)이다. 저서로는『긴장완화를 넘어(Beyond Detente): Soviet Foreign Policy and U.S. Options』(1990)『충격의 여파(Shock Waves): Eastern Europe After the Revolutions』(1992)『유럽의 새로운 민족주의(Europe's New Nationalism)』(1996)와『희망 속의 삶(Living in Hope): Communities Respond to Globalization)』(2002)『권력 이동(Power Trip): 9.11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과 세계화 전략(U.S. Unilateralism and Global Strategy after September 11』의 편집자로도 활약했다. ▣ 역자 정세채 경북과학대학 부설 동북아에너지연구소 소장, 저서로는『삼국지와 역사사기극』외 다수가 있다. ▣ Short Summary 동북아시아는 초고속 산업 성장, 첨단 기술, 풍부한 자원, 그리고 세계 절반의 외환 보유고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체제이다. 남한의 사회적 정치적 성과들은 그 굉장한 경제 성장의 기적이상으로 기록할 만하다. 급박하게 요구되는 내부적 변화의 필요성과 더불어, 북한 지역과의 평화적 융화는 앞으로의 한반도 진행에 필수적 과제이다. 다른 방법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군사적 대결이 될 것이다. 향후의 과제가 쉽지는 않겠지만, 실현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미국의 역할은 분명히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인들이 그 문제와 배경들, 그리고 전망들을 이해하는 것이 극도로 중요하다. 존 페퍼는 충분한 통찰력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건설적인 해결책으로의 길을 제시해주며, 이 문제들에 대해 깊고 명백한 근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존 페퍼의 책이 출간되자, 북한에 대해 퍼뜨리고 있는 부시 정부의 소문들은 이라크에 대한 그들의 보도보다 더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영변에 있는 북한의 핵 시설은 50년이 넘은 구식 디자인에 놀랍게도, 아직 진공관을 이용한다. 북한은 1년에 군인 1명당 20달러를 소비하는 반면 26배나 큰 경제력의 남한은 매년 군인 1명당 16만 3천 달러를 쓴다. 만약 미 국방성이 그대로 놔두기만 한다면 남북한 당국은 한반도를 통일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 저자 존 페퍼의 분석은 가장 신뢰할 만하며 한반도를 위협하는 요인에 대한 균형 잡힌 기록들이다. ▣ 차례 머리말 - 한반도 위기, 카운트다운 중 1장 한반도의 한(恨) 한반도는 전쟁 전에 분단되었다 한국전쟁, 핵무기만 없었을 뿐이다 북한 재건, 훌륭했다(?) 남한의 성공학 얼음은 녹기 마련이다 2장 평양의 관점 : 공산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북한의 비장의 카드, 군사력 경제 쇠퇴 중단된 신화 북한에 비상구는 있는가 북한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3장 워싱턴의 관점 : 미국의 궁극적 시나리오 대북 정책 : 미국의 3대 무기 대남 정책 4장 포함 외교의 세계화 :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흔들리는 미국의 모순(矛盾) 정책 대 북한 당근 정책 대 중국 당근과 대 북한 채찍 5장 평화로 가는 길 한반도의 거울, 독일 모델 포용이라는 최선의 선택 동아시아의 미래는 희망적인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특별한 제안 남한 북한 - 미국의 진보주의자가 바라본 한반도 위기의 본질과 전망 - 존 페퍼 지음 / 정세채 옮김 도서출판 모색 / 2005년 3월 / 300쪽 / 11,000원 머리말 - 한반도 위기, 카운트다운 중 2004년 8월, 미국과 북한은 양자의 의견차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미국, 북한, 남한, 일본, 중국, 러시아)에서 만났다. 이 6자회담은 미국이 타협을 거부하면서 산산조각 났다. 부시 행정부내의 실용주의자들은 6자회담체제를 지지했지만, 이 문제를 실제 협상에서 다룰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지는 못했다. 6자회담이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강경론자들은 북한의 정권교체를 강요했다. 그들은 현재의 위기를 풀어낼 실마리가 될 지도 모를 모든 것에 대해서 집요하게 방해공작을 펴 왔다. 이른바 북한과의 쌍방협상 또는 2자 안전보장이다. 강경파들의 전망에 따르면, 다자간 협의나 제안들은 북한정부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없는 무의미한 이벤트에 불과하다. 한편, 평양은 다양한 안전 보장책 및 경제적 보상만 주어진다면 자신들의 핵을 기꺼이 교환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이면서 핵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사소한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의 지정학은 한반도가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지역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부시 행정부가 말하듯, 단순히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끊임없는 욕구가 빚어낸 결과가 아니다. 또한, 정책의 일관성 없이 좌충우돌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그러한 위기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부시 행정부는, 2000년 10월 평양에서 극적으로 연출된 클린턴-올브라이트 합작품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정책에서 드러나게 된 균열은, 2001년 1월 조지 부시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였던 당근과 채찍 전략은 극단적인 불신과 오해를 낳았고, 2000년의 짧은 데탕트(긴장 완화)를 가능하게 만든 연약한 기반마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클린턴-올브라이트 합작이 논리적으로 지리멸렬해지자(이는 부분적으로는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의회와 국방성, CIA와 국무성 등의 보수주의적 반대의 결과였지만), 부시팀으로 하여금 민주당의 외교정책이 남긴 몇 안 되는 긍정적 유산 중의 하나마저 쉽게 휴지조각으로 버리도록 만들었다. 북한은 미국 정치인들에게 있어 유명한 ‘매 맞는 아이’였고 미국의 매스컴들 또한 부시가 북한을 상대로 도발하는 것을 부추겼다. 북한은 미국의 가장 오래된 적敵이다. 북한이 악명 높은 “악의 축”으로 불리기 10년 전, 콜린 파월 장군은 걸프전 전야에, “나는 악인을 축출할 것이다. 카스트로와 김일성까지 책임지겠다.”라고 선언했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은 죄 없는 방관자는 아니다. 강경파의 영향력이 작동하고 있는 북한 정부는 심각한 인권문제를 안고 있으며 필요한 어떤 방법으로라도 핵 억제력을 보유하려고 작정한 듯 보인다. 북한의 외교 정책이 반대 상황에 대한 논리적인 대안이며 그 영역에 있는 힘의 심오한 불균형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극한 정책은 미국, 한국, 그리고 일본에서 포용정책을 통한 민간 지원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은 폐쇄사회이고, 불행히도 모든 것이 너무 쉽게 어둠에 묻혀버리는 나라다. 그런 북한에 대한 무지 -북한의 동기, 역사, 능력, 회복력- 는 1994년 미국을 전쟁 직전의 극한까지 몰고 갔다. 이렇게 위험한 데자부(기시감 혹은 기체험감이라고도 한다. 정상인의 경우에는 과거에 경험한 사건, 사물형상에 대한 일반화의 형태로 이해되지만, 병적인 경우에는 신경증이나 정신분열증에서 많이 볼 수 있다.)속에,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전임자보다 훨씬 부족한 지식과 논리를 가지고 현재의 국면에 임하고 있다. 이 책의 목표는, 남한과 북한에 관해 이해를 돕고 남북한의 대미 관계를 조망해보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역사, 미국의 외교 정책, 그리고 동아시아의 변화하는 군사, 경제적 상황에 대한 간결한 분석이 그 내용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남북한의 화해와 재통일을 촉진시킨다기보다는, 분열과 정복을 기조로 하는 현재 미국 정부의 외교 정책 사례를 보여줄 것이다. 철저히 무지하고 근시안적이며 지정학적으로 오만한 워싱턴은, 한반도의 분단이 미국 경제와 안보에 가장 이익이 되는 상황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미국의 정책은 남북한 역사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1장 한반도의 한恨 한미 관계의 현재 위기는 무엇보다도 역사적 불공평, 특히 열강들의 침략과 지배 또는 19세기까지의 국제 교류와 기독교 신앙을 무기로 해서 문호를 개방시키려 했던 외세의 오만한 야욕들을 직시하는 배경 위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역사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독립적인 주체가 되려는 끝없는 욕망은 남북한 사람들의 사회적 행동의 기초를 이루었다. 1910년 일본과 합병되기에 앞서, 대한민국은1300년 동안 통일국가로서의 역사적 정통성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이란 것이 거북스러웠다. 한국인들은 서구 열강에 의해서 중국이 받은 모욕과 일본이 추구한 현대화를 모두 피해가기만을 열망했다. “신선의 왕국”이라 불리는 한국은 자신들의 유학사상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한국은 명백한 불리함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이 부상하는 국제경제질서 속으로 편입되고 있었다. 금이나 철과 같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토착 상인계급이나, 강력한 군사력, 나아가 일본과 같이 근대화된 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정치계급이 존재하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은 호전적인 외세들에게는 그야말로 매력적인 먹이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중국과 일본이 한반도에서 격돌했고, 당시는 이미 일본과 러시아가 한반도의 전략적 이권을 놓고 격돌했다. 러일전쟁을 종식시킨 데오도르 루즈벨트에 의해 중재된 협약에서, 일본은 한국의 지배권을 얻어냈고, 그 대가로 미국은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을 승인받았다. 이 공적으로, 루즈벨트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반면, 한국은 약소국의 전철을 밟아 그들의 종주권을 잃어버렸다. 천 년이 넘는 단일국가로서의 드높은 자존심과 지위가 하루아침에 추락하고 만 것이다. 한반도는 전쟁 전에 분단되었다 일본이 식민지화한지 35년 후 한반도는 사실상 해방됨과 동시에 분단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동맹군에 항복했고, 이 날이 바로 남과 북의 한국인들이 독립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한국인들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미 한반도는 분단되어 있었다. 4일전 8월 11일 자정 회의에서, 미래의 국무장관 딘 러스크와 다른 미군 대령은 미국과 러시아의 영향권이 미치는 범위에서 한반도를 분할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들은 38선을 선택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도착하기 전에 한반도 전체를 차지할 수 있었음에도 미국의 38선 분단에 동의했다. 소련과 미국은 1945년 12월 잠정적으로 5년 안에 한국에서 통일 정부를 수립할 것에 대해서 동의했다. 하지만 독일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새로운 냉전이 이윽고 통일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38선은 1948년 남쪽의 대한민국과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발족하면서 형식화되었다. 한반도의 무력통일을 바라는 남북한 측 지도자의 확고한 의사 표시에도 불구하고, 소련군과 미군 둘 다 1949년까지 극소수 군사 고문들만 남겨놓고 모두 철수했다. 남쪽에서는 격렬한 내란이 이어졌고 북쪽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일어났다.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내걸고 좌파세력에 대해 압박을 가했고, 김일성은 남진을 제창하며 자신의 정치적 합법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1950년 6월 25일에 발생한 사건은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핵무기만 없었을 뿐이다 이 문제에 있어 가장 전통적인 역사서들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철저한 조사과정 끝에 훨씬 복잡한 문제들을 밝혀냈다. 북한과 남한의 국경 분쟁이 1948년에 시작됐고, 수천 명의 군인이 개입된 중요한 전투들이 1949년 여름에 계속해서 일어났다. 북쪽에서의 해전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건들은 모두 남한에서 도발한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공식’날짜보다 최소한 1년 전에 시작된 것이고 그 유혈 참사의 책임은 남과 북 양쪽에 다 있다. 한국전쟁은 30만 명의 북한군과 40만 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냈다. 3백만 명의 시민들이 집중 폭격을 피하기 위해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1953년 6월, 미국이 관개용 댐들과 독산 저수지 벽을 폭파하면서, 북한의 도시지역은 물에 잠겼고 이는 북한의 농업 기반을 약화시켰다. 나치가 네덜란드에서 자행한 것과 똑같은 전쟁 범죄로 간주되는 행위였다. 비록 미국이 핵무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북폭으로 인한 상처는 핵 폭격과 거의 동일한 피해를 초래했을 만큼 그 참상은 심각했다. 또한 북한과 심지어 중국에서까지 곤충들의 감염과 다른 미생물의 감염이 나타난 것은 미국이 북폭 당시 생물학 무기를 실험했다는 피할 수 없는 증거가 되고 있다. 얼음은 녹기 마련이다 2000년 6월 13일, 두 나라 사이의 냉각관계는 해소된 듯 보였다. 남북한의 정상이 분단 후 50년 만에 평양 공항 활주로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김정일과 김대중은 악수를 나눈 후, 갈채를 보내는 수만 명의 북한군중들이 운집한 도로를 따라서 공항을 빠져 나와 도심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남쪽에서는, 수백만 명이 텔레비전을 통해 김정일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는데, 김정일의 새로운 색안경 스타일은 하룻밤 사이에 남한의 새로운 유행으로 떠올랐다. 3일간의 회의에서, 두 정상은 향후 10년 간 비무장지대를 오고가는 공식 혹은 비공식적인 접촉을 최대로 확대시키겠다는 야심 찬 미래의 청사진을 세웠다. 남북 화해의 화려한 성과 및 2000년 정상간의 얼굴을 맞댄 회담으로 인해 생성된 흥분은 현재 일정 부분 비관주의적 기조로 접어들고 있다. 남북한 간 무역 및 투자를 위한 새로운 법률적 정치적 토대 구축에도 불구하고, 북쪽으로 흘러들어가는 남한 자본의 이동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북한 투자에 관심을 표시한 기업들의 절반이 생각을 바꿨다. 또, 현재의 핵 위기는 남북 양측 투자자의 확신에 제동을 걸고 있다. 논쟁, 그리고 기대감의 실추 속에, 2002년 남북한 정부는 회담을 속개했다. 실제로 남한의 통일부는, 2002년에 개최된 회담의 범위가 “1989년 시작된 정례 접촉이래 가장 열성적인” 것이었다고 발표했다. 2003년 비무장지대의 지뢰 제거 후 두 나라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연결 도로를 건설했고 몇몇 대표단은 이미 북한지역을 방문했다. 또한 2003년에는 여섯 번째 이산가족 재회가 있었다. 현재의 핵 위기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냉각시켰지만 아직도 남북한은 화해에 대해 절망하고 있지 않다. 2장 평양의 관점 : 공산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1989년 북한 지도자 김일성은, 그의 가까운 동료인 동유럽 권력자들이 권좌에서 추락하는 모습을 공포 속에서 지켜보았다. 서구 전문가들은, 김일성이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셰스쿠와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와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 경제는 이미 하향 곡선을 긋고 있었다. 공산주의 진영에서 보조받던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소련 연방의 거대한 시장을 잃게 된 북한 정권은 확실히 돌아버릴 지경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바로 이웃에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는 남한의 존재는, 독일의 사례를 연상시키듯, 군사 경계선으로도 막을 수 없는 대대적인 탈북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공산주의는 종언을 고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유럽에서는 끝났는지 모르지만, 몽고를 제외한 아시아에서는 그 체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북한 정치 지도자들은 권력 유지의 방편으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북한 정권을 교체하려는 외부 세계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하여, 북한 정부는 공격적으로 조직된 대규모 군대를 전쟁억제력으로 보강해야 했다. 그리고 북한의 ‘전체주의’를 분석한 서구의 수많은 문서들에도 불구하고, 북한 리더십은 정치, 경제, 문화와 외교 정책의 방향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 변화 중 일부는, 연속된 자연재해를 겪은 후, 1990년대 중반의 급격한 경제 쇠퇴를 경험하면서 본의 아니게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대부분의 변화는 신중한 정책의 결과였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쇠퇴하게 된 이면을 고려할 때, 이 변화들 또한 북한 정권의 장기화를 잘 설명해준다. 북한의 비장의 카드, 군사력 북한의 군대는 실로 규모가 크다. 연간 예산 중 2002년에는 14.9퍼센트, 2003년에는 15.4퍼센트가 국방비로 흡수되었다. 백만 명이 넘는 사람, 즉 인구의 20분의 1이 군 복무중이며, 7백만 명 이상의 예비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규모이다. 또한 북한은 제3국으로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리비아, 이란, 이라크, 그리고 이집트와 같은 나라들에 무기를 수출해서 거의 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보도에 다르면, 북한은 생물학무기와 화학무기 상당량을 비축해왔다. 그러다 불거져 나온 것이 핵 의혹이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차관보는, 파키스탄에서 수입해 들여온 원심분리기로 농축우라늄을 추출하기 위한 북한의 비밀 계획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북한 당국과 만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 정보가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주요한 동맹국이었다. 그리고 당시 외교정책의 초점은 이라크를 상대로 한 일련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켈리는 북한의 반박을 예상했지만, 북한은 미국이 의심하고 있다고 단정지은 것으로 보였다. 북한이 자신의 핵계획을 인정하든지 말든지 미국은 북미 간 제네바 협정이 무효화했고 거의 10년 동안의 평화적 관계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북한 군대의 기술력은 구식이다. 1999년 남북한간에 서해교전이 벌어졌을 때, 남한군은 분명히 북한보다 우세했다. 전반적으로 암울한 처지의 군대를 보유한 북한은 그에 대한 보상을 찾는 듯, 의외로 원자력 개발계획을 멈추지 않고 있다. 비록, 평양은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종류의 위협 자세를 취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북한은 투자도 유치 받지 못했고, 적절한 실험 조건도 갖춰져 있지 않으며, 러시아와 중국이 핵 무장한 북한을 가까운 국경에 두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정작 필요한 부품들을 얻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도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핵 재료만 가지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전 세계가 북한에 사용 가능한 핵무기가 있다고 믿는다는 가정 하에, 북한은 그들의 목표인 미국의 북폭 저지를 효과적으로 얻어내고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 경제는 남한 경제가 상승하고 있는 동안, 평균 수준 이하로 침체되었다. 그래도 지도부는 자신들의 경제개발모형이 우수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1976년까지, 북한은 해외 외채 지불을 이행하지 않았다. 북한의 경제 규모는 외형상 급속하게 커져가고 있었다. 거인증을 향한 이 경향은 북한경제를 그 유명한 공룡 다이노사우러스만큼 거대하면서도 동작이 굼뜬 존재로 만들었다. 게다가, 북한이 기술 수입을 늘리는데 있어서 주저한 것은 -자본 설비 투자의 수준이 공산권 기준과 똑같이 낮은 수준- 결과적으로 나중에 북한의 경제를 쇠퇴시키고 말았다. 북한의 기계화 농업은 이렇게 쇠퇴하는 산업기초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농부들에게 식량 재배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 부지를 조성토록 하는 사업이 권장되었다. 이 새로운 자유에 크게 고무된 농부들은 자기만의 부지를 더 넓힐 생각으로 심지어 언덕의 경사면에 있는 나무들까지 모조리 베어버렸다. 이렇게 촉발된 삼림 벌채는 1995년과 1996년에 북한 지역을 강타한 폭우로 인해 온 국토를 휩쓸어버리는 파괴적인 재난을 초래했다. 연이어 1997년의 가뭄은 본격적인 북한의 식량위기를 촉발했고, 북한 전역에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이 시기의 기근 동안에 얼마나 많은 북한 주민들이 사망했는지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이 기간 동안에 북한 경제는 사실상 괴멸하고 말았다. 또한 에너지 공급이 타격을 입자, 석탄과 금, 마그네사이트의 광석 채굴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제조 분야 역시 타격을 입었고, 일부 공장시설들은 노동자들에 의해 산산이 해체되어 중국으로 팔아 넘겨져 식량으로 교환되었다. 비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유, 트랙터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연료의 부족으로, 농산물 수확은 4분의 3으로 감소했다. 북한 정부 예산은 거의 40퍼센트 가까이 축소되었고 전체 국민소득은 거의 2분의 1규모로 줄었다. 비록 1998년 이후 4년 간 약간의 성장을 기록했지만, 2003년의 경제는 참혹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경제적 과제와 군사적 과제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강성대국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 산업적, 농업적 생산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북한은 군사적 자원으로부터 경제적 자원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것은 무너져 가는 기반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미 육군 공병대와 같이 상당 부분 변형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김정일이 1999년 발표했던 미사일 실험의 일시적 중단은 그와 같은 프로그램에 들어갈 엄청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1990년대의 경제적 쇠퇴는 북한에 여러 가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기근과 그에 따르는 경제적 몰락으로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권위의 탈집중화 현상이 초래되었으며, 급진적 방법으로라도 경제 재건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도록 평양의 지도부를 자극시켰다. 이전의 경제 정책을 부분적으로 개선하는 노선을 수립하면서, 마침내 중요하지만 거의 보고되지 않은 북한 사회의 변화가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3장 워싱턴의 관점 : 미국의 궁극적 시나리오 대북 정책 : 미국의 3대 무기 레이건 시절 국방부 장관이었던 캐스퍼 와인버거는, 1996년 발간한 그의 소설『차세대 전쟁 The Next War』에서, 마침내 미국이 군사, 경제적으로 세계 최고의 지위를 빼앗기게 되는 일련의 세계 충돌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소설에 등장하는, 잇따른 충돌의 첫 번째 사건이 미국과 북한의 전쟁이다. 와인버거는 북한에 대한 최악의 고정관념들을 모두 동원하고 있다. 철저하게 경직된 이념, 호전성 그리고 정신병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행태 등. 일반적 미국인들에게 이런 전형들을 상기시킬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가장 오랜 숙적이다. 그러나 1994년의 북미 제네바 기본협정과 북미 당국자간 실무회담들 이후, 미국은 북한에 대해 좀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봉쇄와 포용의 혼합, 이른바 ‘봉쇄적 포용정책’(containment와 engagement를 합성한 congagement로 미국 외교 정책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국내 학자들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봉쇄포용 정책, 봉쇄 틀 속에서의 포용 정책, 혹은 봉쇄적 포용 정책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은 워싱턴으로부터 시작됐다. 이미 1990년대 북한이 군축을 고려했던 사실에 당황한 와인버거를 비롯한 대북 강경론자들은 북미 기본 합의에서 클린턴 정권을 이기기 위한 완벽한 무기를 발견했다. 클린턴의 정책은 ‘무모한 유화 정책이며 순진’하다는 와인버거의 판단이 그것이었다. 보수파 저널리스트 빌 거츠는 클린턴을 ‘북한의 공범’이라고 비난했다. 정부와 의회 내 보수주의자들의 반대로, 미국은 1990년대 북미 기본 합의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었다.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지 않았고, 외교적 승인을 위한 단계를 취하지도 않았다.) 2001년 상원인준청문회에서 콜린 파월은 부시 정권의 외교 기조를 보여주었다. 여기서 파월 국무장관은 김정일을 ‘독재자’로 규정했다. 한 가지 틀림없는 사실은, 파월의 경직된 주장은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김정일을 사업 파트너가 될 만하다고 말했던 것과 현저하게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파월은, 미 행정부 안에서 이른바 온건파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현재 미국 국무부 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 폴 올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그리고 존 볼튼 국무부 차관 등의 인물이 북한과의 대화를 단지 유화책에 불과한 것으로 볼 때, 파월은 협상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같은 강경파들은, 한국에 대해 좀더 사려 깊은 견해를 갖고 있음에도 목소리를 낮추었다. ‘봉쇄적 포용 정책’의 시대는 끝이 났다. 부시 정권이 모든 주요 협정들을 조직적으로 무산시켰던 반면, 북한은 1990년대 초기 이래로 미국과 좀더 가까운 관계를 원해 왔다. 그러나 부시정권은 권력을 잡기 이전부터 쥐고 있던 정책에 열중해 있다. 이 강경하고 타협하지 않는 정책은 냉전의 전통적인 군사적 견제의 힘을 끌어내고 또, 정권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적 고립책을 구사하는 것이다. 평양의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향해서…. 군사 봉쇄 : 1998년, 미국 국방부는 선제공격 방안을 포함한 군사 계획을 수정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한반도 주변에 배치할 군사의 수를 48만 명에서 69만 명으로 증강했다. 클린턴 정부는 비용과 실용성이 반비례하는 미사일 방위 체제를 부활시켰고, 이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까지 분노하게 만들었다.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가 유효한 동안에도, 미군은 지역의 동맹국들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합동 훈련을 계속 했고, 일본에게는 더 호전적인 군사 정책을 채택하도록 요구했으며, 필리핀과는 새로운 주둔군 배치를 마무리했다. 대북 정책의 재검토는 이 새로운 정책 방향을 확고히 했다. 2001년 초여름, 부시 정부는 이라크, 이란 등에 대한 미사일 판매를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수출은 어떤 합의 사항도 위반하지 않는 것이었다. 클린턴 정부가, 북한의 핵 계획과 미사일 계획을 중지시키는 데 집중했던 반면, 부시 정부는 대량살상무기와 군사력 집중, 심지어 북한 사회의 변화까지 포함하며 대북 정책의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부시 팀은, 북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지난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협정의 재협상을 원한다는 암시를 보내기 시작했다. 클린턴 정부의 전통적인 당근과 채찍 정책에서 당근을 완전히 없애고, 부시 팀은 ‘강경한 포용’hawk engagement과 ‘맞춤형 봉쇄’tailored containment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새로운 채찍 정책에 주로 의존했다. 이런 대북 정책의 재구성은, 미 국방부 내 싱크탱크의 수장인 79세의 앤드류 W. 마샬이 지휘한 미군의 전면적인 재배치와 연계되어 진행됐다. 군사 기술과 전략상 강력하게 요구받은 ‘개혁’기조 위에서 새로운 군대를 위한 마샬의 제안은 미사일, 미사일방어 체제, 그리고 최첨단 기술을 갖춘 더욱 기동성 있는 군대를 강조했다. 2001년 9월, ‘4개 년 국방재검토보고서’에서 미 국방부는, 마샬의 제안들을 구체화했다. 워싱턴은 마침내 2002년 1월 부시가 연두교서에서 이라크와 이란과 함께 북한이 ‘악의 축’axis of evil에 속한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그동안의 베일을 벗어 던지고 자신들의 근본적인 정책을 밝혔다. 2002년 10월 초 국무차관 제임스 켈리를 단장으로 하는 미국 대표단이 평양에 갔을 때도 이러한 강경노선을 기조로 하고 있었다. 대북 특사로 다녀온 부시 정권의 켈리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HEU을 통한 핵 개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주장하며 이외에도 북한측이 몇 가지 보따리를 풀어놓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북한측이 내놓은 보따리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고, 그 어떤 것도 표면화되지 않았다. 미국 대표단은 2003년 4월 북경에서도 대북 강경노선을 유지했고, 6자 회담의 테이블에서도 불가침조약과 같은 실질적인 양해각서를 거절했다. 경제적 고립 : 경제적 제재가 주목을 받은 것은 비단 닿기 어려운 위치에 매달린 당근 때문만은 아니었다. 북한의 2개의 경수로 -북한 경제에 중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는 2003년까지 준비될 예정이었으나, 아직 3분의 1만이 완성되었을 뿐이다. 미국은 만약 북한이 4자 회담에 참여한다면, 1996년 북한이 아시아개발은행에 가입하는 것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이 북한의 신청을 거부했다. 2000년 말, 미국은 북한이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가입하는 것을 막는 일본쪽에 가담했고, 북한이 옵저버자격으로 IMF회견에 참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부시 정권은 경제 정책의 중심에 북한고문단(클린턴 정부의 대북개입정책에 대해서 강경한 반대론자였던 벤자민 길먼과 크리스토퍼 콕스 등으로 구성되었다.)의 권고안을 놓고 있다. 비록 도날드 럼스펠드는 시장경제가 북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지만, 워싱턴은 최근 평양의 경제 개혁을 지지하는 조치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와 동일한 선에서 국제금융기관에 대한 북한의 접근도 막고 있다. 워싱턴은 북한으로 들어가는 중고 컴퓨터를 차단하고, 또한 휴대전화 시스템을 개발하는 남북 공동출자 기업을 방해했다. 북한이 필사적으로 그들의 경제 개혁에 요구되는 자본을 융자받기 위해 대출과 투자를 필요로 할 때, 미국은 북한의 개혁지도부를 최대한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위기 동안, 워싱턴은 북한에 경제적 압력의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군사적 선택은 미국 국방성 손에 남겨져 있지만, 워싱턴은 도를 넘는 경제 제재와 압박을 통해 평양 정권을 쓰러뜨릴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워싱턴은 일본과 남한 정부로 하여금 북한에 중유 지원을 중단하도록 재촉했고, 심지어 중국에게는 북한에 대한 식량과 석유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위협을 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워싱턴의 정책은 식량 유통을 감소시키면 어떻게든 평양 정권을 압박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운영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경제학자이며 기근 전문가인 아마사 센Amartya Sen은 1999년의 이러한 전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당신은 식량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것은 고통받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다. 식량 자원의 중단이 정권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독재 정권은 식량을 지원한다고 해서 강해지지 않으며 또 그것을 중단한다고 해서 약화되지 않는다. 그들은 인구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들은 국민 -그들 자신만 아니라면- 의 희생을 정말 원한다” 식량 원조를 제한하고, 정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경제 개혁에 대한 지지를 보류함으로써, 부시 정권은 북한 당국과 똑같이 북한 국민의 희생을 희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권 교체 : 전 UN대사 진 커크패트릭의 전체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 체제는 내부로부터 개혁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니콜라스 에베르스타트같은 분석가가 주장하듯, 포용정책은 북한의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했으며 단지 필연성 -1989년 동유럽 전체에 일어났던 것과 비슷한 붕괴- 만을 연장시켰을 뿐이다. 실제로, 미국 의회의 보수주의자들과 전 주한대사 제임스 릴리같은 강경파 한국통들은 포용정책을 잘못된 정책으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잘못 탄생한 기구로 간주한다. 2000년, 미국 정보기관들은, 북한 내부에서의 반란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현재의 평양 정권이 최소한 2015년까지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의 강경파들에게 그 기간은 기다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정부내의 강경파들은 외교적 노력을 방해하기 위해 정보 누출을 활용하는 클린턴 시대의 전략을 계속 구사했다. 2003년 초 모스크바가 북핵 관련 중재를 적극 시도했을 때, 미 행정부의 누군가가, 평양에 있는 러시아대사관이 핵 모니터를 설치하여 미국의 CIA 대신 스파이 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슬쩍 흘렸다. 이 주장의 진위가 무엇이든 -러시아인들은 그 보고를 즉각 부정했다- 그 결과 러시아 협상주체들의 신뢰성은 크게 실추되었다. 또, 이들은 2003년 5월의 한미정상회담에서, 남한의 대통령 노무현의 위치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부시에게 더 많은 유리한 정보들을 제공했고, 평양의 고위급 군 망명자와 북한의 신종 ‘레이저 무기’에 대한 미 국방성의 비밀 문건을 공개했다. 현재의 위기가 터지게 되자, 정부 내 강경파들은 군사적 선택의 검토는 물론이고, 중화학 장비가 제 위치에 있는지를 일제히 점검했다. 24대의 장거리 미 폭격기는 괌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지휘 훈련의 일부로서, 미국 항공모함 칼 빈슨Carl Vinson, 6대의 F-117 나이트호크 스텔스 전투기, 그리고 이지스 전함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남한에 도착했다. 이어서 국방성은 만약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방사능 오염 없이 북한의 원자로를 파괴할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미국무성은, 국방성이 추정하는 바대로, 90일 만에 5만2천명의 미국인 사상자와 4십9만 명의 남한측 사상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북한과의 전쟁에 대해, 한반도 지역의 당사자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잊지 않고 있다. 남한은 그러한 충돌에서 결단코 많은 사상자를 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일본은 주저하고 있으며, 중국은 군사적 선택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북한 정부는 한편으론 꾹 참고 있으면서, 미국의 비타협적 태도에 문제의 모든 비난을 돌리고 쿠바의 예를 따르고 있다. 4장 포함(砲艦) 외교의 세계화 :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1990년대 초반부터 소위 ‘블루팀’이라고 하는 보수주의 성향의 분석가들은 중국을 가리켜, 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국가로 규정하면서 향후 20년 이내에 중국이 미국의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부시가 클린턴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블루팀이 기존의 레드팀을 대신하게 되었다. 블루팀이 중국을 깨부수자는 쪽이라면 레드팀은 중국을 포용하자는 쪽이었다. 레이건 행정부의 관료였던 프랭크 카프니, 워싱턴 타임즈의 빌 거츠, 아서 왈드론 교수, 국무부의 마크 라곤 등과 같은 블루팀 멤버가 부시 행정부에서 주요 정책 입안자로 포진했다. 중국에 대해 강경론적 입장을 취하는 쪽에서는 중국이 북한 정권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량파괴 무기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핵심 기술을 북한에 전수하고 있으며, 한반도 위기를 대만과 남지나해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고 본다. 반면에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측에서는 중국 또한 북한의 경제 개혁 행보가 더딘 것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 지역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저지하기 위하여 핵심 기술 이전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 성장에 초점을 두기 위하여 가능한 한 한반도 위기 문제를 해결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입장이 이처럼 상반된 데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입장에 차이가 생긴다. 즉,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적 이득을 취할 것인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경제적 이득과 안보라는 평행선은 중국과 북한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상반된 입장 차이 때문에, 경제적 파트너와 군사적 측면의 적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만큼 갈등이 첨예화된 곳은 다시없을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적 이득을 위협할 만큼 부와 노동력과 군사력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도 동아시아 지역 외에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적’에 대항하기 위하여 미국은 일본과 남한, 대만 그리고 필리핀으로부터 적당한 지원을 받아 수십 만 규모에 달하는 미군을 주둔시키고 군비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냉전상태를 고착시키고 있다. 한편, 경제적 측면에서는 좀더 정교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경제적 지원을 통해 경제 파트너로 만든 다음에는 미국의 구미에 맞게 상대국의 경제 정책 노선을 변화시키도록 종용하였다. 금융 규제 철폐, 민영화, 무역 장벽 완화, 외국 자본의 유입을 막는 거래 제한 철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개혁 시나리오는 세계화의 핵심 기구라 할 IMF나 WTO가 주도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주요 군사 및 경제 목적간에 팽팽한 긴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 군사 전략은 북한과 중국, 비국적 테러분자 등을 이용한 냉전의 고착 또는 소련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위협’의 생성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냉전을 조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세계를 단일 시장으로 만들고자 한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북한에게 무장 해제를 하는 대가로 경제적 유인책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했을 때 갖가지 불협화음이 일었던 것도 이러한 정책상의 갈등 때문이었다. 자유시장론자들은 북한의 경제 개혁을 주문한다. 냉전은 북한을 견제하는데 도움이 안 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부시 행정부는 개입론자의 주장을 묵살하고 경제적 당근을 제거하면서 군사적 견제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려고 하였다. 이런 식으로 군사력을 강조하게 되면 새로운 문제가 야기된다. 19세기에 서구 열강들은 아시아 제국에 대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목적으로 포함(砲艦)을 보낸 바 있다. 이를 ‘포함외교’라고 한다. 1966년 미국은 제너럴셔먼호를 대동강으로 보내 한국에 대해 소위 ‘포함 외교’를 시도하였다. 21세기의 포함 외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특정 경제 및 정치 구조를 채택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몇몇 국가들이 ‘포함’을 공급하고 다수 참여자들이 ‘세계화’를 수행한다는 차원에서 이를 ‘포함의 세계화’라고 부를 수 있다. 동아시아 지역 전략의 핵심은 바로 한반도다. 남북한 양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지역에서 미국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 5장 평화로 가는 길 동아시아의 미래는 희망적인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일본과 독일은 미국과 단단히 결속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결정하였고, 냉전 시대에 양국은 해당 지역의 다른 국가에 비해 놀랄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양국이 비슷한 면이 있으나 이웃 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일본과 독일이 서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서독은 열정적으로 동방 정책을 추진하였다. 동방 정책의 세 가지 주요 목적은, 동독과의 결속 강화, 동독과의 일반적 접촉 확대, 동서 유럽간의 긴장 완화를 위한 대 소련 관계 구축 등이다. 이와 더불어 서독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전면적 사과와 함께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을 실시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과 중국을 비롯하여 이웃 나라들에게 사과의 뜻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아시아 국가에 대해 경제적 원조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일본 제품의 수출과 맞물린 부분에 한해서이다. 또한 군사적 측면의 영향력 확대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일본 정부에 대해 인접국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역 화합을 위해 노력해야할 위치에 있는 일본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지역 분할 구도가 고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중국이 과거 일본에 기대했던 역할을 맡아 일본의 과오를 벌충할 기회를 찾고 있다. 중국이 WTO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고 또 ASEAN과 함께 동아시아 지역을 자유무역지대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등 일련의 조짐들은, 중국 역시 다자간 상호 자유무역주의가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일본과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다면 동아시아지역 국가들은 상호 자유무역주의적 안보 기틀을 마련하는 출발선에 서게 될 것이다. 다자간 상호 자유무역주의가 활성화되면 군사적 위협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지역을 분열시키는 수많은 갈등과 충돌을 군사력이 아니라 정치력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기류가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정책상의 변화가 아니라 힘의 본질에 있어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동아시아 지역은 바로 이러한 시스템을 원한다. 동아시아는 아시아 발전 모델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이 지역의 방대한 인적 및 기술적 자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지역 경제 시스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경제적 세계화 경향의 핵심은 자본의 흐름을 차단하는 장벽을 없애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화 정책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본 흐름의 통제 또는 환경 규제와 같이,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무역 장벽이 무엇인지 결정해야 한다. 사실상 동아시아 국가들이 세계화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이 지역의 노동력과 사업 표준을 조화시킨다면 유럽이나 미국에 버금가는 강력한 대항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 위기가 발발하자 남한은 진정한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것이 동아시아 국가들이 앞으로 따라야 할 모델인지도 모른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제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적이고 환경적으로 민감하며 사회복지 지향적이고 지역적 연계를 중시하는 지역 공동체로 거듭 났다. 이제 더 이상 서구 모델을 무작정 따라 하기만 하는 국가가 아니다. 시민사회운동가와 통일운동가 특히 한반도 재통일과 평화의 선봉장 역할을 해온 남한의 사회운동가들의 노력을 기반으로 형성된 새로운 동아시아 모델은 앞으로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선진국들도 앞 다투어 모방하고 싶어하는 새로운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특별한 제안 세계는 지금, 미국으로 하여금 국제 질서 내로 복귀하도록 종용할 새로운 견제 정책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는 냉전 시대 당시 미국이 취했던 정책이나 오늘날 동아시아 지역에 적용하고 있는 군사적 견제 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견제 정책을 의미한다. 정치적 해결 노력이 지금으로서 미약한 상태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노력이 확산되면 소인국의 평화적 힘으로 군사 대국인 걸리버의 힘을 중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소인국 남한은 독일형 결속 정책을 이용하여, 북한의 정권 교체 및 고립화 정책을 고수하기 위하여 외교적 정책을 거부한 걸리버 미국을 꼼짝 못하게 할 기회를 맞고 있다. 한반도 정책에 대한 또 다른 제안은 바로 ‘한반도 중립화’방안이다. 이는 주일 미 대사였던 마이크 맨스필드가 1960년에 주장했던 것이다. 한반도 중립화는 앞서 논의했던 ‘대타협’의 요체를 이룬다. 동아시아 비핵 지대에서 한반도가 중립화되면 다자간 상호 안보 체제의 계류점이자 동시에 이 지역 경제 구역에서 잃어버린 고리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점차 해결되고 남북한 양국은 한반도의 재통일을 위한 길로 다시 들어서려고 한다. 사실 한국민 스스로 민족의 미래에 대한 주도권을 갖게 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침략과 분단이라는 과거의 아픔 속에서도 남북한 양국은 여전히 전쟁과 분단을 극복할 기회를 잃지 않고 있다. 수십 년 간에 걸린 고통과 부당함의 역사 속에서 속절없이 쌓였던 ‘한’을 털어 낼 기회도 가지고 있다. 외부적 개입이나 변화라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역사라는 맥락에서 한국민은 아시아 중심부에 뚫려 있는 구멍을 메우면서 분할된 동아시아 지역을 새로운 경제 및 정치의 중심지로 만들 능력이 있다.
15
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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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바람에서 길을 찾다
몽골바람에서 길을 찾다 한성호 지음 멘토프레스 / 2009년 5월 / 255쪽 / 14,000원 ▣ 저자 한성호 경북 영천 출생으로,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있는 여행사에 취직했다. 2001년 네팔의 히말라야 고봉인…
몽골바람에서 길을 찾다 한성호 지음 멘토프레스 / 2009년 5월 / 255쪽 / 14,000원 ▣ 저자 한성호 경북 영천 출생으로,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있는 여행사에 취직했다. 2001년 네팔의 히말라야 고봉인 안나푸르나에 올랐고, 인도로 내려가 그곳에서 1년간 보고 느낀 것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한국으로 귀국 후 여행 사업을 시작하려 했으나, 이때 “너는 배고픈 화가의 심정으로 그림을 팔아라!”라는 어느 도인의 말이 떠올랐고, 그러던 차, 평소 친분(?)이 있던 이와 인연이 닿아 현지 매니저 격으로 몽골이라는 나라로 갔다. 몽골이라는 말에 앞뒤 재지 않고 갔으나 역시 사람 모여 사는 곳은 매한가지였고, 다시 조직에서 이탈했다. 몽골을 떠나려고 하던 차에 어느 초원에서 진짜(?) 유목민에 매료된 후 정착을 결심했다. 현재 몽골에서 ‘삼장’이란 닉네임으로 알려져 있으며, 울란바타르 에르뎀 어윤 대학에서 ‘한국관광학’을 가르치며 틈틈이 몽골 고원에 나가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저자가 7년간 몽골에 머물면서 틈틈이 기록한 몽골 유목민에 대한 살아 있는 기록인데, 참고로 저자는 2002년부터 몽골에 머물면서 7년간 한반도의 7.8배인 몽골의 21개 아이막(도청소재지) 중 19개 아이막을 도보, 자전거, 자동차, 항공편으로 여행한 사람이다. 구체적으로는 울란바타르에서 푸르공을 타고 ‘신의 호수’ 흡스골로 향하는 길, 고비 사막(600km)과 항가이 산맥(800km)을 자전거로 여행한 내용이 골격을 이루고 있다. 흔히 ‘유목민은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자유로운 자’로 알고 있지만, 옆에서 유목민을 지켜보며 저자는 그들이 결코 낭만적인 유목생활을 즐기는 것은 아니며, 오로지 초원의 생존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야생의 삶 - 영하 오, 육십 도의 살인적 추위를 태풍의 눈처럼 견뎌내고, 비 오기 전 비의 냄새를 맡고, 바람의 기척을 먼저 느끼며 멀리서 풀을 뜯고 있는 가축들의 생리조차 감지하는 유목민들의 삶 - 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책은 직접 몽골 현지에 살면서 보고, 듣고, 체감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는 봄과 가을, 초지를 따라 가축을 몰고 이동하는 유목민의 삶을 통해, 고여 있지 않고 늘 떠나는 유목민의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머무는 곳, 그곳이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지점임을 조용히 일깨워주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1부 ‘푸르공’을 타고 몽골바람을 가르다 - 흡스골 가는 길 공중에 뜬 신의 호수, ‘흡스골’을 향하여 ‘푸른 공허’ 푸르공을 타고 야생의 자연에 들어서다 타미르 강을 지나며… 몽골에는 나무가 없다? 바람소리에 길을 묻다 이방인에게 아침상을 건네주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종족? “흐르지 않고 멈추는 순간 썩어버린다” 내 어린 시절 추억의 연탄길을 더듬다 - 푸르공은 지금 ‘죽어버린 화산’ 호르고를 오르는 중 말의 구슬픈 영혼 - 어워 꼭대기에 있는 말머리와 마두금 하얀 호수 ‘차강노르’에서 노루와 땅다람쥐를 만나다 몽골 대륙의 바다 ‘흡스골’로 가려면 - “이 밤 몽골의 지붕 항가이 산맥을 넘어야 한다!” 강에 뿌리를 내린 ‘나무다리’ 영하 40도 추위 속에서 치르는 가혹하고도 아름다운 ‘성인식’ 바이칼로 이어지는 물의 탯줄 ‘흡스골 호수’를 굽어본 하루 2부 ‘자아 찾기’를 위한 첫 자전거 여행 - 고비 사막을 건너다 적막한 초원 속에서 바퀴가 가르쳐 주는 경건한 슬픔과 아름다움 울란바타르에서 고비 사막까지는 600킬로미터 - 자전거 여행길에 오르던, 어느 새벽에 대한 회상 고원 한가운데서 길을 잃다 - “어둠이 내리기 전, 게르를 찾아야 한다” 똥 위에서 뒹구는 아이, 하늘과 대화를 나누는 달빛 소년 독수리를 바라보며 ‘샤잉산드’ 추억으로 달려가다 마유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로 귀향하는 유목민들 275킬로미터를 건너 도착한 만달고비 - 여인숙 같은 호텔에서 추석을 맞다 고비 사막이 그려 있는 노인의 초상 - 할아버지의 ‘후미’ 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다 가장 소년의 지혜로 다시 페달을 밟다 “40시간이 넘도록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 돌아갈 것인가? 멈출 것인가? 갈 것인가? 달란자가드 어느 한 호텔에서 차가운 새벽을 맞다 3부 몽골바람을 내 품 안으로 두 번째 자전거 여행 - 항가이 산맥을 향하여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거라!” - 엉덩이에 낙인을 찍는 말의 낙인식 ‘흐근올’ 형님 집에서 ‘게르’ 짓던 날 - ‘하늘의 불’인 난로의 위치부터 정하라! 극심한 추위 속, 밀폐된 공간에서 버너에 불을 당기다 - 꿈의 수면으로 마현산 봄꽃들이 떠다니던 밤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 한국을 그리워하는 유목민과의 만남 야영할 만한 곳을 가르쳐주는 ‘바얀토고’ - 산둔덕 언저리, 양지 바른 땅에 텐트를 치다 에필로그 ‘흡스골 가는 길’ 지역 안내 길잡이 ‘고비 사막’ 단독 자전거 여행 시, 주의사항 및 준비물 몽골바람에서 길을 찾다 한성호 지음 멘토프레스 / 2009년 5월 / 255쪽 / 14,000원 1부 ‘푸르공’을 타고 몽골바람을 가르다 - 흡스골 가는 길 공중에 뜬 신의 호수, ‘흡스골’을 향하여 몽골이란 나라의 최대 도시인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는 나는 새벽의 어둠에 잠긴 아파트에서 연기처럼 흘러나와 몽골의 광활한 벌판을 향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풍경들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해발 1,800미터의 높은 대지에 스며 있다는 광활한 몽골인들의 바다를 만나러 간다. 사실은 호수이나 몽골인들에겐 신의 바다인 흡스골까지는 1,004킬로미터를 가야 한다. 울란바타르에서 흡스골로 가는 길은 초원지대를 지나 울퉁불퉁한 현무암들로 뒤덮인 화산지대와 항가이 산을 넘어서 가는 대장정의 길인데, 그 길은 문명의 번잡한 욕심들과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야생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오래 길을 달리면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푸르공은 가는 길 내내 덜컹거리며 숨을 헐떡였는데, 러시아제 승합차인 이 오래된 자동차는, 오래된 수명만큼이나 강하고 끈질긴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몽골의 벌판에서 이 푸르공만큼 궁합이 잘 맞는 차도 드물다. 나는 처음 이 차의 이름을 들었을 때 몽골의 아름다운 공허와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푸른 공허, 푸르공. 몽골의 광활한 초원으로 들어서면 문명의 상징인 차들마저도 초원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모두가 울퉁불퉁 흔들리며 먼지바람을 뚫고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길을 묵묵히 달려야 한다. ‘푸른 공허’ 푸르공을 타고 야생의 자연에 들어서다 울란바타르에서 450여 킬로를 달려 타미르 강이 흐르는 쳉헤르 솜에 도착하였는데, 울란바타르를 벗어나 중앙몽골로 내려오는 길에선 나무를 보기가 힘들었다. 만약 이 허허벌판 몽골의 스텝 지대에 나무가 많았다면 아마도 유목민들은 유목으로 살아가지 않았을 터이다. 나무들이 많이 자란다는 건 일조량과 강수량이 풍부하다는 뜻이고 빛과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 어렵게 유목을 하며 살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몽골에 오래 머물러 끊임없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건 대륙의 바람이다. 참고로 몽골 대륙은 건조하고 습도가 낮으며 계절의 한서차가 큰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 지대에 속한다. 멀고 먼 해양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은 대개 광활한 대륙을 건너오는 동안 다 말라비틀어져 버린다. 그래서 몽골로 날아오는 바람들은 대개 차고 건조하고, 물기 없는 바람이 모래를 들고 일어서면 그건 곧바로 황사가 되고, 이번엔 그 황사를 실은 바람이 또 까마득한 대륙을 넘어 한반도까지 밀려온다. 항가이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타미르 강은 차가운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는데, 푸석푸석한 물줄기로 간신히 흐르는 몽골의 여느 강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울창하게 자란 수목들이 타미르 강의 깊은 물줄기를 따라 남서쪽으로 펼쳐져 있고 두루미들이 차가운 강물에 발목을 담그고 어두워지는 수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편 쳉헤르 솜은 항가이 산맥에서 흘러나온 두 개의 강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데, 강 주변엔 겨울을 나기 위해 모여든 게르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먼 길을 달려온 운전기사와 나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나고 내일 아침 길을 떠나기로 하고, 밤이면 마을로 내려오는 늑대들을 우려해 근처에 있는 게르(유목민들의 이동 가옥)에 찾아가 허락을 받은 뒤 그 옆에 텐트를 쳤다. 게르의 젊은 안주인은 유목민답게 이방인의 방문에도 전혀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가도가도 끝없는 광야일 뿐 인적이 드문 몽골에서는 늘 길을 떠나는 일이 고되고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언제든지 손님이 찾아오면 극진히 대접하고 그들의 길에 무사와 안녕을 빌어준다. 그리고 그들 또한 길을 떠날 때 다른 게르로부터 따뜻한 대접을 받으며 낯선 길의 위안을 얻는다. 게르로 들어간 안주인은 따뜻한 수태차를 끓여와 손수 건네주었다. 가을 밤바람이 차서 움츠러든 몸에 흘러드는 수태차는 뜨겁고 혼곤했다. 나는 잠들기 위해 침낭 속에 몸을 파묻었다. 바닥은 얼음장 같았다. 내 어린 시절 추억의 연탄길을 더듬다 - 푸르공은 지금 ‘죽어버린 화산’ 호르고를 오르는 중 중앙몽골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항가이 산맥이 버티고 있다. 항가이 산맥의 평균 해발은 보통 3,000미터가 넘고 평탄한 고원 분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산맥이 중앙몽골로 흘러가는 기슭에는, 다시 말하자면 항가이 산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몇천 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기괴한 현무암들이 널려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현무암 지대는 체체를렉이란 도시에서 자르갈린트 솜으로 가는 길에서 볼 수 있는데, 그곳엔 8,000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말라붙어 버린 거대한 분화구가 있다. 호르고 사화산이다. 타미르 강변을 벗어나 거칠고 거친 모래 파도를 넘어온 푸르공은 지금 사화산을 향해 달리고 있다. 푸르공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끝내 산을 올라갔다. 운전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오른쪽은 절벽 아래로 속절없이 황량해서 눈부신 협곡이 흐르고 있었다. 화산지대는 이런 것인가. 느닷없이 녹색 나무들이 나타나고 검은 석탄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길이 울퉁불퉁 흐르며 그러다가 산등성이에 간신히 자라난 숲 속을 뛰어가는 노루떼가 보이기도 했다. 호르고 사화산을 올라가는 길엔 제주도의 돌하루방처럼 생긴 바위들도 볼 수 있다. 수천 년간 바람에 깎이는 동안 얼굴이 사라져 버린 바위들. 그래서 사실 돌하루방을 닮았다기보다는 돌하루방의 서글픈 그림자를 닮았다. 이목구비가 지워져 버린 바위들의 얼굴들. 바람이 그곳에서 숭숭 구멍을 뚫으며 놀고 있다. 산을 올라갈수록 길은 여전히 시커먼 연탄을 깔아놓은 것처럼 검고 푸석하다. 어린 시절 난 달동네로 올라가는 골목길에서 연탄을 가지고 놀았다. 연탄으로 눈사람도 만들었고 연탄을 깨면서 쌈박질도 했다. 지금 푸르공은 그때 검은 연탄들로 만들어진 시커먼 연탄길을 오르고 있다. 말의 구슬픈 영혼 - 어워 꼭대기에 있는 말머리와 마두금 산 정상은 생각보다 높았다. 차량으로 오를 수 없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올라 가면서 나는 조금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바로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8,000년 전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온 용암이 흘러내렸던 길이다. 거대한 분화구 둘레에 굳어버린 용암은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높이가 무려 2, 30미터에 달한다. 한편 호르고 화산을 내려가는 길 한쪽에 제법 큰 어워(원초적 신앙이 깃들어 있는 돌탑)가 쌓여 있었는데, 그 꼭대기엔 나무 기둥이 박혀 있고 그 위에 말머리 하나가 걸려 있었다. 유목민들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말이 죽으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와 그곳에 말의 머리를 달아준다. 그리고 제사를 올려 말의 구슬픈 영혼을 위로하는데, 그들에게 말은 가족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유목민들에게 자신의 등허리를 빌려주고, 고기와 우유를 주기도 하며, 외로운 초원생활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몽골 유목민들은 죽은 말의 꼬리털을 모아 두 개의 현을 잣는다. 그리고 나무를 정성스레 깎아 말의 머리와 울림통을 만든다. 이것이 그 유명한 머링후르, 즉 마두금(馬頭琴)이란 악기이다. 아무튼 말은 유목민들에게 축생이 아닌 것이다. 몽골 대륙의 바다 ‘흡스골’로 가려면 - “이 밤 몽골의 지붕 항가이 산맥을 넘어야 한다!” 푸르공은 숨을 헐떡이며 산을 넘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차례 항가이 산맥을 넘었지만 밤에 항가이 산맥을 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음날 적어도 오후까지 흡스골에 도착하기 위해선 오늘 밤을 넘겨서는 안 되었다. 운전기사는 잔뜩 긴장한 채 바닥만을 보고 달렸다. 일생을 몽골의 산과 들을 달려온 그도 밤에 항가이 산을 넘는 것은 어렵고 무서운 일인 듯했다. 기이하게도 산을 내려오자 길이 없어졌다. 운전기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당황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천막을 치기 위해 짐을 꺼내고 있는데 갑자기 운전기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서 차에 타라고 외쳤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밝히자 검은 윤곽의 물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헤드라이트를 보고도 짖지 않는 걸로 보아 늑대로 보였다. 늑대는 아주 위험한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생존에 위협을 주지 않는 이상 녀석들이 먼저 사람을 헤치는 일은 드물다. 늑대는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보다 더 사람을 무서워한다. 동물 중에 유일하게 같은 종을 대량 학살하는 존재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정작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나는 늑대들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녀석들은 기계 동물 푸르공의 괴기한 울음소리와 번쩍이는 눈빛에 놀랐는지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길 없는 길을 찾아내며 푸르공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한 십분 정도 달리니 저편 어둠 속에서 가물거리는 캠프의 불빛이 보였다. 10월 말이 지났음에도 아직 철수하지 않은 캠프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여름철 몽골 대륙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캠프 리조트는 몽골인들의 집 게르를 이용해 만든 여행자 숙소인데,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5월 말에서 8월 말까지 캠프를 치고 가을이 오면 철수를 한다. 바이칼로 이어지는 물의 탯줄 ‘흡스골 호수’를 굽어본 하루 캠프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바로 출발을 했다. 머나먼 길을 달려 푸르공은 드디어 흡스골 호수에 닿았다. 나는 호수 가까운 곳에 여장을 풀었다. 흡스골 호수는 푸른 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만큼 물이 푸르고 그 물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들이 산다. 호수는 너무나 커서 제주도가 통째로 잠길 정도의 면적을 지니고 있다. 아흔여섯 개의 강이 굽이굽이 흘러 들어와 해발 1,600미터의 고원에 거대한 우물을 만든 것이다. 이 깊은 우물은 다시 에길골이라는 강을 통해 북쪽 러시아 바이칼 호수로 흘러 들어간다. 몽골 사람들은 흡스골 호수를 신의 바다라고 부른다. 바다가 없는 몽골 대륙에서 흡스골은 가장 신성한 바다이자 자연의 모든 생명이 잉태되는 원시의 바다이다. 호수는 11월에 결빙을 시작하고 이듬해 6월에 얼음이 풀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수로 나가 찬 수면에 얼굴을 묻고 세수를 했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타이가 숲은 태고적 원시의 순결함으로 또다시 태어나는 아침을 맞고 있었다. 나는 작은 오두막 숙소에서 커피와 빵으로 간단한 아침을 때우고, 호수의 서쪽으로 낮게 구릉지어 가는 언덕을 구경하러 길을 떠났다. 산언덕에는 가을 단풍이 물들어 산 아래 초지로 내려오고 있었고, 산이 내려오고 들판이 끝나는 곳에 넓은 습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새들의 날갯짓과 울음소리에 젖는 물가의 오후는 아름다웠다. 몽골인들의 신성한 바다 흡스골로 흘러드는 작은 냇가에서 나는 경건하고 아름다운 동물들의 생태계를 바라보며 그렇게 종일 앉아 있다 오두막 숙소로 돌아왔다. 2부 ‘자아 찾기’를 위한 첫 자전거 여행 - 고비 사막을 건너다 적막한 초원 속에서 바퀴가 가르쳐 주는 경건한 슬픔과 아름다움 지난 2년간 나는 두 번에 걸쳐 자전거를 끌고 울란바타르를 벗어났다. 한번은 고비였고, 한번은 항가이 산맥이었다. 이렇게 눈이 내릴 때면 나는 베란다에서 깊은 겨울잠에 든 자전거를 본다. 가만히 자전거 핸들에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주마등처럼 고비와 항가이 산맥이 스쳐 지나간다. 그 모든 것들이 꿈결처럼 내 곁에 있다. 어느새, 나의 기억은 2007년 9월 중순 고비 사막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페달을 밟은 지 5시간도 되지 않아 무릎이 다시 퉁퉁 부어올랐다.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재발한 것이다. 울란바타르를 출발한 지 3일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자전거는 이제 겨우 50킬로미터를 지나고 있었다. 밤새 텐트 안에서 떨고 난 나는 오늘은 어떻게든지 게르를 만나야 했다. 며칠째 음식은 고사하고 물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했다. 가도가도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장애물 하나 없는 기이한 미로 속에 갇힌 듯 현기증이 느껴지곤 했다. 혹 길 위에서 차를 만나 얻어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요행을 바랐으나, 달리고 또 달려도 차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울란바타르에서 고비 사막까지는 600킬로미터 - 자전거 여행길에 오르던, 어느 새벽에 대한 회상 어둠이 내리기 직전, 눈앞에 마을이 나타났다. 검은 모래바람이 뒤덮고 있는 마을은 마치 공포영화 속에 버려진 마을처럼 음울했다. 텅 빈집을 몇 채 지나고 나자 창가에 어른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허름한 식당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술잔을 기울이던 남자 두 명이 나에게 맥주를 권했다. 시원한 맥주를 고맙게 받아 마신 내게 그들은 울란바타르로 간다면 태워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울란바타르! 순간 그렇게 힘겹게 떠나온 그 도시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밀려오는 걸 꾹 참았다. 마음속 세계 지도를 찾아 훌쩍 한국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났고, 울란바타르라는 이국의 도시에서 7년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3년을 떠돌다 정착한 몽골은 처음에 내게 큰 위안을 주었고 울란바타르에서 만난 아내와의 신혼생활은 나를 희망에 부풀게 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으나 최선을 다하는 일이 곧 이해하는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우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을 받아야 하는지를 몰랐다. 힘겨운 나날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갔고 가슴속에선 더욱더 알 수 없는 바람이 요동쳤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공항으로 달려갔다. 한국으로 건너가 자전거를 사오기 위해서였다. 나는 비행기에 오르면서도, 한국에 내리면서도, 자전거를 구입하면서도 온통 자전거를 끌고 사막으로 달려가는 생각만 했다. 그것만이 오직 내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길이라 믿었다. 그러나 나는 자전거를 몽골에 갖다놓고도 출발을 하지 못했다. 울란바타르에서 고비 사막의 달란자가드까지는 무려 600킬로미터가 넘는 여정이다. 가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굶어 죽거나 목말라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수많은 망설임 끝에 어느 날 새벽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고원 한가운데서 길을 잃다 - “어둠이 내리기 전, 게르를 찾아야 한다” 다음 날 다시 출발했다. 나는 점점 고비의 가운데로 들어서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은 점점 풀들이 말라가는 스텝 사막의 황폐함을 드러냈다. 다른 날과 달리 길 상태가 좋아 자전거에 달린 속도계가 계속해서 올라갔다. 자전거에 올라타고 처음으로 속도감을 맛본 나는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평선 한가운데 생뚱맞게 서 있는 이정표를 만나면서 정신을 차렸다. 바람에 몸통이 돌아간 이정표에는 두 갈래의 길이 적혀 있었는데, 아무리 방향이 바뀐 이정표라 하더라도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GPS에 나온 만달고비(몽골 중부에 있는 도시)의 방향은 어느 길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길을 잘못 들었고, 천신만고 끝에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기 직전, 게르를 발견했다. 마유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로 귀향하는 유목민들 게르로 다가가자 젊은 유목민이 나와서는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게르에 들어서자 게르 안에는 갓난아기부터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모여 있었다. 그 중 큰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내게 자리를 권했다. 가장으로 보이는 어른이 음식을 내게 건네주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음식을 먹어치우자 이번엔 대접 한 가득 마유주를 내왔다. 마유주는 몽골어로 아이락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이름에 술 주(酒) 자가 들어가지만 몽골 사람들은 마유주를 술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마유주는 말 그대로 말의 젖을 오래 발효시켜 만든 음료다. 그들은 말의 젖을 가죽부대에 담아 오래 젓고 저으며 긴긴 여름 낮을 보내곤 하는데, 말의 우유를 오래 저으면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는 소리가 나고, 먼 길을 떠나온 유목민들이나 초원을 떠나 사는 도시민들은 그 소리를 기억하며 고향을 떠올리기도 한다. 한편 게르에 사는 가족 중 막내아들의 이름은 ‘바타르’였는데, 바타르는 호리호리한 몸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녔지만 단 몇 시간만에 그가 정이 많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텐트를 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타르의 아버지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텐트에서 못 잔다며 새 이불까지 꺼내 자리를 펴주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나는 한순간에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나는 바타르 아내가 차려준 아침식사를 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목이 부어올라 아침식사를 제대로 못한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바타르가 아내를 시켜 고기와 빵을 가득 담아주었다. 나도 뭔가를 주고 싶어서 볼펜 몇 자루와 사탕을 바타르의 손에 쥐어주었더니, 그는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자신의 주머니에서 칭기즈칸의 초상화가 그려진 낡은 열쇠고리를 꺼내 주었다. 나는 바타르와 가족들에게 내년에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했고, 내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그들은 손을 흔들어주었다. 275킬로미터를 건너 도착한 만달고비 - 여인숙 같은 호텔에서 추석을 맞다 날이 갈수록 어쩔 수 없이 체력의 한계는 떨어져 갔지만, 만달고비까지는 비교적 쉽게 올 수 있었다. 275킬로미터라는 막연한 숫자를 건너 나는 드디어 만달고비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낡은 시멘트 건물들로 뒤덮인 도시는 사막보다 더 황량해 보였다.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는데, 말이 호텔이지 거의 우리나라 70년대 여인숙과 다를 바 없었다. 응접실의 큰 문을 열자 차가운 달빛을 받고 있는 만달고비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졌다. 떠오른 달빛을 보고서 나는 오늘이 추석인 걸 알았다. “40시간이 넘도록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 돌아갈 것인가? 멈출 것인가? 갈 것인가? 도시가 주는 편리함에 잠시 흔들렸지만 나는 과감히 만달고비를 벗어났다. 자전거는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초원을 달려나갔다. 그런데 길에 대한 욕심이 화를 부르고 말았다. 무모하게 GPS가 가리키는 직선방향으로 방향을 튼 게 잘못이었다. 단단했던 땅이 모래땅으로 바뀌고, 해가 떨어질 때 즈음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때는 한참이나 늦은 뒤였다.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생명의 흔적이라곤 볼 수가 없었다. 체력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면서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울란바타르 기점 350킬로미터 지점에서 나는 이번 여행길에서 가장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텐트를 치고 안으로 들어와서 노트북을 꺼내 GPS와 연결한 뒤, 현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확실히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선 가지고 있는 식량과 물을 확인해보았다. 물 1.5리터 한 병, 초코파이 다섯 개, 유목민으로부터 얻은 아롤(유목민들이 고기와 함께 즐겨 먹는 말린 유제품) 한 봉지가 전부였다. 텐트를 뒤흔들어 대던 바람이 잠깐 숨을 돌릴 때면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꼭 무언가 밖에서 내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오른손에 칼을 움켜쥐곤 했다. 그런 공포의 밤은 한시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이 되었다. 일단 GPS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죽을힘을 다해 갔다. 하룻밤 쉬었지만 체력은 여전히 바닥이었다. 모래바람이 수시로 덮쳐와 시야거리가 3미터도 채 되지 않았으나, 몸은 고집스럽게 마을을 향해 한 발 한 발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암흑 속으로 잠겨버린 밤, 나는 노트북을 켜서 위치를 확인했다. 그러곤 어제보다는 좀 더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40시간이 넘도록 이렇게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이젠 정말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무의식과 의식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날 수 없다는 생각에 몸부림을 치며 자전거를 끌었지만 너무나 아득하고 절망적으로 텅 비어 있는 지평선은 바라만 봐도 구토가 치밀어 오르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길을 떠날 때 나의 눈을 바라보던 딸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고, 나는 지금 이 절대 공간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고개를 들 힘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 지평선 끝에서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게르가 보였다. 죽을힘을 다해 게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나를 게르에서 쉬게 해 준 유목민 남자가 깊은 잠에서 깬 나에게 수태차를 마시게 했을 때도 나의 의식은 반쯤만 살아 있었다. 그 후에도 나는 또다시 위험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 울란바타르에서 450킬로미터 지점이었다. 물을 잘못 마셨는지 심한 설사로 인해 거의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끊어질 듯 한 복통은 계속해서 허리를 구부리게 만들었다. 그때도 나를 살려준 이는 고비에서 낙타를 기르며 사는 한 유목민 남자였다. 그는 내가 기운을 차리는 며칠 동안 묵묵히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달란자가드 어느 한 호텔에서 차가운 새벽을 맞다 으믄고비의 주도인 달란자가드는 인근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인 홍고르엘스나 바얀자그로 가는 중계도시인데, 이틀 동안 모진 바람을 뚫고 온 나는 빨리 몸을 누이고 싶어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호텔을 찾아 들어갔고, 나는 창가에 걸터앉아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했다. 차로는 20시간, 비행기로는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이 거리를 나는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들여 도착했다. 분명 여기까지만 온다면 뭔가 대단한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변한 것이라곤 새까맣게 타버린 얼굴뿐이었다. 다시 울란바타르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다음날 새벽 호텔을 나서는 순간 나는 고비가 그리웠다. 가슴 저미게 했던 석양과 별, 지겹도록 휘몰아치던 그 바람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 속에 머물러왔던 내가 그리웠다. 고비는 그렇게 하룻밤 새에 그리워해야 할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3부 몽골바람을 내 품안으로 두 번째 자전거 여행 - 항가이 산맥을 향하여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거라!” - 엉덩이에 낙인을 찍는 말의 낙인식 초원의 아침은 게르 연통에서 피어나는 한줄기 연기로 시작된다. 추위에 몸을 오들오들 떨다가 텐트 창문을 내려 바라보는 연기는 아름다웠고 따뜻해 보였다. 손에 따뜻한 수태차를 들고 텐트로 온 할머니의 인자한 눈빛은 게르 연통에서 흘러나온 연기처럼 따뜻해 보였다. 밤새 텐트에서 얼은 몸을 풀고 떠날 채비를 하려는데 할머니가 와서 오늘 저녁 말들에게 낙인을 찍는 행사가 있으니 하룻밤 더 머물다 가라고 권했다. 낙인행사는 말들의 성인식이자 자신의 가축임을 알리는 선포식과 같은 것인데,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낙인행사는 꼭 한번 보고 싶었기에 하루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 저녁이 되어 낙인행사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었다. 망아지들은 성인식의 고통을 앞두고 난리법석을 피우고 유목민들은 그런 망아지들을 잡느라 한바탕 난리를 피운다. 성인식에 참가하기 위해서 망아지들은 한두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그들은 말이 아니라 아직 망아지인 것이다. 유목민들은 말이 되는 망아지들에게 아무런 탈 없이 잘 자라고 초원을 마음껏 뛰어 다니는 어른 말이 되라는 의미에서 말의 엉덩이에 뜨거운 인두를 지진다. 일종의 액땜이자 통과의례이다. 망아지들은 뜨거운 인두가 엉덩이를 파고드는 고통을 참는 동안 인간의 세계에서 말로 성장한다. 망아지에게 낙인을 찍기 위해서 사람들은 우선 흥분할 수 있는 어미 말과 망아지를 떼어놓았다. 이때 망아지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서 사람들은 진땀을 뺐다. 큰아들이 불에 달군 인두를 들고 망아지 몰래 한 발 한 발 접근하여 단숨에 망아지 엉덩이에 인두를 지졌다. 망아지는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고 사람들은 그런 망아지를 붙잡고 있느라 진땀을 뺐다. 그 와중에 다른 한편에서는 엉덩이에 인두가 닿기 전 냅다 도망친 망아지를 붙잡느라 사람들이 뛰어다녔다. 한바탕의 전쟁 같은 낙인행사가 끝나고 초원에는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아낙네들은 술을 준비하고 남자들은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본격적으로 술판이 벌어지기 전 남자들은 낙인에 사용되었던 인두를 마유주에 푹 적셔 손과 머리에 발랐다. 이는 성인이 된 망아지와 하나가 되었다는 뜻으로 귀신이 말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도록 말의 무탈을 비는 의식이다. 사람들은 아낙네들이 내온 마유주를 마시며 낙인행사의 뒤풀이를 즐겼고, 그날은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얼큰하게 취해 잠이 들었다. ‘흐근올’ 형님 집에서 ‘게르’ 짓던 날 - ‘하늘의 불’인 난로의 위치부터 정하라! 차들이 마구 달리는 도로를 버리고 초원으로 들어섰다. 새벽 기온이 급작스레 영하 20도로 떨어진데다 드물게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늦은 아침까지 몸을 떨어야 했다. 몽골의 추위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추위이다. 페달에 힘을 줄수록 4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유목민 형님을 만날 생각에 즐거웠다. 흐근올이라는 산이 나타나자 몇몇의 게르가 눈에 들어왔다. 일 년 만에 보는 형님의 얼굴에는 여전히 건강한 웃음이 가득했다. 형님은 나에게 먹이기 위해 신선한 마유주를 한 통 가득 담아왔고, 형수님은 배고픈 나를 위해 음식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을 잔치를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음식에 몇 번이나 손사래를 쳤지만, 형님과 형수님은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했다. 간만에 깊은 잠을 잤다. 형님이 살고 있는 흐근올은 올 적마다 고향땅을 찾는 것처럼 포근했다. 오늘은 형님의 처남이 돈을 모아 게르를 사서 분가하는 날이란다. 해가 지평선 자락에 얼굴을 내밀 때 즈음 트럭 한 대가 다가왔다. 그 트럭엔 처남이 3년 동안 고생해서 산 게르와 살림도구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이웃 유목민들이 오토바이와 말을 타고 오자 본격적으로 게르 짓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형님이 해가 잘 비치는 남향으로 게르 터를 잡고 나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바간(기둥)을 세우고 토노(천창)를 올렸다. 그리고 우산을 펴듯 서까래들을 둥글게 펼쳐 토노 구멍에 각각 끼워 넣었다. 그런 후 조립식 나무벽을 펴서 서까래를 받치고 두꺼운 양털 펠트로 게르 골조를 덮었다. 남자들은 넓은 흰 천막을 가져와 포장하듯 게르를 덮고 남향으로 열린 공간에 정문을 달았다. 한편 집 안의 중심이 될 난로를 게르 중앙에 설치하는 모습은 경건해 보였다. 난로는 유목민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살림 중 하나인데, 실용적인 측면에서 취사와 난방을 담당하며, 상징적으로는 연통을 통해 하늘이 내려오는 통로이자 하늘의 불이 머무는 둥근 방이다. 게르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초원에 어둠이 내리자 사람들이 어둠을 뚫고 하나 둘씩 게르로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집들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몇 시간이나 말을 타고 온 유목민도 있었고, 울란바타르에서 차를 몰고 온 이들도 있었다. 대단한 집들이가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술잔이 돌기 전에 이미 인사불성이 된 이가 있는가 하면, 아예 델(몽골 전통옷)을 허리까지 벗고 쉬지 않고 술을 들이키는 이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손님들이 쉴 새 없이 게르로 들어오는 통에 좁은 게르 안은 금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사람들의 입에선 흥얼흥얼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몽골의 음주문화를 가만히 살펴보면 술을 권하는 모습이라든가, 취기가 오르면 노래를 부르는 것, 술에 취해 저지르는 실수는 너그러이 봐준다는 점 등 우리네 음주문화와 많이 유사하다는 걸 느낀다. 한편 초원에서 게르를 가진다는 것은 한 가족의 독립을 알림과 동시에 가족사의 첫 장을 여는 선포식과 같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겐 집들이가 축제인 것이다. 집들이를 위해 주인은 집안 살림이 휘청일 정도로 음식을 준비하는데 한 달 가까이 축하객을 맞이한다. 주인은 일면식 하나 없는 이에게도 먹을 것을 제공하며 그가 원하는 날만큼 머물도록 한다. 그런 문화 가운데 그들이 가장 성대하게 치르는 축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1206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나담축제이다. 야영할 만한 곳을 가르쳐주는 ‘바얀토고’ - 산둔덕 언저리, 양지 바른 땅에 텐트를 치다 울란바타르에서 460킬로미터 떨어진 아르와 헤르 도시를 벗어나자 다시 길은 여러 갈래로 펼쳐져 있었다. 항가이 산맥 깊숙이 들어서면서 길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몇 시간째 자전거에 올라타지도 못하고 봉우리들을 넘어야 했다. 얼마를 더 갔을까,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저만치 떨어져 있는 게르가 보였다. 젊은 유목민 남자가 뒷짐을 지고 다가왔다. 가늘게 뜬 그의 눈에 순진한 호기심이 몽글거렸다. 그는 어슬렁어슬렁 다가와 자전거에서 짐을 내리는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그에게 몽골어로 인사를 건넸다. 수태차를 마시며 서로 인사를 나누는 동안 어떻게 알았는지 주변에서 일가친척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국 사람을 처음 본다고 했다. 텐트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나는 수태차를 가지고 온 바얀토고(전날 인사한 젊은 유목민 남자)에게 일주일간 산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바얀토고는 산이 보기보다 험한데다 늑대가 많아 안 된다고 강하게 손을 내저었다. 며칠째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결국 산에 오르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바얀토고는 나를 따라 산에 올라 야영할 만한 곳을 가르쳐 주고는 내려갔다. 그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밤이 되자 기온은 점점 내려가서 텐트 바닥으로 추위가 스멀스멀 기어 다녔다. 잠이 들려던 찰나, 가까운 곳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직감적으로 텐트 밖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후다닥 일어나 칼을 쥐었다. 나는 야생짐승들이 불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울란바타르에서 폭죽을 한 다발 샀었다. 폭죽에 불을 붙이고 지퍼 문을 열어젖혔다. 폭죽에 불이 확 타오르면서 사방이 일시에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그 찰나 나는 분명히 어둠 속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푸르스름한 두 개의 눈동자를 보았다. 텐트에서 코펠 뚜껑을 꺼내 마구 두들기면서 연달아 폭죽을 터트렸다. 그 수많은 불꽃들이 명멸하는 사이 두툼한 꼬리가 멀어지며 어둠 속으로 잠겨갔다. 산에 있는 동안 바얀토고가 찾아왔다. 바얀토고는 밤중에 산길을 올라오기도 힘들었을 텐데 마대자루 가득 아르갈(동물의 분뇨를 말린 유목민들의 연료)까지 담아왔다. 아르갈이 떨어졌을까봐 가져온 바얀토고의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텐트에 눕자 몸속에 들어 있는 외로움이 다시 느껴졌다. 나는 밖으로 나가 자전거 핸들에 달린 거울을 떼어왔다. 거울 깊은 수면 아래로 내가 지나왔던 길들의 풍경과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수면 위로 보이는 낯선 이의 얼굴 하나가 보였다. 선글라스를 꼈던 자리를 제외하곤 새까맣게 탄 얼굴, 도시에선 보지 못했던 눈빛, 바로 나였다. 나는 이런 나 자신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떠나왔는지도 모른다. 아르갈 불빛이 사위고 새벽에 추위가 찾아왔다. 자전거 거울 속에 있던 북극성도 사라졌다. 그리고 거울 속 어딘가에서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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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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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누르하치
글로벌 CEO 누르하치 - 중국을 M&A한 오랑캐式 경영전략 - 전경일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 2005년 7월 / 160쪽 / 5,000원 ▣ 저자 전경일 1964년에 태어나 우리 나이로 마흔두 살이다. 대학을 다닐 때에는 문학을 공부하였고, 서른 무렵엔 …
글로벌 CEO 누르하치 - 중국을 M&A한 오랑캐式 경영전략 - 전경일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 2005년 7월 / 160쪽 / 5,000원 ▣ 저자 전경일 1964년에 태어나 우리 나이로 마흔두 살이다. 대학을 다닐 때에는 문학을 공부하였고, 서른 무렵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시립대학에서 텔레비전과 라디오 경영학 분야를 공부하였다. 사회에 나와서는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및 미디어사업 부문에서 근무하였다. IMF 시기, 회사를 나와 경영자의 길을 걷기도 했다. 사업을 통해 인생과 사람, 세상에 대해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았다. 현재 야후코리아에 임원으로 있다. 세계와 경영에 대한 천착 끝에 몇 권의 책을 냈다. 지은 책으로 『마흔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하여, 역사경영서 『위대한 CEO 세종대왕』과 자기계발서 『진정한 성공을 위한 자기 경영』『3040 성공학 책은 모두 버려라』『10초 내에 승부하라』, 자전적 생활일지 『당신이 웃으면 세상이 웃는다』, 어른을 위한 동화 『아름다운 사막여행』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누르하치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단지 13명의 기병으로 일어나 중원의 지배자가 된 이 여진족의 작은 부족장은 결코 시대를 타고난 영웅은 아니었다. 감성적이고 여린 마음을 가진 보통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과 경험을 얻어내 현실에 적용할 줄 알았다. 그 점에서 그는 난세를 이용할 줄 아는 전략가요, 정치가이며, 뛰어난 사업가이자, 탁월한 경영자였다. 그는 냉혹한 현실정치의 장에서 수많은 난국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굴복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힘을 얻었다. 거침없는 야망, 웅대한 포부, 풍부한 지략, 미래에 대한 투철한 믿음으로 가득 찬 누르하치는 많은 장수들과 자신을 묵묵히 따라준 군사들의 도움으로 결국 중원을 평정하게 된다. 요즘 기업용어로 얘기하자면 적대적 M&A를 통해 한족(漢族)의 명나라 경영층을 완전히 갈아치운 것이다. 미약한 세력과 척박한 지리조건에도 불구하고 때를 기다리고(天時), 사람들 다스릴(人知) 줄 알았던 누르하치는 슬기로운 경영자였다. 누르하치가 대륙정벌을 위해 활용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이 계속 바뀌어온 중국역사를 되짚어보면 여진족이 지배한 청나라는 가장 최근의 이민족 통치사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 대륙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주인을 계속 바꿔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창업해 웅장한 뜻을 이뤄낸 누르하치의 경영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 책은 역사를 단순히 과거의 산물이 아닌, 현 시대 경영의 핵심교훈으로 삼고자 하며, 나아가 청 태조 누르하치의 지략을 통해 영웅들의 창업과 수성의 성공과 실패사를 되돌아보고 이를 현재에 비추어 재조명하고 있다. ▣ 차례 1 누르하치, 그는 누구인가 2 오랑캐식 경영 전략 : 전통과 방식을 벤치마킹하다 3 한 사람의 CEO가 세상을 바꾸다 4 중국 M&A의 완성과 새로운 창업의 길 글로벌 CEO 누르하치 - 중국을 M&A한 오랑캐式 경영전략 - 전경일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 2005년 7월 / 160쪽 / 5,000원 1. 누르하치, 그는 누구인가 1583년, 한 젊은이가 명나라 군사들에게 쫓겨 백두산에 숨어들었다. 얼마 후 그는 의협심이 강한 여진 소년 7명과 의형제를 맺고 13명의 기병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그의 아버지는 누르하치에게 13벌의 갑옷밖에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13벌의 갑옷은 창업 동지들의 몸을 감싸기에 충분했다. 얼마 후 그에게는 30여 명의 동지들과 100여 명의 부하가 생겼다. 누르하치는 1559년 여진 부족의 하나인 건주여진의 한 부장(部將) 집에서 태어났다. 누르하치라는 이름은 여진어로 ‘멧돼지 가죽’이라는 뜻이다. 멧돼지의 가죽은 질기다. 또한 그것만큼 뜨거움과 차가움을 잘 이겨내는 물건도 없다. 누르하치는 천만 가지의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내고 자기 부족을 이끌어 나가라는 염원에서 그의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누르하치는 매우 총명했다. 그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쳤다. 열 살이 되었을 때에는 이미 말을 타고 활을 쏠 줄 알았으며 검술과 봉술에도 능했다. 귀신같은 활솜씨 때문에 신전수(神殿手)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5세에 독립하여, 68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약 40년에 걸친 누르하치의 도전은 실로 눈부신 것이었다. 그는 정복을 위한 전쟁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의 정복전은 언제나 CEO가 앞장서는 친정(親征)이었다. 스스로 앞서 나아감으로써 백성들이 따르게 했다. 바로 이 점에서 창업 CEO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누르하치는 분명 시대를 앞섰던 사람이며, 나아가 21세기형 경영을 실천한 미래의 개척자였다. 역사 이래 광활한 중국 대륙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천하를 제패하고자 수많은 영웅호걸이 북방에서 일어나 대의(大義)의 깃발을 내걸었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우리 겨레의 광개토대왕, 거란족의 야율아보기, 여진족의 아구다, 몽골족의 칭기즈칸만이 이름을 날렸을 뿐이다. 누르하치는 이러한 영웅들의 성공과 실패의 발자취를 가슴에 품고 일어나 중국을 지배한 이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사실 여진족은 서주(西周)시대부터 수(隋), 당(唐)대를 거쳐 송(宋), 요(遼), 금(金), 원(元)에 이르기까지 흥망성쇠를 거듭해 왔다. 고난과 즐거움이 반복된 역사였다. 여진족에게 고통과 쇠락의 시기는 대부분 동족 내부의 분열로 서로를 죽이고 다툴 때였다. 여진족은 광활한 여진의 초원지대에 걸쳐 살고 있었으나, 누르하치 때까지 통합되지 못했다. 통합되지 못했으므로, 힘을 한 방향으로 모을 수 없었다. 방향 없는 힘은 동족상잔으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한족(漢族)의 교묘한 이간책도 크게 한 몫 했다. 12세기부터 19세기까지 중국에는 금(1115~1234년), 원(1271~1368년), 명(1368~1644년), 청(1644~1912년)의 왕조가 차례로 세워졌다. 중국 역사의 상당 부분이 한족이 아닌 다른 민족의 역사라는 사실은 중국을 다스린 주인이 변해왔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누르하치가 등장한 16, 17세기에도 동북아시아에서는 패권 이동의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라는 동북아시아의 큰 혼란을 틈타 고구려의 옛 터전인 여진 허투알라에서 건주여진의 후예로 누르하치가 나왔던 것이다. 2. 오랑캐식 경영 전략 : 전통과 방식을 벤치마킹 하다 창업에서 수성으로, 성공 메커니즘 : 여진족이 중국대륙을 얻기까지는 ‘칠대한(七大恨)’을 내세워 대명 선전포고를 한 1618 년부터 북경에 진입한 1644년까지 총 27년의 세월이 걸렸다. 세대로는 3대에 걸쳤고, 명의 잔병들까지 몰아낸 1683년까지는 66년이라는 실로 오랜 시간이 투여되었다. 명실상부한 정복사업은 태조 누르하치 때 시작해 4대 강희제에 이르러서야 완성된다. 한 사람의 창업자가 단 13명의 군사를 데리고 창업한 지 66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창업은 그 완성을 보게 된 셈이다. 대를 이은 부단한 노력 끝에 얻어낸 실로 값진 성과였다. 청 왕조의 역사는 창업자 정신을 후임 CEO들이 꾸준히 이어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흔히 창업은 쉽지만 수성은 어렵다는 말이 있다. 이는 창업정신이 무뎌지지 않고, 2, 3대까지 지속되기 어렵다는 얘기이다. 창업하는 데에도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야 하는데, 수성까지 이어가려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되겠는가. 누르하치 군대가 승리한 것은 창업 상태의 지속이라는 정신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성장을 위한 제휴 : 몽골에 대한 누르하치의 장기적인 전략은 제휴와 정벌이라는 양면 병행 정책이었다. 이는 강한 세력과는 군사적 대결을 피하면서, 소규모 세력은 흡수하는 이중 전략의 일환이다. 누르하치는 제휴를 맺으면서도 기회만 생기면 계속 국지전을 일으키는 전략을 취했다. 누르하치는 명으로부터 제대로 배웠다. 적을 통제하기 위해 다른 적을 끌어들이되, 그 적이 화근이 되지 않도록 통제했다. 몽골족을 일정 지역 내 거주하게 한 것, 부족 상호 간의 왕래나 통신 등에 대해 철저한 감시를 행한 것 등은 모두 명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누르하치의 몽골에 대한 이 같은 정책은 오늘날 기업 인수합병전에 흔히 등장하는 LBO(Leveraged Buy-Out)와 유사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LBO란 타인자본, 즉 외부 차입금으로 조달된 자금으로 기업을 M&A하는 것을 말한다. 누르하치는 몽골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여분의 힘을 확보함으로써 이를 레버리지해 명 왕조를 인수하는 힘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결국 작은 만주족 군대(자기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몽골(외부 차입금)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끌어들여(레버리지) 중국 M&A를 성공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휴 없이 혼자 대업을 이루겠다고 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커다란 결실을 적을 통해 이룬 셈이다. 중국 정복의 대서사시-시작은 작게, 끝은 웅대하게 : 여진족은 언제부터 이런 웅장한 뜻을 품게 되었을까? 여진족의 전설적인 대서사시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였다. 준비하는 자세로 작은 성공을 쌓아가던 끝에 누르하치는 1601년 열하성(熱河省)에 정착하고 있던 부족을 체계적으로 조직화해 나가기 시작한다. 일사불란한 전투 병력을 조직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든 군대가 팔기군이다. 1616년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통일해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 국호를 금(金)이라고 칭했다. 1625년에 그는 심양(瀋陽)에 수도를 정했다. 그의 뒤를 이은 태종 홍타이지는 1635년에 여진이라는 호칭을 만주로, 다음 해에는 국호를 매우 순결하다는 뜻의 대청(大淸)으로 바꾸었다. 이때부터 이전의 부족적 의미의 여진족은 만주인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이는 여진 내부의 통일을 상징하던 후금시대로부터 다음 단계인 대청(大淸)시대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청은 만주족, 한족, 몽골족의 3대 종족을 아우르는 범이민족 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소수민족은 다수를 어떻게 지배했을까 : 중국을 정복한 청 왕조 내에서 만주족의 수는 대략 2%밖에 되지 않았다. 지배민족의 수치고는 턱없이 적었다. 이는 새우가 고래를 삼킨 것과 같았다. 얼마 전 대우버스를 인수한 영안모자가 연상된다. 모자와 버스, 외관만 보아서는 전자가 후자를 인수한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인수회사가 피인수회사보다 외형이나 직원수 등 여러 면에서 훨씬 작은 탓에 과연 제대로 관리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만주족의 중국 정복도 바로 그와 같은 것이었다. 만주족은 지배민족으로서 특수한 지위를 누리고, 각종 특권과 이권에 개입함으로써 한족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다. 인원이 적을수록 민족적 동질성과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탁월함의 경영 : 만주족이 중원을 얻게 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그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어떻게 그 적은 인원으로 많은 수의 이민족을 동원해 자기 목표를 이룰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 비밀은 팔기제에 있다. 팔기는 기의 색깔에 따라 8개로 구분한 군대 편성 단위였다. 처음에는 만주족 중심으로 편제되었지만, 나중에는 만주팔기와 별도로 몽골 족으로 구성된 팔기, 한인팔기가 조직되었고, 1644년 입관(入關, 북경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산해관에 들어가는 것을 말함)할 때까지는 16만 9,000여 명의 군대가 편성되었다. 여기에서 만주족의 숫자는 채 절반도 되지 않았다. 만주족은 이 같은 적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중국 정복을 이루었던 것이다. 또한 명의 구신(舊臣)들에 대해서 유화적 태도를 취했다. 이는 인심을 얻으려는 전략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한인 관리의 협조가 없으면 중국 지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청은 명의 마지막 황제를 후하게 장사 지내 북경에 묻어주었고, 이를 통해 민심의 교란을 방지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만주족의 중국 지배는 자신들의 정복욕 탓이 아니라, 명 왕조에 반란을 일으킨 역적들을 평정해 중국 땅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는 명분을 주지시켰다. 청의 이 같은 유화조치는 성공적이었다. 백성들에게는 누가 황제가 되든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조직적으로 만ㆍ한 이원체제를 도입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그리하여 주요 관직은 양 민족이 거의 동수를 차지했다. 명실공히 성공적인 국가 인수합병전이 완수되고 공동운영체계가 성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공동경영방식을 취하는 한, 한족에게 청은 물리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동참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누르하치는 이처럼 명분을 바탕으로 실리 획득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한족의 적은 갑자기 흐릿해지고 말았다. 만주족은 유능한 한인들을 과거를 통해 뽑아 올렸다. 이 같은 전략은 전 왕조의 무능한 경영층과 비교할 때 청 왕조 경영층의 우월성을 입증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청이 명을 대체한 것은 한 국가의 경영층만 바뀌는 식이었다. 이 새로운 경영층은 무능하지 않았다. 경쟁력 우위를 지닌 채 피인수층을 끌어안는 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청 왕조는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왕조가 될 수 있었다. 성공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누르하치의 성공 배경에는 탁월한 경영이 자리잡고 있었다. 중화주의의 굴레를 벗어 던지다 : 12세기부터 중국은 사실상 이민족과 한족이 순차적이며, 역동적으로 지배권을 교차해왔다. 1127년 여진족에 의한 금(金)의 성립은 송(宋)을 남송(南宋)으로 축소시켜놓았고, 이어 원(元)의 건국은 다시 한 번 중국의 주인을 몽골족으로 바꾸어 버렸다. 1368년 주원장에 의한 명의 건국은 다시 한족 정권의 대반격을 의미한다. 그 후 여진족에 의한 후금(後金), 곧 청(淸)의 건국은 다시 동북아시아에서 발생한 세력이 중국 전체를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이념적 정체(政體)는 현대에 와서 한족이 경영주체로 복구된 정권이다. 천안문 앞에서 이루어지는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사실상 한족에 의한 중국 지배의 유화적이며, 이이제이(以夷制夷)적 제스처다. 즉 이민족정부 대표자를 끌어들이려는 중국식 통일주의의 상징적 표현인 것이다. 여전히 중국을 구성하는 피의 색깔은 다양하며, 그들 간의 역사와 이해, 요구도 현격히 다르다. 경영이란 인재다, 인재를 찾아내라 : 팔기를 조직한 후, 누르하치는 1616년 국호를 금(金), 연호(年號)를 천명(天命)으로 하고 정복사업을 계속 추진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귀순한 한인과 몽골인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1577년에 인구 10만을 넘지 못했던 만주족은 인근 부족을 점령한 뒤에 40~50만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616년에 이르자 누르하치의 세력은 북쪽으로는 흑룡강 중하류와 우수리강 유역까지, 동쪽으로는 조선의 육진, 남쪽으로는 관전(寬甸), 서쪽으로는 요동 변경까지 세력을 넓혀 명실상부한 국가수립의 조건을 마련했다. 이 무렵 누르하치가 귀순자들을 만주팔기에 귀속시킨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조치였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전쟁포로들까지 팔기에 편입시킴으로써 팔기 제도는 만주족만의 체제가 아닌, 다민족사회, 군사제도로 발전해 나갔다. 이는 포괄적 민족정책의 결과였다. 지배영역이 늘어나면서 인재의 수요도 크게 늘어났다. 누르하치는 대 중국 인수합병전을 수행하면서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또한 누르하치는 장기적인 지배의 성패는 민심을 사로잡는 데 있다고 판단하고 점령지의 민심을 달래는 데 각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줄곧 그의 몸과 정신에 배어 있던 야생의 냄새가 이제 서서히 지워지고 보다 차원 높은 정치력이 이를 대체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무렵 누르하치는 지배방식을 보다 유연하게 하고자 했고, 나아가 현지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형식을 취하고자 했다. 3. 한사람의 CEO가 세상을 바꾸다 동북아시아의 소(牛)에서 대륙의 주역으로 : 1589년 누르하치는 건주여진 대부분의 부락을 통합하고 건주여진의 새로운 맹주로 등장하게 되었다. 1616년을 기점으로 누르하치는 대부분의 만주족을 휘하에 두었고,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후금을 세운 다음해 누르하치는 명나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무순(撫順)성을 함락시켰다. 후금이 명의 총대장 장승음을 전사시키고, 1만여 명의 군사들을 패퇴시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자 명 조정에서는 만주족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 동원령을 내리고 심양에 주력군을 파병했다. 산해관은 북경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 산해관에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이 바로 영원성이었다. 성을 지키고 있던 명의 장군 원숭환은 만주팔기가 승리한 원인을 면밀히 분석한 끝에 부족한 병사를 신식무기로 보충하고자 했다. 당시 홍이포는 누르하치의 철기군단을 효율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로 평가받았다. 원숭환이 홍이포로 무장한 사실을 모르고 총공격에 나선 누르하치의 군대 앞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괴력을 자랑하는 대포알이 날아왔다. 이날의 전투에서 누르하치는 포탄이 깊이 박히는 부상을 입었다. 병세는 나날이 깊어져갔다. 7월에 청하온천(淸河溫泉)으로 요양을 갔다가, 1626년 9월 30일 다시 심양으로 돌아오던 중, 이 야심찬 청조의 창업자는 심양에서 40여 리 떨어진 애계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일생은 죽을 때까지 하루도 빠짐 없는 정복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평생을 자신의 경영현장인 전쟁터를 떠나본 적이 없었다. 이때, 이 위대한 여진족 지도자의 나이는 68세였다. 글로벌 CEO, 누르하치 : 누르하치는 13명의 기갑병으로 군사를 일으켜, 중국 한족의 교묘한 분열정책을 극복하고, 사분오열된 동족을 통합해냈다. 그 다음, 그는 결사적으로 한족과 맞서서 중국 인수합병전에 나섰다. 이를 위해 경제적ㆍ군사적 거점을 확보하고 인구와 자원을 끌어 모으는 등 비상한 경영능력과 용인술을 드러낸 것은 물론이다. 이는 누르하치만의 탁월한 경영능력이었다. 나아가 전 여진족을 팔기라는 형식적 제도로 묶어 멀티형화, 정보맨화, 전사화해냈다. 그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최강의 군단으로 여진족을 정예화한 것은 전통과 혁신을 결합시킨 가장 놀라운 경영성과로 볼 수 있다. 또한 동북아시아의 패권이 이동하는 기회를 시의 적절하게 활용했다. 이러한 그의 국제적 감각과 판단력은 가히 글로벌 CEO의 전형이라 부르기에 조금도 손색없다. 그 만큼 누르하치는 희대의 탁월한 경영자였다. 그는 먼저 지나간 수레바퀴의 자국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고삐에서 풀려나는 소가 되는 날, 여진사회는 완전한 국가가 되는 것이고, 만주지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종국적으로 중원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중국 M&A 프로젝트는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꿈은 결코 작지 않았다. 누르하치에게는 해가 떠서 해가 지는 끝없는 대륙의 지평선만이 목표였다. 그는 이 같은 대륙의 웅혼한 기상을 품고 창업했다. 그리고 자신이 오랑캐라는 사실을 평생 잊지 않았다. 그랬다, 여진족은 오랑캐였다! 누르하치의 이 같은 각성이 끝내 민족의 과제를 끌어안은 것이다. 한 사람의 CEO가 세상을 바꾼 셈이다. 만주족의 성공은 누르하치 개인의 역량에 힘입은 바 크다. 이는 마치 오늘날 CEO의 역량이 기업 성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다. 그는 만주어, 중국어, 몽골어 등 3개 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국제인이었다. 따라서 누르하치는 중국ㆍ몽골ㆍ조선이 연결되는 동북아시아 무역 및 정치ㆍ군사 구도를 파악하고 패권을 잡는 데 필요한 정보를 누구보다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기본토대 위에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동족을 통일하고 훗날 중국 대륙을 M&A하게 만들었다. 청 태조 누르하치가 탁월한 경영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그의 모든 꿈과 희망이 실행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만주족의 비전을 온몸으로 제시하며 앞으로 달려 나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 누르하치 성공의 11가지 비결 1. 가진 것 없이 출발했다. 2. 혼인과 정복이라는 양면 정책으로 여진 내부를 완전히 통일해냄으로써 단결된 힘을 외부로 뻗칠 수 있었다. 3. 강력한 군사조직인 팔기제를 만들어 이를 활용했다. 4. 극복 대상인 중국의 역사ㆍ정치ㆍ경제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5. 경제적 기반을 확고히 마련했다. 6. 누르하치는 중국의 권위나 화려한 생활, 나아가 중화주의에 물들지 않았다. 7. 목표를 높게 세웠다. 교역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이 아닌,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8. 팔기의 군사들은 물론이고, 모든 민과 병을 통일시켰고, 멀티형 인간으로 훈련시켰다. 9. 만주족은 무엇보다도 트릭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거대한 명분으로 포장한 명 왕조의 허상을 간파했고, 그런 까닭에 한족보다 훨씬 더 교활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10. 전략적 제휴를 통해 힘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만주족에게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제휴하지 못할 대상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몽골한테도 그랬고, 한족 내부의 인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1. 적의 방식으로 적을 굴복시켰다. 한족의 이이제이, 기미정책을 써서 오히려 한족의 심장을 겨누어 적을 무력화시켰다. 4. 중국의 M&A의 완성과 새로운 창업의 길 경쟁을 통한 후계자 선정 : 누르하치에게는 여러 부인으로부터 얻은 16명의 자식이 있었다. 누르하치는 죽을 때까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죽어 가는 전왕이 차기 대권 주자를 정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자들이 후계자를 지명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럴 때 잡음도 없을 것이며, 협력자들의 지지를 받는 가운데 참다운 후계자가 등장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8남 홍타이지가 왕위에 올랐다. 장남 추연은 이미 죽었고, 차남 대선은 남아 있었지만, 이 같은 원칙 하에 결국 중국 M&A라는 대업은 홍타이지가 이어받았다. 홍타이지는 중국 역사가들에게 한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역대 중국 황제 중에서 가장 지략과 전략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멈추지 않는 정복신화 : 청 왕조의 기반을 세운 CEO들의 특징을 분석하면, 누르하치는 앞장서서 밀어붙이는 ‘깃발형’ CEO였고, 홍타이지는 전략가형 CEO라고 할 수 있다. 섭정왕으로 홍타이지의 아들 순치제를 도와 중국대륙을 M&A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숙부 도르곤은 황제에게 방향을 잡아주는 ‘코치형’ 지도자로 볼 수 있다. 만주족의 중국 M&A에는 다양한 리더십이 시의적절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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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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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칭기스칸
CEO 칭기스칸 김종래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 2002년 11월 / 151쪽 / 5,000원 ▣ 저자 김종래 1952년 충남 논산 출생. 서울 경복고와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사회부․정치부․편집부에서 근무했고 이후 조선일보 사회…
CEO 칭기스칸 김종래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 2002년 11월 / 151쪽 / 5,000원 ▣ 저자 김종래 1952년 충남 논산 출생. 서울 경복고와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사회부․정치부․편집부에서 근무했고 이후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정치부 차장, 「주간조선」 부장과 조선일보 사회부장을 거쳐 현재 편집국 부국장이다.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대우 교수를 지냈으며, 저서로는 『밀레니엄맨』,『유목민 이야기-바람에 새겨진 역사』가 있다. 2002년 11월 몽골정부로부터 칭기스칸과 유목민의 역사를 21세기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한국에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는 등 두 나라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친선훈장을 받았고, 몽골 국립대학과 칭기스칸 아카데미에서 명예박사 학위(역사학)를 수여했다. 2002년 6월에는 한국교육방송(EBS TV)에서 '칭기스칸에게서 배우는 CEO 경영 전략'과 '21세기는 유목민의 시대'라는 주제로 강연하였고 삼성과 현대 등의 기업과 정부 부처에 150여 회 출강하였다. 또한 저서 『유목민 이야기』는 현재 단국대학교 몽골어과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 Short Summary “지금부터 800년 전에 21세기를 살다 간 사람들이 있었다.”로 이 책은 시작된다. 그 사람들은 칭기스칸, 그리고 그와 함께 제국을 건설했던 이들이다. 몽골 유목민과 칭기스칸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저자는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외치고 있다. 칭기스칸의 삶은 어떤 것이었는가? 칭기스칸의 삶은 유라시아의 광활한 초원에서 시작되었다. 나무도 없는 황무지를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이었던 그가 배울 수 있는 세상 일은 기약할 수 없는 이동과 끝없는 전쟁, 잔인한 약탈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는 선대로부터 이어 내려오던 오랜 내전을 종식하고 몽골 초원을 통일한 다음, 바깥 세상으로 달려나가, 결국 777만 평방 킬로미터의 땅을 정복하기에 이른다. 150페이지 분량의 작은 책자 속에, 저자는 유목민들의 역사, 삶의 철학, 정신, 문화, 사회 시스템 등의 성공요인과 칭기스칸의 통치 철학과 전략, 전술을 하나씩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효과를 발휘하였는가를 설명하고 현대의 우량기업들 중 비슷한 철학과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기업들의 이야기도 함께 소개한다. ▣ 차 례 프롤로그 - 한 사람의 꿈은 꿈이지만 만인(만인)의 꿈은 현실이다 1. 제로섬 게임의 땅 2. 길을 닦는 사람들, 성을 쌓는 사람들 3. 유목민을 찾아서 4. 역사 속의 말발굽 5. 유목민 CEO 칭기스칸 6. 평생의 동지 - 태어난 곳은 달라도 죽는 곳은 같다 7. 개인적인 약탈을 금한다 8. 속도 숭배주의자들 9. 눈과 귀를 열어라 10. 적의 군대도 아웃소싱하라 11. 고양이 1천 마리와 제비 1천 마리를 잡아주면 철군하겠다 12. 기술자 6만 명을 포로로 잡다 13. 칸이라 하지 말고 이름을 불러라 14. 대자사크 - 법치(法治)의 원칙을 세우다 15. 칭기스칸의 제국 경영 16. 고인 물은 썩고, 흐르는 물은 쌓이지 않는다 17. 제국이 남긴 이름들 18. 800년 전에 21세기를 살았던 사람들 에필로그 - 21세기 생존법은 우리들 심장에 새겨있다 CEO 칭기스칸 김종래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 2002년 11월 / 151쪽 / 5,000원 프롤로그 - 한 사람의 꿈은 꿈이지만 만인(萬人)의 꿈은 현실이다 지금부터 800년 전에 21세기를 살다 간 사람들이 있다. 8시간 후의 주식 가격을 알 리 없고, 8개월 뒤 전세 값이 오를지 내릴지 또한 모르는 판에 800년 전 세상을 요즈음 사고방식으로 살다간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다들 황당무계한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분명 헛소리가 아니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 가량 북으로 날아가면 몽골을 만난다. 이 나라는 건조한 대륙성 기후와 척박한 자연조건을 지닌 고원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800년 전에 21세기를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로 그곳에서 살았던 칭기스칸,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12~13세기, 칭기스칸의 삶은 유라시아의 광활한 초원에서 시작됐다. 그가 속한 부족은 나무도 없는 황무지를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이었다. 그래서 그는 글을 몰랐다. 쉽게 말해, 야만인이었던 셈이다. 기약할 수 없는 이동과 끊임없는 전쟁, 잔인한 약탈이 그가 배울 수 있는 세상 일의 전부였다. 하지만 징기스칸은 절망조차 허락하지 않는 그 현실을 극복해 냈다. 그는 선대로부터 이어오던 오랜 내전을 종식시키고 몽골 고원을 통일한 다음, 바깥 세상으로 달려나갔다. 칭기스칸 시대에 정복한 땅은 777만 평방 킬로미터에 이른다.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과 히틀러 세 정복자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넓다. 더욱이 당시 몽골 고원 인구는 100만~200만 명이었다. 이 숫자가 중국, 이슬람, 유럽 사람 1억~2억 명을 정복하고 거느렸다. 그것도 무려 150년 동안이나. 몽골 유목민은 문자도 변변치 못한 민족이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그러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성공 비결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꿈’이다. 그들은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꿈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만인이 꿈을 꾸면 얼마든지 현실로 가꿔낼 수 있다는 신념을 지녔다. 미래를 향한 비전을 함께 지닌다면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들은 알았다. 제로섬 게임의 땅 몽골에는 ‘강(Gan)‘과 ’쪼드(Dzud)’라는 두 재앙이 있다. 강은 이상 기온에 따른 집중적 가뭄이고, 쪼드는 가뭄 뒤에 때 이르게 들이치는 강추위다. 두 재난은 농경 정착사회가 겪는 태풍이나 지진보다 훨씬 무섭고 위협적이다. 몽골 사람들은 그런 재앙을 대대로 겪었다. 강과 쪼드에 의해 가축이 죽으면 사람도 먹을거리가 없어져 따라 죽는다. 그런 상황에선 전쟁이나 약탈도 불가피하다. 죽어 널브러진 가축들 곁에서 유목민의 최고 가치는 ‘살아 남는 것’이 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스스로 강인해져야 한다. 몽골 유목민의 강인함은 바로 ‘자연에 맞서는 생존 본능’에서 비롯됐다. 그 본능은 지금껏 온전히 이어져 오는 성인식에서 엿볼 수 있다. 가장 혹독하게 추운 날, 신호가 떨어지면 소년들은 말을 내달린다. 왕복 80km에 이르는 눈보라 길의 출발이다. 소년들은 지평선 끝에서 사라졌다가, 두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지평선 위로 점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통과의례의 결실은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눈보라를 뚫고 온 아이들과 말의 모습은 참혹하다. 하지만 소년들의 눈빛만큼은 형형하다. 어떤 소년은 너무나 힘든 나머지 고삐를 놓쳐 말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숨이 끊어지는 법은 있어도 말 타기를 포기하는 법은 없다. 말의 입가엔 온통 입김이 허옇게 얼어붙은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말 고삐를 쥐었던 소년들의 손도 얼어 퍼렇게 동상을 입었다. 고삐를 놓치지 않으려면 동상 걸린 손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이렇듯 몽골 아이들은 시련의 들녘에서 강인하게 성장한다. 800년 전, 몽골 유목민은 무자비한 내전에 휘말려 있었다. 메르키트, 케레이트, 나이만, 타타르, 그리고 몽골까지 다섯 부족으로 주요 세력권이 나뉜 채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이 이어졌다. 그것은 목초지, 가축, 약탈물을 차지하고 다른 유목 집단을 복속시키려는 싸움이었다. 희망은 어디에 있었을까.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몽골 고원은 동족을 상잔하는 제로섬 게임의 무대가 되어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내전을 종식시키고 고원을 통일한 칭기스칸은 결론을 내렸다. "가난과 전쟁의 공포로부터 몽골인들을 해방시키는 길은 몽골 고원 바깥에 있다. 고원 안에서 아귀다툼할 게 아니라 고원 밖으로 나가자. 그래야만 모두가 배불리 먹고 살 수 있고 더 이상 동족상잔을 하지 않아도 된다." 몽골 유목민들은 고원 밖으로 시선을 돌려 하루에도 몇백 킬로미터씩 대지를 내달렸다. 그러면서 그들의 질주하는 여정을 따라 세계 질서가 그들 눈앞에서 바뀌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 앞에 무릎 꿇는 농경 정착민들을 보면서 머물러 사는 자의 안락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목격했다. 안락은 스스로를 안락사시킨다. 개인적인 약탈을 금한다 칭기스칸은 인간관계를 맺은 평생 동지, 평생 형제들과 꿈을 공유하기 위한 새 제도를 도입한다.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부족은, 패퇴했거나 항복한 부족으로부터 우선 가축부터 빼앗았다. 경우에 따라 여자까지 취했다. 나쁘게 말해 약탈이고 좋게 얘기해 전리품을 챙기는 셈이다. 몽골인들에겐 그 전리품을 누가 얼마나 차지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칭기스칸이 전리품 획득과 배분에서 새로운 조치를 내리기 전까지는 일종의 선착순 약탈방식이 지배했다. 적이 달아난 뒤 적진에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가축이든 여자든 취했다. 개인적 약탈이었던 셈이다. 이 방식에선 맨 앞에서 싸우는 사람만 득을 볼 수밖에 없다. 뒤에 서거나 간접적으로 전투를 도운 사람, 다른 사정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돌아오는 게 없다. 칭기스칸은 이런 불공평을 해소하고, 조직 전체 전투력과 소속감을 높일 목적으로 혁신적 조치를 단행한다. 전리품을 공동 몫으로 두고 누가 얼마만큼 공을 세웠느냐에 따라 나눠 갖는 공동 분배제였다. 이 방식에선 선봉에 선 사람은 싸운 만큼 자기 몫을 차지하고, 뒤에서 싸움을 도운 사람에게도 몫이 돌아간다. 예를 들면 활이나 칼을 만들고 수리하는 사람도, 척후병으로 적을 발견해낸 사람도, 말발굽을 고친 사람도 전리품을 챙길 수 있다. 조직원들은 어디서 어떻게 근무하든 최선을 다해야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배분 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조직 전체 전투력이 올라가게 마련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스톡옵션을 줘서 생산력을 늘리는 방식이다. 원대한 비전 제시와 개별적 약탈 금지로 칭기스칸의 병사들은 성취욕에 불탔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기여한 만큼 대가가 반드시 돌아온다는 믿음도 갖게 됐다. 이는 숫자가 적은 칭기스칸 군대가 엄청나게 많은 상대방을 제압한 비결이기도 하다. 칭기스칸이 제국을 세우는 첫머리에서 '개별 약탈의 금지'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선언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수많은 기득권층의 반대를 감내하면서도 구성원 전체에게 평등한 분배를 약속했다. 전쟁에 참여한 병사 모두가 전투를 자기 자신의 일로 여길 수 있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힘은 전 지구적 영토 정벌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800년 전의 신경영, 이것은 칭기스칸 제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성공 비결이었다. 속도 숭배주의자들 물리학에 E=½MV²이라는 운동에너지 공식이 있다. 에너지(E)를 군대전투력으로 보면 질량(M)은 병력 규모, 속도(V)는 기동성쯤이 될 것이다. 전투력은 병력 규모에 정비례하지만 속도에는 제곱 비례한다. 따라서 몽골처럼 적은 병력으로 대병력을 무찌르는 지름길은 기동성을 높이는 것이다. 수적 열세에서 세계 정복에 나선 몽골 유목민들은 사람 수를 당장 늘릴 수는 없지만 속도는 늘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몸에도 꼭 필요한 것만 지니고 다녔다. 그들은 특히 말의 효용성에 주목했다. 유목민들은 '말의 가축화'를 이뤄냈다. 그것은 인류사에 획기적인 성과요, 사건이었다. 그들은 가축으로 키운 말을 이용해 보병과 보급선을 두지 않는 간편한 기병체제를 만들었다. 이 시스템은 놀라운 행군 속도와 신속한 명령 체계를 창출해 농경 정착문명의 군대를 제압했다. 유목군대는 군사 장비도 경량화해 속도를 늘렸다. 당시 유럽 기사단 갑옷과 전투 무기의 무게가 70kg인데 반해 유목민 군장은 7kg밖에 되지 않았다. 활과 화살도 요즘 표현을 쓰자면 '신소재'로 만들어 가볍되 멀리 날아가도록 고안해 냈다. 군량 무게를 줄이는 것도 행군 속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요즘 인스턴트 음식의 시초 형태로 전투 식량을 마련해 군수보급품 무게를 가볍게 했다. 보르츠(육포)가 대표적인 예다. 몽골 군대는 원정 전쟁을 치르려면 군대 이동은 물론, 군수 물자, 병참, 식량을 운반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간파했다. 그래서 전장까지 동물을 끌고 다니면서 보급 문제를 해결했다. 정착민들처럼 지켜야 할 근거지가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나 아이들은 병사들의 전선 후방에서 가축을 돌보며 방목과 군량 지원을 동시에 해결했다. 몽골 군대가 육포 같은 전투 식량을 이용하고, 부족한 보급품도 현지에서 조달했다는 게 기동성에 얼마나 유리한 조건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속도에 관한 한 누구보다 열렬한 숭배자였다. 전쟁이나 축구뿐 아니라 기업 경영에서도 속도의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성공 비결이다. 세계적인 초우량기업 포스코는 수년 전까지 거대조직의 비효율성이 드러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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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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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용감했던 17일
내 생애 가장 용감했던 17일 한국로체청소년원정대 지음 푸른숲주니어 / 2011년 4월 / 375쪽 / 13,800원 ▣ 저자 한국로체청소년원정대 한국로체청소년원정대는 2006년에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되었으며, 결과보…
내 생애 가장 용감했던 17일 한국로체청소년원정대 지음 푸른숲주니어 / 2011년 4월 / 375쪽 / 13,800원 ▣ 저자 한국로체청소년원정대 한국로체청소년원정대는 2006년에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되었으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의미에서 ‘로체Lhotse’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기만의 속도로 정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로체 원정대의 정신이다. 2010년 히말라야 임자체 정상에 도전한 로체 원정대 4기는 대한민국의 15~19세 청소년들로,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되었다. 6개월간 우리나라의 명산을 돌며 자연 생태 학습과 인성 함양, 공존 협력, 봉사 활동 등의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2010년 1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네팔의 히말라야를 뜨거운 가슴으로 만났다. 4기 대원은 김범수(카이스트 수리과학과), 예소연(미국 클레어몬트 맥키나 대학), 윤재국(대구대학교사회복지학과), 김경남(서강대학교 영문학과), 유희연(미국 애머스트 대학), 이다솔(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이하늘(전주 상산고등학교), 김진선(한양대학교 중국어과), 김희철(과천외국어고등학교), 박종현(서울 상문고등학교), 김솔(의정부여자고등학교), 김지원(서울 세화여자고등학교), 홍지원(성남외국어고등학교), 안소정(서울 계원예술고등학교), 최진이(서울 혜화여자고등학교), 이동영(캐나다 예일 세컨더리 스쿨), 강병민(서울 강서고등학교), 진호천(전남체육고등학교), 박주나(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조시후(동탄국제고등학교) 등이다. ▣ Short Summary 자기만의 속도로 정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로체 원정대의 정신이다. 로체 원정대는 열정, 도전, 과정 중심적인 사고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15·~19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스무 명을 선발한 뒤, 우리나라 명산을 빡세게(?) 순례하는 국내 훈련을 마치고 히말라야로 원정을 다녀온다. 2010년 1월, 네팔에서 히말라야 정상을 향한 첫걸음을 떼었다. 사실 처음에 지원할 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이야, 히말라야에 보내 주는구나. 참 멋지다”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3차 심사까지 가면서 꼭 합격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고 도전자는 이야기한다. 그동안 우리는 급속한 도시화에 떠밀려 자연과 어울려 사는 일에 소홀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산업화 속에서 자연 환경은 더욱 파괴될 수 없었고, 사람의 정서 또한 매연과 소음이 가득한 빌딩 숲에 익숙해졌다. 장엄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고 겸손을 배워야 할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의 틀에 갇혀 좀스런 소인배가 되어가는 현실이 참 안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짧으나마, 우리 청소년 대원들이 세계에서 위대한 히말라야 산록에서 자연과 생활하고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일 것이다. ▣ 차례 열정의 말 - 로체 원정대는 나에게 기분 좋은 설레임 소개의 말 - 로체 원정대를 소개합니다 1부.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나는 재수생이다 / 100 대 1의 경쟁을 뚫고 / 조건 없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이것이 바로 친환경 설거지 /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 앗, 멧돼지가 나타났다 이대로 집어치울까? 땅벌, 땅벌, 땅벌! / 이 물을 먹으면 똑똑해진대요 오 분간 엎드려서 명상? / 있을 때 잘할걸 /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2부. 내 발길 닿는 곳이 바로 길이다 반갑다. 로체 원정대 / 이층 침대 난간에 매달려서라도 / 서울의 색다른 아름다움 우리더러 길바닥에서 자라고? / 난 못하겠어요. 할 수가 없다고요 / 난 할 수 있어 야호, 결성식이다 / 텐트 같은 거 없어도 괜찮아 / 북한산 모기와의 처절한 전쟁 3부. 텐트도 없이 길바닥에서 자야 한다고? 앗, 지각이다 /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불새버거 / 팔공산아, 내가 왔노라 / 소원을 말해봐 어디서든 살아남아야 한다. 서바이벌 훈련 / 환상의 삼겹살 파티 / 캠프파이어와 도레미송 아름다운 동행 / 앗, 내 카메라가 어디로 갔지? / 이제는 손발이 척척 / 내가 만든 길 한밤의 낙석 위험 지대 / 앗, 공룡이다 / 우리들의 러브 하우스 / 동심의 세계로 휘리릭 4부. 걷고 또 걷기, 25시간의 지옥 같은 산행 25시를 향해서 / 야, 첫눈이다 / 일어나, 일어나야 돼 / 헉, 산다라박이다! 세상 모든 중생들에게 행복을 / 우리들의 메리 크리스마스 / 바람아, 멈추어 다오 맏언니는 어려워 / 역시 한국인은 밥심 / 꼭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아 5부. 나마스테, 네팔 새해, 그리고 시작 / 우리에겐 너무나 호사스런(?) 호텔 / 우당탕탕 카메라 분실 사건 경비행기를 타고 히말라야로! 6부. 로체야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가자, 팍딩으로! / 고산병과의 아찔한 첫 만남 / 오, 마이 갓! / 마음이 원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 히말라야의 밤하늘 뭐라도 난 하겠어! / 인내의 단맛을 알다 7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눈이 예쁜 아이 / 받는 마음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탕보체 사원 / 체력의 한계 앞에서 8부. 드디어 정상을 향한 도전 빙하가 녹고 있다 / 홍지원, 생일 축하해 /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는 왜 고산병에 걸리지 않을까? / 이 높은 곳에서 마라톤을 한다고? 최후의 1인이 되고 싶다 / 추쿵 파라다이스 / 그리운 엄마 정상을 향해서 / 엄마야, 나 좀 살려줘 / 해발 6,189m, 드디어 정상에 오르다! 9부. 함께 걷는 이들이 있어 행복하다 내 등에 날개가 있다면 / 병든 대원 구출 작전 / 비상이야, 비상! / 우리는 하나 세상을 닮은 오색 깃발 / 나는 왜 이곳에 왔을까? /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안녕, 히말라야! / 나에게 히말라야는? 10부. 도전은 계속된다 15일 만에 머리를 감다 / 선택받은(?) 여신 쿠마리 / 네팔 사람들과 통하다 앗, 전기가 부족해 / 포터기 끓여주던 밀크 티가 그리우면 어쩌지? 용기의 말 - ‘로체 원정대가 얻은 것 / 엄마, 나 로체 원정대 지원할까? 도전의 말 - 너희의 도전과 열정을 응원한다 내 생애 가장 용감했던 17일 한국로체청소년원정대 지음 푸른숲주니어 / 2011년 4월 / 375쪽 / 13,800원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나는 재수생이다: 내 나이 열아홉…. 나는 재수생이다. 대학 입학시험에서 쓴잔을 마셨냐고? 천만에! 로체 원정대의 재수생이다. 일 년 만에 다시 로체 원정대에 지원서를 넣을 때, 내게 삼수란 없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재수에 성공해서 어깨를 펴고 당당히 원정 대원이 되거나, 또 다시 지독한 패배감을 맛보고 깨끗이 마음을 접거나……. 이 둘 중 하나를 택하기로 했다. 로체 원정대가 중시하는 과정 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내가 ‘원정 대원이 되느냐 못 되느냐’라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정대원이 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는지가 중요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나은 친구들이 히말라야로 원정을 떠나서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옳은 일일지도 모르니까. - 김범수 - 공부가 가장 쉬었어요: 10시 정각, 드디어 첫 산행이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지옥 훈련이었다. ‘참 웃기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쉽구나.’ 훈련이 끝날 때까지 힘들 때마다 내 머릿속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다. 마치 주문처럼 나는 그 말을 외치고 또 외쳤다. 요즘 들어 부쩍 공부가 힘들고 짜증스러웠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 공부를 하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한 일인지 몇 번이나 가슴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학교에 돌아가면 정말로 열심히 공부해야지.’ 오 분가량의 짧은 휴식 시간……. 학교에서 무의미하게 날려 버리던 십 분의 쉬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게 쓰일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 이다솔 - 앗, 멧돼지가 나타났다: 어느새 등산로인 산을 다 내려와 좁은 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때 갑자기 이 대장님이 대원들에게 걸음을 멈추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돌을 하나씩 손에 잡으란다. 처음에는 또 다른 종류의 훈련이 시작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선두 쪽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 있다가 혹시라도 멧돼지가 또다시 나타나면 한꺼번에 돌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이건 뭐, 원시 시대도 아니고…….’ 대장님의 표정을 보니 장난은 아닌 듯했다. 금세라도 멧돼지가 우리를 향해 돌진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인 셈이었다. 그러자 얼마 전에 극장에서 본 영화 〈차우〉가 생각나면서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손에 든 돌멩이를 꼭 움켜쥔 채 벌벌 떨면서 발걸음을 천천히 떼었다. 다행히 그곳을 빠져나갈 때까지 멧돼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 김경남 -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딸만 세 명인 집의 막내로 태어나 편하게만 자라온 나에게 이번 훈련은 난생처음 겪어 보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로체 원정 대원으로 최종 선발됐을 때는 참 간단하게 생각했다. ‘뭐든 열심히 하면 되겠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텐데 뭐가 걱정이야?’ 그런데 큰 오산이었다. 가는 곳마다 눈물겹도록 힘든 일들이 마치 거대한 장애물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두 번째 날. 눈물을 머금고 옥돌봉에 오르면서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학교에 가만히 앉아서 공부나 하고 있을 걸, 왜 일부러 이런 고생을 사서하고 있는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수도 없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도, 한 발짝도 더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아도 결국은 다시 걸어가야 하는 길……. 힘들다고 짜증을 내 봤자 나만 더 힘들어질 뿐이었다. 많이 뒤처지긴 했지만 이를 악물고 정상에 다다랐을 때의 쾌감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 홍지원 - 걷고 또 걷기, 25시간의 지옥 같은 산행 25시를 향해서: 이번 산행의 구호는 ‘25시를 향해서!’였다. 말 그대로 스물다섯 시간 동안 꼬박 산행을 하는 것이었다. 불수도북(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을 다 돌았는데 어렵다기보단 극도로 피곤했다. 차 대장님의 훈련 일지를 슬쩍 훔쳐보았다. 90Km, 25시간……. ‘에이, 설마 이걸 우리더러 진짜로 하라고 하려고?’ 그런데 그 설마가 사람을 잡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가야 하는 첫 목적지는 불암산 정상이었다. 예상보다 빠른 시간 안에 불암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자 바람이 더 세차게 불어서 몹시 추웠다. 땀이 식으면서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렇게 산행이 끝나고 잠깐잠깐 쉴 때 대장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 겉옷을 수시로 벗었다, 걸쳤다를 반복해서 체온을 최대한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앞으로 감기에 걸리지 않고 추위에 더 떨지 않으려면 꼭 그런 습관을 들여야겠다. - 윤재국 - 야, 첫눈이다: 11시 15분부터 도봉산 야간 산행을 시작했다. 산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 싸라기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첫눈을 산에서 맞다니! 그나마 많이 내리진 않아서 바위틈에만 성에처럼 엷게 쌓였다. 다행히 미끄럽진 않았다. 도봉산 길은 수락산과 불암산 길보다는 가팔랐다. 어두워서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 대장님이 도중에 헤드 랜턴을 끄고 조용히 올라가라 했다. 헤드 랜턴이 없는데도 서울 시내에서 건너온 불빛이 워낙 밝아 앞이 잘 보였다. 대체 얼마나 많은 집들이 빛을 밝혀 이 먼 산까지 밝혀 주는 걸까? 시간과 장소만 잘 잡으면 서울의 야간 산행은 맨몸으로도 할 수 있을 듯했다. 이날의 목표는 북한산 인수봉. 벌써 새벽 2시가 넘었는데 어느 세월에 가나? ‘아마 오늘은 안 자나 보다.’ 우울한 기분으로 막 체념을 하는 순간, 비박 준비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원래는 북한산 캠프장에 도착해서 새벽 5시에 취침을 할 계획이었는데, 대원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이대로 비박을 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예상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새벽 3시에 침낭을 펴고 누웠다. 차 대장님이 알려 준 대로 배낭에 있는 짐을 모두 빼어 커다란 김장 비닐 속에 넣었다. 그리고 침낭 안으로 들어간 다음, 발을 배낭에 넣고 잠을 청했다. 오리털 침낭을 지급받은 후론 한 번도 춥게 잔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날씨가 하도 추워서 그런지 양말을 두 개나 신었는데도 너무나 시렸다. - 유희현 - 일어나, 일어나야 돼: “다솔아, 일어나! 일어나야 돼!” 어제 부탁했던 대로 희현이가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침낭 속에서 나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럴 수가…. 모두들 이제 살 것 같다고 느낄 때쯤 다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4시 무렵, 모든 산행이 끝났다. 지옥의 ‘25시를 향하여’프로젝트가 대단원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대장님과 김성태 박사님이 고생했다며 격려의 말씀을 해 주었다. 그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잘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도감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어제부터 탔던 네 개의 산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랜만의 산행에서 처음 코스라 너무나 힘들었던 불암산, 첫눈을 만났던 수락산, 반쯤 눈을 감고 걸었던 죽음의 도봉산, 이제는 친구 같은 북한산…. 이젠 안녕! ‘이제 이런 훈련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자 더욱 긴장이 되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다솔 - 꼭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아: 그사이 부쩍 성장한 나를 만났다. 1차 훈련 때 영주 부석사에 첫발을 내딛던 그때의 ‘나’가 아니었다. 세제 없이 대충 닦아 놓은 식기에 다시 밥을 먹을 때 눈살을 찌푸리며 헛구역질을 하던 ‘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는 나뭇잎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편히 잠잘 수 있는 ‘나’만 있었다. 동료 대원이 힘들어하면 내 발걸음 역시 천근같이 무거운데도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나’로 바뀌어 있었다. 로체 원정대가 히말라야 로체 베이스캠프까지 성공적으로 등반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목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내가 성장하는 과정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국내 훈련 과정에서 얻게 된 성장 동력이다. 성장 동력을 매 훈련 때마다 발견하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로체 원정대는 결과보다 과정을 우선으로 한다. 국내 훈련 과정에서 여러 산을 오르내리면서 느낀 것은 어느 산의 정상에 올랐다는 만족감보다는, 우리가 함께 한 그 길 위에 눈물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동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료 대원, 그리고 서포터즈 선생님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내가 몰랐던 한계를 깨닫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고비고비마다 눈물을 꾹 참았다. 결국 극복해 낸 것이다. 일곱 번에 걸친 국내 훈련을 통해 나를 비롯한 스무 명의 동료 대원들은 또래와는 확연하게 다른 자신감과 인내심을 갖게 되었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함께 뭔가를 이뤄 가는 기쁨을 알게 된 것이다. 꼭 정상이 아니어도 괜찮다. 이미 난 정상에 오른 것과 마찬가지의 커다란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니까. - 김범수 - 나마스테, 네팔 새해, 그리고 시작: 2010년 1월 1일이다. 새해 첫날엔 누구나 그렇듯이, 떡국을 먹고 한 살을 더 먹었다. 오늘은 나에게 아주 특별하다. 히말라야 원정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네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나라……. 그곳으로 나는 원정을 떠난다.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목표에 도전하는 데, 2010년 1월 1일은 딱 제격인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새해에는 새 마음을 먹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지 않는가. 나도 새 마음으로 새 각오를 다지며 2010년의 첫 단추를 끼운다. 그 첫 단추는 나 자신에 대한 도전, 그리고 성취로 채우고 싶다. 드디어 비행기가 움직였다. 이렇게 떠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믿기 위해서 애써 주문을 걸었다. 믿어야지.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일들이 왠지 꿈같고 장난 같고 어색했다. 여기까지는 잘 참고 견뎌 왔는데, 끝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래, 영하 20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침낭 하나에 의지한 채 잠을 청했고, 불암산과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을 하루 세 시간씩만 자면서 종주하기도 했는데……. "까짓 거, 뭘 못 해! 어디쯤 왔을까?" 창 너머로 거대한 산맥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이 평화로움이 마지막 평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활한 산맥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산맥 위에 실핏줄처럼 여러 갈래로 퍼진 길들이 보였다. 저 길들을 내가 걸어가야 한단 말이지? 순간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막상 눈으로 보니까, 그동안의 다짐과 각오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이제야말로 실전이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기 암시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선배들의 조언처럼, 지금 여기서 나를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므로. 드디어 비행기가 네팔 공항에 도착했다. 제국 오빠가 “나마스테!”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자, 네팔 사람들이 “한국 짱!”이라고 소리치며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느 책에서 네팔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묘사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나라면 이런 환경에서 도저히 웃으며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네팔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새 내 가슴속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설렘과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살짝 흥분되는 느낌이랄까? 카트만두 거리는 꽤 충격적이었다. 21세기의 첨단 문명과 완벽하게 단절된 모습이었다. 그러다 한 순간, 나의 손짓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대 여섯 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저 아이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한창 유치원에서 뛰어놀 나이인데…….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새삼 온몸으로 와 닿았다. - 홍지원 - 경비행기를 타고 히말라야로!: 경비행기는 다 그런 걸까? 이륙을 할 때 엄청난 소음이 났다. 장난감같이 생긴 이 경비행기가 추락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공포에 떨면서도 눈길은 자꾸만 바깥쪽으로 쏠렸다. 역시 상상했던 대로 히말라야라는 멋있었다. 거대함과 웅장함, 광대함, 그리고 그곳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어떤 존재에게도 결코 길들여질 것 같지 않은, 말 그대로 야생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광경이었다. 비행기는 산 위를 나는 것이 아니라 산과 산 사이를 곡예 하듯이 위태롭게 날아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착륙을 하는 것 같았다. 이 엄청난 흔들림으로 보면 착륙이라기보다는 불시착에 가까웠다. 이윽고 지상에 발을 내딛으니, 우리가 히말라야에 왔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우리는 해발 2,840미터에 위치한 루크라 공항에 도착했다. - 강병민 - 로체야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고산병과의 아찔한 첫 만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등에서 전율이 일더니 속이 더부룩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애써 기운을 내고는 짐을 날랐다. 그러고는 건물 안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갑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나면서 저릿저릿하더니, 급기야 창자가 심장 쪽으로 기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루크라보다 고도가 200미터가량 낮은 팍딩으로 이동할 때는 더욱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토하고 말았다. 거의 오 미터 간격으로 토악질을 했다. 그때마다 한 걸음씩 뒤처지는 바람에 마음은 한없이 조급했지만, 발걸음을 떼는 것 자체가 고역인지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는 쉬고 걷고 토하고를 규칙적으로 반복했다. - 박주나 - 마음이 원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산행을 하면서 풀밭을 지나기도 하고 빙판길도 지나면서 급격한 기온의 변화를 느꼈다. 온도가 바뀔 때마다 수시로 옷을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했다. 어떨 땐 귀찮아서 그냥 버티기도 했다. 내 마음을 어떻게 눈치챘을까? 대장님이 게으르면 감기에 걸리게 되고, 그 대가는 하산이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찔끔했다. 에베레스트 국립공원 입구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햇살이 참 따뜻했다. 햇살 아래서 천천히 걸어 다니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얼마쯤 걸었을까? 오, 저기! 에베레스트가 보였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하얀 연기가 날리고 있었다. 그것을 설연이라고 부른다 했다. 설연은 눈처럼 날리는 것인데, 꼭 구름이 빠르게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영상과는 달리, 설연은 정상의 바람이 엄청 세다는 것을 알려 주는 증거란다. 우리는 다시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선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를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대장님과 친분이 있는 산악인 김홍빈 아저씨라고 했다. 지금 막 칼라파트라에서 내려오는 길이라나. 그런데 김홍빈 아저씨가 대장님과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악수를 하기 위해 내민 두 손이 온전하지 않았다. 비록 손가락을 잃긴 했지만 산에 대한 열정을 꺾을 수가 없어서 산악활동을 계속 한다고 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김홍빈 아저씨를 보니 가슴 밑바닥에서 존경스런 마음이 일었다. 정말로 멋있어 보였다. 김홍빈 아저씨는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러니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사니까 정말로 행복하다.” - 윤재국 - 인내의 단맛을 알다: 천만다행으로 그날은 고산병에 적응을 하기 위해 비교적 고도가 높지 않은 상보체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일정이었다. 선발대에 서서 산행을 시작했지만 오 분 정도가 지나자 다시 속이 안 좋아져서 뒤로 처지고 말았다. 이 대장님이 함께해 주었다. 대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지금 멈춘다면 그건 백 퍼센트 네 의지가 부족해서인 거야.” 이 말이 자극제가 되어 계속해서 걸었다. 얼마 후, 대장님이 물었다. “시후야, 여기서 내려갈래?” “아니요, 지금 내려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난 결국 끝까지 갔다. 대원들 모두가 환호해 주었고, 그 환호에 나는 힘을 얻었다. 오늘 난 정말 소중한 것을 하나 배웠다. 바로 ‘인내’라는 단어였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참고 노력해서 이룬 적이 없었다. 하지만 힘듦을 참고 또 참아서 목적지에 올랐을 때 느꼈던 성취감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성장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 조시후 -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탕보체 사원: 대장님이 오늘은 위험 구간에 진입할 예정이니 바짝 긴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나는 먼 산을 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먼 산을 보고 걷다가 발을 헛디뎌 몇 번 넘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행을 시작하고 나자 아찔한 구간들이 제법 있었다. 어디선가 산적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았다. 밑을 보니 깊이가 600~700m는 족히 넘어 보였다. 나무가 울창한 것도 아니어서 그 자리에서 굴러 떨어지면…… 최소한 사망일 듯했다. 그래도 힘들게, 힘들게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탕보체(3,860m)에 도착을 하였다. 한눈에 봐도 규모가 엄청난 사원이었다. 히말라야 산 중턱에 이렇게 큰 사원이 섬처럼 우뚝 솟아 있다는 것에 놀랐다. 신기루처럼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서 더 놀랐던 것 같다. 밖에는 ‘옴마니반메홈’이라는 경전이 새겨진 둥근 원통 모양의 종이 늘어서 있었다. 원통 모양의 종은 빙그르르 돌아가도록 만들어졌는데, 이것을 손으로 돌리면서 소원을 비는 것이라 했다. 평소에는 종교에 관심이 없었지만 히말라야에 있으니 왠지 소원을 빌어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종을 돌리며 ‘제발 고산병 좀 낫게 해 주세요!’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역시 사원보다는 산행이 편했다. 밖으로 나오니 잠이 싹 달아났다. 뒤에서 천천히 오던 일명 ‘병든 병아리’조와 만나서 다시 출발하였다. ‘병든 병아리’조는 대장님이 고산병에 걸려 힘을 못 쓰는 대원들에게 지어준 별명이었다. 병든 병아리 조는 멤버가 확실하게 정해진 게 아니고 대원 중 누구나 수시로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나도 언제든 ‘병든 병아리’조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 김솔 - 체력의 한계 앞에서: 저녁을 먹고 다 같이 모인 자리, 오늘 산행에 대해 느낀 점을 차례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덧 내 순서가 되었다. 나는 고도가 높아져서 서로가 예민해질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자는 말을 했다. 모임이 끝나고 혼자 방 안에 들어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로체 원정대 선배들이 해 준 충고가 떠올랐다. 원정 중에 서로 예민해져서 사이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막상 그 상황에 맞닥뜨리고 보니, 선배들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아빠도 비슷한 말씀을 했다. 체력의 한계가 다하는 상황과 마주했을 때 드러나는 뜻밖의 모습에 서로 실망할 수도 있다고‥‥. 이런 말들을 찬찬히 떠올려보니,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래, 내일부터는 감정 조절에 더욱더 신경 써야지.’ 이렇게 다짐을 하고 나자 편안하게 잠들 수가 있었다. - 김지원 - 드디어 정상을 향한 도전 빙하가 녹고 있다: 베이스캠프에서 살짝 더 올라가자 빙하가 내려다보였다. 지구 온난화가 실감났다. 일 년에 70미터씩 줄어든다는 빙하……. 빙하라고 하면 매우 거창할 줄 알았는데, 안쓰러울 정도로 많이 녹아 있었다. 뾰족할 줄 알았던 빙하의 끄트머리는 오히려 평평했다. 그리고 그 표면은 흙으로 덮여 있었는데, 마치 사과를 파먹은 것처럼 안쪽만 허옜다. 투투코시 강이 왜 우윳빛인지 알 것 같았다. 임자체-임자초가 사십 년 전에는 없었다. 1년에 200미터씩 임자초가 깊어진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여기서 느끼게 되다니……. 하지만 로체 남벽 양옆으로 펼쳐진 경관은 정말 멋졌다. 높디높은 하늘을 찌르고 있는 하얀 봉우리들……. 이충직 대장님은 세계 최고의 난공불락인 이 로체 남벽은 상상만 하여도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 김솔 -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이상하게도 나는 잠을 설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날도 말짱했다. 그런데 산소 포화도가 70밖에 나오지 않았다. 기분으로 봐선, 이대로 선발대로 간다 해도 너끈할 것 같은데……. 차 대장님은 종현이와 진선이, 지원이, 솔이와 함께 나를 병든 병아리 조에 포함시켰다. 아마도 환자를 돌보라는 뜻인 듯했다. 역시 아침은 추웠다. 진짜로 병든 병아리마냥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출발한다는 말을 듣고 느릿느릿 일어섰다. 전날과 달리, 미로처럼 생긴 길을 한참 동안 걸었다. 갖가지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데다 길을 따라 개울까지 흐르고 있어서 걷는 맛이 제법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에 맞춰서 새들까지 노래를 불러 주어 단조로움이나 지루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병든 병아리 조답게 참 느릿느릿 걸어갔다. 거의 오 분 걷고 이십분을 쉬는 셈이었다. 소풍 나온 기분이라도 들었는지, 소정이가 대뜸〈개똥벌레〉를 부르기 시작했다. 〈개똥벌레〉의 노랫말이 마치 병든 병아리 조가 본대에게 애절하게 하는 말 같아서 웃음이 빵 터졌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물론 진정으로 아픈 대원들은 그런 것조차 못 느꼈겠지만……. 사람은 갈 때 마음 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내가 아플 때는 ‘다 나으면 아픈 대원들한테 잘해 줘야지.’ 하고 수십 번도 더 다짐을 했건만, 막상 내 몸이 괜찮은 듯하자 다른 대원들에게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픈 사람도 답답하겠지만 아프지 않은 사람도 답답했다. 대신 해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지만, 실제로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 주고 싶은데,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노는 동안, 대장님들과 서포터즈 선생님들은 마지막 산행 준비를 위해 밖에서 바람을 맞으며 장비를 점검했다. 그 장비들은 다름 아닌 우리의 목표, 임자체에 오르기 위한 이중화와 아이젠, 8자 하강기, 안전벨트와 주마레라는 상승기였다. 늦은 오후가 되자, 차 대장님이 그 장비들을 들고 와서 사용법을 설명했다. 그냥 걷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산행이었다. 역시 인간은 도구의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지 못한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고, 장비를 사용해서라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려는 정신! 그것이 어쩌면 인간을 이토록 발전시킨 원천일지도 모른다. - 김희철 - 정상을 향해서: 임자체 베이스캠프에서 어택 캠프로 이동하기 전, 우리는 다시 한 번 장비를 점검하고 착용법을 익히는 연습을 했다. 벌써부터 긴장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어택 캠프로 떠날 준비를 했다. 1차 공격조는 나와 경남이, 시후였다. 그리고 우리가 정상에 이르지 못하면 올라가게 될 2차 공격조는 범수, 재국이, 병민이로 구성되었다. 2차 공격조는 어택 캠프까지 우리의 짐을 날라 주었다. 현실적으로 2차 공격조는 정상에 오를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1차 공격조를 진심으로 열심히 지원해 주었다.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고도가 6,000미터에 가까워지자 금방 숨이 차고 지쳤다. 잠깐씩 쉬다가도 금새 다시 일어섰다. 정말 힘들 때에는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소리 내어 외쳤다. 평소에 거울을 보면서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멋있는 사람이다.”라고 외치면서 싱긋 웃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면 정말로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여기서도 그랬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치고 나자 정말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너무 추웠고, 힘들었고, 괴로웠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얼마나 더 멀고 험한 길이 펼쳐져 있을지……. 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 예소연 - 엄마야, 나 좀 살려줘: 소연 언니는 차 대장님과, 나는 셰르파 노르부와 조를 이루었다. 나와 노르부는 안전벨트를 연결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공동 운명체인 셈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노르부는 나를 막무가내로 끌고 간 게 아니라 상태를 계속 점검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분야든 전문가에 의한 약간의 강제성이 발전을 유도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어느새 평지가 끝나고 얼음으로 뒤덮인 급경사면이 나타났다. 빙벽 위에서 피로가 급격히 몰려와 잠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황에서 어떻게 잠이 오는지……. 한 발짝 오르고 잠을 자고, 두 발짝 오르고 잠을 잤다. 빙벽은 매우 위험했다. 경사도가 거의 60도에 가까웠다. 빙벽에 아이젠이 제대로 박히지 않아서 로프에 매달린 채 “엄마야!”를 수십 번이나 외쳐 대었다. - 김경남 - 해발 6,189m, 드디어 정상에 오르다!: 출발할 때부터 속이 좋지 않았는데 아까부터는 대장이 심하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정말이지 더는 못 견딜 것만 같아서 울상을 짓고 있으니까, 차 대장님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냥 내려갈까? 이 대장님이 상황에 따라서 대원 중 한 명만 올라가도 된다고 하셨잖아. 지금 내려가도 괜찮아.” 자꾸만 약해지려는 나에게 채찍질을 했다. 로프를 설치하느라 잠깐 대기를 하였다. 차 대장님이 셰르파에게 은근슬쩍 하산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았다. 세상에나, 최소한 세 시간이란다. 나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졌다. 긴장을 한 탓인지, 뱃속에서 장기들이 요동을 쳤다. 참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한 발짝도 옮기지 못할 듯했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대장님, 저 화장실 좀…….” 그 상황에서 볼일을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젠, 안전벨트, 그리고 방풍 우모복, 발목막이용 스패츠 등등. 착용하고 있는 것을 벗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그리고 공간이 너무 좁았다. 하지만 차 대장님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큰일을 보았다. 드디어 어두웠던 세상이 밝아졌다. 한마디로 카타르시스가 따로 없었다. 올라오는 내내 배 속을 괴롭히던 장애물이 해소되자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하필 이런 상황에서 바깥세상을 구경하겠다고 아우성을 친 배설물이 아주 조금 원망스럽긴 했지만, 막상 일을 끝내고 나니까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어이 세상 밖으로 내보내려 애를 썼던 내 장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말라야 꼭대기에서 누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상에 도착했다. 야호! 정상은 생각보다 좁았다. 다섯 명이 등을 맞대고 앉으면 꽉 찰 정도였다. 모두 안전벨트를 장착한 뒤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실 나는 정신이 하도 없어서 사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진뿐만이 아니었다.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올랐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물었다. 그런데 정작 해줄 말이 별로 없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그저 얼떨떨했다. ‘그래도 왔구나. 결국 내가 해냈구나.’ 하지만 곁에서 ‘힘내! 할 수 있어!’라며 이끌어 주는 힘이 없었다면 결코 이뤄 내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로체 원정대 스무 명이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상대방을 응원하고 배려했기 때문에 히말라야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 예소연 - 함께 걷는 이들이 있어 행복하다 우리는 하나: 얼마나 기다렸을까?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기 보인다! 저기요~.” 밖으로 얼른 나가 보니, 차 대장님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모두들 달려 나가 차 대장님한테 와락 안겼다. 뒤이어 내려온 중앙일보 변선구 기자님, 아리랑 TV 정욱진 감독님, 김성태 박사님, 병민이, 시후, 경남이, 소연 언니와도 감격의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에 내려온 소연 언니는 우리를 보자마자 너무 힘들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왠지 나도 감정이 북받쳐서 따라서 엉엉 울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너무나도 반가웠고 멋있었고 부러웠고 아쉬웠다. 드디어 하산이 시작되었다. 어느덧 원정의 끝을 바라보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 이다솔 - 안녕, 히말라야!: 히말라야에 오기 전, 나는 그야말로 한국의 전형적인 고등학생이었다.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다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히말라야에 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15일 동안의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에 커다란 성취감을 느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간절히 원해서 이뤄 낸 첫 번째 성취인 것이다. 문화 교류 연습을 하고 있는데, 이 대장님이 나와 진이를 불렀다. 그동안 위성 통신조로 수고했다며 부모님한테 전화를 하라는 것이었다. 배터리가 방전이 된 전화기를 어렵게 충전해서 집에다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은 힘이 들 때마다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걸 모르고 짜증을 내면서 문을 쾅쾅 닫아 버렸던 게 몇 번인지……. 내가 로체 원정대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부모님의 소중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결코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 박종현 - 포터가 끓여주던 밀크 티가 그리우면 어쩌지?: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침낭과 스패츠, 매트를 모으고 정리를 했다. 빠진 물건은 없는지, 카고의 수는 다 맞는지 몇 차례나 확인을 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아쉬운 마음이 자꾸 맴돌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카트만두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피부는 검지만 호수같이 맑은 눈을 가진 네팔 사람들, 안녕! 분주한 상점들, 안녕! 네팔의 냄새도, 안녕! 히말라야, 안녕! 아직 네팔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셰르파들이 아침마다 끓여 주던 밀크 티가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 김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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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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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는 놈 꿈만 꾸는 놈 꿈을 이루는 놈
꿈이 없는 놈 꿈만 꾸는 놈 꿈을 이루는 놈 정진일 지음 책이있는풍경 / 2014년 5월 / 272쪽 / 15,000원 ▣ 저자 정진일 1999년부터 10년 동안 전라북도 교육청에서 교육행정 공무원으로 재직한 그는 2009년 3월 공무원이라는 선망…
꿈이 없는 놈 꿈만 꾸는 놈 꿈을 이루는 놈 정진일 지음 책이있는풍경 / 2014년 5월 / 272쪽 / 15,000원 ▣ 저자 정진일 1999년부터 10년 동안 전라북도 교육청에서 교육행정 공무원으로 재직한 그는 2009년 3월 공무원이라는 선망의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사로서 강단에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할수록 가슴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10년 동안 실무에서 탄탄하게 쌓아온 실력과 15년 가까이 춤꾼으로 무대 위에서 발산한 엔터테이너로서의 끼가 있었다. 파워포인트, 엑셀, 미디어 활용, 스마트 워크 스킬은 물론 기획, 프레젠테이션, 커뮤니케이션 등을 주제로 하는 비즈니스 분야와 강의법, 강사 양성, 컨설팅 등 강사 실무 과정 그리고 셀프 리더십, 자기계발, 동기부여, 퍼스널 브랜드를 높이는 역량 계발 분야까지 다양한 콘텐츠와 재미있는 강의와 강연으로 전국이 그의 무대가 되었다. 지금은 가야 할 곳보다 불러주는 곳이 더 많은 스타 강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교수법과 비보이 시절의 댄스 실력을 활용한 퍼포먼스로 진행하는 그의 강의와 강연은 청중들에게 쉽고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 Short Summary 10년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그 꿈을 10년마다 이루는 남자가 있다. 20대 비보이, 30대 공무원, 40대 스타 강사로 활동 중인 이 책의 저자 정진일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익힌 비보이 실력으로 20대에는 전문 춤꾼의 삶을 살았다. 호기심이 많고 변화를 즐겼던 그는 평생 한 가지 직업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싶었다. 인생 목표에 대한 그의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 10년 법칙이다. 어떤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원한다면 최소한 10년은 투자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물론 그 10년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 몰입해야 한다. 10년 법칙에서 용기를 얻은 그는 이후 10년마다 직업을 바꾸면서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30대에 교육행정 공무원으로 변신한 그는 평범한 공무원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익힌 비보이 실력으로 ‘춤추는 강사’가 되었고, 남들보다 앞서 배운 IT 운영 능력을 활용하여 ‘신지식 공무원’으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40대에는 전문 강사로 변신하여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 에듀테이너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의 꿈은 계속 바뀌고 있지만 큰 맥락은 같다. 그는 다양한 직업을 통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나눔으로써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데서 큰 보람을 느낀다. 그는 지금보다 앞으로 꿀 꿈이 더 많다. 50대는 창업이나 경영을 도와주는 전문 컨설턴트로 살고 싶고, 60대는 이벤트 기획자, 70대는 바텐더, 80대는 플로리스트로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 10년 동안 최선을 다해 그 분야의 정상에 오르는 그는 열정과 꿈의 화신이자, 새로운 10년을 꿈꾸고 그 꿈을 키우는 10년 법칙의 산증인이다. ▣ 차례 프롤로그 Part 1 한 가지 꿈만 꾸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길다 공무원이 된 비보이, 강사가 된 공무원 / 또 다른 꿈을 꾸고 삶을 바꿀 수 있다 꿈이 많으면 나이 먹는 것이 즐겁다 / 꿈은 완성이 아닌 시작이어야 한다 Part 2 꿈은 내 안에 있다 자신에게 100번 물으면 꿈이 보인다 / 미치도록 가슴 뛰게 하는 꿈이 진짜다 허황된 꿈은 꾸지 않는 것만 못하다 / 꼭 먹어봐야 맛을 아나 /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꿈의 로드맵은 변해야 정상이다 / 꿈의 로드맵이 선명해야 기회도 많다 큰 판이 아니어도 무지개 꿈을 꿀 수 있다 Part 3 꿈을 이루는 프로세스는 모두 통한다 What, How보다 Why가 먼저다 / 무조건적인 긍정이 꿈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꿈을 현실로 만든다 / 벼랑 끝에 나를 세워야 꿈을 이루기 쉽다 버리고 비워야 꿈을 이룬다 / 성공이 아닌 성장을 꿈꾸어라 꿈과 꿈이 만나면 ‘퍼스널 브랜드’가 생긴다 / 좋은 습관 10개만 있으면 꿈을 이룬다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이 성장을 돕는다 / 꿈에도 전략과 스케줄링이 필요하다 적절하게 쉬면 꿈을 더 빨리 이룬다 / ‘빨리’보다 ‘제대로’가 중요하다 / 꿈은 현재법이다 Part 4 혼자보다 함께 꿈꿀 때 더 행복하다 꿈을 알리고 나누면 더 빨리 이룬다 / 함께 꿈을 꾸려면 협상하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큰 나무가 된다 / 멘토와 멘티는 선순환한다 꿈을 이루었을 때 박수쳐줄 사람이 있는가 / 도움을 구하고 주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함께 꾸는 꿈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에필로그 꿈이 없는 놈 꿈만 꾸는 놈 꿈을 이루는 놈 정진일 지음 책이있는풍경 / 2014년 5월 / 272쪽 / 15,000원 Part 1 한 가지 꿈만 꾸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길다 나는 전라북도 장수의 시골마을 출신이다.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춤에 빠져 살았다. 춤에 관한 책도 사보고 시간 날 때마다 혼자 열심히 연습을 했다. 1학년 여름방학 때는 서울로 올라가 학원에 등록해 춤을 배웠다. 서울에서 기본기를 익히고 돌아온 후에도 시간만 나면 연습에 매달렸다. 이렇게 익힌 춤 실력을 가을 소풍 때 전교생 앞에서 보여주었다. 내가 브레이크 댄스를 추자 모두가 열광했고, 그날 이후 나는 전교생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학생 시절 나는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춤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대 자원공학과에 진학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공 수업은 재미가 없었고 지루했던 대학 생활의 돌파구로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혼자 춤을 추고 즐기는 데서 끝나지 않고 댄스 서클을 만들어 다른 학생을 가르쳐주고 함께 공연도 했다. 댄스 서클이 유명세를 타면서 공연 의뢰가 들어왔고 돈도 꽤 벌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평생 춤을 추면서 사는 것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러나 평생 한 가지 일만 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호기심이 많고 변화를 즐기는 나로서는 한 가지 일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일, 저 일 하면서 죽도 밥도 아닌 삶을 살기도 싫었다. 하고 싶은 일을 다양하게 하면서도 성공하고 싶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것이 10년 법칙이었다. 이것은 어떤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원한다면 최소한 10년은 투자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법칙은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어떤 일을 시작해 성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이 10년이라면 10년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이루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지금 20대이니 80대까지 살 수 있다면 10년마다 한 번씩, 일곱 번이나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다. 나는 10년마다 어떤 꿈을 꿀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생 춤을 추기 어렵다면 20대만큼은 원 없이 춤에 미쳐 살고 싶었다. 춤으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전문 춤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다. 문제는 30대부터였다. 나는 교육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30대는 교육행정 공무원이 되는 쪽을 택했다. 40대 때의 꿈은 전문 강사인 지식 에듀테이너로 정했다. 강사를 꿈꾼 이유도 큰 맥락은 같다. 내 지식과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댄스 서클을 만들고 회원들을 가르치고 노하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는 이미 확인했다. 40대 중반인 지금 나는 20대 비보이, 30대 교육행정 공무원을 거쳐 로드맵대로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꿀 꿈이 더 많다. 50대는 창업이나 경영을 도와주는 전문 컨설턴트로 살고 싶고, 60대는 이벤트 기획자, 70대는 바텐더, 80대는 플로리스트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이런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나는 평범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꿈을 꾸고 삶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종종 확인하곤 한다.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고 꿈을 찾고 이루는 쪽을 선택하면 누구든 꿈을 이룰 수 있다. 이런 사람 중에는 내 아내도 있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춤을 추다 쓰러진 적이 있었다. 서클 활동에 매달려 밥도 제때 먹지 못하고 미친 듯이 춤을 추다 보니 병이 나고 말았다. 이후 시골집에 내려가 요양하던 중 아내를 만났다. “우체국에 친절하고 예쁘장한 아가씨가 왔는데, 아주 참하게 생겼더라.” 아버지의 말을 듣고 호기심에 우체국에 가보니 정말 귀엽고 예쁜 여직원이 있었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슈퍼마켓 판매 대금을 입금한다는 핑계로 우체국을 들락날락하다가 사랑이 싹텄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결혼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20대 때는 내가 춤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우체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아이 셋을 키우느라 아내는 지쳐갔다.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마침내 9급 공무원이 되었지만 공무원 월급만으로는 다섯 식구가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아마도 이루고 싶은 꿈이 없었다면 그 상황을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묵묵히 그 힘든 생활을 견뎌냈지만 늘 미안했다. 나는 내 꿈을 향해 한 걸음씩 가고 있는데 아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꿈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아내도 자신의 꿈을 찾고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몇 년이 지나 아이들이 컸을 무렵,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꿈이 뭐야?” “꿈? 나야 아이들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게 꿈이지.” “그거 말고, 자신을 위한 꿈이 뭐냐고?” “사실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하고 싶었어.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선생님이 되면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그러면 선생님 되면 되겠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살림하랴 애 키우느라 바쁜데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어. 지금은 머리가 굳어 임용고시에 붙을 자신도 없어.” “아니야. 나보다 머리 좋잖아. 나도 공무원 시험 공부해서 합격했는데 당신이 못할 이유가 없잖아.” 내 말에 반신반의하던 아내도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꿈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용기를 냈다. 다행히 중국 문학을 전공했던 아내는 대학 시절 교직을 이수해 중등교사 자격을 갖고 있었다. 아내는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교대를 나와야 했는데, 다행히 그때는 교대 편입이 가능했다. 아내는 곧바로 2001년부터 교대 편입을 준비했고, 2002년 당당하게 전주교육대학교에 합격했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교대 편입에 성공하자 아내는 자신감이 붙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해 보였던 선생님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교대에 3학년으로 편입해 졸업할 때까지의 2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세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는 해냈고 졸업과 동시에 임용고시까지 합격했다. 누구든 꿈을 꾸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Part 2 꿈은 내 안에 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꿈이 워낙 마음속 깊숙이 숨어 있어 자신조차도 모를 뿐이다. 꿈을 찾으려면 먼저 나를 알기 위한 질문부터 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고 신나는지를 자문해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내 경우 20대까지만 해도 춤은 절대적이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춤추는 것이 좋았고, 춤을 출 때 제일 신났고 행복했다. 그래서 춤은 20대 때 내 꿈이 되었다. 자신에게 묻고 답하면서 좋아하는 일, 행복한 일,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찾았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면 꿈을 확실하게 찾을 수 있다. “몇 번을 되풀이해도 여전히 즐겁고 재미있는가?” 단순히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면 할수록 더 재미가 붙고, 그 일을 할 생각만으로도 설레며, 일이 끝난 후에도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일일수록 꿈에 가깝다. 자신에게 묻는 것만으로 확신하기 어렵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괜찮다. “내가 무엇을 할 때 제일 신나고 재미있어 보여?” “내가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해 보여?” 이런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던져보면 새로운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세계적인 톱 모델 장윤주 씨의 어릴 적 꿈은 개그맨이었다. 남을 웃길 때 행복하고, 실제로 유머감각도 뛰어났지만 그녀는 개그맨이 아닌 모델이 되었다. 그녀가 개그맨의 꿈을 접고 모델의 꿈을 꾼 데는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 한 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원래 그녀는 자신의 젓가락처럼 마르고 가는 다리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그녀의 다리를 보고 감탄하며 “윤주, 너 다리 예쁘구나. 모델 해도 되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미처 몰랐던 강점을 선생님을 통해 발견한 그녀는 그때부터 모델이 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처럼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해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자신이 미처 찾지 못한 꿈을 찾을 수도 있다. 미치도록 가슴을 뛰게 하는 그런 꿈이 있어야 꿈을 이루는 과정도, 꿈을 이룬 후에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 미치도록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아직 진짜 꿈을 찾지 못한 것이다. 취업을 앞둔 학생들은 가슴이 뛰기보다는 빨리 원하는 직장에 취업해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어 한다. 물론 원하는 직장은 가슴보다 머리가 말하는 직장이다. 연봉, 근무조건 등을 따져 안락한 미래를 보장하는 직장 말이다. 내 수강생 중에 졸업을 앞둔 여대생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안정적인 직장을 꿈꾸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음과 같은 내 강연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꼭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할 이유가 있을까요? 1년쯤 늦더라도 정말 가슴 뛰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내 말에 공감하면서도 어떻게 가슴 뛰는 일을 찾을지 막막해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녀가 찾아왔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았다고 했다. 뜻밖에도 강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저도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는 그녀를 선뜻 축하해주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강사를 꿈꾸지 않은 학생이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슴이 하루 이틀 뛰고 그만이라면 그것은 진짜 꿈이 아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한두 달쯤 더 기다려보고 여전히 변함없다면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겠죠.” 실망한 기색으로 돌아갔던 그녀가 한 달 후 밝은 얼굴로 다시 찾아왔다. “계속 가슴이 뛰어요. 내가 누군가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짜릿하기까지 해요.” 그제야 나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지금 그녀는 환경가전 업체 교육팀에서 사내 강사로 활동 중이다.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K-POP 스타 시즌 3에서 유난히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참가자가 있었다. 어렸을 때 트로트 신동으로 불렸던 소녀 홍정희 양이다. 트로트를 불러 유명세를 얻고 방송에도 많이 출연했지만 정작 홍정희 양은 트로트가 싫어 가출까지 했다. 그녀는 트로트 가수가 아닌 발라드 가수를 꿈꾸었다. 발라드 가수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익숙해진 트로트 창법을 버리려고 고생도 많이 했다. 발라드 가수가 되기 위해 K-POP 스타에 참가했던 홍정희 양은 Top 10을 결정하는 예선전에서 결국 탈락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탈락에 가슴 아파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트로트를 좋아하지 못한 그녀가 안타깝기만 했다. 만약 그녀가 트로트 가수를 꿈꾸었다면 이미 그녀는 꿈을 이루고도 남았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일치하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여기서 잘하는 것은 재능이다. 재능이 있으면 그만큼 꿈을 이루기가 쉽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아이들의 꿈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에서 꿈을 찾고,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찾아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잘하는 것을 할 때 성공확률이 높다 보니 부모들이 잘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성공했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무시하고 잘하는 것을 선택하면 성공 가능성은 클지 몰라도 그렇게 이룬 성공이 행복한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좋아하면서도 잘할 수 있는 꿈을 꿀 때만이 행복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나는 내 꿈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다양한 꿈을 꾸는 것이 반드시 나처럼 직업을 바꾸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굳이 직장을 바꾸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 같은 자리에서 판을 새로 짜면 그동안 불평불만을 늘어놓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꿈을 볼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었던 교사가 되었는데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아 고민에 빠졌던 선생님 한 분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졸거나 딴짓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 수업하는 게 점점 재미없어지고 아이들도 싫어졌다. 그렇게 몇 년쯤 지나니 교사라는 직업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내 강연을 듣고 용기를 냈다. 10년마다 직업을 바꾸며 사는 내 삶이 큰 자극이 되었다며 도움을 청해 왔다. 나는 교사를 포기하고 새 삶을 찾겠다는 그녀의 생각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방법을 찾아보도록 권했다. 찾아보면 분명 길이 있다. 실제로 그 선생님은 교사를 그만두기 전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마지막 최선을 다한다는 심정으로 수업 방식을 바꾸었다. 강의식 수업 대신 질문을 많이 하는 토론식 수업을 했고 수업이 지루해지면 재미있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몰라보게 좋아졌고, 자연스럽게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도 친밀해졌다. 지금 그 선생님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상담교사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과 깊이 소통하면서 학생들이 의외로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어 외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편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사례처럼 새로운 꿈은 꼭 큰 판을 바꿀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현재의 판에서 조금만 판을 짜도 새로운 기분으로 가슴 설레며 일을 할 수 있다. Part 3 꿈을 이루는 프로세스는 모두 통한다 머릿속에서 꿈만 꾼다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What과 How를 생각하기 전에 Why부터 생각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요즘 20대가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가 공무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안정성 때문이다. 일반 기업의 경우 40대만 되어도 정리해고의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니 정년 보장이 되는 공무원이 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공무원이 된 이유는 다르다. 10년마다 직업을 바꾸는 꿈을 꾸는 내게 정년 보장은 큰 의미가 없다. 나는 우선 간접적으로 대한민국 교육에 기여하고 싶었다. 교육행정 공무원이 되어 학교가 아이들이 마음껏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배움터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또한 나는 가능한 한 다양한 일을 경험하기를 원했다. 공무원은 일반 기업과 달리 2~3년마다 계속 보직을 바꾸어주며,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일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처럼 공무원이 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한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What과 How보다 Why부터 착실히 한 덕을 톡톡히 보았다. 나는 67일이라는 짧은 기간 시험을 준비해 단번에 합격했다. 붙어야 할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에 시험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처럼 Why는 꿈을 계속 꾸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외풍에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주고, 다시 앞으로 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준다. 꿈을 이루었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 이유는 꿈을 이루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당연한 것은 꿈으로서의 감동이 없다. 재벌 2세가 젊은 나이에 사장이 되는 것을 보고 감동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없다. 그가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의 주인이 될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기 때문이다. 꿈은 그 자체가 반전을 품고 있다. 재벌 2세가 그룹 회장이 되는 것은 꿈이 될 수 없지만 그룹의 말단 직원이 회장이 되는 것은 꿈이 될 수 있다.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룹 회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보다 절대 될 수 없는 조건과 이유가 수도 없이 많다. 그 많은 악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전을 꾀하는 것이 바로 꿈이다. 꿈 자체가 반전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꿈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현실이나 조건도 달리 볼 수 있다. 단점이나 약점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강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조건이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그만큼 꿈을 이룰 가능성이 커지고, 그렇게 이룬 꿈은 감동도 배가된다. 나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머리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 노력했고, 학벌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전문 강사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조건을 뛰어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만들면 조건은 더 이상 꿈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무기가 된다. 따라서 악조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슬퍼할 것이 아니라 기뻐해야 한다. 보통 꿈을 찾으면, 어떻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꿈을 이루는 방법을 찾기 전에 무엇을 버리고 비울 것인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 나는 술, 담배, 커피를 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는 체질적으로 술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마시지 않는 이유는 이루고 싶은 꿈 때문이다. 특히 40대 세 번째 꿈인 강사는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있더라도 체력과 건강이 허락되지 않으면 유지하기 어려운 직업이다. 20대 때 80대까지 10년마다 한 가지씩, 모두 일곱 가지의 꿈을 꾸겠다는 로드맵을 그리고 나니 가장 먼저 걸리는 것이 건강이었다. 최소한 90세까지 건강해야 꿈을 이룰 수 있기에 건강을 위협하는 세 가지를 멀리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나는 무척 건강하다. 꿈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조금만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데, 시간이 없어 포기했다고 아쉬워한다.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67일 준비해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단기간에 합격한 비결에는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버린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67일 동안 친구도 만나지 않고, 부모님도 한 번도 찾아뵙지 않고 시험 준비에만 몰두했다. 또한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공부 중간에 차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는 시간도 버렸다. 이렇게 하니 2달 공부한 양이 다른 수험생들이 6개월 공부한 양과 거의 맞먹을 정도였다. 어떤 꿈을 꾸든 버리고 비우면 꿈을 이룰 시간이 넉넉해진다. 내가 10년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이룰 수 있는 것도 다 꿈을 방해하는 요인을 버렸기 때문이다. 40대가 되기 전까지 나는 성공을 꿈꾸었다. 20대에는 최고의 비보이를 꿈꾸었고, 30대 때는 가장 일 잘하는 공무원을 꿈꾸며 살았다. 40대에도 그냥 강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최고의 명강사로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성공을 쫓는 내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 없는 성공이 아니라면 뭘까? 고민 끝에 얻은 해답이 성장이다. 사실 성공의 기준은 애매하다.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인 성공의 기준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성공에는 비교적 분명한 목표치가 있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강사로 성공하려면 최소한 연봉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다. 성공을 위한 분명한 목표를 세우면 꿈을 이루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도달해야 할 분명한 목표치가 있는 경우 그것을 달성했을 때는 성취감을 느끼고 다음 목표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얻지만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실패했다는 생각에 쉽게 좌절하고 지쳐 다음 목표를 향해 갈 힘을 잃는다. 전문 강사가 되기 위해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너무 힘들었다. 처음부터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자리 잡기가 그렇게까지 어려우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서울의 오피스텔 임대료가 60만 원이었고, 아내에게 강사 첫해에는 월 250만 원은 주겠다고 했으니 내 생활비까지 포함해 매달 최소한 350만 원을 벌어야 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강연은 들어오지 않았다. 현금서비스와 카드깡으로 돈을 마련해 생활비를 집에 보낸 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350만 원의 압박감은 커졌다. 강연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수입이 조금씩 늘어도 350만 원이 주는 압박감은 여전했다. 왜 열심히 해도 목표치에 빨리 도달하지 못하는지 속이 상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지쳐갔다. 지쳐가는 나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성공을 목표로 했을 때는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비록 목표 달성을 하지 못했어도 분명 발전했다. 지난달에는 250만 원, 이번 달에는 300만 원을 벌었다. 이런 추세라면 350만 원을 충분히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했다면 그것만으로도 기뻐할 이유는 충분했다. 이제 나는 성공보다 성장을 먼저 이야기한다. 더 이상 나는 성공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목매지 않는다. 속도가 늦더라도 성장을 꿈꾼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 멀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단숨에 성공을 이룰 수 없다. 오랜 시간 노력해야 성공의 여신이 환한 미소를 보낸다. 그래서 습관이 중요하다. 어쩌다 한두 번 의식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어려워진다. 의지도 약해지고 몸도 귀찮아져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습관이 되면 다르다. 머릿속으로 의지를 다지며 애쓰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기억하고 움직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성공하는 데 도움 되는 생각과 행동을 하니 성공하기가 그만큼 쉬울 수밖에 없다. 꿈도 그렇다. 꿈을 이루고 싶다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좋은 습관 10개만 확실히 있어도 꿈은 이루어진다. 꿈을 이루려면 좋은 습관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꿈을 방해하는 나쁜 습관도 고쳐야 한다. 우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믿지 못하고 매사 부정적으로 사고한다. 꿈을 이루어야 할 주체가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큰 문제다. 혹시라도 자신을 비하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고칠 것을 권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도 꿈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나쁜 습관이다. 꿈을 이루려면 행동을 해야 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는 습관이 있다면 이것 역시 고쳐야 한다. 꿈을 향해 가다 보면 수많은 장애물을 만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쉽게 포기하면 꿈을 이룰 수 없다. 새로운 습관을 몸이 기억하려면 적어도 2달이 필요하다고 한다.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습관을 만들려면 2달을 기한으로 좋은 습관 만들기 캠페인을 벌이면 된다. 나의 경우 1년에 한 가지씩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다음과 같은 캠페인을 벌였다. ‘하루 한 가지씩 좋은 일을 하자’, ‘하루 열 번 이상씩 웃자’, ‘하루에 100자 이상 쓰자’, ‘하루에 1000자 이상 읽자’, ‘하루에 만 보 이상 걷자’ 등이다. 이처럼 한 가지 캠페인을 1년 동안 계속하면 완전한 습관으로 몸에 밴다. 나만의 캠페인을 만들어 좋은 습관을 많이 만들수록 꿈도 쉽게 이루어진다. Part 4 혼자보다 함께 꿈꿀 때 더 행복하다 ‘병은 알려야 낫는다’라는 말이 있다. 병을 고치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병을 알리면 어떤 형태로든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다른 사람들의 격려와 도움을 받으면 병을 고치기가 한결 수월하다. 꿈도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소중한 꿈이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혼자만 간직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병을 알려야 빨리 낫듯이 꿈도 다른 사람에게 많이 알리면 알릴수록 꿈을 이루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나의 경우에도 내 꿈을 아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도움의 손길을 많이 받았다. 공무원 시절에 직접 사내 강사로 강연하기도 하고, 좋은 강사를 초빙해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업이나 단체의 교육 담당자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40대의 꿈이 강사라고 알리곤 했다. 고맙게도 그들이 공무원을 그만두고 강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강연을 많이 연결해주었다. 10년을 목표로 했는데 3년 만에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다 꿈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 덕분이다. 지금부터라도 머뭇거리지 말고 자신의 꿈을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보자. 꿈을 함께 공유할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시너지 효과도 커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가까운 주변 사람부터 시작해 꿈을 공유할 사람들을 확대해보기 바란다. 꿈을 이루는 과정이 더 즐겁고 재미있어질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꿈을 알렸을 때 반드시 응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의 반대와 우려는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의 반대는 다르다. 내 꿈을 이루겠다고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면서까지 꿈을 고집하기란 쉽지 않다. 가족을 내 편으로 만들려면 설득보다 협상을 해야 한다. 가족이 꿈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 꿈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꿈이 이루어지기도 힘들어 보이고, 설령 꿈을 이룬다 해도 여전히 삶이 고생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그런 가족은 말로만 안심시킬 수 없다. 보다 현실적인 거래, 즉 협상이 필요하다. 내 아내는 연애할 때부터 내 꿈을 알았다. 비보이의 꿈을 이루고 공무원의 꿈을 시작할 때 적극적으로 격려했다. 비보이보다 공무원이 훨씬 더 안정적인 직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을 그만두고 강사가 되겠다고 할 때는 달랐다. 아내가 불안해한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였다. 안정적인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불안정한 강사의 세계로 뛰어든다고 하니 불안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걱정 마, 첫해는 자리 잡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공무원 때 받았던 월급은 꼭 맞춰줄게. 대신 1년이 지날 때마다 50만 원씩 올려줄게.” 아내가 교사여서 맞벌이를 하고 있었지만 아내 월급만으로 세 아이를 키우는 것은 무리였다. 내 꿈을 이루고자 모든 경제적인 부담을 아내에게 떠넘길 수도 없었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어? 증거를 보여줘.” 나는 공무원을 그만두기 전에 파사모, 즉 파워포인트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만난 우석진 씨와 <우정클럽>이라는 프레젠테이션 교육과정을 만든 적이 있었다. 디자인이 뛰어난 우석진 씨와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강한 나의 강점을 합친 강좌로 8시간 과정에 1인당 20만 원을 받았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나는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우정클럽>을 통해 번 수입을 공개했다. “교육 과정이 1인당 20만 원이야. 한 번에 20명 정도 강의를 듣는데 하루 8시간 강의해서 몇백만 원을 벌 수 있어. 꿈이 아니야. 실제로 강의하고 얻은 결론이니까 믿어도 돼.” 이처럼 협상할 때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구체적인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상대방도 불안감을 덜고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때는 내가 갖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노력한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강사로 활동하기 전에 강의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콘텐츠 소스를 공개한 적이 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제작하기는 어렵다. 콘텐츠 제작에 기본적으로 일주일이 걸렸고, 어떤 작품은 한 달 이상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어렵게 만들다 보니 솔직히 남 주기가 아까웠다. 하지만 결심을 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안에는 강사와 관련된 사이트 중에 디프리라는 사이트가 있다. 디프리는 디지털 프레젠테이션 리더의 약칭이다. 나는 디프리 사이트에 디지털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공개했다. 동영상 자료뿐만 아니라 동영상을 만들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 소스까지 오픈해서 통째로 다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댓글 수백 개가 달렸다. 유용한 자료를 공개해주어 고맙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나 혼자만 움켜쥐고 있었다면 시간이 지나면 퇴색해 가치가 떨어졌을 텐데, 수백 명이 함께 쓰니 그 가치가 수백 배로 커졌다. 수많은 강사들이 동영상을 활용해 좀 더 임팩트 있는 강의를 하면 강의를 듣는 사람들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소중하지만 남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면 이처럼 파급 효과가 크다. 내 노하우나 다름없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자료를 공개한 덕분에 본격적으로 강사로 나서기도 전에 유명해진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면 항상 그 이상이 내게 돌아왔다. 다만 돌아오는 시기와 형태가 제각각 다를 뿐이다. 설사 돌아오지 않더라도 주어야 한다. 주는 것만으로도 더 크게 성장할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끼는 노하우를 공개하면 그 이상의 노하우를 갖추어야 하므로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 주고 텅 빈 상태로 남아 있으면 경쟁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몰라보게 성장한 자신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꿈을 꿀 때 좋은 점은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조금은 수월하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꿈을 꾸더라도 얼마든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왕 도움을 주고받으려면 제대로 주고받는 것이 좋다. 도움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상대가 원하는 도움의 수준을 알아야 한다. 엑사모(엑셀을 사랑하는 모임)에 가입해 열심히 엑셀을 배울 때의 일이다. 회원들의 수준은 편차가 아주 심하다. 엑셀 고수들도 많았지만 엑셀 초보자도 많았다. 초보자들은 엑셀을 사용하다 막히면 고수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고수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오면 신속하게 답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그들의 답변이 너무 어렵다는 데 있었다. 엑셀을 웬만큼 안다는 내가 봐도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회원들을 위해 쉽게 설명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보통 초보자들이 질문하면 텍스트로만 답변하는데 나는 단계별로 엑셀 화면을 캡쳐해 그림으로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다음 날 다시 엑사모 사이트에 들어가니 내가 단 설명에 댓글이 폭주했다. 화면과 함께 설명해주니 이해하기 쉽다며 고마움을 표시한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렸다. 그날 이후 질문을 올리면서 ‘정진일 선생님 답변을 기다립니다.’라는 질문이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질문에 답하느라고 밤을 꼬박 새울 때도 많았지만 답변을 다는 일은 신나고 즐거웠다. 내가 한 답변이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뛰게 했고 보람을 느끼게 했다. 그 덕분에 26만 회원의 엑사모 살림을 책임지는 운영단장을 맡게 되었다. 이처럼 제대로 도우면 도움 받은 당사자도 좋지만 도움을 준 내가 더 좋다. 내 도움으로 누군가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했을 때 기쁨도 보람도 두 배가 된다. 사람은 누구나 영향력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만 영향력이 미치고, 어떤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어떤 사람은 전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등, 그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영향력을 좋은 방향으로 발휘하면 세상이 좋게 변화하겠지만 나쁜 쪽으로 행사하면 세상은 나쁜 방향으로 퇴보하게 된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꾸고 싶은 꿈은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다. 나의 좋은 모습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좋은 모습으로 변한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좋게 변화시키는 선순환을 원한다. 그리하여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데 한몫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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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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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tool box
thinking tool box 최윤식 지음 지식노마드 / 2012년 9월 / 336쪽 / 16,000원 ▣ 저자 최윤식 미국의 권위 있는 미래학 정규과정인 휴스턴 대학교 미래학부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학위를 받았다. Peter C. Bishop, Christopher Burr Jones, Wendy Schultz 등 미…
thinking tool box 최윤식 지음 지식노마드 / 2012년 9월 / 336쪽 / 16,000원 ▣ 저자 최윤식 미국의 권위 있는 미래학 정규과정인 휴스턴 대학교 미래학부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학위를 받았다. Peter C. Bishop, Christopher Burr Jones, Wendy Schultz 등 미래학의 대부들에게 사사받은 그는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아시아와 한국을 대표하는 전문 미래학자(Professional Futurist)로 주목받고 있다. 그의 책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번역ㆍ출간되어 읽히고 있다. 미래예측서인 『2030년 부의 미래지도』, 『2020 부의 전쟁 in Asia』, 『10년 후에도 살아남을 직장인을 위한 안내서』 등이 중국과 일본, 대만에서 출판되었으며, 『2030 부의 미래지도』는 출간 직후 일본 아마존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 Short Summary CIA가 분석하는 정보의 90%는 우리가 이미 아는 정보라고 한다. 힘들게 걸레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고마운 마음을 느낄 뿐이지만 누군가는 스팀청소기를 생각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조와 통찰이 천재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CIA와 스팀청소기 개발자들의 예에서 보듯 그들은 천재적인 영감을 발휘한 것이 아니다. 단지 보통 사람들과 사물을 보는 방법, 생각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통찰력의 출발점은 “잘 보고, 잘 생각하는” 것이다. 사물을 보는 것은 인간의 눈이 아니라 두뇌라고 한다. 인간은 뇌의 처리 용량의 한계 때문에 과거의 경험과 학습된 지식을 가지고 세상에 대해 나름의 모델을 구축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뇌와 마음은 그 모델과 견주어 현재 상황을 판단하고 저울질한다. 따라서 보통 사람이 생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천재들이 개발한 생각의 기술을 배워서 사고를 넓혀나가야 한다. 정보에서 사실과 숫자만을 추출해서, 그 연관관계를 찾고, 구조화하는 방법을 학습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창조성은 규칙과 습관의 산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통찰력 넘치는 사람들의 생각하는 기술을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또한 사물을 잘 관찰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서, 통찰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집단적 통찰로 확대하고, 구체적인 성과로 연결시키는 방법을 5가지 생각의 도구로 정리하여 소개한다. ▣ 차례 프롤로그_ 생각의 차이가 미래의 차이를 만든다 1부 통찰 thinking tool 1. 제대로 봐야 통찰이 시작된다 1. 시각에도 지능이 있다 / 2. 혁신적 보기의 5단계 / 3. 형태를 본다는 것의 의미 4. 관계를 본다는 것의 의미 / 5. 이치, 구조와 흐름을 본다는 것의 의미 6. 보는 능력이 차이를 만든다 thinking tool 2. 생각의 기술로 통찰을 완성하라 7. 생각하는 능력의 화폐 가치 / 8. 생각 비즈니스 / 9. 생각하는 법을 다시 생각하라 10. 생각의 프로세스 / 11. 시각적 조작의 사고기술 / 12. 비판사고 / 13. 재정리사고 14. 확장사고 / 15. 시나리오 사고 / 16. 시각적 조작을 돕는 10가지 도구 2부 비전 thinking tool 3. 통찰을 비전으로 전환하는 기술을 활용하라 17. 미래지도, 미래를 선택하고 그리는 핵심 기술 / 18. 미래지도를 만드는 법 19. 게임 속에 들어가서 생각하기 / 20. 미래 나침반 3부 성과 thinking tool 4. 비전을 성과로 전환하는 기술을 활용하라 21. 일하는 박자를 찾아라 / 22. 일 잘하는 개인 원리 5 / 23. 혁신적으로 일하는 팀 원리 5 thinking tool 5.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비전으로 리드하라 24. 혁신적으로 이끌라 / 25. 사람을 세우는 7단계 26. 통찰, 창조, 혁신이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라 / 27. 미래형 리더십은 아버지 리더십이다 에필로그_ 훈련된 통찰력으로 거인을 이길 수 있다 참고문헌 thinking tool box 최윤식 지음 지식노마드 / 2012년 9월 / 336쪽 / 16,000원 1부 통찰 thinking tool 1. 제대로 봐야 통찰이 시작된다 시각에도 지능이 있다: 중국 역사에서 장량과 유방의 관계처럼 원만했던 군신관계는 보기 힘들다.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한 한나라의 유방은 장량의 공로를 인정하여 천하에서 가장 비옥한 땅에서 3만 호의 식읍을 고르라고 했다. 이것은 공신 중에서 최고 대우였다. 하지만 장량은 이를 사양했다. “폐하께서 신의 계책을 쓰셔서 때로는 운 좋게 적중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3만 호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큰 상을 받는다면 다른 공신들의 표적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공을 다투는 다른 대신들에게 메시지도 주어야 했다. 그래서 “폐하께서 신의 계책을 쓰셔서 때로는 운 좋게 적중”할 수 있었다고 하여, 다른 공신들에게 자신이 3만 호의 식읍을 사양하는 것이 결코 공적이 적어서가 아니고 겸손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타냈다. 그의 상황을 꿰뚫는 통찰과 도량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한나라 개국 일등 공신으로 국토의 절반을 경략하던 군사 천재 한신이 공명에 연연하다가 유방의 의심을 사서 토사구팽 당했던 것과 좋은 대비를 이루는 처신이다. 미래를 꿰뚫어 본 장량의 통찰력은 눈앞의 작은 이해에 얽매이지 않고 ‘멀리 보는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혁신적 보기의 5단계: 혁신적으로 보는 기술은 통찰과 창조, 혁신의 출발점이다. 혁신적으로 보기는 다음 5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 물리적 보기 형태: 정보를 일단 보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선택하고 선택된 정보에서 견해를 제거한 후 객관적 사실과 숫자만을 본다. (2단계) 심층요소들의 연관 관계 보기: 선택된 객관적 사실과 숫자들이 심층적 요소들과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는지를 본다. (3단계) 이치 보기: 보고자 하는 영역의 심층요소와의 연관 중에서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치를 살펴본다. (4단계) 구조 보기: 이치와 연관된 전체적인 구조를 본다. (5단계) 흐름 보기: 구조를 바꿀 만한 변화로는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 5단계를 다 살펴본 후에야 비로소 “잘 보았다!”고 말할 수 있고,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제대로 보는 것이 통찰의 시작이다. 형태를 본다는 것의 의미: 당신 자녀에게 요즘 가장 유명한 가수에 대해 물어 보라. 부모 생일은 몰라도 좋아하는 가수에 대해서는 탐정 수준으로 정보를 쏟아낼 것이다. 당신의 아이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뇌의 능력을 아주 잘 발휘한 것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옛말의 타당성은 현대 뇌 과학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우리는 뇌의 이러한 작동원리를 더 잘 사용해야 한다. 어떻게? 이제까지 생존을 위해 억지로 보아야 했던 정보를 뇌가 ‘보고 싶은 것’으로 바꿔주면 된다. 질문을 던져서 당신의 뇌가 관심을 갖게 만들라. 쉽지만 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하다. 질문을 통해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야’라고 각성을 시키면 우리의 뇌는 감성적 혹은 의식적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뇌가 이런 상태가 되면 곧바로 학습을 통해 기억의 회로를 재조정하며, 그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대상에 대해 뇌가 자동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감시, 경계, 순응 등의 작동을 하게 된다. 맥도널드는 질문과 관찰을 잘 활용한 회사이다. 이 회사는 “언제 사람들이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통해 햄버거를 파는 표준을 만들었다. 맥도널드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 중의 하나가 무언가를 먹을 때, 입을 한껏 벌리고 입안에 가득 포만감을 느낄 때라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평균 입을 크게 벌리는 길이는 50밀리리터이다. 그래서 맥도널드는 위아래를 합한 빵의 두께 34밀리리터, 가운데 고기 패드 10밀리리터 해서 총 44밀리리터의 햄버거를 출시했다. 관심이 형성된 다음에는 관찰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정보와 지식은 관찰을 통해서 습득된다. 20세기 제조업 최대의 혁신인 포드 자동차의 자동 조립 시스템은 헨리 포드가 천장의 트롤리로 소나 돼지를 통째로 이동시키는 시카고 정육업자들의 작업방식을 관찰하여 응용한 아이디어였다. 관계를 본다는 것의 의미: 보이는 것은 눈으로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뇌(이성)를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뇌를 활용하는 사고기술이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두뇌를 사용해서 눈에 스쳐 지나가는 현상들 속에서 언뜻 봐서는 알아챌 수 없는 정보나 좀 더 깊고 폭넓은 무언가를 발견해내야 한다. 물리적 형태 보기를 통해 수집하고 정리한 정보들 중에서 관심이 가는 것에 대한 키워드를 만들고, 선정된 키워드에 관한 심층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키워드와 관련된 정보나 지식들 중에서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치와 구조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인가?” “키워드와 관련된 정보나 지식들 중에서 변화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통해 알고 싶은 주제와 관련하여 ‘예전과 비교해서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을 먼저 구분하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 정보를 선택하여 구조화할 때는 ‘이치 파악→구조 파악→흐름 관찰→구체적 사례 조사→변화 예측’의 순서로 해야 효율적이고 맥을 놓치지 않는다. 이치, 구조와 흐름을 본다는 것의 의미: 앞에서 겉으로 보이는 현상 속에 있는 사실에 대한 관찰과 보이지 않는 사실에 대한 관찰을 살펴보았다. 이제 세 번째 관찰 방법, 즉 과거와 비교하여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을 구별하면서 ‘이치, 구조, 흐름’을 관찰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오늘날의 세계는 한두 가지의 사건만을 따로 떼어내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시대에는 예전의 단순한 사고방식이나 현상 그 자체만을 보는 시각으로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마이애미의 나비를 보고 북경에서의 폭풍우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새로운 사고 패턴이 필요하다. 시스템 사고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스템 사고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부분(parts)을 이해하기 위해 전체(whole)를 보는 것이다. 특별히 각 부분이 어떻게 연결(connection)되어 있는지를 통해 전체를 본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어느 한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면 그 영향이 나머지 전 부분에 미치게 된다. 나머지 전 부분의 변화는 다시 최초로 변화가 일어난 부분에 다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을 가리켜 피드백 순환고리(feedback loop)라고 한다. 바로 이 피드백 순환고리가 시스템사고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금융업무의 많은 부분이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다. 모바일 금융 활성화는 장기적으로 오프라인 점포들의 역할을 바꾸는 압력으로 작용하는 연쇄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등장하면 소비자는 이전에 자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 욕구, 결핍을 느끼게 되고, 그것은 다시 당신의 제품과 서비스에 새로운 변화의 압력으로 작용한다. thinking tool 2. 생각의 기술로 통찰을 완성하라 생각하는 능력의 화폐 가치: 하버드 대학교 수학과의 사이먼스 교수는 2007년 연봉이 무려 28억 달러에 달했다. 그는 수학자이기도 하지만 헤지펀드 매니저이기도 하다. 그가 1989년 만든 펀드는 2007년까지 연평균 30%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그의 투자회사에는 경영학을 전공한 직원은 1명밖에 없다. 나머지 240여 명의 직원은 수학, 천문학, 통계학, 물리학 박사 출신이다. 그들은 시스템 사고기술을 사용하여 과거의 거래 데이터에서 특이한 패턴들을 추출하고, 이를 다시 순수과학적 사고와 분석기법들을 통해 검증하고 완성한다. 이렇게 나온 지식들을 수학적 지식으로 바꾸어서 매매시스템에 연결시킨다. 이런 수식들이 수천 개 모여서 펀드수익률을 신화적 수준으로 만든 것이다. 생각 비즈니스: 리더 50명을 연구한 로저 마틴은 탁월한 리더의 특징으로 ‘대립하는 두 가지 선택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에서 두 선택의 장점을 모두 통합해내는 창조적 사고 능력’을 꼽았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무료 공개 정신과 수익성이라는 회사의 필요를 창조적으로 통합해 낸 레드헷 리눅스의 봅 영, 대형 호텔의 다양한 편의성과 작은 호텔의 친근감을 모두 살린 포시즌스 호텔의 이사도어 샤프 등이 혁신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으로 성공한 전형적인 사례다. 혁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이 질서를 갖추어 가는 과정에 돌입한다는 뜻이다. 서로 연관되어 있는 세상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보고, 해석하고, 재구조화함으로써 인생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생각하는 법을 다시 생각하라: 우리는 창조, 혁신, 통찰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살지만 그것에 대해 정의해 보라는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이에 대해 진정으로 깊이 생각해보는 일을 게을리했다는 반증이다. 진정한 창조는 ‘기존의 것에 무언가를 새롭게 더하는 것’이다. 이렇게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분석하여 이해하고 적절한 새로운 것을 찾는 생각의 근육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혁신은 무엇일까?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정의한다. “혁신은 목적과 초점을 갖고 조직의 경제적, 사회적 잠재력에 변화를 일으키려는 노력이다.” 그는 혁신의 기회를 찾기 위해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에서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미래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고가 아주 중요하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통찰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 자기를 둘러싼 내적ㆍ외적 전체 구조를 새로운 시점에서 파악하는 일’이다. 통찰은 타고난 신비의 능력이 아니라, 주위의 상황을 새로운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고쳐보는 능력에서 나온다. 생각의 프로세스: 인간은 시각적 조작 능력이 있기에 다른 동물들과 달리 상징적 이해를 할 수 있다. 원숭이는 손끝으로 달을 가리키면 손끝만 보지만, 인간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손끝이 가리키는 달을 볼 수 있다. 이 선천적 능력의 차이가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이고, 통찰력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인간의 시각지능은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외부 사물의 높낮이, 거리, 움직임 등을 구분하며, 더 나아가 현재 일어난 사건에 대한 사태 파악이라는 고난도의 시각적 해석을 시도한다. 두 번째 단계로 인간의 뇌는 해석 단계를 통해 들어온 시각적 자료들과 객체들을 머릿속에서 다시 그려보거나, 그것의 개념적 측면이나 관계적 측면을 지적으로 조작한다. 이런 작용이 우리가 말하는 생각의 과정이다. 우리는 다양한 사고기술을 활용해서 외부 환경에 대해 지적인 조작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낸다. 이것이 바로 창조, 혁신, 통찰이다. 시각적 조작의 사고기술: 시각적 조작을 통한 혁신적으로 생각하기 단계에서의 사고기술들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1) 비판 사고(점검사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2) 재정리사고(분류사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재정리하는 것이다. (3) 확장사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연결하는 것이다. 확장사고는 혁신 및 창조 전략에 활용한다. 비판사고, 재정리사고, 확장사고의 3가지 기본적인 사고기술은 고리로 엮여 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선순환이 만들어지면 어느 정도 사고의 임계점을 돌파하는 계기가 마련되며, 그때가 되면 마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듯이 순간순간 새로운 생각이 터져 나오면서 자기성찰, 통찰, 미래예측이라는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비판사고: 비판사고는 “우리가 믿는 것들이 과연 진실인가?”를 묻는 사고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비판사고는 창의력을 기르는 데 아주 좋다. 비판사고를 통해 현재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의 논리적, 비현실적인 오류들을 찾아내면 그곳이 위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가는 문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아이디어나 주장에서 실수나 오류가 발견될까 봐 두려워 비판사고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로 실수나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조직 내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가능한 많은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비판사고를 해보라. 6개월만 지속한다면 9999번의 실수와 오류를 통해 전구를 개발한 에디슨처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미국 NASA의 연구원들이 무인 달착륙선에서 사용할 깨지지 않는 전구를 개발할 때의 이야기이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봐도 지구 밖에서 깨지지 않는 전구를 개발하기는 쉽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프로그램 책임자인 바바킨 박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박사가 되물었다. “겉을 싸고 있는 유리전구의 목적과 원리가 무엇입니까?” 연구원들이 대답했다. “필라멘트 주위를 진공상태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박사는 “달은 이미 진공 상태이기 때문에 전구가 필요 없는 필라멘트를 만들어보라.”는 해법을 제안했다. 이처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기본적인 원리나 이치로 되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쉽게 해법을 찾을 가능성이 커진다. 재정리사고: 우리의 두뇌는 비판적 시각 조작을 통해 심층적 논리 분석을 마친 후에는 바로 종합적 재정리사고를 시작한다. 이 능력을 예리하게 다듬으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 할까? 이 단계에서는 패턴인식사고, 매트릭스사고, 로직트리사고, MECE 분류 및 재정리사고, 시스템사고와 비즈니스 프로파일링 사고의 고급 기법 등이 사용된다. 이 중 가장 기초적인 패턴인식사고에 대해 알아보자. 정보나 지식을 패턴화해서 재정리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진화하고, 탄생되는 패턴들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패턴화된 지식을 근거로 새로운 창조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패턴인식사고는 매우 유용하다. 예를 들어 아데닌, 티민, 구아닌, 시토신이라는 단 4개의 핵산염기만으로 우리는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 정보를 암호화할 수 있다. 또 다른 유용한 생각 도구는 매트릭스(matrix)사고다. 2X2 매트리스사고는 대립하는 힘들 간의 긴장 관계를 가장 적절하게 반영하면서 재정리할 수 있는 사고 기술이다. 매트릭스 사고를 잘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매트릭스를 구성하는 가로와 세로의 기준 2가지를 어떻게 선별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립하는 2개의 핵심 변수로 범위를 좁혀서 내가 가진 정보나 지식을 재정리하여, 알고자 하는 영역이나 풀고자 하는 문제를 새롭게 재검토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수 있다. 확장사고: 확장사고를 가능케 하는 확장적 시각 조작의 생각도구로는 이중표상과 다차원적 형상화, 상상, 유추, 구상, 구성, 가추, 콘셉트 사고 등이 있다. 사람은 하나의 사물에서 2개 이상의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를 이중표상이라고 한다. 달을 보며 떡방아 찧는 토끼를 연상하는 것과 같다. 형상화 능력이란 어떤 특정한 생각이 떠오를 때, 그것을 머릿속에서 이미지로 형상화시켜 보거나 혹은 실제로 종이 위에 시각화시켜 보는 것으로서 혁신적으로 생각하기의 기초이다. 이 능력을 가장 많이 활용한 사람이 파바로티이다. 그는 “나는 실제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머릿속으로 음악 연습을 더 많이 한다.”라고 했다. 이러한 이중표상과 형상화를 기초로 상상, 추상, 유추 등이 가능해진다. 구상사고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능력이다. 반면 구성사고는 구상사고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해서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수립하는 사고기술이다. 구상사고에서는 상상사고가 중요하며, 구성사고에서는 논리적 사고나 시스템적 기술사고가 중요하다. 가추사고는 100% 맞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맞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새로운 가정을 만들거나 ‘새롭게 추측하거나’ 혹은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 주장을 도출하는 방법이다. 가추사고는 추리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탐구하는 데 유용하다. 그래서 셜록홈즈 같은 탐정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은 이미 일어난 일에서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창의와 혁신이 필요한 영역에서 생산적으로 자주 사용했다. 시나리오 사고: 이제는 정보를 필터링하고, 비판하고, 재정리하고, 확장한 결과를 묶어서 하나의 전체로 연결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시각적 조작을 할 차례이다. 그렇다면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도 호랑이처럼 멀리 보는 예리한 눈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당신의 확장사고에 미래예측 사고기술을 접목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미래를 예언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미래들은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나리오 사고가 중요하다. 시나리오는 미래에 대한 가상의 모형이다. 자신의 생각을 확장시킬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짜인 현재 또는 미래 상황이 그림처럼 잘 구성된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속에 감정이입을 하면 몇 배 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시나리오는 미래에 대한 일종의 모형이므로 대상의 구조와 기능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을 끼칠 만한 결정적인 요소만을 추출하여 만들어야 한다. 시나리오를 가장 잘 활용한 사람 중 한 명이 이순신 장군이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머릿속으로 철저하게 일본군과 전투가 벌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설정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단단하고 높지만 느린 조선의 판옥선은 날렵하고 빠른 일본의 배에 순식간에 포위되어 조총 세례를 받고, 왜군의 화공에 함대 전체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시나리오 분석에 근거하여 이순신 장군은 멀리 떨어진 채 제한된 시간 내에 적함에 함포 사격을 통해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야 이길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학익진전술이다. 그는 명중률이 떨어지는 함포라도, 마치 학의 날개처럼 전선을 포진하는 대형을 만들어서 적함들을 한 지점으로 몰아넣고, 그곳에 포격을 하면 적에게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냈다. 일본군의 배는 암초가 많은 연안과 조수간만의 차가 큰 곳에서는 이동에 어려움이 있어서 위험 지역을 빠져나가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학익진에 걸리면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 얼마나 창의적인 대안인가? 2부 비전 thinking tool 3. 통찰을 비전으로 전환하는 기술을 활용하라 미래지도, 미래를 선택하고 그리는 핵심기술: 미래지도란 이기는 전략을 시각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사명선언문이 미래의 방향을 압축해서 표현한 것이라면, 미래지도는 지속적인 창조와 혁신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과거에 내가 어디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미래의 방향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에 관해 자세하게 기록하거나 그린 것이다. 1979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신입생에게 졸업 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인터뷰를 실시했다. 그때 3%는 뚜렷한 목표와 계획을 종이에 기록해 놓았고, 13%는 목표는 있지만 종이에 기록하지 않았고, 84%는 나중에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10년이 지난 후 13%에 속했던 학생은 84%에 속한 학생보다 2배 높은 수입을 벌고 있었고, 3%의 그룹은 나머지 97% 그룹보다 10배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미래지도가 필요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지도를 만들어 매일, 매주, 매월, 매년 최적화해나가는 것이다. 미래지도를 만드는 법: 첫째, 먼저 일어날 개연성이 높은(plausible) 미래 상황을 만들어라. 이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징후들을 논리적, 체계적, 생태학적으로 분석하여 볼 때, 가장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이치에 맞아 수긍할 만한, 그럴듯한 미래 상황을 말한다. 둘째, 일어날 가능성의 범위(possible)에 드는 미래 상황을 만들어라. 이것은 개연성 높은 미래 상황에 다양한 사람들의 풍부한 상상력을 활용하여 좀 더 폭넓고 확장된 가능성들과 선택 옵션들을 포함한 미래 상황이다. 셋째, 혁신적인 비전의 범위에 드는(preferred & innovated future vision) 미래 상황을 만든다. 비전이란 현재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혁신과 창조를 바탕으로 한다. 무작정 가슴 뛰게 그린다고 모두 비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전의 범위에 드는 미래는 현 상황에서 출발하되 현실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진보시키고, 미래의 가능성 있는 위기와 위협에 대비하면서, 리스크가 가장 적은 항로를 선택하며,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혁신적이고 창조적으로 진보시킨 미래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뜻밖의 미래(unexpected) 상황도 미래지도에 넣어야 한다. 일어날 가능성은 낮지만 극단적 미래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미래 상황이 여기 속한다. 뜻밖의 미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약적 진보에 의한 미래다. 예를 들어 나노 기술로 인해 지금의 변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인류가 진보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세운 미래 시나리오다. 다른 하나는 붕괴 후 새로운 미래다. 예를 들어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로 인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동아시아의 미래가 여기에 속한다. 4개의 시나리오 중 뜻밖의 미래가 가장 예측하기 힘들다. 미래 나침반: 혁신적인 비전의 범위에 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신의 현재 위치를 미래지도에 표시하고, 이어서 변화를 계속 반영하여 미래지도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최적화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미래 나침반을 준비하는 일이다. 미래의 나침반이란 변화의 현 위치와 변화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보고, 분석하고, 이해하고, 확장하여 가치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른 말로는 미래 모니터링이라 할 수 있다. 미래지도만 있고 미래 나침반에 해당하는 ‘혁신적으로 보고, 혁신적으로 생각하기 능력’이 부족하다면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없다. 이는 오지에서 지도는 있지만 나침반이 없어서 동서남북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과 마찬가지다. 3부 성과 thinking tool 4. 비전을 성과로 전환하는 기술을 활용하라 일하는 박자를 찾아라: 미래 지도와 미래 나침반을 준비했으면 이를 가지고 비전을 성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혁신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물론 그 기본은 실력이다. 미래의 개인적 실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창조, 혁신, 통찰의 기반이 되는 사고력이다. 둘째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창조와 혁신에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이다. 단원 김홍도는 중국의 그림이나 한국의 옛 대가들과는 아주 다르게 새로운 콘셉트를 창조한 조선 시대 최고의 화가다. 김홍도 이전까지 최고로 뛰어난 화가였던 정선을 뛰어넘겠다는 야심 찬 도전 정신이 김홍도의 창조적 에너지였다. 이처럼 아무리 천재적 재능과 실력이 있더라도,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야 비로소 창조와 혁신을 이룰 수 있다. 셋째는 일하는 방식이다. 창의와 혁신은 제품과 서비스만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이 불합리하고 불편하고 문제투성이임에도 그냥 방치한다면 변화, 창조와 혁신의 시너지가 감소한다. 방치된 ‘일하는 방식’의 문제는 직원들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위협한다.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려면 자신만의 일하는 박자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일하는 박자는 ‘자신만의 일하는 프로세스와 그에 따른 리듬’, ‘일 자체의 프로세스와 그에 따른 리듬’의 2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창의적인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업무 리듬을 찾아내고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근대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가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평생 떠나지 않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산책했음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는 다른 도시에서 교수직을 제안해도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고향에서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완성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일 잘하는 개인 원리 5: 첫째, 시간을 지배하라. 시간을 지배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창의력과 탁월한 성과를 뒷받침하는 핵심적 환경 중 하나인 몰입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기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여기에 많은 시간을 몰입해야 한다. 둘째, 일 지도(work mapping)를 만들어라. 정말로 소중한 것을 먼저 하면서도 동시에 현재 긴급하게 해야 할 일도 무리 없이 해 내려면 일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일 지도는 현재의 일과 미래의 일을 한꺼번에 놓고 장소, 일의 성격이나 목표, 관계자 등 여러 측면에서 연관관계를 파악하며 시스템적 처리 순서를 쉽게 정할 수 있게 해 준다. 미래의 소중한 일이 포함된 일 지도는 좀 더 나은 우선순위를 알려주기 때문에 어떤 일을 오늘 하지 않아도 되는지, 혹은 할 수는 있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 알려준다. 셋째, 일ㆍ운동ㆍ쉼의 에너지를 만들어라. 혁신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익혀서 정신적으로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낀다고 해도,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면 몸은 힘들어한다. 몸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느낌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규칙적인 운동과 휴식을 통해 재충전을 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해야 한다. 넷째, 복원력을 높여라. 세상에는 예기치 못한 외부 돌발 사태가 종종 일어난다. 이런 일을 맞아 삶의 리듬이 완전히 무너지면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외부 충격을 받은 후 얼마나 빠른 속도로 회복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이 능력을 복원력이라고 한다. 조사 결과 성공한 CEO들은 일반인에 비해 복원력이 높다고 한다. 이들은 일기나 명상 등을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자주 가졌고, 어릴 때부터 미래를 향한 목표가 분명했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짐으로써 자신감과 의지력을 키웠다고 한다. 복원력을 높이고 싶다면 평소 이들처럼 훈련하면 된다. 다섯째, 행운을 이용하라. 당신이 이제까지의 모든 내용을 잘 훈련해서 몸에 익혔다면 이제 행운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행운은 대개 삶의 변두리로 지나가는 속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변두리로 지나가는 행운을 잡으려면 먼저 미래를 준비한 다음 자신을 변두리, 즉 한계 상황으로 모는 약간의 지독함이 있어야 한다. thinking tool 5.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비전으로 리드하라 혁신적으로 이끌라: 급변하는 경영환경과 사회변화의 흐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면서 조직의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이 요구된다. 변혁적 리더십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지니고, 조직의 현재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차원의 영감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자신을 따른 사람들이 미래를 향해 도전하게 만들고, 이를 위해 리더의 모범적 가치와 희생적인 행동으로 역할 모델의 샘플을 제시하고, 비전을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전략을 개발하여, 조직과 개인의 꿈이 함께 실현되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코칭을 하며, 부하나 조직이 현재의 한계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성장을 경험하도록 동기부여하고 헌신적으로 노력한다. 특송 분야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페덱스는 변혁적 리더십이 잘 녹아들어 간 회사이다. 동사의 경영철학은 평등과 공정을 기반으로 한 ‘사람(people)-서비스(service)-이익(profit)’으로 요약된다. 회사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직원을 배려하면, 직원은 충성과 헌신으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높은 수익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7년 당시 세계 최대 물류회사였던 UPS가 파업을 했을 때, 페덱스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자정을 넘겨 일하는 헌신을 보였다. 그때 넘어온 UPS의 물량은 파업이 끝나고 정상 조업을 한 후에도 페덱스를 떠나지 않았다. 페덱스가 90년 역사의 세계 최고 물류회사인 UPS를 누르고 세계 1위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사람을 세우는 7단계: 1단계: 자아 존중감을 회복시켜라. 일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이며,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자, 일을 제대로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도망갈 수 있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2단계: 비전을 자극하라. 현명한 리더는 직장의 일이 돈 버는 수단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비전을 자극하는 도구가 되도록 해준다. 위대한 꿈은 자극을 받아야 싹을 틔우고 큰 나무로 성장한다. 3단계: 비전코드를 발견하라. 비전자극이 다양하고 많을수록 직원들은 ‘나다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을 비전코드라고 부른다. 내 안에 숨겨진 나, 이웃, 회사, 세상을 변화시킬 나만의 독특한 재료인 셈이다. 4단계: 미래의 방향을 잡아주어라. 비전코드에 대한 자료가 준비되면 미래의 방향을 잡아주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다양한 가능성의 미래 시나리오 속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시대에 나와 이웃 그리고 세상과 인류가 겪게 될 문제, 욕구, 결핍을 가치 있는 방향으로 해결할 목표를 찾아라. 5단계: 개인과 팀의 비전을 공진화시켜라. 조직은 개인의 비전을 촉진하고, 촉진된 개인의 비전을 융합하여 조직의 비전을 재확장하는 선순환을 이끌어야 한다. 이것을 가장 잘하는 회사가 구글이다. 구글은 회사 비전으로 개인이 창조적인 도전을 하도록 자극한다. 그리고 개인은 흥미와 관심사에 따라 창의적으로 개발한 아이템을 회사 전체 비전의 진화에 활용한다. 6단계: 혁신적으로 일하는 기술을 훈련시켜라. 개인과 팀이 공진화하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혁신적으로 일하는 기술을 훈련시켜서 꿈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7단계: 비전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이것은 공진화된 비전을 회사 내 다른 사람들, 회사 밖의 협력사들 및 고객들, 심지어 경쟁자들과도 나눔으로써 비전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진정 위대한 비전은 혼자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힘을 합하여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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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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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더 느리게
느리게 더 느리게 장샤오헝 지음 다연 / 2014년 2월 / 384쪽 / 15,000원 ▣ 저자 장샤오헝 베스트셀러 작가. 주요 저서로는 『베이징 대학교 철학수업』, 『멍페이가 말하는 법』, 『러지아가 세상을 사는 법』 등이 있다. 풍부한 개인적 …
느리게 더 느리게 장샤오헝 지음 다연 / 2014년 2월 / 384쪽 / 15,000원 ▣ 저자 장샤오헝 베스트셀러 작가. 주요 저서로는 『베이징 대학교 철학수업』, 『멍페이가 말하는 법』, 『러지아가 세상을 사는 법』 등이 있다. 풍부한 개인적 경험과 촌철살인의 거침없는 문체로 독자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바탕이 된 탈 벤 샤하르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 및 철학과 조직행동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교수다. 그가 강의한 ‘긍정심리학(행복학)’과 ‘리더심리학’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 1위, 3위를 동시에 차지한 바 있다. 그는 1등만을 추구하는 하버드생들에게 내일의 성취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침으로써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 역자 최인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하였고,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 놓아주는 법 내려놓는 법』, 『생각 내려놓기』, 『가장 좋은 것을 고르는 여자, 가장 맞는 것을 고르는 여자』, 『아우라(나를 빛내고 상대를 끌어당기는 특별한 힘)』, 『내 남자 입문서』, 『99% 성공한 1%의 사람들』, 『사랑 항상 한발 늦게 깨닫게 되는 진실들』, 『품상인』, 『단숨에 읽는 세계박물관』, 『역사가 기억하는 세계 100대 사상』, 『마음의 암호에는 단서가 있다』, 『인생역전 11가지 답』, 『노자처럼 이끌고 공자처럼 행하라』 등 다수가 있다. ▣ Short Summary 더 나은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묵살한 채 내일의 행복을 쫓는 현대인의 모습은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 주객이 전도되어 지엽적인 수단에 집착할 때, 우리는 불행해진다. 어쩌면 행복은 한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채, 갖가지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에 짓눌려 숨죽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그러한 비관주의에 사로잡혀, 행복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더 이상 행복을 찾지도, 추구하지도 않는 아이러니한 삶의 패턴에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당신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바라는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은 하버드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탈 벤 샤하르 교수의 ‘긍정심리학’ 강의를 바탕으로 우리가 누려야 할 진정한 행복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저자는 인생살이에서 행복은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며, 욕심을 줄이고 현재에 만족하며, 긍정의 마인드로 느리고 여유롭게 살 때에 행복이 우리에게 참모습을 드러낸다고 조언한다. 총 15장으로 구성하여, 행복이란 무엇이며 과연 어디에 있는지, 나만의 행복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 차례 들어가는 말 첫 번째 강의 -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01 나는 행복한가? / 02 돈이 많을수록 더 행복한 것일까? / 03 다른 사람의 기대와 자신의 행복 04 겉이 화려하면 내면도 행복할까? / 05 완벽해야 행복한 것일까? 두 번째 강의 - 완벽을 향한 추구,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누구인가? 01 나 자신에게 집중하라 / 02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는 순간, 완벽한 세상이 열린다 03 지나친 자책은 금물! 작은 실수 정도는 용서하라 / 04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필요는 없다 05 내면의 열정을 따르는 것이 행복이다 세 번째 강의 - 물질적 풍요와 행복의 상관관계 01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 02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 03 행복한 사람은 명예와 이익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 04 장점을 발휘해서 행복감을 높여라 05 부유함의 정의를 다시 내려라 네 번째 강의 - 부정적 감정의 긍정적 효과 01 부정적 감정이 없어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 02 부정적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말라 03 분노는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제어하는 것! / 04 고독은 나 자신과 친해질 가장 좋은 기회다 05 행동은 두려움을 이긴다 다섯 번째 강의 - 느린 걸음으로 행복을 지켜라 01 느린 걸음을 즐겨라 / 02 휴식은 더 멀리 가기 위한 것! 03 내 영혼이 따라올 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라 / 04 단순할수록 행복하다 05 때로는 포기하는 것도 지혜다 여섯 번째 강의 - 일에 대한 편견을 바꿔라 01 일은 짐이 아닌 선물이다 / 02 일, 노동이 아니라 사업으로 하라 03 일, 의무감을 버리고 즐겁게 하라 / 04 일에서 나 자신이 좋아하는 초콜릿을 찾아라 05 일 권태기 극복법 일곱 번째 강의 - 나를 행복하게 만들 의미 있는 목표를 세워라 01 돈이 목표가 된 인생 / 02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다 03 심장을 뛰게 하는 목표를 세워라 / 04 두 마리 토끼를 쫓으면 결국 모두 놓친다 05 한 번에 한 걸음씩 기적을 이루다 여덟 번째 강의 - 자신을 믿어야 행복해진다 01 자기 자신을 믿어라 / 02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 03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라 04 행복의 가장 큰 적, 자기비하 / 05 자기비하의 원인을 찾아라 아홉 번째 강의 - 생각이 감정을 결정한다 01 불행하다는 생각이 불행을 불러들인다 / 02 나 자신에게 행복의 주문을 걸어라 03 상상으로 멋진 현실을 창조하라 / 04 나 자신의 즐거움을 퇴색시키지 말라 05 환경을 바꿀 수 없어도 기분은 선택할 수 있다 열 번째 강의 - 행복은 바른 비교에서 시작된다 01 다른 사람이 더 행복해 보이는 이유 / 02 위를 향한 비교와 아래를 향한 비교 03 벗어날 수 없는 덫, 맹목적인 비교 / 04 나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라 / 05 허영심에 묻혀버린 행복 열한 번째 강의 -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01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다 / 02 곁에 있는 행복을 놓치지 말라 03 감사의 마음을 수시로 표현하라 / 04 오늘 하루 또 무사히 보냈음에 감사하라 05 작은 행복을 모아 큰 행복으로 열두 번째 강의 - 기쁨을 나눌 친구가 있어야 진짜 행복이다 01 나눔이 없는 인생은 그 자체로 징벌이다 / 02 인생을 감옥으로 만드는 편협함 03 좋은 친구가 많을수록 더 행복해진다 / 04 베푸는 기쁨, 나누는 행복 05 이기심과 인색이 친구를 남으로 만든다 열세 번째 강의 - 자선은 행복의 뿌리다 01 자선, 행복을 얻는 비밀 / 02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라 / 03 측은지심을 수시로 표현하라 04 행운은 사랑의 마음이 주는 선물이다 / 05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풀 때 더 큰 보답이 돌아온다 열네 번째 강의 - 스트레스를 피하지 말고 맞서라 01 스트레스에게 행복을 빼앗기지 말라 / 02 나 자신에게 완벽을 요구하지 말라 03 융통성 있는 인생이 훨씬 즐겁다 / 04 피곤해지기 전에 휴식하라 05 스트레스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 열다섯 번째 강의 - 역경과 어려움 속에 숨은 행복을 발견하라 01 행복해지고 싶다면 원망하기를 멈춰라 / 02 안 좋은 일 속에서 좋은 일을 찾아라 03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 04 줄이 끊어진 바이올린, 그래도 연주는 계속된다 느리게 더 느리게 장샤오헝 지음 다연 / 2014년 2월 / 384쪽 / 15,000원 첫 번째 강의 -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행복한가?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고, 그만큼 생활이 점점 더 바빠질수록 우리는 세상의 다채로움에 점차 무뎌진다. 그렇게 살면서 어느 순간, 마땅히 감동해야 할 인생살이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과 마주한다. 실제로 이 시대의 많은 사람이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삶은 점차 빛을 잃고 결국 색까지 바래고 만다. 현재의 삶이 아무리 분주할지라도 한 번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자문해보자. “지금, 나는 행복한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성실히 살고 있다 자부하며 매일 판에 박힌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과연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아마 대부분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행복은 옆집에 있다!”고 말이다. 옆집 사람은 나보다 돈을 적게 버는데도 그 집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분명 나보다 직장도 별로인데 매일 저녁 근처 공원에 나가 산책을 할 만큼 여유가 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초원의 빛>은 1961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로, 당시 각계각층의 호평을 받았다. 남자 주인공 버드와 여자 주인공 윌마는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윌마는 엄격한 가정교육과 부모의 철저한 보호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결국 버드와 윌마는 안타깝게도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몇 년 후 해 질 무렵, 두 사람은 버드의 목장에서 재회한다. 시카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온 윌마가 버드에게 쓸쓸함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묻는다. “행복하니?” 한때 찬란했던, 그러나 지금은 평범한 농부가 된 버드는 자신의 집을 망연히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어.” 인생이란 참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인생을 알 수가 없고, 인생이 무엇인지 알 때쯤 되면 더 이상 젊지 않다. 여기서 ‘젊음’이란 단순한 나이가 아닌, 순수함과 열정을 말한다. 순수함을 저버리고 열정을 외면하는 일이 반복되면 우리 인생은 행복과 영영 상관없는 길로, 심지어 전혀 반대되는 길로 향하게 된다. 사실, 행복은 하나의 감각이다. 행복을 위한 조건은 없으며, 옆집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행복하기로 마음먹는다면 길가의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끼니를 해결해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고, 혹독한 시련이 닥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욕심과 이해득실에 얽매여 마음의 평화를 잃으면 산해진미를 먹어도 모래를 먹는 것 같고, 천하의 절경을 보아도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행복 기준을 가지고 있고, 이 기준이 충족됐을 때 비로소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행복이 내가 생각하는 행복과 다를 수 있고, 내가 행복이라고 느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이렇듯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지만 그래도 행복의 조건을 정의한다면 다음의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행복한가?” 놀랍게도 우리는 이 중요한 문제를 일부러 외면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 누군가 자신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무슨 일이 있느냐며 걱정한다. 삶의 질은 관심사가 어디에 집중되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면 자기계발에는 자연히 소홀해진다. 반대로 정신적인 수준을 높이는 데에만 관심이 쏠려 있으면 생계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모든 면에서 두루 균형 잡힌 삶을 원한다면 때때로 자기 자신을 점검해봐야 한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나는 행복한가?” 하고 자문해보자. 두 번째 강의 - 완벽을 향한 추구,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누구인가? 나 자신에게 집중하라 우리는 완전무결할 수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결점과 부족함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완벽해지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무위로 돌아가는 것이다. 티끌 없이 완벽한 옥은 존재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오히려 한 점의 티가 옥을 더욱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신의 결점과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강점과 장점에 집중하라. 완벽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시각장애인에게 물었다. “매일 어둠 속에서 살다니, 고통스럽지 않으세요?” 그러자 시각장애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뭐가 고통스럽다는 거죠? 저는 충분히 행복한 걸요.” “눈이 보이질 않잖아요.” “그래요. 저는 눈이 보이지 않아요. 그래도 청각장애인에 비하면 소리를 잘 듣고, 언어장애인에 비하면 말도 잘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것도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보이지 않는 고통 따위는 쉽게 넘어설 수 있답니다.” 시각장애인의 대답을 들은 사람은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나는 이 사람이 보지 못하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으니 그만큼 더 행복한 사람이구나!’ 세 번째 강의 - 물질적 풍요와 행복의 상관관계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어떤 사람이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려면 그가 추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재물을 쫓는 사람은 주머니에 현금이 가득하고 돈을 펑펑 쓸 수 있어야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고귀한 명예나 청빈낙도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 집 정원 등나무 의자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감상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라고 믿는다. 당신에게 참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화려한 도시의 삶인가? 아니면 높은 연봉? 혹은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가? 미국의 작은 마을,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근근이 먹고사는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 날 평소 그를 가엾게 생각했던 한 중국인 부자가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젊은이,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는 것은 그만두고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내가 중국에서 교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네. 그곳에 가면 지금 버는 돈의 몇 배를 벌 수 있을 거야.” 젊은이는 깜짝 놀란 듯 부자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반문했다. “제가 지금 하는 일은 제대로 된 일이 아닙니까? 나는 이 일을 좋아합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지요. 대체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기 위해 가족과 친구, 고향을 떠나 태평양 건너 낯선 나라까지 갈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대도시에 살면서 많은 돈을 버는 것 자체를 대단히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비록 그 도시에 마음을 붙일 곳이 없다고 해도 그는 진심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단순히 돈 몇 푼 더 벌자고 가족과 고향을 떠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에게는 가족과 화목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샤하르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성직자보다는 일에서 진정한 의미와 행복을 찾고 바른 동기를 가진 사업가가 훨씬 더 경건하고 성스럽다.” 돈이 많든 적든, 돈을 어떻게 보든 간에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진실한 기쁨과 만족을 얻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단, 돈과 행복의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돈을 쫓다 보면 어느 순간 오히려 행복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네 번째 강의 - 부정적 감정의 긍정적 효과 부정적 감정이 없어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이들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햇볕이 쨍하면 덥다고 짜증내고, 흐리면 기분이 가라앉는다며 신경질을 낸다. 이렇게 종일 불만의 목소리로 툴툴대면 인생이 재미있을 리 없다. 해는 당신이 기분 좋을 때도 떠 있고, 기분 나쁠 때도 떠 있다. 결국 당신의 기분은 해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세상이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한번 생각해보자. ‘혹시 내가 기분 나쁜 이유는 모든 것을 지나치게 트집 잡고 있기 때문 아닐까?’ 쑤옌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현명하게 처리할 줄 안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마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을 꼼꼼히 분석해서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시킨다. 예를 들어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그녀는 이렇게 자문한다. “요즘 일적으로 새로운 동기나 원동력이 필요하지 않았던가?” 만약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면 그녀는 ‘스트레스’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길을 선택한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스트레스를 받아들이기로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스트레스가 아니라 일종의 자극이자 도전 과제, 즉 동기로 변한다는 점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비결이자 최선의 해결책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불쾌한 일을 겪는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과 싸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애써 그 감정을 부정하다가 오히려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보다는 이런 일이 왜 생겼고 어떻게 발전된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하고 나면 자신을 우울하게 만든 일이 실은 대수롭지 않고, 또한 금방 지나가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다섯 번째 강의 - 느린 걸음으로 행복을 지켜라 느린 걸음을 즐겨라 알프스 산 중턱에는 시원하게 뚫린 넓은 도로가 있다. 도로 양옆은 꽃과 나무로 가득하고 나비가 춤을 추는 등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 도로에는 눈에 띄는 표지판이 있다. ‘천천히 가면서 즐겨보세요’라고 적힌 표지판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정신없이 지나가버리면 이런 표지판이 다 등장했겠는가! 아마 모두가 목적지에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겠다는 일념으로 내달리는 모양이다. 그러느라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절경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 아닐까? 과거에는 우리도 이웃과 소소한 집안일부터 나라의 대소사까지 서로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시간적ㆍ감정적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바쁘고, 또 바쁘며, 미치도록 바쁘다! 오죽하면 “잘 지내십니까?”라는 인사보다 “많이 바쁘시죠?”라는 말을 더 많이 하겠는가.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바쁘다’는 것을 이미 기정사실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어쩌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편도 여행이다. 이 여행에서 어떤 사람은 비행기나 로켓을 타고 엄청난 속도로 앞만 보고 달려간다. 기나긴 여행의 과정을 순간으로 압축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잠시 쉬지도, 멈추지도 않고 달려간 여행의 끝에는 잠깐의 쾌감만 남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마차를 타고 천천히, 심지어 두 발로 걸어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 그 여정에서 꽃과 새를 보고, 나무와 곤충을 관찰하며,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한다. 이들이야말로 인생을 있는 그 자체로 즐길 줄 아는 것이다. 인생의 맛은 다양하다. 허겁지겁 삼키는 것보다는 천천히 먹고 음미해야 진정한 맛도,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너무 바빠서 도저히 쉴 만한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의도적으로 쉴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생활에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더 멀리, 더 높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가끔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자. 봄에 피는 꽃과 가을에 지는 달, 뜨거운 여름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과 겨울을 감싸는 눈을 음미해보자. 이 모든 것은 인생이 우리에게 베푸는 최고의 축복이다. 놓치기에 너무 아깝지 않은가! 여섯 번째 강의 - 일에 대한 편견을 바꿔라 일은 짐이 아닌 선물이다 한 늙은 거지가 하릴없이 들판 한가운데 드러누워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 신이 나타났다. 거지는 기회를 놓칠세라 신 앞에 엎드려 자신의 소원을 세 가지만 들어달라고 간청했다. 신이 알았다고 하자, 거지는 신이 난 목소리로 첫 번째 소원을 말했다. “저를 부자로 만들어주십시오!” 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눈 깜짝할 사이에 거지는 엄청난 부자가 됐다. 거지가 곧이어 두 번째 소원을 말했다. “저를 다시 젊어지게 해주십시오. 젊지 않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제대로 즐기질 못하니까요!” 신은 이번에도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20대 청년이 된 거지는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는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제 마지막 소원은 평생 일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즉시, 거지는 다시 돈 한 푼 없는 늙은 거지가 되어 길가에 앉아 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내가 왜 다시 빈털터리가 된 것입니까?” 신이 말했다. “일은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그런데 너는 방금 그 축복을 버리지 않았느냐? 그러니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일할 때는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모든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업무 환경에 감사하고 상사에게 감사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에 감사하고, 일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또 자신을 단련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에 이르는 자질을 갖출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일하기를 싫어한다. 마음속에서 일을 이미 ‘고생스러운 것, 고단한 것’으로 단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할 일 없이 보낸다고 상상해보자. 이 얼마나 무료하고 답답하겠는가! 일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그것은 노동에서 오락으로 바뀐다. 그러나 일을 어쩔 수 없는 부담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처럼 고통스럽기만 하다.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 우리에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하고 단조롭게 반복되는 업보가 된다면 삶은 온통 지루함과 괴로움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일을 선물로 바꾸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가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일곱 번째 강의 - 나를 행복하게 만들 의미 있는 목표를 세워라 심장을 뛰게 하는 목표를 세워라 미국 전 대통령 토마스 윌슨은 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꿈이 있기에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위인들은 모두 몽상가였습니다. 그들은 따스한 봄바람 속에서, 겨울철 따뜻한 난롯가에서 위대한 꿈을 꿨습니다. 어떤 사람은 살면서 점차 자신의 꿈을 잊어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지키고 키워서 마침내 현실로 이뤄냅니다.” 그렇다. 꿈을 가진 사람만이 끝까지 노력하고 분투해서 자신의 삶을 빛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단, 지나치게 허황된 꿈과 목표는 오히려 독이 되므로 어느 정도 현실성 있고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힘과 끝까지 지속할 끈기를 얻을 수 있다. 목표라고 해서 굉장히 거창하거나 너무 먼 미래의 일을 정할 필요는 없다. 매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해줄 것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오늘 하루의 작은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실천해나간다면 언젠가 꿈꾸던 지점에 닿을 것이다. 여덟 번째 강의 - 자신을 믿어야 행복해진다 자기 자신을 믿어라 “우리는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재능은 어떤 일을 완성하라고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해내야 한다.” 이는 퀴리 부인의 말이다. 빛을 발하는 것은 태양만의 특권이 아니다. 우리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태도로 삶을 대하며 자신만의 빛을 발한다. 반대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도 쉽게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또한 늘 남의 평가에 좌우되며 남에게 맞추느라 자신의 개성을 억누른다. 하지만 자기 자신조차 자신을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이 자신을 믿어주고 신뢰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아홉 번째 강의 - 생각이 감정을 결정한다 나 자신에게 행복의 주문을 걸어라 행복한 사람은 순간의 감정 기복이 있어도 기본적으로 항상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또한 분노나 상처보다는 사랑이나 기쁨의 감정에 더욱 집중한다. 대부분의 경우 기쁨은 행복을 동반한다. 그러니 행복해지고 싶다면 매일 자기 자신에게 ‘나는 기쁘다’라는 주문을 걸어보자. 처음에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반복하다 보면 이유 없이 일렁이던 마음이 어느새 한층 누그러져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세상의 일은 예측할 수 없는 것투성이지만 매일 행복하고 기쁘게 살기로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기쁨은 스스로 일깨워야 하는 것이고, 행복 또한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열 번째 강의 - 행복은 바른 비교에서 시작된다 다른 사람이 더 행복해 보이는 이유 자기 인생에 전적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자신보다 남이 더 행복하고 잘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럴까? 행복은 정말 나와 상관이 없는가? 샤하르는 말했다. “행복의 가지는 언제나 우리 앞에 있다. 다만, 우리가 먼 곳의 풍경을 부러워하며 그곳에 시선을 빼앗기느라 바로 눈앞의 행복을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남의 행복에는 확대경을 들이대면서 자신의 행복은 축소경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불행은 축소해서 보지만 자신의 불행은 늘 확대해서 본다. 그러니 당연히 자신의 삶은 어떤 각도에서 봐도 괴롭고 짜증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인생의 참모습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를 때가 많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여도 알고 보면 말 못할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을 수 있고, 누가 봐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 사실은 가장 큰 행복과 평안을 누리고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인생의 괴로움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괴로움이 사라지기를 마냥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떨쳐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음가짐과 태도를 바꾸면 여태껏 알지 못했던 행복이 보인다. 그러니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자. 열한 번째 강의 -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다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건강,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일,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배우자를 갖는 것이다.’ 이 글을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첫 번째로 꼽은 것을 보면 그는 틀림없이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삶이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도 초연함과 미소를 잃지 않고 여전히 행복을 누린다. 반대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눈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져 있어도, 만족하고 감사하기는커녕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오히려 불만스러운 부분을 억지로 찾아낸다. 그러니 당연히 행복과도 거리가 멀다. 미국 미시간 대학교 연구센터는 수천 명을 대상으로 10여 년간 추적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생활만족도가 높고 평균 수명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감사의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많은 문제를 겪으며 비교적 고독하게 살았고, 사망률도 1.5배 이상 높았다고 한다. 사실, 감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도, 할 일이 있는 것도, 어디 한 군데 아픈 곳 없이 건강한 것도, 함께할 가족과 친구가 있는 것도 모두 감사할 거리다. 감사하는 마음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을 행복으로 누릴 수 있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실하게 살아가며 열정적으로 남을 돕고 순수하게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다. 열두 번째 강의 - 기쁨을 나눌 친구가 있어야 진짜 행복이다 나눔이 없는 인생은 그 자체로 징벌이다 인생에는 나눔이 필요하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한다. 흔히 하는 말로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나눔이 없는 인생은 기쁠 때든 슬플 때든 똑같이 홀로 벌을 받는 것과 같다. 거금을 들여 멋진 집을 지었다고 하자. 그런데 만약 창문이 한 개도 없다면 어떨까? 겉보기에 아무리 화려하고 대단해도 그 집을 사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만약 집도 감정이 있다면 외롭고, 답답하고, 고립됐다고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에도 외부 세계와 공유하는 창문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벨 여사는 매우 부유했다. 그녀는 매우 크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이 이 정원을 찾아와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벨 여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원에서 노닥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저런 방법을 궁리한 끝에 마침내 좋은 수를 떠올렸다. 그리고 하인을 시켜 다음과 같이 적힌 팻말을 정원 앞에 내걸도록 했다. ‘정원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한 가지 알려드립니다. 얼마 전부터 꽃 덤불 근처에서 종종 독사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만약 물리게 될 경우, 30분 안에 응급 처치를 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독사입니다. 참고로,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은 차로 50분 거리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정중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내용이 담긴 팻말을 본 사람들이 정원에 발길을 뚝 끊은 것이다. 한동안 벨 여사는 인적이 사라진 정원을 내려다보며 매우 만족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자, 정원에는 조금씩 잡초 덤불이 우거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정원은 어느새 원래의 화사한 모습을 잃고 완전한 숲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벨 여사가 허풍으로 했던 말도 사실이 되었다. 숲으로 변한 정원에 독사가 기어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벨 여사는 홀로 고독하고 외롭게 정원을 지켰다. 과거에 그곳을 가득 메웠던 수많은 사람들을 조용히 추억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이 정원을 다른 사람과 기꺼이 공유하면 여러 사람이 찾아와 그곳에 기쁨의 씨앗을 심어주고, 정원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이로써 우리 마음의 정원은 영원히 황폐하지 않고 아름다울 수 있다.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나눌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인생은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열세 번째 강의 - 자선은 행복의 뿌리다 자선, 행복을 얻는 비밀 이런 말이 있다. ‘한 시간을 즐기고 싶다면 낮잠을 자고, 하루가 즐겁고 싶다면 낚시를 가라. 그리고 한 달을 행복하게 살려면 결혼을 하고, 일 년을 행복하게 살려면 재산을 물려받아라. 그러나 일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도우라.’ 이 세상에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만큼 숭고한 일이 또 있을까? 아마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자선과 자비를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선을 단순히 자신의 소유를 남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아무런 사심도 없이 나누고 베풀 때 자신이 얼마나 큰 기쁨과 평안,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되면, 스스로 기꺼이 베풂의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선한 일을 하려면 먼저 선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선하고 진실하며 아무런 사심도, 잡념도 없는 마음이 있어야 선행이 공허한 자기 자랑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단지 선행을 위한 선행, 심지어 다른 공리적인 목적을 가지고 한다면 본래의 의미는 퇴색하고,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한 장사나 다름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에게는 내 것 네 것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베푼다.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에게 나의 것을 기꺼이 내어주고 더 큰 기쁨을 돌려받는다. 타인을 향한 베풂도 기본적으로 이와 다르지 않다. 진실한 마음으로 주고 베푼다면 낯선 사람에게서도 영혼의 기쁨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 열네 번째 강의 - 스트레스를 피하지 말고 맞서라 스트레스에게 행복을 빼앗기지 말라 우리는 건강을 시간은 물론 스트레스와 맞바꾸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이런 ‘거래’가 아무런 계약도 없이, 전적으로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심지어 건강뿐만 아니라 행복까지 대가로 지불하고 있다. 인간은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며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존이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생존하려면 경쟁해야 하고, 경쟁하다 보면 자연히 스트레스가 생긴다. 다시 말해 일단 살기로 한 이상 생존에 따르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진학, 취업, 직장 등 어느 것 하나 예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무조건 외면하고 도망치는 것은 오히려 또 다른 스트레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좋은 대처법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스트레스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수용한 뒤, 이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행복에도 이유가 필요하고 불행에도 이유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능동적으로 행복의 이유를 찾고 있는가이다. 현대인은 스트레스와 무관해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 수준을 적절히 조절하고 내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도하게 스트레스에 쏠린 관심을 행복의 이유를 찾는 데로 돌려보자. 행복은 능동적으로 찾는 사람의 것이다. 열다섯 번째 강의 - 역경과 어려움 속에 숨은 행복을 발견하라 줄이 끊어진 바이올린, 그래도 연주는 계속된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올레 불이 연주회를 할 때였다. 갑자기 바이올린의 A현이 끊어졌다. 모두 놀라고 당황했지만 당사자인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 줄만으로 남은 파트를 완벽하게 연주해냈다. 이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바이올린 연주는 인생과 같습니다. 줄 하나가 끊어진다면 나머지 세 줄로 끝까지 연주해야 하지요.” 대략 두 세기 반 전, 프랑스 리옹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그러나 화기애애한 파티 분위기는 몇몇 손님이 한 역사화의 의미를 둘러싸고 쟁론을 벌이면서 험악해졌다. 파티 주최자는 곧 기지를 발휘해 곁에 있던 시종을 불러 그림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청했다. 사람들은 한낱 시종이 무엇을 알겠느냐는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바로 그 미천한 시종이 그림의 주제를 설명하기 시작하자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술렁였다. 그만큼 시종의 설명은 심도 깊고 세밀했으며 관점 또한 반박할 여지없이 완벽하고 신선했다. 한 손님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시종에게 물었다. “대체 어떤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셨소?” 그러자 젊은 시종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저는 아주 많은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머무르며 가장 많은 것을 배웠던 학교는 바로 ‘역경’이었습니다.” 이 시종의 이름은 장 자크 루소였다. 루소는 평생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지만 그것을 오히려 사회의 각 방면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하고 이해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 덕분에 그는 방대한 지식을 습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위대한 사상을 만들어냈다. 고난과 역경은 아주 좋은 학교다. 왜냐하면 수없는 성공의 맹아가 바로 그곳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역경은 줄 하나가 끊어진 바이올린과 같다. 줄 하나가 끊어지면 물론 불편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연주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활을 움직인다면 줄이 모두 온전할 때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낼 수 있다. 단, 줄이 끊어지는 순간 연주를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해낼 것인지는 모두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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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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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 조정민 지음 두란노 / 2013년 11월 / 284쪽 / 12,000원 ▣ 저자 조정민 MBC 사회부ㆍ정치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뉴스데스크 앵커, 보도국 부국장, iMBC 대표이사, 온누리교회 부목사, CGN TV 대표를 역임했으며, 25년 …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 조정민 지음 두란노 / 2013년 11월 / 284쪽 / 12,000원 ▣ 저자 조정민 MBC 사회부ㆍ정치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뉴스데스크 앵커, 보도국 부국장, iMBC 대표이사, 온누리교회 부목사, CGN TV 대표를 역임했으며, 25년 동안 언론인으로 열정을 불사르다 생명의 길인 예수님을 만난 후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꿈을 품고 목사의 길로 들어섰다. 교회 목사로, 또 선교 방송국 사장으로 일하다 새로운 공동체인 베이직교회의 목사로 섬기고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길에 도전하며, 트위터 광장, 페이스북 우물가에서 인생의 길을 잃은 사람들, 새로운 길을 찾아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으며, 일상에서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매일 아침 한 컵의 생수를 건넨다. 지은 책으로는 『사람이 선물이다』, 『인생은 선물이다』, 『길을 찾는 사람』이 있다. ▣ Short Summary 어린 시절 그늘진 삶을 살았습니다. 어깨가 늘 짓눌려 살았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길인가 저 길인가 날마다 흔들렸습니다. 때로는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때가 많았습니다. 종교는 때로 위안이었지만 삶의 답으로 미흡했습니다. 몇몇 종교의 길을 기웃거리다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치열한 길이었습니다. 목숨을 걸었습니다. 일은 길이 되었습니다. 길 곁에 서성이던 사람들의 눈길이 눈에 선합니다. 돌아보면 진심으로 손뼉을 쳐 준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들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다른 길을 간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무엇이 길인가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그냥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가면서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길이 이미 끊어진 곳인데도 몰려가기 때문에 생각 없이 걷기도 합니다. 트위터 광장, 페이스북 우물가에서 만난 사람들과 길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 벌써 4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길을 찾는 사람들과 길 얘기를 시작했고, 길을 벗어난 사람들과 길 얘기를 계속했습니다. 이 책은 그 짧은 한마디를 모은 네 번째 책입니다. 누가 듣겠나 했더니 여러분들이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펴냈던 책들이 길 잃은 사람들에게 한 줄기 오솔길처럼 다가오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이 길로 인생을 끝내야 하나 망설였던 사람들이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아무 재능도 희망도 없던 사람이 길 되신 분을 만나 이런 과분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번 책 제목은 원래 ‘깊은 샘은 마르지 않는다’로 하고 싶었으나 ‘길’을 고집하는 분들에게 길을 터 주었습니다. 올해 3월 이런저런 모습으로 방송에 몸담았던 30년을 뒤로하고, 은혜의 젖줄이었던 온누리교회 품을 떠나 베이직교회의 한 지체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거나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이 교회가 되는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이 든든히 동행해 주었고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손을 잡아 준 것이 큰 기쁨입니다. 해가 가기 전에 네 번째 잠언록을 덤으로 안겨 준 두란노 가족에게 감사합니다. 책이 새로운 길에 밀려 내리막에 접어들어도 변함없는 열정으로 책을 만드는 덕분에 길 밖의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차례 프롤로그_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하나, 인생길에 만나는 고난은 축복이다 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따라 가라 셋, 사랑하면 다 알게 된다 넷, 길은 사람에게로 이어진다 다섯, 나에게로 길을 걷다 여섯,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 일곱, 위대한 여정은 위대한 귀환이다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 조정민 지음 두란노 / 2013년 11월 / 284쪽 / 12,000원 하나, 인생길에 만나는 고난은 축복이다 8 살다가 누구나 넘어집니다. 넘어진 것을 인정하는 사람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과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10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보다 덜 실패한 것이 아니라, 많이 실패했지만 그 실패로부터 더 많이 배운 사람들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1 비만 오면 홍수가 나서 못 살고, 햇볕만 내리쬐면 사막이 돼서 못 삽니다. 18 같은 장소인데… 한 사람은 쓰레기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고, 한 사람은 꽃이 활짝 핀 정원으로 가꿉니다. 같은 마음인데… 한 사람은 죽음의 파편들로 가득하고, 한 사람은 생명의 씨앗들로 넘칩니다. 24 행복한 사람은 나를 도와준 사람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불행한 사람은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더 많이 기억합니다. 28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를 계속 물으면 분노가 자라고, 왜 내게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를 질문하면 감사가 자랍니다. 30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듣고,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서도 일이 잘되고 있다면 잘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망하고 있는 중입니다. 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따라 가라 34 걸어가는 속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고 있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 변화의 목적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언제나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39 문제는 가까이서 보면 언제나 커 보이고, 한발 떨어져서 보면 언제나 작아 보입니다. 멀리 지나가서 보면… 문제 같지도 않습니다. 41 내가 분노를 다스리지 않으면 분노가 나를 다스릴 것이고, 내가 탐욕의 목을 조르지 않으면 탐욕이 내 목을 조를 것입니다. 59 인생은 이미 일어난 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는가에 달렸습니다. 61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면 내 수준의 삶을 살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선택하면 내 수준 너머의 삶을 삽니다. 65 열매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꽃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미래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현재의 고난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72 다음을 알면 이렇게 선택하지 않고, 끝을 알면 이렇게 살지 않습니다. 74 고난이 축복인 것은 고난 속에서 속사람이 강해지고, 속사람이 강해질수록 사는 것이 덜 힘들기 때문입니다. 80 사방에 철창을 달면 누구도 집 안에 들어올 수 없지만 사실 내가 갇힌 셈이고, 굳게 마음을 닫으면 아무도 내 안에 들어올 수 없지만 정작 내가 갇힌 것입니다. 93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다고 나무가 죽은 것이 아니고, 마지막 도움이 사라진다고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견디기만 하면… 겨울 끝에 새순이 돋아나고, 고난 끝에 새 꿈이 자랍니다. 셋, 사랑하면 다 알게 된다 99 어리석은 사람은 사람의 말을 믿고, 영리한 사람은 사람의 얼굴 표정을 읽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 사람 삶의 열매를 확인합니다. 사람 아는 일에는 누구나 시간을 두어야 합니다. 100 어릴 때는 내가 그를 미워하는 것도 그가 나를 미워하는 것도 다 그 사람 탓이지만, 어른이 되면 내가 그를 미워하는 것도 그가 나를 미워하는 것도 다 내 탓입니다. 113 시기심에서 속히 벗어나야 할 이유는 그 사람의 약점을 찾아 두 손에 쥐고 흔들다 내 장점을 떨어뜨리기 때문이고, 그 사람의 단점을 찾다가 부지불식간에 그 단점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115 권력은 힘이 있어서 명령하고, 사랑은 힘이 있어도 간청합니다. 132 희망의 사람은 낙심과 절망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낙심과 절망이 찾아올 때마다 희망을 기억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다시 붙드는 사람입니다. 143 내 것으로 도우면 언젠가 아깝고 서운하고 화납니다. 내 것 아닌 것을 갖고 도우면 아깝고 서운하고 알아주지 않아도 화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래 내 것은 없습니다. 146 원수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반드시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기 때문이고, 호의를 베풀고 잊어도 되는 까닭은 흘러 흘러서 반드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넷, 길은 사람에게로 이어진다 152 일 때문에 힘든 사람보다 관계 때문에 힘든 사람이 많고, 일 때문에 후회하는 사람보다 관계 때문에 후회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모든 일은 사실 관계에서 빚어집니다. 157 교만은 사람들을 겪어볼수록 나만한 사람이 없어서 놀라고, 겸손은 사람들을 만나볼수록 어느 한 사람 평범한 사람이 없어서 놀랍니다. 159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당연히 여겨야 합니다. 171 도움 받기보다 남 돕는 일이 더 어려운 까닭은, 돈이 들고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생색내지 않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생색내는 도움은 사실 나를 도운 것입니다. 195 친구는 내 앞에서 짓는 얼굴 표정으로 가려지지 않고, 내 등 뒤에서 하고 다니는 말로 가려집니다. 196 남의 잘못을 보는 만큼 교만하고, 내 잘못을 보는 만큼 겸손합니다. 남의 잘못이 더 잘 보이는 만큼 더 교만해지고, 내 잘못이 더 잘 보이는 만큼 더 겸손해집니다. 203 좋은 인연이란 서로 다른 것을 존중하면서 사는 것이고, 악연이란 서로 다른 것을 경멸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어차피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206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기적이고 신비이고 영원에서 영원까지 맥이 닿아 있습니다. 만남… 정말로 우연이 아닙니다. 207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합니다. 213 모든 사람에게서 비난할 만한 잘못을 찾을 수도 있고,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만한 장점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찾는 것에 나도 물듭니다. 다섯, 나에게로 길을 걷다 220 내가 제일 고생하고 내가 다 하는 것 같지만 누군가의 희생으로 내가 성장하고, 누군가의 아픔으로 내가 성숙합니다. 221 내가 보고 듣는 것들,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 심지어 내가 먹고 마시는 것들 중에 내 인생에 하찮은 결정이 없고, 내 인생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230 나를 깊이깊이 들여다보면 세상에 그토록 미워할 사람도 없고, 주위에 그렇게 부러워할 사람도 없습니다. 231 옳은 사람은 내가 언제나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고, 그른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옳고 그른 사람 구별하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234 휴양지에서도 다툴 수 있고, 일터에서도 웃을 수 있습니다. 어디 있느냐보다 누구와 있느냐가 중요하고, 누구와 있느냐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258 내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내가 듣는 것도 전부가 아닙니다. 내가 느끼는 것이 다가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것도 전부가 아닙니다. 나는 언제나 모자라고, 나는 항상 틀릴 수 있습니다. 259 내가 지금 통제하지 않는 것이 언젠가 나를 통제할 것이고, 내가 지금 돌이키지 않는 일이 후에 나를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끌어갈 것입니다. 지금은 결코 늦지 않은 때입니다. 260 내가 나를 부릴 수 있다면 세상에 누구를 부리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종으로 삼고 싶어도 오직 나 한 사람 다스리는 것으로 족합니다. 270 내가 바뀌지 않고 가정이 바뀌는 법이 없고, 인간이 바뀌지 않고 세상이 바뀌는 법은 없습니다. 282 어리석은 사람은 남을 바꾸려다 내 일생을 다 보내고, 지혜로운 사람은 나 한 사람 바꿔서 세상이 바뀌는 것을 봅니다. 289 밤에만 꿈꾸는 사람은 낮에도 꿈꾸는 사람을 못 따라갑니다. 여섯,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 298 지혜는 모든 것을 경험해서가 아니라 신뢰할 만한 인격을 받아들임으로써 얻습니다. 지혜는 속 좁은 나를 의지하지 않고, 고집스런 내 생각에 묶이지 않습니다. 299 잠시의 기쁨에도 불구하고 모든 승리는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고, 잠시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모든 패배는 새로운 시도의 기회입니다. 301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위대한 일 한 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은 일 속에 스며 있습니다. 307 평생 먹구름 아래 사는 사람도 없고, 일생 뙤약볕 아래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시간은 지나가고, 시간은 끝이 있습니다. 309 좋은 차를 타는 것보다 걸을 수 있는 것이 축복이고, 비싼 음식을 먹는 것보다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314 잃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 있고, 아프지 않으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상실 속에서만 빚어지는 아름다움이 있고, 고통 속에서만 머금는 향기가 있습니다. 316 행복해지는 가장 빠른 길은 잘 웃는 사람 곁에 있는 것이고, 불행해지는 가장 빠른 길은 쉴 새 없이 불평하는 사람 곁에 있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쉽게 감염되기 때문입니다. 320 믿음은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다가올 현실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눈앞의 증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일곱, 위대한 여정은 위대한 귀환이다 331 평안한 것은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고, 감사한 것은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마음 때문입니다. 336 사과나무의 성공은 가지에 사과가 열리는 것이고, 사람의 성공은 인생에 사람이 열매 맺는 것입니다. 339 세상에 내 것은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일찍 깨닫는 사람과 늦게 깨닫는 사람과 못 깨닫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342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잃은 것이 없다면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343 사랑은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대하는 오직 한 길입니다. 350 일상 속의 기적에 눈을 뜨면 더 이상의 기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삶의 순간순간이 경이로우면 더 이상의 경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354 땅이 끝나는 곳에서 바다가 시작되고, 바다가 끝나는 곳에서 땅이 시작됩니다. 언제나 어디서건 끝은 끝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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